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뻬 씨의 우정 여행 - 파리의 정신과 의사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이은정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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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클로르. 정신과 의사인 그는 자신의 이름보다 꾸뻬 씨라는 책 속 주인공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전작인 <꾸뻬 씨의 행복여행>이 법정 스님께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읽어보라며 추천하신 책이어서 언제든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차에 꾸뻬 씨가 새로운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엔 우정이 주제란다. 꾸뻬 씨를 처음 만나지만 그의 여행에 동행하고 싶다. ‘이런 게 바로 인연 아니겠어요?’ 슬며시 말을 건네면서.




파리의 정신과 의사인 꾸뻬 씨. 그는 여리고 우울하면서도 불안에 떠는, 내면에 깊은 상처를 받은 환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상담하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한 여인으로 인해 그의 하루는 ‘특별한 하루’가 되고 만다. 자신을 인터폴의 바라문디 경위로 소개한 그녀는 꾸뻬 씨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꾸뻬 씨의 오랜 친구인 에두아르가 엄청난 돈을 갖고 튀어버렸다는 것이다. 꾸뻬 씨는 순간 당황하면서도 고민에 빠진다. 에두아르가 평소에도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긴 했지만 거액의 돈을 훔치는 일은 하지 않는 ‘언제나 엄격했고 도덕심을 가진’ 사람이란 것. 그러면서도 동시에 에두아르에게 무언가 말 못할 일이 생겼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꾸뻬 씨는 에두아르가 자신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예전에 무심코 보고 넘겼던 무언의 메시지를 찾는다. ‘내 앞에 타오르던 불은 꺼졌다. 걱정하지 말게나, 친구. 그들의 말은 듣지 마. 날 기다려줘.’




걱정하지 말게나, 친구. 그들의 말은 듣지 마. 날 기다려줘. 에두아르는 이렇게 아무런 일도 아닌 듯 했지만 꾸뻬 씨는 그렇지 못했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도와주러 가봐야 하나? 그럼 가족들은 어쩌지? 내가 떠나면 가족들은 걱정할텐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꾸뻬 씨에게 아내 클라라가 말했다. “그럼, 가봐야지. 언제 떠날 거야?”




돈 벌러 먼 길 떠난 엄마(혹은 가족)도 아니고 의문에 싸인 말을 남긴 채 모습을 감춘 사랑하는 연인도 아니며 위험천만한 사지에 홀로 남은 병사도 아니었다. 그저 오랜 친구, 그가 현재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어서, 어쩌면 위험한 사건에 휘말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꾸뻬 씨는 여행을 떠났다. 우정을 찾아 머나먼 길, 아시아로.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나라면 친구에게서 소식이 끊겼다고 그를 찾아나설까? 글쎄...그가 얼마나 절친한 사이였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아마도 찾아나서진 않을 거야.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잖아. 그렇담 내 친구들은 어떨까? 내가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면 기꺼이 날 찾으러 와줄까? 과연 누가?




책에서 꾸뻬 씨는 환자들과의 상담이나 일상에서 혹은 여행을 하다가 우정에 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로 남겨놓는다. ‘우정은...’ 혹은 ‘친구란...’으로 적힌 문구를 보면서 나도 우정이란 뭘까 생각해보게 됐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연락이 뜸해진 친구들을 떠올렸다. 꾸뻬 씨는 친구를 가리켜 ‘내가 불행할 때 함께 슬퍼하고 내가 행복할 때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녀)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연락하더라도 그들은 날 변함없이 친구라고 생각할까? 나와 함께 한 시간이 즐겁다 여길까?




제목이 ‘우정여행’이기에 책에는 필연적으로 우정과 친구에 관한 단상들이 이어진다. 다양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이야기와 사건은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했지만 때로는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조금 아쉬웠다.




