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변화시키는 유태인 부모의 대화법 - 부모의 창의적인 대화법이 자녀의 두뇌를 깨운다!
문미화 지음 / 가야북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부터 매달 한 두 권정도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환경에 변화가 생겨서인지 예전과는 다른 행동이나 말투를 보이기 일쑤였다. 아이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질 못했다. 뒤늦게 태어난 둘째를 키우는데만 급급하던 사이에 큰아이의 마음이나 심리변화를 미처 느끼지 못했고 그로 인해 툭하면 목청을 높이게 됐다.




이게 아닌데...화가 치밀땐 잠깐 숨을 고르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데...아이의 실수나 잘못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움츠러든 마음을 다독여줘야 하는데...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들이 정작 중요한 순간엔 머리에서 맴돌기만 할뿐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미 물이 엎질러진 상태에서야 비로소 아차!...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나와 아이의 불협화음이 도대체 어디에 원인이 있는걸까. 지금까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경험에 의하면 100% 나의 잘못이고 부족함이 분명한데...어떻게해야 고칠 수 있을까...고민하다가 <아이를 변화시키는 유태인 부모의 대화법> 이 책을 만났다.  .




책은 제목 그대로 유태인 부모들이 아이와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에 대해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먼저  ‘부모가 알아야할 대화의 기초’에서는 부모와 아이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아이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부모의 대화법' '아이의 개성을 살려주는 대화법'  '조화로운 아이로 키우는 부모의 대화법'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비교하는 말이 아이의 가능성을 막으며 식사시간을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바꿔야 한다거나 아이가 잘못했을 때는 다그치기보다 이유를 물어야 하며 억지로 공부를 가르치려하지 말고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자극해주는 게 좋고 형제간의 싸움을 무조건 중재하려하지 말고 아이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등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어 풀어놓고 있다. 또 '세계의 리더를 키운 부모의 대화법'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토마스 만, 멘델스존, 레너드 번스타인과 같은 유명하고 역사적 인물의 부모는 어떤 대화로 아이들을 크게 성장시켰는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3/1 정도에 불과한 유태인들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노벨상 수상자들도 많은데엔 그들의 부모와 아이 사이에 이루어지는 창의적인 대화법이 비밀이란 것을 알게 된 <아이를 변화시키는 유태인 부모의 대화법>.




솔직히 이 책의 내용은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육아서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의 반복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처음 알게 된 것들도 있다. 유태인들은 특히 가정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주말마다 아빠가 아이들과 따로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그 대화를 통해 아이들은 말하는 법을 비롯해 말할 때의 예의라든가 토론하는 요령과 같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조용한 것보다 다소 소란스럽다는 인상을 주더라도 아이들이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힘을 기울인다는 대목은 우리의 교육환경과 너무나 비교되는 부분이라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 부모가 자신의 대화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우선 아이의 생각이나 얘기를 그냥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대목은 내게도 작은 가능성을 심어줬다.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이런 얘길 들었다.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자라는 걸 부모는 옆에서 그냥 지켜본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잠깐 스치면서 들었던 짧막한 말이었지만 가슴에서 뭔가 쿵! 하고 소리가 났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갈수록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녀의 교육비 지출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지금의 이런 상황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건지....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교육환경이 지금 우리의 아이들을 채 꽃도 피기 전에 시들게 하고 있는건 아닌가...모르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08-09-0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는 옆에서 그냥 지켜본다... 대화를 들어준다. 생각만 바꾸면 충분히 가능한데 행동하기는 참 어려워요.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깜깜한 짙은 어둠 속, 푸른빛 연기가 한줄기 피어오른다. 붉게 활활 타올랐다가 스러지는 게 아니라 금방이라도 꺼질 듯 여리고 가늘지만 오래도록 계속 타오를 것 푸른 연기는 왠지 서늘하게 다가온다.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이 책은 우리에게 <철도원>으로 알려진 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집이다.




