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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미궁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시모치 아사미. 그녀와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란 작품이었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마지막 결말 부분에 가서야 범인이 누구인지 트릭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지만 이 작품은 달랐다. 소설 초반에 범인이 드러난다. 누굴 살해하려 하는지도. 남은 것은 어떻게 범인을 추격해가는가인데,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에서는 범죄현장이 공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경찰이나 탐정이 아닌 범인의 일행이 사건을 추리해나갔다. 실로 충격적이라 할만큼 획기적이고 참신한 작품이었다. 그 단 하나의 작품으로 난 저자의 이야기에 사로잡혔다. 다른 작품에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움이 있었으니까. 최근에 출간된 <물의 미궁>을 볼 때도 그랬다. 이번엔 어디서 사건이 벌어질까.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갈까 궁금했다.
<물의 미궁>은 물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장소, 수족관을 배경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관람시간이 끝나고 직원들조차 모두 퇴근해버린 늦은 밤, 수족관의 사육계장인 가타야마가 이상수온을 일으키는 수족관을 돌아보던 중에 한 수족관에서 갑자기 심장이 멈춰버린다. 이후 소설은 3년 후의 시점으로 이동한다. 가타야마의 갑작스런 죽음은 과로가 누적되어 일어난 돌연사로 결정난 상태. 적자가 누적되어 폐관위기까지 이른 수족관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가타야마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에 동료들은 수족관 살리기에 더욱 매진하고 그 결과 ‘하네다 국제환경 수족관’은 지역에서 내노라하는 수족관으로 발돋음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가타야마의 3주기 기일인 어느날, 수족관으로 발송인을 알 수 없는 휴대폰이 배달된다. ‘관장님께’라는 메모에 따라 휴대폰은 수족관 관장의 손으로 넘겨지고 곧이어 휴대폰으로 메일이 도착한다. ‘도쿄만의 오염이 심하군요.’라는 의문의 내용이 담긴 메일을 시작으로 수족관을 위협하려는 범인과 수족관과 관람객을 지키려는 직원들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데...
이제는 저자의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것, 소설의 시작부터 사건이 터지는 도입은 <물의 미궁>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독자에게 주어진 것은 가타야마의 죽음이 누가, 왜, 어떻게 해서 벌어진 건지 알아내는 것뿐.
하지만 <문은 아직...>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에 이어 이번이 저자와의 세 번째 만남이어선지 처음에 느꼈던 것만큼의 충격은 느끼지 못했다. 중반쯤 이미 누가 범인인지 대략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다만, 범인이 ‘왜’ 가타야마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는지 알 수 없었는데...그 이유가 어떻게 보면 너무나 사소한 것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거기다 마지막 결말 부분도 ‘어떻게 이럴수가...’란 말이 나올 정도로 현실성이 없었다.
본문 곳곳에 오탈자도 눈에 띄었다. 32쪽에서 ‘마흔여덟’이라는 관장의 나이가 57쪽에선 ‘마흔여섯’으로 되어 있고 초반 ‘고가 고조’란 주인공의 이름이 ‘고가 고우조’로 바뀌기도 했고 284쪽에는 ‘깃대돔을 좋아하는 가타야마는 이를 애석하게 여겼지만, 그래도 모델’이란 한 줄이 통째로 다음쪽에 중복되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참신함, 신선함이 다소 떨어지는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문득 수족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수족관이 있지만 개관이후로 지금까지 난 겨우 한두 번 찾은 게 전부였다. 수족관을 관람하는 재미를 찾지 못해서인데, 이후로 그 수족관을 방문하게 되면 수족관의 곳곳을 다시 한번, 새로운 눈길로 들여다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