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방학 보충수업할 때 임시 담임을 맡았던 반에 이런 숙제를 냈었다. 나도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것들이라 아이들과 함께 해 보고 싶어서 냈더니, 6명만 숙제를 보내왔다. 그래도 무지 고마웠다. 이번 방학엔 어떤 숙제를 내는 것이 좋을까?

<방학 때 이런 것 한가지 하는 것도 행복할 것 같다!>

  •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10가지 적어보기(a4 한 장)
     - 이렇게 제목을 붙이면 어떨까?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들을”이라고. 자유롭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들을 꼽아 10가지만 간절한 순서대로 나열해보자. 그래서 진짜로 해 보자. 안 되는 것, 자신 없는 것 다 생각하지 말고. 내가 도대체 어떤 학생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 맨 땅의 흙을 맨발로 밟아보기
    - 우리 주변에 맨 흙을 밟아 볼 수 있는 곳이 있기나 할까? 대지의 부드러움을 직접 밟아서 느껴보자. 온몸으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느낌을 적어보자. 가능하다면 갯벌을 맨발로 밟아 본다면 더욱 좋겠다.
  • 시장 구경과 장보기
    - 시장 구경을 떠나보자. 엄마 대신 장보기를 해 보면 더 좋겠다. 엄마랑 함께 가도 좋겠고...... 시골 장날이나 ‘구포장’이 설 때 가도 좋지.(우리는 너무 백화점과 마트에 익숙해져 버린 지도 모르겠다)
  • 친구와 함께 목욕 가기
    -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정말로 한 사람과 친해지려면 함께 먹고 씻고 자라고 했던가?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수줍지만 용기를 내어 이렇게 얘기하자. “우리 목욕갈래?”
  • 숲에서 나무 안고 나무와 이야기하기
    - 숲으로 가 자신의 나무를 하나 고르고 그 나무에게 친구에게 말하듯이 이야기를 해 보자. 숲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종종 가서 해보는 것이다. 또, 땅바닥 가까이 피어있는 조그만 들꽃도 같은 키로 엎드려 이야기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하기
    -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 빼고 아무 것도 안 하기. 물론 컴퓨터도 안 하고 TV도 보지 않는다. 게임도 아쉽지만 하루 쉬고. 좋다구? ^^ 글쎄, 그게 쉬운 일일까?
  •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오기
    -  혼자서 버스 타 본 적 있니?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가 본 적 있니? 위험한(?) 미모를 가진 너희들이라 걱정이다만 젤 친한 친구와 버스 타고 세상 밖으로 나가 보자.
  • 계곡이나 개울에서 바위 들추기
    - 계곡이나 개울에서 커다란 돌을 갑자기 들추어보면 돌의 뒷면에 못 보던 많은 생물을 볼 수 있다. 물 속의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경이로움을 꼼꼼히 기록해 보자.
  • 내가 만든 노래 녹음하기
    - 창작이 아니어도 좋다. 이미 알고 있는 노래에 가사를 바꾸어도 상관없다. 노래를 만들어 녹음기에 녹음해 보는 것이다. 귀로 듣던 자기의 음성과 다른 느낌이 아마도 들 것이다.
  • 인터넷으로 내가 가고싶은 곳 찾아가기
    - 아직은 혼자 또는 친구들이랑 여행 가기는 좀 무리니까 열심히 정보를 수집해 두었다가  대학교 때나 나이가 좀 더 들면 자신이 가고 싶었던 곳을 여행할 수 있도록 미리 3년 계획을 세우자.
  • 해 지는 것 바라보기
    - 먼 옛날 석가 세존은 현세에서 극락을 보는 방법으로 해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단다. 한 번 극락을 찾아보기로 하자. 그것이 바닷가라면, 또 산꼭대기라면 더욱 좋지 않을까?