<인연의 붉은 끈> 즐겨보는 일본만화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사랑하고 인연이 닿아있는 두 연인의 손을 이어주고 있다...는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여기도 그런 의미의 붉은 끈이 나온다. 사랑하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헤어지게 된 젊은 연인, 그들이 서로를 붉은 끈으로 묶고 동반자살을 계획하지만 여자 혼자 살아남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그런 여인을 사람들은 죽은 사람처럼 대하는 모습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벌레잡이 화톳불>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온가족이 몰래 피신하여 숨어사는 가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간혹 ‘그건 내가 아냐. 내가 아니라 그자야.’하는 대목은 ‘도플갱어’를 연상시켰다. 전쟁중 부상과 굶주림에 지쳐 죽어갈 때 만난 또다른 자신에 의해 살아날 수 있었다는 그는 결국 ‘나는 그자그자는 나’라며 자신의 가족을 떠나간다.




<뼈의 내력> 깊은 산속의 산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마주 앉았다. 미혼일 줄 알았던 요시나가가 결혼을 해서 부인이 있다니...놀라고 당황한 친구에게 요시나가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외교관의 딸인 사치코와 사랑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던 사랑,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을...




이 외에도 <옛날 남자>에서는 한때 도쿄의 명물이었지만 지금은 낡은 병원의 병원장이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앞에 나타나고 <손님>에서는 백중 첫날 주인공 고이치가 우연히 만난 술집 마담을 집에 데리고 와서 ‘마중 불’을 밝히면서 순간 잊고 있던 연인, 임신한 몸으로 철로에 몸을 던진 미나코를 떠올리고 <여우님 이야기>에서는 여우 혼에 씌인 어린 소녀의 슬픔과 끔찍한 최후가 마음에 응어리진채 남았다.




하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원별리>였다.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전쟁터로 끌려온 병사가 죽어서도 아내 요리코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런 남편에게 아내는 꽃다발을 들고 찾아가 얘기한다. ‘요리코 요리코 요리코 요리코’하고 자신을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육십 년이 넘도록 들려서 자신은 최고로 행복했다...는 대목에서 울컥하고 눈물이 솟았다.




한줄기 푸른 연기가 위로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흩어져서 주변과 똑똑히 분간하기 어려울만큼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처럼 이생에서의 삶이 끝난 이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방황하는 영혼과 그들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쭈삣쭈삣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섭다기보다 슬프고 안타깝고 또 아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서
한호택 지음 / 달과소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소설이 봇물 터지듯 출간되고 있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팩션(Faction)이란 용어가 나올 정도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인 팩션(Faction). 그렇게 탄생한 역사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실로 매력적이다.




옅은 미색의 바탕에 초록빛 흘림체 ‘연서’라고 적힌 표지는 단순하지만 단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무왕의 사랑과 투쟁’이 어떠하길래 이다지도 고즈넉한가...




<연서(戀書)>.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백제 무왕의 탄생과 성장,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장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사람들이 물으면 어머니는 웃으며 습지에 살고 있는 용이 아버지라고 했다’라며 주인공인 장의 출생의 비밀로 소설은 시작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서 늘 “넌 큰일을 할 사람..”이란 얘길 듣고 자란 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연인, 첫사랑인 꽃님이가 시집을 가버리자 극심한 방황을 겪는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친구들과 산에 움집을 짓고 지내던 장은 어느날, 자신의 아버지가 백제의 왕이란 뜻밖의 얘길 듣는다. 어머니의 당부대로 지광스님을 찾아가 수련 받는 것을 시작으로 도기공방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 다스리는 법을 깨우친다. 뒤이어 만난 스승 왕평에게서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보살피는 자이며 왕을 도우는 군자의 도리에 대해 배운다. 또 그림공부와 그림을 파는 과정이 사람 사이의 관계나 국가 간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면서 차츰 영웅으로 성장한다.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비밀리에 붙여진 자신의 존재를 찾고 소서노의 검을 찾기 위해 왜로 건너간 장은 자신의 배다른 형인 아좌태좌를 만난다. 또 신라에서의 여러 문제로 인해 왜로 피해있던 선화공주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고구려와 신라에 밀려 쇠퇴일로에 처한 제국 백제를 일으키기 위해 일어선 무왕의 탄생과 성장, 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과 허구를 아주 재미있고 빠른 이야기에 담은 이 책은 무척 빠르게 읽혀진다. 하지만 왠지 허전하다. 제목은 분명 ‘연서’인데 운명적인 사랑을 나눌 선화공주가 중반 이후에 나오는데다 둘의 사랑도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나무로 치면 풍성한 잎을 다 떨궈내고 앙상한 줄기만 남은 셈이고 여행에 비유하면 출발지와 종착지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느낌이다. 거기다 결말이 좀 생뚱맞다는 느낌을 줘서 이게 정말 끝인가...책장을 덮고 나서도 계속 의문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오선 여행 -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
쳇 레이모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자오선여행>은 2003년 가을, 영국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를 방문한 저자 쳇 레이모가 본초 자오선을 따라 떠났던 도보여행의 기록이다.




