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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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이었습니다. 최성일의 <어느 인문학자의 과학책 읽기>를 만났습니다. 지금은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때 과학도였던 저는 인문학자는 과학책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는지 궁금했습니다. 학창시절 <코스모스>를 인상 깊게 읽었다는 저자는  우리 일상이 과학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자신이 읽었던 책을 통해 모색하고 있었는데요. 저자가 본문에서 언급한 책 중에 막상 읽은 건 몇 권 밖에 되지 않지만 저자의 책읽기를 통해 새로운 걸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구요. 좀 더 깊이있는 책읽기, 비판적이고 추론적인 책읽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책의 저자가 지난 7월, 지병을 앓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제게 새로운 도전의식을 일깨워준 저자의 죽음에 충격과 놀라움, 안타까움이 밀려왔 습니다. 얼마전에 그의 마지막 책을 만났는데요. 그 어떤 수식어도, 부제도 없이 단 한 줄 <한 권의 책>이란 제목만이 적힌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그 느낌이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책을 읽었고 그 중에 저자가 이미 유명을 달리한 책도 무수히 많았건만 이번과는 달랐습니다. 왠지 모를 설레임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책장을 펼쳤을 때, 제가 만난 건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한 아내의 글이었습니다. ‘남편의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왜 그다지도 마음이 아프던지... 남편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쓴 아내의 글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저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책을 너무 좋아해서 외출을 줄일 정도였다는 것과 자신은 그렇게 책을 좋아했음에도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지 않는 아버지였다는 것과 지저분한 손으로 책을 볼 수 없어 늘 손을 씻었다니 책을 대하는 저자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서평이라고 할 수도 없는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서평집을 읽었습니다. 이름난 저자의 책, 내공이 깊은 그들의 서평을 보면서 저의 글에 무엇이 부족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이 읽었던 책을 나 역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수첩에 길고 긴 목록을 적어 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전 어딘가 주눅이 들어 있었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최성일, 저자의 글은 저를 주눅 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제가 읽지 않은 처음 만나는 책인데도 그의 글의 흐름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보니 저자의 글에는 독자를 현혹시키는 수식어가 없고 단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장도 어렵지 않아서 짧은 글 속에서도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제일 먼저 소개되어 있는 책 <즐거운 불편>은 저자가 ‘11가지 물질과 편리함을 일상하게 멀리하는 실험’에 관한 것인데 이 책을 읽지 않은 저는 예전에 읽었던 <굿바이 쇼핑>을 떠올리며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고 얼마전에 참가했던 박물관 강좌를 바탕으로 <밤의 일제 침략사>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지인들과의 독서모임에서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으로 인권에 관해 열띤 토론을 했기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이란 책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답니다.




처음 만난 책인데도 이 정도인데 저자와 저의 공통분모, 함께 읽은 책은 어느 정도였겠습니까.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들렀던 청년의 이야기가 담긴 <노 맨스 랜드>에 대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예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야구를 사랑하는 소년들의 성장소설인 <배터리>에서는 우리만의 야구성장소설을 꿈꾸기도 했으며 ‘<태양의 아이>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는 결코 상대하지 않’겠다는 대목을 보며 ‘저두요! 제 생각도 그래요’하고 공감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의 공감을 받아줄 저자가 세상에 없으니...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남은 책장이 줄어드는 걸 ‘아쉽다’고 생각하기는 처음입니다. 길지 않은 삶을 책과 함께 치열하게 살아간 저자의 글, 그의 생각을 좀 더 만나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마지막 책장을 덮고 다시 앞으로 돌아갑니다. 공감하는 글귀, 생각하게 하는 대목에 줄을 긋고 읽고 싶은 책, 구입해야 할 책에 포스트잇을 붙여둔 걸 보면서 불현듯 저자는 밑줄도 자를 대듯 반듯하게 그었다는데...하는 생각이 밀려듭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한 저자의 책사랑, 제게 많은 걸 일깨워줬습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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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빼앗긴 사람들 -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사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
틸 뢰네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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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올빼미다. 오전엔 내내 해롱거리다가 해가 어스름하게 넘어갈 쯤부터 기가 살기 시작, 자정에 임박해서 정점을 찍는다. 시간은 이미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갔지만 나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잘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좀 더 보낸 후에야 잠자리에 든다. 그때가 대략 새벽 3~4시. 때론 해가 뜨기 직전 밖이 밝아질 무렵이 되기도 하지만. 여하튼 난 이런 생활리듬, 패턴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나의 생활리듬은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다름아닌 시댁 식구들이 전형적인 종달새, 아침형 인간이었던 것. 저녁 9시 뉴스가 끝나기도 전에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불 끄고 잠자리에 눕는 걸 보면서 난 황당과 당황 사이를 오갔다. “아니, 뭐야. 왜들 벌써 자?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항의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따라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정신은 말똥말똥...죽을 맛이었다. 아이 낳고서는 더 심해졌다. 어린 아기 때는 밤낮없이 수시로 빽빽 울어대더니 자라선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를 보면서 시어머니는 툭하면 “어미가 밤에 잠 안자고 있으니 애들이 저렇지!”라며 면박을 주셨다. 오기가 생겼다. 좋다! 그럼 애들 깨어있을 때 나도 깨어있지. 이후 나는 새벽 서너 시에 잠들어서 일곱 시쯤 일어나 아이들을 챙겼다. 완벽에 가깝게.




