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작 영화 50
노비친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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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가졌던 의문 중 하나. 주말의 명화에 나오는 외국 배우들이 모두 우리말을 유창하게 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귀로 들리는 대사와 배우들의 입모양을 찬찬히 비교해보니 왠지 꼭 들어맞는 게 아닌가. 나중에서야 그게 우리나라 성우들이 더빙한 거란 걸 알고 시시하게 생각했지만...그렇다고 영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를 더 많이 보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할 세계의 명작영화 50> 이 책을 손에 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봤던 영화는 몇 개나 되나 하는 거였다. 어릴 때부터 밤잠을 설쳐가며 영화를 봤으니 제법 되지 않을까 했는데, 이럴수가...확실하게 내가 봤다고, 내용까지 생각나는 영화는 고작 10개에 불과했다. 그 외엔 제목조차 처음 듣는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영화사에 오래도록 빛나는 걸작 영화 50편을 7개로 나누어서 소개하고 있다. 각 영화마다 간단한 줄거리와 함께 그 영화를 왜 걸작, 명작이라고 하는지, 영화를 찍는 과정이나 독특한 촬영기법을 얘기한 뒤 ‘명대사’ 한마디로 끝을 맺고 있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것 몇 가지를 언급하자면 가장 먼저 소개한 [전함 포템킨]은 여러 장면과 컷이 연결되어 동시에 진행되는 여러 공간의 움직임을 ‘몽타주’하는 ‘몽타주’기법이 [전함 포템킨]에서 최초로 시도됐다고 한다. 대표적인 장면이 ‘오데사의 계단’에서 사용됐다고 하는데 여기까지는 ‘몽타주 기법’이 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언터처블]의 클라이맥스 장면, 유모차가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동안 벌어지는 총격전이 바로 ‘오데사의 계단’을 인용한 거란 대목에서 아하...하고 무릎을 쳤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는 분량의 필름이 소모된 대작 [벤허].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코 백마와 흑마가 이끄는 전차가 서로 앞서기 위해 격렬하게 질주하는 장면인데 특수효과가 없는 시대에 만든 장면임에도 생동감이 넘친다. 여기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차경주 장면은 단 15분에 불과하며...‘나머지 3시간 15분은 케케묵은 종교영화’라며 대담하게 던져도 좋다고. 그만큼 경주장면은 압권이란 얘기겠지.




스티브 맥퀸의 개구쟁이처럼 쾌활한 모습이 돋보인 [대탈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여배우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탈출영화란 것, 세대를 초월한 ‘상식 중의 상식’으로 통하는 영화 [대부]에서는 독특하게 영화퀴즈를 풀어보라고 제시하는데 영화를 안 봐서 퀴즈를 풀지 못해서 아쉬웠다. 단 3편의 영화에 출연해 반항아적인 이미지로 전세계 수많은 여인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제임스 딘. 그는 어떤 역할을 해도 ‘제임스 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에덴의 동쪽]에서의 제임스 딘의 표정 연기를 6가지로 간추려서 설명해놓고 있다. 수많은 배우들이 제임스 딘을 모방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연기라고 하는데 글쎄, 내가 보기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를 연기한 김명민의 다양한 표정이 왠지 더 돋보이는 듯하다.




이외에도 잉그리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카트가 주연한 너무나 유명한 영화 [카사브랑카]와 공포영화 [엑소시스트]에 숨겨진 뒷이야기를 소개해놓고 있는데  기억해뒀다가 친구나 가족들과 얘기 나눌 때 아는 척하면 왠지 재밌을 것 같다.




저자와 내가 정말 좋은 영화, 명작이라고 하는 영화의 기준에도 차이가 있어선지, 내가 본 영화가 극히 적어선지 저자가 소개한 50편의 영화 중에서 솔직히 왜 명작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책에 소개된 영화를 꼭 한번 챙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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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연인 올랭피아
데브라 피너맨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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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없이 맑은 우윳빛 피부를 드러낸채 나른한 듯 기대어 누워있는 여인. 그녀가 몸에 두른 건 단순한 모양의 목걸이와 팔찌뿐. 정면을 향한 시선 때문일까. 그녀는 너무나 당당하게 보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얼굴을 붉히는 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여야 하는데 오히려 그녀의 눈부신 나체를 바라보는 내 얼굴이 붉어진다.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다.




