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러진 것을 치우고 비운다.
그 점에서 내가 하는 일도 식탁 치우기와 다를 바가 없다. 식탁 위에 차렸던 것을 주방으로 옮기듯 그저 집에 있는 것을 끌어모아 집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매일 지구상의 모든 가정과 식당에서 일어나는 식탁 치우기는 내 일과 본질적으로 같다.ㅡ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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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 - 3.1운동부터 임시정부까지 그 길을 걸은 사람들 표석 시리즈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 유씨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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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댄 계속 나아가시오. 난 한걸음 물러나니

 

본방도 아니고 재방, 그것도 종영된지 한참 지난 드라마를 스치듯 우연히 가슴이 철렁했다. 서로가 서로를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 두 남녀주인공이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해도 모자랄 판에 나아간다느니, ‘물러난다. 대체 무슨 연유일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드라마를 즐겨서 보질 않지만 그 사연이 궁금해서 한동안 문제의 드라마를 찾아보고 알게 됐다. 드라마가 구한말 조선의 의병들의 이야기. 조선의 독립을 염원했지만 끝내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던 이들의 이야기란 것을.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실존 인물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알고 싶었다. 불꽃처럼 뜨겁게 타올랐다가 지고 말았던 의병과 독립투사, 그들의 이야기를...

 

일제 식민치하의 역사와 항일 독립운동을 담은 책 중에서 <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를 선택한 건 저자가 개인이 아니란 점이었다. 전국역사지도사모임에서 공동저자로 출간된 책이어서 신뢰도가 올라갔다. 제목에 있는 표석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구별하려고 표지로 세우는 돌이란 뜻으로 사람들이 그 장소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세워둔 것이다. 역사지도사들의 모임에서는 그런 표석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경성한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고 이번에는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를 담았다.

 

마침내 191928일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했다. 일명 조선청년독립선언이라고도 하는데, 3·1운동 전후에 발표된 독립선언서 중 2·8독립선언서는 학생들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점과 3·1운동 발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 31

 

‘3.1운동부터 임시정부까지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이라는 표지의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책은 3.1운동에서 임시정부로 이어지는 독립운동의 역사와 그 길을 굳건히 걸었던 사람들의 현장의 기록을 담고 있다. 책은 독립운동을 통해 민주공화제가 탄생하는 과정와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뜨겁게 타올랐던 독립투사들로 나뉜다. 그런 다음 네 개의 장에 걸쳐 해당과정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데 내용이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매 장마다 본문에 언급된 표석의 위치를 상세도로 지도에 표시해두어서 직접 찾아가거나 답사할 때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다.

 

본문 중에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19193.1 독립선언과 관련해서 기미독립선언서가 나오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전하고 차분히 전하고 있는데 3.1만세운동의 이틀 전부터의 일들을 마치 일기처럼 기록해놓아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게 진행됐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상하이에서 진행된 회의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명칭이 어떻게, 어떤 의미로 결정되었는지 전하고 있는데 작년 411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었던지라 더 눈여겨보게 됐다.

 

3·1운동의 직접적 결과물인 임시정부는 상하이와 한성에서 수립한 두 개뿐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려 8개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그중 러시아령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의 한성임시정부는 실체가 있고, 조선민국임시정부·대한민간정부·고려임시정부·임시대한공화정부·신한민국임시정부 등 나머지 5곳의 임시정부는 계획 단계에만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 160.

 

그동안 학창시절 수업이나 역사서적으로도 접하지 못했던 독립운동가 중에 여성들을 소개해놓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고 국경을 넘나들며 밀사 역할을 해내어 한국의 잔 다르크로 불린 정정화를 비롯해서 여자 안중근, 독립군의 어머니란 수식어로 늘 따라다니는 남자현은 영화 <암살>에서 저격수 안옥윤의 실제 모델로 삼은 인물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최초의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쏘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나가 의병 하러 나가보세라는 [안사람 의병가]를 지어 여성들의 의병활동을 장려했던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등 독립운동에 관련한 역사나 인물들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김향화는 2개월의 감금과 고문 끝에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에서 징역 6개월의 확정 판결을 받고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를 보면, 8호실에 유관순 등 여성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수감된 모습이 나온다. - 297

