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초삼걸 - 천하 최강의 참모진
쉬르훼이 외 지음, 장성철 옮김 / 지식노마드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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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몇 번 읽었지만 초한지는 아직 한 번도 읽지 못했다. 삼국지에 비해 초한지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아직 끌리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는 게 더 큰 이유다. 몇 년 전에 모처럼 기회가 닿긴 했지만 초한지의 저자의 논조가 나와 맞지 않은듯해서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 두 영웅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다. 중국의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서 항우와 유방이 대결을 벌이다가 유방이 승리하여 천하를 얻게 된다고 하는데, 그 과정이 궁금했다. 항우와 유방은 당시 최대의 라이벌이라 할 만큼 능력이나 자질에 있어서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유방으로 하여금 항우를 꺾고 승리할 수 있게 했던 걸까. 그 차이는 무엇일까.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한초삼걸>은 유방이 처음으로 쓴 말이라고 한다. 유방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장량과 소하, 한신이란 세 명의 걸출한 참모들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책은 유방이 장량과 소하, 한신 세 명의 참모들을 거느리면서 그들을 능력에 따라 적제적소에 등용, 배치하는 등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얻게 되는 과정이 펼쳐진다.




<한초삼걸>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항우를 물리치는데 있어 큰 공을 세운 장량(장자방), 소하, 한신 세 사람을 소개하는 ‘1장. 한초삼걸, 유방이 천하를 얻은 까닭’을 시작으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진한 교체가 이뤄지는 격변기에 생존하려면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개개인의 담력과 식견, 재능이 진취적인 사람이 두각을 나타낸다는 ‘2장, 난세가 인재를 단련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는 유방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또 유방이 장량, 소하, 한신 세 명과 만나는 과정에 대해 알 수 있는  ‘3장. 유능한 신하는 현명한 군주를 택한다’로 이어진다.




그리고 장량과 한신, 소하에 대해 보다 자세한 소개가 이어진다. 유방의 스승이자 벗인 장량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펼치는 탁월한 전략가(4장. 장량, 장막 안에서 천 리 밖 승부를 결정짓는 전략가)였고, 타고난 군사재능으로 장량의 전략을 직접 실행에 옮겼던 대장군 한신(5장. 한신, 천하의 절반을 경략한 군사천재, 6장. 한신의 군사사상과 지휘예술), 후방에서 나라와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전쟁시 식량이나 군수품 같은 각종 물자의 공급을 든든하게 지켜줬던 명재상 소하(7장. 소하, 나라의 근본을 안정시킨 명재상). 이렇게 유방이 천하를 제패하는데 있어 장량, 한신, 소하 세 명의 참모가 언제 어떤 역할을 담당했으며 어떻게 활약했는지 소개하고 있는데 표현이나 진행에 있어서 마치 소설을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잘 알지 못하는 중국의 역사이기에 책을 읽는데 있어서 속도감이나 몰입감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 시대를 제패한 영웅과 그의 바로 곁에서 이끌고 보필한 이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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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셰프 - 영화 [남극의 셰프] 원작 에세이
니시무라 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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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좀 다릅니다만 제가 사는 곳은 눈 구경하기 정말 힘듭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린 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아무도 다니지 않은 길에 발도장도 찍고 아이들과 눈 천사랑 눈사람을 만들며 신나게 놀고 싶지만 몇 년에 겨우 한 두 번꼴로 눈이 살짝 내리고 맙니다. 어쩌다 눈이 좀 내렸다 싶은 날에는 온 시내의 도로가 마비가 되어 버리는지라 ‘함박눈 펑펑’은 언제나 희망사항일 뿐이지요.




얼마전 출간된 <남극의 셰프>는 표지 그림이 코믹하고도 인상적이었어요. 파란 하늘과 순백의 설원을 배경으로 한 명의 남자가 갓 튀긴 새우튀김을 젓가락으로 건져 올리는 뒤로 접시를 들고 쪼로록 줄지어 서있는 여덟 명의 남자들.(아이는 새우튀김은 4개 밖에 없는데 사람은 여덟이라서 절반은 못 먹겠다는 말을 했지만) 그 폼이며 차림새가 마치 한 열흘 쫄쫄 굶은 홀아비 같아서 보는 순간 쿡 웃음이 터졌답니다. 그리고 궁금한 것들이 마구마구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남극은 너무 추워서 바이러스도 생존할 수 없다는데, 그곳에서 대체 뭘 하는 걸까? 아무리 셰프라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해먹는다는 게 가능할까?