 - 얘들아! 방학 때 너희들의 얘기를 나한테 메일로 보내줘~! / 너희들의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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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01-1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 참아보기나 눈감고 집에서 돌아다녀 보기 같은 건 어떨까요? 자기 지역의 문화재 찾아보기도 해보고요. 고등학교 때 세계사 숙제가 문화재 있는 곳에가서 문화재와 자신의 얼굴을 같이 사진으로 담아오는 걸 했었거든요.
음, 그리고 예전엔 흔히 했을 곤충채집대신 식물채집을 해보는 거에요. 주변에 어떤 식물들이 사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시골에 살면서 제대로 아는 것들이 별로 없는 지라^^;
에 또; 만화책이나 만화를 자주 볼테니까 만화의 캐릭터에게 편지 써보기는 어떨까요.
으음; 하루종일 밖을 돌아다니며 바닥을 살피며 돈을 주워보는 거에요. 십원 같은 건 요새 잘 줍지도 않더라구요. 십원 만드는 데 십원보다 많은 돈이 드는데 말이죠.

느티나무 2004-01-1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생각지도 못한 좋은 숙제거리를 가지고 계시네요. sa1t님의 의견을 꼭 참고 해서 아이들에게 아주 의미있는 숙제를 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정말 고맙습니다.

▶◀소굼 2004-01-1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현돼서 여름이나 겨울에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저로서도 상당히 기쁠거에요:)

느티나무 2004-01-11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저의 서재에 놀러와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프루스트의마들렌 2004-02-03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부산사는 한 여고생입니다. 아마도 저희학교 선생님이실 확률은 없어보이기에(^^;) 코멘트 남기는 것도, 그 어떤 구애도 의식도 받지 않아서 좋으네요.
과제가 진짜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비장하고 차분한 상태일 때, 해 본 것들이 대부분이네요...(웃음)
근데 저걸 진심으로, 뭔가 생각하면서 할 수 있는 학생들은 많지 않을 거예요. 요새 애들이 좀 바쁜가요. '친구와 함께 목욕가기' 는 여자애들이라면 민망해서 (-_-;) 못 할 것 같고, 계곡이나 개울에서 바위 들추기 맨 땅의 흙을 맨발로 밟아보기는 도시 애들, 특히 소위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저런 것 하다가 우울해지지 않을지(...;;) 우려되네요. 저라면 우울해서 못할 거예요.
의미있는 숙제도 좋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셔서 아이들 작은 마음에 스크래치(;)되지 않게 좋은 과제를 내셨으면…

느티나무 2004-02-0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이들 정말 바쁘지요. 그러니까 그나마 방학 때 내준 숙제랍니다. 뭔가 생각하면서 안 해도 상관 없는 숙제니까요. 찾는 사람은 찾고, 못 찾는 사람은 그냥 그런 경험인 것이고... 우울해진다는 건 잘 이해가 안 되는걸요?? 아마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법은 없나 봅니다. 숙제를 안 내주면 아이들 마음이 가장 편할까요 ^^;
 

  어제밤 늦게(사실은 새벽이었다) '열 여섯의 섬' 리뷰를 쓰는 것으로 알라딘에 10편의 마이리뷰를 썼다. ㅎㅎ '언제 10편을 쓰나?'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한 4년 동안은 알라딘에서 책은 사도 '리뷰'를 쓸 생각도 안 했는데, 서재가 생기고 나서 '리뷰'를 쓰게 되었으니까, 음, 약 6개월만에 10편의 '리뷰'를 쓴 셈이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강조했던 내가 실제로 글을 쓰는 경우는 자주 없다는 것을 되돌아보게 되어서 꾸준히 쓰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왕 시작한 거 잘 해보자 싶어서 읽은 책 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들에 대한 리뷰(근데, 정확하게 '리뷰'는 어떤 뜻인가?)를 써서 7편은 금방 썼다. 그러나 7편 쓰고는 석 달 이상을 놀았다. 마음의 부담만 늘고 실제로 글은 잘 써지지 않았는데, 『십시일반』리뷰를 단숨에 쓴 이후로 다시 힘을 내게 되었다. 남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리뷰를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실제로 쓰지는 않으면서도 '리뷰'가 늘 부담스럽다. 아무튼 내일 아침엔 내 '리뷰'가 게시될 것이고, 다음달에 알라딘 상품권 5천 원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아직 저번에 산 책을 반도 다 못 읽었지만, 벌써 장바구니에 책이 가득 찼다.(이거 중독이려나? 알라딘 회사는 좋아하겠네!) 알라딘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보면 좋은 책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지금은 꾹 참고 있는데, 경험으로 봐서 이렇게 참고 있는 것도 틀림없이 며칠 못 간다. 알라딘에서 5천 원 상품권 받고, 마일리지도 꺼내어 쓰고 해야겠다.(뭐, 그래봐야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다르니까!) 그래도 일단 꼭 사야할 책을 추려내고, 또 추려야겠다. 즐겁고도 아픈 작업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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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아드 2004-01-0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10편의 리뷰..

