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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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머금은 소년의 모습보다 저자가 ‘이상권’이며 ‘소설’이란 점이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제게 있어 ‘이상권’은 그 유명한 <똥이 어디로 갔을까>를 비롯해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 <통통이는 똥도 예뻐>를 쓴 동화작가로 지금까지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 그가 성장소설을 썼다니. 그것도 제목이 <성인식>이라...눈에 불이 반짝 켜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아들만 둘, 마악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의 큰아이를 둔 저로선 이 책을 꼭 읽어야할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킨 셈이라고나 할까요?




‘소설’이래서 장편소설인가?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단편소설집’입니다. 총 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다섯 편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단 성장소설이니 주인공은 모두 십대의 소년 소녀들이구요. 배경은 도시가 아닌 외곽지역, 농촌이에요. 이쯤되면 농촌에서의 느리고 전원적인 삶의 모습들이 주된 내용일거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복잡한 도시든 한적한 농촌이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속에서 모두 치열하고 갈등하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표제작인 [성인식]은 과학고에 다니는 시우의 이야기인데요. 어버이날을 앞두고 집을 찾은 시우를 기다린 것은 ‘혼란’이었습니다. 맹장수술을 받은 이후로 몸이 약해진 시우가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어머니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개 칠손이를 잡겠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걸 알기에 시우는 더욱 무력하고 혼란스러워하자 마을의 형과 어른들은 시우에게 직접 개를 잡으라고 충고합니다. 그런가하면 시우의 오랜 친구인 진만은 여자친구인 새봄이가 임신하자 힘들더라도 함께 살아가면서 헤쳐 나가겠다는 결심을 하는데요. 나 몰라라 팽개치고 도망이라도 싶은 상황을 이겨내면서 시우와 진만은 모두 한걸음 성장하게 됩니다. [문자 메시지 발신]에서는 ‘왕따’를 이야기합니다. 슬기는 어느날 갑자기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리면서 앞으로 아는 체 하지 마라는 휴대폰 문자를 받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에서 예전에 절친한 친구였지만 모두에게서 외면을 받은 나머지 전학 가버린 정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정미의 어머니를 통해 정미가 전학 간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는 얘길 들은 슬기는 친구를 감싸주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이 외에도 친구들에게서 왕따를 당한 충격으로 온 가족이 시골로 이사한 예분이네는 가축을 키우면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려하지만 전원생활을 방해한다는 이웃들의 거센 항의와 폭행으로 인해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암탉], 조류독감 때문에 키우던 거위들을 살처분해야하는 사태에 이르자 할머니가 거위를 데리고 산으로 달아나 버리자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손녀 필분의 이야기 [욕짱 할머니와 얼짱 손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으로 인해 축산농가의 생계가 벼랑 끝까지 내몰린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먼나라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성장이란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 42쪽.




저자의 작품을 읽다보면 참으로 자연과 가까운 삶, 자연친화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잘 담아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저자는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경험들을 소설 속에 잘 녹여내었습니다. 다섯 편의 소설에서 단순히 십대 청소년들의 성장만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일상이 이뤄지는 삶의 공간인 농촌에서의 현실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들이 어떤 것에 상처받고 아파하고 갈등하는지 생생하게 전해주는데요. 성인으로 한걸음 내딛기 위해 그들이 겪는 통과의례들이 곧 그들만의 아픔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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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 살림청소년 융합형 수학 과학 총서 30
사쿠라이 스스무 지음, 전선영 옮김 / 살림Math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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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보다 수학을 좋아해서 이과를 선택했는데도 불구하고 고교를 졸업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더 이상 수학을 안 해도 된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내가 수학을 싫어했던 건 아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거기서 거기인 영어에 비해 수학은 마음먹고 공부하면 그 성과가 드러나는 과목이어서 좋아했지만 그래도 어려웠다. 확률이나 통계, 수열 같은 부분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내가 수학, 아니 숫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서 기억력이 80분간만 지속되는 수학 박사. 누구나 절망에 빠질 상황인데도 그는 자신을 보살피는 파출부와 그녀의 아들 루트에게 따스하게 대한다. 지극히 사소한 나이와 신발 사이즈에서조차 의미있는 수식을 발견하는 박사, 그를 지켜보는 파출부와 루트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을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게 된 데에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일상이 알고 보면 모두 수학으로 설명된다는 신기하고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거란 기대에서 였다. 그런데....책을 읽는 도중에 수시로 난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분명 나는 책을 손에 쥐고 눈은 책장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머리는...저 머언 곳으로 날아가는 기분이란....


