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가속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앞에 다가온 역사의 변곡점
스콧 갤러웨이 지음, 박선령 옮김 / 리더스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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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기 잘 견뎠어 이젠 꽃길만"전국 '위드 코로나' 기지개 / 세계일보]

[신규확진 1,618'위드 코로나' 준비 본격화 / 연합뉴스]

['위드 코로나' 대비하는 기업들자체 방역지침 완화 잰걸음 / 한국일보]

[코로나19 확진자 1400명대 초반3주째 감소세 지속 / 프레시안]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위드코로나를 말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기대하는 것보다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With Corona’. 우리나라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코로나19 대응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지역을 봉쇄하거나 셧다운 하지 않은 상태에서 확진자 동선을 추적해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했고 각 지역의 선별진료소에서는 광범위하게 코로나 검사를 시행했다. 무엇보다 돋보였던 건 바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인방역과 위생에 힘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 시국은 2년째인 지금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방역이냐, 일상 회복이냐. 이 사이에서 누구나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 완료자가 인구 대비 65%, 1차 접종자는 인구 대비 78%에 이른다는 것. 시민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개인방역에 주의를 기울이면 조금씩 일상으로 회복하면서 코로나와 공존하는 것도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개인, 사회, 비즈니스모든 추세가 10년씩 앞당겨졌다!’고 말하는 책이 출간됐다. 미국에서 브랜드 전략이나 트렌드를 예측하는데 가장 정통한 전문가로 꼽히고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 교수중 한 명에 선정된 스콧 갤러웨이의 <거대한 가속>이다. 원제는 <POST CORONA>. ‘코로나 후에’, ‘코로나 뒤에’, ‘코로나를 이어서우리가 어떤 시대를 맞을 것인지 저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시간이 아닌 변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은 단순히 이전이후의 차이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시간은 잘 변하고, 변화할 때마다 속도도 달라진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이 전례 없는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바이러스처럼 작은 것이 말이다. (4~5)


 

책은 5(‘빠르게 재편되는 비즈니스 판도’ ‘더욱 강력해진 플랫폼 제국의 미래’ ‘또 다른 시장 교란자들’ ‘위험과 확신이 기다리는 고등교육’ ‘거대한 가속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전세계는 일대 혼란을 빚었지만 가장 먼저 쓰러진 건 자본이나 여건이 약한 기업이었다. 생태계의 적자생존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팬데믹발 위기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자본시장의 회복력이다. () 코로나로 2020년 여름까지 18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사망했고, 실업률이 기록적으로 치솟았으며, 바이러스는 쇠퇴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주가는 하락 폭을 대부분 회복했다. () 팬데믹 국면에서 언론이 거대 IT 기업이나 대형주 지수 같은 화려한 부분에 정신이 필린 동안 한쪽에선 무자비한 집단 도태가 진행되고 있다. 약자는 그냥 뒤처지는 정도가 아니라 잔인하게 학살당한다. (23~24)


 

작년 초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코로나란 바이러스에 대해 어떤 것도 모르던 때 우리는 극도로 외출을 자제하고 대부분의 소비를 온라인으로 해결했다. 그 여파로 골목상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문화계와 공연업계 역시 올스톱되었다. 그런 가운데 거대자본을 무기로 한 대기업의 영향력은 다욱 커졌는데, 이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그룹이 있는데 바로 ‘IT 기업, 빅테크 기업들이라고 강조한다. 그 거대 IT 기업들은 이후에 자사의 주가가 2배로 뛸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를 식욕과 허기를 비유해서 언급한다.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주인공인 뱀파이어가 나중에는 쥐로는 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공격하게 되는 것 같은 상황이 올 거라고.


