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통 한국사 - 모든 역사를 꿰뚫는 10가지 프레임
구완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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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전 역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영어를 지독하게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다른 과목(국사를 비롯한 지리, 생물, 가사)에서 만점을 받지 않으면 점수를 만회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도 좋지 않아서 참고서가 새까맣게 되도록 줄을 그으며 외우고 지우개로 지운다음 다시 줄을 긋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서야 줄줄줄 외울 수 있었는데요.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외운 것들이 결코 오래가지 않더라는 겁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역사의 재미를 알게 된 건 큰아이가 5살, 지금으로부터 대략 십년 전입니다. 우연히 시립박물관의 박물관 대학을 다니면서부터인데요. 박물관대학은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로 알려진 전국의 유명교수와 학예연구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 외에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답사인데요. 교과서에서 작은 흑백사진으로 봤던 유적지와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설명을 듣는 경험은 정말이지 무척 새로웠습니다. 답사를 인솔하는 학예사의 설명을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보다 확실하게 듣기 위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백발의 노인부터 중년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발을 놀렸습니다. 재미나더군요. 역사는 이렇게 공부해야 되는구나. 새삼 깨달았답니다.

 

지천명을 발치에 두고서 지금이라도 다시 역사공부를 해볼까? 괜한 무리를 하는 건 아닐까?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책, <관통한국사>가 출간됐습니다. 역사공부를 다시 하려고 할 때 가장 난관이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중년의 기억력이었는데요. <관통한국사>는 ‘역사는 원래 외우는 게 아니다’라고 하니 어찌나 반가운지. 더구나 저자는 국사학과를 전공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자와 편집자를 거치면서 체험여행에 관한 책도 썼더군요. 역사의 전문지식에 다양한 글을 다룬 솜씨까지 더해졌으니 기대치는 급등!! 저자는 외울 것 많고 헛갈리기 쉬운 한국사를 줄줄 꿸 수 있는 것은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어서 보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 책은 온통 외울 것투성이인 교과서 스타일이 아니라, 역사의 필수적인 프레임들을 통해 읽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단군부터 현대까지 한국사를 ‘관통’하는 방식입니다. - 머리말에서.

 

흔히 우리 이런 말 많이 하죠?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네, 맞습니다. 맞고요. 어떤 일이든 사소하게 하나 하나를 따지기보다 숲, 전체를 아울러 보고 이해하는 게 좋지요. 근데 알고보면 이 ‘전체’라는 게 속을 썩이거든요. 조선시대 전체를 이해하려니 좀 복잡한가요? 왕 이름은 태종태세문단세...로 외운다고 쳐요. 수많은 업적에 세금제도, 주요 문화재, 전쟁은 또 왜 그리도 많은지...숲 전체를 보려고 멀찍이서 두 눈을 부릅 뜨고 있지만 금세 눈은 따갑고 골치도 아프고....에이, 몰라! 아예 포기해버리기 십상인거죠.

 

여기서 ‘프레임’이 등장합니다. 틀, 뼈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떤 시대이든지간에 하나의 프레임, ‘틀’을 가지고 보라는 거지요. 이를테면 제일 먼저 언급된 ‘시대 구분’. 길고 긴 역사에 있어서 시대를 어떻게 구분하고 나눌 것인가! 쉬우면서도 동시대의 세계사와 함께 놓고 생각하면 머리만 복잡해지는...게 바로 ‘시대 구분’인데요. 저자는 우리의 왕조순서로 시대를 구분하면 서양사와 연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서양의 시대 구분을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서양의 시대구분은 어떻게 하느냐? 간단합니다. ‘노예의 존재유무’. 노예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로 나뉘는데요. 이는 ‘고대 - 중세 - 근대’와 일치하기 때문에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주의’라고 시대구분을 한다는군요. 놀랍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서양사의 3분법에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더해져서 ‘선사시대와 초기국가의 형성 - 고대 - 중세 - 근세 - 근대 태동기 - 근대 - 현대’로 나누어집니다.

 

‘전쟁’이란 프레임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최초의 대규모 전쟁’은 바로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입니다. 고조선이 멸망 이후 한반도는 다시 삼국의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는데요. 저자는 전쟁이 일어난 년도, 장수 이름, 어느 나라가 이기고 패했는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두 나라가 ‘전쟁’이라는 무력의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이고, 전쟁이 두 나라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요. 마치 강의나 대화를 하듯 글을 풀어내고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지난주에 큰 아이 학교에서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자신 있던 수학에서 어이없이 몰락하고 국어는 오직 모국어일 뿐이라는 걸 확인했으며 역사는 오리무중을 헤매고 있더군요. 못난 어미를 닮아 역사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구나...싶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역사교과서를 보니 진짜 답답했습니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전후 관계, 맥락을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생략된 채 중요 부분만 최대한 압축해서 나열해놓은 교과서. 그런데 선생님들은 그러시죠. 교과서만 보면 된다고. 뭐죠? 그럼? 죽자고 외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물줄기가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굽이치며 흘러 강이 되고 바다로 이어진다고 했는데요. 지금 우리의 역사는 어떤가.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쉼 없이 흘러가는 있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의 역사는 교과서에 갇혀 있습니다. 아이들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배울 수 있기를, 그래서 역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사족]

