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 케옵스 - 마르세유 3부작 1부
장 클로드 이쪼 지음, 강주헌 옮김 / 아르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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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이거 차암. 이거 대체 무슨 말이야? <토탈 케옵스>를 읽으려다가 갑자기 난감한 상황에 부딪혔다. ‘토탈 케옵스’가 무슨 뜻인지 알아보려고 검색을 했지만 어디에서도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거 참 알 수 없는 일이로세. 할수 없이 포기를 하고 표지를 넘겼더니 바로 거기에 해답이 있었다. 이 책은 저자인 장 클로드 이쪼가 50세에 발표한 첫 소설이라는 설명과 함께 ‘토탈 케옵스’는 ‘대혼란’을 뜻하는 신조어라고. 그런 줄도 모르고 난 고민만 하고 있었다니 처음부터 저자에게 완전히 당했다는 느낌이다. ㅋㅋ




마르세유의 피스톨 가 뒷골목에 어떤 남자가 들어서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우노. 20년 만에 마르세유로 돌아온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바로 자신과도 같은 친구 마누를 죽인 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걸 위해 스무 살 생일 때 마누가 선물로 준 총도 건네받았다. 친구의 복수를 감행하기 위해 먼저 정보를 수입한 그는 늙고 비열한 악당 주카가 목표란 사실을 알아내고 그의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친구의 복수는 성공했지만 곧 그는 경찰에 쫓기고 현장에 나타난 경찰의 총의 그의 몸을 관통한다.




한 발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경찰, 마르세유 변방의 경찰로 좌천된 파비오 몬탈레. 그는 소설의 주인공이자 우노와 마누와는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다. 마르세유의 뒷골목을 무리지어 다니던 그들은 십대 때 강도행각을 벌이기도 했는데 어느날 약국에서 총을 쏜 이후로 그들은 서로 다른 길에 접어든다. 마누는 마르세유에서 한 번 발을 들인 범죄자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프랑스를 떠난 우노는 여러 나라를 떠돌다 예술품 밀매혐의로 국제적으로 쫓기게 된다. 그리고 파비오는 경찰이 된다. 20년 전 세 갈래로 갈라졌던 길이 한 자리에 합쳐지면서 몰고 온 친구들의 죽음. 그 앞에서 파비오는 의혹을 품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려 하지만 곧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고 마는데....




‘프랑스’라고 하면 낭만과 사랑, 자유로움으로 가득한 나라라고 알고 있었는데 책에서 펼쳐지는 세상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대혼란의 현장 ‘토탈 케옵스’였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에스파냐, 북아프리카, 아랍 등 여러 나라에서 흘러들어온 이민자들로 인해 마르세유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다. 극심한 인종차별로 인해 이민자들은 뒷골목에서 힘든 삶을 이어가지만 한편에선 또 이민자들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며 뒷골목에서의 세력권을 쟁취하기 위해 폭력조직들이 벌이는 총격전으로 인해 거리에는 찢어질듯한 자동차 브레이크와 희미한 담배연기,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르세유 뒷골목, 어둠이 지배하는 암흑가를 무대로 벌어지는 추악한 범죄와 살인, 마약밀매...등으로 인해 파멸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준 책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날개를 보니 <토탈 케옵스>는 저자의 마르세유 3부작 중 1부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곧이어 출간될 2부와 함께 3부도 꼭 챙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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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 함민복 에세이
함민복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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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부턴가 에세이를 잘 안 읽게 됐다. 어쩌다 간혹 유명 작가의 이름으로 출간되는 에세이집을 보지만 기대보다 못 미칠 때가 많은데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육아에 시달리다보니 일상의 에피소드나 잔잔한 감동보다 책에 푹 빠져 몰입할 수 있는 소설에 손이 갔다. 하지만 계절이 가을의 끝무렵이어설까. 문득 일상의 감동이 그리워졌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들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은 부쩍 자라고 그 모습을 보며 감사하고 기뻐한다. 그런 것처럼 나의 평범한 일상 속에도 미처 느끼지 못할 뿐이지 감동은 분명 있을거라 여겼다. 메마르고 건조한 내 마음밭을 적셔줄 뭔가를 찾고 있을때 이 책을 만났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솔직히 강화도 시인으로 알려진 함민복을 난 알지 못했다. 저자에 대한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책장을 두어 장 넘기면서 곧 잊어버렸다. 함민복. 이 책을 통해 그를 처음 만났지만 왠지 낯설지 않았다. 그는 미혼이면서도 후배의 부탁으로 주례를 설 때 넥타이를 맬 줄 몰라 쩔쩔 맸고 산골의 작은 마을에 이웃해 지내던 동네 형이 이사하게 되자 함께 걱정해주기도 하고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허풍 같은 농담을 섞어가며 추억에 젖어들기도 했으며 마당에 핀 봉선화를 바라보며 어릴적 누이와 함께 손톱에 봉선화물을 들이던 때를 떠올리기도 한다. 자신의 모습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도 내보이는 맑고 담백한 글을 읽고 있으면 내가 시인이 아니라 시골의 순박한 아저씨를 만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때로 저자의 글에선 눈물어린 짠맛이 느껴졌다. 서랍 속의 반지를 보거나 두릅을 딸 때 효심이 지극한 저자의 마음은 언제나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가족들의 “내가 누구여?”란 물음에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드러낸다. 자신의 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을 어머니와 보내게 됐으니 행복하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어머니에게 “엄마”라고 처음 불렀던 때가 언제였냐고 물어보는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언젠가, 어머니 등에 업혀 큰 물가를 지나는데 비가 내렸던 그 물가가 어디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갓난아기였던 네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며, 큰 누이 데리러 제천 의림지를 지나는 거였다고 말해주었죠. 그때 어머니한테 궁금했던 것들을 다 물어볼 걸 그랬어요. 참, 나도. 물어보지 못해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것들이나 생각하고 참, 한심하지요. -102.