책을 읽을 때가 마침 기존 학년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무렵이어서 자연히 큰아이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활달하면서도 내성적인, 수줍음이 많은 큰아이는 새학기 때마다 몸살을 앓곤 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걱정이 됐다. 우정이 무언지 그 깊은 무언가를 깨닫기엔 아직 어린 나이. 하지만 이건 어렴풋이나마 깨닫지 않았을까. 친구란 만나면 즐겁고 자신의 결점도 인정하고 좋아해주는 사람이란 것을. 큰 아이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나타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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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 존 가트맨.최성애 박사의
존 가트맨.최성애.조벽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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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엣!” “이제 좀 그만해라” “잠깐 좀 기다려봐!” 내가 하루에 이 말을 몇 번 하는지 세어보면 얼마나 될까. 한 달 동안은? 그럼 일 년은? 사춘기에 접어드는 건지 무조건 반항하고 발을 굴리며 짜증을 내는 큰아이, 위험한 장난은 도맡아놓고 일을 저지르는 작은 아이. 이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난 갈수록 목소리만 큰 엄마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분명 그 누구보다 사랑하건만 아이들을 돌보고 건사하는 게 너무나 힘들 뿐. “누가 제발 나 좀 살려줘”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을 뿐이다.




사실 난 자신이 있었다. 정리정돈을 하거나 멋들어진 음식을 장만하는 데는 서툴지만 아이들 보는 건 달랐다. 많은 형제들 속에서 자랐고 내가 돌본 조카도 여덟 명이나 되기에 문제없을 거라 여겼다. 완벽한 엄마는 못 되지만 최고의 엄마는 될 수 있을거라 자신했는데. 이럴수가.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탄판이었다. 완전히 나만의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큰 아이 때는 나았다. 아이는 여러모로 날 힘겹게 했지만 그래도 잘 다스리고 참아내며 엄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뒤늦게 작은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이번엔 더욱 잘할 수 있을거라 안도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달랐다. 기질이나 성격, 취향이 큰아이와 정반대였다. 고집이 세다는 최악(?)의 조건만이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유순하고 멀쩡하던 큰아이가 동생이 태어나면서 갑자기 매사에 밉살스런 행동을 일삼았다. 난 자연히 큰 아이를 나무랐다. “너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데, 형인 니가 그런 행동을 하면 되겠니?” 큰아이는 소리쳤다. “나도 아직 아기야!”




대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걸까. 육아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이들의 심리와 마음,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서 아동심리학 책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책을 볼 때는 무릎을 치다가도 막상 아이들과 지내면서 적용해보려고 하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내 아이를 위한 감정 코칭>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저자의 명단에 있는 ‘존 가트맨’이란 이름 때문이었다. 몇 년 전 그의 책을 읽고 어둔 길이 밝아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이 책 역시 기대가 됐다.




책은 존 가트맨의 ‘감정코치’법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감정코칭의 핵심은 다섯가지다. 첫째, 아이의 소소한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 둘째 아이의 감정표현을 친밀감과 감정코칭의 기회로 볼 것. 셋째, 아이의 감정에 이해심을 가지고 귀 기울일 것. 넷째, 아이가 자심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볼 것. 다섯째,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한마디로 아이의 행동과 감정표현에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한 한계를 지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코칭을 통해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자기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자기 컨트롤 능력이 뛰어나고 금세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학습적인 면에서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책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이의 내면에 쌓인 분노와 상처, 슬픔을 감싸주기 위해선 우선 내 안에 쌓인 분노,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난 여태까지 이 말을 오해한 것 같다. 아이는 곧 나 자신이라고. 그렇기에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아이의 감정이 어떤지 들여다보기에 앞서) 그 자리에서 고쳐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에게 잦은 억압과 규제를 받은 아이는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성장하고 끝내는 어긋난 행동을 보인다고 하니 실로 충격적이다.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를 안은 여인과 여인의 손에 안겨 편안하게 잠든 어린 아이.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인의 세 시기> 중 일부가 그려진 <내 아이를 위한 감정 코칭>. 사실 본문의 바탕이 된 ‘감정코칭’은 존 가트맨의 전작에서 이미 다뤄진 내용이라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책에는 그동안 가정과 학교에서 수많은 부모와 선생님들이 경험한 사례들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은 부모와 성인이 된 모든 이에게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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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애리얼리, 경제 심리학 - 경제는 감정으로 움직인다
댄 애리얼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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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렵다. 금방 이해된 것 같아도 뒤돌아서면 다시 새하얘진다. 어떤 상황에 분명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대체 내 뇌엔 주름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푸념과 한탄을 늘어놓지만 그런다고 결코 나아지지는 않는다.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이거야 원, 지겹지도 않나?




