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미답의 숲 속에 길을 내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뻥 뚫린 길을 시원하게 내는 것.
엘리트들의 계획과 설계를 바탕으로, 정부의 중앙집권적인 통제 하에 땅을 수용하고 고속도로를 까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 필요에 따라 이리 저리 헤메면서 길을 찾아가는 것.
처음에는 한걸음 한걸음 나뭇가지를 헤치고 거미줄을 피하면서 전진해야 하지만, 
그 길이 유용한 길임이 판명되고 그 길을 찾는 사라들이 늘면 그 길은 곧 오솔길이 되고, 도로가 될 것이다.

이 두 방법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고, 길의 목적이나 기능, 필요성의 경중에 따라 어느 방법이 더 유용한 것인지 선택이 달라질 것이다.  

브라질에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의 한국 참가단이 어제 저녁 출발했다.

세계사회포럼의 조직의 원리와 준비 과정을 보다보면 두번째의 길내는 모습이 자꾸 떠오르게 된다.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와 자본과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고 제안하고 경험을 나누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장이다.
세계사회 포럼에는 8개의 단체가 준비의 실무를 맡고,  129개의 단체가 국제 위원회를 구성해서 포럼의 방향을 의논한다. 

포럼 수개월 전서부터 주제를 제안하고 분류하고,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는 단체끼리 프로그램을 고안한다.
금년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11가지 주제에 대해 3000여 개의 워크숍이 6일간 열린다. 전체 운영위에서 주관하는 행사는 첫 날의 개회식, 마지막 날의 폐회식 뿐이다. 나머지 회의들은? 관심 있는 단체들이 이메일과 전화로 서로 연락해서 구상한다. 

각 워크숍은 그 크기에서 50명부터 4000명에 이르고, 
주제은 인권, 대안사회, 자연보호, 노동운동 같은 기본적인(?) 사회운동의 영역에서부터,
이런 사회운동을 어떻게 미국 국내에 옮겨심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 
순수 기독교 봉사단체들의 모임, 
네팔의 독립에 관한 논의를 위한 티벳 승려 단체,
심지어  ' *** 에 관해 내 이야기를 들어볼 사람은 오시오" 하는 프로그램도 등록되어 있다.
물론, 대부분의 회의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 문제를 밝혀내고, 경험을 나누고, 공동 행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자리이다.

이렇게 '방만하게' 준비되는 포럼이기 때문에, 기획자적인 입장에서 볼 때 행사의 준비가 위태위태해 보일 수 있다. 
이번에 출발한 우리 단체만 하더라도, '이런 주제에 대해 관심 있고 활동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단체 있으면 연락 바람'이라는 이메일을 받은 것이 불과 1주 전. 그것도 그 워크숍을 준비하는 단체에서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한 세 다리쯤 걸쳐서 단체 메일로 받은 것이다. 우리 단체의 관심사와 일치하고, 우리 경험을 나눌만 해서 발제를 하겠다고  다시 세 다리 걸쳐서 주관 단체와 연락을 한 것이 출발 3일 전, 이메일 및 전화로 직접 구체적인 참가 협의를 한 것은 우리 나라 참가단이 떠나기 하루 전인 지난 토요일이었다.
그 워크숍 참가자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자리에 모여 준비하는 것은 워크숍 바로 전날이 될 예정이다.

때로는 행사 전날이나 당일 행사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고, 준비하는 단체의 역량이나 주제에 알맹이가 없는 프로그램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을 통해 문제의 제기와 해결을 위한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회의 변화에 관심 있는 단체라면 사회포럼에 한번쯤 참가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연대의 네트워크를 구성해 가는 귀중한 장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회포럼도 주로 문제제기 혹은 성토, 사례발표 중심이었다.
참가자들끼리도 '계속 이렇게 말만 하고 있으면 언제 행동할 것이냐?' 는 자조적인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만남이 몇 번 지속되면서 회의의 중심이 점차 대안 제시와 공동대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면, 너무 낙관적인 관측일까? 

