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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비밀
틸만 뢰리히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어릴 때부터 책 읽고 그림 그리길 즐겼다. 거기에 또 하나를 보탠다면 미대 다니는 언니의 서양화가 화보집을 뒤적이는 거였다. 언니가 애지중지하는 화보집이라 혹시나 언니에게 들킬까봐 조금씩 몰래몰래 들여다보면서 만난, 미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고흐와 고갱, 세잔, 마네, 모네, 르노아르, 클림트...와 그들의 그림들. 어찌 보면 서로 닮은 듯하면서도 판이하게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그림들을 보며 시간가는 줄 모르던 때가 있었다. 때문에 서양화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화가는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그 계기가 됐던 인물이 바로 ‘카라바조’였다.
최근 출간된 <카라바조의 비밀>은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인 동시에 악마적 천재, 회화의 반 그리스도라 불리는 카라바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서른아홉이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카라바조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현대에 이르러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 카라바조의 작품을 재조명하고 있다.
비바람이 몹시도 불던 어느 날 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북쪽의 작은 항구 도시의 산로렌초 성당에 의문의 침입자가 나타난다. 예배당에 들어온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자마자 재빨리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날, 성당 경비를 맡은 자매는 끔찍한 충격에 휩싸인다. 자신들이 지키고 있던 보물이 사라진 것이다. 바로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아기 예수의 탄생]이.
포도주 상점을 운영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미켈레(카라바조)는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어느날 지도를 그리던 외조부는 미켈레가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을 보이자 그를 밀라노의 시몬 페테르차노라는 화가에게 보내 그림공부를 하게 한다. 그 곳에서 미켈레는 도제 프란체스코로부터 집요한 성희롱과 협박을 받는 등 괴롭힘을 당하면서 속으로 다짐하게 된다. 언제가 자신만의 그림, 인물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포작해서 캔버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하는 그림을 그리겠노라고. 얼마 후 4년간의 미술 수업을 마친 미켈레는 자신과 함께 성당의 그림을 그리자는 페테르차노의 제의를 거절하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로마로 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로마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힘겨웠다. 오로지 생활을 위해 작은 목재 패널에 성자 그림을 그려야 했고 주세페 체사리 다르피노를 만나 콘타렐리 예배당의 프레스코를 그리는데 보조가 되어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미켈레는 어느 곳에서도 안주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미켈레의 재능에 주목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델 몬테 추기경이었다. 미켈레는 델 몬테 추기경을 만나면서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날개를 달게 되는데...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품격을 갖춘 환상적인 그림. 미켈레의 그림은 당시 여느 화가의 그림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성스러운 신의 모습을 주로 그리던 당시의 화풍과는 달리 창녀나 집시, 부랑자들을 모델로 한데다가 종교화를 그릴 때도 신의 근엄한 모습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시키는 그림을 그렸다. 때문에 그의 주변에게는 늘 이런저런 잡음이 그치지 않았다. 걸핏하면 감옥을 들락거렸고 결국 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도망치는 신세에 이르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가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2010년 7월 18일,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사망 4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소설 <카라바조의 비밀>. 천재적 재능과 광기를 동시에 갖고 있었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카라바조에 대해 이제라도 알게 되어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정말 의문이 든다. 카라바조의 [아기 예수의 탄생]. 정말 어딘가에 아직 존재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