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이 미술로 달라졌어요
최민준 지음 / 아트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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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의 일이다. 매일같이 야근에, 회식에 늦게 귀가하던 남편이 모처럼, 정말 오랜만에 제 시간에 퇴근을 했다. 저녁을 먹고 두 아들 녀석이 블록놀이하고 있을 때 커피 한잔 들이밀면서 슬그머니 얘기를 꺼냈다. 큰아이가 숙제를 잘 안 챙겨서 학원샘한테서 자꾸 연락이 온다고. 어떻게 숙제도 안 하고 놀고 잠을 잘 수 있는지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 자기가 한 번 얘기해보라고. 같은 남자니까 통하는 게 있을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남편은 뜬금없는 얘길 한다는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숙제 안 해도 잠 잘만 오는데?” 잠깐 혼나면 끝인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자기도 그랬다고.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순간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아이고...아빠와 아들이 서로 닮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똑같을 수 있다니.


사실 남자와 여자가 같을 수 없다. 지금까지 숱하게 읽었던 인간의 뇌와 성격에 관한 책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기 때문에, 엄마 뱃속에서 이미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기 때문에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자 여자이자 엄마인 난 알고 싶었다. 남자인 아들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지 자꾸 의문이 들었고 한편으론 불안했다.


그래서 ‘남자아이를 위한 맞춤형 미술교육 노하우’라는 부제의 <우리 아들이 미술로 달라졌어요>란 책이 출간되었을 때 지금껏 내가 찾던 것이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그림 그리는 것도 만드는 것도 재밌게 즐겁게 잘만 하던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그림’이나 ‘미술’ 얘기만 꺼내도 손사래를 치며 꺼려하는 게 아닌가. 더구나 내년이면 큰 아이는 중학교에,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나로선 두 아들의 미술교육이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미술교육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니.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르다는 걸까? 남자아이들을 위한 미술교육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너무나 궁금했다.


큰 기대를 품고 책을 펼친 나는 책장을 몇 장을 넘기지 않아서 ‘풋!’ 웃음이 나왔다. 저자 역시 어릴 때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숙제를 안 해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노라고 쌈박하게 털어놓는 걸 보면서 또 한 번 실감했다. 내 남편과 아들만이 유독 별난 게 아니란 것(이건 위안이 된다). 남과 여, 정말 다르다는 것.


이후 책은 엄마가 모르는 아들의 마음, 이를테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죽어도 말하지 않는 것과 아들이 ‘네에’라고 대답했다고 해서 그것이 긍정과 수긍의 사인,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라는 건데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떴다. 그래서 여자인 난 어쩌란 것이냐.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아들이 말을 안 듣고 늘 산만하다는 얘기를 듣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라고. 그게 바로 창의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의 특징이라고. (오호, 희망이 생긴다.) 그런 다음 남자 아이들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미술교육을 어떻게 해야 효과적이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지 하나하나 짚어준다. 그리고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매료되는 것들, 자동차나 공룡, 로봇, 무기, 스포츠 등을 주제로 아이들과 활동한 것들을 수록해 놓았는데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자동차와 로봇에 푹 빠져있는지라 특히 더 자세히 보게 됐다. 


저자는 말한다. 아들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부족함을 채우려고 하기보다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잘 할 수 있는 부분,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기질을 찾아 제대로 발휘하고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아이도 조금씩 변한다고. 수많은 육아서적에서도 비슷한 글을 읽었지만 이번엔 더욱 절실하게 와 닿았다. 아이가 변하길 바란다면 그전에 먼저 내가 달라져야 한다. 육아에 있어서 가장 기본 중에 기본,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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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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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와라 히로시. 그가 처음이었다. 몇 년 전 그의 소설 <하드보일드 에그>를 앞에 놓고 불쑥 내 뱉은 말, “대체 ‘하드보일드’가 뭐야?” “계란을 완숙하다...그럼 ‘하드보일드 에그’는 ‘완숙 계란’? 참 요상한 제목이로세”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 때문에 한참 고민했는데 ‘하드보일드(Hardboiled)’는 쉽게 말해서 ‘비정. 냉혹’이란 뜻의 문학용어로,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에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이란 부제의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를 보면서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드보일드 에그>의 주인공이 사춘기 때 읽은 챈들로의 소설 속 인물, 필립 말로에 반해서 자신도 고독과 차가운 이성이 돋보이는 탐정이 되고자 했던 것처럼 이 책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에는 또 어떤 인물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가 됐다.


