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황금빛 유혹은 읽고 있는 도중에 다른 선생님께서 빌려달라고 하셔서 흔쾌히-사실은, 조금 망설이다가 드렸다- 돌아오면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지.

   어제부터 읽고 있는 책은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고리타분할 줄 알고 마음의 각오를 했으나,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 일본(인)이나 중국(인)의 지명이나 인명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만 빼고는 재미있다.

   오늘 산 책은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하종오, 창작과비평)와 꽃에게 길을 묻는다(최두석, 문학과지성)이다. 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는 어렵게 구경할 수 있었으나 사진이 좀 희미해서 일단 사는 것은 보류. 모처럼 서점을 기웃거리니 기분이 좋았다.

   또 다 낡아서 양말이 삐죽 보이는 운동화를 대신할 새 신발도 샀고, 이발도 했다. 아, 그리고 18일부터인 휴가를 대비해서 선글라스도 하나! 평소에 안경을 쓰지 않고, 또 선글라스라는 물건이 나에게는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운전할 때는 필요하니까 이 참에 하나 샀다.

   하루가 금방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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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8-05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즈음에 접어드니 또 성이 헛갈리고 맙니다... 전 느티나무님이 여자분이신줄 알았는데... 이발이란 말에 딱 걸려버리는군요! 어쩌면 좋아~~>ㅜ_ㅜ<

느티나무 2004-08-06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러셨군요. ㅠㅠ

아영엄마 2004-08-06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드니 안 적어 놓은면 잊어버리는 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알았다 싶어도 돌아서면 까먹어버리니 양해해주셔요..ㅠㅠ;;
 

   오후 4시만 되면 졸려서 미칠 것 같다. 왜 이렇게 잠이 오는 거지? 클림트, 황금빛 유혹을 펼쳐들고 임재범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도 쏟아지는 잠을 어찌할 수 없었다. 지금은 잠깐 일어나 교무실에 가 찬물 한 모금을 마신 후라 정신이 좀 맑아졌다. 아무래도 늦게 잠들기 때문인가 보다. 어차피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있으니 부족한 잠을 오후에 대신하는 것이다. 이젠 좀 일찍 자려고 노력해야겠다.

   어쩌면 며칠 후에 안준철 선생님을 만나뵙게 될지도 모르겠다. 안준철 선생님은 얼마전에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교육에세이집을 내신, 순천의 효산고등학교 선생님이신데 내가 리뷰를 쓴 것을 보시고 메일을 바로 보내오셨다. 평소에도 오마이뉴스의 기자로 활동하시고, 여러권의 시집도 내신 분인데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시도 여러 편이다. 

   어제야 늦게 답장을 드렸는데, 8월 14일에 부산의 지인들을 만나러 오실 계획이 있으시다고 하셨다. 그 때 같이 맥주나 한 잔 하자고 연락을 오늘 보내 주셨다. 8월 14일이라... 약속이 있기는 하지만 조정해 보아야겠다. 벌써부터 약간 흥분이 된다. (아마 우리 학교 애들은 연예인이 자기한테 이런 연락이 온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ㅋㅋ)

   이제 잠은 깼으니 나중에 6시에 야영준비모임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 장소는 역시, 도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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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8-0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 하루종일...무시로 잠이 옵니다.. 저야 나이탓이겠지만... 님은 아마 더위탓이 아닐까요? 요즘은 더워서 일찍 자지도 못해요... ㅠㅠ

느티나무 2004-08-0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많이 덥나요? 전 별로 더위를 안 타는 체질인가 봅니다. 무척 덥긴 하지만 잠을 못 잘 정도는 아닌데... 원래 아침잠이 좀 많고, 저녁엔 말똥말똥! 지금도 저녁엔 리뷰 쓸까, 책 읽을까를 고민하고 있답니다.

꼬마 까이유 2004-08-04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림트 너무 좋아요~! 호호^.^;;
저는 더운게 좋던데... 여름 최고!!

푸른나무 2004-08-04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에 말똥말똥... 밤도 자기엔 아까운게지요. 저도 야행성 체질인데 주부다 보니 그렇게 하면 다음날에 지장이 많아서 자제하려고 하죠. 좀 일찍 주무시고 낮에 식후 20분정도의 낮잠은 건강에 뇌할동에 아주 좋다고 합니다. 뉴욕엔 수면캡슐이 있어서 잠들고 난후 20분이 지나면 진동과 음악으로 깨워준답니다. 바쁜 뉴욕커라 그런 수면 캡슐이 더 절실한지도 모르겠군요. 여름철의 낮잠 때로는 얼마나 달고 감미로운지... ^^ 저도 어제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맛있게 잤답니다.
 

   늘 같은 이야기지만, 오늘도 수업이 많은 날이다. 4시간이나 수업이 들었다. 그래도 평소 월요일에 비하면 아이들이 쌩쌩해서 좋았다. 이렇게 아이들과 수업이 잘 되는 날이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 도서실에 앉아 있다가 점심을 먹었다.

   요즘 읽은 책은 리뷰가 잘 써지지 않는다. 아마도 소설책 리뷰는 지금껏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존재의 거짓말(상)(중)(하)는 읽은지 좀 되었는데 어떻게 써야할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아마,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 크다. 특히, (하)권의 내용을 앞의 두 권과는 모순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헷갈린다. 해설에는 이것이 삶의 모순과 진실과 거짓의 경계의 모호함을 보여준다고 하던데... 글쎄,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렵고, 공감이 가지 않는다.)