nrim 2004-01-08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저도 오늘 리뷰 10편을 채웠답니다. ^^

느티나무 2004-01-08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방금 nrim님의 페이퍼에 코멘트 달았다가 이벤트 당첨~~~! 고맙습니다. nrim님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리뷰 읽고 찾아가겠습니다. 제가 코멘트는 잘 안 해도 늘 들어가 본답니다. ㅎㅎ 고양이와 행복한 저녁 보내십시오. 근데 칠레의 모든 기록?? 살까요??

nrim 2004-01-08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느티나무님도 이벤트 당첨 되셨군요. 축하드려요~~~! (아, 부러워라~~)
<칠레의 모든 기록>은..아옌데 대통령과 시인 네루다의 흔적을 찾아가는 부분이라던가, 칠레 아이들의 이야기등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제가 쓴 리뷰를 돌아보고 이 책에 별을 세개밖에 주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는 왜 그랬을까 하고 있었는데....
한번 구입해서 보세요. ^^

느티나무 2004-01-08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별 세 개에 망설였답니다. 리뷰에 대한 내용은 괜찮은 평을 해 두신 것 같던데... 저도 좀 의외로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럼, nrim님 말씀대로 한 번 사 봐야지요. ^^ 감사합니다.

모래언덕 2004-01-0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리뷰 10편, 지난번 말씀하셨던 상품권을 드디어 받으시겠군요.
어젯밤 늦은 시간에 '작은 책방'에 들려주셨더군요...깜짝 격려에 힘이 으랴차찻 솟는군요.
장바구니가 너무 무거우시죠? 사실은 저도 그렇거든요.
흥분하라~ 기회가 왔다.
알라딘의 이 선전 문구가 너무 절묘해서 무릎을 쳤답니다.
책만 보면 흥분하는... 더구나 좀 더 싼값이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지만...
쌓여있는 책들을 보며 저역시 참아야~ 하느니라 이렇게 허벅지(?)를 꼬집고 있답니다.
하지만 참을 수 없을 것을 저 또한 잘 압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만드세요.~~~


느티나무 2004-01-09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그 사이 하루를 참지 못하고, 일단 급한 책(?)만 먼저 샀습니다. /SERI 전망 2004/신영복의 엽서/눈밖에 나다/우리 동네 사람들/이땅에 새겨진 정신/ 월요일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이거 병 아닐까요? ㅋㅋ 알리딘 통장 탈탈 털어도 제 카드에서 거액이 빠질 걸 생각하면 흑흑!! (흑흑!!은 한순간이고 책장은 영원하리라! 뿌듯~!)
 

   특기적성을 빙자한 보충 수업기간이지만, 어제와 오늘 동안은 나만의 휴가기간이다. 이틀을 뺀 덕분에 앞으로는 1월의 끝까지 매일 4시간의 수업을 해야한다. 원래는 어떤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서 3일간 휴가가 필요했지만, 학교 사정상 2일 밖에 시간이 안 났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모임도 못 가고, 이왕 시간이 난 거 이렇게 집에서 뒹굴뒹굴거리며 책이나 읽자 싶어서 이렇게 있는 것이다.

   보충 수업을 위해 반편성을 새로 했고, 역시 임시 담임을 맡게 되었다. 이번에는 인문 여학생반인데, 이 녀석들이 아침마다 전화통에 불이 날 정도로 통화와 메세지를 보낸다. 이유는 단 하나! 이틀 전 종례시간에 아무런 연락 없이 결석이나 지각하면 샘이랑 '면담'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남아서 '면담'하는 건 질색인 것 같다.