<관통 한국사>는 하나의 기준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라는 새로운 시도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페이지 표시가 주황색의 작은 원 안에 흰 숫자로 되어 있어 잘 보이지 않더군요. 검은색 숫자로 표시를 하는 게 눈에 더 잘 띄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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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동물 - 파국적 결말을 예측하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의 심리
더글러스 T. 켄릭 외 지음, 조성숙 옮김 / 미디어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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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데칼코마니’인가요? 물감을 칠한 종이의 가운데를 접었다가 펼쳤을 때 무늬가 좌우 대칭으로 나타나는 거 말이에요. 검은 옷을 입고 손으로 허리를 짚은 남자의 뒷모습이 좌우대칭으로 서 있는 책 <이성의 동물>을 봤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좌우대칭은 아니더군요. 뒤돌아선 남자의 얼굴 색깔과 그 주변을 둘러싼 물방울이 한 쪽은 빨강, 다른 쪽은 파랑. 정반대의 색깔이었거든요. 같은 모습이지만 정반대의 특성을 보여주는 남자의 모습 위로 드리워진 글, ‘파국적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의 심리’. 왠지 모르게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 인간인 나 역시도 모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었습니다.

 

<이성의 동물>은 진화심리학의 선구적인 학자인 더글러스 T. 켄릭 교수와 마케팅겸 심리학 교수인 블라다스 그리스케비시우스 이 두 명의 심리학자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진화심리학과 경영심리. 이것만 봐도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오랫동안 진화를 거듭한 인간에게 당시의 경제적인 욕구, 상황은 어떻게 작용했을까. 인간의 심리는 어떠했을까.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죠?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버트런드 러셀, 오스카 와일드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간이 ‘이성의 동물’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철학자들도 과학자들도 모두 동전의 한쪽에 초점을 맞춰 인간이 이성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들의 논쟁 대부분은 동전의 다른 한쪽인, 이성의 동물에서 ‘동물’ 부분을 간과했다. 이 책은 바로 이 동물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 11쪽.

 

책에는 이성적인 인간의 ‘동물적인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아홉 가지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비이성적 선택과 케네디가의 저주’인데요. 이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된 바로 그 ‘케네디’냐고요? 아니지만 맞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그 ‘케네디家’거든요. 25살의 나이에 미국 최연소 은행장이 되었고 주식거래로 엄청난 차익을 올려 행운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지닌 그는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운이 자식들에게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미국 대통령이 된 차남 존 F. 케네디를 비롯해서 그의 아들과 딸은 암살이나 전사, 비행기 추락으로 목숨을 잃었는데요. 케네디家의 불행과 비극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의 손자들 역시 비운의 사고로 죽음을 맞으면서 ‘케네디가의 저주’라고 불리고 되는데요. 두 저자는 여기서 의문을 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인가, 아니면 허점투성이 바보인가. 치명적일만큼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담하게 일을 저지르는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심리를 밝히기 위해 하나하나 추적해나가는데요. 그들은 그것이 모두 인간의 뇌가 어떻게 진화를 거쳐 왔는지에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지 이해하려면 뇌가 지금의 특정한 선택을 내리도록 진화해온 이유가 무엇인지 탐구해야 한다. -48쪽.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항해 흑인의 인권운동을 펼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누구보다 도덕적이라고 칭송받던 그였지만 다른 여성들과 외도를 한 이력이 있다는데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과 반대의 행동을 일삼는 원인이 바로 다중인격에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다중인격,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하는데요. 약 일곱 개에 달하는 자아가 각각이 어떤 상황에서 주도권을 갖느냐에 따라 인간의 결정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최고의 대학, 최고의 두뇌로 통하는 하버드 대학생들도 어려워하는 시험을 아마존 밀림의 한 부족, 그것도 문맹의 원주민들이 통과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밝혀내는 부분은 우리 인간의 미처 생각지 못했던 허점들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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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끝내는 논술 공부 - 구조를 알면 공부법이 보인다
오준호 지음 / 미지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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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많이 읽으면 된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책을 많이 읽어서 논술도 잘 한다고. 책을 좋아하면 뭘 해도 하니까 책 읽는 아이에게 굳이, 애써서, 억지로 공부시키지 말라고. 논술도 저절로 된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웠던 'A=B, B=C 고로 A=C'라는 삼단논법이 오래도록 뇌리에 박혀있는 걸까. 사실, 삼단논법이란 거, 명쾌하다. 단박에 정리된다.

