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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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내려놓았습니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거든요. 컴퓨터를 켜고 찾는 것을 적어 넣었습니다. 무한한 정보의 바다 속에 제가 찾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 장의 흑백사진. 그 속엔 낡은 군복을 입은 지친 표정의 동양인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의 노르망디에서 미군의 포로로 잡힌 조선인. 그는 어떻게 해서 독일군이 되었을까요?




한 방송국 PD가 추석 특집으로 탈북자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그는 프로그램의 자료와 도움을 받고자 탈북자 지원 단체에 문의를 하는데요. 거기서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삼대가 탈북을 시도했는데 가족 모두 죽고 할아버지 한 명만 살아남았다고. 문제는 그 노인마저 폐암 말기 시한부 환자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짧고 간단한 얘기지만 그 속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직감한 PD는 노인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노인은 PD를 본체만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습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났을 때 노인은 말문을 엽니다. 가족들과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넘어 탈북 하던 때, 그리고 그의 아버지 얘기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아들과 함께 여유로운 때를 보내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길수, 그의 아들 건우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대장장이로 일하면서 간신히 끼니를 해결하는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엄마 없이 지내지만 구김 없이 자라는 착하고 의젓한 아들을 위해 길수는 생일 선물로 손수 피리를 만듭니다. 기뻐할 건우 얼굴을 떠올리면서. 하지만 건우의 생일날, 길수는 건우에게 생일선물을 건네지 못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수는 징집병의 수를 맞추기 위해 혈안이 된 일본군에게 잡히고 강제 징집되어 트럭에 태워지는데요. 그것이 길수와 건우, 아버지와 아들의 기나긴 이별의 시작이었습니다.




한편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가족을 떠난 길수의 아내, 길화는 ‘붉은 여우’라는 별명으로 게릴라전에 나섭니다. 남자들이 대부분인 부대원 속에서 길화는 무거운 총을 휘두르며 깊고 험한 산속을 누비는데요. 기습공격으로 잡은 일본군 포로 중의 장교에게서 관동군 지원병력이 며칠 뒤 도착한다는 첩보를 얻게 됩니다. 전쟁물자와 징집병들이 기차로 도착한다는 첩보에 그들은 선로를 폭발할 계획을 세웁니다. 문제의 열차에 조선인 징집병 수백 명이 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들은 동포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작전을 수행하기로 합니다. 자신의 남편, 길수가 기차에 탔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체.




일본군으로 징집되어 전투에 나갔다가 소련군에게 잡히고 거기서 소련군의 신분으로 나간 전쟁에서 또다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독일군이 되는 실제 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조선인의 이야기를 예전에 조정래의 <오, 하느님>이란 작품을 통해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같은 인물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가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길수의 기구한 운명에 슬픔과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아니, 김길수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장남인 형 대신 만주행 열차에 오른 열네 살 소년병 영수, 사랑하는 명선을 지키기 위해 자원해서 입대한 정대, 바로 그 정대가 있는 부대의 위안부가 되어버린 명선... 이들의 삶을 통해 힘없는 나라의 국민이기에 겪는 아픔이 어떠한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노르망디 코리안의 기적 같은 삶과 사랑을 그린 감동의 대서사시’라는 표지의 문구에 충분히 공감이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스토리의 구성이나 전개가 탄탄해서 몰입면에서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간혹 어법에 어긋나는 문장이나 어색한 단어가 눈에 띄어서 아쉬웠습니다. 71쪽 중간부분에 ‘밖에서 잠긴 객차 문은 좀처럼 열어주지 않았다’는 문장이 있는데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수동/능동적 표현’에 의하면 이 부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밖에서 잠긴 객차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로 하거나 혹은 ‘밖에서 잠근 객차 문은 좀처럼 열어주지 않았다’로 수정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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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한 현실적 방안
송원근.강성원 지음 / 북오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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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사다리 걷어차기’죠?”

지난해 여름, 지인들과 함께 하는 독서모임에서 토론할 책을 선정할 때였다. 장하준의 책 <사다리 걷어차기>가 추천 책에 올랐다. 당시까지 그의 책을 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우리나라 국방부에서 그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을 불온서적으로 선정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호기심이 생기던 찰라였다. 대체 어떤 책이길래! 21세기인 지금 불온서적 운운하는 걸까. 이런 궁금증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내가 경제학에 완전무지하다는 건 논외였다. 그렇게 나는 장하준을 만났다. 아니, 만났다고 할 수 있나? 그의 책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었으되 아는 것도 기억에 남는 것도 없는, 읽지 않은 거나 다름없으니.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란 책이 출간됐을 때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어찌 보면 도전이었다. 저자는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내게 중요한 건 설욕이었다. 예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을까? 알고 싶었다.