북위 50도 47분, 경도 0도 0분. 정확히 경도 0도 지점인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 바로 위에 선 저자는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그리니치의 자오선이 국제 표준이 된 과정을 얘기한다. 그전까지 세계 주요 국가들은 제각각 각국의 수도를 기점으로 경도를 측정했기 때문에 통일된 지도나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1707년 10월, 영국의 실리제도 근처에서 영국 해군 함대가 암초에 부딪혀 배 4척이 침몰하고 2000명 이상의 병사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벌어진다. 또 철도와 전신의 보급, 제국의 확대로 인해 유럽에서 미국까지 해저케이블로 불과 몇 초 만에 전보를 보낼 수 있게 되자 표준 경도와 표준시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위도의 경우엔 만장일치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문제는 경도였다. 적도의 어느 부분을 경도 0도로 할 것인지, 지도상에 동서의 위치를 표시할 기준점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그런 가운데 1884년 미국 워싱턴에서 25개국의 대표들이 참석하여 본초 자오선을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세계 지도와 시각을 통일할 경도 기준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는 팽팽한 경쟁을 벌인다. 특히 프랑스는 “자국의 지도에 ‘그리니치 기준 동경, 서경’이라고 표시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나왔다. 이에 결국 자오선은 표결에 붙여지고 25개 참가국 중 22개국의 동의로 지구의 행성 주민들은 어떤 개인이나 종족, 나라도 특권을 주장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 개념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게 됐다.




영국 남쪽의 바닷가 작은 마을 피치헤이븐에서 출발해서 본초 자오선을 따라 그리니치 천문대를 거쳐 케임브리지까지 영국 남동부 지역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여정에는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유적지가 많았다.




본초 자오선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작은 마을 ‘필트다운’은 고고학사에서 무척 유명한 곳이다. 사람의 두개골에 인간의 두개골에 유인원의 턱뼈를 갖춘 ‘필트다운인’은 영국 언론을 열광시켰다. 최소한 10만년 이상, 어쩌면 100만년 전의 것일지도 모르는 그것이 인간과 원숭이를 이어주는 잃어버린 고리가 영국에서 발견된 것은 그야말로 빅뉴스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기극이라고 밝혀지면서 ‘필트다운’은 유명한 동시에 수치스런 장소가 되어버렸다.




또 런던의 남쪽 켄트주에 있는 ‘다운’은 찰스 다윈의 집인 ‘다운 하우스’가 있는데 자오선에서 불과 4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지 칼리지에 있는 아이작 뉴턴의 연구실 역시 자오선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공룡화석이 발견된 곳으로 알려진 라일리지스 절벽이나 과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을 비롯해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린 찰스 라이엘, 살균의학자 창시자인 조지프 리스터의 무덤이 있는 웨스트민스트 사원도 본초 자오선과 가까이 있었다.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이란 부제가 붙은 <자오선 여행> 영국 남부의 피치헤이븐에서 시작해 본초 자오선을 따라 브라이튼, 필트 다운, 케임브리지 등의 도시를 찾아 걸어다니는 저자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천문학과 지리학, 생물학, 지질학, 물리학과 같은 과학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었다. 또 인간과 우주의 관계와 그 속에 숨은 의문들을 풀기 위해 노력했던 과학자들과 수많은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소한 곁다리 : 그리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본문 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아이의 그림책 중에 <지구 둘레를 잰 도서관 사서>란 책이 있는데, 내용이 <자오선 여행>과 중복되는 부분이어서 읽을 때 많이 참고가 됐다. 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작품 <내 이름은 빨강>이 본문에 잠깐 언급이 되고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원섬에서 생긴 일 Dear 그림책
찰스 키핑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올여름, 드디어 찰스키핑을 만났다.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와 함께 영국의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손꼽히는 찰스키핑과 의미있는 첫만남을 가졌다. 계기는 <낙원섬에서 생긴 일>. 도시의 재개발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문제들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그림책이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 평소처럼 한번 쓰윽 읽어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얘길 전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여느 그림책과 달리 어둡고 칙칙한 그림은 더위에 지친 머리를 쉬이 지치게 했다. 에고, 몰라...포기하다시피 책장을 덮어버리길 여러번...




