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2 - 건축가 김원 편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2
이용재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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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정말 중요하지요? 그런데 처음 만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호감, 비호감인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겨우 0.3초...라는 건 아세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결정되어 버리는데요. 책도 비슷한 것 같아요. 표지를 보고 읽을까 말까? 갈등하다가 책장을 넘겨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 몇 장 넘기지 않아서 단박에 빠져버리는, 그런 글이 있어요. ‘아, 좋은데?’ ‘매력적인 글이네.’ 그런 글을 만나면 전 다음이 궁금해져서 책 속으로 점점 파고듭니다. 밀린 빨래도 제쳐두고, 주변에 쌓인 뽀얀 먼지는 질끈 눈을 감고, 끼니도 거르고. 그러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느껴지는 쾌감, 후련함, 개운함. 정말 멋지거든요.




건축가인지, 택시기사인지, 작가인지 정체를 도통 알 수 없는 이용재.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어요.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이색박물관 편>의 책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입에선 감탄사가 흘러나왔어요. 오호~. 독특한데? 무례한 듯 시원하고 짧고 경쾌한 문장은 제게 왠지 큰 매력으로 다가왔거든요. 그래서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을 때,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그렇지! 바로 선택!




전작에서 [이색박물관]를 이야기한 저자는 이번에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김원 실록’이란 부제가 붙은 걸 보면 말입니다. ‘실록’. 이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실록(實錄)’이라면 조선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제왕들이 그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저자는 거기에 ‘건축가 김원’을 붙였습니다. 왜냐면 그는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니까. 왠지 억지가 아닌가 싶다가도 궁금해집니다. 대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길래 ‘대표 건축가’이고 ‘실록’을 꾸밀 생각을 다했을까!




책은 김원이라는 건축가의 작품, 건축물들을 크게 ‘문화시설’ ‘교육시설’ ‘주거.업무시설’ ‘종교시설’ ‘못다 한 김원이야기, 그리고 김수근...’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각각의 건축물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건축물에 관련된 역사를 비롯해서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설계 과정과 건축과정,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등을 저자 특유의 문장, 서술어가 생략되어 경쾌한  리듬이 살아난 글로 툭툭 던지듯 건네고 있는데요.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의 작품 건축물에 대한 책이니만큼 사진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제일 처음 소개된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에서는 한 포털 사이트 ‘지식인의 서재’의 조정래편에서 작가 조정래는 ‘누구든 태백산맥을 필사하면 태백산맥 문학관에 전시해주겠다’고 해서 ‘그럼 나도 태백산맥 필사를?’ 했던 순간이 생각났습니다. 또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독립기념관]이 어떤 과정으로 세워졌는지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됐어요. 자칫하면 삼청교육대를 가게 됐으니 당시 도지사들, 얼마나 조마조마 했을까요? 안봐도 비디옵니다. 그것도 4D! 큭큭. 아, 제가 사는 곳이어설까요? 가톨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몰운대 성당]는 왠지 오래 눈길이 머물더군요. 몰운대란 이름에 얽힌 사연도 그렇고 철근이 없어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한 푼 두 푼 모아 ‘아트’가 나왔다는 대목도 그렇고.




사실, 건축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습니다. 제게 있어 건축은 아파트나 상가 분양을 알리는 전단지 속의 설계 도면정도? 저자 덕분에 제 눈을 덮은 막이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입니다. 김원이라는 건축가의 건축 인생 속에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두에 저자는 털어놓습니다. 이 책의 탄생 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신은 김원 선생의 제자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데 거의 반강제로 글을 쓰게 됐다고. 그것도 10년간이나. 다만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인문학적 건축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저자는 얘기하지만 건축에 문외한인 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건축이란 게 그저 건물을 짓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구요. 가장 중요한 궁금증도 풀었습니다. 표지사진의 저건 대체 뭔가...했거든요. 너무 소박한 의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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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서 마음을 읽다 - 무너지고 지친 나를 위로하는 영화 심리학
선안남 지음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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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이었어요. 제가 참가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란 책을 읽고 토론을 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를 바탕으로 ‘인권’에 대해 풀어놓은 책을 읽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는데요. 당시의 구체적인 토론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거였어요. ‘예전에 영화 볼 때는 몰랐는데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보니 확실하게 드러나더라.’ ‘진짜 우리 드라마나 영화에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너무 자주 나와.’ ‘평소 장애인들을 대하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어. 그들은 특별한 배려가 아닌 평범한 시선을 원해.’....이런 얘기들을 통해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과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지, 새삼 깨닫게 됐구요. 앞으로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불편함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그저 재미로만 보던 제겐 의미있는 책읽기였고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우리의 내면과 심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했는데요. 마침 제가 원하던 책이 나왔더군요. 바로 ‘무뎌지고 지친 나를 위로하는 영화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단 <스크린에서 마음을 읽다>입니다.