그. 러. 나.




막상 책을 손에 들고 보니 표지 분위기가 뭔가 달랐다. 좌우가 바뀐 ‘23’이란 숫자. 그 위로 적힌 제목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그것들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오,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 난 과연 잘 해쳐나갈 수 있을까?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은 한국경제연구원의 송원근, 강성원이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 언급된 내용과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책이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본문의 구성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3가지의 주제마다 장하준의 주장을 [장하준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그에 대한 저자의 반론, 비판을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에서 전하고 있다. 이를테면 제일 먼저 언급되고 있는 ‘Thing 1. 자유시장은 존재한다’에서 저자는 장하준의 주장 ‘자유시장이란 것은 없다’가 어떤 점에서 오류가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준다. 우선 자유시장의 개념이 무엇인지, 정부의 개입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봐야 하는지 설명한 다음 그에 대한 반론으로 자유시장은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런 형식의 글이 모두 23가지 수록되어 있다.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를 읽지 않았는데 그에 대한 반론을 먼저? 사실 초반부터 험난한 여정이 예견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뭔가 다르지 않을까 은연중에 기대를 했다. 그런데 다르긴 뭘... 장하준의 주장과 그에 대한 저자의 반론, 비판을 제기하는 글 23가지를 읽으면서 난 또 다시 대혼란을 겪었다. 초대형 쓰나미가 몰려와 모든 것이 무너지고 뒤엉킨 것처럼 내 머리상태도 꼭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장하준과 저자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판단하는 건 무리였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이라고 위안(?)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의 극히 일부, 몇 가지의 주제에 대해서는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장하준은 정보통신의 효과가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에 비해 미미하다는 것에 대한 저자들의 반론, 21세기 들어 정보통신은 눈부시게 발전해서 제2차 산업혁명에 비견할 만하다는 내용(Thing 4)에 공감할 수 있었고 교육이 나라를 더 잘 살게 하는 게 아니라는 장하준의 주장에 수준 높은 교육이 국가의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저자의 반론(Thing 17)은 아이를 기르는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나는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제학과 관련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그 진짜 개념을, 모습을 나 자신이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걸 느낀다. ‘시장경제’, ‘계획경제’란 개념부터 아리송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래도 낙심하지 말자.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내겐 아직 시간이 있다.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씩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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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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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위대한 왕>을 만났습니다. 만주의 밀림을 비롯해서 중국과 백두산을 호령하던 조선호랑이의 당당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우거진 숲을 바람처럼 날렵하게 달리던 모습, 목숨 대 목숨 사냥감과의 숨 막히는 공방전, 숲 전체를 뒤흔드는 우렁찬 포효. 이 모든 것들을 실제가 아닌 책으로 만났지만 조선호랑이의 늠름함은 제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바로 그 호랑이가 우리의 상징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얼마전 또 한 번 호랑이와의 만남을 가졌는데요. 이번엔 시베리아 호랑이입니다. 드넓은 시베리아 설원을 지배했던, 사냥할 때마다 주변이 온통 피로 물든다고 해서 수많은 신교도들을 처형대로 몰아간 영국 여왕 ‘피의 메리’란 별명이 붙여진 암호랑이 ‘블러드 메리’와 그 가족에 관한 기록이 한 권의 책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에 담겨 있습니다.




오랫동안 야생호랑이를 연구하고 관찰했던 저자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만나기 위해 평범한 인간이 누리는 삼시세끼 식사와 안락한 집, 편안한 옷, 다정한 가족들 이런 것들을 모두 뒤로 한 채 시베리아의 혹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평 정도의 땅을 파서 자리 잡고서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불편한 자세로 선잠을 자고 꽁꽁 언 밥을 녹여 먹고. 그리곤 기다립니다. 시베리아의 냉혹한 자연 속에서 언제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오랜 기다림. 그것은 소리 없는 치열한 싸움입니다. 그러다 맞닥뜨리게 되지요. 그토록 기다려온 호랑이를.




뜨뜻한 콧김이 훅 끼쳐오며 호랑이의 뻣뻣한 수염이 왼쪽 손등을 스쳐갑니다. 삶과 죽음, 그 허약한 존재의 추가 눈앞에서 어른거립니다. - 10쪽.