하지만 원더우먼이 될 수는 없었다. 몸에 서서히 이상이 생기더니 몇 년 전부터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수시로 편두통과 감기에 시달렸다. 급기야 한의원에서 침 맞고 뜸을 뜨는 약 한 시간 동안 내내 가위 눌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건 정말 사는 게 아니란 생각, ‘밤에 제발 잠 좀 자라’는 의사 말에 한동안 취침시간을 자정으로 당겼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울했다. 왜 그럴까? 도대체 나의 무엇이 문제인걸까?




최근에 만난 책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이 좋은 실마리가 되었다. 시간생물학자인 저자는 우리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물체들은 몸속에 시계(체내 시계)가 있어서 그것을 거스를 경우 건강을 해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인간이 그 체내 시계의 흐름에 따라 잠을 자고 깨어있는 게 정말 힘들다는 데 있다. 출퇴근과 등하교 시간이 정해져있듯이 우리는 일상 속에서는 수많은 시간의 제약이 존재한다. 어쩌다 야근이나 원거리 출장이라도 다녀오고 나면 생체리듬은 여지없이 깨어져서 평범한 일상으로 회복하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이 생체 시계는 언제부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을까? 저자는 인간이 태양의 뜨고 짐에 맞춰 살아갈 때는 별다른 문제없이 충분히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 시간에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게 된 대사건, 철도의 발명으로 인해 우리의 생체 시계가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거기에 밤이 되어도 환한 도시와 공장의 빛은 점점 우리가 태양의 움직임과는 무관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의 체내 시계가 서서히 틀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이런 얘길 한다. 바로 우리 인간의 외모와 성격이 모두 제각각이듯 각자 체내 시계의 리듬도 저마다 다르다고. 거기다 그 유형이 새벽형, 올빼미형 단 두 가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무수히 많은 인간처럼 다양한 체내 시계가 존재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진행되는지 저자는 여러 사례와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이를테면 평소 생활하면서 느꼈던 것들, 하루 중 유독 점심 때 졸리는 건 뭔지, 십대 청소년들은 왜 그다지도 아침에 깨어나기 힘들어하는지... 이런 의문들에 대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나처럼 올빼미형 인간이 일반 사회 시간과의 간극을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는지 그 해결책 또한 제시하고 있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시계에 관한 이야기다. 돈 주고 사서 손목에 차고 다니거나 벽에 걸어놓는 시계가 아니라, 우리 신체 안에서 똑딱거리는 시계에 관한 이야기다.(6쪽)’ 자신의 몸속에서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체내 시계에 대해, 그 비밀이 알고 싶다면, 그 체내 시계가 다른 이와 다른 움직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에서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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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자다 - 왕멍, 장자와 즐기다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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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은 물론 노자, 장자에 대해서 모르던 내가 장자를 처음 만난 건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는 철학우화집을 통해서였다. 장자철학을 원문 그대로 수록한 것이 아니라 쉽게 풀어놓은 정도였는데 가볍게 읽으면서도 무언가 묵직하게 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벼운 풀이가 이 정도인데 원문 장자는 어떨까? 분명 더 거대하고 심오한 걸 느끼고 깨닫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후로 <장자>를 만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전에 <나는 장자다>란 책이 출간된 것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왕멍이라는 저자의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매년 노벨상 후보에 오를 만큼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것보다 중국작가협회 부주석과 문화부장관을 역임했다는 그가 한때 우파로 찍혀 강제노동과 유배생활을 했었다니. 의외였다. 