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미네이티드
매트 브론리위 지음, 정영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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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미네이티드> 이 책을 손에 들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책표지를 여는 순간부터 덮을 때까지 책속의 주인공과 내용에 완전몰입해서 읽었던 <다빈치 코드>가 생각나서였다. <다빈치코드>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이었다면 <일루미네이티드>는 ‘구텐베르크의 성서’였다. 내가 한창 이 책을 읽고 있을때 누가 물었다. 종교가 불교인 사람이 무슨 그런 책을 읽느냐고. 하지만 내게 구텐베르크의 성서는 초면이 아니다. 올초에 오세영 작가의 <구텐베르크의 조선>이란 책을 읽었는데 그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 구텐베르크와 당시의 성서 인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런 차에 만난 이 한 권의 책 <일루미네이티드> ‘채색장식’. 마음도 진정시킬겸 양각으로 살짝 도드라진 표지의 제목을 쓰윽 쓰다듬고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오거스트 애덤스는 고대 성서학자다. 희귀한 책을 찾아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는 그.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긍심도 강하지만 가족, 특히 아내와의 관계는 원만치 못했다. 결국 아내와 이혼한 오거스트는 파산지경에 이르고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다. 그것이 바로 구텐베르크의 성서였다. 자그마치 일억달러짜리 성서를 구매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 오거스트는 곧 함정에 빠진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산드리아란 여자에게서 놀라운 얘기를 전해듣는다. 지금 워싱턴에 있는 오거스트의 아들이 인질로 잡혀있는데 아들을 구하려면 구텐베르크의 성서에 숨겨진 채색장식의 비밀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비슷한 시각 오거스트의 전처인 에이프릴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그녀가 근무하는 의회도서관에 소장된 <구텐베르크의 성서>을 에이프릴이 훔칠거라는 정보를 얻은 FBI가 그녀를 구속한다. 하지만 동료의 도움으로 탈출한 에이프릴은 오거스트에게서 끔찍한 소식을 듣는다. 그녀가 <구텐베르크 성서>를 홈쳐야한다는 것...그때부터 오거스트와 에이프릴은 인질로 잡혀 목숨이 위태로운 가족을 구하기 위해 저마다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시작한다.




책은 오거스트와 에이프릴, 아들 찰리가 처한 상황들을 한 챕터씩 차례로 보여주는 구성으로 되어있는데, 등장인물마다 이야기의 배경과 장소에 변화가 생기면서 자연적으로 긴박함을 고조시킨다. 마치 개봉관에서 스릴 넘치는 헐리우드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본문 뒤쪽에서 알려준 사이트에서 <일루미네이티트>의 사운드트랙을 다운받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 틀림없이 심장이 쿵쿵 세차게 뛸거다.




반면에 아쉬운 점도 있다. 이야기의 핵심인 구텐베르크 성서의 채식장식이 그야말로 장식용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오거스트의 입을 통해 성서의 본문 가장자리를 장식한 아름답고도 기묘한 이미지의 채식장식에 숨겨진 의미를 하나하나씩 찾아가는데 중요한 그 채색장식의 크기가 너무 작고 또 흑백이라는 점이다. 자세히 보려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한 페이지 전면에 수록하는게  내용의 흐름상 불가능하다면 중간이나 뒷부분에 따로 몇 장을 첨가해서 수록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전체적으로 재미는 있지만 그에 비해 마무리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과 인물, 거기에 작가의 상상이 더해져 만들어진 역사팩션물이다. 그러나 책장을 덮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왜? 그래서 뭐?’하는 황당함이었다. 요란하고 화려한 영상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하는 얘기 “재밌긴한데, 좀...”.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구성이나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인물의 캐릭터를 개성있게 살렸다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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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이야기
마쓰오카 유즈루 지음, 박세욱.조경숙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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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읽기 스타일은 마구잡이식이다. 지인들과의 독서모임에서 여러 분야의 책으로 커리큘럼을 만들어 읽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읽고 싶은 책, 기회가 닿는 책을 읽다보니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덮어버린 책도 제법 된다. 어느 한 분야나 관심있는 주제의 책만을 심도있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간혹 소가 뒷걸음질하다 쥐를 잡는다고 우연히 읽은 몇 권의 책으로 인해 뜻밖의 귀한 정보를 얻을 때가 있다. 작년 이맘때였나? 중국여행 전문가가 쓴 실크로드에 관한 책을 읽었다.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는 길, 실크로드. 저자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 여러 가지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진과 함께 보여주었다. 내가 그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것은 돈황에 관해서였다. 더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웠을 그곳의 석굴이 어떻게 해서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러시아, 일본에 의해 유물이 약탈되었는지 그 사건의 시초, 발단과 진행과정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한 해를 넘겨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마쓰오카 유즈루의 <돈황이야기>. 이 책에서 작년에 품었던 궁금증과 의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마쓰오카 유즈루의 <돈황이야기> 이 책은 돈황의 유물들이 어떻게 처음 발견되고 어느 나라 누구의 손을 거쳐 유출되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나쓰메 소세키의 사위이자 소설가답게 저자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를 넣는 등 소설적인 요소가 가미했다.

