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문학상 수상작을 처음 만난 것은 <내 심장을 쏴라>를 통해서였다. 정유정이라는 작가도 궁금했지만 그보다 ‘나’도 아닌 ‘내 심장’을 쏘라는 음울하고 묵직한 느낌의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유령>을 처음 만났을 때도 비슷했다. 저마다 다른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령처럼 보이지는 않은데 왜 제목이 ‘유령’인 걸까? 상징적 의미의 ‘유령’일까, 아니면....?




2010년 2월, 백석공원에서 엽기적 사체 훼손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로 책은 시작된다. 이어진 장소는 피시방. 밖에서 엽기적 사건이 일어나건 말건 아무런 상관없는 분위기다. 그곳 사람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컴퓨터 화면 속에 있으니까. 주인공 하림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그는 리니지라는 컴퓨터 게임의 가상현실 공간에서 독재자에 맞서 바츠 해방전쟁을 일으킨 영웅 쿠사나기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할 일 없이 피시방에 죽치고 있는 폐인이 되어서 고도리에 빠져있다. 돈이 필요했던 그는 한 달이 넘게 게임에 몰두했고 결국 쓰러지고 만다.




병원에서 도망치듯 나온 그는 이내 형사에게 이끌려 경찰서로 향한다. 며칠 전 백석공원에서 발견된 안구가 주인공과 함께 사는 회령 아저씨라고 생각한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하림을 지목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었던 그는 경찰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하림이 회령 아저씨와 문자를 주고받는 걸 보여주자 일단 경찰은 그를 보내준다.




경찰서에서 나온 하림은 자신이 얼마 전 백석공원의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한 사람을 발견했던 걸 떠올린다. 자살한 이는 탈북자였는데 우연인지 의도인지 두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같은데다가 공교롭게도 또 다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그 백석공원의 나무 밑에서 손가락 둘이 잘려나간 손목이 발견된 것이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하림에게서 언뜻 무언가가 떠올랐다. 하지만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백석공원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의 숨겨진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리니지는 커녕 컴퓨터 게임에 문외한이어서일까. 소설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탈북자에겐 살벌하기 그지없는 현실과 컴퓨터 게임 속 가상현실이 교차하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조차 자신이 누군지 몰라 혼돈에 빠진 것처럼 나 역시 그랬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책 읽는 도중에 ‘바츠 해방전쟁’이 무엇인지 검색해서 찾아보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게임과 현실을 착각하지 말라 하지만 그건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한 글도 보았고 내복단이 어떤 부대며 그들이 어떻게 해서 바츠 해방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게임을 잘 모르지만 정말 굉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라인 게임 상에서 전설로 통하는 ‘바츠 해방전쟁’을 소설로 끌어와 탈북자들의 현실과 접목시켰다니. 역시 문학상 수상작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는 느낌이다.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기조차 힘겨워 탈북을 한 이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북한에서와 다를 바 없는, 실체가 없는 유령과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컴퓨터 게임 리니지과 살인사건으로 연결시킨 것 같은데, 그것이 오히려 소설의 짜임새를 느슨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싶다.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쩌면 나의 욕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유령>을 통해 강희진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저자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중섭을 훔치다
몽우 조셉킴(Joseph Kim)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이중섭에 대해 아는 게 뭐지? 우리 미술사에서 찬란한 빛과 같은 작가. 타계한 이후에도 작품은 끊임없이 위작소동에 휘말린다는 이중섭. 그에 대해 암만 곰곰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것은 요절한 천재화가이며 뼈와 근육이 하얗게 도드라진 모습의 [흰 소]와 벌거숭이 아이들을 그린 그림뿐. 그것조차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게 전부이니 참담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예술에 관한 우리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백 날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노릇. “관심 있으면, 궁금하면 찾아보면 되지, 뭐했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할 말 없음’이다.




<이중섭을 훔치다>를 처음 본 느낌은 ‘아니, 이렇게 도발적인 제목이 다 있나?’였다. ‘훔치다’에는 분명 옳지 않은 나쁜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도 그걸 제목으로? 만약 훔치는 것이 누군가의 재산이었다면 틀림없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것이 다름아닌 사람, ‘이중섭’이다. 이쯤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의 얼굴과 누군가의 몸매를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부러우니까. 저자도 그런 게 아닐까? 이중섭을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의 작품을 아끼는 나머지 그의 모든 것을 훔치고 싶었던 게....




