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발상의 비밀 - 노벨상을 수상한 두 과학자의 사고법과 인생 이야기
야마나카 신야 외 지음, 김소연 옮김 / 해나무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출간된 <새로운 발상의 비밀>은 어쩌면 그냥 지나칠 뻔했던 책이다. 붉은 욕조가 떡 하니 표지를 장식한 책은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뭐야, 이 책?’ 딱 이 정도? 그런데 ‘노벨상을 수상한 두 과학자의 사고법과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가 눈에 띄었고 붉은 욕조의 무늬처럼 보였던 것이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란 문구를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어, 뭐지? 노벨상이 어쩌고 하면서 어려운 말만 들입다 늘어놓은 거 아냐?’ 적지 않은 의심을 품고 책을 살펴봤다. 저자는? 야마나카 신야, 마스카와 도시히데. 오, 둘 다 노벨상 수상자군. 이 두 사람이 나눈 대담집이라, 솔깃하네.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의 대담이라 그런지 책은 그들의 연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인간을 이루는 60조 개의 세포 중에서 단 1개만이 수정란이 되어 분열과 증식을 거듭하고 여러 장기로 분화하는데 이렇게 한 번 장기나 조직으로 분화한 세포는 다시 이전의 미분화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야마나카가 꿈의 세포라는 iPS를 만들면서 이미 분화된 세포지만 어떤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도록 리셋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마스카와 역시 입자와 반입자의 구조와 성질에 대해 연구할 때 ‘쿼크’라는 입자가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된다는 건 알았지만 좀처럼 진척이 없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 떠올리면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세기의 대발견이라 할만한 연구 성과가 의외의 순간, 무언가를 빼고 포기하는 순간에 찾아왔다. 마스카와 도시히데와 야마나카 신야 두 과학자가 콜럼버스의 달걀, 발상의 전환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이유다.

 

 

대발견을 이루어낸 과학자. 그들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천재소년’으로 이름 날렸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마스카와는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를 한 번도 하지 않아서 노트는 언제나 깨끗했고 대학시절 진로를 정하지 못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다만 전기기술자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텔레비전을 분해하기도 했고 지나치게 토론에 열중한 나머지 ‘트집쟁이 마스카와’라고 불리기도 했다. 수학은 좋아하고 실력도 뛰어났지만 계산 실수가 잦은데다 기억력도 나빴지만 ‘마스카와식 암기법’과 추상화해서 계산하는 것을 고안해내기도 했다.

 

 

야마나카는 더 의외의 사실을 전한다. 학원이라곤 한 달 다닌 것이 전부지만 수학을 좋아해서 문제집을 화장실에 두고 ‘화장실 수학 시간’을 기다릴 정도였으며 어린이 과학잡지의 부록으로 오는 실험도구에 관심이 많아서 기계를 분해할 때 재미를 느꼈다고 전한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정형외과 의사가 되었지만 서툰 수술 실력 때문에 치료보다는 기초 연구로 방향을 전환한다. 약리학과 유전자에 대해 공부하다가 과학 잡지에 실린 구인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쓰기에 이른다. 당시 그는 분자생물학 실험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연구소 채용이 결정되고 나서 부랴부랴 속성으로 분자생물 기술을 익히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경험보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도전이 더 중요하다는 걸 증명해 보인다.

 

 