   두 번째로 읽은 책은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이유미, 지오북,2004)도 읽었다. 이 책은 리뷰를 쓰고 싶기는 한데, 여러가지로 힘이 빠지는 상황이라... 나의 리뷰를 기다리는 책은 아직도 많다. 숲의 생활사(차윤정, 웅진닷컴)도 있고, 예전에 읽었지만 지금껏 미뤄두고 있는 한국자유주의의 기원도 있는데, 아!! 지금 읽고 있는 '그림으로 보는 한국 건축 용어'은 리뷰를 꼭 써 보고 싶다. 생각해 보니 이 리뷰들을 언제 다 쓸까나? 뭔가 내가 리뷰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자극이 필요하다. 내부 자극 없이 외부 자극만으로 얼마나 오래 갈까만 그래도 지금은... 

   휴, 늦었지만 저녁 먹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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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까이유 2004-08-0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자극!자극!
근데 오늘 그 사진의 정체가 뭡니까? 정체를 밝혀주세요~!

느티나무 2004-08-02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기 사진은 저의 즐겨찾기에 등록된 서재 주인의 따님이지요. ^^
 

    이 글은 아이들에게 패스트푸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참고 자료로 나눠주고 있는 글입니다. 글쓰기의 발상도 재미있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정보도 담겨 있거든요. 같이 한 번 읽어보세요.(점차 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글들이 차곡차곡 서재에 쌓이네요.)

   며칠 전에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서 고발된 페스트푸드 업체 기사를 보면서 이 글이 떠올랐답니다.

 

한겨레 21   [ 커버스토리 ]  2001년09월12일 제376호  


                                          베일에 싸인 햄버거의 독백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할 수 없는 '패스트푸드의 비밀', <알라디너> 가족들에게만 살짝!


   안녕하세요. 저는 햄버거예요. 동그란 두빵 사이에 두툼한 고기가 있고 기름진 소스가 듬뿍 발라져 있죠. <한겨레21>에 특별초대돼 정말 기뻐요. 사실 저의 유명세에 비하면 조금 늦은 감도 없진 않죠. 저는 길거리나 분식집의 그렇고 그런 햄버거들과는 급이 다른 존재니까요.


더러운 햄버거로 취급 마세요!


   저와 제 친구들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죠. 빅맥, 와퍼, 크레이지킹, 불고기킹, 라이스버거, 트위스터…. 인기다툼이 치열하지만 대중적인 위계는 정해져 있답니다. 우리의 매니지먼트사인 롯데리아, 맥도날드, KFC, 파파이스, 버거킹, 하디스 등의 힘에 따라 정해지죠. 우리나라에서는 롯데리아에 밀리지만,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는 단연 맥도날드예요. 못사는 나라 어린이들을 빼고 전세계 어린이들은 맥도날드 매장을 기우뚱하게 지키고 서 있는 로널드 맥도널드 아저씨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다음으로 좋아하죠. 브랜드 인지도에서도 코카콜라를 제쳤대요. 우리나라에서도 88년에 압구정동에 처음 문을 연 뒤 해마다 승승장구하고 있잖아요. 맥도날드가 잘되면 업계차원에서도 꼭 나쁘지만은 않죠. 시너지효과를 일으켜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름있는' 햄버거를 통째로 믿어주니까. 덕분에 패스트푸드 상위 5개업체 연간 매출액은 1조원을 훌쩍 넘는다구요.


   하지만 저도 가끔 외로워요. 삶의 비밀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어서. 얼마 전에 제 친구 불고기킹이 이런 말을 했어요. '몸값 떨어지니 심란하다'고. 요즘 끼워 팔기다, 가격할인이다 해서 경쟁이 장난 아니잖아요. 걘 요즘 1천원에 팔리는데 얼마 전에 버거킹 압구정지점에서 곤욕을 치른 일이 있어요. 8월 중순에 남씨 성을 가진 한 젊은 언니가 걔 몸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거예요. 그 언니는 '청결관리까지 할인하느냐'고 따졌다는군요. 한마디로 더러운 햄버거 취급을 받은 거예요. 맥도날드는 진공 포장돼 온 양상추를 씻지 않고 쓰는데 버거킹은 매장에서 한번 씻어서 쓰거든요. 딱 한 장 끼워 넣는 양상추가 잘 안 씻겼던 모양이에요. 그 언니는 벌레가 양상추에서 나왔는지 고기나 소스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며 구청에 신고까지 했나 봐요. 그래서 시정명령이 내려졌죠. 1차 조처라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고 쉽게 넘어갔지만, 불고기킹은 그야말로 스타일 구겼죠.


   사람들은 우리 같은 다국적 프랜차이즈 기업의 햄버거가 상표가 같으면 똑같은 재료로 똑같이 만들어진다고 여기지만 다른 점도 많아요. 기왕 이렇게 나온 김에 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려드릴게요. 우리는 조합식품, 아니 조립식품이에요. 각각의 재료를 정해진 표준에 따라 각각 다른 곳에서 만들어 가지고 온 뒤 매장에서 조립해내는 거니까.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냉동식품이라고 점잖게 부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화학식품이라고 매도하기도 해요. 가공식품이니 화학물질이 안 들어갈 수는 없죠. 하지만 그게 바로 맛의 비결인데 어쩌겠어요.