<마네의 연인 올랭피아>는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모델이자 단 하나뿐인 뮤즈였던 빅토린 로랑에 관한 픽션소설이다.




빅토린은 부모없이 이모들의 손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다 하류층 출신의 소녀들이 입단하는 코르 드 발레단에 들어간다. 실력보다 미모를 기준으로 뽑힌 발레리나들은 부유한 유부남이나 기업가들의 정부가 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빅토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언젠가 시들어버리는 꽃과 같다. 유일하게 남는 건 오직 돈 뿐이라고 여긴 그녀는 보다 부유하고 강력한 권력을 지닌 남자의 눈에 들는 것에 전념한다. 드가의 소개로 마네를 만나고 그로부터 모델 제의를 받았을 때도 빅토린은 유명살롱에 자신의 초상화가 전시되면 그것이 자신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고 더 빨리 출세할 수 있을거라 여겨서였다.




한편 다른 화가와 달리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르주아 출신의 마네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면을 지녔다. 그는 영감을 주는 여자를 발견할 때마다 그 여자와 자신이 그리는 그림 속의 여자, 둘 다와 사랑에 빠지는데 빅토린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매료되어 그녀에게 모델 제의를 한다. 마네가 빅토린을 그린 그림들은 살롱에 전시될 때마다 큰 화젯거리가 되고 그림 속의 빅토린이 입었던 옷이나 장신구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한다. 특히 당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현대 여성의 누드초상화 <올랭피아>로 인해 파리가 발칵 뒤집힌다. 그녀의 미모는 리옹 공작을 비롯한 몇 명의 귀족뿐만 아니라 황제까지도 매혹시킨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코르티잔, 호화롭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곧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황제의 목숨을 노린 암살범으로 의심받기에 이르는데...




책은 하류층 출신의 발레리나 빅토린이 마네의 모델이 되면서 황제의 정부가 되어 권력과 사치를 누리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도 알게 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여준다. 더불어 <올랭피아>를 비롯해 <거리의 여가수>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같은 마네의 그림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지 엿볼 수 있는데 책 뒤쪽에 본문에서 언급된 그림들을 따로 수록해놓아서 이해하기도 쉬웠고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또 드가와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르누아르, 세잔과 같은 예술가들이 주변인물로 자주 등장해서 재미를 더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빅토린과 마네의 사랑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곁에서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들은 서로에게 운명적인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삶은 시간이 아닌 일련의 인상으로 이뤄져있다는 마네.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은 어떤 인상으로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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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샘깊은 오늘고전 8
김이은 지음, 정정엽 그림, 김시습 원작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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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조선 전기때 김시습이 지은 최초의 한문 소설이라고 여고때 빨간색 볼펜으로 줄을 긋고 별을 몇 개나 그려 넣었다. 시험에 꼭 나온다고 몇 번이나 강조를 했지만 정작 그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몰랐다. 그런데도 당시 우리는 그걸 아쉬워하거나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한문을 이리저리 뜯어 맞춰서 해석하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수업을 안해서 오히려 좋아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




책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생규장전(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의 주인공은 ‘풍류재자 이도령, 요조숙녀 최낭자’다. 고려 선비 이생은 길을 가다가 담장너머로 바라본 최씨 처녀의 모습과 그녀가 읊은 시에 반한다. 최씨 처녀 또한 그를 흠모했던지 두 사람은 처음 만남에서부터 서로에게 매료된다. 사랑 놀음에 빠진 이생이 학업을 게을리하자 부모는 이생을 멀리 보내고 몇 달째 그를 만나지 못한 최씨 처녀가 자리에 누워 사경을 헤매자 그들의 부모는 두 사람의 혼인을 허락하게 된다. 하지만 홍건적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부부가 되어 더욱 깊은 정을 나누던 두 사람의 꿈같은 행복도 종말을 맞는다. 홍건적에게 죽임을 당한 최씨 처녀는 혼백으로나마 이생의 곁에 머물다 사라지자  아내를 그리워한 이생 역시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다.




