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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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와 안중근이 서로에게 총을 들이댈 뻔하다’

며칠전 인터넷으로 이런 기사를 봤다.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여서 그 내막을 알아보니 이러했다. 김구와 안중근이 애국운동가라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신분은 달랐다. 서민출신이었던 김구가 구한말 서민중심의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다면 양반가문의 아들이었던 안중근은 동학군을 진압하는 민병대활동을 했다. 즉, 친서민 대 반서민으로 맞서게 된 것. 흥미로운 건 동학운동 당시 이 두 사람이 같은 현장에 있었다는 점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대치하다가 그대로 격돌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구와 안중근 부대의 정면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이 김구에게 서로의 부대만큼은 싸우지 말자는 비밀협정을 제시했다는데, 그때 만약 그들간에 비밀협정이 없었다면, 그대로 격돌했다면 우리 역사는 어땠을까? 어쩌면 지금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역사를 좋아하면서도 구한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극히 적다. (내 기억력의 한계인지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수업시간에도 우리의 근대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세한 언급이 없었던 것 같다. 몇 백 년 전도 아니고 시기적으로 지금의 우리와 가장 가까운 때인데 왜일까 궁금했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도서관에서 부산의 역사를 답사와 함께 돌아보는 강좌에 참여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반만년이라는 기나긴 역사에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36년간의 일제식민 통치하에 있으면서 우리의 많은 것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을 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우리 역사의 일부분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국의 화가의 눈에 비친 [서울 풍경]을 통해 막  근대에 접어든 모습과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보여주면서 저자는 당시 우리의 궁에 왕조차 머물 수 없어서 빈 궁궐로 남아야했던 경복궁의 아픈 과거를 전해준다. 또한 우리의 근대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대해서 당시의 의거를 신문은 어떻게 보도했는지 알려준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그림으로 수록됐던 당시의 의거를 이탈리아 신문의 삽화와 일본 신문의 흑백도판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독립 전에는 시신을 옮기지 마라. 대한독립의 소리가 들려오면 천국에서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던 안중근 의사가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확한 무덤자리를 찾을 수 없어 유해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한강과 대동강을 오가며 대규모의 운송을 담당했던 황포돛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노을 속의 황포돛대]는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절경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광복 후 서울의 모습을 담은 그림 [서울 풍경]이었다. 휴버트 보스의 [서울 풍경(1898)]에는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던 광화문이 박득순의 [서울 풍경(1949)]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유는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광화문이 가린다며 옮겨버렸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놀라우면서도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고 당시 일제의 탄압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는 모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모국의 그림을 모으다 어느새 한국의 근대에 관한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정 보완해서 출간되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려 완성된 책이 바로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다. 사실 그림이 그린 이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도 있고 관심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때문에 개항해서부터 해방 후까지 당시 우리의 역사가 어떠했는지 그림으로 모든 것을 알아내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 우리의 과거이기에 그 간극을 메우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일 것이다. 오늘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 의해 그림이나 사진으로 남아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당연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무겁고 한편으론 아찔하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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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본능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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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석>이 출간된 때가 생각난다. 고전적이면서도 음울한 느낌을 주는 표지, 추리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저자가 법률학자인 점, 소설의 내용이 프로이트와 융의 학설을 바탕으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풀어간다고  해서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다. 오래전부터 프로이트에 관심이 있었지만 왠지 어렵게만 여겼던지라 이 책을 구입했지만 아직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차에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보는 순간 숨이 멎을 만큼 충격적인 장면을 담은 표지.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분위기. 혹시? 하고 찾아봤더니 역시 저자가 제드 러벤펠드였다. <죽음본능>이라는 제목이 프로이트의 학설인 ‘죽음본능’을 바탕으로 했다는 소개글을 보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번에 어떤 이야기일까.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1920년 9월 16일. 정오가 되자 교회의 종이 우렁차게 울리기 시작하고. 점심을 즐기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월 가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바로 그 때. 마차의 수레에 있던 폭탄이 터지면서 땅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퍼진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한낮의 거리가 순식간에 비명의 소리로 가득차기 직전, 지미 리틀모어와 스트래섬 영거, 그리고 콜레트가 월 가에서 만나고 있었다. 콜레트에게 전해진 아멜리아라는 여인으로부터의 쪽지와 그 속에 함께 있던 어금니가 의문스러워서 리틀모어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폭탄이 터진 것이다. 뉴욕의 월 가는 단 한 번의 폭발로 초토화되고 목숨을 잃은 사람,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 무슨 일인지 구경하려고 몰려든 사람이 뒤섞여 한순간에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만다. 이에 리틀모어와 영거, 콜레트는 주변을 정리는 물론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일에 나서게 된다. 온몸에 폭탄재와 부상자의 피를 뒤집어쓰며 사태수습에 나서던 리틀모어와 영거는 갑자기 콜레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콜레트를 찾기 위해 리틀모어와 영거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오지만 그들이 알아낸 것은 콜레트는 물론 그녀의 남동생까지 납치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보관하고 있던 상자 속의 희귀한 원소들이 사라졌다는 것도...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는 뉴욕의 월 가에 터진 폭탄 테러 사건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이후 뉴욕경찰청의 형사반장인 리틀모어가 추적하는 테러사건과 콜레트의 납치 사건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이어진다. 그런 가운데 여러 가지 의문을 풀어가고 있다. 폭탄테러는 누가, 왜 저지른 것인지, 콜레트를 납치한 이유는 무엇이고 그녀의 남동생 뤽의 실어증은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서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 속에 숨겨져있는 정치적 음모에 이르기까지.