저자인 니시무라 준은 1989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 남극에 파견되었습니다. 처음엔 기지의 위치나 규모, 시설이 그런대로 잘 구비되어있는 쇼와기지에 있었지만 두 번째는 쇼와기지에서 내륙으로 1000킬로미터나 더 들어간 곳에 있는 돔 기지에 가게 되는데요. 해발 3.8킬로미터, 평균 기온 영하 57도.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인 돔 기지에서 저자를 비롯해 여덟 명의 대원들과 함께 지낸 1년여의 기록이 바로 <남극의 셰프>입니다.




책의 초반엔 주로 저자가 식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이 담겨 있는데요. 대원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는 음식물의 양이 1톤 정도라니. 술이나 쥬스 같은 음료를 포함한 것이긴 하지만 정말 어마어마하더군요. 게다가 모두 냉동보관이 가능한 식재료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오이나 감자 같은 야채를 비롯해 달걀과 우유 같은 것들까지 냉동재료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후로는 본격적인 돔 기지에서의 생활이 펼쳐지는데요. 남극 파견근무로 인해 처음 만나게 된 아홉 명의 남자들이 돔 기지의 좁은 공간 안에서 지내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생기곤 합니다. 저 사람이 과연 전문가 맞아?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였기에 그 속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는데요. 그런 대원들에게 있어 저자가 내놓은 요리는 유일한 해방구이자 최고의 위로가 되어줍니다. 그걸 알기에 저자는 갖가지 핑계를 대어 파티를 벌이기도 하는데요. 남극에서 벌어지는 그런 일상들의 모습이 한편으론  엽기적이면서도 정말 코믹합니다.




다만 책 속에 수록된 사진이 크기도 작은데다 흑백이어서 책의 분위기를 살리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남극에서의 생활이 이 정도라면 1년은 무리겠지만 적어도 1주일은 너끈히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저자 자신도 “재미있었다”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책을 덮으며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어요. 영화 [남극의 셰프]는 어떨까? 저자를 의 원작이라고 하는데요. 원작영화는 어떨지 궁금해요. 저자인 니시무라 준을 비롯해 괴짜의사 후쿠다 대원, 술고래 모토야마 대원, 사진촬영의 명인 니시하라 대원....그들의 이야기가 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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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세계문학의 숲 7
마크 트웨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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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만났던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 그 두 친구 덕분에 내 어린 시절이 무척 즐거웠다. 그 동화를 마크 트웨인이란 동화작가의 작품이란 것도 모른 채 그저 나와 다른 나라에 사는 아이들의 모습, 일상, 놀이가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으며 부러운 시선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몇 년 전 다시 마크 트웨인을 만났는데 그의 동화나 문학작품이 아닌 유쾌한 일상의 모습들을 담은 책이었다. 유머나 넘치는 다정한 사람일거라는 예상을 깨고 버럭 화를 내거나 투덜대고 갖가지 소동을 일으키는 그의 모습에 쿡쿡 웃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난다.




얼마전 시공사에서 내놓은 시리즈 ‘세계문학의 숲’으로 출간된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는 내가 중년이 되어 처음 만나는 마크 트웨인의 문학작품이다. 탁월한 상상력과 유머, 날카로운 비판과 더불어 해학적이고 독설적이라는 작품설명에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어떤 이야길까. ‘아서왕 궁전’과 미국인을 얕잡아 이르는 말인 ‘양키’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기이한 낯선 사람을 우연히 만난 곳은 워릭 성이었다’로 시작한 책은 내게 낯선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19세기 미국에서 살던 사람이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타임슬립을 하는데 그가 도착한 곳이 미국의 지난 과거나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6세기, 그것도 ‘영국’이라는 점이었다. 이야기의 배경이 난데없이 미국에서 영국으로 바뀌다니. 분명 무슨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저자가 다름아닌 풍자와 해학의 대명사, 마크 트웨인이니까.




