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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미쳤어, 미쳤어.” 요즘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일간지에 아파트 시세표가 실리는 날엔 수위가 좀 더 높아진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10년이 넘은 아파트가 어떻게 평당 천만 원이 넘냐고!!” “미쳤어, 미쳤어. 아파트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거야.”
어릴 때 잠깐 아파트에 산 걸 제외하면 결혼하기 전까지 줄곧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지금까지 줄곧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는데 올해로 10년이 넘었다. 신혼일 때나 아이가 한명일 땐 몰랐는데 아이가 두 명이 되니 집이 예전보다 좁게 느껴졌다. 좀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지만 터무니없이 오른 아파트값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내면서 집, 특히 아파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아파트에 미치다>란 책을 손에 잡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피사의 사탑 모양 삐딱한 아파트의 이미지에 붉은 글씨로 ‘미치다’라고 적힌 표지의 이 책을 보는 순간 ‘그래 대체 아파트가 뭐길래!’ ‘아파트에서 안 살면 어디가 덧나나?’하는 생각에 불이 붙었다.
책은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집이란 무엇이며 왜 집이 중요한지로 말문을 연 저자는 아파트란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의 대표적 경관이 산이었는데 그 산이 모두 아파트에 자리를 내어줄 정도로 대한민국엔 아파트천지가 되어 ‘논두렁/밭두렁 아파트’도 생겨나고 있다면서 외국에선 서민들이 주거하는 걸로 인식된 아파트가 왜 유독 한국에서 지역을 막론하고 크게 확산되고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살기를 바라는지, 거기엔 어떤 배경이 있는지 등의 문제를 제시하고 살펴본다. 아파트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하기 시작한다. 아파트의 무엇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파트를 선호하고 열광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서구의 거주 양식인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선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파트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우리의 아파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것들을 사회현상과 연관지어 조목조목 설명해놓고 있다.
‘현대 한국의 주거사회학’이란 학술지 분위기의 부제 때문에 처음엔 책의 내용도 딱딱하고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아쉬움이 남았다. 좀 더 좋은 동네, 되도록 넓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과 문화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 대안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의문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파트에 미치다>란 제목만을 보고 내가 이 책에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책 제목의 ‘미치다’는 여기서 두 가지 의미로 쓰인 게 아닌가 싶다. ‘미치다’에는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거나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와 ‘공간적 거리나 수준 따위가 일정한 선에 닿다.’ ‘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 책에선 후자에 더 비중을 둔 건 아니었을까.
큰아이는 간혹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데 우리 집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첫마디는 “어, 집이 작네?”하는 거다. 실패한 신시가지라고 평가받는 동네지만 그 속에서도 아파트의 크기에 대한 기준은 존재했고 냉혹했다. 어느 아파트 몇 동에 사는 것만으로도 그 집의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나다니. 미처 생각지 못했다. 여고동창회에서 누구는 아파트 분양 받고 팔아서 몇 천을 벌었다더라 하는 말이 나돌아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얼마전까지는. 그저 누구에게 빚을 내서 살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는 왜 좁은 집에서 사느냐, 넓은 집으로 이사가면 안되냐는 아이의 말에.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낯선 곳에서 생활할 용기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외지로 나가고 싶다. 거실에서 조금이라도 뛰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눈초리를 치켜뜨고 주의를 주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맘껏 뛰어놀게 하고 싶다. 작지만 마당이 있어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개를 키우며 살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런 내게 있어 지금의 아파트는 그야말로 머리에 꽃을 꽂은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