참가하고 싶은 단체 혹은 개인에게....

우선, 지구 반바퀴를 가서 수줍게 듣고만 오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가했으면 좋겠다.
점잖은(?) 우리 국민성으로 보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간단한 질문이나 의견도 밝힐 건 밝히는 것이 좋다.
우리 시민운동의 성과도 어느정도 있으니까 주눅 들 필요 없다.

영어 공부를 하자.
사실, 얼마 전, 한 서재인이 퍼온 이진경씨의 글처럼, 한 '학문' 한다는 이진경씨까지도 국제 학회에서 외국어 때문에 서러웠다고 한다. 이진경씨의 지적대로, 당시 이른바 운동에 관심을 둔 사람들 간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좀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그 결과, 우리 나라에서 외국과 활발히 교류하고 하는 쪽은 경제계, 법조계, 학계 중심이고, 시민 사회 단체에서는 주로 국내 문제에 촛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에 외국어와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영어가 유창한 인재들이 주로 경제계의 '선진 이론'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우리의 앞날인 것으로 떠들어 댈 때에도, 우리의 시민단체들은 외국과 반 세계화 논리를 제대로 접하지도 못했고, 우리 시민운동의 성과 혹은 한국의 상황을 외국에 알려 연대하는 것도 변변히 하지 못했다.
영어가 받쳐 주지 않으면 사회 포럼에 참가해서도 수천개의 워크숍 중에서 오직 영한 동시 통역이 가능한 몇 개의 워크숍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아무리 다른 워크숍을 듣고 싶어도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자.
명함을 만들어 가지고 가자.  단체를 대표해서 가는 것이라면 자기 단체에 관한 간단한 소개 전단지도 만들자.
관심사가 같은 외국의 단체 참가자나 발제가 인상 깊었던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 받자. 관심 이슈가 같은 단체나 활동가라면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된다.
궁금한 자료나 질문을 부탁하면 대부분 아주 반갑게 자료 제공을 해주고, 지속적으로 정보 및 활동 공유를 할 수 있게 된다.

돌아와서 잊지 말자.
꼭 보고서 혹은 메모 형태로 기록을 남기자.
새로 알게 된 단체나 개인의 연락처, 이메일, 주 활동 분야, 특이사항을 정리해 놓자.
이 참가 경험을 국내의 다른 활동가들과 나누고, 향후 활동 방향에 반영하자.
가져온 자료들 중 중요한 것들은 가능하면 한국어로 번역하자.

이렇게 하면 '아래로부터의 변화'로 한걸음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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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5-01-24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적극적인 충돌!!! 서로 갈길은 가더라도 서로 길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별이 보일정도로 꽈앙!!, 그런 교차점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이 글을 보았으면 한마디 당부 더해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대견해서 그냥 아무말 못하고 뻘쭘히 보냈네요. 쯧~

조선인 2005-01-24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 '영어공부를 하자'에서 무척 부끄러워집니다. 에, 또, 저는 주로 재일단체와 만날 기회가 많은 편인데, 그곳 실무자들의 일취월장하는 한국어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아직까지 일본어 배울 생각을 안 하고 있다지요.
옆지기의 꼬심에 넘어가 같이 일본어를 배울까 싶다가도 그놈의 게으름 때문에 0,0;;

가을산 2005-01-25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영어 부분에서 찔리면서 쓰는겁니다. ^^

2005-01-25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5-01-26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딸래미를 임신했을 때, 증권담당 기자였슴다.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선물, 옵션을 공부했죠. 제 사수였던 선배는 "우리땐 그런거 몰라도 기사 썼는데, 요즘 증권기자는 힘들겠다"고 놀렸죠.......점점 더 요구하는게 많아지는 사회임다. 이젠 운동가들도 영어 못하면 힘든 시대라니....역시 세계화는 대단함다. 넘 타당하신 말씀이신데, 왠지 허탈한 이유는 뭡니까..흐흐.