큰애가 중학생이어서 아무래도 아이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과를 지원하려면 수학과 과학 모두의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지금 큰아이는 수학이나 과학 하나의 성적만 좋다면 이과가 아니라 문과를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부족한 부분은 학원수업을 통해서라도 보충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학부모라면 누구나 할 법한 고민인데, 여기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수학을 좋아하느냐 아니냐는 계산을 빨리 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사물의 논리에 얼마나 흥미를 가지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 모든 것은 문장 속 단어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문장을 읽고 그 세계가 머릿속에 연상’되는지가 짚어봐야 한다고. 어떤 과학 공식이나 수식도 ‘기본적으로 ‘말’, 그래서 ‘국어’가 중요’하다고.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신난다는 마스카와, 꿈에서도 실험을 해서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야마나카. 이론물리학과 생명과학에서 획기적인 발견을 이룬 두 과학자마주한 때의 대담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과학을 좋아하는지, 즐기는지 알 수 있었다.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것보다 때론 둘러가더라도 흥미와 재미를 느끼고 온전히 몰입하는 것에 집중할 것. 그럴 때 발상의 전환,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다는 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 홈즈 장편 전집 Y 시리즈 세트 - 전4권 셜록 홈즈 장편 전집 Y시리즈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꿈꾸는 세발자전거 옮김, 시드니 패짓 외 그림, 박기완 감수 / 미다스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그가 돌아왔다. 시즌2, 건물 옥상에서 추락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모두를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만든 셜록.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시니컬한 그가 한결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방대한 지식과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간파해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리켜 고기능 소시오패스라고 당당히 칭하는 그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군침 도는 음식을 탐하듯 시즌3를 섭렵하고 나니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시즌4를.

 

 

지난 연말에서 올해 초로 이어지는 날들을 <셜록 홈즈 MINI> 시리즈와 함께 했다. 한 손으로 너끈히 쥘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책은 휴대하기가 좋아서 외출할 때마다 주머니에 한 권씩 넣어 다니며 읽었다.

 

 

그리고 얼마전 <셜록 홈즈 장편 전집 Y>시리즈를 만났다. ‘Why’의 발음과 ‘Youth’의 첫 글자에서 따온 말 <셜록 Y>시리즈는 이전에 읽었던 <MINI>시리즈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수록된 작품이 같고 붉은색의 수능 필수 어휘도 같다. 그럼, 뭐가 다르냐. 가장 큰 차이점은 <Y시리즈>시리즈에서는 각각의 페이지에 표시된 붉은색의 수능 필수 어휘를 오른쪽 페이지에 세로로 길게 따로 공간을 만들어서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MINI 시리즈 중 주홍색 연구>에서 ‘나는 봄베이에 도착하자마자 제5연대가 산지 통로를 이용해 이미 적진 깊숙이 전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대목의 단어 ‘도착’과 ‘사실’을 <Y시리즈>에서는 각각의 단어가 어떤 뜻인지, 비슷한 말과 반대말, 영어 단어(발음기호), 어떤 한자로 표기되는지 등을 꼼꼼하게 짚어주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해당 단어가 문장 속에서 어떻게 해석이 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필수어휘 심화학습’에서는 앞에서 나온 어휘들을 수능과 관련지어 다시 한 번 설명해 놓았는데 한자를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풀어놓은 부분이 눈에 띈다. 설명이 길어지는 부분에서는 ‘더 자세히 @@쪽’이라고 표시를 해두어 찾아보기도 수월하다.

 

 

내가 어릴 땐 본문 중에서 모르거나 헛갈리는 단어를 찾아 그 뜻을 조사해가는 속제가 종종 주어졌다. 당시 전과를 가진 친구들은 숙제를 쉽게 해결했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언니들이 쓰던 전과는 교과서가 바뀌면서 본문의 내용이 달라진 경우도 있어서 정말 난감했다. 그럴때면 단어의 뜻을 찾기 위해 전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뒤졌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힘들고 하기 싫었던 그런 것들이 어쩌면 국어를 공부하는 방법, 독해력을 기르는 기본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간혹 추리소설은 저급한 통속문학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추리소설을 뭐하러 읽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 <셜록 홈즈 Y>시리즈를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처음엔 일단 흥미를 갖고 책을 읽고, 두 번째 모르는 단어나 어휘를 확인하고, 세 번째 각각의 단어와 어휘가 문장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추리소설을 통해 어휘와 올바른 독해력을 기를 수 있다니 놀랍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시마다 소지 지음, 이윤 옮김 / 호미하우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세상은 너무나 넓어서 내가 읽어야 할 책도, 만나야 할 작가도 많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시마다 소지.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점성술 살인사건>을 비롯해서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등 지금까지 유명한 작품이 많이 출간됐지만 정작 만나지 못했다. 일상 속에서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해버리는 그릇된 습관이 몸에 배어서일까. 책읽기도 그랬다. 읽어야지,하는 책보다 읽고 싶다,는 책에 먼저 손이 갔다. 새해부터는 책 읽기의 패턴을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고 그 다짐 덕분에 시마다 소지와의 인상적인 만남을 갖게 됐다.

