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 KBS 사이언스 대기획 인간탐구
김윤환.기억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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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미치겠어요. 내가 한 기억이 없는데 어느새 씽크대에 설거지가 다 되어 있는 거 있죠. 남편이 얼마나 황당해 하던지(이 말을 한 지인은 벌써 이와 같은 일을 두 번째 겪었다는군요)...

B : 난 집에 없는 책이라고 샀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그 책을 샀더라구. 

C : 말도 마. 난 엊그제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면서 쌀을 밥통에 안 넣고 밥솥에 그냥 붓고 취사버튼을 눌렀다니까.

A : 어머, 나도 그런 적 있는데...그치만 전 취사버튼까지는 안 눌렀는데...

C : 하~!, 이렇게 가다보면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는 날도 금방이지 싶어...




중년을 넘긴 지인들과 만나다보면 때론 기인열전이 따로 없습니다. 며느리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시댁이나 남편 흉을 비롯해서 차마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실수담들이 연이어서 나오는데요. 아이 문제를 제외하고 요즘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바로 ‘건망증’입니다. 자신의 증상이 건망증인건지, 치매인지 구분하는 것부터 어렵다는 거지요. 그럴 때마다 약속시간을 깜빡하면 건망증이고 약속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면 치매로 봐야한다며 간단하게 설명하지만 아리송한 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면 무언가를 잊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건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걸까요?




한 방송국에서 기획 다큐멘터리로 기억의 실체와 비밀을 파헤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서 인간의 뇌 구조와 기억의 원리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었는데요. 바로 그 프로그램의 내용이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인간탐구, 기억>입니다.




책은 크게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먼저 ‘1장. 오래된 미래, 기억’에서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첫 키스만 50번째>라는 책과 영화를 통해 언급된 단기기억상실증 환자를 통해 뇌의 어느 부분이 기억을 담당하고 있는지 추적하는데요. 우리 뇌의 ‘해마’라는 부위에서 기억이 저장된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하지만 기억은 완전한 것이 아니어서 때론 기억이 왜곡되기도 한다면서 기억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짚어줍니다. ‘2장. 봄날은 온다’에서는 저를 비롯한 중년의 지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바로 건망증이나 치매처럼 기억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는데요. 알콜과 스트레스가 기억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다행히 책에는 기억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훈련과 운동법을 소개해놓아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기억하는 것만큼 잊는 것도 중요하지요. 바로 그 잊는 것에 대해서 ‘3장. 두 번째 선물, 망각’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 괴롭고 힘겨워서 차라리 잊고 싶을 때. 무언가를 기억하느냐 혹은 잊어버리느냐는 그때의 감정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즉, 어떤 상황이든 감정이 개입된 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습니다. 뇌의 노화는 고유명사를 잊는 것부터 시작되는데 그건 바로 중년의 뇌가 가장자리부터 닳기 시작하기 때문이라는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억하려고 애쓰는 한 치매가 아니라고 합니다. 왜냐면 치매는 아예 기억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는데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억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책에서 하루 일과의 기록이 언급되었된 것처럼 ‘이틀 전 일기를 쓰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나이 들수록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당일이 아닌 이틀 전 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이면 기억력이 약화되는 걸 늦출 수 있다고 하네요. 저도 꾸준히 해봐야겠습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뇌에 관한 책을 연이어 읽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변화를 다룬 책과 기억의 실체, 비밀을 밝히는 <기억>까지 우리 인간의 뇌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알면 알수록 인간의 뇌는 참 신비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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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의 사생활 - 부모가 놓치고 있는 사춘기 자녀의 비밀
데이비드 월시 지음, 곽윤정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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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학년이 시한폭탄인 것 같아...”

요즘 큰아이 친구 엄마들과 만나면 항상 이런 얘기가 나온다. 작년도 그랬지만 그전에도 5학년에서 벌어진 일로 학교가 떠들썩했던 거나 최근 어느 반에서 일어나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 담임선생님의 행동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도 있었지만 이번에 우리가 놀랐던 건 그에 대한 반장 아이의 반응이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누구나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인 아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아이가. 최근 들어 전혀 예상치 못했던 행동을 한다는 거였다. 충격이었다. “세상에, 걔가!” “단순한 사춘기의 반항인 걸까? 아니면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나...?” 나를 비롯해 같은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들은 고민에 빠졌다. 매일 아침 학교에 등교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의 표정을 평소와 달리 유심히 살피게 된다. 그리고 별일 아닌듯 던지는 한마디. “오늘 어땠어?” 그에 대한 아이의 반응은 한결같다. “몰라!”




사춘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만큼 무난하고 재미없는(?) 10대 시절을 보낸 나로선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행동과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도움이 될 만한 강좌를 찾아다니고 관련 책도 읽어봤지만 그것들을 내 아이, 상황에 꼭 맞게, 적절하게 활용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론과 실제가 공존하지 않는 상태라고나 할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임시방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해결책이 절실했다.