 

 

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A는 결코 C가 될 수가 없다. A와 C 사이에 끼어있는 B라는 녀석이 어떤 성질, 어떤 특성을 지녔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어려운 논제도 척척 해내는 아이들 중에 ‘일부’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을 뿐이다. 이게 핵심이다. 잊으면 곤란하다.

 

 

서울 강남의 대치동에서 오랫동안 논술강사를 했다는 저자가 <혼자서 끝내는 논술공부>에서 제일 먼저 꺼내는 얘기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논술에 대한 몇 가지 법칙? 그것들 모두 잘못된 오해에 불과하다고. 논술을 잘 하려면 우선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들은 독해력, 사고력, 창의력, 표현력을 평가한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대학으로서는 할 말을 정확히 다 한 것이다. 동서양 고전을 수백 권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없고, 신춘문예에 등단할 정도로 화려한 글 솜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없다. -15쪽.

 

 

논술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조목조목 짚은 저자는 논제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논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지 못하면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글을 결코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다음 논술의 유형을 일러주는데 서울의 명문대부터 지방 국립대까지 논술 유형은 크게 다섯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주어진 글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내는 요약, [가]와 [나]를 어느 한 기준에 놓고 서로 다른 점이나 차이를 찾아내서 드러내는 비교,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개인적이나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풀어서 말하는 설명, 상대의 입장이나 주장, 견해에 대해 무엇이 잘못됐고, 왜 틀렸는지 전제, 근거, 이유를 말하는 비판, 주어진 쟁점에 있어서 어떤 입장을 지지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견해이다. 이런 것들을 모 대학의 모의논술이나 실제 논술에 나온 논제를 바탕으로 유형별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저자는 논술이 수험생의 글쓰기 능력이 아니라 ‘학문하는 능력’, 다른 사람의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했는지 가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견월망지(見月望指)’.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본다고 하는 것처럼 논술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도 바로 그렇지 않을까.

 

 

논술은 신비스러운 과목도 아니고 운이나 암기 지식으로 대처하는 과목도 아니다. 논술은 문제 해결을 위한 글쓰기, 즉 주어진 논제를 해결하는 글쓰기다. -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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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토론 콘서트 : 사회 -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12가지 사회 쟁점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7
윤용아 지음, 문지후 그림 / 꿈결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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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지인 몇 명이 모닝커피를 하자고 했다. 내가 커피숍을 찾았을 땐 이미 두 무리의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뒤 테이블의 누군가가 ‘디베이트’ 얘기를 꺼냈다. 요즘 공부 좀 한다는 애들한테 국영수는 기본, 역사나 과학, 논술은 선택이라는 얘길 듣긴 했다. 이젠 여기에 ‘디베이트’도 추가가 된 모양이었다. 두세 개의 학원을 두고 열심히 비교하던 엄마들이 결국 실력 있는 과외선생님을 알아보자고 결론을 내리는가 싶더니 한 명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근데 디베이트가 뭐야?” 그러자 한 명은 “@@엄마, 토론 아냐. 토론!”, 또 한 명은 “토론? 토의 아니고?”. 잠깐의 침묵에 이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걸로 상황은 종료.

 

사실 토론과 토의. 언뜻 생각하면 혼동하기 쉬운 말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두 단어는 다른 말이다. 하나의 주제, 문제해결을 위해 형식이나 방법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것이 ‘토의’라면 ‘토론’은 어떤 문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서로 자기의 주장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어떤 주제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먼저 정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눈다는 점에서 두 가지 모두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훈련하면서 쌓아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학원에서 해결한다고?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펭귄은 왜 바다로 갔을까?>와 같은 책을 통해 청소년들이 인문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잡이 책을 펴낸 꿈결에서 이번에 또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꿈결 토론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제목은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토론 콘서트>. ‘청소년들이 꼭 알아야할 12가지 사회 쟁점’을 주제로 어떤 생각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지 매 주제마다 가상의 토론자를 등장시켜 토론을 진행하고 그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주제에 따라 관련 보도기사를 비롯해서 사진이나 도포, 그래프 같은 자료도 함께 수록해놓아서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도 있다. 일종의 [TV토론]을 책으로 만나는 셈이랄까.