 

짙은 밤안개가 내려앉은 날 밤. 낡은 자전거를 끌고 마을을 순찰하던 다나카 순경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가로등에 방금 지나간 사람의 얼굴이 비쳤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한밤중에 검은색의 사각 고글을 쓴 것도 이상했지만 그보다 렌즈 속에 비치는 남자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는게 아닌가. 더욱 충격적인 건 고글 안의 피부가 마치 뜨거운 열에 녹아내려 검붉은 근육이 노출된 것처럼 보였다. 어딘가 기괴하고 괴이한 모습이지만 다나카는 그것이 짙은 안개로 인한 환상일거라 여기고 지나치고 만다. 하지만 담배 골목에서 벌어진 담배 가게의 주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그것이 환상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범행 현장은 포장이 벗겨진 새 담배들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그리고 빳빳한 5천 엔짜리 신권이 한 장 발견되는데 지폐의 위쪽에 노란색 줄이 그어져 있는게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 고글을 쓴 20대의 남자를 봤다는 목격자의 말에 다나카는 좀전에 자신과 마주쳤던 사람을 떠올린다. 수사팀은 담배골목의 나머지 두 가게에서도 노란 줄이 그어진 5천 엔짜리 신권을 발견한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듣는다. 비오는 날 유령이 담배를 사러 온다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노인의 말이지만 무언가 의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유령은 뭐고, 지폐의 노란 색 줄은 도대체 무얼까.

 

한편 ‘나’는 중학교 때 인적이 드문 마을의 숲에서 의문의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극심한 공포와 혐오감이 뒤섞인 일은 누구에게 알리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고스란히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짙은 어둠에 잠식된 마음은 서서히 병들어가기 시작했는데 특히 안개가 끼는 늦은 밤엔 고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부분적으로 기억이 끊기고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되는 일도 잦았다. 그러던 어느날 스미요시 화학연구소에서 푸른 섬광과 함께 핵분열의 연쇄반응에서 일어나는 임계사고로 인해 그는 물론 함께 작업하던 사람들이 방사능에 노출되는 피폭을 당하게 되는데...

 