그런 차에 만난 <10대들의 사생활>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오랫동안 심리학자이자 상담가로 활동한 저자는 10대 청소년기를 ‘사춘기로 시작해서 사춘기로 끝나는 시기’라고 하면서 요즘 아이들은 예전에 비해 훨씬 긴 청소년기를 보내기 때문에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와 의사소통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문제는 부모들이 10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건데. 저자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10대들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안다든 건 차라리 한 손으로 박수를 쳐서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 그렇다면 10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무엇 때문인가? 저자는 한마디로 대답한다. ‘10대의 뇌’라고.




저자는 총 13개의 장에 걸쳐 10대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준다. 10대의 뇌 발달이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고 충동적인 행동패턴을 보이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럴때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뇌의 전전두엽 피질이다. 앞이마 뼈 바로 뒤에 위치한 전전두엽 피질은 몸이나 뇌의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미래의 일을 계획하거나 전후 상황을 판단하고 충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뇌의 CEO’라고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은 전전두엽 피질이 10대 아이들은 미완성 상태라는 것. 특히 정서를 관장하는 대뇌 변연계는 청소년기에 발달하는데, 이 발달이 완성되는 성인이 되면 충동적이고 폭발적인 행동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누구보다 사랑스럽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아이로 변하게 된 이유는 한마디로 10대의 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발달과 호르몬에 의한 것이지 결코, 아이들이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거였다.




10대의 뇌에서는 리모델링과 재개발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어제까지 있던 건물이 무너지고 어느새 번듯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것과 같은 일들이 10대의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10대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정서에 공감하고 이해하는데 주력했지 그들의 뇌 발달을 생각지 못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10대 아이들. 그들의 행동은 낯설지언정 결코 외계인이 아니다. 그들의 뇌가 화려하고 건강하게 탈바꿈하기까지 우리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것. 끊임없는 믿음과 사랑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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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시에 매혹되다 - 한시에 담긴 옛 지식인들의 사유와 풍류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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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누구냐? 원더걸스?” “아이고, 이모. 몇 번을 말해요. 소녀시대라니까요!”

며칠 전 친정아버지 제사가 있어서 친정에 들렀습니다. 제사음식을 준비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려니 아이돌이 수시로 등장하더군요. 요즘 연예인들이 예쁘고 늘씬해서 보기엔 좋은데 워낙 서로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구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더라구요. 사정이 이러하니 그들이 부른 노래는 더욱 심합니다. 아무리 곱씹어도 알 수 없는 의미 없는 낱말들의 연속, 신변잡기 적인 내용. 그건 마치 외국어로 된 노래를 듣는 기분입니다. 이런 걸 세대차이라고 하겠지요.




텔레비전을 잠근 지 6년...불과 6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세대차이를 불러왔으니 오래전 한시는 어느 정도인지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요즘 젊은 청년들의 생활과 감성을 모르고서는 21세기 노래를 알 수 없듯이 몇 백 년 전의 시대상황과 당시 사람들의 감성, 생활, 정서를 노래한 한시를 현대의 저, 더구나 한자도 잘 모르는 제가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제가 어느 정도인지 너무나 잘 알지만 그럼에도 한시에 미련이 남았습니다. 학창시절엔 고문시간이 그렇게 싫었는데...참 이상하지요?




한시에 대한 알 수 없는 동경만으로 그동안 동양고전과 한시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만큼 쉽게 읽히지가 않았어요. 하루에 조금씩 며칠을 읽다가 도중에 그만 덮어둔 책이 몇 권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한시에 담긴 옛 지식인들의 사유와 풍류’라는 부제를 한 <옛시에 매혹되다>란 책을 손에 들고서도 고민이 됐습니다. 제가 과연 이 책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는 옛시를 ‘고전문학과 풍류’ ‘부채이야기’ ‘차를 마시며’ ‘절의 정신’ ‘문학과 여행’ ‘이별과 문학’ ‘책과 사람’ ‘봄노래’ ‘꽃의 문화사’ ‘질병과 몸’ ‘변방의 노래’ ‘장마의 계절’ ‘비온 뒤의 산을 오르며’ ‘정원 이야기’ ‘대나무 향기 속에서’ ‘은거의 즐거움’ ‘밤비 내리는 소리’ 이렇게 17개의 주제어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요. 제일 먼저 풍류에 대한 이야기로 문을 엽니다. ‘풍류’를 외국어로 번역할 때 ‘멋’ ‘결’ ‘고움’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풍류’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감정이고 개념이라고 말하면서 선조들이 어떤 상황에서 풍류를 노래했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해줍니다. ‘정신의 깊숙한 곳에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풍류’라고요.