지나간 추억과 그리움, 소박한 아름다움, 따스함으로 가득한 그의 글을 읽으면서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한가로운 시간, 방금 끓인 따끈한 보리차를 마시는 사소한 일상도 분명 행복으로 이어져있을 거라고. 책장을 덮는데 가슴 한 켠에서부터 찌르르 물기가 감도는 느낌이 들었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이 책은 무뎌진 내 가슴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감동의 비타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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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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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누군지 어떤 이론을 펼쳤는지 알고 있긴 하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게 아니어서 몇 번 시도했다가도 번번이 중도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 만난 책이 바로 <프로이트의 의자>다. 또다시 포기하는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저자가 국내 최초의 ‘국제정신분석가’라는 띠지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딱딱하고 어려운 프로이트의 이론을 왠지 쉽고 부담없이 알려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의사입니다.’라며 말문을 연 저자는 ‘마음은 빙산과 같다. 커다란 얼음덩어리의 일부만이 물 위로 노출된 채 떠다닌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엉킨 응어리를 풀었을 때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 조금씩 알아볼 것을 권한다. 1장에서는 먼저 숨겨진 자신의 마음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욕망에 의해 지배를 받는지에 대해 알려주면서 우리의 감정이나 마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설명해준다. 2장은 무의식에 존재하는 상처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저자는 우리의 마음속의 말썽꾸러기인 불안이나 공포, 우울, 분노, 좌절, 질투 같은 것들이 100%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라면서 중요한 건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잘 다스려야 하는지에 달려있다고 갖강조한다. 3장에서는 빙산에서 물 위로 노출되지 않는 아랫부분, 무의식에 대해 다룬다. 수줍음이나 애착, 고독, 집착, 오해, 사랑, 복수 등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행동과 반응,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준다. 마지막 4장은 드디어 무의식에 존재하는 상처를 치유하는 다섯가지 방법에 대해 짚어준다. 그 중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결코 용서받으려 애쓰지 말라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이야, 소파 진짜 편하겠다. 우리 집에도 저런 소파 있음 얼마나 좋을까.”




처음 <프로이트의 의자>를 보자마자 저절로 터져 나온 말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한 소리였다. 표지에 나온 소파는 ‘카우치’라고 불리는데 단순한 의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 의자에 앉거나 누워서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히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상담자의 대중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분석자는 그의 무의식속에 존재하는 상처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상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무의식에 지배하는 상처와 여러 가지 감정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솔직히 이런 모습이나 과정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것 역시 나의 잘못된 생각이란  걸 알게 됐다. 내 마음 속에 존재하는 상처들을 더 이상 억누르지 말자고 처음엔 힘들겠지만 조금씩 다독이면서 풀어주고 화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프로이트의 의자인 ‘카우치’가 없으면 또 어떠랴. 나와 같은 마음공부 초보자들을 위해 저자는 친절하게 안내서를 소개해주고 있으니 우선 거기서부터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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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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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정말 깔끔하다. 오렌지빛 바탕에 검은 그림자로 여인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유독 내 시선을 끈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여인의 눈. 거기엔 또 한명의 여인이 있었다. 두 사람의 머리 모양이 다른 걸 보면 동일인물이 아닌 건 분명할 터. 서로 다른 두 명의 여인. 그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걸까.




자신이 1파운드짜리 영국 동전이길 소원하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리틀 비. 동전의 가치보다 그 동전의 지닌 가능성이 더 절실했다. 왜냐고? 자신이 지금 이민자 수용소에 갇힌 처지니까. 그러다 어느날 몇 명의 여자들과 함께 수용소에서 나가게 된다. 낯선 땅. 갈 곳이 마땅히 없던 소녀는 자신이 갖고 있던 지갑의 남자에게 전화를 한다. 상대방 남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당신을 찾아가겠노라고. 여느 때와 다를바 없는 아침이었던 그 날. 앤드루에겐 달랐다. 리틀비의 전화를 받은 그는 닷새 뒤 자살을 하고 만다. 갑작스런 남편의 자살로 혼란해하던 새라에게 장례식날 아침, 리틀비가 찾아온다. 그 날, 그 곳에서 처음 만나고 2년이 지나서.




