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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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바 가즈키의 <내 남자>.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유혹적이다. 거기에 띠지의 이 문구! ‘해서는 안 될 가장 처절하고 슬픈 사랑...아름답지만 위험하고 달콤하지만 죄의 향기가 나는 소설!’. 얼마나 매혹적인지! 금지된 것에서 느껴지는 위험의 향기가 느껴지지만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내 남자는 훔친 우산을 천천히 펼치면서 이쪽으로 걸어왔다....우산을 훔친 사람인데, 그 동작은 영락한 귀족처럼 매끄럽고 우아하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스물여섯 살인 나오가 결혼식을 앞두고 만나는 양아버지인 준고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양아버지를 ‘내 남자’라 하다니! 시작부터 충격이다. 양아버지가 사랑하는 내 남자가 된 데에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거라 여겼다. 근데 그게 아닌가? 왠지 야릇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와 요시로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하나는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양아버지인 준고가 사라졌다는 것. 벽장에 숨겨놓은 ‘그것’까지 사라졌다. 하나는 깨끗하게 정리된 예전의 집에서 망연자실하고 비 냄새가 나는 남자인 준고를 그리워한다.




그후 책은 하나와 결혼한 요시로와 준고, 하나, 준고의 연인이었던 고마치, 다시 하나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조금씩 조금씩 과거로 돌아가면서 이야기와 사건들이 서술되는 방식이다. 일본소설 특유의 문체. 나긋나긋하면서 조용한 문체와 감성적인 문장, 거기에 소설의 배경인 일본의 북쪽대륙 항구마을인 몸베쓰, 겨울이면 온 바다가 유빙으로 가득 차는 곳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정경묘사는 어느새 독자들을 책으로 완전 몰입하게 만든다.




홋카이도의 작은 섬에 살던 하나는 어느날 갑작스런 해일로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는다. 부모님이나 형제와 함께 죽지 못한 걸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는 하나 앞에 한 청년이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구사리노 준고. 자신을 먼 친척이라 소개한 그는 하나를 데려가 키울 의사를 밝힌다. 해양순시선을 타면 바다에서 며칠을 지내야하는 직업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을거라는 주위 친척들의 만류도 무릅쓰고 준고는 하나를 양딸로 삼는다. 그리고 그 둘은 조금씩 서로의 향기와 체취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하나가 준고이고 준고가 하나인 생활이 이어지는데....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사촌간의 결혼이 허용되는 일본사회의 특성 때문인지 근친상간이나 동성애가 소설이나 만화에 자주 거론된다. 그래서 처음엔 금지된 사랑을 하는 두 주인공이 배다른 남매나 오래전에 헤어진 친남매가 아닐까...생각했다. 그런데!! 책에서 털어놓는 이야기는 내 상상을 벗어났다. 그래선지 책을 읽으면서 정말 괴로웠다.




숨가쁘게 책을 다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유복한 집안의 아들로 부족함이나 구김 없이 자란 요시로, 그는 왜 하나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됐을까. 영혼을 보거나 기운을 느끼는 그는 하나의 집 벽장에서 하나와 준고가 저지른 죄의 증거를 봤다. 그런데도 왜? 하나와 준고는 왜 서로에게 그렇게 집착하게 됐을까? 서로를 끝없이 탐하는 삶, 둘이 하나가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던 그들...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하나의 엄마는 왜 딸을 그토록 미워했을까? 하나가 정말 그녀가 배로 낳은 딸이 맞나? 불륜에 의해 임신했더라도 그래도 자식이고, 딸인데...해일이 덮치는 순간 하나의 가족이 취한 행동은 가족이란 뭔지...란 의문을 품게 했다.  하나의 출생의 비밀은 끝끝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의문은 바로 사라진 준고의 행방이다. 어디에 있든 죽을 때는 반드시 바다 옆으로 돌아올 거라는 자신의 말대로 바다로 향한 걸까. 그들의 씻을 수 없는 죄의 증거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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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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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상아, 넌 그런 것도 모르냐?”, “아이고~오, 이 답답아!!”, “야! 쩡광셴!! 너의 반복 학습능력은 완전 바닥이야 바닥. 그거 알어?”.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해죽는 줄 알았다. 엽기의 도를 넘어서서 주인공의 앞뒤 꽉 막힌 행동은 나의 이해반경을 훨씬 벗어나 있었다. 똑같은 일, 똑같은 실수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그럴때마다 자신의 얼굴이나 입을 스스로 쥐어박거나 찰싹찰싹 때리는 걸 보고 슬며시 의심하기도 했다. 이 남자, 정말 정상이야? 살짝 모자라는 거 아냐?