역시 그랬다. 저자는 이중섭에 빠져있었다. 요즘말로 하자면 이중섭 골수팬이라고나 할까? <이중섭을 훔치다> 이 책은 이중섭의 그림만 보면 심장이 뛰고 기분이 좋아져서 울컥한다는 저자 몽우가 알려주는 이중섭에 관한 모든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이중섭의 타는 듯한 붉은 색에 매료됐다고 한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색채를 따라 그렸지만 그의 뇌리에 박힌 붉은 색이 나오지 않았던 것.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눈에 띈 것이 석유곤로였다. 타는 듯한 아름다운 붉은 색을 보기 위해 그는 성냥을 그었다. 화르륵~! 그에게는 자신의 가슴 속에 자리한 이중섭, 그의 붉은 색, 오묘한 색깔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던 것이다.




이중섭의 그림을 훔치고 싶을 정도로 그에게 빠져있던 이후 저자는 이중섭의 그림을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자신이 매료된 이의 그림과 직접적으로 대면한 저자는 그 과정에서 이중섭이 무엇에, 어떻게 영감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는지부터 시작해서 묘사하는 방법이나 기법에 이르기까지 이중섭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광기어린 천재화가라는 그가 실제로는 얼마나 다정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중섭의 작품에 남겨진 ‘중섭’과 ‘둥섭’이라는 서명에 관한 것을 비롯해서 그의 그림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소를 그리고 닭은 그린 이유가 무엇인지까지도.




일제식민치하에서 광복의 기쁨을 맞이한 것도 잠시, 연이어 벌어진 한국전쟁을 겪으며 많은 이가 가난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았듯 이중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는 달랐다. 어둡고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화가는 화가 개인의 삶이 그래도 그림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을 소금과 같은 정결함과 고귀함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썩지 않는다. 세상은 부패하고 있는데 이때 예술가가 해야 할 사명은 자신의 삶과 작품을 통해 세상을 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좌절한 이에게 용기를 주고 방황하는 영혼에게 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ㅡ 222쪽.




‘꿈친구’ 몽우(夢友)를 통해 이중섭을 만났다. 글과 붓으로 이중섭을 훔쳤다. 가난하고 힘겨웠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녔던 이중섭. 그를 이제라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의 유산 -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마흔다섯 가지 힘
KBS 한국의 유산 제작팀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최근 들어 텔레비전 방송으로 제작됐던 프로그램이 책으로 출간되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평소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나로선 모르고 지나쳤던 좋은 프로그램, 특히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날 수 있으니 이 이상 반가울 수 없다. 책에서 받은 느낌에 따라 인터넷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냥 책을 읽은 것에서 그치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한국의 유산>도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이다. [한국의 유산]이라는 방송시간 1분 정도의 짧은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겨우 1분. 시계 초침이 한 바퀴 도는 그 짧은 시간동안 도대체 무엇이 담겼길래 이렇게 책으로도 출간된 걸까.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 앞에서 더 이상 ‘책부터 읽는’ 방식을 고수할 수가 없었다. 책에 첨부된 DVD를 컴퓨터에 넣고 작동시켰다.




두 둥! 어디선가 바람이 밀려왔다. 두 둥! 힘찬 북소리가 내 가슴에 울린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마흔다섯 가시 힘’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유산>은 우리의 수많은 유산 중에서 아름다운 전통문화와 정신, 선조들의 빛나는 지혜를 느낄 수 있는 유산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한국의 기록유산’에서는 올해 들어 천 년을 맞이한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보관중인 것을 우리의 역사학자가 발견해 얼마 전 우리나라에 대여 형식으로 반환된 [직지심체요철], 우리 선조들의 천문학적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천상분야열차지도],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책이자 세계 최초로 채소를 온실에서 재배한 기록인 [산가요록],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질 위험에 놓였지만 두 선비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켜낸 [조선왕조실록],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독일로 반출되었다가 우리의 신부에 의해 발견되어 우리나라로 돌아온 [겸재 정선 화첩] 등에 대해 알려준다. 2부 ‘한국의 인물유산’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이순신을 비롯해 제국주의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투사 안중근과 그런 아들에게 손수 지은 수의와 함께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의연하게 버려라’는 편지를 보낸 글을 어머니, 한국전쟁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병사와 그들의 편지는 가슴 저리게 다가왔다. 마지막 3부 ‘한국의 문화유산’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냥법의 하나이자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매사냥]과 둥근 달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 둥글게 돌아가며 춤을 추면서 화합과 소통을 나누는 종합예술 [강강술래], 큰아이의 역사만화에서 봤던 [칠지도]를 비롯해서 우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와 교류한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마흔다섯 가시 힘’. 사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고 내일을 밝혀줄 힘이 어디 마흔다섯 가지뿐이겠는가. 하지만 그 마흔다섯 가지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일본에 빼앗긴 우리의 [조선왕실의궤]와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중 남겼다는 [제시의 일기]였다. 힘없는 나라의 설움, 아픔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유산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들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잊지 말자.