   우선 햄버거용 고기. 패티라고들 하죠. 맥도날드의 경우를 볼까요? 패티 생산공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청공장에서 만들어 납품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등급이 낮은 오스트레일리아산 냉동육을 수입해 써요. 고기를 간 뒤 이것저것 섞어서 맛을 내고 둥글납작하게 빚어서 냉동시킨 다음 배송센터를 거쳐 매장에 배달해요. 어떤 걸 섞느냐, 그건 '1급 시크리트'예요.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알려드릴 수 없어요. 맥도날드의 마케팅 담당자에게 전화해도 마찬가지일걸요? '임원들이 출장 가서 공장 견학은 어렵고 패티는 순수 쇠고기 100%다'라는 이야기만 들을 거예요. 불고기버거 패티가 돼지고기로 돼 있는 건 묻기 전에는 알려주지 않죠. 납품 공장에서는 무조건 '맥도날드에 물어봐라'는 말만 반복할걸요. 육가공공장의 식품위생이나 생산 공정은 지자체에서 관리,감독하니까 식약청이나 농림부가 함부러 뒤질 수도 없어요. 정말 궁금하면 경기도청 축산과에 보고된 품목제조 보고사항을 살짝 엿보는 수밖에.


어린이 비만이 우리 죄인가요?


   어? 공장쪽에서 보고한 패티 제품이 여러 가지네요. 하청공장은 맥도날드 눈치보느라 제품명도 알려주지 않아요. 심지어 담당공무원에게 영업비밀 운운하며 항의까지 했대요. 숨기는 게 없다면 왜 그럴까요? 대신 이 공장에서 만드는 다른 패티를 참고해볼까요? 가장 배합 성분종류가 적은 걸 골랐어요.


   제품명: 갈비맛 패티. 원료및 성분배합비율: 돈육 30%, 우육 40%, 양파 4.9%, 대두단백 4.8%, 바비큐버거소스 3.0%, 난백액 3.0%, 정제염 0.3%, 시즈닝오일 에스엘 0.2%, 블랙페퍼SH 0.2%, 정제수 13.6%. 대체 바비큐소스에 뭐가 첨가됐는지, 시즈닝오일 에스엘이 뭔지 보통 사람은 알 수 없죠. 공무원들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마찬가지일 거예요. 게다가 맛과 향을 내는 인공첨가물들은 전혀 표시가 안 돼 있어요.


   사실 순쇠고기라는 말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우지방이 10% 이상은 들어가야 해요. 안 그러면 푸석푸석해져서 모양을 낼 수 없답니다. 맥도날드의 너겟 아시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뼈 없는 닭고기. 그거 닭고기로 맛내는 게 아니에요. 옛날에는 우지로 만들다가 우지 대신 쇠고기 추출물을 넣어 맛을 유지했고 그 뒤에는 줄곧 첨가제에 기대고 있죠.


   배합성분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어떤 인공첨가물이 들어갔는지는 밝혀야 한다는 게 영양학자들의 주장이에요. 방부를 위한 합성보존료, 색깔과 향을 유지하는 발색제와 향료, 맛을 내기 위한 화학조미료 등은 우리 몸의 대사과정을 교란시키고 발암물질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가공식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죠. 우리에게 화학식품이라는 딱지를 붙인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감자튀김 갖고도 시비를 걸어요. 과거에는 우지가 포함된 동물성 기름을 썼는데, 요즘에는 식물성 기름으로 바꿨어요. 다만 맥도날드 매장 매니저 출신인 한 아저씨의 말로는 '기름은 미국에서 직접 들여오는데 식물성하고 동물성이 섞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요. 매뉴얼에는 식물성을 쓰도록 돼 있지만, 하얗게 굳어서 오는 걸 보면 이상하대요. 하지만 식물성 기름도 '한 번 더 거르면' 고체상태의 쇼트닝이 된다는 게 업계 구매담당자들의 설명이에요. 식물성 기름을 섭씨 200도에서 수소화처리하면 고체상태의 포화지방산이 되거든요. 마가린이나 쇼트닝이 대부분 이 원리죠. 물론 이렇게 가공한 식물성 기름은 동물성 기름과 다를 바 없고 심지어 더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기름이 범벅됐다고 해도 감자튀김은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섭취하는 식물성 식품이잖아요. 어린이용 햄버거에 어디 야채가 들어 있나요? 양상추 한 조각 안 들어 있어요.


   어떤 영양학자들은 소금도 문제라고 하죠. 햄버거에는 기본적으로 맛을 내기 위한 소금말고도, 각종 첨가물에 나트륨염이 들어가거든요. 그게 과잉됐다는 거예요. 나트륨과 칼륨의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나트륨이 많아지면 그나마 없는 칼륨을 더 없앤다는 거죠. 칼륨은 야채에 많이 들어 있거든요. 또 어릴 때부터 염분함량이 높은 음식을 자꾸 먹는 것은 고혈압성 식사습관의 원인이 된대요.


   영양흡수를 방해하는 건 햄버거만이 아닌데, 왜 자꾸 우리 탓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햄버거랑 함께 먹는 콜라에는 인(P) 성분이 많아요. 이건 또 칼슘의 흡수를 방해하거든요. 대부분의 매장에서 콜라를 세트메뉴에 끼워 넣잖아요. 싼값에 생색낼 수 있어서 요즘에는 리필까지 팍팍 시켜줘요. 어린이 건강보다 돈이 더 중요하니까요.