 

책은 먼저 크게 3가지의 대주제(내가 선택하는/ 우리가 함께 생각하는/ 국가가 움직이는 사회 쟁점 이야기)로 나뉘고 각각의 대주제마다 4개씩, 모두 12개의 쟁점을 다루고 있는데 토론을 다루고 있는 책이니만큼 토론의 형식과 절차를 엿볼 수가 있다. 해당 주제가 왜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 열띤 토론이 펼쳐지는데 책은 그 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코너를 마련해놓고 있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소개되어 있는 ‘성형수술 열풍 어떻게 봐야 할까요?’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모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문을 연 다음 번화가에 즐비한 성형외과에는 성형 기술의 선진국이라 통하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로 인해 또 다른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고 전한다. 외모가 취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외모로 인해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때로 잃기도 하는 사람들. 책은 성형외과 전문의 이성형과 미학과 교수 박자연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외모 지상주의와 성형수술,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토론을 벌인다. 그런 다음 ‘생각 정리하기’에서 본문에 언급되었던 부분에 대해 독자가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인터넷 언어의 사용’ ‘길고양이에게 먹이주는 것’ ‘학교 안의 CCTV설치’ ‘교복자율화’ ‘양심적 병역거부’ ‘인터넷 실명제’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나’로 시작해서 사회와 국가로 범위가 점점 크게 확대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주제인 것 같다. 게다가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본문 속에 12가지의 사회쟁점을 담다보니 핵심인 토론이 좀 더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그동안 무심히 넘겼던 사회의 쟁점들을 <토론콘서트, 사회편>을 통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한 번 깊이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에는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출간될 <토론콘서트>에서는 어떤 것들이 다뤄질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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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을 멈춰 세우는 동유럽 1 In the Blue 3
백승선 글.사진 / 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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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여행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딘가를 여행할 계획이기 때문에 그 곳의 정보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굳이 여행서를 뒤적이지 않는 편입니다.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건 ‘번짐 시리즈’입니다. 몇 년 전 오렌지빛깔의 지붕을 한 집들이 동화처럼 펼쳐져 있던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통해 만나게 된 번짐 시리즈에 단박에 반해 버렸습니다.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사진과 여행지의 풍광을 순간에 포착해서 그린 듯한 수채화, 간간히 만나는 이야기들... 그전까지 저는 여행서란 목적지까지 향하는 길과 주변 지도와 맛집, 숙박지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요. 번짐 시리즈를 만나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답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번짐 시리즈를 얼마전에 만났습니다. <나의 시간을 멈춰 세우는 동유럽 1>인데요. 동유럽국가 중에서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일 먼저 폴란드 왕국의 수도였던 크라쿠프를 만나게 되는데요. 중세 유럽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고 많은 유적을 간직한 구시가지는 1978년 유럽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군요. 여행자가 방문할 수 없는 성 마리아 성당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 성당의 첨탑 두 개의 높이가 왜 다른지 성당의 공사를 맡은 형제 건축가의 일화를 알려줍니다. 또 침입자를 발견한 파수꾼이 이를 알리기 위해 트럼펫을 불었지만 곡이 끝나기 전에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해요. 이를 기리기 위해 후세의 사람들은 매시간 파수꾼이 죽기 전에 연주했던 부분까지만 트럼펫을 분다고 합니다. 지하광산 비엘리치카와 지하 135미터에 위치한 소금예배당은 광부들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든 곳이라고 하는데요. 땅 속 깊숙한 곳에 펼쳐진 경이로운 세계는 사진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만큼 신비로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때 도시의 85%가 파괴되었지만 재건에 성공한 도시 바르샤바. <피아노의 숲>이란 만화에서 ‘바르샤바는 곧 쇼팽’이라는 대목을 봤는데 그 이유가 쇼팽의 심장이 잠든 곳이 바르샤바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인 토룬과 약 150만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간직한 도시 아우슈비츠를 보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도시가 역사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구르트와 키릴문자의 나라 불가리아에서는 현재 불가리아의 수도이자 고대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를 소개하는데요. 굴뚝과 굴뚝 사이의 오선지에 높은음자리 표와 음표로 베토벤의 [합창] 앞 소절을 펼쳐놓은 국립 미술관, 한국어학과가 있다는 소피아 대학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해가 일찍 뜨는 곳인 릴라 수도원에서 침묵 수행하는 수도사들과 함께 박물관 지하에 보관되어 있는 목조 십자가가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플로브디프의 거리는 거리 곳곳에 로마와 터키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과 유적이 남아있데요. 마치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더군요.

 

책을 읽는 내내 한여름의 무더위로 축 늘어진 기분에 일순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했습니다. 집을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지만 때론 무작정 길을 떠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익숙한 장소, 익숙한 풍경을 벗어나 낯선 곳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느끼는 감흥이란 게 있으니까요.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또 다른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인 것 같습니다.

 

여행은 마법이다.

공간 이동, 시간 이동이 가능한. ㅡ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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