‘시작은 홈즈와 뤼팽이었다’고 저자는 자신이 하드보일드의 세계를 접하게 된 때를 이야기한다. 홈즈와 뤼팽 다음으로 아가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 뒤이어 미스터리와 스릴러, 환상과 SF문학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일련의 과정이 나와 유사한 대목이 많아서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다만 저자가 충격적이면서도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의 출연으로 3대에 걸친 마피아 가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대부>를 꼽았는데 난 그다지 깊게 와 닿지 않았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세상의 수많은 부조리에 절망하여 타협하거나 포기하기보다 오히려 그에 맞서기 위해 뼛속 깊이 고독과 냉혹한 이성으로 무장한 이들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을 저자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그에 못지않게 악인 역시 존재하며 평범한 일상 가운데 벌어지는 갖가지 범죄에 대한 작품들(요시다 슈이치의 <악인>,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마이클 코넬리의 <유골의 도시>,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 없는 독>...)을 시작으로 참혹한 세상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평범한 사람이 범죄자, 악인이 되어가는 소설(데니스 루헤인의 <비를 바라는 기도>, 로렌스 블록의 <무덤으로 향하다>,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 치열한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횡횡하는 사회 속에서 교육의 진정한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사쿠라바 가즈키의 <아카쿠치바 전설>, 후루카와 히데오의 <벨카, 짖고 있는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짐승의 길>,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 비정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것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의 이야기(제프리 디버의 <본 콜렉터>, 로버트 크레이스의 <워치맨>, 리 차일드의 <추적자>...), 시스템이란 거대한 조직에 매몰되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 이들의 이야기(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 가키네 료스케의 <와일드 소울>, 가이도 다케루의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등 총 38편의 소설이 소개되어 있다.


문화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저자가 전하는 하드보일드 소설 속 사회와 주인공을 비롯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38편의 소설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읽지 않은 책은 전적으로 저자의 이야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의 생각과 의견이 곧 나의 생각과 의견처럼 되어 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 그것은 각각의 소설과 내용, 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아니라 비정하고 불합리하고 공평하지 못한 이 세상,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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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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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로 길게 땋아 내린 머리, 흰 상의. 보이는 건 오로지 뒷모습뿐인데도 왠지 알 것 같다. 단정한 차림새, 뒷목의 가녀린 솜털...에서 여인이 되기 이전의 소녀의 앳된 모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소설의 내용’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란 제목과 십대의 소녀.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책은 양엄마인 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카밀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내가 죽은지 2년도 되지 않았지만 젊은 여인과 재혼을 서두르는 양아버지는 카밀라의 어린 시절 물건들을 보낸다. 커다란 박스로 여섯 개나 되는 물건들을 쌓아두고만 있던 카밀라는 며칠 후 하나의 박스에서 손때 묻은 낡은 곰 인형을 발견하고 솟구치는 슬픔에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그리고 무심코 찾은 극장에서 한 남자, 유이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카밀라의 출생의 비밀(십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지 6개월 밖에 안 되었을 때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되었다)을 모르는 유이치는 어느날 카밀라의 유년의 추억이 담긴 박스를 살펴보면서 카밀라에게 글을 써보라고 말한다. 카밀라가 매일 추억의 물건을 소재로 써내려간 글은 자전소설로 출간되고 이어 그녀는 출판사로부터 책에 수록된 사진을 바탕으로 논픽션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 제안이 ‘운명이 부르는 소리’라고 여겼던 카밀라는 유이지와 함께 진짜 집, 엄마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낡은 사진과 편지 한 장을 들고.


