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신화
아침나무 지음 / 삼양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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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우리나라의 신화 중에 어떤 걸 알고 계신가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린이 독서지도사 공부를 시작하는 첫 날, 동화부분 강의를 맡으신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우리 신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순간 강의실에 혼란의 물결이 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30명, 60개의 눈동자가 어찌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우리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셨던 걸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하셨다. 신화는 그리스로마신화만 있는 게 아니라고. 우리나라에도 엄연히 신화가 있다고 하시며 단군신화를 비롯해 고구려, 백제, 신라 각 나라의 건국신화(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알고 보니 그동안 옛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때의 일은 내가 우리 신화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확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할 세계의 신화>를 만났을 때 예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후 틈틈이 신화관련 책을 읽어왔지만 전체적인 흐름이나 윤곽을 잡지 못하고 있던 차여서 ‘세계의 신화’를 담고 있다는 이 책이 정말 반가웠다. 그런데 책을 직접 눈으로 보고서. 놀랐다. 이렇게 두꺼울 줄이야. 본문이 750여 쪽. 판형도 일반책보다 큰데다 무게 또한 상당하다. 외출할 때 결코 가져갈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이게 바로 신화가 지닌 무게가 아닐까 생각하니 왠지 책장을 넘기면서도 긴장이 됐다.




책의 시작은 신화가 단순히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는 믿음의 대상이자 종교와 같았고 그들의 생활까지도 지배했었다며 신화의 기원과 배경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한다. 그리고 만난 것이 우리나라 신화. 먼저 신화의 내용에 따라 창세. 건국. 무속신화로 나뉜다는 설명과 함께 신화의 정형을 보여준 단군신화부터 출발해서 세상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환웅이 하늘로 돌아간 이후 벌어진 전쟁, 탁록대전에 대해 알려주고 그 외에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오늘이, 바리데기 같은 무속신화도 짚어주고 있다. 그 옛날엔 우리의 영토가 한반도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과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계보도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후부터는 ‘서양의 신화(그리스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 북유럽 신화, 켈트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 페르시아 신화)’, ‘동양의 신화(중국 신화, 인도 신화, 일본 신화, 몽골 신화)’, ‘기타 신화(북미 신화, 중남미 신화, 아프리카 신화,  오세아니아 신화)’ 세 부분으로 나눠서 각 신화의 특징과 여러 신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이집트 신화는 놀랍게도 그리스로마 신화를 이루는 신들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과 신들의 머리가 동물모양인 건 바로 동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에서 기인했다는 걸 알게 됐다. 신들도 죽음을 맞는다는 북유럽 신화는 다른 신화에 비해 다소 투박하고 거칠지만 웅장하고 서사적인 면이 강해서 동화나 판타지 소설, 게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외에 친언니가족들이 살고 있는 인도와 일본의 신화도 인상적이었다. 바로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수가 엄청나다는 점이다. 인도의 신은 자그마치 3억3천이 넘는데 그들의 근원을 따지면 하나의 신이 된다고 한다. 일본의 신은 800만에 이르는데 이자나기란 신이 황천에서 목욕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신들이 탄생한다고 한다. 




세계의 신들과 매일 조금씩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미 안면이 있는 신도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신들도 많았다. 물론 이 책에 세계의 수많은 신화와 신들이 모두 수록되었는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 의미 있는 책읽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아쉬운 점도 있다. 신의 이름에 오류가 있거나 본문의 내용과 수록된 그림의 설명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신화를 제일 앞에 구성한 점은 좋았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해 분량이 절반 정도에 그쳤다. 우리 신화를 단순히 알려주는 차원에서 그친 게 아닌가 싶다. 몇 년 전의 내가 그랬듯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신화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특히 단군신화 이후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원이나 내용이 아닌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화를 우리의 뿌리로 인식되려면 그 전환의 계기가 필요한데 그 점을 소홀히 한 것 같다. 좋은 예로 탁록대전이다. 그저 치우씨와 전쟁에 관해 얘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문의 ‘다시 보기’코너에서 그를 현재로 끌고 와서 월드컵 때 한국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악마, 온 나라를 붉게 물들였던 그들의 상징인 치우천왕에 대해 소개하면 어떨까.