<미스터 후회남>. 아~니, 이렇게 궁상맞은 남자가 또 있을까. 제 멋대로 깎은듯한 헤어스타일에 긴 코, 콧구멍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들이칠까 걱정될 만큼 위로 뻥 뚫려있다. 크기만하다. 거기다 코 밑이랑 턱엔 삐죽삐죽 수염이 보인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건 남자 눈빛이다. 여덟팔자처럼 아래로 찡그린 눈썹에 커다란 눈동자. 불쌍하다 못해 처량하기 짝이 없다. 이런 얼굴을 어른들은 아마 복이 붙은 데가 하나도 없는 관상이라고 하시겠지?




‘별다른 의견이 없지. 아가씨? 그러면 이제부터 내 얘기를 슬슬 시작해보겠어.’ 이렇게 시작한 책은 주인공인 쩡광셴이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이야기이자 후회담이다.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된 아버지와 자오산허의 불륜행각. 들통난 아버지와 자오 할아버지는 광셴에게 ‘아무것도 못 본거’라며 단단히 입조심을 시킨다. 하지만 자기 속에만 담고 있기에 너무 큰 비밀이었던걸까. 다정하게 대하는 엄마한테 속이는 게 너무 미안해서,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친구 위바이자의 맹세를 믿고 또 자오완넨에겐 얼떨결에 광셴, 기어이 일을 치고야 만다.




그때부터 시작된다. 광셴의 후회담은. “내가 제일 무서운 건 다른 게 아니야. 바로 몹쓸 놈의 네 입이야”라며 자신의 입이 집에 화를 불러들이니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지 말라는 엄마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광셴의 입은 제어불능이다. 자신을 좋아해서 치마까지 걷어 올린 샤오츠에게도 ‘저질’이라며 소리를 지른다. 근데 일이 꼬이려고 했던 걸까. 광셴은 샤오츠가 떠난 뒤에야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샤오츠에게 지난날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샤오츠에겐 다른 남자가 있었다.




또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자오징둥이 자신의 말실수로 인해 자살하게 되는데 그 원인제공자였던 장나오를 만난 광셴은 보자마자 다시 열에 들뜬다. 거기다 위바이자의 부추김이 더해져 광셴은 장나오의 숙소에 침입하기에 이른다. 결국 광셴은 강간죄로 8년형을 받고 감옥에 간다. 그런 그에게 루샤오옌은 정성을 다한다. 예전보다 달라진 그의 모습에 광셴이 이제야 제정신을 차렸구나 싶을 찰라에 광셴, 또 일을 친다.




자신의 강간죄가 무고하다는 게 판명되고 출소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광셴은 우리의 기대(?)에 결코 어긋나지 않았다. 루샤오옌과 장나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우왕좌왕할 때는 어이가 없었다. 급기야 종이 두 장에 루샤오옌과 장나오의 이름을 적어서 하나를 골라서 결혼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늘어놓을 때는 너무 화가 나서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도 있었다. 하나도 잘난 구석이 없는 광셴을 여자들이 뭐 좋다고 그렇게 매달리는 건지. 아무리 중국이란 나라가 우리와 다르고 또 시대적 배경(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 시기)이 다르다 치더라도 여자의 기준이란 비슷하지 않을까. 책임감이나 주체성이라곤 눈 씻고 봐도 없는데다 걸핏하면 논리도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고 걸핏하면 말실수를 하는 남자. 나 같으면 열 트럭을 갖다줘도 싫다. 우리의 얼굴 중에 귀나 눈이 두 개인데 비해 입이 하나인 이유가 뭐겠는가. 세치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게 아닌가.




둥시의 책은 <미스터 후회남>을 통해 처음 만났다. 금욕, 우정, 충동, 일편단심, 신체, 방랑, 후회록(어처구니없게도 마지막 끝나는 순간에도 대미를 장식한다) 7개의 장에 걸친 광셴의 후회막급인 인생역정을 보면서 내 가슴팍을 얼마나 쳤는지 모른다. 답답해서. 참 딱하고 불쌍한 인생이다 싶다. 애처롭게 뒤를 바라보는 광셴이 언제쯤이면 후회스런 지난날을 이겨내고 시선을 똑바로 앞으로 향하게 될까. 과연 후회남, 동정남이란 딱지를 떼게 될까. 기대가 된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예요. 후회라는 것은 집 앞을 다 봤는데도 불구하고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아 집을 못 보는 것과 같아요. 또 집으로 가는 길이 가가운데도 일부러 빙빙 돌아 쿠바까지 가는 것과 같다고요. 더 말할까요. 후회는 자기가 다 지은 집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는 것과 같아요. -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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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터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
글렌 벡 지음, 김지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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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크리스마스 캐럴이 온 동네에 울려 퍼지던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집에 따스한 선물이 도착했다. 산타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빨간색 표지는 부산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눈송이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리본으로 포장된 스웨터! 눈의 감촉은 차가운데 눈송이 결정체에선 왠지 따스함이 전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이라는 부제에 꼭 어울리는 책이다.