깍두기 2005-01-26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ㅠ.ㅠ
가을산님 제 이벤트에서 4등 하셨으니 오셔서 선물 고르세요^^

파란여우 2005-01-2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제발 그런 거는 안하면 안되나요?...영어해야 세계화가 된다면 그건 영어권 국가의 힘의 권력이 쎄진다는 의미가 되겠죠. 우리의 모국어도 쎄져야 하는뎅..그나저나 웍크샵 잘하면 진정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해도 될까요?..그것도 설마 영어를 잘해야 하는 일하고 관련 있는건 아니겠죠? 아띠, 영어는 취약한 종목인 저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군요..흑
 

지난 수년간 몸담고 있는 단체에  같이 활동해오는 선생이 있다.

스마트한 인상에 점잖고,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원칙은 꼭 지키는....  나이는 나보다 한두살 아래의 사람이다.
학교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 밟고, 군대 다녀와서,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불과 몇 년 전에서야 제대로 월급을 받는 직장에 취직했다.

지난 3년간 노숙자 진료소 소장을 맡아서 참 열심히 해왔었는데, 작년 후반, 소장직을 이제 그만하겠다고 했다.

모두들 그 선생님의 노고를 익히 아는지라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서 조금만 더 수고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셨다.
건강이 어떻게 안좋은지, 정말 안좋은 건지...... 몇개월 동안 함구하다가, 지난 주에서야 알려주었다.

'Spinocerebellar Ataxia(degeneration)' 

학생 때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병명이다.
소뇌와 척수의 세포들이 퇴화되면서 처음에는 보행 장애를 일으키고, 차차 다른 근육들의 움직임도 둔해지는,  수년 내로 휠체어 신세, 그 후에는 침대에서 생활하게 되는, 치료법도 없는 병이다.

지난주 회의에서 병에 대해 말하면서....
" 제대로 걷거나 서는 사람이 부럽다. 지금은 걷기는 하지만, 외래 환자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언제까지 근무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지금같은 진행 상태면, 년말이나 내년쯤에는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 진짜 장애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차라리 지체장애인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들은 진행이 안되니까."

이 선생은 가장이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늙으신 부모도 부양해야 한다.

작년 촛불집회 때 온가족이 함께 참석했던 선생님과 사모님, 그리고 아이들 모습이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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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5-01-1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군요...ㅠ.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건강임을 이런분들을 통해서 깨닫고 있는 제자신이 송구스러울따름입니다...

뭐라고 할말이 없군요!..ㅡ.ㅡ;;


마립간 2005-01-10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세계적을 보아도 마찬가지지만)의 소수에는 희귀병 질환을 앓는 분들이 계시지요. 본인이 건강하다는 것이 가족이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깍두기 2005-01-1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좋은 사람에게 이렇게 불행한 일이 생기는 걸까요. 정말 원망스러워요.

숨은아이 2005-01-1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후...

반딧불,, 2005-01-10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답니까..

balmas 2005-01-1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정말 할 말이 없군요 ......

로드무비 2005-01-10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파란여우 2005-01-13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많이 속상해 집니다.
 

1. 새해의 원칙은....

"기본에 충실하자. 새로운 일을 가급적 벌이거나 맡지 말자" 로 하기로 했다.

집안일이나 아이들 문제에서 빵꾸를 내지 않는게 일차적인 포부이다. ^^;;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나를 보이자는 것.
기존에 맡은 일들은 충실히 하되, 새로운 일은 가급적 벌이지 않을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는 사회생활도, 새로운 스터디도, 새로운 공작도 다 포함된다.
그런데, 벌써 '이것만, 이번만...' 하면서 은근히 일을 벌이는 것 같다. 

2. 요즘 때아닌 뜨개질에 올인하고 있다.