 

빅테크 기업들은 자사의 제품 설계와 정책 결정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듯하다. 설령 고려하더라도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공 재산을 일부러 희생시킨다. (84)

 

도시에서는 토끼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없으니 사냥을 나가야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런 사냥감을 찾을 수 있을까? (90)


 

작년과 올해, 2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급격한 변화를 맞은 분야가 있으니 바로 교육이다. 학교에 출석해서 수업하던 방식에서 어쩔 수 없이, 거의 강제적으로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모든 교육기관에서 전면적으로 도입이 되었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학생이 늘고 우수학생은 줄었으며 신입생 충원을 하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했다.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여서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으며 명문대라는 특권은 물론 등록금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없는 대학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더불어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재정비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고등교육의 혁신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협력해 4년제 대학과 전문대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이고 주립대학교 정원을 대폭 늘리는 계획은 마련해야 한다. () 마찬가지로 사립 초..고등학교에 세금을 부과해 공립교육을 보완해야 한다. 현재 고등교육은 상당 부분 카스트제도가 되어버렸다. (188)


 

코로나 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문득 IMF 때가 떠올랐다. 예고 없이 닥친 IMF 외환위기로 실직자가 갑자기 늘어났고 극빈층으로 떨어져 생계조차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모든 사람들이 살기 위해 허리띠를 조이는 위기 속에서 오히려 곳간을 그득그득 채우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비대면과 원격근무로 실직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소득의 불균형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일부 기업은 급속도로 자산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갑자기 빨라진 변화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작년에 입대한 큰아들이 제대를 앞두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제대로 휴가를 나오지 못해서 조기 전역을 하게 된다고 한다. 아들은 집에 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떠있지만 난 어쩐지 걱정이 된다. 이전과 확인하게 달라진 일상에, 입대 전과 완전히 딴판이 된 대학 생활에 아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전역한 아들에게 이 책을 건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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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김수영 지음, 박수연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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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특징을 얘기해봐” “시의 3요소가 뭐지?”

작년 여름 제가 중학생 아들의 국어 공부를 봐줬는데요. 아이가 제일 힘들어한 것이 바로 였습니다. 아들만 그런건지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그런건지 알 수 없지만 깊은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모습에 그야말로 제 머리의 뚜껑이 열릴 정도였지요. 맘 같아선 그래, 시는 읽어서 느끼면 되는 거지 그냥 되는대로’ ‘니가 느끼는대로’ ‘니 맘대로 해봐!’ 외치고 싶지만 막상 시험, 점수로 연결되니 생각처럼 되질 않더군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세기에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국어 시간에 주제, 제제, 소재, 시의 운율이 어쩌구, 이 시에 드러난 심상이 무엇인가...등등 시를 완전히 분해한 다음 씹어먹듯이 외우고 시험까지 쳤는데요. 성인이 되고 보니 무엇 하나 남는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답니다. 하지만 이제 그걸 다시 아들에게 강요해야 하다니...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니? 작가의 생각? 작가의 의도?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출제자가 이 문제를 왜 냈는지 생각해봐야 해, 학습목표를 니 머리에 빡! 넣어두고 유추를 해봐. 그래야 문제가 풀려”...이러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김수영은 제목에 왜 폐허에를 두 번 넣었을까였습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말이죠. 김수영의 시를 모두(아니 솔직히 거의 모른다는 게 맞을 겁니다. 예전에 김수영 시집을 구입했지만 읽다가 도중에 덮어버렸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알지 못하는지라 짐작만 했지요. 강조하는건가? 하고요.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시그림집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를 손에 들고 이번엔 예전과 다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무심하고 둔해도 세월을 그냥 날로 먹지는 않았을테니 이전처럼 김수영 시 한 편 읽으면서 머리 싸매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런데 웬걸요,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덮어버려? 하지만 이번엔 정말 그냥 덮고 싶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김수영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입력한 다음 시를 읽으니 그나마 조금 낫더군요.