책은 모두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의 도입은 ‘고민상담실’이란 코너에서 황당박사가 엉뚱여사나 호기심아저씨의 수학과 관련한 질문에 답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다음 본문에서는 앞에서의 고민을 보다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본문 중에 언급된 수학자에 관해 간단한 소개글로 마무리를 한다. 이를테면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수와 로그를 너무 어려워한다고 토로하는 엉뚱여사에게 황당박사는 지수와 로그는 삼각함수와 같은 것으로 옛날부터 썼던 도구로 우리 인류에 크게 도움이 됐다며 말을 꺼낸다. 그런 다음 본문에서 삼각함수가 천문학에서 시작되었는데 고대에서는 천체관측4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지 알려주고 중세에 이르러 대항해시대를 맞아서는 항로를 계산하는데도 필요했다고 하면서 복잡한 천문학 계산을 좀 더 간편하게 하기 위해 로그가 이용되었다면서 로그표를 만든 네이피어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준다. 이런 형식으로 오늘날의 내비게이션이 무엇을 위한 기술이고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 컴퓨터가 생활 깊숙이 파고 든 요즘 컴퓨터가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복사용지의 크기에는 어떤 규칙이 숨어있는지 짚어주는데 어려운 대목이 많아서 골머리릴 싸매기도 했지만 수학이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문인지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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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클럽 - 그들은 늘 마지막에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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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회색빛 바탕에 두 남녀가 걸어간다. 상반신만 그것도 컬러가 아닌 그림자처럼 짙은 색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이들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큰 보폭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는 모습에서 이들의 강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탐정클럽. 검은 양복의 키 큰 남자와 검정 재킷을 입은 여자.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탐정클럽’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회원제 조사기관이라는 것과 VIP회원들의 의뢰를 받아 인적 사항 조사부터 뇌물수수 같은 비리를 캐거나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의 업무를 한다는 게 전부다. 이 외엔 모든 것이 그늘에 가려진 탐정클럽. 그들이 수사에 나선다.


책에는 다섯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장의 희수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린 날 밤에 사장이 자신의 방에서 목을 멘 시체로 발견된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사장의 비서와 사장의 세 번째 여자, 그리고 사장의 사위이자 부사장은 사장의 자살을 비밀리에 부치기로 하지만 어느새 사장의 시체가 사라져 버리는 [위장의 밤], 부동산업을 하는 야미가미 고조 사장이 욕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사람들은 평소 고조가 심장이 안 좋아 심장마비로 인한 자연사를 했다고 짐작하지만 그의 아내는 남편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한다. 밀실인 욕실에서 일어난 사건 [덫의 내부], 방과후 집으로 돌아온 미유키는 엄마가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미유키는 아빠의 행동이 평소와 다른 뭔가가 있다는 걸 느낀다. 거기다 언니와 이모까지도 자신에게 무언가를 감춘다는 걸 알아차린 미유키가 탐정클럽에 전화를 걸어 사건을 의뢰하는 [의뢰인의 딸], 탐정클럽에 남편의 뒷조사를 의뢰한 후미코. 그녀는 탐정클럽에 조사에 관련한 모든 것을 비밀리에 진행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어이없게도 탐정클럽이 범죄에 이용당하는 [탐정활용법], 둘째 딸 유리코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하라 다이조. 그는 탐정클럽에 딸의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봐달라고 의뢰한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척이 없는 가운데 첫째 딸이자 유리코의 이복자매인 나오코가 자신의 방에서 목숨을 잃는데 끔찍한 사건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는 [장미와 나이프]. 이 모든 사건들을 탐정클럽이 해결하는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은 실로 소름끼칠 정도였다.