10초에 한 마리씩 소의 목을 딴대요


   그나저나 애들 살찌는 걸 왜 자꾸 햄버거 탓으로 돌리는지 모르겠어요. 증거 있어요? 증거 없어요. 각국에서 맥도날드 가게가 늘어나는 숫자에 정확하게 비례해 아이들의 비만율이 증가한다는 통계 외에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비만율도 점점 늘어나 초등학생은 35%가 비만위험에 처해 있대요. 하지만 비만의 원인에는 운동부족도 있는 거예요. 뭐라고요? 열량과잉의 직접적인 원인은 고지방 패스트푸드라고요?


   여보세요. 학자들이 아무리 인공첨가물의 위해성이나 영양불균형을 떠들어대도 93년 미국을 발칵 뒤집은 것처럼 이름 있는 햄버거에서 O-157균이 나오지 않는 이상 달라질 건 없어요. 아이들이 집단식중독에 걸려도 흐지부지 넘어가는 나라 아닙니까. 인공첨가물이나 영양불균형이 당장 사람을 알아 눕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세상에는 우리 편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대요. 30년 전 일본에 맥도날드를 들여온 한 괴짜갑부는 이런 말도 했잖아요. '우리도 햄버거 많이 먹으면 미국사람처럼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얘지고 금발이 된다.' 바뀐 건 늘어난 허리둘레밖에 없지만, 아직도 이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 꿈을 왜 짓밟으시는 건가요.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 어린이 4명 중 1명은 과다체중이나 비만상태에 있대요. 60~70년대에 비해서 두배나 증가한 거죠. 1980년대 일본의 패스트푸드 판매량이 두 배 이상 증가하니까 어린이 비만율도 두 배 증가했죠. 중국에서는 맥도날드가 처음 문을 연 이래 10년간 10대 비만율이 3배나 증가했대요. 우리나라도 그렇고. 이러니 미국사람처럼 돼간다는 말은 일면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사실 제가 설명하기 난처한 것들도 있어요. 햄버거의 세계화가 병원균의 세계화도 가져온다고 도끼눈을 뜨고 우리를 볼 때죠. 그럴 때마다 움츠러들긴 해요. 다 고기 때문이에요. 힘 있는 정육업체가 비육장을 만들어놓고 사료 먹여 소 키우고, 또 자기들이 세운 도축장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소를 죽인 다음, 같은 맛을 내기 위해 특정부위를 갈고 뒤섞어 패티를 만들기 때문에 비육장 소 한 마리만 병에 걸려도 금방 그 병균이 쫙 퍼지게 된다는 말은 맞죠.


   게다가 공정속도가 얼마나 빠른데요. 재료를 생산하는 과정도 패스트예요. 예를 들면 미국의 한 도축장에서 소의 목을 따는 사람은 10초에 한 마리씩 죽인대요. 안 그러면 라인이 돌아가지 않으니까 정신없이 소의 목만 따는 거죠. 내장 꺼내는 사람은 내장만 꺼내고 머리 자르는 사람은 머리만 자르고…. 끔찍하죠? 하지만 그 덕분에 하루에 5천마리씩 너끈히 해치울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이런 다국적 정육업체가 시장을 독식한다고 불만이 심했지만, 지금은 그런 목소리 내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죠. 미국의 경우 도축업이 병균의 확산을 부채질하는 대신 가난한 멕시코계 이민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잖아요. 착취라고요? 왜 자꾸 이야기를 옆길로 새게 하세요. 전세계적으로 도축장 종사자들의 산재률이나 사망률이 높은 게 왜 햄버거 탓이에요. 그 사람들 팔자지.


감자튀김에 시련이 닥친다나 어쩐다나


   그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들의 처지는 어떤데요. 시간당 1700원에서 많으면 2천원 받아요. 비오는 날은 일하러 나왔다가 공치고 그냥 돌아가기도 해요. 기본 4시간은 일을 하는 게 원칙이지만 점장이나 매니저 마음이죠. 그뿐인 줄 아세요? 일하는 도중 기름에 데기도 하고 패티 뒤집개를 가는 기계에 발등이 찍히기도 해요. 그래도 보상을 못 받아요.


   그러니 졸다가 플라스틱 물병을 기름통에 떨어뜨려도 그냥 넘어가고, 손님들이 몰려올 때는 패티 굽는 판을 깨끗이 닦아내지 못할 때도 많아요. 용기관리도 엉망이고요. 올해 2월에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내용 중에 맥도날드에서 구입한 콜라의 컵 안쪽에 벌레 죽은 것처럼 까만 이물질이 묻어 있는 일도 있었잖아요. 허덕대며 일에 쫓기는데 청결이나 안전 같은 거 생각할 겨를이 있겠어요? 불만 있으면 제 고향 미국 본사의 높은 아저씨들에게 이야기하세요. 저임금에 비숙련 단순 노동자를 양산하는 게 이쪽 업계의 전략이니까.


   물론 바뀐 전략전술도 많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다이옥신 같은 환경호르몬문제로 두들겨 맞고서 기름은 재생해서 비누로 만들고, 컵도 재생종이로 만들어 나눠줘요. 빨대랑 컵 뚜껑, 포장지들은 물론 음식찌꺼기랑 함께 그냥 버리죠. 사실 프렌치 프라이용 감자를 생산하려고 미국의 재배농장에서 얼마나 많은 화학비료를 사용하는데요. 맞춤한 모양의 감자가 아닌 것은 사료나 비료로 쓰여 지하수의 질소함유량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돼요. 용기랑 포장지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열대우림이 없어지는데요. 농산물 저가매입으로 가족농을 몽땅 도산시키는 건 또 어떻고요. 앗, 너무 많이 나갔네. 어쨌든 이런 큰 건들에 비하면 분리수거문제는 그야말로 새발의 피죠.