드디어 고향, 진남에 도착한 카밀라는 자신의 진짜 엄마가 다녔다고 짐작되는 학교, 진남여고를 찾는다. 하지만 그녀의 일행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비밀이었다. 진짜 엄마의 비밀을 알려줄 인물, 진남여고의 교장은 카밀라의 주장을 거짓으로 치부해버린다. 진남여고의 학생 중에는 순결의식을 치르기 때문에 십대 미혼모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망한 카밀라는 신문사를 찾아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신문에 게재하는데 이야기하고 이후 친모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이가 찾아와 충격적인 얘기를 전해준다. 카밀라의 엄마인 정지은은 분명 진남여고를 다녔으며 오래전에 죽었다는 것. 더 자세한 걸 알고 싶으면 교장을 다시 만나라는 것. 카밀라는 과연 자신의 출생과 친모의 죽음에 관한 진실과 비밀을 알게 될까...


‘카밀라’, ‘지은’, ‘우리’로 나뉘어진 책은 미국과 한국의 남도, 일본과 동남아를 배경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드라마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것이지만 책은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다. 정희재(카밀라의 한국이름)의 출생의 비밀과, 그녀의 엄마인 정지은의 이야기가 시점이 수시로 변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서 이야기에 빠져 책을 읽다보면 나중에 다시 앞으로 돌아가 되짚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정희재의 친부가 누구인지를 추적해가는 분위기 속에서 저자는 자신을 낳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희재와 뱃속에 품은 아이를 마음껏 사랑해줄 수 없었던 지은의 아픔을 말한다. 서로 가깝다고 여겼던 이들이 어느 순간 가장 멀게 느껴질 만큼 돌아서버리게 되는 순간의 안타까움과 슬픔도 저자는 담담한 말투로 전한다. 아픔과 슬픔을 꾹꾹 누르고 쓴 글이어서일까. 그만큼 더 간절하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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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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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어느새 조금 누그러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제 가슴에도  조금씩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어딜 봐도 비슷비슷한 모양의 아파트로 사방이 틀어 막힌 곳을 벗어나고 싶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 전 단박에 말합니다. “제주도!”라고.


그럼 제주도를 아직 못 가봤느냐?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대학시절 전공 때문에 저희 과는 해마다 채집여행을 가는데 제주도도 그렇게 채집여행으로 갔습니다. 제주도를 간다고 저나 친구들은 잔뜩 들떠있었지만 막상 저희들이 향한 곳은 제주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썩은 섬’에서 내내 조개와 새우, 게, 가재를 채집했구요. 한라산에 오를 때도 저희에게 내려진 지시는 ‘제주의 식물분포와 생태 관찰’이었습니다. 결국 제주도를 갔지만 갔다고 볼 수도 없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되어 버린지라 언제든 제주도를 가서 제대로 둘러보고 말거라고 다짐을 했는데요. 안타깝게도 그때의 다짐을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답니다.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 제주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왠지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곳곳을 살펴보고 그 의미와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계기를 심어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매번 챙겨서 보곤 했는데요. 이번이 ‘제주도’라니.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제주도를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숱한 여행서와는 분명 뭔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은 ‘제주 허씨’를 위한 ‘제주학’ 안내서라고. 렌터카를 이용해 제주도를 자유롭게 여행하기 위해 여행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제주도의 제대로 된 역사와 자연, 문화유산을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지었노라고.


제주답사 일번지, 와흘 본향당을 시작된 책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제주공항의 가로수로 심은 나무이야기를 비롯해서 산천단에서 제를 올리며 답사의 마음을 다지는 것. 특히 제주 여인들의 영혼의 동사무소에 해당하는 ‘본향당’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지(흰 백지)를 가슴에 품고 소원을 빌면 그것을 제주의 신 ‘할망’이 읽어본다는 대목은 독특하면서도 감동스러워서 언제든 제주에 오면 잊지 않고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주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아픈 역사, ‘4. 3사건’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4. 3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기에 책이 전하는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었구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니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제주도의 모든 것은 제게 낯설면서도 친근했습니다. 자신의 진짜 살붙이에게만 ‘삼촌’이라고 부르고 그외 남을 부를 때는 모두 ‘삼춘’이라고 한다는 명칭이 그러했고 제주도 특유의 언어가 살아있는 명칭과 이름들은 책을 소리내어 읽을 때 입에 착 달라붙지 않아 더듬거리곤 했지만 그마저도 자잘한 재미로 다가왔습니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도록 제주도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에 사실 부끄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 제주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주도의 유명관광지를 둘러보기 이전에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어서, 그런 기회를 갖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어찌 보면 다시없는 행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결심만이 남았습니다. 언제 제주도로 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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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번지는 곳 프라하, 체코 In the Blue 7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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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야! 이렇게 야한 책 첨 봤어. 도저히 못 읽겠더라. 니가 볼래?”

