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을 가다 -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
장 지글러 지음, 모명숙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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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서평] 인간의 길을 가다 - 이 시대의 지식인에게 던지는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라의 질문



스위스 사회민주당 의원이면서 UN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저자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소회를 정리한 글이다. 그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한 변혁을 고민하는 지식인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있다.


이 책은 저서전은 아니다. 저자가 일생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철학적 에세이에 가깝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어떤 길을 살아야 하는지를 강변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고민의 틀을 제시하면서 스스로 가져볼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마도 일생동안 자기 자신에게 던져졌을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저자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시기가 중요하다 말한다. 

프랑스 혁명을 제압하려는 프로이센동맹을 단결된 시민혁명군이 막아내면서 그들이 외쳤던 구호가 "국민 만세"였다. 이것은 국민이라는 단어가 시민권력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결국 시민혁명이 만들어준 중요한 개념이 국민인 것이다. 그때까지 인간을 억압했던 봉건사회의 질서를 마감하고 진정한 민주 시민의 등장을 알렸던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제국주의의 등장은 이러한 국민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국민국가라는 개념을 보다 정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를 통해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게 된다.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의 조정자인 관료들이 새로운 권력층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 뜻에서 당시 관료들을 선출된 귀족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여기에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식민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만들어진 국제적 권력질서의 재편이다. 아프리카의 분할이나 중동 문제 등은 이러한 문제의 극단적 표현인 것이다. 아직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국제적 경제억압의 질서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민혁명으로 만들어졌던 민주주의의 개념이 이렇게 변질이 된 이유를 저자는 인간이 가지는 강한 공동체성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다른 종들을 정복하고 지배하게 된 이유는 집단생활을 조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려는 인간의 습성이 사회를 만들었으나, 그러한 사회가 역설적으로 인간을 소외시키게 되버린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가지는 가치개념을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의식을 당신을 목표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 사회의 질문 중 가장 중요한 질문인 옳음이 좋음을 앞선다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칸트의 이야기를 던지면서 정리한다.

"남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성은 내안의 인간성도 파괴한다"(임마뉴엘 칸트)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좋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불평등을 야기하는 경제 질서와 인간을 소외시키는 상부구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인가?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불합리한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에 충실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은 인간의 보편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지식인의 고뇌를 오늘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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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미래 - 디지털 시대 너머 그들이 꿈꾸는 세계
토마스 슐츠 지음, 이덕임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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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서평] 구글의 미래 - 디지털 시대 너머 새로운 세상을 여는 그들의 행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지구상 인터넷 사용자의 80%가 이용하는 서비스인 구글, 그들은 이러한 시장 장악력을 무기로 새로운 비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알파고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딥마인드는 구글이 5억달러를 투자해서 인수한 회사다. 이 회사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구글의 비밀 프로젝트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세돌과의 바둑 대국으로 인해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사실 일반적인 기업 경영인이라면 그러한 큰 금액을 투자할만한 회사로 여겨지지 않지만 구글은 자신의 비전과 맞는 기업이라고 한다면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글이 시도하는 이유는 단지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기업이 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딥마인드 외에도 혼자서 도로를 주행하는 자율자동차 프로젝트, 성층권에 올려보낸 풍선을 통해 WIFI서비스하기, 나노위성을 통해 전 세계를 네트웍으로 묶고자 하는 계획, 드론으로 신속하게 배달하기, 생명연장 프로젝트, 로봇연구, 양자컴퓨터 연구 등 매우 다양하면서도 복합적인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사실 이러한 프로젝트 때문에 구글을 IT기업으로 보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이렇게 그들이 다양한 행보를 하는 이유는 창업자들의 기업정신을 구현하고자 하기때문이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기술에만 전념하고 회사를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 영입한 에릭 슈미트가 경영을 맡게되면서 구글은 시장에서 자리잡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2010년 다시 래리 페이지가 경영 전면에 다시 나서게 된다. 