아니, 어쩌면 세상의 모진 풍파를 한 몸에 겪은 그였기에 장자철학을 더욱 깊이 체득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장자]의 ‘내편’과 ‘외편’의 일부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크게 ‘소요유(逍遙游), 위대한 날갯짓과 자유로운 휴식’ ‘제물론(齊物論), 투시와 초월로 세상을 고르게 하다’ ‘양생주(養生主), 여유를 가지면 애락이 깃들지 않는다.’ ‘인간세(人間世), 세상에 쓰이는 현묘함과 허물이 없는 신명’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저자는 먼저 [장자]의 ‘내편’에서 처음 언급되는 ‘소요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전적 의미의 소요(逍遙)는 ‘만족스러울 만큼 한가롭고 느긋하다’는 뜻으로 ‘귀하거나 천하고, 높거나 낮고, 가깝거나 먼 복합한 인간관계에 속해 있지 않아야 한다(16쪽)’는 의미로 ‘세속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하는 것(31쪽)’이 소요에 이르는 전제조건이라고 한다. 겉으로 드러난 출세나 명예보다 개인의 내면, 정신세계가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건데 저자 자신이 한때 제일 밑바닥의 삶을 살았던 전력이 있어서 더욱 절실하게 와닿았다. 이어 ‘제물론(齊物論)’에서 저자는 생명의 진정한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어떤 태도로 인생을 바라봐야 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끝없이 일어나는 욕망으로 인해 인간은 고뇌에 빠진다면서 세상만물과 만사는 아주 작은 생각의 차이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위해 논쟁하다 파멸을 자초하지 말고 ‘마른 고목과 식은 재’처럼 자신을 버려서 무아의 경지에 이르라고 꾸짖는다. 행복과 불행,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기준은 개인의 판단일 뿐 절대적이지 않으며 삶과 죽음도 역시 자연현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자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다 한자도 서툴러서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인간과 자연, 만물이 한결같다...이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왕멍, 장자와 즐기다’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장자다>는 저자가 [장자]철학을 풀이하고 해설해놓은 책이다. 본문의 곳곳에 편집 방식을 달리해서 원문과 그에 대한 해석을 수록해놓고 있는데 때론 이 부분의 내용이 혼란스러웠다. 물을 쳐서 삼천리나 솟구친다는 붕새처럼 장자의 글이 아무리 거리낌 없고 자유로워도 이건 너무 지나치지 않나 싶은 대목(갈릴레오가 등장하고 영어 단어가 언급되는 등)도 있었다. 아마도 저자가 장자의 글을 해석하면서 그에 대한 자신만의 설명을 덧붙인 게 아닐까 짐작하지만 그것마저 확실치 않으니 답답했다. 웅대하고 방대하다는 장자의 글(해석)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이 언제가 되더라도.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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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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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쌍, 30여개의 눈을 바라본다. 나와 시선을 마주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아래로 시선을 향하거나 눈을 감은 사람, 독특한 안경을 쓴 탓에 그 속의 눈을 바라볼 수조차 없는 사람이 있다. 표정도 각양각생이다. 웃는 눈을 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무표정인 사람, 오히려 독자인 나를 관찰하듯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의 이름은 단박에 알아냈다. 나머지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나중에 자세히 보니 사진 옆에 자그맣게 이름이 있었다) 알고 싶었다. 얼굴 중에서 드러난 건 오로지 눈뿐이지만 개성적인 시선과 모습, 표정을 지닌 17명의 사람들. 그들의 공통분모인 다름아닌 소설가였기에. 그들을 알고 싶었다. 소설가인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 제목에서부터 강하게 끌렸다. 소설가로서의 일상은 어떨까? 늘 알고 싶었다. 그런데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우리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가로서의 삶이라기보다 글을 쓰는 방식, 일상이었다. 예상과 다른 전개가 처음엔 조금 아쉬웠지만 어찌 보면 내겐 더 이득이었다. 소설가들에겐 글 쓰는 것 자체가 일상이고 삶일 테니까.




책에는 우리 시대의 작가 17명(김경욱, 김애란, 김연수, 김인숙, 김종광, 김훈, 박민규, 서하진, 심윤경, 윤성희, 윤영수, 이순원, 이혜경, 전경린, 하성란, 한창훈, 함정임, 가나다순)이 자신의 소설과 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떤 순서로 볼까? 고민이 됐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순서대로? 아서라. 니가 아는 작가가 얼마나 된다고. 말이 되는 소릴해... 그래, 맞어. 그냥 순서대로 읽자.




