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의 거장들 - 그 천년의 소리를 듣다 : 한국 음악 명인열전
송지원 지음 / 태학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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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바뀌는 걸까? 시간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걸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름을, 달라졌음을 느낄 때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먹거리와 생활방식, 일상의 기호에 이르기까지 달라진 지금 나의 모습, 이런 변화의 요인은 대체 무얼까.


국악, 우리의 전통음악을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피해 다녔다고 해야 할까요? 학창시절 어쩌다 늦은 밤 텔레비전 앞에 앉아 뭔가 재미난 걸 찾다가 채널이 국악프로그램에 머물면 얼른 돌려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이렇게 지겹고 고리타분한 걸 대체 누가 본다고. 찾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했지요. 그러다 나이를 들어선지 시간이 흘러선지 제 귀에 우리 음악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요. 그때가 서른 고개를 넘었을 때였습니다. 조용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일렁임이 있고 묵직하면서도 솜털처럼 가벼운 국악의 매력에 난생처음 빠져들었는데요. 삼십 대에 두 아이를 배 속에 길러내면서 줄곧 들었던 음악도 바로 우리 음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긴 호흡의 국악을 너끈히 감상하기엔 제 소양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고 있던 차여서 <한국 음악의 거장들>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국악의 전문적이고 자세한 지식보다 우선 우리의 소리, 우리의 음악을 평생 지켜왔던 이들의 삶,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게 더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책은 ‘1장. 거문고와 가야금의 거장’ ‘2장. 시대를 울린 음악의 명인’ ‘3장. 노래에 취한 가객’ ‘4장. 장악원의 음악 관리’ ‘5장. 이론가와 작곡가’ ‘6장. 후원자와 감식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삿된 마음을 금하고 자신을 이기는 방법으로 거문고를 연주했다는 조선후기의 문인 오희상을 통해 당시 우리 선조들은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마음을 조용히 가다듬었다고 전하는데요. 거문고를 연주함에 있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오능), 거문고를 연주하면 안되는 상황(오불탄)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차원이 아니라 도(道)에 이르는 경지라고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빼어난 연주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데요. [악학궤범]의 저자인 성현의 거문고 스승인 이마지의 연주는 얼마나 빼어났는지 사람들은 그의 거문고 연주 속에서 기쁨과 슬픔, 분노, 즐거움, 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고. 거문고 소리가 실로 애절하고 절절했다는 이금사와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이금사의 연주를 그리워했던 성해응의 사연, [현의 노래]을 통해서도 알려졌던 우륵의 가야금, 소현세자를 따라 조선에 들어왔다가 귀화하여 장악원에서 비파를 가르치기도 했다는 명의 악공 굴씨, 깊은 숲에 울려 퍼지는 대금 소리가 흡사 신선이 숲과 같았다는 억량, 아쟁 연주로 귀신까지 울렸다는 김운란 등 우리 역사에 빼어난 연주자가 정말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요. 관악기도 현악기도 아닌 악기, 흐느끼듯 구슬피 우는 소리를 내는 악기 해금의 명인 유우춘은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해해주는 이들 앞에서만 연주하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연주하기를 접었다는 대목은 제가 한창 해금 소리에 빠져있어서인지 무척 안타깝게 다가왔습니다.