상담심리학을 공부한 저자 선안남은 억압받고 상처입은 마음을 풀어주고 다독여주는 글을 발표했는데요. 이번 책에서는 영화 속의 장면과 메시지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심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책은 주제에 따라 크게 ‘상처와 치유’ ‘내면과 변화’ ‘관계와 소통’ ‘사랑과 욕망’,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각각의 장마다 그에 해당하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등장인물을 통해 꼭 짚어봐야 할 인간의 심리에 대해 알려줍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제일 먼저 소개되고 있는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천재적 두뇌를 가진 주인공인 윌이 숀 교수를 만나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데요. 저자는 여기서 ‘방어기제’에 대해 얘기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막, ‘방어와 공격의 갑옷’을 두르고 있는데요. 누구든지 자신에게 다가와 따스하게 대해주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배려해줄 때 그 방어막은 사라질 수 있다면서 상처받은 영혼과 내면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짚어줍니다. 사실, 전 예전에 [굿 윌 헌팅]에서 숀이 윌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몇 번이나 반복하는 장면을 보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뭐야? 지금 장난하냐?...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건네는 숀 교수의 다정한 눈빛과 말에 윌의 반응이 달라지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고 아, 뭔가 변화가 일어났구나...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답니다. 그게 바로 윌의 방어막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니.




인간의 마음과 내면, 심리가 복잡하다는 증거겠지요? 책에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외상 후에 스트레스 장애, 망상, 정체성의 혼동과 위기, 자아개념....등 책을 읽다보면 간혹 아, 그때 나의 심리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는 걸 느끼곤 했답니다.




영화는 ‘재밌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 불과 얼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장면, 둥장인물들의 짧은 대사에서, 소도구나  배경에서 우리의 심리를 바라보고 치유할 수 있다니 앞으로는 영화 한 편 고를 때도 왠지 깊은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결코 싫지 않은, 그런 고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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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유전자
톰 녹스 지음, 이유정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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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일 거예요. 톰 녹스를 처음 만났습니다. 터키의 쿠르드 지역에서 발견된 고고학 유적지 괴베클리 테페에서 인류의 기원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것들이 드러나면서 끔찍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창세기 비밀>. 고대인의 인신공희 풍습을 비롯해, 헬파이어 클럽, 검은책...등 소설 속 이야기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책을 보는 중간 ‘괴베클리 테페’를 검색해보기도 했던 책이었습니다. ‘톰 녹스’란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고 그의 다음 작품 <카인의 유전자>를 기다리게 했는데요.




얼마전 반가운 소식이 들리더군요. 바로 톰 녹스의 <카인의 유전자>가 출간되었다는 겁니다. 얼마나 기다리던 건데, 놓칠 수야 있나요? 이런 책은 따끈한 기운이 가시기 전에 얼른 봐야 한다는 게 저의 지론이라면 지론입니다. ‘젊은 남자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어떻게 잘랐는지 설명했다’로 소설은 시작하는데요. 이 짧은 문장을 보면서 언뜻 떠오른 생각, ‘오~, 충격적인 시작! 예사롭지 않아. 전작을 봤을 때 이번에도 분명 뭔가 큰 건을 하나 터뜨릴 것 같은걸?’이었습니다.




소설은 두 명의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프리랜서 기자인 사이먼은 마약중독자의 모임에 나가서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거를 털어놓습니다. 똑똑하고 전도유망하던 형이 언제부턴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어머니를 칼로 찌르고 맙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목숨을 구했지만 그의 가족은 그 날을 기점으로 해체의 위기를 맞고 말았다는 건데요. 피를 나눈 형제가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건 그의 내면에 자신에게도 정신질환의 유전자가 흐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그는 샌더슨 경감에게서 해괴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살해방법이 다름아닌 ‘매듭’. ‘매듭살인’이란 건데요. 순간 매듭으로 어떻게 살인할 수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잠시후 그게 어떤 걸 뜻하는지 알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 바로 데이비드입니다.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 그는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를 찾아오는데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른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의 할아버지도 데이비드에게 뭔가를 털어놓으려 합니다. 그의 부모님에게 일어난 사고를 비롯해 그의 출생에 관한 의문, 그리고 한 장의 낡은 지도. 할아버지는 그에게 말합니다. 스페인의 빌바오로 가라고. 그 곳에서 호세 가로비요를 찾으라고. 뭔가 의문스러운,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할아버지는 다음날 돌아가시는데요. 이후 데이비드는 할아버지의 변호사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듣습니다. 할아버지가 그에게 현금 200만 달러를 유산으로 남겼다고.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건 바로 데이비드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레사카 마을로 가서 호세 가로비요를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200만 달러! 이얏호!하고 함성을 질러야 할 대목이지만 데이비드는 의문을 갖습니다. 그토록 가난하게 살던 할아버지에게 엄청난 돈이 있었다고? 이해할 수 없어. 분명 뭔가가 있다고 여긴 데이비드는 길을 떠납니다. 스페인의 빌바오로.