 


음악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자

저무는 해와 같이

나의 앞에는 회색이 뭉치고

응결되고

또 주먹을 쥐어도 모자라는

이날 또 어느 날에

나는 춤을 추고 있었나 보다 - [음악 /1950.2]

 


서울에서 지주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식민지 조선에서 집안은 결국 몰락했고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일본에서 김수영은 학문보다 시와 연극에 몰두하는데요. 일본에서 학병 징집을 피해 만주로 이주했다가 광복을 계기로 귀국합니다. 그러다 6.25 전쟁으로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국에 징집되었다가 탈출에 성공하지만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히고 마는데요. 당시 수용소는 반공 포로와 공산주의 포로들이 매일 패싸움을 벌이고 수시로 유혈사태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고초를 겪던 김수영은 3년 후 민간인 억류자로 석방되는데요. 이후로도 그의 삶은 여전히 고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이 놓여 있는 이 방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 [달나라의 장난 / 1953]

 


식민지-전쟁-독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은 김수영에게 무척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식인이자 예술가로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함, 무자비한 권력의 압박을 무심히 넘길 수 없었던 그는 당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는데요. 어렵사리 4.19 혁명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이승만 독재 정권처럼 인간의 자유를 무시한 채 반공법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자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써서 신문사에 보냅니다. 북한과 남한 따로 정부가 꾸려졌으니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외친다면 김일성 만세를 인정하면 되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걸 비판하는 시인데 당시 문단이 시의 문맥이 아니라 시의 김일성이란 단어에 치중한 탓인지 그의 사후에야 발표되었습니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

나는 잠이 깰 수밖에 - [“김일성 만세”/ 1960.10,6]

 


4.19 혁명이 어떤 것도 변혁하지 못하고 그래서 사회를,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자 안타까운 마음을 시에 풀어내기에 이릅니다. 마치 혁명의 실패를 예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운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 [그 방을 생각하며/ 1960.10.30.]

 


권력으로 사람들을 짓누르는 현실에 좌절한 그에게 마지막 해방구는 술이었다고 합니다.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그는 종종 경찰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서라도 잊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가 꿈꾸었던 건 어떤 세상일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그가 남긴 마지막 시에서 그가 염원했던 것, 그가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제아무리 권력이 억압을 가해도 결코 그들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약하고 힘없는 풀일지언정 언제나 그들보다 먼저 움직이고 말겠노라고.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 1968.5.29.]

 


우리 역사의 칠흑 같은 어두운 시대를 걸으면서 길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던 시인 김수영. 날카롭고 거칠고 힘찬 그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엔 아직 소양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언제든 펼쳐볼 수 있도록 가까이에 두고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제목에 왜 폐허에를 두 번 넣었을까하는 의문은 책의 마지막에 풀렸습니다.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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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이론 -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유산
윤성철 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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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단하나의이론 #독서모임 #인문학 #책스타그램 #책추천 #알에이치코리아

 



요즘 들어 부쩍 집이 좁게 느껴진다. 작년 2천여 권의 책을 정리한 이후로 빈 공간이 제법 보였는데 어느새 그 자리에 다시 책이 탑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는 길에 만나게 되는 돌탑엔 작은 돌 하나마다 저마다의 소망과 염원이 깃들어 있는데. 저 책탑은 어떨까. 무언가에 대한 염원이 녹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욕망이 드러난 것에 불과한 것일까.

 


현재 상황이 알려주는 것, 그 해결책은 간단하다. 또다시 책을 정리할 시점이 돌아왔다. 거실과 방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서 책을 솎아내야 한다. 어떤 책을, 어떻게, 얼마나, 정리할 것인가. 지금까지 나의 기준은 딱 두 가지. 내가 이 책을 언제라도 다시 읽을 것인가. 이 책은 과연 아이들에게 추천할 만한가. 아이들의 가슴과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책인가. 조건에 충족한다면 보관, 아니라면 정리. 말은 간단하지만 엄청난 갈등의 시간을 맞아야 한다는 얘기다.