 

일제의 탄압과 핍박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 이들의 기록을 만날 수 있어 정말 유익했지만 더러 아쉬움도 있었다. 본문 곳곳에는 내용와 관련한 사진이 수록되어 있지만 표석은 눈에 띄지 않았는데 책 뒤쪽에 따로 표석만 모아놓았다. <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 서울편>이 아닌데 왜 지방에 관한 내용은 없을까. 의문이 들었다. 지방에서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아쉬운 마음에 책장을 덮자마자 부산의 독립운동을 검색했다. 그랬더니 동래사적공원에는 부산 3.1 독립운동 기념탑’, 중앙공원에는 부산광복기념관이 있고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란 곳도 있었다. 마음 편히 외출할 수 있는 날이 되면 시간 내어 가족들과 한번 방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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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소설의 첫 만남 21
임어진 지음, 임지수 그림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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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아들이 이 시리즈를 잘 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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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Silver Spoon 15 - 완결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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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완결!!!
강철의 연금술사가 워낙 강한 인상을 남겼던지라
상대적으로 감흥이 덜할수 있을지 모르나
오로지 공부와 성적에 매몰되어
꿈조차 꾸지 못한 주인공의 성장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나보다 사춘기 아들들이 더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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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서커스 -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나카가와 요시타카 지음, 임해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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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초까지 거의 1년에 걸쳐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읽었다. 64200여 쪽에 이르는 <로마제국쇠망사>를 읽으면서 흥미로운 전개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던 때가 있는가하면 때론 슬럼프에 빠져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던 날도 있었다. 나 혼자 읽었다면 아마 도중에 밀쳐두고 더 흥미진진하고 구미가 당기는 책으로 손을 뻗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흐트러지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강력하고 화려함에 영원한 제국으로 불리었던 나라, 로마가 게르만족 같은 이민족의 침입과 내부로부터의 적으로 인해 결국 분열되고 쇠퇴하여 멸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착잡했다.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한, 오래전에 사라진 나라의 역사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빵과 서커스>가 출간됐을 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서점에서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역사전공이 아니라 기계공학과 토목공학을 전공한 후 토목기술사로 활동했다는 이력을 보니 토목 건축의 관점에서 다시 살피는 로마 이야기라는 표지의 문구가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로마제국의 또 다른 면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제목인 빵과 서커스가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의문은 ‘1. 로마제국이 남긴 유산들에서 풀렸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 깃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유웨날리스라는 로마의 시인이 번영한 나라의 나태한 시민들을 보고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시민들은 로마가 재정이 되면서 투표권이 사라지자 국정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과거에는 정치와 군사의 모든 영역에서 권위의 원천이었던 시민들이 이제는 오매불망 오직 두 가지만을 기다린다. 빵과 서커스를.’(24.) 배불리 먹이고 오락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했다는 대목을 보면서 예전 우리의 ‘3S’가 떠올랐다. 물론 로마와 우리나라가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로마시민들이 타락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자마다 로마의 멸망시기를 다르게 주장하고 있지만) 로마제국이 바로 멸망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토목, 건축에 초점을 맞춰서 로마가 제국으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를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고대에는 민족 간에 침입이나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성벽을 높이 두르고 수로를 정비했는데 로마의 성곽이나 상하수도는 어떠했는지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본문에 해당 지도와 사진을 수록해놓아서 막연하게 글로만 접하는 것보다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7시민의 교양편도 흥미로웠다. 로마가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드넓은 영토 확장과 함께 다른 나라나 민족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에 거부감이 없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뒀으며 국가차원에서 학술 발전을 위해 대도서관을 세우게 했다. 게다가 이름난 공공 욕장에 로마 시민들이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공공 욕장 도서관까지 설치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로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화려한 문화예술품, 웅장한 건축물, 피가 튀는 잔인한 검투장 그리고 쾌락에 빠져 흥청이는 시민들. 그 어떤 것도 하나만으로는 로마를 완전히 어떻다고 말할 수 없다. ‘길은 지나간 뒤에 생긴다고 했다. ‘남겨진유적들을 통해 우리는 지금은 사라진로마를 유추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로마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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