처음으로 만난 김경욱은 일본작가의 자살에 대한 얘기가 흥미로웠지만 왠지 어려웠고(조만간 그의 <위험한 독서>를 읽으려고 했는데 왠지 각오를 해야 할 듯...) 중고서점에서 구한 <언어학사>라는 책 속에서 예전에 그 책을 소유했던 연인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전화까지 걸고 마는 김애란, 그녀에게선 왠지 정이 느껴졌다. 고교시절 멍청한 이름의 밴드를 결성했던 전력을 지닌 김연수는 글을 쓸 때 언제나 노래와 음악을 찾아헤매고(그의 <7번 국도>에서도 비틀즈의 ‘Route 7’란 가공의 노래가 나왔다) 김인숙은 마치 퍼즐을 하듯 머나먼 타국을 여행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자아냈다. 박민규는 그의 소설만큼이나 솔직하고도 파격적이었고 ‘추억’이란 단어와 잘 어울리는 이순원은 역시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 경험들이 이야기의 씨앗이라는데 그가 앞으로 그려낼 사람들이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소설가들이 털어놓는 자신만의 창작론과 일상은 17명 작가의 개성만큼이나 각양각색이고 흥미로웠는데 그 중에서도 김훈과 심윤경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오십 지천명의 나이를 넘겨서 소설을 시작한 이후로 굵직굵직한 작품을 연이어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가리켜 ‘이야기꾼이 아니’라고 하는 김훈. 그는 자신의 시선이 닿는 장면, 귓가에 머무는 소리들을 글로, 모국어로 나타내고자 하는 천상 이야기꾼이었다. 별자리점에서 나타난 운명처럼 글을 쓰는 심윤경. 그녀가 생물학도였다니. 미처 몰랐다. 그녀에게 생물학보다 문학이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해준 것이 그녀의 남편이었다는 대목에서 또 한 명의 생물학도인 나는 갑자기 실험을 해보고 싶어졌다. 나한테 생물학과 문학 중에서 뭐가 어울리냐고 남편에게 한번 물어볼까? 보나마나 뜬금없는 소리한다고 핀잔이나 늘어놓을테지.




책읽기의 폭이 좁은데다 내공도 깊지 못해서 17명의 작가 모두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가슴에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면서 내 속엔 하나의 질문이 자리를 잡았다. 난 왜 작가가 되고 싶은 걸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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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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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나의 눈길이 머문 곳,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남기는 걸 즐겼다. 빈 공간만 있으면 무조건 빼곡하게 그림 그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영향인지 특별히 그림을 배우진 않았지만 무엇이든 잘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사생 대회에서 매번 상도 받았기에 학창시절 미술선생님이나 반 친구들도 내게 꼭 미대에 가라는 말을 했다. 드러내고 말은 안 했지만 내 생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미대에 가고 싶다는 바램은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 집 형편에 미대 두 명은 무리다. 언니는 이미 미대에 다니고 있으니까 넌 안 된다.’는 엄마의 말씀에 모든 상황은 종료. 내게 남겨진 건 깨끗이 포기하는 것뿐이었다. 고2 올라가기 직전 난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했다.




‘난 미대에 못 간다.’고 머릿속에 계속 새겼지만 마음은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포기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되질 않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하지 말라니. 내가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그것이 미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서글펐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제부터는 그림을 그리지 말자.




그후로 정말 오랫동안 그림과 멀리하며 지냈다. 어쩌다 한번씩 끄적이긴 했지만 낙서에 불과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아이가 무언가를 그려달라며 종이를 들이밀 때뿐이었다. 스스슥 슥, 휘익 휘이~익. 하얀 종이 위를 연필이 스쳐 지나가며 작게 노래를 부른다. 그것을 아이는 뚫어져라 바라보고. 신기해서 기뻐서 눈이 점점 커지는 아이. 그런 아이를 보며 난 더 신이 났다. 내 가슴 한켠이 찡해졌다. 그래. 내가 옛날에 정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 학교에서도 언제나 미술시간을 기다렸는데. 그런데 왜 그림 그리기를 그만둔 거지? 미대 다니지 않으면 그림 그리지 못한다는 법도 없는데. 난 정말 바보였구나.




빨간색 표지의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만나면서 그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부풀었다. 그림에 대한 열망과 열정을 접으면서 어느새 손도 굳어버렸지만 저자의 글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사소한 낙서 하나, 간단하게 휙 휙 그은 스케치까지도 모두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그림과 너무 오래 떨어져 지냈다며 의기소침한 내게 저자는 자신만의 스케치북을 만들어서 거기서 조금씩 그림을 모으는 것으로 시작해보라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꼭 근사하고 멋진 정물화나 풍경화만 그려야 그림은 아니잖아? 식탁 위에 놓인 케첩도 좋고 깡통 통조림도 좋아. 좀 더 자세히, 꼼꼼하게 보고 스케치북에 그려봐. 뭔가 달라보일 걸?하며 응원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중년이 넘은 나이에 그림을 다시 시작하려니 뭔가 쑥스럽지만 저자의 말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주변의 작은 것부터 그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출발은 나만의 스케치북 만들기. 책의 후반부에 만드는 방법이 사진으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서 한 권의 스케치북을 만들었다. 엉성하고 서툴지만 나만의 스케치북이다. 왠지 모를 뿌듯함.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아, 정말 좋구나!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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