   정작 더 큰 문제는 내년부터 감자튀김에 닥칠 거예요. 걘 요즘 전전긍긍해요. 올해 7월13일부터 가공식품에서도 유전자재조합식품(GMO) 표시제를 시행하잖아요. 일단 표시제를 시작한 게 콩, 옥수수, 콩나물인데. 콩은 패티에도 들어가고, 옥수수는 스위트콘이다 뭐다 해서 아주 직접적이죠. 하지만 휴게 음식업으로 묶여 있는 패스트푸드업체는 이번 표시제 의무에서 빠지게 됐어요. 햄버거는 가공식품이 아니라 밥집에서 파는 반찬처럼 대접받은 거죠. 재료를 납품하는 회사는 표시해야 하지만 그걸 용기에 담거나 조합해내는 매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유전자조작 위험을 알리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된 거죠. 하지만 내년 3월부터 GMO 표시제를 시작하는 감자는 사정이 달라요. 기름에 튀기기만 하면 되는 상태의 냉동감자를 미국에서 전량수입하기 때문에 유전자조작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돼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업계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걸요. 지난해 환경운동연합이 'GMO-free 선언', 즉 유전자조작식품을 재료로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했을 때 KFC만 빼고 모두들 '정부 방침이 정해지지 않아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버텼잖아요. 지난 봄 스타링크 옥수수파동 때처럼, 유전자조작된 농산물을 먹을거리용으로 가공해도 회사는 욕을 먹지만 그게 어떤 상품에 어떻게 쓰였는지 소비자들은 잘 모르니까요. 감자튀김은 '버티면 되지 않을까' 장담하는데 내심 불안한 모양이에요.


짧고 굵게 살고 싶으세요?


   가게에서 과자 한 봉지 사도 겉봉에 성분분석 같은 표시가 적혀 있는데, 왜 여태 햄버거는 그런 걸 하지 않았냐고요? 아이 참, 우리는 특별한 존재라니까요. 국경 없이 세계시민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잖아요. 동-서독 장벽이 무너졌을 때 옛날 동독 땅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회사도 우리 업계의 큰형님인 맥도날드랍니다.


   햄버거 하나 먹을 때 이런 걸 모두 생각한다면 피곤해서 못 살아요. 그냥 드세요. 해피밀을 사면 장난감도 주잖아요. 그거 손해 보는 장사에요. 다 아이들 행복하라고 하는 거죠. 특히 3~5살 때 입맛이 길들여지면 영원토록 우리와 '해피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답니다. 어쨌든 짧고 굵게 살려면 저 많이 드세요. 아니면 저를 씹지 말거나. 먹으려거든 욕하지도 말아달라는 말씀이에요!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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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8-0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글은 저리가라로군요. T^T;;

느티나무 2004-08-02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글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비발~* 2004-08-0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pton sinclair의 'the Jungle'이라는 작품말씀입니다.^^ 1900년대 초 시카고의 정육 가공 공장 이야기...;;
 

   박기범님의 동화 읽어보셨습니까? 저는 이렇게 재미있는 동화는 별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인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도 권합니다. 녀석들 반응이요? 읽기 전에는 "에이, 샘! 내가 무슨 앱니까?" 읽고 나서는 "샘! 진짜 재밌고 좋던데요!"

 어진이


 박 기 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어진이다. 혼자 힘으로는 문을 열 줄 모르는 어진이가 문 안쪽에 바싹 서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진이의 순한 눈망울은 닫힌 문의 손잡이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것이다.

  식사 시간마다 어진이는 문 닫힌 작은방에 남겨져 있다. 어진이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어김없이 아빠의 고함이 뒤따른다. 아빠의 고함은 길지도 않다. 딱 한마디다.

  “조용히 하지 못해?”

   아빠가 고함을 치면 어진이보다도 득철이가 더 많이 놀라는지도 모른다. 득철이는 밥숟가락을 뜨다가도 아빠의 고함에 놀라서 큰 몸짓으로 움찍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겁이 많은 건 득철이와 어진이의 닮은 점 중 한 가지다.

   이제 득철이는 아빠가 소리를 지르기 전에 얼른 먼저 가서 어진이에게 신호를 준다. 일부러 젓가락을 미끄러뜨리며 반찬을 흘리고 나서는, 휴지를 가지러 가는 체 살그머니 일어나서 작은방 문 앞으로 가는 것이다. 방문을 톡톡 건드리면서 어진이에게만 들릴 수 있도록 속삭이다.

  “어진아, 조금만 기다려. 이제 밥 다 먹었으니까 얌전히 있어.”

   어진이는 득철이의 신호를 알아들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기다리다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 소리는 형이 제일 싫어하는 소리이다.

   아빠, 엄마, 형 그리고 득철이까지 네 식구가 큰방에서 상을 펴고 식사를 마친 다음에야 어진이는 밥을 먹을 수 있다. 그 때까지 어진이는 얇은 미닫이문 하나를 사이에 둔 작은방에 남겨지는 것이다. 나중에야 엄마가 먹을 것을 챙겨 주면 득철이가 어진이에게 밥과 물을 가져다 준다.