 






<오렐 스타인이 수많은 고문서를 반출한 돈황석굴 중 제17호석굴>

 



“이것이 그 자랑할만한 누란경이란 말이지요. 그 세계적 탐험가 스벤 헤딘이나 오렐 스타인의 발굴로 유명하게 된.....” 이렇게 한 노인의 말로 시작한 책은 돈황의 유물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자행됐는지 알려준다. 스타인이 돈황 석굴 사원의 주지였던 왕도사에게 자신을 현장 삼장법사를 존경하는 열렬한 숭배자로 위장하여 접근한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폴 펠리오는 금전적인 대가를 제공하여 엄청난 양(목록을 만드는 데만 반세기가 걸린 막대한 분량)의 경전을 빼내는데 그 와중에 우리의 왕오천축국전을 가져간다. 그 뒤를 이어 일본의 다치바나(오타니 미션) 역시 수없이 많은 돈황 석굴의 유물을 뒤로 빼돌리는데 그 과정은 실로 어이없고도 놀라우며 그들의 약탈은 치를 떨 정도다.

 

 




 



<폴 펠리오. 돈황석굴 속에서 고문서 두루마리를 조사하는 모습

이 과정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사본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저자는 일본의 다치바나에겐 영국의 스타인이나 프랑스의 폴리오와는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마치 다치바나가 서구열강의 약탈 앞에 무방비로 놓인 중국의 돈황 유물들이 더 이상 약탈되지 않도록 구해냈다는 식의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의 불도가 어쩌구하며 다치바나의 행동을 ‘종교인치고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느니 ‘세계탐험사에 있어 최연소기록’이니 ‘목숨을 걸 그에게 감사와 감격을 올린다’는 식의 제국주의적 표현은 책을 계속 읽어나가기 거북할 정도였다. 왜냐면 발굴조사라는 명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다치바나가 한 일은 사실 사람들이 밟지 않은 땅을 샅샅이 뒤져 보물을 선점하는 보물사냥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타니 탐험대가 수집한 유물을 싣고 내몽골의 사막을 지나고 있다>

 

 



이 책의 띠지엔 ‘실크로드와 돈황학 입문서의 고전’이란 문구가 있고 뒷표지엔 ‘열강의 발굽 아래 유린당한 돈황의 수난사를 다룬 명저’라고 씌여있다. 과연 그럴까? 그건 누구의 관점일까,....궁금해진다.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번역자의 ‘돈황이야기의 한국적 의미’란 해설에 이런 대목이 있다.

 