 


<단 하나의 이론>, 책 제목만 봤을 땐 그냥 스치고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유산이라는 부제와 표지 그림이 나를 붙잡았다. 다크블루 바탕에 거대한 산맥, 그 위의 둥근달. 그런데 그림의 방향이 왜 세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땅(산맥)이 가로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아주 먼 곳에서 지구를 바라봤을 때 지구의 옆면 일부만을 그린 걸까. 아니면 가로를 세로로 돌리는 데서 발상의 전환을 나타낸 걸까?

 


만일 기존의 모든 과학 지식을 송두리째 와해시키는 일대 혁명이 일어나, 다음 세대에 물려줄 지식이 단 한 문장밖에 남지 않는다면, 그 문장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 7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이 남긴 질문이다. 이 책은 이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천체물리학자, 사회학자, 미생물학자. 신경심리학자, 통계물리학자, 인지심리학자, 신경인류학자들이 모였다. 저술이나 강연 등의 방식으로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전문지식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열 일을 제치고서 두 눈을 부릅떠야 할 때다.

 


신을 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호기롭게 책장을 펼치자마자 마주한 문장에서 머리가 띵해졌다. 신을 어떻게 생각하냐니. 독서모임에서 중세를 다룬 책을 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은 내게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그 을 과학자, 그것도 천체물리학자가 얘기하고 있다. 불시에 허를 찔렸지만 대체 무슨 얘길하려고 신을 들먹이시나 싶어 더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항상 우주라는 말에서 신을 떠올린다(17)’며 강연회에서 자주 접하는 질문으로 말문을 연 윤성철님은 영화 <두 교황>의 한 대목을 언급하면서 신과 종교에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언급하면서 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원자를 데려온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이자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는 일정한 궤도를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그 원자가 어떻게 세상의 변화를 설명한다는 거지?

 


변함없는 공간이라던 우주가 현대에 와서는 팽창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이것 역시 이후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고정되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우주를 가리켜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든 원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규칙성을 보인다면, 이 세상은 시계와 같이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모습만 하고 있을 것이다.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필요하다. () , 일탈은 창조의 근원이다. - 26.

 


사회학자 노명우님은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말한다. 45억 년의 지구에서 인류가 남긴 최초의 기록은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동굴벽화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한 동굴에서 그보다 더 이른 3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남긴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탐험가의 이름을 붙인 쇼베 동굴 벽에 단순한 선으로 그린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잊는다. 그리고 이내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곳이 빛 한줄기 비치지 않는 어두운 동굴이라는 것. 전기도 없던 3만 년 전, 그림을 그린 이는 울퉁불퉁한 동굴 벽에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의문을 갖는다. 그림을 그리는 이의 곁에는 틀림없이 불을 비춰준 동료가 함께했을거란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참혹한 전쟁 중에 극단의 굶주림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이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코로나19 시대를 겪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3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혼자가 아니었듯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위험에는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바이러스가 아닌 이상,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단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을 일깨운다. 바이러스는 말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 72

 


리처드 파인만의 질문에 대표 학자들의 답변이 수록된 <단 하나의 이론>은 이후 미생물학자 김응빈님의 유전자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생명이란 우주의 메모리 반도체이다], 신경심리학자 김학진님의 인간의 감정과 공감에 대한 [마음은 신체와 환경의 소통에 기원한다], 통계물리학자 김범준님은 물리학 이론인 열역학을 다루는 [인류 지식의 원전은 엔트로피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님의 [인간의 욕구는 전염된다], 신경인류학자 박한선님의 진화론을 영혼과 마음으로 확장시킨 [인간 정신은 진화의 결과다]로 이어지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제법 눈에 띄었다. 과학지식을 다룬 부분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워 한참 제자리에서 맴돌기도 했지만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하듯 여러 도표와 그림, 사진이 본문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도움이 되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학자들이 본문에 참고문헌으로 사용한 책이나 논문의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 내용의 근거와 이해를 돕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일곱 명의 학자들이 저마다 독자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을 추천하는 부분을 수록했으면 어떨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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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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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다고? 이게 뭔 말이래?"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을때 제목을 보고 어이없다고 여겼다. 대체 '아내'라는 존재를 얼마나, 어떻게 여겼기에 평생 함께 살아갈 반려자인 아내를 외출할 때 머리에 쓰는 일상용품인 모자쯤으로 여기나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보게 된 미국드라마에서 의문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어떤 남자가 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왔는데 그 남자가 매번 의사의 머리에 모자를 툭 올리는 것이었다. 마치 집에 들어오자마자 착용했던 윗옷과 모자를 옷걸이에 걸어두는 것처럼.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자 의사는 남자에게 당신의 뇌에 이상이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걸 보는 순간, 아하!했다. 그 책이 말한 것이 바로 저것이었어!! 



