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이야기 샘터 외국소설선 8
존 스칼지 지음, 이원경 옮김 / 샘터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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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밝히지만 난 존 스칼지란 인물을 몰랐어. 저자의 이름이 낯설어서 그의 데뷔작이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인 <노인의 전쟁>은 제목부터 끌리지 않더라고. ‘노인이 전쟁은 무슨...?’ 그저 그런 소설일거라 생각했지. 근데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을 읽은 지인은 달랐어. 어우, ‘보기 드문 SF소설’이라면서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극찬을 아끼지 않더라니까. “읽어봐. 첫 페이지, 첫 문장에서부터 확 끌어당긴다니까!” “아악, 어떤 내용인지 말해줄 수도 없고. 답답해 죽겠네. 일단 읽어봐. 알았지?” 줄거리를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못해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할 정도로 안타까워하는 그를 보니까 나도 슬며시 호기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노인의 전쟁>을 책장으로 모셔두는 데 성공! 뭐? 읽었냐고? 아니, 내 말 뭐로 들었나? ‘모셔두는’ 데만 성공했다니깐. 거기서 더 이상 진척이 없어. 안타깝게도. 뭔가 계기가 있어야 저 책을 읽을텐데...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흐르고 <노인의 전쟁> 시리즈가 막을 내리네? 아뿔싸!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반가운 소식이 들리더라구.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시리즈가 끝났지만 완전히 끝난 게 아니란 거야. 또 다른 이야기, 외전이 있는데 그게 이번에 나왔다는 거야. 뭣이라? 당연히 내 귀가 솔깃해지지 않겠어? 내 이번에야말로 놓지지 않으리,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지. 그게 바로 <조이 이야기>야.


‘오! 사! 삼! 이! 일!’ 이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카운트다운 하는 거로 소설은 시작돼. 그들은 화면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어. 까만 화면에 뭔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면서. 그러다 드디어 보게 된 거지. 초록과 파랑으로 이뤄진 세계! 그들이 애타게 바라던 세상이었지. 그들은 그 새로운 세상, 고향을 ‘로아노크’라고 불렀어. 자신들이 그 아름다운 땅에 발을 딛는 최초의 사람들, 개척민이 될 거라는 사실에 감격했지. ‘올드랭사인’을 부르며 너나없이 서로 얼싸안고 입을 맞추며 새로운 시작을 기념했지.


우리의 주인공, 조이는 남자친구 엔조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어. 십대의 어린 연인들이 이쯤 어떤 행동을 할지...알지? 영화에도 자주 나오잖아. 오붓한 장소를 찾아나서는 거. 그들은 자신들만의 자축의 시간을 갖기 위해 마젤란 호의 승무원 전망대 라운지로 향했어. 약간은 위험했지만 그다지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당연히 비어있을 거라 여겼던 라운지에는 승무원 네 명이 있었는데 다행히 그들은 조이 일행을 신경쓰지 않았어. 왜냐면 그들은 그들만의 이야기에 빠져 있었거든. 바로 마젤란 호가 향하는 곳이 원래 예정됐던 곳이 아니라 ‘엉뚱한 곳’이라는 거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한 조이는 아빠에게 연락을 시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이런 저런 소문만 무성하게 떠돌았어. 그런 가운데 호출이 왔어. 마젤란 호의 승무원은 물론 승객들 모두 모이라고. 개척 행성 지도자이자 조이의 아빠인 존 페리.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걸 느끼면서 이렇게 말했어. 길을 잃었다고.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만 아~주 일부, 프롤로그만 얘기한 거야. 어때? 재밌을 것 같지? 길을 잃은 마젤란 호에서 우리의 주인공 조이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궁금하지 않아? 난 아직 <노인의 전쟁> 시리즈를 읽지 않았지만 <조이 이야기>를 보고 나니 갑자기 궁금해졌어. <노인의 전쟁>으로 시작해서 <유령여단> <마지막 행성>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어떻게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될지...생각만해도 두근두근, 기대가 되네. 이번 가을은 SF소설에 빠져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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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그림여행 - 고흐와 함께하는 네덜란드.프랑스 산책
최상운 글.사진 / 샘터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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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이었습니다. <화가의 눈>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기 위해 저자는 화가가 그림을 그린 장소, 화폭에 담긴 풍경의 실제 장소를 직접 찾아가봐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스페인 등 유럽의 곳곳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물감을 점점이 겹쳐서 찍은 점묘파의 화가 쇠라를 비롯해서 모네와 쇠잔, 뭉크의 그림이 그려진 장소로의 여행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정말 흥미로웠는데요. 바로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이 있더군요. 짙은 청보라빛 밤하늘과 노란 벽이 대조를 이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밤의 카페 테라스’. 그림과 실제 장소를 찍은 사진을 통해 고흐의 시선을 짐작해보곤 했는데요. 고흐의 그림을 좀 더 만나길 바랬던지라 왠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흐의 그림을 위해, 그의 그림이 탄생한 장소를 찾아가는 책이 출간됐습니다. ‘고흐와 함께 하는 네덜란드. 프랑스 산책’이란 부제의 <고흐 그림여행>인데요. 저자는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었지만 지독한 가난과 정신질환, 외로움의 고통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고흐의 삶과 그림을 재조명하기 위해 프랑스와 네덜란드로 향합니다.