700페이지의 두툼한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2001년 9•11테러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하늘로 치솟아 있던 무역센터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혼란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사람, 폭탄재를 뒤집어쓴 사람들. 텔레비전에서 계속 반복되는 충격적인 장면에 할 말을 잃었던 때가 생각났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일이 이전에 또 있었다니 놀라웠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대체 어디까지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사실과 허구의 조합이 너무나 교묘하게 이뤄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저자 제드 러벤펠드의 글의 힘이겠지.




이제야 알게 된 거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지미 리틀모어와 스트래섬 영거가 전작인 <살인의 해석>에서도 등장했다고 한다.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두 인물, 첫 만남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이번 여름에야말로 <살인의 해석>을 보고야 말테다. 단 한 가지 문제만 해결된다면. 대체 저 쌓인 책 무더기의 어디에 <살인의 해석>이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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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앨런 글린 지음, 이은선 옮김 / 스크린셀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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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머리는 정말 좋아요. 그런데 과제를 잘 빠뜨리는데다 자세도 문제예요.”

얼마전 큰아이가 다니는 학원의 상담시간에 들었던 내용이다. 다른 아이가 풀지도 못하는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어낼 정도로 머리가 좋은데 도통 노력을 안 하는데다 공부하는 태도까지 안 좋다는 따끔한 소리를 들었다. 어느 정도는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불편했다. ‘아니,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단 말이야?’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큰아이의 동화책 중에 산만한 아이에게 좋다는 ‘신통방통 왕집중’이란 약을 둘러싼 소동을 다룬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내 심정이 그 약이 있다면 구해서 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이젠 ‘집중’으로 그치지 않는다. 뇌의 기능을 100%로 끌어올려주는 약이 있단다. 그 약 한 알만 있으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데... 대체 어떤 약이지? ‘브래들리 쿠퍼, 로버트 드니로 주연, SF 스릴러 영화 드미트리스 원작소설’이란 문구의 소설 <리미트리스>는 ‘서양판 신통방통 왕집중’ 약에 대한 이야기다.




‘밤이 깊어가고 있다’로 소설은 시작된다. 자정을 향해가는 시각 주인공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야이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몇 달 전 어느 날 오후에 벌어진 이야기로 말문을 떼기 시작한다.




주인공인 에디 스피놀라는 2월의 어느 날 오후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전처의 오빠인 버넌 갠트를 만난다. 약 10년 만의 만남에 어리둥절한 에디에게 버넌은 ‘한 잔하자’고 이끈다. “바모스.” 버넌의 이 말 한마디로 인해 이후 자신의 삶이 크게 달라질 줄 몰랐던 에디는 그를 따라 칵테일 바에 들어선다. 오래전 마약을 판매했던 버넌이 고급스런 옷과 장신구를 치장하고 있는 모습이 낯설어하는 에디에게 버넌은 자신이 제약회사의 컨설턴트로 일한다면서 조그만 하얀 알약 하나를 내민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임상시험도 마쳤다는 약,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약이라며 이것만 먹으면 책 때문에 생긴 고민은 해결될 거라고 장담한다. 한때 약물중독의 부작용으로 고통의 날을 보낸 에디는 버넌이 내민 약을 두고 한참 고심하지만 결국 입 안에 털어넣는다.