하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작품을 읽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기에, 예전에 읽었던 몇 몇 작품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기에 서슴없이 <탐정클럽>을 집어 들었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건 아닌가 싶다. 장편이 아니라 단편이어서 그의 글의 힘이 잘 드러나지 않은 건 아닌가 했지만 그것도 아닌 듯하다. 아무리 추악하고 충격적인 범죄를 이야기 하더라도 그 속에서 반드시 인간의 따스함을 전하는 이야기, 이를테면 <붉은 손가락>이나 <교통경찰의 밤>에서처럼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따스함이 이 책에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사건을 의뢰받았기에 업무의 하나로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클럽의 이미지가 강하게 도드라진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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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튼
케이트 모튼 지음, 문희경 옮김 / 지니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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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간혹 책 속의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떠오르곤 하는데요. 이번에 만난 <리버튼>도 그랬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웃고 울고 화내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분노하며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일상이 머릿속에 영상이 되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화려한 영상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스릴과 서스펜스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냐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20세기 초, 영국의 한 저택을 배경으로 거기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거라 한가하다 못해 어찌보면 지겨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에요. 지극히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배신, 행복과 슬픔의 이야기는 저자 케이트 모튼을 통해 생명을 얻어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670여 쪽의 두툼한 책이지만 이야기는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1999년의 겨울, 아흔 여덟의 그레이스는 우슐라라는 영화감독의 편지를 받습니다. 그레이스가 하녀로 일했던 리버튼 저택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영화를 찍는데 자문을 해달라는 거였는데요. 그 편지는 그레이스로 하여금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랫동안 잠궈두었던 지난 날의 일들을...


1924년 7월, 열 네 살의 그레이스는 리버튼의 하녀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그레이스는 매력적이고 활기찬 세 남매 데이비드와 해너, 에멀린을 만나는데요. 당시의 하녀는 주위에 있으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일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레이스는 세 남매의 일상과 비밀 놀이를 지켜보면서 그들을 자신의 마음 속에 담게 됩니다. 그렇게 단조로우면서도 평화로운 날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듯 했지만 1차 대전이 터지고 영국이 참전을 발표하면서 리버튼은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리버튼 저택에서는 애시버리와 조나단, 데이비드가 참전하는데요. 이들이 모두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으면서 리버튼은 어두운 그늘이 잠겨버립니다. 그런 가운데 세 남매의 아버지인 프레더릭은 리버튼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자동차 사업을 펼치고 해너는 마을의 비서양성학교에서 속기를 배우면서 직업을 가진 자유로운 현대여성을 꿈꾸는데요. 모든 것이 순탄하게 진행되질 않았습니다. 프레더릭의 사업이 난항을 거듭하고 해너는 아버지의 반대로 직업을 갖는 일이 무산되어 버립니다. 여자로서 제한된 역할에 안주할 수 없었던 해너는 은행가의 아들 테디와 결혼을 결심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리버튼에서 탈출하는 길인 동시에 정치가를 꿈꾸는 테디와 함께 자신의 이상도 펼칠 수 있을 거라고. 그것이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줄도 모르고 말이에요.


저자는 이 모든 이야기를 그레이스가 손자 마커스에게 남기는 형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손자에게 할머니로서 자신의 지난날을 녹음테이프에 담아서 들려주는데요. 마지막 대목에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1924년 여름 리버튼의 호숫가에서 벌어진 사건의 전말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해너가 그레이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도...


이 책을 보면서 영화가 떠오른다고 했는데요. 그건 바로 <타이타닉>이었어요. 침몰한 타이타닉 호에 있을지도 모를 보물을 수색하던 이들에 의해 발견된 한 장의 그림. 그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됐지요. 그림 속에서 커다란 보석목걸이를 목에 건 여인이 바로 자신이라며 나타난 백발의 할머니, 그녀는 탐사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십대 소녀였던 그녀가 마치 돈에 팔려가는 기분으로 타이타닉에 올랐다가 잭이란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국 죽음이 자신들을 갈라놓게 되던 이야기를. 전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마지막 대목, 할머니가 된 로즈가 손에 쥐고 있던 목걸이를 바다에 떨어뜨리자, 어느 순간 침몰하기 전으로 돌아간 타이타닉 호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잭과 로즈가 만나는 장면이었는데요.