그 첫 번째로 저자는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을 소개합니다. 고흐의 작품이 가장 많아서 고흐 기행의 성지라고 불리는 그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베 짜는 사람] [감자 먹는 사람들] [씨 뿌리는 사람][추수] 등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고흐가 농부를 좋아해서 그들의 고단한 일상과 곡식의 수확과정을 오랜 시간을 두고 그렸다고 전합니다. [꽃이 핀 아몬드 나무]는 예전에 처음 봤을 때 온화하고 포근한 분위기에 그것이 고흐의 그림이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요. 고흐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테오에게 보낸 선물이 바로 그 [꽃이 핀 아몬드 나무]라는 설명에 고흐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지 왠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 오테를로의 크뮐러 뮐러 미술관에서는 고흐가 처음으로 유화를 시작했을 때의 그림 [숲 속의 소녀]를 비롯해서 인상파, 점묘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 [레스토랑 실내], 녹색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유모, 롤랭 부인의 초상화][롤래의 초상화],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해바라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고흐는 동생 테오의 영향으로 한때 파리에 머물기도 했는데요. 예술가들의 동네라고도 불리는 몽마르트르에서 고흐는 인상주의 화풍으로 [플리쉬 대로]를 남기기도 했고 [탕기 아저씨의 초상화]를 통해 당시 고흐가 일본 회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오르세 미술관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에서의 <밤의 카페 테라스>, 고흐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별이 빛는 밤>을 만나면서 고흐가 밤의 풍경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자신의 기억과 상상을 더해서 그렸다고 하는데요. 고흐의 작품에 나타난 천체의 모양을 현재의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는 대목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네덜란드와 파리의 이곳저곳을 여행한 <고흐 그림여행>. 이 책으로 고흐에 대해 새로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당시의 상황과 풍경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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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이 미술로 달라졌어요
최민준 지음 / 아트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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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의 일이다. 매일같이 야근에, 회식에 늦게 귀가하던 남편이 모처럼, 정말 오랜만에 제 시간에 퇴근을 했다. 저녁을 먹고 두 아들 녀석이 블록놀이하고 있을 때 커피 한잔 들이밀면서 슬그머니 얘기를 꺼냈다. 큰아이가 숙제를 잘 안 챙겨서 학원샘한테서 자꾸 연락이 온다고. 어떻게 숙제도 안 하고 놀고 잠을 잘 수 있는지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 자기가 한 번 얘기해보라고. 같은 남자니까 통하는 게 있을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남편은 뜬금없는 얘길 한다는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숙제 안 해도 잠 잘만 오는데?” 잠깐 혼나면 끝인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자기도 그랬다고.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순간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아이고...아빠와 아들이 서로 닮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똑같을 수 있다니.


사실 남자와 여자가 같을 수 없다. 지금까지 숱하게 읽었던 인간의 뇌와 성격에 관한 책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기 때문에, 엄마 뱃속에서 이미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기 때문에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자 여자이자 엄마인 난 알고 싶었다. 남자인 아들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지 자꾸 의문이 들었고 한편으론 불안했다.