그러다 작년엔가? 내 맘에 쏙 드는 경제학 책을 만났다. 저자는 우리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그 사람의 심리가 숨어있는 것처럼 경제도 마찬가지여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관없이 인간의 모든 행동에도 경제적인 이론이 숨어있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은 생각만큼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지 못하고 매사를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한다고 꼬집었다.




이 책 <경제심리학>의 저자 댄 애리얼리도 유사한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 언제든 분명 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꾸만자꾸만 뒤로 미루는 것, 장기적인 좋은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그에 필요한 단기적인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 등 우리 인간이 평소에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지 실험을 통해 알아본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면을 나쁘게만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그런 면들을 보고 그 이면에 숨은 심리를 파헤친다.




책은 크게 ‘1부 직장에서 벌어지는 인간 행동에 관한 진실’, ‘2부 가정에서 벌어지는 인간 행동에 관한 진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직장과 가정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인간의 행동에 대해 11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1장 ‘높은 인센티브의 함정’에서 저자는 거액의 보너스가 어떻게 생산성을 떨어뜨리는지 생쥐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데 실험 초반, 전기충격의 정도와 학습효과가 비례하던 것과 달리 전기충격의 강도가 매우 높아지자 생쥐들의 학습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근로자의 보너스(임금)가 동기부여, 성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인간에게 실험(몇 가지 게임)했을 때 놀랍게도 생쥐와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 즉,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수단으로서의 돈은 ‘양날의 칼’이란 걸 얻게 된다. 또 6장 ‘적응과 행복의 비밀’에서는 우리 몸이 쾌락이나 고통에 대해 금세 적응하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끊임없이 원하게 되어 있다면서 행복감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10장 ‘일시적인 감정의 후유증’에서 저자는 왜 우리 인간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지, 왜 충동적인 행동이 문제를 일으키는지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강의시간에 일어난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한창 예민한 십대 시절 전신화상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 이면에 숨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우리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이런 점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책은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줄 뿐 아니라 오류와 단점투성이인 우리 인간을 너그러이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본문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전처럼 ‘경제학’이란 용어에 움찔 놀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내게 경제학은 어렵다. 왠지 주눅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의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경제학은 어렵고 난해하다고 여기는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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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 푸르메 어록
김영두 엮음 / 푸르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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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란 책에서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연암의 진솔함을 엿볼 수 있었고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편지글을 볼 수 있었는데 올곧은 학자 정약용이 아닌 오랜 유배생활로 인해 외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이 더욱 인상적으로 남았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 이황 역시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이 학자여서 아들의 공부를 염려하고 독서에 힘쓰라는 글과 앞으로 나아갈 줄 모르면 언젠가는 퇴보하여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말거라는 일침을 가하는 글에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다시 퇴계의 글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퇴계어록]을 현대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놓은 책 <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이 그것이다. 책의 저자는 학봉 김성일로 퇴계 이황의 뛰어난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퇴계가 세상을 떠나자 다른 제자들과 함께 선생의 언행을 기록으로 남겼다고 하는데 그때 바탕이 된 글이 [퇴계선생언행록]이다.




책은 퇴계의 말씀과 행동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20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재편집해 놓았다. 제일 먼저 성리학의 핵심적인 개념인 이(理)와 기(氣)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세상 만물을 형성하는 바탕이나 힘이 ‘기’이며 기를 바탕으로 세상 만물이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이’라는 대목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여전히 헛갈렸다. 관리가 되었을 때도 벼슬길에 나아가는 도리보다 명분과 의리에 맞게 물러나는 도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과 독서, 책읽기에 관한 말씀도 인상적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책 속에 담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생각, 심성을 기르고 익힐 수 있어야 한다면서 낮에 읽은 것을 밤에 풀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서의 질보다 양에 집착했던 나의 책읽기에 일침을 가하는 말씀이었다. 이뿐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선물도 의리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따라 엄격히 구분하여 의리가 아닌 선물은 작은 물건도 받지 않으셨다 한다. 그리고 퇴계는 제자를 마치 친구처럼 대했는데 나이가 어리다하여 하대하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퇴계의 소탈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최근 제자를 폭행하는 등 물의를 일으킨 몇 명의 대학교수를 보면 퇴계 선생이 대체 어떤 말씀을 하실지...