부채에 담긴 사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옛날 단오때 부채를 선물했다는 건 알지만 조선의 사신이 청나라를 찾았을 때 무언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부채를 선물했다는 건 처음 알게 됐는데요. 요즘은 선풍기나 에어컨이 있어서 무더운 여름날 부채를 보기 드물지만 그 옛날엔 부채가 대나무를 손질하고 종이를 붙이는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 수공이 가해져서 무척이나 귀한 물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책상 뒤로 떨어진 책을 찾다가 거기서 몇 년 전 다니는 절의 스님께서 손수 만들어 주신 부채를 발견했는데, 귀한 부채를 함부로 다룬 것 같아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랑과 이별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노래의 소재였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떠난 이를 아쉬워하는 한시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바로 연암 박지원의 시였습니다.




우리 형님 얼굴은 누구와 비슷했나

선친 생각날 때마다 형님을 보았었지

이제 형님 생각나면 어디서 뵈올까

의관을 갖춰 입고 냇물에 비춰봐야겠지.(107쪽)




‘그립다’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이 시에서는 먼저 떠난 아버지와 형님을 그리워하는 박지원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꿈에도 그리운 아버지와 형님을 만나기 위해 의관을 차려입고 냇물에 자신을 비춰보는 연암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을 진한 그리움이 배어나왔습니다.




책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이해불가인 정도도 아니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해준 한시를 만나고 있으려니 옛사람들에게 있어 한시를 짓는 일은 일상이 아니었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속으로 잠재워 한시로 조용히 읊으며 다스렸던 옛사람들. 문득 그들의 삶의 자세를 닮아가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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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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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이었습니다. 최성일의 <어느 인문학자의 과학책 읽기>를 만났습니다. 지금은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때 과학도였던 저는 인문학자는 과학책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는지 궁금했습니다. 학창시절 <코스모스>를 인상 깊게 읽었다는 저자는  우리 일상이 과학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자신이 읽었던 책을 통해 모색하고 있었는데요. 저자가 본문에서 언급한 책 중에 막상 읽은 건 몇 권 밖에 되지 않지만 저자의 책읽기를 통해 새로운 걸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구요. 좀 더 깊이있는 책읽기, 비판적이고 추론적인 책읽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책의 저자가 지난 7월, 지병을 앓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제게 새로운 도전의식을 일깨워준 저자의 죽음에 충격과 놀라움, 안타까움이 밀려왔 습니다. 얼마전에 그의 마지막 책을 만났는데요. 그 어떤 수식어도, 부제도 없이 단 한 줄 <한 권의 책>이란 제목만이 적힌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그 느낌이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책을 읽었고 그 중에 저자가 이미 유명을 달리한 책도 무수히 많았건만 이번과는 달랐습니다. 왠지 모를 설레임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책장을 펼쳤을 때, 제가 만난 건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한 아내의 글이었습니다. ‘남편의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왜 그다지도 마음이 아프던지... 남편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쓴 아내의 글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저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책을 너무 좋아해서 외출을 줄일 정도였다는 것과 자신은 그렇게 책을 좋아했음에도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지 않는 아버지였다는 것과 지저분한 손으로 책을 볼 수 없어 늘 손을 씻었다니 책을 대하는 저자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서평이라고 할 수도 없는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서평집을 읽었습니다. 이름난 저자의 책, 내공이 깊은 그들의 서평을 보면서 저의 글에 무엇이 부족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이 읽었던 책을 나 역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수첩에 길고 긴 목록을 적어 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전 어딘가 주눅이 들어 있었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최성일, 저자의 글은 저를 주눅 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제가 읽지 않은 처음 만나는 책인데도 그의 글의 흐름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보니 저자의 글에는 독자를 현혹시키는 수식어가 없고 단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장도 어렵지 않아서 짧은 글 속에서도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제일 먼저 소개되어 있는 책 <즐거운 불편>은 저자가 ‘11가지 물질과 편리함을 일상하게 멀리하는 실험’에 관한 것인데 이 책을 읽지 않은 저는 예전에 읽었던 <굿바이 쇼핑>을 떠올리며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고 얼마전에 참가했던 박물관 강좌를 바탕으로 <밤의 일제 침략사>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지인들과의 독서모임에서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으로 인권에 관해 열띤 토론을 했기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이란 책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답니다.