올여름은 유독 더웠습니다. 깊은 밤이 되어도 한낮의 뜨거운 열기기 가시지 않아 잠들기조차 힘겨웠는데요. 그럴 때면 우리 음악을 듣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는데요. 쉬운 문장과 길지 않은 글을 낮은 소리로 읽어보니 그 속에 왠지 높고 낮은 리듬이 느껴지더군요.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간간히 풍경을 울리는 가운데 나지막한 우리 음악과 책 읽는 소리가 조화롭게 이어지고 어느샌가 아이는 곤히 잠들곤 했는데요. 그 모습이 참 고요하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이전에 출간된 <옛 음악인 이야기, 마음은 입을 잊고, 입은 소리를 잊고>는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그 책도 소리내어 읽고 싶은 마음,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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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
마이클 모퍼고 지음, 마이클 포맨 그림, 김은영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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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 제목만 보고 처음엔 쿡쿡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희집 아이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작은 것도 자꾸 부풀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우리집엔 @@도 있다? ##도 있다? 이러다가 작은 서민아파트가 거의 궁전수준으로 탈바꿈해 버리는. 그래서 이 책도 그런 깜찍하고 엉뚱한 아이들의 일상을 담은 생활동화이거나 판타지 동화일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표지를 보니 아니더군요. 몹시 추운 겨울밤, 눈 덮인 길을 코끼리와 걸어가는 이가 있습니다. 그 뒤로 밤하늘을 비추는 몇 개의 불빛.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이들은 추운 겨울밤 거리로 나선 걸까? 그것도 코끼리를 데리고...? 의문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요. 표지 아래의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 폭격’ ‘독일의 드레스텐 사건’이라는 글귀를 보고 그제야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의 화자는 노인요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그녀에게는 아홉 살 난 아들 칼이 있는데요. 가족이라고 해봐야 단 둘뿐이기에 그녀는 주말에 일을 해야 될 때면 아들을 요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것 외엔 달리 방법이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이런 엄마의 염려와는 달리 칼은 너무나 잘 지냈습니다. 아니, 조용하지만 생기 없는 요양원에 칼과 그 친구들이 드나들면서 활기를 불어넣자 노인들이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는데요. 그런 어느 날 그녀는 아들 칼이 리지 할머니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게 됩니다. 그녀는 칼에게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줍니다. 그 할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우리집 정원에 코끼리가 있었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만 칼은 리지 할머니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원에서 코끼리를 키웠다는 것도 사실일 거라고.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칼과 함께 리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리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마들렌이라 불리는 코끼리와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과 리지 할머니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몹시 추운 2월 13일에 벌어진 이야기들을...


이후 책은 리지 할머니의 이야기로 이어지는데요.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독일 드레스덴에 폭격을 가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드레스덴 사건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수십만의 민간인이 죽음을 당한, 참혹한 학살이 벌어진 드레스덴 사건이 제2의 히로시마라고 부른다는 것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다 작년초에 지인들과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이라는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드레스덴 사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우리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와 <제5도살장>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느낌과 분위기는 조금 다르더군요. SF소설의 형식을 띤 <제5도살장>이 융단폭격이 가해진 이후의 참혹함을 “그렇게 가는 거지”란 말로 다소 황당하고 유머러스하게 전했다면 이 책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의 혼란 속에 피난을 가면서 코끼리를 데려간다는 것에서부터 그런 와중에 벌어지는 일들이 아픔과 슬픔, 안타까움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결코 살벌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야기의 진행이 현재 시점이 아니라 과거의 있었던 일을 초로의 노인이 아이에게 들려주는 형식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특히 후반부, 추위와 굶주림 속에 힘겹게 길을 가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면서도 순간 눈물이 맺혔습니다.


마이클 모퍼고. 그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책장을 덮어도 자꾸만 생각나고 왠지 마음이 끌립니다. 이제 그의 다른 작품들을 하나씩하나씩 만나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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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아이들 6 - 인구 경찰이 된 아이들 봄나무 문학선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이혜선 옮김 / 봄나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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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인상적인 기사를 봤습니다. ‘셋째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기사였는데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를 내세운 산아제한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는데요. 최근 몇 년 전부터 셋째 아이의 출산율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합니다. 셋째 아이부터는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셋째는 부의 상징이자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오가는데요. 그러거나 저러거나 어찌됐든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첫째든, 둘째든, 셋째든지 간에 귀중한 보배이자 버팀목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만약 셋째 아이를 금지하는 사회, 셋째 아이의 출산을 불법이라고 처벌을 가하는 나라가 있다면 어떨까요? 아, 물론 지금도 인구증가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나라에서는 산아제한을 펼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인구경찰을 곳곳에 배치해둬서 셋째 아이가 발각될 경우 그 즉시 처형을 가한다면...어떻게 될까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고 소름이 끼치는데요.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의 <그림자 아이들>은 바로 이런 셋째 아이의 존재를 거부하는,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년에 <그림자 아이들 1권, 숨어사는 아이들>이 출간된 이후로 다음이야기가 속속 나와서 최근 드디어 6권에 이르렀습니다.