신화는 단순히 세상을 창조한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곳에 고인 물은 곧 썩기 마련이듯 신화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생활에서, 문화에서, 삶에서 신화가 녹아들게 하려면 흘러가는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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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어도 두고두고 질리지 않을 이야기
    from 감똘나라님의 서재 2010-03-24 17:31 
    이 책은 <세계의 모든 신화>와 비교해서 읽으면 좋은 책이다.이 책은 세계의 모든 신화와 달리 구성이 창세부터 건국까지 진행되도록 하였으며 알기 쉽게 정리했다.  이 책은 세계의 모든 신화에 없는 우리 신화와 몽골신화,오세아니아 신화가 들어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신화를 잊어가는것 같아 아쉽다.하지만 이 책은 동남아시아 신화를 뺀 것이 아쉽다.하지만 중국신화나 일본신화를 더 쉽게 시간이 흐르듯 구성되었고 몽골신화의 경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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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월이면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읽어야지’하는 책들이 있다. 감동적이다, 독특하다, 새로운 시도라는 평을 받은 책들을 차곡차곡 챙겨두기만 하고 읽지 못하던 책들, 그 중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있다. 단순한 SF소설이 아닌 우주와 지구의 존재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유쾌하게 풀어낸 책이란 것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1200쪽을 훌쩍 넘기는 두툼한 책의 위용은 ‘웬만한 각오로 내게 접근하지 마!’하는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했다. 그러다 최근 <은하수...>의 저자인 더글러스 애덤스의 신작이 출간소식을 들었다. 마치 <은하수...>를 축소해놓은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소개 자료를 보니 관심이 급증했다. 게다가 400쪽도 안된다. 바로 이거야! 무릎을 쳤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 ‘성스럽다’와 ‘탐정’이 결합된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책의 출발은 사뭇 인상적이다. ‘이번엔’ 목격자가 없을 거라더니 갑자기 천둥이 땅을 울리고 폭풍우가 몰아치고 지옥을 연상시키는 탑에서 빛이 나타난다. 이어 등장한 전자수도사는 사람들의 대신해 무언가를 믿어주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믿는 바람에 고장이 나서 주인으로부터 버림받고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 수잔 웨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지쳐서 나가버린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리처드 맥너프는 세인트체드 단과대학의 은사이자 왕립 연대기강좌 담당 리즈교수의 초대로 콜리지 기념 저녁만찬에 참석한다. 식탁위로 지루한 얘기가 오고가던 중 리즈교수는 소녀의 작은 단지로 마술을 보여주다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 리즈교수의 숙소를 방문한 리처드는 화장실에 난데없이 나타난 말 한마리에 의혹을 가지지만 자신이 수잔과의 약속을 깜빡 잊었다는 걸 그제서야 떠올리게 된다.




웨이포워드 테크놀로지Ⅱ의 창립자이자 소유주, 리처드의 고용주이자 수잔의 오빠인 고든 웨이는 자동차를 타고 오두막으로 향하는 도중 갑자기 총을 맞아 죽는다. 죽기 전 운전을 하면서도 수잔의 자동응답기에 끊임없이 메시지를 남기던 고든은 자신의 상황을 수잔에게 전하고자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그리고 리즈교수의 숙소에서 나온 리처드는 어두운 밤길을 운전하다 언뜻 고든의 유령을 보지만 그걸 자신이 할 일을 팽개쳤기 때문에 생긴 죄책감쯤으로 여기고 수잔의 집에 몰래 들어간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더크 젠틀리였다.