오타니 미션의 유물들은 모두 5,000여 점이 되는데, 그 중에서 1,500여 점이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 우리나라 역시 돈황의 문물에 있어서 뜻밖의 당사국이 되어 있다. 이미 마쓰오카 유즈루의 <돈황이야기>는 저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 301쪽.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사.국. 당사국의 뜻이 뭔가. ‘국제간의 분쟁이나, 기타 교섭 사건에서 그 사건에 직접 관계가 있거나 관계한 나라.’라고 한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를 당사국으로 표현한 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그보다 번역을 담당한 이의 무성의에 더 화가 났다. 우리가 왜 당사국이 되었는지...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간단하게라도 조사해보고 그에 대한 자료도 함께 수록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자의 무관심에 의해 놓친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다치바나, 즉 오타니 탐험대는 3번에 걸쳐 서역탐사를 하면서 벽화를 뜯고, 무덤을 파헤친다. 석상을 고스란히 운반하자니 한계에 다다르자 그들은 석상의 머리만을 자른다. 그런 유물들을 톤 단위로 실어 본국으로 빼돌렸는데, 그렇게 수집된 유물들이 오타니의 몰락으로 뿔뿔이 흩어지는데 그 중 3/1에 해당하는(오타니의 별장에 소장되어 있던) 유물을 구하라 후사노스케가 넘겨받게 되는데 그는 바로 그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조선총독부의 ‘이왕가 박물관’에 기증한다. 그 후 해방과 더불어 미처 일본으로 가져가지 못했던 것이 바로 우리의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역유물인 것이다. 한권의 책을 번역하는데 있어 이런 일련의 과정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이 일본에서 처음 발표된 시기가 1930년대인 것을 알았을 때 책 속에 일본의 제국주의를 당연시하고 미화하는 표현이 있을거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깨름칙하고 씁쓸하다. 일본이 돈황의 유물을 약탈했듯 우리의 유적유물도 낱낱이 유린하고 약탈해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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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가 뿔났다
모리스 글라이츠만 지음, 이정아 옮김 / 키움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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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가 뿔났다. 볼이 한껏 부어오른 걸 보니 많이 뿔났다. 왜 뿔이 났을까? 두꺼비의 말풍선엔 이런 글이 있다. ‘왜 사람들은 두꺼비에게 돌을 던질까?’ 정말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은 두꺼비에게 돌을 던지는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바트 삼촌, 왜 인간들은 우리를 미워하는 거죠?” 호기심 많은 림피의 질문에 “맙소사! 림피, 넌 정말 멍청하구나”하고 대답해준 바트 삼촌이 트럭에 깔리면서 책은 시작한다. 지나가는 차에 의해 도로에 납작하게 깔려 빳빳하게 말라버린 친척들을 보면서 림피는 인간은 왜 자신들을 미워하는지, 언젠가 인간들이 사는 것을 찾아가 이유를 알아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한다. 유일한 여동생 차암에게 큰 트럭과 휴가객을 실은 자동차가 덮치는 환상을 본 림피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여기고 길을 떠난다.




인간들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떠난 림피. 그를 기다리는 것은 추위와 배고픔이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돌멩이를 던지는 인간들을 피해 달아나려고 해도 사고 때문에 한쪽 다리가 굽은 림피는 한자리에서 맴돌기가 일쑤였다. 사탕수수두꺼비가 인간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인간들이 사탕수수두꺼비를 좋아해서 자신들을 보며 환호성을 지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림피는 올림픽 마스코트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올림픽 마스코트 위원회 사람들을 만나려고 시도하는데...




우리의 설화나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두꺼비는 어려운 이를 도와주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착한 동물이며 복, 재물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동물이다. 그런 두꺼비가 어쩌다 이곳에선 보기만해도 진저리를 칠 정도로 싫어하고 혐오스런 동물이 됐을까.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옮긴이는 ‘사탕수수두꺼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원래 사탕수수 농장의 골칫거리였던 사탕수수 딱정벌레를 없앨 목적으로 들여온 동물이 바로 사탕수수두꺼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다할 천적이 없는 곳에서 사탕수수두꺼비의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지고 급기야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거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어느날 갑자기 낯선 곳으로 옮겨온 동물들. 책에선 호주의 사탕수수두꺼비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건 비단 사탕수수두꺼비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황소개구리나 붉은귀거북 같은 동물을 들여왔다가 그로인해 오히려 토종동물들이 외래종에게 잡아먹히고 자신들의 터전에서 쫓겨나지 않았던가.