내가 가끔 뜨개질을 했다는 것을 아는 어떤 환자가 '지하 홈패션집에 아주 예쁜 털실이 들어왔다'라고 귀띔해 준 것이 화근이다.
지난 몇달 간 허벅지를 꼬집으며 새로운 만들기를 시작하지 말자고 굳게 결심하고 있었는데 이 말에 호기심을 누를 수 없어 구경을 갔다.
그 환자가 말했던 털실은, 예쁘기는 했지만, 내 취향과는 조금 동떨어져서, 이번 봄에 들고다닐 가방을 만들기 위한 실을 사서 코바늘 뜨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가방을 뜨는 것을 본 아이들이 '우리 목도리도 떠달라'고 시위하는 바람에, 내 가방은 잠시 밀어두고 목도리 두개를 뜨고 있다.  언제는 '요즘 누가 엄마가 떠준 목도리를 하고 다니냐'며 떠준다고 해도 거절하던 놈들이.....  아마 목도리보다는 엄마의 관심을 더 원하는 걸거다.
어찌 되었든...... 빨리 뜨기 위해서 무늬 없이 메리야스 뜨기로 뜨고 있는데, 이번 주말 내로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추위가 지나기 전에 완성해야 몇번이라도 두르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3.  뜨개질 덕에 본의 아니게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

눈과 손은 뜨개질을 하고 있지만, 그동안에 머리와 귀를 놀리는 것은 좀 아깝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그래서 밤에 집에서는 dvd로 영화를 보고, 낮에는 남편이 선물해 주었던 audiobook cd 를 들었다. 
이번주에만 Meet Joe Black, Tomorrow, Sting, Far and Away 를 보았고, audiobook 도 두권어치를 들었다.

원래  audiobook은 시각장애자들을 위한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 hearing 삼아 들어도 좋은 것 같다. 
한국어로 된 녹음도 들으면 좋을 것 같은데,  여러 해 전에 어떤 시각장애인 목사님을 위해 무진장 지루한 신학 책을 음성 재생용으로 워드 입력해 드린 적이 있는데, 그 목사님 왈, '이 책은 신학서 중에 기본이 되지만, 난해해서 제대로 끝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시력이 정상인 사람도 녹음을 틀어놓고 반복해서 들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한 기억이 떠오른다. 
GEB 같은 책을 테이프로 녹음해서 워크맨처럼 들으면 진도도 잘 나가지 않을까?  ^^

4. 아이들의 여성 존중 의식?  

사례 1. 
작은 애가 얼마 전에 정색을 하고, " 엄마, 나는 3:1이 아니라, 1:1이야. 알았어? " 라는 것이다.
즉, 자기 마음은 한 여자애만 좋아한다는 뜻이다.    
---- 거참  조숙하네....  가족이 몇 번 '3:1'이라고 한 것이 맘에 걸렸었던 모양이다. 그래.... 성실해야지...
     
사례 2. 
큰애가 영어 학원을 다녀와서 하는 이야기.
'엄마, 이번달에 반이 바뀌었는데, 나보다 영어 못하는 여자 아이는 처음 봤어.되게 신기하다! " 란다.   ㅡㅡa

우리 애가 영어를 못하는 편은 아니다. 실력별로 편성되는 반에서 늘 상급생들과 편성되어 왔는데,
남자 상급생들과 편성되는 것은 늘 있는 일인데, 같은 학년이라도 같은 반이 되었던 여자 애들은 다들 영어를 무척 잘하고 예습복습도 잘해 왔었나보다.  그러니 '여자애들은 다들 영어도 잘하고 모범생이다.'라는 이미지가 머리에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었나보다.

이거, 여학생이라면 지레 그 실력에 꼬리 내리는 것을 걱정해야 할지, 아니면 '여성에 대한 존경심'을 그대로 키워주어야 할지.... ^^


5. 큰애의 위상 변화

큰애가 기말고사 한달 전에서야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이전에 쓴 적이 있다.
그런데, 큰애가 다니는 학원이 무척 영세한 학원이다.