책은 호랑이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호랑이에 대한 많은 것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호랑이의 모습에 따라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뉜다는 것에서부터 호랑이의 습성, 생태, 호랑이의 크기와 암수를 구별하는 방법, 호랑이를 관찰하기 위해 잠복장소를 물색하고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알려주는데요. 다소 지루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저자가 호랑이를 관찰하고 연구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공을 들였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바로 블러드 메리였습니다. 시베리아 호랑이가 지구상에 35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맹수 중의 맹수 호랑이지만 블러드 메리는 신중하고 또 자신의 영역에 애착이 깊었습니다. 평범한 인간과 밀렵꾼을 구분할 줄도 알았습니다. 특히 월백, 설백, 천지백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르는 부분은 실로 감탄에 이를 정도였어요. 오히려 인간보다 더 세심한 게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호랑이는 새끼 중에서 제일 강한 한 마리만 키운다고 아는데요. 그건 100% 사실이 아니었어요. 대부분의 세끼가 세 살이 되기 전에 죽는 슬픈 현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장면도 많았습니다. 바로 블러드 메리가 인간의 욕심에 희생되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쓰러진 어미 곁을 새끼 호랑이들이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는 대목에서는 코끝이 시큰해지고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천험의 땅 시베리아, 그곳에서 살아가는 시베리아 호랑이들의 모습, 삶과 죽음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우리 인간의 이기 앞에 스러져가는 무수히 많은 동물들. 그 앞에서 우린 과연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미 블러드 메리처럼 월백과 그의 자손들이 시베리아 설원을 당당히 지배하는 날이 오기를 저자처럼 저 역시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호랑이는 살아가고 있다. 월백의 어미와 그 어미들이 그랬듯이 월백의 자식들도 이곳에서 새끼를 낳고 무사히 길러내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 4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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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차일드
팀 보울러 지음, 나현영 옮김 / 살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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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었습니다. 팀 보울러의 <리버 보이>를 읽었어요. 수영을 좋아하는 소녀가 죽음에 임박한 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의 고향에 갔다가 벌어지는 신비하고 환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수영하기 위해 찾은 강에서 소녀는 신비한 분위기의 소년을 만납니다. 할아버지의 그림 ‘리버보이’처럼 신비롭고 우연한 만남이 반복되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죽음을 맞고 소녀는 슬픔과 아픔, 두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한다는 내용인데요. 당시 이 소설에 대해 사람들의 호불호가 나뉘었지만 전 할아버지와 손녀의 사랑과 정을 강의 흐름과 비유해서 표현하고 이야기를 펼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완전 좋아!’는 아니지만 ‘좋은데!’라는 느낌이랄까요.




이후로 팀 보울러의 작품을 한동안 읽지 못하다가 최근에 한 권 만났습니다. 표지 분위기에서부터 <리버보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블러드 차일드>였습니다. ‘사방이 온통 잿빛이다’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어떤 연유에선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년과 그 소년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소녀가 등장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소년은 간신히 살아남습니다. 그 댓가(?)로 기억을 잃지만 말이지요.




소년의 이름은 윌, 열다섯 살입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했는데요. 기억을 잃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살아남은 소년에게 부모님은 물론 마을 사람들까지 낯설게 대합니다. 퇴원을 축하하고 격려하기보다 낯선 이방인을 보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회피하지요. 그 이유가 뭔지 알고 싶었던 윌은 부모님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지요. 자신이 이상한 것을 보곤 했다는 걸.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는, 실체가 없는, 환상 같은 것을 본다는 걸. 그것 때문에 학교는커녕 제대로 된 친구도 없다는 것까지. 부모님이 말한 것이 모두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뭔가 다르다는 걸.




바다를 접한 더없이 아름다운 마을에 돌아온 날부터 윌은 또다시 환영에 시달립니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검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의 아름다운 소녀와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들, 붉은 핏빛 바다, 의문투성이의 사람들, 기괴하고 음울한 기운이 서린 마을... 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로 인해 두렵고 당황해 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비밀을 풀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다 알게 되지요. 마을이 불길하고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그리고 예전에 윌이 무심코 그 말을 꺼냈을 때 큰 소동이 일어났다는 것까지도 말입니다.




도대체 검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의 소녀가 윌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무얼까요?  핏빛 바다에 감춰진 비밀은? 마을에 숨겨진 비밀에 조금씩 다가가는 윌에게 적의와 살의를 드러내는 이들은 또 누굴까요?