처음엔 ‘뭐야, 달라진 게 없잖아?’했던 에디는 얼마후 미묘한 감각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한다. 주변의 모든 것이 달리보이고 온갖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입력되는 느낌. 그랬다. 출판사의 외주 편집자로 일하면서 교본이나 설명서 같은 것들을 만드는 것에 그쳤던 에디. 그에게 얼마전 큰 건수를 맡게 됐다. 화보 시리즈의 하나로 책의 서문부터 본문에 수록될 사진까지 선별 정리해야 하는데 도무지 진척이 없어서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문제의 약을 먹고 나니 갑자기 달라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썼던 그 어떤 글보다 멋진 글을 짧은 시간에 쓰기에 이른다. 한 알의 약을 통해 엄청난 몰입과 성과를 경험한 에디는 자신이 먹은 약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버넌 갠트를 찾아간다. 아침 일찍 찾아온 에디에게 버넌은 아침과 신문 같은 몇 가지 부탁을 한다. 오래전 마약을 구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 찜찜했던 에디는 버넌의 집에 돌아와 놀라운 광경을 마주치게 된다. 버넌이 이마에 총을 맞은 주검이 되어 있었던 것. 충격적인 장면에 당황한 에디는 신고전화를 하고 침입자가 찾고 있던 무언가를 찾기 위해 버넌의 집을 수색한다. 그러다 우연히 천장에서 버넌이 숨겨둔 돈 뭉치와 알약 무더기를 발견하는데....




MDT-48. 문제의 알약 이름이다. 이후 소설은 에디가 MDT-48을 복용하고 나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그저 그런 평범한 인물이었던 에디가 컴퓨터에 버금갈만큼 명석한 두뇌의 인물이 되어 주식은 물론 거대한 기업을 합병하는 등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지만 결국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지경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펼쳐진다.




지금보다 좀 더 부유해지고, 좀 더 예뻐지고, 좀 더 똑똑해지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다. 저자는 그 인간의 욕망이 MDT-48이라는 의문의 약을 통해 어떻게 파멸에 이르게 되는지 보여주는데 주인공 에디를 비롯한 등장인물의 조합과 리드미컬한 이야기전개가 인상적이 작품이다. 다만 초반의 긴박함이 마지막에 다소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충분히 흥미로웠디. 브래들리 쿠퍼,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영화 [리미트리스]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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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망고 - 제4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36
추정경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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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을 정말 좋아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그랬어요. 큰애가 어렸을 때는 성장하는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큰애가 12살인 지금은 큰애와 공감하기 위해서.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주 개인적인 거예요. “왜 내가 어렸을 땐 이런 책이 없었지? 너무해!”




<내 이름은 망고>를 보고 마음이 끌린 것도 그랬어요. 표지의 당돌해 보이는 소녀가, 소녀의 어깨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초록색 도마뱀, 뒤로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에서 왠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빨간색 깃발을 왜 가방에 꽂아두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저 깃발을 따라, 소녀가 이끄는 대로 그냥 무작정 따라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있지~, 나 이제 어디로 데려 갈거야? 기대해도 되지?”




제목에서 내 이름은 망고라고 했지만 진짜로 이름이 망고는 아니에요. 소녀의 원래 이름은 이수아. 발음이 캄보디아어로 ‘망고’와 비슷해서 아웃집 할아버지가 ‘망고’라고 부르게 됐답니다. 아, 나이는 열일곱 살이에요. 우리나라에 있다면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꿈 많은 평범한 여고생으로 지냈겠지만 수아는 사정이 다릅니다.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로 빚 독촉이 심해지자 엄마는 수아를 데리고 무작정 캄보디아로 향합니다. 수아는 엄마가 자신의 영어교육을 위해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으로 가지 않고 동남아시아, 그것도 캄보디아를 택한 것이 불만이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캄보디아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는 어릴 적 친구를 찾아가서 여행 가이드를 시작했는데요. 처음엔 그럭저럭 잘해 나갔습니다. 근데 캄보디아에 우기가 찾아들면 엄마는 우울증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싸구려 수면제에 의지하고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다가...자신에게 주어진 가이드 스케줄을 펑크 내고 도망가기도 했는데요.




그런 어느 날 엄마는 결국 아무런 말없이 가방을 들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수아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틈틈이 모아둔 500달러를 들고. 갑작스런 사태에 수아는 당황하지만 이내 자신이 엄마 대신 한국인 관광객의 캄보디아 가이드를 하겠다고 나섭니다. 열일곱 살 소녀 이수아가 아닌 마흔 다섯의 김지옥이 되어서...