책이 두껍지 않다고 만만하게 본건지, 섣부른 판단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초반엔 생각만큼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았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녹아내린듯 아래로 축 처진 표지의 시계를 보고 짐작했어야 했는데,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크 젠틀리! 그의 등장을 계기로 왠지 산만하고 뒤죽박죽 엉켜있던 이야기가 흐름이 생기고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별난 행동을 일삼던 리즈 교수에겐 숨겨진 비밀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가 타임머신을 갖고 있는데 이런 사실을 더크 젠틀리가 알아챈다. 더구나 40억년 전 지구에 오려다가 실패한 외계생명체 ‘사락사란’들. 당시 그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던 사락사란 엔지니어는 유령이 되어 지구를 방황하던 중 리즈교수가 타임머신을 갖고 있는걸 알고 그걸 이용해 과거로 돌아가 사진의 과오를 돌이키려 하는데....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지만)초반의 부진을 만회하는 걸까. 책은 중반을 접어들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처음엔 다소 썰렁하게 와 닿던 저자의 유머에도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흐름에 뭐가 필요할까 싶던 싯구절도 왜 필요했는지 실감하게 됐다.




더글러서 애덤스의 독특하고도 기발한 상상의 세계를 드디어 만났다. 처음엔 이 책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실> 다음엔 <은하수...>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더크 젠틀리의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니 반갑기도 하고 슬며시 고민이 된다. 뭐부터 읽는담? 행복한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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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릴린 - 이지민 장편소설
이지민 지음 / 그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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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릴린이 그 마릴린이 맞나? <모던보이>의 작가 이지민의 <나와 마릴린>을 보자마자 언뜻 이런 게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던 마릴린, 마릴린 먼로가 우리나라 소설에 등장할 리가 있나...싶었다. 근데, 뒤표지를 보니 아뿔싸!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깝쪽댄 거였다. 너무나 유명한 장면, 지하도 통풍구에서 불어온 바람 때문에 부풀어 오르는 치맛자락을 수줍은듯 살짝 누르며 활짝 미소짓던 여인, 세기의 섹시심벌인 마릴린 먼로가 실제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국전쟁 직후에. 물론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병사들의 위문공연이 목적이었겠지만 왠지 가슴이 두근댔다. 우리나라에 잠깐 머무는 동안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궁금했다.




책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끝난 시점, 막 전쟁의 소용돌이를 헤쳐나와 어수선한 폐허가 되어 버린 도시,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가히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기이한 차림새의 여인, 앨리스 J. Kim은 미군부대에서 타이피스트로 일한다. 그녀는 어느날 유명한 야구선수와 결혼한 마릴린 먼로가 일본에 신혼여행을 왔다가 한국에 위문공연을 올 거라는 소식을 듣는다. 더불어 앨리스가 3박4일간 마릴린의 통역을 담당하게 됐다고. 마릴린이 온다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들떠있지만 앨리스는 침울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인 그녀가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이유는 뭘까.




그건 사랑이었다.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고 성장해선지 사랑에 목말라있던 앨리스, 그녀는 유부남인 여민환과 사랑에 빠진다. 부인이 있는 남자란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녀가 어느날 놀라운 소식을 접한다. 그동안 줄곧 기다려도 소식이 없던 아기를 여민환이 앨리스와 만나는 동안 갖게 된 것이다. 갑작스레 다가온 불행으로 외로움을 느끼게 된 앨리스, 여민환의 친구이자 자신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선교사 죠셉과 밀회를 갖는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도  여민환이 차갑게 돌아서자 연인을 소유할 수 없다는 반항심리가 발동한 앨리스는 여민환의 부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가 자신에게 더 큰 불행으로 다가오게 될 줄 꿈에도 모른채...




저자는 앨리스의 현재, 마릴린 먼로의 통역을 맡아 3박4일 일정을 함께 하며 일어나는 일을 서술하는 사이사이 그녀의 과거를 보여주는 기법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집단사살로 인해 언제 목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극한상황을 버티고 살아난 다음날 머리가 밤새 하얗게 새어버린 앨리스, 그녀가 찾아해매는 정남이란 소녀의 존재, 여민환의 딸 성하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매일 고열과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환영하고 반기는 사람들 앞에서 활짝 미소 짓고 매력을 발산하는 마릴린. 앨리스는 처음 그녀를 사무적인 관계로 대한다. 그러다 조금씩 그녀의 인간적인 모습과 슬픔, 아픔들을 느끼게 되면서 서서히 공감을 일으키고 그녀의 아름다움에서 위로를 받는다. 남자로 사랑과 배신으로 상처입은 자신의 마음을....