오랜만에 만난 팀 보울러의 소설에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흥미나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어요. 윌의 기이한 능력(?)과 검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의 소녀, 마을의 알 수 없는 병은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소년이 오랜 외로움과 아픔, 두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과정에 스릴러를 가미한 것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조금 부족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요소들이 서로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며 진행되기보다 왠지 느슨하다는 느낌? 그래서 후반부의 반전도 힘을 잃은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450여 쪽에 이르는 본문을 조금 압축해서 리드미컬하게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아쉽지만 팀 보울러에 대한 평가는 다음 작품으로 미뤄둬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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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이야기 - 은밀하고 매력적인 나만의 시계바이블
정희경 지음 / 그책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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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마우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제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버지께서 입학선물로 시계를 주셨는데요. 거기에 바로 미키마우스가 있었어요. 미키마우스의 두 팔이 시침과 분침으로 된 시계를 받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하루에도 여러 수십 번을 들여다봤습니다. 덕분에 제 또래에 비해 시계 보는 법도 빨리 배웠지요. 하지만 몇 년이 지나서 반짝반짝 윤이 나던 시계의 광택이 사라지고 흠집이 나면서 시계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식기 시작했는데요. 계기는 4년 후 남동생이 입학선물로 받은 전자시계였습니다. 시침과 분침을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아도 척 보면 알 수 있는 시계. 어린 제 눈에도 정말 편리해 보이더군요. 그걸 남동생에게 건네면서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 계산할 줄 아냐? 20시는 몇 시?” 무슨 말인지 몰라 어물거리는 남동생 옆에서 제가 대뜸 대답했습니다. “8시! 저녁 8시에요.” 그리고 이런 말도 했지요. “아버지, 얘는 아직 시계 볼 줄 모르는데 그거 제가 하면 안돼요?” 아버지의 대답은.... 네, 노!였습니다. 그 후 미키마우스 시계는 2년을 더 제 손목에 머물렀답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시계이야기>의 첫인상은 ‘정말 단순하다’였습니다. 간단하게 표현된 시계 그림의 위에 거두절미하고 쓰여진 제목 ‘시계이야기’. 간단함을 넘어서 심플함이 돋보였습니다. 시계에 대해 대체 어떤 얘기를 하려나? 궁금했습니다.




오우, 그런데 책장을 넘기자마자 제 눈은 휘둥그레~~. 심플한 표지와는 정반대로 크고 작은 컬러 사진과 그림에 깜짝 놀랐습니다. 시계가 정교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화려했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계가 연이어 나타났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뒤로 하고 사진과 그림만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봤으니까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시계에 관한 다섯 개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첫 번째 ‘흥미진진한 시계탐험을 시작하다’에서는 시계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합니다. 시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시계의 부분 명칭이나 용어에 대해 알려주는데요. 단순하게 시간을 알려주던 시계가 점차 여러 가지 기능을 갖게 되는 과정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역사와 전통과 함께 가다’에서는 오랜 역사를 지닌 시계 제작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로서는 감히 꿈도 못 꾸는 고가의 한정품 시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세 번째 ‘시계의 근대화에 앞장서다’에서는 시계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제작사들을 이야기하는데요. ‘오메가’라든가 ‘세이코’처럼 많이 알려진 회사를 비롯해서 ‘브라이틀링’이나 ‘코럼’처럼 처음 만나는 제작사도 많았습니다. 특히 제랄드 젠타 & 다니엘 로스의 시계는 시계가 아닌 예술품을 감상하는 기분. ‘정말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네 번째 ‘색다른 관점에서 시계를 보다’에서 시계는 더욱 정교해지고 화려하게 탈바꿈합니다. 갖가지 화려한 보석으로 돌고래는 물론 깊은 바다 속, 나비, 공작, 견우와 직녀를 연상케 하는 연인에 이르기까지 시계의 변신은 무한하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새롭고 강력한 생각과 기술로 따라잡다’에서는 기계식 시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합니다. 새롭고 특이한 형태의 시계나 어찌 보면 복잡하고 전위적으로 보이는 시계도 있었는데요. 마지막 스페셜로 우리나라의 시계 제작 브랜드도 소개하고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옛날 일이 생각났습니다. 처음 내 손목에 자리 잡은 미키마우스 시계를 내가 어떻게 했더라? 친정의 어딘가에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혹시나 버린 건 아닐까? 어린 마음에 괜히 아버지에게 억지를 부렸다는 생각에 후회도 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시계의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는 <시계이야기>를 통해 이 세상 모든 시계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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