<만복사저포기(부처님과 내기한 선비)>의 주인공인 양생은 나이가 꽉 차도록 짝을 찾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만복사에서 등을 밝히는 날 부처님과 내기를 한다. 자신이 이기면 아름다운 처녀를 구해달라고. 그러자 부처님이 정말 그의 소원을 들어준 듯 양생은 아리따운 처녀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처녀를 만나 지내면서 양생은 왠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닌 듯 이상함을 느낀다. 사흘 후, 처녀는 양생에게 이별을 고한다. 알고보니 그녀는 왜적이 침입했을 때 죽은 처녀의 혼령이었다. 삼주기가 되어 제를 올린후 저승으로 떠난 처녀를 잊지 못해 양생은 혼자 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고 살았다고 한다.




<이생규장전>, <만복사저포기> 두 편 모두 처음 만난 남녀가 금세 사랑을 느끼고 인연을 맺는 대목은 좀 충격적이었다. 고려나 조선시대 당시엔 여인의 정조를 무엇보다 중요시했을텐데...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천재문인’ 김시습은 여기서 그런 연인의 애정행각을 말하고자 한 게 아니었을 거다. 세조가 어린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자 출세 따위는 마음에 두지도 않고 끝없이 방랑하던 김시습. 그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조차 허물어버린 연인들의 사랑을 통해 삶과 죽음, 더 나아가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하려했던 건 아닐까. 사랑하던 처녀를 그리워하며 떠돌던 이생과 양생에게서 김시습의 모습이 얼핏 묻어난 듯하다.




한문소설이라 내용이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을까했는데 나의 기우였다. <금오신화>를 한글로 번역한 김이은은 원문의 내용과 느낌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쉽고 매끄럽게 풀어놓아서 읽으면서도 즐거웠다. 방랑자 김시습이 남긴 아름답고도 기이한 사랑이야기를 이제라도 제대로 만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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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1
스제펑 지음, 차혜정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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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몇 년 전 모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국민 중 삼분의 일 가량이 <삼국지>를 읽었다는 얘길 했다. 삼분의 일. 상당한 숫자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도 아닌 중국의 역사를 다룬 <삼국지>를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토록 많은 이들이 찾는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개성강하고 매력적인 수많은 영웅들과 흥미진진한 전술과 전투, 당시 역사를 기본으로 한 방대한 지식이 <삼국지>에 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의 원작소설이 출간됐다. 유비와 손권이 손을 잡고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에 맞서 화공으로 싸운 전투 ‘적벽대전’은 ‘삼국지’에서 치러지는 수많은 전투 중에서 단연코 가장 돋보이는 전투 중의 백미다. 소설 <적백대전>이 담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적벽대전’이다.




중국 후한 말기, 원소를 무찌른 조조는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약 18만의 대군을 이끌고 남하한다. 당시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있던 유비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뛰어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유능한 참모란 걸 깨달은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천재전략가인 젊은 제갈량을 맞아들인다. 유표가 죽은 후 형주가 혼란에 빠지자 조조는 군대를 이끌고 유비의 뒤를 쫓는다. 조조에게 패한 유비는 제갈량을 오의 손권에게 사신으로 보낸다. 한편 조조 역시 손권에게 사자를 보낸다. 자신과 연합해서 유비를 치자고. 이에 오에서는 조조에게 투항할 것인지, 저항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해진다. 주유와 만난 제갈량은 ‘동작대부’란 시의 일부 구절을 바꿔 조조가 대교와 소교 자매를 차지하려 한다는 내용으로 읊어 주유의 화를 부추기고 마침내 손권은 유비와 손을 잡고 조조에 맞서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돌입하는데...




워낙 오래전에 ‘삼국지’를 읽었기 때문인지 ‘적벽대전’ 어떤 전투인지는 알았지만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 과정은 기억하지 못했다. 이번에 소설 <적벽대전>을 읽으면서 비로서 아....그랬지..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조조가 그렇게 탐을 낸다는 대교와 소교 자매에 대해선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아마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그 자매를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형수를 사랑하는 손권의 안타까운 사랑과 주유와 소교의 헌신적 사랑은 나라의 존폐가 걸린 전투로 인해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소설에 재미를 더해줬다.