역사와 고고학,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현장감 있는 장면 묘사와 스릴 넘치는 이야기, 역사와 종교의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추악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카인의 유전자>는 저자 톰 녹스의 저력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었습니다. 2차 대전이 일어나게 된 원인인 인간 유전자의 비밀, 나치의 우생학 연구, 홀로코스트, 피레네 산맥의 버림받은 민족 카고...등 저자가 펼쳐놓은 이야기에 빠져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툼한 책장이 숨 가쁘게 넘어갈 정도였으니까요. 거기다 실존하는 인물과 장소가 등장해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부터가 저자의 상상일까...궁금했습니다. 방대한 자료조사와 역사를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톰 녹스.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볼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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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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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학 졸업 후 직장 때문에 3년 조금 넘게 서울에서 지냈습니다. 눈 뜨고도 코 베어간다는 서울에 나 혼자 가겠노라 했다면 부모님께서 반대하셨겠지만 다행히 언니가 서울에 있었어요. 부모님과 떨어져 언니의 자취방에 얹혀살게 된 첫 날, 제일 먼저 한 일은...서울시의 전체와 중심가 부분을 상세하게 그려놓은 지도와 지하철 정액권을 구입하는 거였습니다. 그런 다음 언니는 절 데리고 대학로에 갔습니다. 거리의 분위기며 말투가 제가 살던 곳과 어딘지 모르게 낯설었지만 그곳을 가득 메운 젊음과 활기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이후로 우리 자매는 경복궁을 비롯해 연인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고 졸린 눈을 부비며 새벽시장을 찾기도 했는데요. 그런 서울 나들이도 언니가 유학을 떠나면서 중단되고 말아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선지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가 출간되었을 때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 들었어요. 오래전 제가 서울에 머물 때와 지금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언니와 함께 다녔던 곳을 스케치 그림으로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느낌이 어떻게 다를까. 정말 가보고 싶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던 그 곳도 책에 있을까...?




‘한반도 중앙부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수도’. ‘정치·경제·산업·사회·문화·교통의 중심지’. ‘아시아경기대회, 서울올림픽경기대회가 개최된 국제적인 대도시’. ‘경제발전과 함께 도시화가 진행되어 거대도시(Megalopolis)가 되고 있다’. 인터넷으로 ‘서울’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문구들입니다. 한마디로 서울은 모든 분야에  걸쳐 ‘최첨단으로 발달한 거대도시’라는 의미인데요. 저자는 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합니다. 서울의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보다 서울의 역사를 간직한 곳, 때론 아픔과 슬픔마저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 그곳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책은 서울, 하면 떠오르는 곳 ‘광화문’을 시작으로 ‘경복궁’ ‘명동’, ‘수진궁’ ‘효자동’ ‘광화문 광장’ ‘종로’ ‘청계천’ ‘우정총국’ ‘정동’ ‘혜화동’ ‘숭례문’ ‘경교장’ ‘딜쿠샤’ ‘인사동’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 네 곳의 서울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각각의 장소마다 역사와 유래 같은 것들을 스케치 그림과 함께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경복궁에서 각 건물의 이름과 목적, 의미를 설명한 다음엔 경복궁 내부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마치 스냅사진 찍는 것처럼 부분 부분의 그림을 그린 다음 설명글을 덧붙였는데요. 그 설명글이 정말 절묘합니다. 경복궁 근정전을 수호하는 서수들의 그림에 ‘이런 서수들의 피규어는 왜 나오지 않는 걸까. 모두 다 수집할 용의가 있는데 말이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복원된 광화문을 보면서는 예전의 광화문이 자꾸 떠올라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사는 곳이 지방이어서 서울에 대해 몰랐던 것들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 중 하나가 우리나라, 그것도 서울에 있는데 개설되어 폐쇄까지, 실제 업무는 불과 20여 일이 안 되는 가장 짧은 기간이라는 '우정총국'을 비롯해서 국내 모빌딩의 디자인이 사실은 일본에 있는 건물의 복사판인데, 그런 건물이 전국에 깔려있다는 것, 1989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철거된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청계천에 설치되어 있으며 광복 이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기 전까지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경교장'이 그 보존상태에 있어서 너무 초라하다는 대목은 무척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미처 수록하지 못한 그림들을 책의 후반부에 모아서 ‘미처 다 담지 못한 풍경들’이라고 담아놓았는데요. 북촌의 어느 골목길에 떨어진 꽃잎이며 고궁의 갖가지 아름드리 문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또 제일 마지막에 ‘바퀴, 바퀴, 바퀴’는 탈것(자동차)홀릭인 작은 아이가 어찌나 좋아하던지...버스며 트럭, 굴삭기들을 자꾸만 가위로 오려달라고 해서 말리느라 진땀을 뺐답니다.