소설은 나이지리아 난민 소녀 리틀 비와 영국 여인 새라가 번갈아가며 서술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두 주인공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풀어놓는 얘기를 통해 의문에 싸인 끔찍한 사건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리틀비는 고향 마을에 유전개발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석유전쟁으로 부모를 잃는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끔찍한 범죄를 목격한 리틀비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언니와 간신히 도망을 치지만 나이지리아 해변에서 결국 자신들을 쫓는 추격자에게 잡힐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바로 그 장소에 새라가 있었다. 자신의 불륜으로 소원해진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남편 앤드루와 함께 나이지리아로 휴가를 왔다가 해변을 산책하던 참이었다. 어린 두 소녀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걸 깨달은 새라는 앤드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자 결단을 내린다. 소녀들을 구하는 댓가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것이다.




나이지리아 해변에서의 만남은 리틀비와 새라 부부 모두에게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새라와 앤드루는 예전 같지 않았으며 리틀비는 언니를 잃고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난민 수용소에 갇히고 2년 후 수용소에서 나와 새라의 집에서 함께 지내지만 자신을 뒤쫓는 추격자들에게 언제 잡힐지 몰라 불안에 떤다. 충격적인 과거로 인한 불안과 소중한 이를 잃었다는 죄책감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던 리틀비와 새라. 그들에게 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리틀비>는 2001년 난민보호소에서 이민국으로 송환되는 과정에서 자살하고 만 앙골라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저자가 전하는 충격적인 사실과 불편한 진실을 대하며 뜨거운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지구상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책장을 덮고도 며칠동안 마음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좀 더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지난달 우리나라에서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펼쳐졌는데 그때 수상작 중의 하나가 바로 <나이지리아의 검은 진주>였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석유회사와 정부가 대립해 전쟁을 벌이면서 희생되어가는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주내용이라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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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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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대표작인 ‘절규’를 비롯해 어둡고 음울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여인의 관능적이고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는데 바로 ‘마리아’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소설 <광기>에 그려진 뭉크의 ‘마리아’는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뭔지 모르지만 뭉크의 그림과 미묘하게 달랐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서야 알았다. 머리카락이 달랐다. 아래로 축 늘어뜨려진 머리카락이 소설표지에선 가시돋힌 덩굴식물의 줄기를 연상시켰다.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 휘감아오를 무언가를  기다리는 덩굴...




책은 아길라르가 호텔 방문을 연 순간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때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던 아길라르는 당시 콜롬비아의 상황과 아내를 가까이에서 돌봐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대학을 나와 애완견 사료를 배달하며 살아간다. 아내가 간혹 정화를 해야 한다며 온 집안에 물 잔을 늘어놓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긴 했지만 출장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랬던 아내가 불과 나흘의 출장을 다녀오고 나니 갑자기 변해있었다. 정신이 나가 흥분하고 사납게 구는 아내의 모습에 아길라르는 혼란을 겪는다. 대체 자신이 없던 나흘 동안 아름답고 매력적인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떤 일이 잠자고 있던 아내의 광기에 불을 지른 걸까. 아길라르는 그 나흘 동안의 일을 추적해가기 시작한다.




아구스티나는 부유한 집에 태어나지만 폭력적인 성향의 아버지로 인해 어둡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물려받았으면서도 여자 같은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막내 리치에게 툭하면 폭력을 휘두른다. 그럴때마다 아구스티나는 동생 리치를 다독이며 의식을 치르면서도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기를 소망한다. 그러다 아버지가 소피이모와 불륜관계라는 애써 감췄던 비밀을 드러나면서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광기에 휩싸이고 마는데....




소설의 주인공이자 핵심인 아구스티나의 광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원인과 근원을 추적해가는 <광기>를 정말 힘겹게 읽었다. 1인칭과 3인칭이 왔다갔다 하는 서술형식인데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 있어서 한참 읽다가 서술자나 이야기의 시점이 어긋나다는 걸 깨닫고 다시 앞으로 되짚어가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게다가 주제 사라마구처럼 문장에 따옴표가 없어서 대화인지 독백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마지막부분 아구스티나가 아길라르에게 남긴 쪽지에 따옴표가 등장하는 걸 보고 얼마나 반가웠던지...이게 최초이자 마지막인걸까? 앞으로 돌아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온갖 부패와 혼란, 광기가 뒤섞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기가 두려워 그만뒀다.




이 작품을 주제 사라마구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위대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 이유가 본문 중에 그의 작품인 <발타사르와 블리문다(국내엔 <수도원의 비망록>)가 등장해서거나 그의 문장을 닮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소설이란 건 확실하다. 책장을 덮고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출간작을 검색해보니 <열정의 섬>이란 소설이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한다는 저자의 명성과 작품세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그 소설을 읽고 싶었지만 솔직히 고민이 된다. <광기>에서처럼 또 미로에 갇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다음에, 다음에 또 읽을 기회가 있을거야. 그때 확인하자고 뒤로 미뤘다. 언제가 됐든 반드시 다시 읽어야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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