책의 출간과 비슷한 시기에 영화 <적백대전 2>가 상영됐는데 미처 보지 못했다. 책으로만 접했던 제갈량(본문에 수록된 사진을 보니 제갈량 역을 진청우란 배우가 맡았는데 너무 멋있다)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정말 아쉽다. 짚을 가득 실을 배로 전쟁을 치르기 위해 필요한 10만 개의 화살을 구하고 조조의 배를 쇠줄로 연결하는 연환계를 쓰도록 한 것과 겨울에 결코 불지 않으리라던 동남풍이 블어와 조조의 배가 불에 휩싸이는 장면을 오우삼 감독의 화려한 영상으로 꼭 보고 싶었다. 이 멋진 장면들을 꼭 영화관의 대형화면으로 봤어야 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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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트 1 Medusa Collection 7
제프 롱 지음, 최필원 옮김 / 시작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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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천천히 위로위로 가지를 뻗는다. 숨을 죽여라.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이성까지도 깨워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그렇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 저 암흑의 지옥으로 엄청난 공포에 삼켜지게 될 것이니...




히말라야 산맥 탐험에 나선 아이크 일행은 매서운 폭풍을 만나 동굴로 몸을 피한다. 동굴 속의 만다라를 살펴보던 아이크는 바싹 말라버린 시체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끔찍하게 훼손된 시체. 거기엔 온몸 가득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영어로, 그것도 거꾸로. ‘사탄은. 존재한다’고. 어느 순간 일행 중 한명이 사라지자 그를 찾기 위해 아이크 일행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만 누군가에 의해 모두 순식간에 살해되어 처참한 시체가 되어 버린다.

 

언어학자이자 수녀인 앨리는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나병 환자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곧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기념으로 마을 사람들과 사진 촬영을 하던 그녀는 한 소녀에게서 알 수 없는 얘기를 듣는다. 원로 지미 샤코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 굶주린 신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앨리 대신으로. 착각이나 미신 같은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녀는 곧 소녀에게서 선물로 받은 목걸이가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거란 군인의 말에 일순 혼란에 빠진다.




한편 보스니아의 몰리 캠프에서는 내전 당시 대량학살이 벌어진 지역에서 질소의 농도가 과다하게 배출되는 걸 포착한다. 이에 브랜치는 동료와 함께 문제의 현장에 탐사를 나가서 근접비행을 시도하다가 갑자기 추락한다. 그리고 헬리콥터에 함께 탑승했던 동료가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브랜치 역시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아이크, 앨리, 브랜치. 이 세 명의 주인공이 주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처음엔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사건들이 아이크와 브랜치가 만나고 앨리와 브랜치, 아이크와 앨리, 또 다른 이들이 합류하면서 서로 연결되고 눈덩이처럼 커진다.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와 배경도 어마어마하다. 바로 우리의 땅속. 저 깊은 곳에 존재하는 지하동굴 속에 현생인류와 반대의 진화과정을 거친 ‘헤이들’이 존재한다니! 흉측한 모습에 비해 엄청난 괴력을 보여주는 그들은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끔찍하게 고문하는가 하면 인육을 먹기도 한다. 지하동굴을 탐색나갔던 군인 25만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정부와 기업의 관심은 오로지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깊은 지하세계였다. 그곳에 새로운 나라,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하는데...




책은 끓는 냄비를 연상시켰다. 냄비 밑바닥에서 물이 보글보글 막 끓어오르려는 찰라 불을 꺼버리는 것처럼 소설은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갑자기 다른 인물과 사건으로 튀었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스토리 전환 때문에 몰입하기가 힘들어서 초반엔 꽤나 애를 먹었다. 그러다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대형타를 터트린다. 틀림없이 불이 꺼진 상태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계속 조금씩 끓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여기저기 널려있던 냄비가 한꺼번에 부글부글 끓어넘치기 시작한다. 숨가쁘게 몰아가는 속도, 따라가자니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갑작스런 전개는 앞을 돌아볼 여력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땅 속 깊은 곳에 지옥이 존재한다. 자신들만의 문명과 역사를 가지고 생존을 거듭해온 그들. 기이한 모습만큼 포악하고 잔인하기 이를데없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저자는 탐사대를 땅 속 깊은 곳으로 이끌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난 이상하게도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을 훔쳐본 느낌이다. ‘사탄은 존재한다’. 무엇이 사탄인가. 어디에 존재하는가.




정신 바짝 차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는 지옥의 깊은 구렁텅이, 공포의 세계로 빠져버릴지 모른다. 쉬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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