어느날 문득, ‘낙원섬’이란 이름부터 상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낙원’. 정확한 뜻이 궁금했다.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이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 혹은 ‘고난과 슬픔 따위를 느낄 수 없는 곳이라는 뜻에서, 죽은 뒤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누구를 위한 ‘낙원’인건가...




오래되고 낡은 작은 돌다리 난간에 소년이 앉아있다. 무슨 생각하는 걸까. 어딜 바라보는 걸까. 코를 킁킁거리며 다리 위를 지나가는 비쩍 마른 개를 보는 걸까? 시선의 끝을 따라가보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무심해 보이는 표정이 왠지 어둡다.




흙탕물이 흐르는 샛강 한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섬을 ‘낙원섬’이라고 불렀다. 낙원이라고 할만한 곳은 아니지만 주인공소년 애덤에겐 고향이었고 그 섬에 사는 것이 행복했다. 오래된 점방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들에선 갖가지 물건들이 보기좋게 놓여있고 밝은 표정의 주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낙원섬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친다. 낙원섬이 무질서하고 난장판이라고 여긴 육지의 시의원들이 고속도로를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낙원섬을 ‘진짜’ 낙원섬으로 만들려는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점방거리에 늘어서있던 가게들과 창고, 집들이 불도저에 의해 헐리고 부서진다.




그 와중에 낙원섬에서의 생활이 행복했던 애덤은 친구들과 함께 철거하면서 나온 폐자재들을 모아 습지에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어나간다.

 





자신들에게 고향이나 다름없던 낙원섬을 타의에 의해 떠난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작아도 자신의 가게와 집을 갖고 있고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주한 곳에선 대형 슈퍼마켓의 점원이 되버린 모습이나 어떤 특징도 찾아볼 수 없는 공동주택은 삭막하기만 하다. 그에 비해 시의원들의 화려한 집이란....극과 극의 대조를 보여준다.

 





그리고 도로가 완공되어 개통식이 열리는 날, 습지에선 또하나의 작은 축하파티가 벌어진다.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놀이터에서 애덤과 친구들은 여러 동물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무질서 속에도 엄연히 질서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을 번듯하게, 보기좋게 하기 위해 억지로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진정한 개발이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던 책, 찰스 키핑의 <낙원섬에서 생긴 일>.




알록달록 밝은 원색보다 어둡고 칙칙한 갈색계열에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칼라톤의 그림의 왠지 무겁고 혼란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흑백톤이냐, 칼라톤이냐...거기엔 저자의 치밀한 계획이 숨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집이나 가게들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나온 폐자재들이 처음엔 흑백톤이었지만 나중에 아이들의 손에 의해 탄생한 놀이터에서 아름다운 색깔을 띄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 다리가 개통되는 날 시위대들이 들고 있는 피켓 중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가난한 자를 먹여살리는 것이 성스러운 일이라면, 그들이 왜 가난한지 묻는 것은 혁명이다”... 이 짧막한 문장이 바로 찰스 키핑의 주장,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낙원섬에서 생긴 일>.  이 책은 글보다 그림을 더 세심하게,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꼼꼼하게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림책 곳곳에 숨겨둔 암호와 상징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퍼즐조각처럼 맞춰보자. 그럼 아마도 찰스 키핑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의 앞 뒤 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