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화두(話頭)로 세계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라는 익숙한 단어들의 낯선 조합을 보며, '별 희한한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도대체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그건 어떻게 사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도 아니고, 세계시민도 아닌, 아시아인이라니!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별난 개념, 아시아인.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물론 아시아인이다. 그러나 나는 아시아인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아시아인이 또한 아니다. 나에게 낯설게 다가온 새로운 개념, 아시아인. 아시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세상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이 책,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는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해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아시아를 우리 눈(우리라 함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한국인? 아시아인?)으로 바라볼 때 그 아시아는 우리의 과거이면서 또한 우리의 현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시아는 그렇게 우리가 아니면서, 또 다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사회가 고통스럽게 지나온 모습을 보여주거나 현재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비춰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일 편 '해묵은 거짓말'편에서는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킬링필드와 수하르토의 쿠데타-이나 존경받는 인물들의 부정적인 모습-간디와 아키노(특히, 아키노는 우리 나라의 김대중 대통령을 연상하게 했다.)-을 지적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똑같은 역사적 사실을 아시아인의 눈으로 보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그들도 우리처럼'에서는 아시아 항쟁의 역사를 소개하고 아시아 각국에게 한국전쟁의 의미,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참담한 문화재 도굴의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에게 5월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짚어보고 있고, 한국 전쟁이 아시아 각국에게 끼친 영향을 소개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유물을 무차별적으로 옮겨가고 있는 서구세력과 그런 현상을 방관하고 있는 무능력한 아시아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세 번째는 '혈통과 민족을 넘어' 아시아의 민족주의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있다. 폐쇄적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부분에서는 공감이 가고, 국제결혼이 인류화합의 최전선이라는 부분에서는 '글쎄?'하는 물음과 함께 웃음도 나왔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핵무기'와 종교적 갈등으로 적대감이 높은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 지식인의 상호 이해를 위한 편지였다.
네 번째 'Sex of Asia'에서는 아시아에서 여성이 선 자리, 아시아에서의 여성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사회적, 제도적 억압 속에 고대의 성의 자유와 건강함과 자연스러움 사라지고, 성적 억압이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구속하는 장치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가문의 후광을 업고 정치를 시작한 아시아 여성정치인들의 명암을 소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다섯 번째 '내릴 수 없는 깃발'에서는 나잉옹(전 미얀마학생민주전선 의장), 구스마오(현 동티모르대통령), 야신(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지도자)의 자서전을 소개하고 있다. 닥터 '나잉옹'은 왜 21세기를 맞은 지금도 정글에서 싸우고 있는지 개략적이마나 알게 되었고, 구스마오는 오랜 투쟁 끝에 동티모르의 독립을 이끌어 내었고, 지금은 동티모르의 대통령으로 동티모르를 이끌고 가게된 과정도 엿볼 수 있었다. 또 얼마 전 이스라엘의 야만적 '테러'로 이제는 더 이상 자서전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린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야신'의 간략한 자서전에도 공감이 되었다.
지금껏 나는 동아시아인에게는 약간의 동질감과 함께 긴장감을, 동남아시아인에게는 얄팍한 물질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우월 의식을, 중앙아시아인에게는 낯설음과 신기함을, 서아시아인에게는 이질감을 느껴왔다. 이런 느낌을 만든 근원은 아마도 '모름'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모름'을 아시아인의 눈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해외여행 가이드북보다 훨씬 아시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이런 아시아에 대한 이해는 본질적으로 우리 사회를 더 잘 이해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