어디에나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어릴 적엔 공동묘지였던 곳에 학교를 지어서 비오는 날에는 귀신이 나온다거나 동네에 빈집으로 방치된 집 앞을 지날 때는 원통하게 자살한 원혼의 부름에 홀릴 수 있으니 귀를 막고 지나야 된다...등 상상할 수 있는 갖가지의 괴담들이 있었다. 그런 것처럼 소설도 마을에 떠도는 괴담에 검은 고글을 쓴 피부가 녹아내린 의문의 인물이 벌이는 미스터리한 살인이 아닐까 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줄곧 이것들이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의문을 품었는데. 그런 것들이 조금씩 가지를 뻗어나가고 서로 연결이 되고 급물살을 어느새 소설은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고 있었다.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읽는 내내 우울했다. 어딘가 질척한 곳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뜻 발을 빼고 싶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어 오도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당신은, 나인가?”하고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코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지만 이젠 인정해야겠다. 시마다 소지, 그에게 완전히 휘둘리고 말았다는 걸. 이 느낌이 사그라들기 전에, 그를 또 한 번 만나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도, 역시. 눈 구경 한 번 못하고 겨울이 지날 모양이다. 사는 곳이 따뜻한 남쪽 도시인데다 바닷가와 가까운 곳이라 다른 동네에선 눈이 와도 하늘에선 눈송이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다 눈이 오더라도 잠깐 흩뿌리는 정도거나 밤새 조금 내리고 말아서 눈 내리는 날의 정취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은데. 눈과 인연 없는 동네에서 사는 것의 보상이라도 되려는지 요즘 읽는 책마다 눈, 눈, 눈이다. 이순원의 <첫눈>, 요 뇌스뵈의 <스노우맨>,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풍론도>까지. 눈은 펑펑 내리다 못해 눈 무더기에서 뒹구는 격이 되어 버렸다. 이런 걸 대리만족이라고 해도 되려나?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보자. 저자는 히가시노 게이고.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 사람의 심리를 절묘하게 파헤친 사회파 추리소설부터 일상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소설까지 저자의 이름 그 자체가 베스트셀러 보증수표다. 그가 겨울 분위기가 완연한 작품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질풍론도>. '질풍', 몹시 빠르고 거세게 부는 바람. ‘론도’, 자주 반복되는 주제부와 사이의 삽입부로 이뤄진 음학의 형식으로 경쾌한 춤곡에 쓰인다. 즉, 바람이 거세고 빠르게 리드미컬하게 분다? 이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소설은 눈이 내리는 고요한 날, 누군가 나무 밑동의 눈을 파서 무언가를 숨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묻은 것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작은 갈색 테디 베어 인형을 걸어둔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됐다는 걸 확인한 남자는 눈 쌓인 설원을 경쾌하게 활주한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 남자가 숨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한편 다이호대학의 국립감염증 연구소는 조용히 술렁이기 시작한다. 구리바야시 연구원이 연구소의 실험실 금고에 보관 중이던 생물병기가 일부 사라진 걸 알아챈 것. 같은 시각, 도고 부장은 자신에게 도착한 메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메일 발신자는 연구소에 근무하던 구즈하라. 그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생물 병기 K-55를 훔쳤고 그것을 의문의 장소에 감췄음을 밝힌다. 문제는 생물병기인 K-55가 지극히 적은 양으로도 호흡기로 감염되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탄저균을 초미립자로 가공한 것이다. 그래서 만약 외부에 노출될 경우 탄저균보다 더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그것을 구즈하라가 훔쳐내어 돌려받고 싶으면 3억 엔을 내놓으라고 만약 자신의 요구를 거스르거나 일정시간이 지나면 물건의 안전은 보장하지 못한다고 협박한다.

 

 

갑작스런 사태에 구리바야시와 도고는 당황한다. 자칫 잘못하면 대량 감염으로 번질 수 있기에 구리바야시는 경찰에 신고할 것을 종용하고 도고 부장은 탄저균을 초미립자로 가공한 것 자체가 불법이기에 조용히 마무리 짓기를 원하는데. 그런 와중에 뜻밖의 연락을 받는다. 구즈하라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요구 금액을 낮춰서라도 구즈하라로부터 K-55를 무사히 건네받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기에 그들은 순간 당황한다. 이제 어떻게 찾지? 눈 쌓인 들판에 나무, 그리고 갈색 테디 베어가 찍힌 사진 몇 장, 이것만 보고 여기가 어딘 줄 알고?

 