어느 날 갑자기 여행가이드 역할을 하게 된 소녀의 모험담 <내 이름은 망고>. 참 반가운 소설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지금까지 소설에서 접하지 못한 낯선 곳인데다가 낯선 등장인물들 역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줬습니다. 저자의 캄보디아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돋보였어요. 베테랑 가이드가 인솔하리라 여기고 여행 왔다가 십대의 소녀 가이드의 인솔을 따라 좌충우돌하며 관광하는 여행객들을 보면서 신혼여행으로 태국을 찾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 지를 빙긋 웃으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열일곱 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대는 나이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시간에 대한 설렘과 꿈으로 가득한 나이. 그래서 무엇이든 몰입하고 시도해보고 싶은 때인데요. 감수성 예민한 십대 소녀 수아가 낯선 캄보디아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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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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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윌리암스가 출연했던 영화 [잭]이 생각납니다. 그 영화에서 로빈 윌리암스는 열 살이지만 조로증 때문에 사십 대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잭을 연기했는데요. 또래 아이와 다른 외모 때문에 잭은 간신히 다니게 된 학교에서도 놀림감이 됩니다. 하지만 잭은 쾌활한 성격을 발휘해서 금세 친구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게 되지요. 오래전에 봤던 영화여서 자세하지는 않지만 사십 대로 보이는 외모를 한 잭이 학교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잭이 신고 있던 운동화가 걸을 때마다 반짝 불이 들어오던 것과 다른 사람보다 빠른 노화속도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거라던 잭이 학교를 무사히 졸업식에 참석해서 친구들과 함께 졸업사진을 찍던 장면이었는데요. 영화를 통해 성인이면서도 동심을 간직한 배우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어떤 최악의 상황에 놓이더라도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답니다. 그것이 설사 ‘조로증’이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여기 한 명의 소년이 있습니다. 나이는 열일곱 살, 이름은 한아름. 학교를 다니며 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때이지만 아름이는 사정이 다릅니다. 왜냐면 아름이는 세 살 무렵부터 조로증을 앓게 됐거든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이자 희귀병인 조로증을 앓는 아름이는 성장속도가 평범한 또래와는 다릅니다. 나이는 분명 열일곱 살이지만 신체는 여든의 노인이었거든요. 열일곱, 철없던 나이에 아이를 낳은 서른넷의 부모는 예전의 자신들과 같은 나이가 된 열일곱 살 아들을 바라봅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땠을까요.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요.




다른 이보다 신체가 급격하게 늙는 조로증을 앓고 있지만 아름이는 누구보다 의젓하고 밝은 아이였습니다. 예순 살의 이웃집 할아버지를 친구삼아 농담을 주고받고 아들의 삶이 오늘에서 내일로, 내년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절망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오히려 감싸 안아주는 아이였어요. 열일곱 생일선물로 받은 중고 노트북으로 부모님을 위한 이야기를 지어나갑니다. 부모님이 처음 만났던 그때, 몹시도 가슴 두근대던 그해 여름의 이야기를...




부모의 몸을 빌어 살과 피를 나누어받아 세상에 태어났지만 부모와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아름이의 이야기는 가슴이 저릴 만큼 아팠습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이상하게도 왈칵 눈물이 솟지 않았어요.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마저 누리지 못하는 아름이가 안타까워 눈물이 나다가도 금세 쿡쿡 웃음이 비집고 나오곤 했습니다. 이 소설이 흔하디흔한 신파극으로 흐르는 걸 저자가 원치 않았는지 최대한 참고 절제하며 글을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아시죠? 터질 건 언제가 됐든 기어이 터진다는 거. 마지막 두 눈이 먼 아름이가 부모와 함께 하는 순간에 눈물샘이 그만 터지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멈출 수 없는 그런....




제목이 왜 ‘두근두근 내 인생’일까...생각해봅니다. 소설의 내용만으로 보면 ‘두근두근’이 아니라 ‘조마조마’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그건 아마도 아름이의 마음이, 가슴이 그런 건 아닐까 싶어요. 누군가에겐 심드렁한 일상의 일들이 아름이에겐 하나의 이벤트였고 누군가에겐 스쳐 지나가는 풋풋한 연애감정이 아름이에겐 가슴이 두근댈만큼 대사건이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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