처음 만난 책인데도 이 정도인데 저자와 저의 공통분모, 함께 읽은 책은 어느 정도였겠습니까.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들렀던 청년의 이야기가 담긴 <노 맨스 랜드>에 대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예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야구를 사랑하는 소년들의 성장소설인 <배터리>에서는 우리만의 야구성장소설을 꿈꾸기도 했으며 ‘<태양의 아이>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는 결코 상대하지 않’겠다는 대목을 보며 ‘저두요! 제 생각도 그래요’하고 공감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의 공감을 받아줄 저자가 세상에 없으니...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남은 책장이 줄어드는 걸 ‘아쉽다’고 생각하기는 처음입니다. 길지 않은 삶을 책과 함께 치열하게 살아간 저자의 글, 그의 생각을 좀 더 만나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마지막 책장을 덮고 다시 앞으로 돌아갑니다. 공감하는 글귀, 생각하게 하는 대목에 줄을 긋고 읽고 싶은 책, 구입해야 할 책에 포스트잇을 붙여둔 걸 보면서 불현듯 저자는 밑줄도 자를 대듯 반듯하게 그었다는데...하는 생각이 밀려듭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한 저자의 책사랑, 제게 많은 걸 일깨워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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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빼앗긴 사람들 -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사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
틸 뢰네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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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올빼미다. 오전엔 내내 해롱거리다가 해가 어스름하게 넘어갈 쯤부터 기가 살기 시작, 자정에 임박해서 정점을 찍는다. 시간은 이미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갔지만 나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잘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좀 더 보낸 후에야 잠자리에 든다. 그때가 대략 새벽 3~4시. 때론 해가 뜨기 직전 밖이 밝아질 무렵이 되기도 하지만. 여하튼 난 이런 생활리듬, 패턴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나의 생활리듬은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다름아닌 시댁 식구들이 전형적인 종달새, 아침형 인간이었던 것. 저녁 9시 뉴스가 끝나기도 전에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불 끄고 잠자리에 눕는 걸 보면서 난 황당과 당황 사이를 오갔다. “아니, 뭐야. 왜들 벌써 자?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항의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따라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정신은 말똥말똥...죽을 맛이었다. 아이 낳고서는 더 심해졌다. 어린 아기 때는 밤낮없이 수시로 빽빽 울어대더니 자라선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를 보면서 시어머니는 툭하면 “어미가 밤에 잠 안자고 있으니 애들이 저렇지!”라며 면박을 주셨다. 오기가 생겼다. 좋다! 그럼 애들 깨어있을 때 나도 깨어있지. 이후 나는 새벽 서너 시에 잠들어서 일곱 시쯤 일어나 아이들을 챙겼다. 완벽에 가깝게.




하지만 원더우먼이 될 수는 없었다. 몸에 서서히 이상이 생기더니 몇 년 전부터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수시로 편두통과 감기에 시달렸다. 급기야 한의원에서 침 맞고 뜸을 뜨는 약 한 시간 동안 내내 가위 눌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건 정말 사는 게 아니란 생각, ‘밤에 제발 잠 좀 자라’는 의사 말에 한동안 취침시간을 자정으로 당겼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울했다. 왜 그럴까? 도대체 나의 무엇이 문제인걸까?




최근에 만난 책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이 좋은 실마리가 되었다. 시간생물학자인 저자는 우리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물체들은 몸속에 시계(체내 시계)가 있어서 그것을 거스를 경우 건강을 해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인간이 그 체내 시계의 흐름에 따라 잠을 자고 깨어있는 게 정말 힘들다는 데 있다. 출퇴근과 등하교 시간이 정해져있듯이 우리는 일상 속에서는 수많은 시간의 제약이 존재한다. 어쩌다 야근이나 원거리 출장이라도 다녀오고 나면 생체리듬은 여지없이 깨어져서 평범한 일상으로 회복하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이 생체 시계는 언제부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을까? 저자는 인간이 태양의 뜨고 짐에 맞춰 살아갈 때는 별다른 문제없이 충분히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 시간에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게 된 대사건, 철도의 발명으로 인해 우리의 생체 시계가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거기에 밤이 되어도 환한 도시와 공장의 빛은 점점 우리가 태양의 움직임과는 무관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의 체내 시계가 서서히 틀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이런 얘길 한다. 바로 우리 인간의 외모와 성격이 모두 제각각이듯 각자 체내 시계의 리듬도 저마다 다르다고. 거기다 그 유형이 새벽형, 올빼미형 단 두 가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무수히 많은 인간처럼 다양한 체내 시계가 존재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진행되는지 저자는 여러 사례와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이를테면 평소 생활하면서 느꼈던 것들, 하루 중 유독 점심 때 졸리는 건 뭔지, 십대 청소년들은 왜 그다지도 아침에 깨어나기 힘들어하는지... 이런 의문들에 대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나처럼 올빼미형 인간이 일반 사회 시간과의 간극을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는지 그 해결책 또한 제시하고 있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시계에 관한 이야기다. 돈 주고 사서 손목에 차고 다니거나 벽에 걸어놓는 시계가 아니라, 우리 신체 안에서 똑딱거리는 시계에 관한 이야기다.(6쪽)’ 자신의 몸속에서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체내 시계에 대해, 그 비밀이 알고 싶다면, 그 체내 시계가 다른 이와 다른 움직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에서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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