퇴계의 주옥같은 말과 글을 만날 수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적은 글이 수록되어 있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그 적은 글에서도 퇴계 선생의 인간됨은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매사에 곧이곧대로, 때론 너무 완고하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곧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했다는 걸 알기에 더욱 존경스러웠다. 대다수의 고전이 그러하듯 옛 성현의 말은 커다란 감동을 불러오지는 않는다. 그저 조용하고도 낮은 음성으로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길을 일러줄 뿐이다.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보면서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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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 이색박물관 편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1
이용재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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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을 우려낸 멸치는 얼른 건져내 버린다. 제 소임을 다하고도 국물에 둥둥 떠다니는 멸치는 왠지 시체(?) 같아서 보기가 그렇다. 갑자기 웬 멸치에 시체 타령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박물관은 내게 국물을 우려낸 멸치와 같았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 그것들을 모아놓은 곳일 뿐이라고 여겼다. 이러니 박물관에 가더라도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건 당연지사. 그러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부터 달라졌다. 박물관의 강좌가 시작이었다. 한동안 담 쌓고 지냈던 우리의 역사와 유물에 대한 강의를 듣기 위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이 부지런히 박물관을 들락거리는 동안, 난 어느샌가 변해있었다. 박물관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밤만 되면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살아서 돌아다니는 영화처럼 어디선가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나의 박물관 사랑은 무르익었다.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이 그래서 더없이 반가웠다. ‘박물관을 통해 본 우리 문화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전국의 박물관을 지역에 따라 서울.경기.강원권, 충청권, 전라권, 경상권, 제주권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름만 대면 척! 알 수 있는 그런 박물관이 아니다. 쇳대박물관, 허준박물관, 실학박물관, 양구전쟁기념관, 술박물관, 고인돌 박물관, 곤충박물관, 자전거 박물관 등 그 이름도 낯선 이색박물관이다.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흥미를 갖는 대상에 따라 애써 찾는 수고로움을 거쳐야 하는 박물관이다. 하지만 박물관을 방문하는 목적이 확실하고 뚜렷하기에 그 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그야말로 금쪽같으리라.




책장을 넘기며 부지런히 체크를 했다. 여고 졸업 후 형부가 군인이어서 양구의 언니 집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곳이 일반시민보다 군인이 더 많다는 것, 2000년에 전쟁기념관이 들어섰다는 것, 낙동강 오리알이 무얼 뜻하는지 알게 됐다. 사천의 항공우주박물관에서는 우리의 항공우주산업의 발전상황과 더불어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공군 장교로서 우리 문화재를 지키지는 못할 망정, 해인사에 폭탄을 투하할 수는 없다. 차라리 죽여라.”며 항명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자동차를 좋아하는 두 아들을 둔 덕에 언젠가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제주의 세계자동차박물관. 기아의 ‘브리사’가 스페인어로 ‘산들바람’이란 뜻이란 것과 현대자동차의 ‘포니’란 이름이 탄생하게 된 과정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박물관은 ‘쇳대박물관’을 ‘솟대박물관’이라고 착각해버린 나의 어처구니없는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됐다. 우리의 자물쇠에 눈길을 주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모은 자물쇠가 자그마치 4천여 점. 그런 가운데 저자는 우리 것이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깊은 맛을 지녔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까? 저자처럼.




저자의 독특한 이력 덕분일까? 서술어가 생략된 문장은 경쾌한 리듬이 살아있다. 마치 무전기로 의사소통하듯 짧게 짧게 이어지는 저자는 말재간에 쿡쿡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때로 쾅!하고 가슴을 내리친다. 우리의 박물관은 모두 4백여 개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6천여 개에 이른다니. 충격적인 대목이었다. 역사와 문화를 알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조금씩 한걸음씩 거리를 좁혀가면서 즐기고 탐구하면서 얻어내야 할 지난한 여정이다. 큰아이 학교가 놀토일 때마다 어딜 가지 고민했는데, 이 책 덕분에 그런 고민을 덜었다.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를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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