<리버튼>도 그랬어요. 로즈가 탐사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그레이스는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줬지요. 로즈의 목걸이처럼 그레이스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 자신의 삶과 만납니다. 그리고 평생 마음의 무거운 짐이 되었던 일들, 후회만 거듭하던 일을 이해하고 화해하는 순간을 가진 후 평화로운 순간을 맞는데요. 그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제 가슴에 묵직한 무언가가 남았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사소한 잘못이나 오해, 실수를 하기 마련인데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구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갈림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한 세기를 살아온 그레이스의 삶을 통해 우리 인생의 기나긴 여정을 실감할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요. 한동안은 <리버튼>의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예감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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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1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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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몰아내고 잠궈버린 게 정확히 몇 년짼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비롯해 가족 모두 텔레비전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는데요. 하지만 가끔 텔레비전의 유혹을 느껴요.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을 때인데요. 케이블 채널에서 [튜더스] 드라마가 방영될 때도 그랬습니다. 우연히 시댁에서 잠깐 예고편을 봤는데 정말 재밌을 것 같더군요. 세계사, 특히 유럽사에 무지한 저도 ‘천 일의 앤’은 알거든요. 드라마를 보면 당시 유럽의 흐름도 알게 될 것 같았는데, 그것 때문에 다시 텔레비전에 시선을 빼앗기고 싶진 않더군요. 그 대신 <천 일의 앤 불린>이란 책을 구입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까지도 읽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울프 홀>을 만났습니다. 몇 년 전 인상깊게 읽었던 소설 <파이 이야기>처럼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니 작품성은 인정받은 셈인데다가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바로 드라마 [튜더스]와 동일한 헨리 8세라는 점이 끌리더군요. 영국판 칠거지악도 아닌데 첫 번째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핑계로 국교까지 바꿔가며 이혼해버린 남자, 헨리 8세. 물론 그때 그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아름다운 여인 앤 불린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영국의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하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헨리 8세.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근데, 책의 주인공이 헨리 8세나 앤 불린일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토머스 크롬웰’이 주인공이더군요. 그것도 제가 알던 ‘크롬웰’이 아니었지만 16세기 헨리 8세 당시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책은 시작하자마자 가혹한 폭행의 현장으로 독자를 이끕니다. 거기에 한 소년이 아버지로부터 가차 없는 폭행을 당하고 쓰러집니다. 온 몸이 피와 도사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소년은 기어서 앞으로 나아가서 간신히 누나의 집으로 피신하게 되는데요. 소년에게는 그곳도 안전하지 못했어요. 결국 누나의 집에서도 나와 배를 타고 방랑의 길을 떠납니다.




이후 이야기는 27년이 지난 시점으로 이동하는데요. 과거 아버지의 폭행에 휘둘리던 소년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습니다. 대신 멋진 옷을 차려입은 남자, 당시 국왕인 헨리 8세의 심복인 울지 추기경의 오른팔이자 그의 변호사가 있었는데요. 그의 이름은 토머스 크롬웰. 대장장이의 아들로 보잘 것 없는 미천한 신분의 그가 어느새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다가선 거지요. 소설의 초반 크롬웰과 울지 추기경이 나누는 대화내용을 통해 당시가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헨리 8세는 울지 추기경에게 국왕인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을 절실히 원한다는 뜻을 전합니다. 즉, 캐서린 왕비와의 결별. 혼인 무효 소송을 요구하기에 이르자 울지 추기경은 고심하고 이때 크롬웰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나가게 됩니다. 영국이 로마 가톨릭과 등을 지게 되고 핸리 8세와 캐서린과의 혼인을 무효로 만들과 앤과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데요. 이로 인해 크롬웰은 권력의 핵심인 국왕의 최측근이 되기에 이르는데...




신분의 벽이 높은 16세기에서 미천한 신분의 사람이 국왕의 오른팔로 성공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건데요. 저자는 크롬웰이 최고의 자리에 이르는 과정, 권력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헨리 8세의 정욕과 탐욕마저 이용하는 강한 출세욕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집착과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거짓으로 속이고 짓밟을 수 있는 교활하고 간계를 부리는 모습들을 두 권에 걸쳐 천 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국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 쟁탈과 음모술수, 복수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내용이었지만 유럽의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나로서는 다소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왕조 계보도는 마치 미로 같았고 토머스, 앤, 메리처럼 똑같은 이름은 왜 그리도 많은지...책을 읽는 내내 앞쪽을 뒤적이며 봐야 했습니다.(한참 후에 아예 복사를 하고 보니 수월해지긴 했습니다만...) 책의 말미에 저자가 후속작을 준비중이라는 대목이 있었는데요. 어떤 이야기로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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