[ 대전에서도 '둔산동'이라면 학군이 좋고(실재로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엄마들의 극성은 유명하다.) 대전 시내의 유명한 학원들은 대부분 둔산동에 몰려 있다.  그런데, 아직 나는 그 유명하다는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보지 못했다.  가끔 장난으로 "우리 집안에도 T 학원 출신이 하나쯤 있어보면 어떨까?"라고 떠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그 '악명 높은' 학원에 가기를 거부한다.  ]

그런데, 우리 아들이 이 영세한 학원에서 졸지에 '스타'가 된 것 같다.
겨울방학을 하면서 기말고사 성적표를 학원에 가져간 이후, 선생님들이 회의를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회의는 큰애를 위한 회의는 아니고,  아이 표현에 의하더라도 '망해가는 것 같은' 학원을 회생시키기 위한 회의였던 것 같다.  (실재로, 이 학원의 중 1 학생 수가 열댓명 밖에 되지 않고, 위치도 좁은 골목길 속에 있어 위험할 것 같고, 시설도 낡아서 본인이 고집 부리지 않았다면 나도 보내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 회의의 결론 중 하나로, 큰애의 성적을 '특별 관리'해서 모델로 삼으려는 것 같다.
원장이 큰애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여러번 전화해서 '건희를 위한 계획을 세워 두었다'면서 '믿고 맡겨 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왠지 불안하기도 하다.
움화하하하하.....한달 다니고 사회가 58점 상승한 케이스는 그렇게도 희귀했었나보다....   ㅡㅡ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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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5-01-0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례2에 있어서는 후자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바입니다. 어차피 나이 먹고(겨우 20대에!!) 군대갔다오면 졸지에 남성우월주의자가 되는 사람들을 워낙 많이 봐온지라 지금부터라도 잘 조절시켜주시면 나이가 먹으면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겠죠.

그리고 '엄마가 떠준 목도리=관심의 징표'라는 말씀은 동의합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원래 민감한 저희 어머니는 나중엔 본인 작품이 맘에 안드신다면서 아예 파는 걸 사다주시더구만요...... ㅡ ㅡ;;;;

딸기 2005-01-0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둔산동에 사시나봐요. 대전에 많이 갔기 때문에 좀 알거든요. 거기 엄마들 치맛바람도 굉장할텐데... 그런데 '3:1'은 뭔가요?

뜨개질... 저도 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은데, 솜씨가 안 따라줘서 못하고 있어요. :)

가을산 2005-01-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님, 저도 후자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

딸기님, 3:1은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하나 있고(그애도 우리 애가 싫지는 않은가봐요. ^^ ), 또 다른 여자애 둘이 우리 애를 좋아한대요. 그래서 3:1.... ^^

chika 2005-01-0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전 언니가 떠 준 목도리 하고 댕깁니다. ㅎㅎ

건희의 특별성적관리..는 참으로 웃어야할지 난감..^^;;;;;;

- 글, 감사해요!! 영양보충식을 해야겠어요. ^^

줄리 2005-01-0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생활이 따뜻하게 그려지네요. 뜨게질이 주는 포근함때문일까요? 어렸을때 엄마가 떠주었던 알록달록 조끼가 그리워지네요. 저의 엄마는 많은 식구 옷값 줄이려고 뜨게질을 하셨었는데... 올해는 저두 뜨게질을 해볼까 하고 70퍼센트 정도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나이에 벌써 여성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아이가 사랑스럽네요.^^


마태우스 2005-01-08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3: 1이라.... 전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보니 말만 들어도 부럽네요. 글구 학원은..... 그래도 악명높은 학원에 밀어넣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는...제가 너무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자라서 그런지 이런 생각밖에 안나는군요.

ceylontea 2005-01-13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해로 해야할까요? 십자수 하던 것도 정말 조금만 더하면 되는데.. 마무리 안된채 구겨져 있구요... 뜨개도.. 전에 뜨개 인형 뜨던 것 다 떴는데.. 솜넣고 꿰매면 되는데 그냥 쳐박혀있답니다..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지난 달 말레이시아 회의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먼저 생각났다.