대학 신입생때, 같은 과 동기이자 가장 절친한 친구가 내게 책을 한 권 내밀었다. 자신은 책의 내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그때 받은 책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심하다’는 친구의 말에 호기심이 동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막상 내가 느낀 것은 그 어떤 행위보다 무겁고, 끝없는 어둠과 가슴이 저미는 아픔과 슬픔, 안타까움이었다. 체코가 어떤 역사와 아픔을 가진 나라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나게 된 곳. 그곳이 바로 프라하였다.


이후,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체코와 프라하는 스무 살에 만났던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다. 왠지 모르게 차갑고 어둡게 가라앉은 분위기, 사람들의 모습, 일상에서조차 아픔이 느껴질 것 같은 생각... 그래서일까. <그리움이 번지는 곳. 프라하, 체코>를 읽으려고 책을 향해 뻗은 손이 순간 주춤했다. 지금까지 소박하면서도 장엄한 아름다움, 꿈길을 거니는 듯 아련한 그리움의 이야기를 전해준 번짐 시리즈가 프라하를, 체코를 어떻게 보여줄지...


너무나 궁금해서 서둘러 책장을 펼쳤다. 그곳에서 만난 건 잔잔한 강물 위에 마치  떠 있는 듯 아련히 보이는 붉은 지붕의 건물들.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넘쳐나는 낮과 여러 조명으로 화려하다 못해 황홀함을 드러낸 밤의 모습이 책장 가득 펼쳐졌다. 이런 곳이었나. 프라하가... 밀란 쿤데라의 작품과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어둡고 창백한 기운이 아직도 선하게 떠오르는데 책에서 만나는 풍경은 무척이나 따스했다. 이 도시를 카프카가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떠나지 못했다는데, 그 말이 어쩐지 이해가 됐다. 한없이 거닐고 싶어지는 이 거리와 골목길과 광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나도 아마 그럴 테니까. 좌우의 모습이 서로 다른 종탑을 고개를 한껏 젖히고 바라보면서 서로 다른 점을 찾아내려고 할테고 매시 정각마다 열리는 시계쇼를 몇 번이고 계속 볼테고. 존 레논의 벽 앞을 서성이며 그의 'Imagines'을 흥얼거리겠지. 거기다 보헤미안의 땅 체스키 크롬로프와 올로모우츠의 동화처럼 아기자기하면서 자유롭고 그리운 분위기에 한 번 젖어들면 난 아마 프라하를, 체코를, 절대 떠나지 못할 테니까...


그리움이 가득한 도시의 이곳저곳을 누비다가 문득 낯익은 이름을 만났다. 얼마 전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가 우리의 종묘를 다시 보기 위해 재차 방문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의 작품, 건축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곡선의 리듬과 독특함이 살아있는 건물을 보면서 건축은, 건물은 그저 무수히 많은 자재들로 만들어놓은 경직되고 틀에 박힌 무언가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우리의 종묘에 소중함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은닉>의 저자 배명훈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찍어온 체코의 알록달록 동화 같은 여행사진에 속지 말라고. 체코의 겨울은 그 사진들을 냉동 창고 안에 들어가서 보는 것만큼 춥다고. 하지만 어떠랴. 한겨울이 되어도 눈구경 하기 힘든 따뜻한 남도의 땅에 사는 난 그래도 가보고 싶다. 여기저기 볼거리로 가득한 거리와 결코 메마르지 않는 이야기들이 샘솟는 이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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