   한번은 득철이가 자기도 이따가 어진이랑 함께 밥을 먹겠다면서 작은방에서 건너오지 않은 적이 있다. 엄마가 어서 건너오라고 문 너머에서 몇 번이나 재촉했지만, 득철이는 단단한 결심으로 버티고 있었다. 아빠가 호통을 치더라도 건너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재촉이 몇 번 이어졌을 뿐 큰방에서는 밥 먹는 소리만 들려 왔다. 짐작했던 아빠의 고함 소리는 들려 오지 않았다. 득철이는 어진이를 안고 있었다. 그 날 저녁 득철이는 그대로 굶어야 했다. 어진이도 굶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빠가 득철이에게 아예 아무것도 먹지 못하도록 벌을 준 것이다. 득철이는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어진이가 너무 가여웠다. 둘은 다음날이 되도록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득철이는 어진이에게 미안했다.

   어진이는 늘 침을 흘린다. 어진이의 아래턱은 늘 축축하게 젖어있다. 특히 뭘 먹을 때면 입가에 침을 더욱 많이 묻혀 놓는다. 어진이의 입 모양이 이상한 까닭이다. 어진이는 아랫니가 윗니보다 바깥쪽으로 나 있다. 그래서 어진이는 입을 꼭 다물지 못한다. 어진이의 입 주변과 턱 언저리는 자주자주 씻겨 주어야 한다.

   어진이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버릇이 아니라 취미라고 말하는 게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어진이는 늘 양말을 입에 물고 있다. 다른 장난은 아무 것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양말만은 입에 물고 있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양말을 질겅질겅 씹거나 입으로 빠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물고만 있는다. 양말을 보기만 하면 입에 넣은 채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다. 어진이가 양말을 물고 있을 때만큼 만족스런 표정을 본 적이 없다. 반대로, 엄마나 형이 양말을 빼앗아 가려 할 때, 어진이는 가장 불안한 얼굴이 된다. 어진이가 입에 넣고 있던 양말 뭉치는 침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다. 물고 있던 자리에는 이빨 자국이 그대로 오목하게 만들어진다.

   어진이의 이 버릇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엄마와 형이다. 어진이는 스타킹을 입에 물기도 하는데, 스타킹은 벌써 여러 개나 구멍이 나 버렸다. 엄마는 어진이 때문에 스타킹은 물론이고 양말들이 쉽게 해진다고 싫어한다. 형은 양말을 물고 있는 어진이를 볼 때마다 더럽다며 몸서리를 친다. 득철이는 형이 어진이에게서 양말을 빼앗을 때 뒷머리를 세게 때리는 것도 자주 보았다.

   뭐든지 어진이 편이 되는 득철이인데도 어진이의 양말 무는 버릇만은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어진이에게 병이 생길까 봐 걱정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득철이는 모아 둔 용돈으로 입에 넣어도 된다는 인형을 사다 주기도 했다. 그랬지만 어진이는 여전히 양말에만 관심을 두었다. 엄마와 형이 아무리 야단을 쳐도 어진이는 어느새 빨래 대야를 뒤져서 양말을 찾아 입에 문다. 득철이는 엄마 몰래 양말 서랍에 있는 새 양말을 꺼내어 어진이에게 주기도 해보았다. 이왕이면 깨끗한 양말이어야 조금이라도 걱정을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어진이는 빨랫감이 된 양말만을 고집했다. 득철이는 궁금해졌다. 어쩌면 신고 난 양말에서 나는 고린내 속에는 어떤 구수한 냄새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았다. 득철이는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서 코에 대어 보았지만 숨이 콱 막힐 뿐이었다. 득철이는 어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답답했다. 그저 걱정스러운 마음에 안쓰러울 뿐이었다.

   어진이한테 그런 버릇이 생긴 다음부터 득철이도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면에서 조심스러워진 것은 아니다. 양말이랑 관계된 일만 그렇다. 득철이네 모둠이 맡은 특별 구역 청소를 할 때에도, 득철이는 이제 양동이로 물을 퍼부으며 장난을 치지 않는다. 친구들이랑 선생님용 화장실로 청소를 하러 갈 때에는 아예 양말을 미리 벗기도 한다. 옆반과 축구 시합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벗은 양말을 둘둘 말아서 실내화 주머니에 넣어 두고는 맨발에 운동화만 신은 채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물에 젖어서 땟물이 질펀하거나 흙먼지가 시커멓게 찌든 양말을 어진이가 입에 물게 될까 봐서이다.

   어진이가 아팠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아파 왔다. 하지만 누구도 어진이가 많이 아프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진이의 검은 눈동자에는 마치 개구리의 눈에 씌워진 투명한 막 같은 것이 조금씩 덮여 있곤 했다. 눈곱 같기도 하고, 투명한 고름 같기도 한 얇은 막은 끈적끈적했다. 엄마는 그냥 눈곱 같은 것이 생겼나 보다 했다. 득철이도 그런가 했다. 엄마는 화장할 때만 아껴서 뽑아 쓰는 보드라운 휴지로 어진이의 눈을 자주자주 닦아 주었다. 다만 득철이는 어진이의 눈을 보면서 엄마와는 다른 상상을 해보았을 뿐이다. 그건 아마 어진이의 눈동자에 계속 맺혀 있는 눈물 찌꺼기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어느 날 득철이는 발견했다. 어진이의 검은 눈동자 가운데가 점점 오목해져 가는 것이었다. 탁구공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렀을 때처럼 어진이의 눈동자는 좁쌀만한 크기로 움푹 패어 들어갔다.

  “어진아―”

   어진이는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눈동자 위를 가리던 얇은 막은 누런 색깔이 되었다. 괜찮던 흰자 위에도 분홍색 실핏줄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빨간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하루가 지나가 어진이는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애꾸처럼 찡그리고만 있었다.

