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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평화기행
이시우 글.사진 / 창비 / 2003년 6월
평점 :
'155마일'의 휴전선. 동쪽의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에서 서쪽의 강화군 서도면 말도까지. 그리고 휴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2km, 그 이름과는 달리 '중무장'과 '군사적 긴장'을 떠올리게 하는 비무장지대. 그리고 민통선-군사분계선에 인접한 지역 중 군작전상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남쪽에 설정하는 선이다.
"비무장지대는 북한을 반민주주의/거지소굴/독재/전쟁광 등의 개념으로 묶어 타자로 만드는 경계선이다. 그뿐 아니라 남한 내에서도 타자를 만들어내는 경계선이다. 반공이데올로기로, 지역적 소외로, 민주주의의 부재로 모든 일상을 전근대적으로 만들어낸다. 특히,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인 강원, 경기 북부, 인천 일부 지역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대상화된 지역이다. 이곳의 역사/사투리/음식/문화/정치색/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외지인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다." (303-304쪽)
이 책을 보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민통선 안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민통선 안의 사람들은 분단체제로 고통 받고 있었다. 대인 지뢰의 피해가 그렇고, 미군의 군사훈련에서 오는 여러 문제들, 경제적 고통, 사회적 무관심... 그런데도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의 존폐에는 관심이 크지만 '민통선 폐지'문제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민통선 안 사람들의 '생존적 권리' 찾기에는 소극적이면서도 '생태 환경 보호'를 주장하는 것은 민통선 사람들의 소외감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지적이야 말로 이 책이 단순히 '기행자'의 목소리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말해 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작가의 다재다능이 부러웠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정성스럽게 잘 찍어 놓은 사진 솜씨도 그렇고(하기야 '프로'니까), 치열하게 사색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기듯 써내려간 글쏨씨도 그렇고, 인문, 역사, 군사, 사회, 문화재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도 그렇다. 그리고 책 사이에 살짝 예쁜 사진엽서-물론 출판사의 의도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를 꽂아 둔 작가의 마음씨까지도 내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다양한 영역에 넘나들며 자유롭게, 정확하게 맥을 짚어가는 작가의 재능이 부러웠다.
그렇지만 내가 작가의 재능보다 더욱 부러웠던 점은 그가 '평화감시운동'과 '대인지뢰금지운동'을 통해 '평화 운동'을 열성적으로 펼쳐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평화 운동'의 한 성과로서, 그가 지금껏 두 발로 조심스럽지만 온전히 밟아온, 소외받는 '우리'땅- 민통선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깊은 사색에서 나온 맑은 기운과 펄떡 살아서 꿈틀거리는 실천성이 함께 녹아 있는 것이다. 10년 동안의 '평화 운동'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이 책에 온전히 묻어난다. 나는 이런 작가의 뚝심과 실천하는 삶이 진정으로 부럽다.
내가 실제로 민통선을 넘어본 적이 있는가? 내 기억을 더듬어 보니, 딱 한 번 민통선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나는 2002년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걸어간 적이 있는데 맨 마지막날, 통일전망대 앞에서 출입신청을 하고 버스를 타고 가다 군인들이 경계를 서는 철망문을 열고 들어간 지역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민통선이였다. 그 때도 아무 생각이야 없었으랴 마는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 걸 보면 가볍게 지나쳐 버린 것 같다. 이렇게 타자화된 시선을 내 문제가 아닌 것은 가볍게 대하게 만든다.
나는 며칠 전에 라디오에서 이시우씨가 '유엔사 해체'를 촉구하며 3,000km 걷기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은 '뜬금 없는 소리'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이 작가의 삶의 이력-잘 모르지만, '민통선 평화기행'이라는 책을 낸 작가-을 볼 때 그 만이 할 수 있는 '실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쪼록 그의 이번 실천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의 알라딘 첫 독자서평자가 되어 무척 기쁘다.
사족이지만, 이 책에도 나오는 정동진과 강릉 사이에 있는 '통일 공원'에 대한 단상을 내 나름대로 적어 둔 것이 있어서 덧붙여 두고자 한다.
"(정동진에서) 강릉으로 들어오는 길에 최근에 조성된 '통일공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잠수정을 발견한 곳에다 그 잠수정을 끌어 올려놓고, 해군에서 퇴역 군함을 가져다 놓으며 전시관을 만들어 '통일공원'으로 이름지었답니다. 그곳을 국민을 위해 살아있는 '안보교육'과 '통일교육'의 장(場)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만 있을 것 같은 풍경이 새삼 눈이 들어옵니다. 동해안을 다녀보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끝도 없이 이어진 철책선입니다. 그러려니 했다가, 아니 무감각하게 받아들였다가 한 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이 철책선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안선을 따라 둘러쳐진 철책선을 오래 보고 있으니, 마치 그 안에 갇힌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의 착각인지, 제 생각이 진짜 갇혀 있는 건지...휴! 모르겠습니다.)
제가 불순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통일'과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줄곧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서 '통일'과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며, 기득권에 안주하기 위하여 '분단'상황을 조장하고, 무한권력을 누리기 위해, 시민들의 최소한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민주주의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할 권리를 존중해 주는 것 아닐까 합니다.
통일공원 앞에 서 있으니 마음이 씁쓸합니다. 적어도 통일공원이란 이름이 붙을 려면-그 분들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남북 간의 상처를 자극하고 확인하는 이런 군사전시물이 아니라 서로 '화해''공존''상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자면 6,15남북정상회담 자료 같은-기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또 한번 '통일'이란 이름으로 '분단'을 조장하며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통일이 '북진 무력 통일'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통일'공원이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 2002년 8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