이러한 이유는 구글의 성장 이후 안정적인 운영에만 집중하다보니 구글이 원래 추구하는 비전인 10% 성장이 아닌 10배성장(문샷정신; 달나라 로켓쏘기)이라는 비전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래리 페이지가 경영을 맡고,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의 다양한 혁신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에릭 슈미트는 구글의 대외 이미지를 맡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역할변경을 단지 분담에 불과하며, 기존의 3인 경영체제를 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구글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거대한 문제라는 범주와 급진적 해결책이라는 범주, 타당성 조사를 통해 실현가능성 높음이라는 세가지 범주의 교집합에 들어가는 목표를 선정한다. 세가지 범주 중 하나만 적용이 안되도 채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심에는 구글X연구소가 있으며, 다양한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조정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성장동력은 기존 사업과의 유기적인 결합과 함께 구글의 새로운 성장에도 작용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작업이 새로운 것은 아니며, 구글이 처음 검색시장을 만들었던 창업 초기의 정신을 구체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인간과 컴퓨터의 대화를 시도하는 연구들이 검색의 정확성과 구글 번역, 구글 지도 등 다양한 확장에도 응용되듯이 말이다. 


분명하게 설정된 목표를 추구하되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구글의 인사정책도 이러한 구글의 행보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연구 중 폐기된 프로젝트도 많이 있지만 자율주행차, 혈당측정 콘텍트 렌즈, 인터넷 중계기 풍선 등은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은 물론 기존 사업자들까지 변화하게 만들고 있다. 

구글의 행보에 대해 우려와 희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구글이 빅브라더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회사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구글은 그들의 소바자에게 인정 받는 기업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구글의 미래는 구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글과 함께 연결되어 있는 기술생태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다. 사악해지지말자는 구글의 표어는 그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글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빠르게 비뀌어가는 기술지도에 대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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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김정환 옮김 / 다산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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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서평] 노후파산 - 장수, 축복인가? 저주인가? 일본 NHK스페셜을 통해 보는 장수시대의 악몽



2013년 일본 NHK 스페셜 "고립되는 치매고령자"프로그램을 통해 고령자의 문제를 다룬 이후 노후파산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내용인 "노인표류사회"를 2014년 9월 28일 기획 방영하였다. 이 책은 이 NHK 스페셜을 통해 고령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정리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경우 600만명의 고령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 중에 연수입이 생활기초수급액에도 못미치는 가구가 절반이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중에 생활보호대상자인 70만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복지사각지대에 내몰려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현재 현역에 대한 고령자 부양비율이 2010년 2.6명이던 것이 2030년 1.7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사실상 젊은 층 1명이 노인 1명을 담당해야 하는 문제로 매우 심각한 현실이 시작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일본의 통계이지만 한국도 기본적인 통계상황은 비슷하며, 경제규모는 오히려 더 작아 한국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결과이다.


노인가구의 대부분은 수입(연금 수입까지 모두 포함한)의 대부분을 주거비에 사용하고 남은 부분을 생활비로 사용하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문제대문에 생겨난 생활비 절약은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낸다. 생활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과 건강 관리의 실패가 큰 질병으로 나타나며, 지출되는 의료비로 인해 다시 파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재 사회복지 지원의 벽은 매우 높은 편이다. 아주 작은 수입이라도 있다면(사실 노인가구의 입장에서는 매우 큰 것이지만) 생활보호지원에서 누락되기 때문이다. 노인가구의 80%가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인복지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노후파산이 무서운 이유는 사회를 서서히 파괴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노후파산의 문제로 인해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고립화된 사회를 만들고 있게 된다. 

특히 지방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처가 더 어려우며, 지역공동화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노후파산의 문제는 단지 노인계층의 문제만은 아니다. 

노인을 부양하는 가구의 동시 파산을 만들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 계승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 책을 읽으면서 일본은 총리급으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아직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2030년이 이제 얼마 안 남은 문제임에도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이라도 폭넓은 연구와 대처방안을 생각해봐야 할 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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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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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서평]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 무신론 시대에 생각해보는 공동체성과 인간성의 회복



무신론적 전제를 가지고 살지만 누구보다 신앙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철저한 종교인이지만 불신앙적인 사람이 있다. 저자는 점점 무신론 시대에 빠져드는 현대인들의 심성 속에 사라지고 있는 종교적 유의미성을 찾아봄으로서 현대인에게 필요한 종교성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저자는 종교 논쟁이 필요한 이유는 존재론적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때문이 아니라 공동체성의 회복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 이유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본인이 무신론자임을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종교가 필요하다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모순된 것이 아니다. 그는 무신론자들이 잊어버린 것 중에 중요한 것이 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종교의 태생부터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이 함께 살아야 하는 문제에 막닺뜨렸을 때 그것을 해결되는 공간이 공동체였다. 이러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도덕적 제도가 필요하였고, 그러한 제도적 정당성을 만든 방법이 종교였다. 