궁금하거나 호기심이 생긴 책은 당장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는 난 호기롭게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초반 몇 장을 읽다가 덮은 이후로, 오래도록 책은 책장 한켠에서, 높게 쌓은 책탑 무더기에 갇혀 있었다. 



대체 '병의 본질'이라든가 '새로운 병'이란 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올리버 색스의 책은 뇌와 음악에 대해 다룬 <뮤지코필리아>, 저자 자신은 물론 편두통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는 <편두통> 이후 오랜만에 만났다.



신경학자이자 의사인 저자는 오래도록 인간이 병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의문을 가졌다. 병으로 고통받는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그는 환자가 환자이기 이전에 자신과 똑같은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어떻게 하면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뇌 혹은 신경에 크고 작은 이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힘들어져서 때로 기관이나 병원에 격리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써내려간 기록이다. 때문에 본문 곳곳에서 인간의 '뇌'와 관련된 전문용어를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첨엔 대체 무슨 의미지? 궁금해서 검색하는 정성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뿐하게 '패스'하는 요령을 터득했다. 뇌부위의 명칭이나 호르몬까지 일일이 체크하다가는 또다시 책을 덮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신경학에서는 '결손'이라는 개념을 즐겨 사용한다. '결손'은 어떠한 기능장애에 대해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신경학 용어이다. 기능은 정상 아니면 비정상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이다.



소설처럼 흥미진진하지도, 에세이처럼 정돈된 문장으로 마음을 다독이는 것도 아닌 글. 뇌의 여러 병증을 정리한 보고서를 일종의 에세이처럼 적어나간 글을 매일 조금씩 읽어갔다. 인간의 뇌에 대해 알게 된다는 기대나 흥미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병증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노화로 인한 치매부터 뇌경색,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정신질병 외에도 너무나 많은 병증이 있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때에 따라 '병증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 그저 행동이 평범한 우리에 비해 조금 '독특하고' 조금 '다른' 사람들일뿐이라는 점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그들은 정말 그렇게 희귀한 존재일까? 아니면 우리가 단지 무심하게 지나쳤을 뿐일까?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간청하기 위해 그 부모들이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었던 장면이 생각났다. 



뇌의 병증으로 인해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기 힘든 사람들, 부모나 가족이 아니면 제대로 보살핌 받지 못하고 외딴섬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언제까지 그들 부모와 가족만의 책임이라고 할 것인가. 그들 역시 인간이기에 이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듬을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해심이 아주 깊은 사람이 그를 고용해서 정성스럽게 지도하지 않으면,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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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자의 일기
엘리 그리피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나무옆의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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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스릴러 소설, 정말 좋아합니다.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초등학생때입니다. 셜록홈즈와 루팡에 매료된 후로 아가사 크리스티, 앨러리 퀸,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섭렵했고 성인이 되어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우타노 쇼고, 스티그 라르손, 요 네스뵈, 존 르 카레, 마이클 코넬리, 헬렌 코벤...국적을 가리지 않고 마구 읽어댔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 인문서적을 읽으면서 예전만큼 추리스릴러물을 즐기진 못하고 있는데요. 그럼 관심이 완전히 사라졌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수시로 서점의 신간 코너를 보면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나 흥미로운 책을 메모해두곤 하는데요.


