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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방 ㅣ 둘이서 2
서윤후.최다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5월
평점 :
내 방이 갖고 싶었다. 내 물건이 다른 이의 것과 뒤섞여 논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내 것으로만 된 방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태어난 순간 이미 형제가 다섯 손가락을 넘었기에 내 방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다 여고 때 처음 생긴 내 방이 생겼는데 주방 위 다락방이었다. 허리를 곧추세울 수 없는 공간, 그마저 반은 짐으로 채워져 있어 앉은뱅이 책상과 내 몸 하나 간신히 눕힐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기뻤다. 어슴푸레한 전등 아래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책을 읽다 잠들 수 있어 행복했다. 창이 있어 더 좋았다. 작은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맞은편 집 지붕 너머로 하늘이 보였다. 특별하지 않은 밤하늘을 보며 매일 꿈꿨다. 저 너머 넓은 곳으로 향하는 걸.
그가 읽은 책, 그가 머무는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기질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이후 살아가면서 어떤 책을 읽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타고난 기질이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주변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데. ‘혼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쌓은 감정, 읽고 쓴 책, 지어 먹은 밥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모양의 나에게로 도착했다.’ <우리 같은 방> 프롤로그 첫 문장을 읽으며 지금의 난 어떤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같은 방>은 시인 서윤후와 한문학자 최다정이 ‘방’이란 주제로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공간에 대해 함께 쓴 에세이다. 서윤후와 최다정. 이미 몇 편의 작품을 발표한 작가이지만 내겐 첫 만남이다. 낯선 작가의 공동작품임에도 이 책을 선택한 건 ‘우리 같은 방’이라는 제목 아래 조그마하게 적힌 ‘둘이서’란 부제였다.
살아온 시절의 우리를 닮은 방에서 우리는 제일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방에 대한 이야기를 소환해 쓰면서 이 확실한 마음 하나를 건져 올리게 되어 다행이다. - 11쪽
같은 공간에 사는 두 사람이 서로의 생각을 적은 것일까?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방은 누구에게나 가장 내밀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방에서 어떤 일상을 보낼지 기질과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두 명의 동갑내기 작가가 각자 자신의 방을 이야기하는데 어쩐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방]에서 ‘다정’과 ‘윤후’가 번갈아가며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방을 이야기하다가 [다정의 방], [윤후의 방] , [다시 다정의 방], [다시 윤후의 방]으로 이어진다. 이사가 잦았던 다정이 거쳐간 자취방 일화를 읽으며 문득 30여년 전 나의 자취방이 떠올랐고 ‘가로로 누워있는 책’이나 ‘잡동사니를 좋아하는’ 윤후의 글에선 현재 내 모습이 설핏 떠올랐다.
나는 방에서 고요를 수비하며 붙잡는 일을 한다. 쓰는 일로, 놓친 것을 심판하고 남겨진 것을 눌러 적는다. 그런 의미에서 방은 헤어짐을 판가름하는 가정 법원의 풍경일 수도 있고, 혼자서 짝사랑하는 누군가의 빼곡한 서랍일지도 모르겠다. -119쪽
같은 듯 다르고 다르지만 닮은 그들의 글을 보며 다시 나의 방을 꿈꾼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가까워졌지 ‘내 방’을 갖고 싶은 마음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언제가 됐든 내 방이 생기는 날까지 종종 이 책을 뒤적이게 될 것 같다. 볕이 잘 드는 창문 쪽에 책상을 놓고 천장까지 닿는 책장을 짜서 세로로 책을 꽂고 연필 선인장 하나,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서 책 읽고 글을 쓰는 그런 날...
지나온 방의 역사는 곧 창문들의 역사와도 같다. 무해한 아름다움을 담아 주는 가지각색의 창문을 수집해 왔다. 창문은 놓인 위치와 방향에 따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테두리 모양과 크기, 색감과 선명도까지 정해 주었다. 동그랗고 네모지고 금이 가고 먼지가 낀 각종 창문들. 창문 앞에 선 나는 창문의 형태와 상태에 따라 창문이 보여 주는 만큼만 세상을 구경하게 되는 것이다. - 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