두 둥! 두 둥! 거센 북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 두 둥! 두 둥! 잊고 살았던 우리 민족의 혼을 일깨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 사진의 아우라 -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가 이홍석의 촬영 노하우
이홍석 지음 / 시공사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 카메라. 이 두 가지와 친하지 않다. 아니, 가능하면 그것들과 떨어져서 지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오죽했으면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 내 평생 카메라에 노출되는 것보다 더 많을 거라고 말할까. 그런 나도 요즘엔 자꾸 욕심이 생긴다. 지금보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활기찬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데 그게 마구잡이로 카메라만 들이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것부터 어려울뿐더러 사진을 찍어도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았다. 플래시 사용이 적절하지 못했거나 초점이 흐릿한 경우, 피사체보다 오히려 그 주변이 도드라져서 산만하게 보이기도 했다. 역시 사진 찍는 실력이 부족한 거란 생각에 관련서적을 보기도 했지만 ‘이거다!’ 할 정도로 와 닿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




<여행사진의 노하우>는 정말 어쩌다 우연히 건진 책이다. ‘여행사진의 노하우’란 제목과 표지만 봤다면 ‘여행도 잘 안가면서 무슨...?’하고 그냥 지나쳤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어쩌다 이 책의 차례를 살펴보게 됐고 거기에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대목을 발견했다. ‘여자의 뇌, 여자의 사진’ ‘남자의 뇌, 남자의 사진’ ‘사내아이들을 찍는 법’. 여자와 남자가 뇌 구조에서부터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 때문에 사진도 달라진다? 거기다 ‘사내아이들을 찍는 법’이라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책이 아닌가.




책은 크게 ‘인물 사진’ ‘풍경 사진’ ‘포토 에세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내가 궁금했던 부분은 주로 1장에 있었다. 인물을 촬영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자는 여자와 남자를 구분해서 설명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이 있듯이 여자와 남자가 어떻게 다른지 짚어주고 그렇게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도 어떻게 대상에 접근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에겐 먼저 그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정말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장면을 담게 될 거라고. 반면에 남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모험적이고 거친 행동이 두드러진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내아이들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내아이들을 잘 찍기 위해서 저자는 카메라로 “두두두” 소리를 내며 기관총 쏘는 흉내를 냈고 그러자 아이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달려들었다고 한다. 즉 사내아이들은 신나게 한바탕 놀아준 다음 사진을 찍어야 기막힌 사진이 나온다는 것. 이 대목에서 나는 그동안 어땠는지 돌아봤다. 아이가 열심히 놀이에 몰입하고 있을 때 혹시나 카메라를 의식할까 싶어서 몰래 다가가곤 했는데, 그게 결국 좋은 방법이 아니었던 셈이다. 또 성인 남자를 찍을 때는 그가 사용하는 도구나 직업에 주목하라고 했는데 이 대목에서 미당 서정주 선생과 관련한 일화는 그야말로 폭소 그 자체였다. 평생 글을 써 온 미당 선생에게 원고 뭉치를 허공에 뿌리는 장면을 찍겠다고 했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2007년 겨울, 태안 앞바다에서 벌어진 원유유출사고와 관련한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전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바쁜 때였지만 저자는 개인전을 뒤로 하고 태안으로 향한다. 3일간 태안에 머물며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문제의 사건이 수면위에 떠올랐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을 태안으로 이끌게 됐다는 대목에서 사진 한 장이 지닌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내가 사는 동네, 송정해수욕장이나 미포, 7번 국도가 등장하는 사진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풍경이지만 왠지 더 낯설고 그러면서도 정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 태도에 관한 문제를 다룬 책’이라고. 이 짧은 문장에 이 책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사실 사진을 찍는 기술이나 테크닉을 알려주는 책은 이제 너무나 흔하다. 하지만 기술이나 테크닉만으로는 절대로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렌즈가 어쩌고, 노출이 어쩌고 백날 떠들어봐야 그것을 직접 실감하고 체득하고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권의 책으로 베레랑 사진작가와 함께 출사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테스팡 수난기 - 루이 14세에게 아내를 빼앗긴 한 남자의 이야기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드디어 장 퇼레를 만났습니다. <자살가게>를 읽은 지인에게서 코믹한 분위기의 글이 인상적이라며 꼭 한 번 읽어보라는 추천을 받은데다가 진즉에 구입까지 했건만 정작 책은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장 퇼레의 신간소식을 접했습니다. 바로 <몽테스팡 수난기>인데요. 붉은색 표지에 중세 유럽 귀족의 복장을 한 남자의 모습이 간단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전해집니다. 저 그림의 남자가 제목에 있는 ‘몽테스팡’이란 것과 눈을 부릅뜬 표정에서 화가 났고 그로 인해 수난을 겪는다는 걸 말이지요. 대체 뭣 때문이냐구요? 그것 역시 ‘루이 14세에게 아내를 빼앗긴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만으로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소설의 핵심적인 내용이 표지에서 이미 다 밝혀진 셈이지요. 그렇담, 뭐 하러 읽냐구요? 기둥만으로 나무의 전부를 알 수 없듯이 소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줄기들, 세세한 이야기가 전 왠지 더 궁금하거든요.