여기 한 소년이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바나나 모양의 안장이 달린 빨간 허피 자전거를  간절히 소망하는 소년의 이름은 에디.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일 많이 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준다’는 말을 믿었던 에디는 빨간색 허피 자전거를 받기 위해 심부름이나 착한 일도 많이 하고 평소보다 더 정성껏 기도를 했다. 할아버지에게서 전수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탐색전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허피 자전거가 없었다. 그걸 에디는 희소식으로 받아들인다. ‘엄마가 자전거를 크리스마스 아침에 배달되도록 했을거야’ ‘크리스마스 카드에 허피 자전거 사진을 넣어 뒀을거야’ ‘내일부터 나도 친구들처럼 허피 자전거가 생긴다’....이렇게 생각한 에디는 가슴 두근대며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날 에디가 받은 선물은 그렇게나 원하던 빨간 허피 자전거가 아니라 엄마가 손수 만든 스웨터였다.




제과점을 하던 다정다감한 아빠가 돌아가신 후 가정형편이 급속도로 나빠졌다는 걸 에디가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는 허피 자전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가 야속하고 서운했던 에디는 할아버지네 집을 방문하고서도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았다. 피로에 지친 엄마가 할아버지 댁에서 하룻밤 자고 가자는데도 에디는 뿌르퉁하게 지금 꼭 집에 가야한다며 고집을 부린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하던 에디와 엄마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눈을 뜬 에디는 엄마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끔찍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 후 책은 에디의 방황을 그리고 있다. 에디는 언제까지나 자신의 곁에 있을거라 여겼던 사랑하는 가족, 아빠와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조금씩 자신만의 벽을 쌓기 시작한다. 단짝친구처럼 가까웠던 할아버지와의 관계도 하루가 다르게 점점 소원해진다. 할아버지의 애정어린 충고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 귀로 흘려버리거나 자신에게 훈계를 한다고 여긴다.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에디는 급기야 가출을 결심하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읽었던 <스웨터>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줬다. 주인공인 에디가 허피 자전거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정작 자신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하는 대목은 정말 안타까웠다. 에디야, 그게 아니야...책을 읽으면서 말을 건네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에디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란 걸 생각하면 한편 이해가 된다. 나 역시 학창시절에 별 것 아닌 일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 내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나의 비뚤어지고 토라진 마음을 쓰다듬고 안아주길 바랬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누군가가 넌 이런 점이 잘못됐다고 고치라며 콕 짚어서 지적할수록 반발심은 더욱 커졌다. 에디에게서 언뜻 나의 모습이 떠올라 책을 읽으면서 왠지 부끄러웠다.




에디의 방황이 극에 치달았을 때 책은 전혀 반대의 길로 접어든다. 추리소설로 치면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부분이 처음엔 다소 억지스러웠다. 굳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인 나의 시각일 뿐이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나와 다른 시선으로 이 책을 접하겠지. 그럼 얼마나 큰 감동과 느낌을 안겨줄까...생각해보게 된다.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지만 열심히 살다보면 내게도 이런 기적이 일어날거란 믿음을 갖는다는 거...정말 큰 행운이 아닐까.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 내게 도착한 <스웨터>는 그야말로 산타 할아버지가 내게 보낸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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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종말 리포트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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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렸을 때 <혹성탈출>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이 파란눈이 정말 근사했던 찰턴 해스턴이란 것과 결말이 충격적이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우주에서 길을 잃은 그가 유인원이 지배하는 어떤 행성에 추락한다. 자신과 같은 인간이 하등동물이나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탈출을 시도한다. 다행히 그는 탈출에 성공하고 어느 해변에 도착하지만 그 곳에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 절망에 빠진다. 처음엔 이 결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언니에게 물었다. “왜 그러는데?” “어, 저 사람은 저기가 지구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지구였거든.” “어떻게 지구란 걸 알았는데?” “,,,,니는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에 있다는 것도 모르나?”