소설의 주인공은 행크 모건이란 이름의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온갖 무기와 기계를 만드는 기술자이자 공장의 수석 작업반장으로 일하던 그는 어느날 한 남자와 사소한 일로 다투다가 머리를 다치면서 정신을 잃고 만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이 달라진 게 아닌가. 기계의 소음이 가득한 공장 안이 아니라 초록이 드넓게 펼쳐진 시골이라니. 게다가 바로 곁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무쇠로 된 갑옷과 투구를 쓰고 거기에 방패와 칼, 창을 든 남자가 있다니.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는 남자에게 묻는다. 저 멀리 보이는 성을 가리키며 ‘브리지포트냐’고. 그런데 남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말을 뱉는다. “카멜롯이요.” 정신병자 보호소나 정신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으로 짐작했던 곳이 바로 아서왕이 지배하던 6세기 영국이라니. 거기다 자신이 포로 신세라니. 세상에, 얼마나 놀랐을까. 이후 행크는 엄청난 위험을 맞딱뜨리게 되는데....




타임슬립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날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다. 그들이 당시의 사회,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생각할 것도 없는 뻔한 의문이지만 그것을 작가는 얼마나 흥미있게 재미있게 만들었을까. 두근두근 기대가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저자가 다름아닌 마크 트웨인이니까. 도대체 주인공을 저토록 가혹한 환경에 떨어뜨린 이유는 뭘까. 행크는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오게 될까. 그는 과연 19세기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의 모험에 주목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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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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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척 사랑하는 영화가 몇 편 있습니다. 조용한 호수에 일렁이는 작은 물결처럼 잔잔한 감동을 남기는 영화는 하도 여러 번 봐서 스토리는 물론이구요. 어떤 영화는 일부 대사까지도 훤하게 기억하곤 합니다. 나만의 보물상자에 넣어두었다가 아련히 생각날 때마다 다시 꺼내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도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긴박감이나 스릴과는 거리가 먼, 조용한 일상의 모습들을 담은 영화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지와 루스, 에벌린과 니니의 사랑과 우정, 아름다운 추억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바로 그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원작소설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한동안 잊고 있던 추억이 떠올랐라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이지와 루스, 에벌린과 니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니...그것도 책으로, 이렇게 멋진 일이 또 있을까요!




삶의 회의에 깊이 침잠한 중년 여성 에벌린, 그녀는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에 갔다가 우연히 어떤 노부인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휘슬스톱 출신의 스레드굿 부인(니니)이라고 소개한 노부인은 나이에 비해 무척 밝고 명랑하며 생기가 넘쳤습니다. 생전 처음 본, 그것도 요양원의 휴게소에서 만난 에벌린에게 노부인은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시끌벅적했던 어린 시절, 스레드굿 가에서 벌어진 갖가지 이야기들을. 어렸을 때부터 제일의 말괄량이이자 엉뚱한 장난을 일삼던 언제나 활달하고 당당하며 자신감 넘치는 이지, 이지가 사랑했던 루스, 솜씨좋은 흑인 요리사 십시, 그들의 휘슬스톱 카페... 에벌린은 노부인의 이야기에 단박에 매료되어 버립니다. 어쩔 수 없이 다녔던 매주 일요일의 요양원 방문은 노부인의 이야기로 인해 즐거움과 기대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실 1920~30년대는 여성의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던 시기였습니다. 인종차별도 극심했구요. 하지만 이지는 그런 것들을 모두 떨쳐버립니다. 흑인들에게 음식을 파는가하면 떠돌이나 부랑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기도 합니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에벌린은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남편의 사랑과 관심에서 멀어진데다 단 것을 좋아해서 펑퍼짐해진 몸매는 그녀를 더욱 의기소침하고 주눅 들게 했는데요. 그런 에벌린에게 이지는 그야말로 자극제이자 그녀가 삶에 보다 당당해질 수 있도록 생활의 활기를 되찾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주차장에서 자신에게 무려한 행동을 한 십대 아이들에게 따끔하게 일침(영화에서는 “토완다~!!”를 외치며)을 가할 때는 얼마나 통쾌한지! 