그래서 ‘남자아이를 위한 맞춤형 미술교육 노하우’라는 부제의 <우리 아들이 미술로 달라졌어요>란 책이 출간되었을 때 지금껏 내가 찾던 것이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그림 그리는 것도 만드는 것도 재밌게 즐겁게 잘만 하던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그림’이나 ‘미술’ 얘기만 꺼내도 손사래를 치며 꺼려하는 게 아닌가. 더구나 내년이면 큰 아이는 중학교에,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나로선 두 아들의 미술교육이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미술교육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니.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르다는 걸까? 남자아이들을 위한 미술교육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너무나 궁금했다.


큰 기대를 품고 책을 펼친 나는 책장을 몇 장을 넘기지 않아서 ‘풋!’ 웃음이 나왔다. 저자 역시 어릴 때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숙제를 안 해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노라고 쌈박하게 털어놓는 걸 보면서 또 한 번 실감했다. 내 남편과 아들만이 유독 별난 게 아니란 것(이건 위안이 된다). 남과 여, 정말 다르다는 것.


이후 책은 엄마가 모르는 아들의 마음, 이를테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죽어도 말하지 않는 것과 아들이 ‘네에’라고 대답했다고 해서 그것이 긍정과 수긍의 사인,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라는 건데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떴다. 그래서 여자인 난 어쩌란 것이냐.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아들이 말을 안 듣고 늘 산만하다는 얘기를 듣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라고. 그게 바로 창의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의 특징이라고. (오호, 희망이 생긴다.) 그런 다음 남자 아이들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미술교육을 어떻게 해야 효과적이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지 하나하나 짚어준다. 그리고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매료되는 것들, 자동차나 공룡, 로봇, 무기, 스포츠 등을 주제로 아이들과 활동한 것들을 수록해 놓았는데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자동차와 로봇에 푹 빠져있는지라 특히 더 자세히 보게 됐다. 


저자는 말한다. 아들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부족함을 채우려고 하기보다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잘 할 수 있는 부분,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기질을 찾아 제대로 발휘하고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아이도 조금씩 변한다고. 수많은 육아서적에서도 비슷한 글을 읽었지만 이번엔 더욱 절실하게 와 닿았다. 아이가 변하길 바란다면 그전에 먼저 내가 달라져야 한다. 육아에 있어서 가장 기본 중에 기본,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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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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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와라 히로시. 그가 처음이었다. 몇 년 전 그의 소설 <하드보일드 에그>를 앞에 놓고 불쑥 내 뱉은 말, “대체 ‘하드보일드’가 뭐야?” “계란을 완숙하다...그럼 ‘하드보일드 에그’는 ‘완숙 계란’? 참 요상한 제목이로세”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 때문에 한참 고민했는데 ‘하드보일드(Hardboiled)’는 쉽게 말해서 ‘비정. 냉혹’이란 뜻의 문학용어로,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에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이란 부제의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를 보면서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드보일드 에그>의 주인공이 사춘기 때 읽은 챈들로의 소설 속 인물, 필립 말로에 반해서 자신도 고독과 차가운 이성이 돋보이는 탐정이 되고자 했던 것처럼 이 책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에는 또 어떤 인물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가 됐다.


‘시작은 홈즈와 뤼팽이었다’고 저자는 자신이 하드보일드의 세계를 접하게 된 때를 이야기한다. 홈즈와 뤼팽 다음으로 아가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 뒤이어 미스터리와 스릴러, 환상과 SF문학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일련의 과정이 나와 유사한 대목이 많아서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다만 저자가 충격적이면서도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의 출연으로 3대에 걸친 마피아 가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대부>를 꼽았는데 난 그다지 깊게 와 닿지 않았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세상의 수많은 부조리에 절망하여 타협하거나 포기하기보다 오히려 그에 맞서기 위해 뼛속 깊이 고독과 냉혹한 이성으로 무장한 이들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을 저자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그에 못지않게 악인 역시 존재하며 평범한 일상 가운데 벌어지는 갖가지 범죄에 대한 작품들(요시다 슈이치의 <악인>,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마이클 코넬리의 <유골의 도시>,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 없는 독>...)을 시작으로 참혹한 세상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평범한 사람이 범죄자, 악인이 되어가는 소설(데니스 루헤인의 <비를 바라는 기도>, 로렌스 블록의 <무덤으로 향하다>,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 치열한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횡횡하는 사회 속에서 교육의 진정한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사쿠라바 가즈키의 <아카쿠치바 전설>, 후루카와 히데오의 <벨카, 짖고 있는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짐승의 길>,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 비정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것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의 이야기(제프리 디버의 <본 콜렉터>, 로버트 크레이스의 <워치맨>, 리 차일드의 <추적자>...), 시스템이란 거대한 조직에 매몰되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 이들의 이야기(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 가키네 료스케의 <와일드 소울>, 가이도 다케루의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등 총 38편의 소설이 소개되어 있다.