물론 많은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근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도덕적 이유때문에 종교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말을 이해하기 이려울 것이다. 


저자는 종교의 필요성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근거 제시와 나약한 인간에 대한 위로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무신론이 종교 자체의 존재론의 의미를 비판하려는 목적때문에 종교의 긍정성까지 지워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이러한 모습이 현대사회를 삭막한 사막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의 정신을 다시 살리는 것, 서로에 대한 배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상업적 가치보다 더 좋은 가치가 있다는 것, 대학 교육과 문화교육에 접근방식을 변경하는 것, 숭고한 것과 초월적인 것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확보하는 방법 등을 우리는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가 찾고자 하는 이야기는 현대 지성이 잊어버린 가치들을 새롭게 찾아나서는 여정이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여정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종교 근본주의자들로부터 외면받은 저자가 자신의 우군들도 등을 돌릴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글이 매우 용기있는 저작이라 생각되는 이유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성의 회복이 왜 필요한가이다. 그 근거와 해법을 스케치하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현대지성의 방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대 사회에 부족한 공동체성의 논의를 위해 한걸음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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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 (컬러판)
김정민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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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평] 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 - 중앙 아시아에서 사라져버린 우리 역사의 시원



우리의 고대사가 지워져 있듯 중앙 아시아의 고대 역사도 감추어져 있다. 저자는 부모님과 함께 10년을 넘게 중동에 살게되면서 그곳의 문화와 역사 기록, 유적들을 모으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잊어버린 역사와 그 흔적이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지금은 직장도 그만두고 중앙아시아에서 지워진 우리의 고대사의 흔적을 찾고 있다. 그는 이러한 흔적을 통해 중앙아시아, 몽골지역의 고대사가 우리와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르치는 역사교육은 고대사의 출발점을 15세기로 기술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제정러시아가 정복한 시기와 동일시함으로서 제국의 정복을 정당화하려는 역사왜곡의 시도였다. 많은 역사 기록물 속에서 그 이전의 기록들이 나오지만 지금의 역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고대사 교육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저자는 중앙아시아의 신화와 언어, 유적들 속에 남아 있는 조선의 개념에 주목한다. 카자흐 민족의 시조인 '주스'와 고조선이 말하는 '조선'이 같은 개념이라는 것이다. 유럽을 놀라게 했던 훈족이 한민족이며, 부여는 늑대의 후손이라 자신들을 여기는 흉노족이 세운 국가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수메르어, 카자흐어, 한국어 속에 남아 있는 유사성이 우리가 가지는 단군 신앙와 관련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매우 많은 근거를 제시하는 저자의 얘기는 언어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라 생각한다. 

또한 그가 중앙아시아에 남아 있는 축제의 형태들을 보면서 단군신앙이 가지고 있는 삼신신앙과 너무 닮아 있음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영국의 원탁회의가 우리 민족이 전해주었다고 생각하는 나의 생각를 입증해주는 얘기도 나와 정말 놀라웠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가 지워진 이유는 백인 중심의 서양역사가 흔적을 지웠기 때문이다. 훈족의 정복으로 인해 유럽인의 조상으로 생각하는 아리안계는 원래 아시아계였다. 그러다가 십자군 전쟁 등으로 약해진 틈을 바이킹 족의 남하로 인해 백인계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유전자지도를 분석하면서 밝혀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본인도 카자흐스탄과 몽골제국이 우리 민족과 연관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 조금 아쉬운 점은 근대국가에서 정형화된 민족의 개념을 너무 강하게 내세우는 것이다. 사실 중세까지만 해도 국가라는 개념은 연맹체라는 개념과 거의 유사한 개념이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국가라는 개념이 확정되는데 고대사에 민족의 개념을 너무 강하게 적용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한 개념보다는 문화와 부족 연맹이라는 개념을 주요하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결국 역사가 해석이라 할 때 다시 영토를 돌려받자는 개념이 되어서는 안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함께 세계 평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기 위해 너와 나의 뿌리는 같다라는 목표가 바람직하며, 결국 이것은 문화의 개념을 역사에 적용하는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좋은 자료를 정리하신 저자에게 감사를 드리며 좀더 많은 분들이 이런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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