한 권의 책이 우리의 삶에 전환점이 되기도 하듯이 때론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변화를 맞게 됩니다. 자신을 둘러싼 불합리한 것들에 맞서 큰 용기를 보여준 이지와 루스의 사랑, 세대를 뛰어넘은 에벌린과 노부인의 우정, 그 속에서 또 한 번 감동과 희망을 느낍니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영화와 책, 모두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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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개의 봄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김기협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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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시어머니께서 갑작스런 마비 증세를 보이셨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를 해보니 뇌졸중이라는 진단이 나왔는데요. 빨리 조치를 취한 덕분에 심한 후유증은 남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 나이가 그런 시기인가요. 찬바람이 불면서부터 지인들에게서 슬픈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습니다. 어른이 돌아가시고 중풍으로 쓰러지고 지병으로 고생하신다는 얘길 자주 듣습니다. 그래선지 언제부턴가는 만나면 자연스레 이런 얘기부터 나옵니다. “요즘은 어떠셔?” “평안하신가?” “차도는 있고?” 어르신들의 연세가 연세인지라 자리보전하다가 하루아침에 쾌차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잘 알지요. 하지만 밤새 안녕이라고 그간의 안부를 건네게 되더군요. 어찌보면 그게 또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간의 예의이기도 합니다만...




노인의 미소가 눈길을 끈 책이었습니다. <아흔개의 봄>은. 사실 그동안 전 주름진 얼굴에선 쇠잔함과 처연함, 깊은 회한이 배어나온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아니었어요. 아무런 장신구도 없는, 그것도 흑백으로 된 사진이지만 표정이나 분위기에서 “참 말갛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이쯤 되니 궁금해지더군요. 어떤 사연일까.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란 부제를 보니 누군가의 간병일기 같은데 이 분은 어떤 병을 앓고 계실까...




책은 역사학자인 저자가 2008년 11월 26일부터 2010년 11월 22일까지 2년간의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적은 글입니다. 늦게 절 살림에 드셨던 저자의 어머니가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고 맙니다. 크게 위급한 병은 아니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무엇보다 기억력 감퇴가 큰 문제였다는군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저자는 어머니를 걱정하고 소식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노모의 근황을 알려주고자 글을 쓰게 됩니다. 이것이 이 책의 출발이었습니다.




하지만 뭐든 글로 쓰기 위해선 그 대상에 대해 단편적인 것만 알아선 불가능하지요. 대상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매순간의 변화를 포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저자에게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글의 성격이 소설이든 논문이든 보고서든 다른 무엇이든 말입니다.




저자에게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말썽쟁이, 사고도 제일 많이 친 그야말로 불효자였던 저자가 병든 노모의 간병일기를 쓰려고 마음먹는 순간 저자와 노모의 관계는 달라졌습니다. 아내가 있는 남자와 결혼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 미워했던 저자는 예전과 다른 시선으로 노모를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미움을 조금씩 덜어내고 그 자리를 사랑으로 메워가면서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게 됩니다. 비관적이고 염세적이라 여겼던 노모가 알고보니 누구보다 낙천적이고 밝은 사람이란 걸 말이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자는 서서히 자신의 마음속 벽을 허물어냅니다. 무심코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예전의 저자가 아니었습니다. 아흔 번의 봄을 맞이한 노모의 “뭐 해줄 거야?”는 말에 선뜻 “업어드릴게요.”라고 대답하고 ‘똥배’를 ‘효자배’라며 능청을 떨고 예순이 넘은 나이에 노모의 이마에 뽀뽀를 합니다.




솔직히 처음엔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역사학자였던 아버지와 국어학자이자 대학교수였던 어머니를 둔, 역사학자인 저자의 글. 그것도 전문서적이 아닌 어머니의 간병기라고 하니 왠지 귀가 솔깃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학자집안, 이들의 일상은 얼마나 특별할까, 나와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는데요. 저자가 성장할 당시의 상황, 시대적인 아픔이 다르긴 하지만 그들도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부당함에 상처받고 아파했으며 가족,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갈등하는 나날을 보냈다는 것을...




저자는 말합니다. 자신의 ‘엄마 찾기’는 화해의 과정이었다고. 노모와의 화해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자기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었다고. 뒤늦게 꽃이 핀 저자의 노모에 대한 사랑과 화해를 보면서 어머니와 아들, 가족 간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년간 적은 글은 어머니의 ‘인생강의’를 받아쓴 노트인 셈이다. 이제 노트 필기는 접어놓고, 어머니 얼굴만 기분 좋게 쳐다보며 지내겠다. 언젠가 다음 노트 필기를 시작하게 되겠지만, 서두르지 않겠다. -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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