마릴린이 돌아가던 날 앨리스는 작은 선물을 건넨다. 추억의 기념품이니 집에 가서 보라고. 뭘까? 궁금했다. 하지만 어렴풋이...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찾아야할 것.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견뎌내게 하는 힘의 원천이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뒤쪽 작은 사진에서조차 화려한 매력을 발산하는 마릴린을 한참 들여보다가 책장을 덮었다. 옅은 회색과 노란빛 머리칼을 뒤로 넘기는 여인, 김애순이자 앨리스 J. Kim.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짙은 그늘이 사라지길,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날이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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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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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 학교에 임꺽정 있나? 그럼 빌려와.” 언니가 말했다. 여고 때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언니의 부탁으로 그때부터 학교에서 임꺽정을 날랐다. 언니가 먼저 읽고 반납하기 전에 내가 읽었다. 그렇게 임꺽정을 만났건만 입시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하고 시댁의 책장에서 <임꺽정>을 만났다. 얼마나 반갑던지. 오랜만에 동기동창을 만난 것보다 더 기뻤다. 하지만 아직 우리 집으로 옮겨오지도 못했는데 사계절출판사에서 임꺽정 개정판이 출간되는 바람에 난 망설였다. 아예 새롭게 장만하고 싶어서. 모두 10권이니 한꺼번에 구입하기엔 가격이 만만찮아서 마땅한 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고미숙의 임꺽정이 출간된 게 아닌가.




갑자기 고민이 몇 배로 불어났다. 대체 뭐부터 읽어야지? 원문인 <임꺽정>을 읽고 고미숙의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을 읽는 게 제대로 된 순서겠지만 그러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뭐가 좋을지 이쪽저쪽 재어보다가 고미숙의 <임꺽정>을 먼저 선택했다. 여행가기 전에 안내서부터 챙겨보는 건 필수니까. 그렇지 않나?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이 책에서 <임꺽정>을 ‘경제’, ‘공부’, ‘우정’, ‘사랑과 성’, ‘여성’, ‘사상’, ‘조직’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임꺽정은 ‘노는 남자’다!’라고 고미숙은 제일 먼저 말한다. 그것도 아버지에 처자식까지 있는. 이것만보면 임꺽정은 그야말로 몹쓸 남자다. 마누라가 자식만 데리고 보따리 싸서 도망(어쩌면 자식까지 팽개치고)가도 나쁜 @이라고 손가락질 못할 판이다. 근데 이상하다. 같이 어울려 잘만 사는 게 아닌가. 꺽정이의 이런 떳떳함, 뻔뻔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도 요즘으로 치면 친척범위에 속하지도 않는 ‘사돈의 팔촌’에 객식구까지 한데 어울려서 복작거리며 사는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유쾌하다. 정해진 직업이나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정해진 틀이 없을 뿐 배울 건 다 배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치를 배우고 말타는 법을 배우고 활쏘기, 표창던지기, 하다못해 돌팔매까지 배우고 익혀서 달인의 경지에 이른다. 대단하지 않은가. 뭐든 하나에 꽂히면 일단 밀어붙이는 그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에선 큰일날 일이지만 부모의 허락도 필요없다. 니 내 좋나? 좋다! 오케! 렛츠고!! 꺽정이와 그의 무리들에게 미적지근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 뭐든지 화끈하고 화통하다.