   아이들은 아침마다(그래봐야 겨우 이틀이지만) "선생님 배가 아파서 못 가겠어요" "선생님, 병원 갔다가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더 몸이 아파서 도저히 못 가겠어요" "선생님! 저 오늘 못 갑니다. 감기들었어요." 같은 문자메세지를 너댓통씩 보내고, 집에 있는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그럼 내일은 꼭 오너라"라는 답메세지만 보낸다. 그러면서 속으로 은근히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사실은, 아이들의 건강에 대한 걱정보다는 '이러다 내가 맡은 반이 엉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은 왜 아픈 것일까? 예전에 내 친구(물론 선생이다.)가 남긴 명언 "아이들은 아파서 조퇴하는 것이 아니라 조퇴하고 싶어서 아프다"처럼 아픈 척 하는 것일까? 다른 반에는 별로 결석생이 없는 걸 보면, 유독 우리반에 몸이 약한 학생들이 많거나 우리반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싫어서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리라. 다른 선생님들도 사석에서는 '나 같아도 오기 싫겠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그래도 담임의 입장에서는 그 반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으니 선뜻 그렇게 말하고 말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조심스럽게 아이들에게 '자율'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맡은 한 달-그러나 학교에 오는 날은 15일 정도?-동안만이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받이들이는 연습을 해 보도록 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보충수업은 '교육 활동'이라기 보다는 '서비스 활동'에 더 가깝다.선생님들은 하기 싫어도 학생들을 위해 방학을 버려야하고(나 같은 사람만 해도 시간만 주어지면 방학 때 내 돈을 써가며 공부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지만, 매일 학교에 묶여 있어야 하니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도 비싼 수업비를 내면서 자유롭지 못한 방학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교실만이라도 즐겁고 씩씩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걸 전제로 해서 아이들 자신에게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

   둥둥두둥~! 내일이면 학교에 간다. 기다려라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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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최준식, 효형출판)을 다 읽었다. 책의 리뷰를 쓸 지 고민 중이다.

- 열 여섯의 섬(한창훈, 사계절-1318문고)을 읽었다. 주인공인 '서이'와 '이배'라는 이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리뷰를 한 번 써볼까 궁리만 하고 있다. (워낙 게을러서...)

-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김영현, 실천문학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 동안 미뤄두었던, 빨간 신호등(홍세화, 한겨레신문사)의 리뷰를 썼다.

- 혜민이가 빌려달라고 한 칼의 노래(김 훈, 생각의 나무)를 책가방에 챙겨 넣었다.

- 이제 잠이 온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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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한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는다. 실제 전투는 주로 사병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사병으로 남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오래 전부터 가졌던 생각이다.
   따라서 나에겐 나르시시즘이 있다. 내 딴에는 그것을 객관화함으로써 자율통제 하려고 애쓴다. 그러면 전투는 왜 하는가? 살아야하므로. 척박한 땅에서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워 작은 열매라도 맺게 하는 거름이고자 한다. 거름이고자 하는 데에는 자율통제가 필요치 않다. 욕망이 춤춘다. 그렇다.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빨간 신호등』의 책날개 중에서


   빨간 신호등의 책날개를 보고는 무릎을 쳤다.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내가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각하는 것이, 소통하는 것이, 깨달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즐겁다. 나는 언제가 되었든, 내가 교단에서 내려올 때까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아있고 싶다. 나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옳은 것, 아름다운 것,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홍세화 씨의 경우처럼, 내가 교실에서 수염 풀풀 날리며 실제로 전투를 치르는 '척탄병'이고 싶어도 학생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아마도 교사들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아이들을 피해 모두 다 '관리자'가 되려고 알게 모르게 애를 쓴다. 비단 '관리자'가 되려는 것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다른 즐거움을 찾아서 관심을 돌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도 아이들과 소통되지 않는 상황이 두렵다. 그러나 나는 이 두려움을 피하려고 딴전을 피우지는 않겠다. 이 두려움이 내가 교단에 선 그 날까지 계속되어서 끊임없이 나를 갈고 닦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빨간 신호등' 리뷰의 전반부이다. 그러나 배우며 가르치며라는 마이페이퍼에 써 두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옮겨 둔다.)

   오늘부터 특기적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 우리 학교가 좀 심한 경우긴 하지만, 학생들은 1월 31일까지 계속 학교에 나와야 한다. 정말 아이들보다 내가 더 학교에 나오기 싫다. 그러나 학생들을 다시 만나고 나니 새로운 의욕이 솟는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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