두 명의 젊은이와 여섯 명의 무리가 티격태격 다툼을 벌이다 결투를 벌이게 됩니다. 당시 왕의 칙령으로 금지된 결투를 벌인 그들은 한 판의 결투로, 혹은 사형집행인에 의해 목이 떨어지고 마는데요.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결투로 인한 뒤탈이 무서워 약혼자가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혼자가 된 금발의 고혹적인 미녀 프랑수아즈에게 역시 결투로 동생을 잃은 루이 앙리가 매료되어 사랑을 고백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평생 단 한 번의 사랑만 할 수 있느냐”고 말이지요. 이후로 프랑수아즈와 앙리 루이는 단박에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합니다. 가난하여 좁은 집에 살지만 그들의 사랑놀음엔 거리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뭐니 뭐니해도 머니(money)가 문제이듯 사랑밖에 모르는 젊은 후작부부에게도 역시 머니가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있던 재산을 모두 탕진해버리자 몽테스팡 후작은 자신이 전쟁에 나가 무공을 세우는 것만이 가문을 일으키는 길이라며 원정길에 나서는데요. 전쟁에서 무공을 세우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후에도 가진 재산이 없어 빚을 얻으면서까지 몇 번이고 원정에 나서지만 몽테스팡 후작에게 돌아온 건 무공이 아니라 눈덩이처럼 자꾸만 불어나는 빚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몽테스팡 후작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후작 부인 아테나이네요. 딸과 아들, 두 아이를 낳고도 변함없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미모와 재치 있는 후작부인 아테나이가 왕비의 시녀가 된 겁니다. 거기다 왕의 눈에도 들어 이제야 후작 가문이 일어서는가 싶었는데요. 아니었습니다. 또 한 번의 전쟁에서 돌아온 후작은 아테나이가 임신한 걸 알게 됩니다. 아빠는? 당연히 태양왕 루이 14세였지요. 아내가 왕비의 시녀에서 왕의 애첩이 되어 임신까지 했건만 후작은 아내 아테나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혜택과 권력을 마다하고 오로지 아내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루이 14세에게 아내를 빼앗긴 남자, 몽테스팡 후작. 그는 과연 아내를 왕으로부터 되찾을 수 있을까요?




서두에 말했듯이 장 퇼레의 책은 이 <몽테스팡 수난기>가 처음인데요.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아내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잃지 않는 몽테스팡 후작의 이야기는 정말 굉장했습니다. 당시의 프랑스 역사를 알지 못하기에 소설의 내용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구분하지 못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수시로 툭툭 터지는 유머와 코믹한 장면을 보면서 이게 바로 장 퇼레만의 유머인가...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작품에서 저의 완소작가가 되어버린 장 퇼레, 그의 다음 작품이 출간되기 전에 전작부터 어서 만나봐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