 

저자는 서두에 자신은 백수팔자를 타고 났다고 말한다. 그래설까. 친구와 밥과 말에 낚여서 의뢰받은 강연을 위해 <임꺽정>을 세 번 연거푸 읽고 저자 자신이 곧 임꺽정이 되어 풀어내기 시작한다. 임꺽정은 의적도, 저항의 화신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고. 그저 제 갈 길을 간 것 뿐이라고. 무엇하나 막힘없이 술술 풀어내는 저자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강연장에 앉아있는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소시민과 백수, ‘마이너’들에게 좀 더 힘을 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기분이다. 




<임꺽정>과 함께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는 저자처럼 나도 여름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덕분에 <임꺽정>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임꺽정, 그의 패거리들을 만날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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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웨슬리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지음, 김정희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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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표지의 작은 책, <안녕 웨슬리>. 횟대 위에 앉아서 하트모양의 얼굴만 정면을 향한 모양이 왠지 나와 시선을 맞추는 것 같다. 뾰족한 작은 입은 사랑스럽고 귀엽다. <안녕 웨슬리> 이 책은 생물학자이자 야생동물 구조와 재활전문가인 저자가 가면 올빼미를 만나 19년간 함께 해온 날들의 기록이다.




저자는 1985년 발렌타인데이 아침, 태어난지 나흘밖에 안 된 가면올빼미와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으로 말문을 연다. 어렸을때부터 동물을 몹시도 좋아했던 저자의 동물사랑은 성장하면서 더욱 깊어져서 ‘털이 달리고 다리가 여러 개’인 짐승 외에 실험대상으로 누에를 기르기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저자가 작고 가냘프고 하트모양의 하얀 얼굴과 황금빛 날개, 달콤함 메이플 시럽향 같은 체취를 풍기지만 한쪽 날개의 신경을 다쳐 상처가 회복하더라도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없게 된 가면 올빼미를 돌봐주게 된 것이다.




눈도 채 뜨지 못한 새끼올빼미를 데려와 ‘웨슬리’란 이름을 지어준 저자는 ‘이제부터 내가 네 엄마’라고 속삭이며 어딜 가더라도 담요로 포근하게 감싸서 함께 다닌다. 그러다 드디어 웨슬리가 드디어 처음 눈을 뜨던 날, 스테이시와 웨슬리는 어미와 새끼의 첫 대면을 하는데 그녀는 웨슬리의 속을 알 수 없는 짙은 검정색의 눈동자는 강렬함과 신비함을 이끌린다.




책에는 올빼미들의 생김해나 동작, 행동패턴, 습성 같은 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웨슬리는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과 같은 습성을 갖기도 했다. 선천적으로 야행성이지만 엄마인 저자의 행동을 모방해서 밤에 자는 법을 터득하기도 하고 한다.




저자는 웨슬리를 정성껏 돌본다. 처음엔 웨슬리의 먹이로 얇게 썰은 깨끗하고 신선한 쥐를 제공받아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해동을 시켜 작은 크기로 잘라서(이 대목은 책을 읽으면서 왠지 거부감이 구역질이 나는 것 같았다) 먹였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저자가 직접 잡아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저자는 망설이지 않았다. 쥐를 주식으로 하는 자식을 위해 뒤뜰에서 쥐를 잡아서 먹이를 조달하고 웨슬리에게 평생 2만8천 마리의 쥐를 잡은 저자는 손목에 수근관증후군이란 병을 얻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웨슬리의 날카로운 발톱에 찔려 몸 여기저기에 피가 나고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못해도 끝까지 웨슬리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한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스테이시에게 웨슬리가 힘이 되어 주었듯 그녀는 웨슬리와 함께 있는 삶을 택한다. 19년간.




애완동물을 기른다는 걸 단순히 먹이와 잠자리를 주는 게 아니라 나의 시간과 공간과 감정을 아낌없이 주고 함께 나눈다는 게 아닐까. 책을 읽을 땐 웨슬리의 사진이 없는 게 아쉬웠지만 그건 아주 사소한 거였다. 가족이자 동반자이자 친구로 19년간 함께 했던 스테이시와 웨슬리의 감동적이고 눈물겨운 이야기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을 본 것 같아 가슴 한 켠이 포근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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