   득철이는 어진이를 안고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까지는 두 정거장도 더 걸어 나가야 한다. 어진이가 다니는 병원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어진이가 여러 가지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할 때마다 데리고 다녀 봐서 자주 가 본 병원이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수술을 해야 어진이의 눈을 고칠 수 있다고 말이다. 레이저를 쏘아서 치료하는 수술이라고 한다 수술비는 무척 비쌌다. 득철이도 엄마도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값이다. 의사 할아버지는 어진이에게 주사 한 대를 놓아 주고 나서는 득철이에게 작은 물약 한 통을 주었다. 아침 저녁으로 이 물약을 어진이의 아픈 눈에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어야 한다. 그러면 이미 상한 어진이의 눈동자를 원래처럼 되돌릴 수는 없지만 더 크게 패어 들어가지 않게는 할 수 있다. 엄마와 득철이는 아침 저녁으로 어진이의 눈에 약을 넣어 준다. 물약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득철이는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잘 안 보이지, 어진아? 많이 아파? 이제 더 아프지 않을 거야. 내가 까먹지 않고 약 넣어 줄게……’

  월요일 오후였다. 준비물을 사러 문방구점에 잠시 다녀왔는데, 그사이에 형이 와 있었다. 책가방을 풀어 놓지도 않은 형은 화가 많이 나 있다. 잠깐 사이에 어진이가 작은 방에서 똥을 눈 것이다. 혹시라도 문방구점에 간 사이에 어진이가 문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을까 봐 문을 꼭 닫았는데, 그 동안 어진이는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야, 쟤는 우리 방에 못 들어와 있게 하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아이 더러워, 정말……”

  어진이가 없어졌다. 형이 화가 나서 문을 활짝 열고 씩씩거리는 사이에 어진이는 없어졌다. 잔뜩 겁에 질려서 바깥으로 나갔나 보다.

   밤새도록 어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도, 형도, 득철이도 동네를 몇 바퀴나 찾아 다녔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골목길도 찾아 보았고, 세워져 있는 자동차 바퀴 밑도 들여다보았다. 아빠는 요란 떨지 말라고 큰 소리를 냈다. 득철이는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식구들은 어젯밤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아빠는 누구네 초상 났냐면서 식구들에게 짜증을 냈다. 아빠는 몇 술 만에 수저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나머지 식구들도 밥을 덜거나 남기거나 하면서 겨우 식사를 마쳤다. 득철이는 등교길에도, 공부 시간에도 종일 어진이 생각뿐이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다시 집 안을 살펴보고 나서는 해질 때까지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큰길에도 나가보았고, 고개 너머 시장에도 가 보았다.

  이틀이 지나갔다. 비가 내렸다. 엄마는 등을 돌리고 앉아서 어진이의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꺼진 텔레비전에는 엄마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엄마는 눈물을 닦았다. 득철이도 울었다.

  다음날이었다. 득철이는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는데도 어진이를 찾으러 나가지 않았다. 득철이는 포스터를 만들고 있다. 지난 달력들을 뜯어서 하얀 바닥 위에다 어진이의 사진을 붙였다. 그 옆에는 크레파스로 큼직한 글씨들을 정성껏 써 넣었다.

         

우리 어진이를 찾아주세요!

전화번호 : 57~6531

옥동초등학교 4학년 1반 마득철

 

   달력이 모자라서 색도화지를 몇 장 더 사 왔다. 모두 열다섯 장이나 만들어 냈다. 벽에 대어 보니까 사진과 글씨만 있는 포스터는 조금 어색했다. 득철이는 색종이를 오려다가 포스터의 빈 자리를 꾸며 갔다. 꽃 모양도 넣었고, 해와 달 모양도 넣었다. 친구들이 생일에 선물로 주었던 스티커들도 붙여 가며 멋을 냈다. 득철이가 아끼던 것이다. 그러나 포스터를 더 멋지게 꾸밀수록 어진이가 더 잘 찾아질 거라는 생각에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엄마가 집에 왔다. 득철이는 엄마 앞에서 자기가 만든 포스터를 들어 보이며 뿌듯해했다.

 “잘 만들었지?”

 엄마는 씻고 나서 득철이 가까이로 와 앉았다. 엄마는 포스터를 보면서 이 말도 꼭 넣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진이는 매일 눈에 약을 넣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딱딱한 것은 잘 씹지 못해요. 그래도 주면 그냥 삼켜 버리니까 그런 음식을 주면 안 되요’

 그건 득철이도 걱정한 것이었다. 며칠 동안 어진이의 한쪽 눈은 다시 심하게 아파졌는지도 모른다. 잘 못 먹는 바람에 계속 탈이 났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득철이는 학교 가는 길목과 큰길가, 시장 입구 곳곳에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어진이를 보았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득철이는 힘이 빠졌다. 어쩌다 한 번씩 걸려 오는 장난 전화 때문에 아빠는 화를 더 냈다.

 어진이가 없어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득철이네 집에서는 빨래감이 어질러지지도 않았고, 밥 먹는 시간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득철아, 오늘 저녁에 엄마하고 은행 옆에 있는 이불 가게에 가 봐라. 어진이가 아마 거기에 있을 게다.”