제가 사는 곳의 박물관에서는 해마다 ‘문화제 그리기 대회’를 엽니다. 탑이든, 도자기든, 어떤 것이든 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 중에서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택해서 그 앞에 자리를 펴고(작은 공부상을 들고 오는 사람도 있어요)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리는데요. 중요한 것은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하나의 문화재를 그렇게 오랫동안 집중해서 바라봤다는 것. 그런 자세, 과정들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그리고 바로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대하는 마음도 달라지겠지요. 오랫동안 바라본 대상일수록 사랑도 싹트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그러고보면 서울의 여러 곳을 수많은 그림으로 남기는 동안 저자는 분명 서울과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지 호사스런 시간이었습니다. 미처 가보지 못했던, 그렇게나 가보고 싶었던 서울을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 그리 흔치 않거든요. 다만 본문의 글자가 너무 작아서 보기가 좀 어려웠어요. 편집상 글의 크기를 조절할 수 없다면 책의 판형을 조금 크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 외엔...즐거운 책읽기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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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풍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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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읽지 못한 작품들이 있는데요. 그 대표주자가 바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입니다. 대하소설이다 보니 분량이 총 32권으로 너무 방대하다는 것, 혹시나 어렵진 않을까 싶어서 매번 시도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태백산맥>에서 시작해 <아리랑>, <한강>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그 거대하고 유구한 이야기를 온전히 몰입하고 가슴에 담아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요. 얼마전부터 조정래의 작품들이 속속 개정판으로 출간되면서 <불놀이>를 시작으로 <대장경>을 만났고 이번엔 <상실의 풍경>까지, 새로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어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불놀이>와 <대장경>이 장편소설이었는데 비해 <상실의 풍경>은 조정래의 데뷔작인 [누명]을 비롯해 총 10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발표 시기는 1970년부터 1973년까지로 조정래의 작품 중에서도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왜냐면 1970년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새벽종이 울렸네~”란 노래로 대표되는 새마을운동이지요. 농촌의 현대화를 시작으로 우리나라를 대대적으로 개발하자는 운동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의 어둠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하면서 권력이나 불합리, 폭력에 저항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마악 싹트고 있을 때였는데요. 바로 그런 때에 청년 조정래가 있었습니다. 불의를 보면 주먹을 불끈 쥐고 부당한 폭력 앞에 울분을 토하는 뜨거움을 간직한 청년 조정래는 작품을 통해 당시의 사회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삶이 어떠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투사로 복무하는 태준은 신병동기인 서점동이 어느 날 발에 심한 부상을 입자 그의 치료를 돕기 위해 약품을 챙겨오다가 물건을 절취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만다는 [누명], 아버지가 여수사건에 가담했다는 것 때문에 가난에 허덕이다가 끝내 교도소에 갇히고 마는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북에 납치된 줄 알았던 아버지가 실제로는 자진 월북했다는 것 때문에 학군단 후보생에서 탈락하고 마는 [어떤 전설], 초등학교의 반장선거를 통해 당시의 비틀린 정치행태를 꼬집는 [이런 식(式)이더이다], 6.25와 베트남전이란 전쟁으로 인해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는 비극을 겪는 어미의 한맺힌 삶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청산댁], 도시의 바쁜 업무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이 신경과민으로 인한 신경쇠약이란 병을 얻어 17년 만에 고향을 찾았지만 고향 역시 그동안 많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상실감만 안고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는 표제작 [상실의 풍경] 등 각각의 단편은 모두 당시의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을 다시 읽으며 저자는 20년 후에는 우리가 통일을 이루게 될거라 기대했는데 그 두 곱, 40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건데요. 처음 그 대목을 읽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글이 10개의 단편을 모두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순간 커다란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40여 년 전 청년 조정래가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썼을 거라는 것이 떠올라서 그랬고, 지금의 우리 모습이 40여  년 전의 모습과 그리 달라지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모쪼록 20년, 아니 40년 후에는 이런 아픔, 억울함, 부당함, 커다란 상실감을 다시 겪지 않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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