자신이 자동차에 치여 다리를 다쳤으면서도 자신과 가족, 친척들을 위해 인간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길을 떠난 림피. 수없이 고난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작은 실마리를 풀어내는 림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책날개를 보니 <두꺼비가 뿔났다>이후에 2편, 3편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호기심 많고 용감한 림피의 또다른 모험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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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무] 서평단 알림
눈물나무 양철북 청소년문학 1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 양철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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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사막처럼 보이는 모래언덕, 한 켠에 서있는 거대한 선인장, 그 위로 붉은 얼룩처럼 보이는 물방울이 떨어진다. 뚝 뚝 뚜욱... 그리고 등에 배낭을 진 소년 하나. 그의 시선의 끝을 따라가면 거대한 선인장에 닿는다.




카롤린 필립스. 처음 접하는 이름이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글을 보니 독일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는 작가라고 되어있다. 해외 입양아나 노숙자, 장애인, 에이즈 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해 유네스코에서 주는 '관용과 평화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알지만 ‘관용과 평화의 상’이라...그런 상도 있었나? 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느껴지는 바가 있겠지 싶다.




루카. 멕시코 소년. 가난함 속에서도 미소를 짓고 배고픔에도 행복했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루카의 가족은 모두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간다. 할머니와 삼촌을 빼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지자 루카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에 미국 국경을 넘으려한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다는 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전과자가 되거나 본국으로 돌려 보내지는 사람도 무수히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큰형에게서 루카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듣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유골을 배낭을 넣어다니기 시작한다. 언젠가 고국인 멕시코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드리기 위해....




“엘 아르볼 데 라그리마스(눈물나무).”

카사에 있는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그렇게 불렀다. 사람들은 밤에 이곳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나무에는 빗물이 필요하지 않아. 우리 이야기와 여기서 흘린 눈물만 먹고도 자라지.”

모든 사람이 국경을 건너던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은 한 번, 어떤 사람은 두 번, 또 다른 사람은 이미 여러 번…….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실패한 시도라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여기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국경을 건너는 데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으니까. - 9쪽. 프롤로그 중에서.




끼니를 잇기 어려울만큼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 목숨을 걸고 시도한 끝에 무사히 미국 땅을 밟아도 그들을 기다리는 건 미국인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일당과 부당한 대우, 불법체류자란 신분뿐이었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조차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언제 어떻게 쫓겨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의 현실이 무척 가슴아팠다. 루카라는 한 멕시코 소년과 그 가족의 얘기를 읽었지만 내게 와닿는 느낌은 미국과 멕시코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고 오늘의 현실이었다.




지난 주말 시내에 들렀다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옆자리에 까무잡잡한 피부에 자그마한 체구의 동남아계 여자가 앉았다. 그녀는 앉자마자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인 난 전혀 알지 못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그런데도 그녀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눈은 책을 보면서도 귀를 쫑끗 세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듯 한껏 크기를 낮춘 음성.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조금 울먹이는 정도였는데 결국 울음이 터졌다. 말이 조금 빨라진다 싶더니 급기야 전화를 끊어버리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난 순간 당황하면서도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이와의 외출에 대비해 가방마다 항상 들어있는 필수품, 손수건과 물티슈, 몇 개의 사탕. 그것들을 손에 쥐고 건네주려다 멈칫,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거 아닐까’ ‘괜한 참견 말라고 화를 내면 어쩌지’하고  잠깐 망설이는 사이 지하철은 다음역에 도착했고 그녀는 서둘러 내리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그녀가 생각났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내리던 슬픔으로 가득찬, 고개 숙인 그 뒷모습.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 가족들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모든 것이 낯선 먼 나라를 찾아온 그녀. 그녀는 이곳에서 무엇을 찾았을까. 열악한 근무환경, 고된 노동,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지쳐서 후회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미안해요. 그때 전혀 망설일 이유가 없었는데...지금 후회가 되네요. 부디 용기를 내세요. 희망을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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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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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미술관 강좌에서 이런 얘길 들었다. “정물화나 인물화 같은 그림을 좀 더 유심히 보세요. 얼핏 사소하게 보이는 사물이나 배경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속엔 수많은 상징과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그림 속에 숨은 여러 의미들을 하나씩 찾아내다보면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더해질 겁니다.” 화가가 단순히 자기 앞에 있는 인물이나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게 아니란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모두 이어서 붙이지 않으면 전체를 알 수 없는 지그소 퍼즐처럼 그림에도 수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특별히 미술이나 그림 관련책을 찾아 읽어본다거나 주변 화랑의 전시회에 가는 노력도 하지 않은채  잊혀졌다.