<그림자 아이들> 시리즈는 매 권마다 등장하는 주인공이 조금씩 변화가 생깁니다. 그에 따라 부제가 붙는데요. 6권의 부제는 ‘인구경찰이 된 아이들’입니다. 그림자 아이들로 하여금 명칭만으로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인구경찰’인데, 그런데 아이들이 인구경찰이 된다고? 이야기가 대체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표지에 짙은 제복을 입은 청년들 가운데 불안한 눈빛을 한 소년. 저 소년이 이번 6권의 실마리가 되는 걸까?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을 몰아내고 인구경찰 본부가 정권을 잡은 5권에서는 그림자 아이들이 더욱 낭떠러지로 내몰리는 상황이 벌어졌지요. 그런 가운데 겁 많고 소심한 소년이었던 트레이가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인구경찰에 입대하게 됩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될 적일수록 곁에 두고 지켜보라는 속담이 생각났는데요. 이번 6권은 위기가 초절정에 달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깊은 밤, 아이들이 곤히 잠든 시각에 인구경찰이 들이닥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요. 잠에서 미처 깨지 못한 아이들까지 무턱대로 트럭에 태운 인구경찰은 아이들을 노동수용소로 끌고 갑니다. 노동수용소에 가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마티아스는 퍼시와 알리아의 탈출을 궁리한 끝에 탈출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트럭이 큰 나무와 부딪치면서 트럭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부상을 입게 되는데요. 알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알리아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티아스는 당황하고 잠시후 퍼시는 인구경찰의 총에 맞게 됩니다. 두 아이가 모두 심각한 부상을 입자 마티아스는 혼란에 빠지는데요. 다행히 숲속의 오두막집을 찾은 마티아스는 우연히 오두막집의  숨겨진 비밀장소를 발견하기에 이르는데요. 숨겨진 지하실, 비밀의 장소는 대체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곳일까요? 마티아스는 퍼시와 알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까요?


<그림자 아이들>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많은 의문과 궁금증을 가지고 책장을 덮었는데요.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까. 그림자 아이들이 행복한 날을 맞게 될까?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완결편이라는 <그림자 아이들 7권>.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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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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쫙 펼쳐든 두 손. 유리에 묻은 물방울을 닦으려는 건가. 무언가를 가리려는 것인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왠지 후자의 경우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두 손을 내민 이는 분명 애써 무언가를 가리려고 한다고. 그런데 대체 그게 무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저자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짧은 인생을 말하려는 걸까, 끝없는 욕망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다소 철학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의 책을 손에 쥐고 한창 고민했다.


사실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는 출간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호기심이 일었던 책이다. 우선 이 책이 페미나 상을 수상했다는 것부터. 1904년에 창설된 프랑스 문학상인 페미나 상은 12명의 심사위원이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남성 권력 위주의 콩쿠르 상에 대적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것만 보자면 이 소설의 작가 파트리크 라페르는 당연히 여성이겠거니...싶지만 그게 아니다. 남성이다. 이거, 의외인 걸? 그렇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책인가? 짐작했지만 그것 역시 잘못된 생각. 루이와 머피라는 서로 다른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여 그들의 사랑과 욕망에 대해 털어놓는 남자들의 사랑이야기다.


소설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는 가운데 자동차 안에서 잠자듯 숨죽이고 있는 남자 루이 블레리오가 한 통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가 자그마치 2년 동안이나 기다려온, 노라의 전화였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숨죽이고 있던 그는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동물처럼 순식간에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한편 머피 블룸데일은 자신의 집에 노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 나머지 무기력에 빠진다. 노라가 사라진 공간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같은 여인에게 매료된 나머지 삶의 활기마저 잃어버린 루이와 머피의 모습에 순간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노라는 어떤 여인일까? 얼마나 매력적이길래 두 남자가 이렇게 애타게 그녀를 그리워하는 걸까.