K-55 보관용기가 섭씨 10도 이상 되면 깨어지는데다 위치를 나타내는 발신기의 밧데리조차 제한되어 있고 그 전에 K-55를 되찾아야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을 맞았다. 도고는 구리바야시에게 특명을 내린다. 어떻게 해서든 K-55를 찾아오라고. 과연 구리바야시는 K-55를 무사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사건이 터지자마자 범인이 사망해버리는 바람에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지방 한 도시의 스키장, 그것도 사람들의 통행이 제한된 구역의 드넓은 설원의 어딘가에 감춰진 K-55를 구리바야시가 어떻게 찾아낼지에 주목해서 책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이야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추리소설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닥칠 대반전을 은근히 기대하며 읽기 마련인데 다소 느슨한 느낌이랄까? 문제의 생물 병기가 외부에 노출되는 순간 인근 사람은 물론 더 먼 곳까지 퍼지는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긴장감을 갖게 하는 유일한 요소였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는 평이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이 겨울, 새하얀 설원을 스키, 혹은 스노보드를 타고 리드미컬하고 경쾌하게 활주하는 기분을 책으로나마 만끽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년전 인 것 같다. 교과서로 알고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조선의 모습을 만났다. 장터 투전판의 노름꾼에서부터 뒷골목의 폭력조직, 도둑, 기생, 특히 관료로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과거시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날 수능시험장이 최첨단 기기를 동원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세우는 것처럼 그 옛날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명예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민초들,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들의 삶의 공간인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조선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것이었다.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고 ‘야사’로 지나치고 말았을 이야기지만 정말 흥미로웠다. 나로 하여금 새로운 조선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한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시작으로 저자 강명관의 책을 기회가 닿는대로 읽었다.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를 읽으면서 ‘조선’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이번에 만난 책이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내게 있어 ‘조선’이란 이름의 퍼즐을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핵심적인 조각이 아닐까 싶다. 다름 아닌 ‘책’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인류의 역사가 진보를 향한 변화라면, 그 변화의 이면에 아주 복잡한 요인이 있다면, 책 역시 반드시 거기에 끼일 것이다.’ 즉, 인류의 역사는 책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방향을 결정짓는 요인이기에 ‘책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이 책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라는 제목이 곧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책의 역사를 다루기 이전에 저자는 고려시대의 출판, 인쇄는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당시 고려는 출판을 전담했던 관청에서 서적을 출간했는데 ‘내서성’에서 ‘비서성’ ‘비서감’ ‘전교서’ 등 관청의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책의 인쇄와 보급을 맡았던 ‘서적포’, 왕과 신하들이 학문을 강론하는 장소였던 ‘서적소’를 비롯해 주로 어떤 책을 만들었는지, 고려의 국가도서관과 거기에 구비된 장서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그런 다음 구텐베르크보다 88년 앞섰다는 조선의 금속활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세계 최초’를 강조하지 않는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일부 지배층에서 독점하던 지식이 대중화 되어 서구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에 비해 조선의 금속활자는 국가가 인쇄, 출판에 관한 모든 것을 독점하면서 발전할 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는다.

 

1446년, 조선은 획기적인 대변혁이 일어난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문자를 통해 백성들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한글이 창제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글로 쓴 책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글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한글로 쓴 책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없었고 그 이전에는 오로지 번역의 형태로 존재했다고 한다. 왜냐면 조선 역시 고려와 마찬가지로 책의 인쇄, 출판이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한 지배층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이로운 책만을 찍어냈다. 백성들을 위해 쓴 <삼강행실도>조차 한자로 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 그림을 덧붙였다 하더라도 길거리 아이들과 여염 부녀자들까지 쉽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이후 저자는 책의 출판과 인쇄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책이 어떻게 쓰이고 인쇄출판이 어디서 이루어졌는지, 어떻게 읽고 유통되었는지, 책값은 얼마였는지, 책의 제작에 필요한 종이는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등 조선시대의 책과 관련된 다양한 궁금증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는데 얼마전 읽었던 책을 통해 알게 된 ‘책쾌’였다. 서적매매의 중개인으로 ‘책쾌’가 맡은 역할이 컸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세 나라 중에서 조선만 서점이 없었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서점이 등장했다고 짐작할 뿐.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산소가 혈관을 타고 온 몸을 골고루 순환해야 건강하듯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경험과 지혜, 지식을 글로 남기고 그 지식을 한데 모은 책이 나라 곳곳에, 백성 모두에게 고루 주어져야 하는데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역사를 대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갑갑했는데 그게 어쩌면 당시 지식의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기에 일어났을 거라 생각하니 실로 안타깝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제작한 나라’면 뭐하는가.

 

책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자 문화의 역사다. 책의 역사를 따라가면 인간이 쌓아올린 문화의 역사를 볼 수 있다. - 3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