 득철이는 엄마가 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침에 아빠가 해준 말이 하루 종일 귓가에 맴돌았다. 어진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진아―”

 득철이는 어진이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가 이불 가게 아줌마들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절을 했다. 가게를 나오려는데, 난데없는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이불 가게 아줌마네 딸이다. 보람이라고 했다. 득철이보다는 조금 어려 보였다. 보람이는 어진이를 데려가지 말라면서 계속 우는 것이다. 득철이는 보람이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불안해졌다. 득철이도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더 크게 울어야만 될 것 같았다. 울음소리에 밀리면 어진이를 데려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득철이네 집에는 오랜만에 활짝 핀 웃음꽃이 가득했다. 형은 어진이의 얼굴에 대고 이제부터는 아주 많이 예뻐해 주겠다고 얘기했다. 아빠는 뉴스를 보는 척 고개를 돌렸지만 웃음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며칠째 아빠는 식구들 모르게 어진이를 찾으러 다녔다고 했다. 누가 포스터를 보고 뒤늦게 전화를 했는데, 큰길 쪽에서 어진이를 본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그 날부터 아빠는 큰길가의 상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어 보았다는 것이다.

 어진이의 눈은 깨끗했다. 이불 가게 아줌마와 보람이가 어진이를 잘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다. 이불 가게 아줌마가 어진이를 발견한 것은 없어진 지 이틀째 되던 날 밤이었다. 비가 내리던 밤이다. 어진이는 큰길가에 혼자 서서 떨며 신음 소리도 내었다. 아줌마는 어진이를 데려가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키며 자상하게 보살펴 주었다. 아줌마보다 보람이가 더욱 정성이었다. 보람이는 어진이의 눈동자가 움푹 패어 들어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밥을 잘 먹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아줌마는 어진이를 입원까지 시켜서 치료를 받게 해주었다. 보람이는 어진이를 간호하며 정이 깊게 들었다. 마침 병원에서 어진이를 퇴원시켜 오던 날 아빠의 눈에 띈 것이었다.

 득철이는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안아 주고, 볼을 비벼 주고,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무언가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보람이다. 보람이의 우는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득철이는 안다. 정든 마음으로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말이다. 생각나고, 보고 싶고, 걱정되고, 그리고 마음이 아파지는 것이다.

 “엄마, 우리 어진이가 새끼 낳으면 보람이한테 한 마리 갖다 주면 안 돼? 그 때까지는 내가 어진이 데리고 보람이네 가서 함께 놀아 줄게.”

 “그래, 그 집에서 이렇게 어진이를 잘 돌봐 주었는데 아무런 보답도 못하고…… 모쪼록 이번에는 얘가 새끼를 많이 내야 할 텐데 걱정이구나. 요새는 아애므프(아이엠에프) 탓에 애견 센터에서 애기 값도 잘 쳐 주질 않는다는데. 니 아빠 약값은 자꾸만 오르는데 말이야. 어쨌든 우리 어진이가 보배지, 보배야.”

  득철이는 엄마가 어진이를 처음 데려오던 3년 전이 생각났다. 엄마가 파출부 다니던 집에서는 애완견을 길렀다. 외국에서 온 비싼 강아지다. 한번은 새끼를 낳았는데, 그중 한 마리가 유독 이상했다. 털도 고르지 않았고 입 모양도 이상했다. 누구도 그 강아지를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애견 센터에서마저도 달갑지 않아 한다기에 엄마가 얻어 온 것이다. 그 녀석이 어진이다. 형은 무슨 강아지가 이렇게 못생겼느냐면서 삐죽대었지만, 득철이는 처음부터 어진이가 마음에 들었다. 어진이는 착하고 순했다. 하지만 어진이는 비싼 사료도 먹어야 했고, 외제 샴푸로 목욕도 해야 했다. 그래서 형은 저까짓 게 우리보다 더 호강한다면서 싫어하기도 했다. 어진이는 데려온 다음해에 아주 예쁜 새끼들을 다섯 마리나 낳았다. 어진이처럼 털이 밉지도 않았고, 입이 어긋나지도 않았다. 애견 센터에서는 아주 고급 강아지라면서 많은 돈을 주고 데려갔다. 그 돈은 아빠의 일 년치 약값을 대고도 남을 정도였다.

 어진이가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득철이를 본다. 득철이는 어진이를 가만히 안고서, 눈동자로 물약 한 방울을 떨어뜨려 주었다.

 ‘어진아, 아빠 병 다 나으면 그 다음에는 꼭 너 눈 수술시켜 달라고 할게, 알았지? 그리고 이젠 너 혼자 바깥에 나가지 마. 그 대신 내가 여기저기 많이 구경시켜 줄게.’

 어진이는 득철이의 품 안에서 꼬리를 가볍게 흔들어 대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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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8-0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동화는 박기범, 문제아, 창작과비평사에 실려 있습니다.

비발~* 2004-08-0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이걸 다 치신 건 아니시죠..........?

느티나무 2004-08-02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너무 길다고 안 읽는 거 같아요.ㅠㅠ

꼬마 까이유 2004-08-02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재밌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어진이가 사람인줄 알고 너무 끔찍해했어요-.-;;
나중에 새끼 낳는다는 말이 나온뒤 다시 처음부터 읽었지요...ㅎㅎ;

느티나무 2004-08-02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이 동화의 매력!! 근데 우리 학교 학생들은 도서실에서 내가 이 책 권해주면 슬금슬금 눈치보면서 유치하다고 안 읽으려고 해요ㅠㅠ. 난 너무 감동적이라서 추천해 주는 건데... 문제아에는 이 단편말고도 좋은 동화가 참 많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