마거릿 애트우드의 <인간 종말 리포트>를 읽으면서 어릴 때 봤던 <혹성탈출>이란 영화가 떠올랐다. 충격적인 지구의 미래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았지만 그 충격의 강도는 달랐다. <혹성탈출>은 그냥 영화일 뿐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비해 <인간 종말 리포트>는 좀 더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책을 읽는 동안 충격적이다 못해 소름이 돋았고 결코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책은 눈사람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진행된다.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대,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이상한 생명체들, 눈사람이 툭하고 던지듯 내뱉는 의미가 이어지지 않는 말들...로 인해 머리는 일대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지미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그때부터 책은 눈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오리무중 같은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눈사람이 ‘지미’란 이름의 소년이었을 무렵 지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무엇이든 가능해진다. 장기주식회사에 근무하는 과학자들은 장난삼아 취미활동처럼 동물간의 유전자조작 실험을 한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동물을 창조하면서 그걸 신나는 일이라며 즐겼던 그들은 신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한다. 그런 가운데 지미는 글렌(크레이크)이란 천재소년과 친구가 되고 성인이 되어 둘은 같은 연구소에서 일을 하게 된다. 크레이크는 자신의 연구과제인 모든 인간의 꿈인 젊음을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최고의 쾌락을 줄 수 있는 ‘환희이상’이란 알약과 인간들의 파괴적인 본능과 병적인 요소를 제거한 완벽한 유전자로 이뤄진 ‘크레이커’ 인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오릭스. 지미와 크레이크에게 사랑의 대상이었던 그녀는 크레이커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환희이상’ 알약을 먹은 사람들이 이상한 증상을 호소하면서 죽어가기에 이른다. 곧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죽는 가운데 몇몇 크레이커와 지미(눈사람)만 살아남게 되는데....




사실 책은 몰입의 정도에 있어 다소 느리고 지루하게 여겨졌다. 이야기가 사건의 진행과 맞물려 진행되는 게 아니라 눈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서술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혼란과 의문들,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이 어떻게 해서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그 많은 인간 중에 왜 눈사람 혼자 살아남았는지, 크레이커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은 상태로 지속되었고 그만큼 진행속도도 더디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에서 풀어내는 세계는 정말 놀라웠다. 순전히 작가의 상상과 공상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과 어느 정도 흡사하고 닿아있는 것이어서 충격적이었다. 책에서는 이종 동물간의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너구컹크, 늑개, 뱀쥐가 탄생했듯이 현실도 비슷하다. 사람 귀가 달린 쥐, 장기이식용 돼지, 인간용 인슐린을 생산하는 돼지와 같은 유전자조작 동물들이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로 다뤄진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책에서 오래되거나 노화된 피부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거나 유전적으로 완벽한 ‘크레이커’를 만드는 것은 마치 현실에서의 현재진행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내가 지옥에 있다고 믿는다’ 책의 띠지엔 이런 글귀가 있다. 처음엔 왜 무엇을 ‘지옥’이라고 여기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고 남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도 어떤 면에선 지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가시가 박힌 것처럼 내내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걸 다행으로 여긴다. 저자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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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글쓰기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의 지혜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 공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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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틈만 나면 책을 읽어대는 내게 친정엄마는 이런 얘길 하신다. “맨날천날 책만 읽으면 머하노. 퀴즈프로라도 나가바라. 상금타면 맛있는 거라도 먹어보구로.” 늘 듣는 얘기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간혹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난 단순히 책 읽는 걸 좋아하는 걸까. 뭔가를 이루기 위해 책을 읽는 걸까. 결론은...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때의 무언가는 내 글로 탄생한 책을 갖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면 어떤 것이든 찾아서 읽어보지만 아직 이렇다할 책을 만나지 못했다. 이제 글쓰기 책을 그만 읽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 나의 글 역시 쓰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글을 쓸 수 없는 걸까.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애착과 집착의 사이에서 방황할 때 한 권의 책을 만났다. ‘퓰리처상 수상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의 지혜’란 부제가 달린 <창조적 글쓰기>. 제목의 ‘창조적’이란 단어가 내 눈이 번쩍 떠졌다. 평소에 나 자신이 창의성이나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여겼던 차였다. 이번에야말로 내게 피와 살이 될 책 한 권을 만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저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라니.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




책은 ‘글쓰기의 미학’ ‘상상력의 에너지’ ‘몰입과 비전’ ‘경계를 넘는 열정’ ‘무한함의 가장자리’ ‘창조성의 탄생’해서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저자는 처음 1장에서 글쓰기란 어떤 것이며 글을 쓸 때 어떤 함정에 빠지기 쉬운지, 유명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써나갔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다음 2장부터는 저자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글쓰기 위해 필요한 공간은 멋진 작업장보다는 사방이 꽉 막힌 작은 공간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자신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겪었던 일, 이를테면 장작을 패면서 경험했던 몰입의 경지, 하나의 사물이나 대상(나방의 날갯짓)에서 새롭게 느꼈던 감동, 그동안 만난 사람들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상상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었는지를 털어놓고 있었다.




160여 쪽의 책을 매일 조금씩 읽었다. <창조적 글쓰기> 이 책을 통해 글 쓰는 일이 얼마만큼의 끈기를 필요로 하는지, 또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비참함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이어가는지 알 수 있었다.  <마의 산>을 쓴 토마스 만은 하루에 매일 한 쪽씩 글을 썼다는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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