당시 참가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번 지진과 해일의 피해국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직접적인 피해는 없더라도, 의료 관계 NGO 활동가들이었으니,

이들 중 많은 이들이 현장으로 가지 않았을까.

 

참 어수선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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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2-2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3년 이 날에 이란에서도 지진이 일어났답니다. 무슨 징조가 아닌지 참 걱정 됩니다...

sooninara 2004-12-2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자연앞에 인간은 너무나 허약하죠? 아시는분들에게 나쁜소식이 없었으면..

재진이가 신문을 보더니 은영이에게 말하더라구요.은영아 큰일이 났어..7000명이 죽거나 다쳤다구요..아이들도 이런걸 보면 걱정을 하나보다 생각했답니다.

어항에사는고래 2004-12-2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무거운 하루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남겨진 사람들이 걱정하고 가슴 아파하고. 즐겁게 보내도, 행복하게 보내도 아쉬운 연말이 참 무겁네요.
 

나는 비디오나 영화, 음악을 많이 보거나 듣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한번 맘에 드는 음악이나 영화는 수십번을 반복해서 듣거나 본다. 
'조 블랙의 사랑'  이라는 영화도 그 대상 중의 하나이다.

비디오를 대여해서 보면서 복사해 놓은 비디오 테이프가 이제 여러 해가 지나면서 화질도 떨어지고,
소리도 작게 녹음되어서 테레비젼에서 배경잡음이 웅웅거릴정도로 최대로 틀어야 한다.

내용은 사랑과 삶의 여러 의미에 대한 조명이랄까 하는 내용인, 특별한 모험이나 갈등이나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부분에는 조금 늘어지는 감이 드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블랙으로 나온 브래드 피트를 비롯해서,  앤소니 홉킨스, 클래어 폴라니의 연기가 일품이다. 밤에 무언가 만들면서 틀어놓기에 딱 좋은 영화이다.

어제 복사해 둔 테이프의 수명도 다해가는 것 같아서, DVD를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우아~~!   25300원짜리 DVD를 12월 할인행사로 8500원에 판단다! 
얼른 주문해 버렸다!      

이제는 어른거리지 않는 화면으로, 웅웅거리지 않는 소리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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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블랙의 사랑 - 유니버셜 12월 할인 | 원제 Meet Joe Black
(Meet Joe Black)
마틴 브레스트 (감독), 브래드 피트, 안소니 홉킨스, 클레어 폴라니 (출연) | 유니버설 (Universal)

정   가 : 25,300원
판매가 : 8,500원(66%off, 16,800원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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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 : 1장
2004-07-13 | ISBN 011111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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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4-12-28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 블랙의 사랑.. 아직도 안 봤는데.. 이 영화 나온지 8년쯤 되는 것 같네요. 전..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고, 약간은 마니아적 취향도 지니고 있는데 이상하게 극장에서 보지 못한 영화를 대여점에서도 계속 빌리지 못하는 몇몇 영화들이 있네요. ^^;

가을산 2004-12-2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안녕하세요. 댓글 남겨 주셔서 고마워요. ^^



영화를 많이 보시나봐요. 저도 요즘은 비디오로 빌리는 것 거의 안합니다.

대여점에서 빌릴 때까지는 좋은데, 집에와서 빨리 보아야 한다는게 그만 숙제처럼 느껴져서 이젠 잘 빌리지 않아요.

게다가 영화는 대체로 '오락' 혹은 마음이 허할 때 푸근하게 해주는 정도의 목적으로 봅니다. 아마 영화 관계 일을 하는 동생이 이 사실을 알면 누나를 경멸할지도... ^^;;

마냐 2004-12-29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땡기지 않았던 영화를 이렇게 단번에 혹하도록 만드시는 가을산님의 재주!

가을산 2004-12-3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나중에 보시고 원망하기 없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