문화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저자가 전하는 하드보일드 소설 속 사회와 주인공을 비롯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38편의 소설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읽지 않은 책은 전적으로 저자의 이야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의 생각과 의견이 곧 나의 생각과 의견처럼 되어 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 그것은 각각의 소설과 내용, 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아니라 비정하고 불합리하고 공평하지 못한 이 세상,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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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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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로 길게 땋아 내린 머리, 흰 상의. 보이는 건 오로지 뒷모습뿐인데도 왠지 알 것 같다. 단정한 차림새, 뒷목의 가녀린 솜털...에서 여인이 되기 이전의 소녀의 앳된 모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소설의 내용’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란 제목과 십대의 소녀.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책은 양엄마인 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카밀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내가 죽은지 2년도 되지 않았지만 젊은 여인과 재혼을 서두르는 양아버지는 카밀라의 어린 시절 물건들을 보낸다. 커다란 박스로 여섯 개나 되는 물건들을 쌓아두고만 있던 카밀라는 며칠 후 하나의 박스에서 손때 묻은 낡은 곰 인형을 발견하고 솟구치는 슬픔에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그리고 무심코 찾은 극장에서 한 남자, 유이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카밀라의 출생의 비밀(십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지 6개월 밖에 안 되었을 때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되었다)을 모르는 유이치는 어느날 카밀라의 유년의 추억이 담긴 박스를 살펴보면서 카밀라에게 글을 써보라고 말한다. 카밀라가 매일 추억의 물건을 소재로 써내려간 글은 자전소설로 출간되고 이어 그녀는 출판사로부터 책에 수록된 사진을 바탕으로 논픽션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 제안이 ‘운명이 부르는 소리’라고 여겼던 카밀라는 유이지와 함께 진짜 집, 엄마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낡은 사진과 편지 한 장을 들고.


드디어 고향, 진남에 도착한 카밀라는 자신의 진짜 엄마가 다녔다고 짐작되는 학교, 진남여고를 찾는다. 하지만 그녀의 일행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비밀이었다. 진짜 엄마의 비밀을 알려줄 인물, 진남여고의 교장은 카밀라의 주장을 거짓으로 치부해버린다. 진남여고의 학생 중에는 순결의식을 치르기 때문에 십대 미혼모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망한 카밀라는 신문사를 찾아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신문에 게재하는데 이야기하고 이후 친모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이가 찾아와 충격적인 얘기를 전해준다. 카밀라의 엄마인 정지은은 분명 진남여고를 다녔으며 오래전에 죽었다는 것. 더 자세한 걸 알고 싶으면 교장을 다시 만나라는 것. 카밀라는 과연 자신의 출생과 친모의 죽음에 관한 진실과 비밀을 알게 될까...


‘카밀라’, ‘지은’, ‘우리’로 나뉘어진 책은 미국과 한국의 남도, 일본과 동남아를 배경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드라마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것이지만 책은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다. 정희재(카밀라의 한국이름)의 출생의 비밀과, 그녀의 엄마인 정지은의 이야기가 시점이 수시로 변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서 이야기에 빠져 책을 읽다보면 나중에 다시 앞으로 돌아가 되짚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정희재의 친부가 누구인지를 추적해가는 분위기 속에서 저자는 자신을 낳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희재와 뱃속에 품은 아이를 마음껏 사랑해줄 수 없었던 지은의 아픔을 말한다. 서로 가깝다고 여겼던 이들이 어느 순간 가장 멀게 느껴질 만큼 돌아서버리게 되는 순간의 안타까움과 슬픔도 저자는 담담한 말투로 전한다. 아픔과 슬픔을 꾹꾹 누르고 쓴 글이어서일까. 그만큼 더 간절하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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