 

얼마전엔 표지가 아주 인상적인 책을 봤습니다. 붉은 보름달이 뜬 깊은 밤에 이층집이 그려져 있는데요. 2층 방에 켜진 전등 불빛과 양옆의 어둠, 책상 의자가 순간적으로 투구를 쓴 무사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 집을 감시하기라도 하듯 정체를 감추고 있는 검은 그림자 넷과 그 집을 향해 털을 잔뜩 곤두세우고 울부짖는 덩치 큰 개(?) 한 마리. 대체 저 이층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거기다 에드거 상 수상작’ ‘빼어난 고딕 스릴러와 같은 띠지의 문구가 더해지니 안 읽을 수가 없더군요.


 

괜찮으시면,” 낯선 사람이 말했다.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고 싶소.” - 11

 


<낯선 자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떤 남자가 기차여행 중에 만난 이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 얘기를 해주겠다며 말문을 여는데요. 이야기가 막 흥미로워지기 시작하자마자 금방 끊기고 맙니다. 문예창작반 수업을 위해 낯선 사람이란 작품의 도입부로 선생과 학생들은 질문과 답변, 유추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데요. 공교롭게도 낯선 사람을 쓴 R.M.홀랜드의 집이 바로 그 학교 건물이었고 수업을 진행한 선생은 그 홀랜드의 전기를 집필 중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곧이어 그 선생, 클레어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같은 학교 동료이자 절친인 엘라가 살해당했다는 것. 어때요, 이것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지요? 홀랜드의 생전 집이자 학교에 감춰진 비밀은 없는지, 엘라는 무슨 이유로 살해당했는지, 이런 모든 일이 클레어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건지. 풀어야 할 의문, 속된 말로 떡밥이 한두 개가 아닌 거죠.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하는 건? 피해자의 주변 인물 탐문부터 하지요. <낯선 자의 일기>도 마찬가집니다. 엘라에게 불쑥 두 명의 형사(하빈더 카우어와 닐 윈스턴)가 찾아옵니다. 젊고 체구는 작지만 강한 카리스마의 하빈더는 클레어에게 엘라에 대해 묻는데요. 형식적인 것 같은 질문 속에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하빈더와 다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클레어. 하빈더는 이런 클레어에게 반감을 갖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엘라의 페이스북에 있는 ‘C는 알고 있다는 글과 시체에서 발견된 쪽지에서 템페스트의 인용구 지옥은 비었다.”는 모두 클레어에게 의심의 눈초리로 향하게 했는데요. 뚜렷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건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시간만 흐르던 어느 날, 클레어는 자신의 일기장에서 낯선 필체의 글을 발견합니다. 안녕, 클레어. 당신은 나를 모르죠.’

 


소설은 클레어와 하빈더, 그리고 클레어의 딸 조지아 세 명이 차례로 주된 화자가 되어 진행됩니다. 엘라를 중심으로 해서 사건 전후로 세 명의 인물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들 각자의 관점으로 풀어가는데요. 사람들은 하나의 일을 동시에 겪어도 저마다 생각과 기억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친이라 해도, 부모자식간이라도 마찬가진데요. 그렇게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에서 사건의 의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러나는 최대의 반전... 대체 엘라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요?


 

주된 화자인 클레어가 책을 쓰는 작가여서인지 본문 곳곳에는 여러 책이 언급되는데요. 낯선 책도 있었지만 <흰옷을 입은 여인>으로 단박에 애정작가가 된 윌키 콜린스를 만나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궁금했던 건 바로 ‘R.M.홀랜드는 대체 누구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나? ‘고딕 스릴러는 뭘까? 궁금했는데요. 중세의 건축물 특유의 폐허와 같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거기에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어두운 심리가 더해진 소설을 고딕문학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500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은 생각보다 금방 읽힙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몰입해서 읽을 책을 찾으신다면, <낯선 자의 일기>를 들춰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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