노라는...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여인이다. 머피와 사랑을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그에게 등을 돌리고 루이의 곁으로 날아든다. 그러다 또다시 루이를 떠나고 루피를 찾아 나서는데. 사실 루이는 유부남이었다. 이미 아내가 있음에도 그는 노라와의 뜨거운 사랑, 욕망을 저지하지 못했다. 하버드 출신에, 증권중개인으로 성공한 머피도 사정은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머피는 금욕적인 성향이 강해서 루이처럼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가 노라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열정적인 루이와 순수한 머피, 그 두 명의 남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사랑과 열정에 자신을 내던지는 노라. 소설은 이 세 주인공의 사랑과 끊임없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있어 사랑은, 욕망은 어떠하냐고. 나는 이렇소. 이게 나의 생각이요. 하고 명쾌한 답변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문득 <욕망해도 괜찮아>란 책에서 읽었던 대목이 생각난다. ‘인간의 내면은 아무리 파고 들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복잡한 것’이라고. 욕망도 이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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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 In the Blue 6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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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물빛 도시가 찾아왔다. <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

 

번짐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이 출간됐다. 사진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약간의 수채화 그림과 글로 이뤄진 책. 그래서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읽을 수 있는 책.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일 뿐.

 

올 여름은 여느 때보다 무더운 폭염이 이어졌다. 이미 잠자리에 들었어야할 시간인데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 하는데, 어서 자야 하는데...한참 뒤척이다가 이내 포기하고 거실의 불을 밝혔다. 현실에서는 이 더위를 떨칠 수 없으니 그렇다면 과감하게 맞서주마. 이런 심정으로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럴 때 몇 번이고 펼쳐든 책이 있으니. 바로 <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였다.

 

번짐 시리즈에서 언젠가 베네치아를 이야기하겠구나...어느 정도 짐작했다. 지난달 읽었던 <추억이 번지는 유럽의 붉은 지붕>에서 작가는 이야기했다. 물이 흐르듯이 꽃이 피듯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베네치아를. 산 마르코 광장에 우뚝 솟은 종탑에 올라 베네치아의 붉은 지붕을 내려다보고 노 젓는 곤돌라를 바라보며 추억과 아쉬움을 남겨두고 왔다고 했다. 그랬는데...이렇게 바로, 금방 베네치아를 만나게 될 줄이야...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오셀로>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영화와 의 배경이 되었던 전력이 있어서일까. 내게 있어 베네치아는 특별한 존재였다.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은 나라였다. 그 중 으뜸이 바로 베네치아가 천 년의 세월동안 이어져온 물의 나라, 바다의 도시라는 점. 바다 위에 도시와 나라가 세워졌다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나와 같은 궁금증을 지닌 이들을 배려해서일까. 저자는 초반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베네치아는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 생존을 위해 이탈리아인들이 숱한 나무기둥을 박아 그 위에 건설한, 지금도 조금씩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다’고. 바닷속으로 조금씩 가라앉는 다니. 놀랍고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베네치아를 찾는 이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건 아마도 베네치아가 품고 있는 매력, 이야기 때문이라니...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 차가 없는 도시. 길을 건널 때도 배를 타야하고 집 앞에 자동차 대신 배를 메어두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를 사진과 글로 만나면서 많은 걸 알게 됐다. 높은 곳을 싫어하던 저자가 용기를 내어 올랐다는 산 마르코의 종탑. 천 년을 꼿꼿하게 서있던 종탑이 예전에 무너졌었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때 무너진 벽돌을 그대로 보존했다가 다시 쌓아올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베네치아 사람들이 자국의 문화유산을 얼마나 사랑하고 보존하려는 의지가 큰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물이 찰랑대는 운하의 골목을 돌면서 저자는 어린 시절 물난리를 겪었던 일화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베네치아에는 하수시설이 없단다. 순간, 뭐라고? 했다. 하수시설이 없다고? 해마다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지나가면 물난리가 나서 마치 난리가 난 것처럼 동네가 풍비박산이 나는 것을 신문으로 뉴스로 봐왔던지라 저자의 말이 실감나지 않았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했다. 그런데 진짜란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조류가 드나들면서 운하의 물을 끊임없이 새로운 바닷물로 바꿔주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 위에 배처럼 둥실둥실 떠 있는 것 같은 도시를 누군가의 말처럼 보지 않았을 때보다 보고 나니 더 믿기지 않는다고. 그 비현실감을 나도 경험해보고 싶다. 118개의 섬과 177개의 운하, 그리고 400여 개의 다리가 있다는 베네치아. 물 위에 떠 있는 도시. 베네치아의 뒷골목을 조용히 거닐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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