그러다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란 부제가 붙은 <베르메르의 모자>. 표지엔 붉은 옷에 모자를 쓴 입고 남자의 뒷모습과 그 앞에 마주 앉은 여인의 그림이 있다. 부제의 의미대로라면 이 그림에 17세기 동서문명의 교류를 찾을 수 있다는건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수가 없었다. 제목에 있는 ‘모자’가 힌트인가?....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여름...’으로 시작한 이 책은 저자가 자전거여행 중에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가까운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게 된다. 다음날 아침 주인아주머니가 건네 준 엽서에 담긴 장소를 찾은 저자는 그곳에서 우연히 베르메르가 묻힌 곳을 찾게 된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어느날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델프트와 베르메르. 그 후로 저자는 베르메르의 흔적들을 찾아나선다. 그의 그림 속에 숨겨진 17세기의 역사와 문화를.




베르메르의 그림이 17세기 델프트에서의 삶을 그대로 가져온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림은 사진처럼 ‘찍힌’ 것이 아니라 아주 신중하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29쪽.




책에서 저자는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볼 때  어떤 것들을 주의깊게 봐야하는지 끊임없이 얘기한다. 그림에서 시간이나 장소의 흔적이 보이는 사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그림 속에 보이는 사물들을 창문 뒤에 있는 소도구쯤으로 여기지 말고 그것들이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왜’라는 의문을 가지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들이 곧 17세기로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평생토록 델프트를 떠나본 적이 없는 베르메르가 그린 유일한 풍경화 <델프트의 풍경>에서는 당시 북유럽에 몰아닥친 한파로 인해 네덜란드가 청어잡이에 성공할 수 있었고 VOC라 불리는 동인도 회사의 존재, 네덜란드의 번영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뤄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표지그림인 <장교와 웃는 소녀>에서는 두 사람의 모습보다 장교가 쓴 화려한 모자는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비버 펠트모자로 그 모자에 쓰이는 비버 가죽은 유럽인과 북미원주민의 교역에 통해 이뤄졌으며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됐다고 한다. 또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이란 그림에서는 여인의 모습보다 침대 위에 놓인 터키카펫과 중국 접시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당시 화가들은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에 중국자기를 그려 넣었는데 그 중국 접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델프트의 가정에 들어오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 베르메르. 그의 그림은 정말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전하고 있었다. 17세기 유럽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당시 유행했던 물건과 그들의 사치를 위해 전쟁이 벌어져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고(고문장면은 정말 끔찍하고 잔인했다), 담배와 아편중독으로 인해 중국은 서서히 병들어 갔으며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노예가 되어 유럽으로 들어와 물건처럼 거래가 됐다.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얕아선지 이 책의 흐름을 매끄럽게 따라가지 못했다. 책에 수록된 부분 지도외에 다이어리에 있는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손으로 짚어가며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본 뒷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예술서인가 역사서인가’ 이 책은 예술서가 아니다. 역사서 역시 아니다. 역사와 예술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예술은 역사의 흐름 위에 있을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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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7-2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재밌겠네요. 저 시기 네덜란드쪽의 정물화나 그림들은 사물 하나하나가 상징이라고 하는 얘길 많이 하더라구요. 근데 그거 하나 하나 짚으면서 그림을 보거나 미술책들 보면 머리 아파요? ㅎㅎ 근데 이거 그림을 통해 당시 교류사를 본다니 꽤 흥미로울 듯...
알라딘에서는 역시 이렇게 내가 모르던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재미가 최고라니까요? ^^
요즘 날 너무 덥죠? 몽당연필님도 더위먹지 마시고 쉬엄 쉬엄 건강하세요.

몽당연필 2008-07-2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바람돌이님은 역시 알고 계셨네요.
그림 속에 숨은 상징들을 짚으면서 보는 거, 정말 재미있습니다. 쏠쏠하다는 표현이 딱이겠네요. 책에 소개된 그림의 크기를 좀 더 크게 하거나 부분적으로 확대해서 보여줬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