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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다의 기별’에 김승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와 문인 친구들이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인 빠’졌다는 이야기. 그래, 김승옥은 60년대 문학계의 신화였다. 《무진기행》(1964), 《서울, 1964년 겨울》(1965)로 이어지는 소설들로 김승옥은 전후 우울증에 빠져있던 한국문학계에 패러다임 쉬프트를 일으키며 한 시대를 석권했다. 이후 절필을 선언하고 방황하던 김승옥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어령이 그를 잡아다 호텔 방에 가둬두고 강제로 글을 쓰게 했는데, 그때 나온 단편이 제 1회 이상문학상을 탄 ‘서울의 달빛 0장’(1977)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승옥 곁에서 김광주를 비롯한 동시대에 살리에리들은 머리칼이 남아나지 않았다.

김승옥은 전설로 남았고, 살리에리들에겐 벗겨진 머리만 남았다. 하지만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그 당시보다 좀 더 흐뭇한 기분으로 새로운 전설의 탄생을 바로 그 곁에서 지켜 볼 수 있었으리라.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떨어진 축복’. 2001년 아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가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것. 이후 한국 문학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김훈의 등장이었다.

오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나는 김훈의 문학이 오래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팬으로서의 주례사 비평이 아니고 새로운 물건에 대한 평가자로서 얼리 아답터의 안목이다. 그의 문장은 확실히 전례가 없던 것이고 전의 것들을 대체할만한 물건이다. 

요즈음은 김훈을 둘러싸고 비판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하긴 현의 노래 이후 그의 문장은 매너리즘의 징후를 보였다. ~했는데 ~하는 것이어서 ~했다. 류의 사실을 나열하는 문장이 패턴을 보이기 시작한 것. 내가 생각하기에 글의 바다에서 패턴은 주적이다.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문장에 내용을 맞춰가는 문장은 글을 푸석하게 만든다. 김훈도 그 위협을 감지했기에 문장을 협소하게 만드는 빈약한 한국어 조사에 대해 탄식하고, 없어진 훈민정음의 몇 글자를 아쉬워 하는 걸 거다.

하지만 김훈의 글쓰기는 이순신의 배 처럼 쉬임 없이 나아가리라. 그래야 할 것 같고 왠지 그럴 것 같다. 나는 김훈의 저력을 믿는다. 이건 얼리 아답터의 비평이 아니라 확실히 팬으로서의 주례사 비평이겠지만.

#. 2

지하의 카페 이리, 넓직한 공간에 사람이 가득 들어찬다. 녹차 한잔을 홀짝거리며 그를 기다렸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이 불어났고 늦은 사람들은 앉을 자리를 구하지 못해 서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온다. 백발, 초로의 남자. 차마 ‘신사’라고 까지는 쓰지 못하겠다. 스포츠형에 가까운 머리, 별 고려 없이 걸쳐입었음이 분명한 체크무늬 남방에 면바지, 어정쩡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폼은 사실 문단의 거목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좀 매치가 안 된다. 어쨌든 좀 갖춰 입고 나올만한 자리가 아닌가. 그래, 그 이상한 야구모자 안 쓰고 나타난게 어디냐. 길에서 나타난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것 같은 패션 센스다. 그는 김승옥이랑은 좀 다른 의미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조명이 켜진다. 마이크가 세팅되고 사회가 익숙해 보이지 않는 한 남자가 김훈의 옆자리에 앉는다. 김훈을 둘러싸고 반원형으로 구성된 객석들에서 이목이 동시에 집중된다. 그냥 원체 그럴 거 같은 사람이긴 하지만 역시 별 감흥 없어 보이는 표정이다. 카페가 조용해지고 김훈의 목소리가 울린다. 묵직한 탁성. 마땅히 흘러 나와야 할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만남은 짧았다. 한 시간 반 남짓. 사람들은 질문했고 김훈은 답변했다. 그는 글처럼 말도 단문이어서 알아듣기 수월했다. 사회자가 물은 물음에 김훈은 대체로 책의 내용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다시 말 했다. 나는 나름 낭독회 온 기분으로 즐겁게 들었으나, 데려간 라캉주의자 한 녀석은 지루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대체로 김훈의 팬 분들이 온 자리라 그런지 장내는 진지했다. 그들은 비록 책에서 본 유머가 그대로 나오더라도 호탕하게 웃어줄 만큼 교양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랬다. 하하하.

알려졌듯 김훈은 서울 토박이다. 서울 토박이가 아니고서는 종결어미 ‘이지요’를 그렇듯 어색하지 않게 구사할 도리가 없다. 그는 중요한 대목에서는 연설 투로 방점을 찍듯 억양을 주어 말한다. 가볍지 않은 화법이다.




말미잘은 이렇게 질문했다. “장편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 산성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속에 소설의 국면을 밀어 넣는다. 왜 그랬나”  김훈은 이렇게 말했다. “악, 폭력, 인간의 야만성은 청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것은 인간의 몸에 고유하게 내재하는 특성이다. 나는 앞으로 그런 소설을 쓸 생각이 없다. 인간의 일상에 대해 쓸 생각이다.” 그의 답변은 짧았다. 툭 날고기만 던져놓고 네 마음대로 해 먹어라 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알아서 이해하기로 했다. 전쟁은 인간 역사에 있어서 본질적 요소이며 그러한 야만적 상황 속에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고. 꿈보다 해몽인걸까?   

김훈의 답변은 대체로 책에 씌여 있는 얘기가 많았다. 책에 소개되지 않은 말 위주로 인상 깊은 몇 구절만 소개한다.

-밥을 먹는 세대와 못 먹는 세대로 역사는 이분됩니다.

음..
 
-나는 현세적 가치를 경멸하는 놈들을 쓰레기처럼 경멸합니다.

끄덕끄덕

-나는 돈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근데 이렇게 말하니까 김훈은 배금주의자라고 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ㅋㅋㅋ

ㅋㅋㅋ

-주입식 교육은 좋은 교육이지요. 시 외우는 거 좋습니다. 그것은 인간 창의를 말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창의의 토대이지요. 다만 뭘 집어 넣느냐에 따라 나빠질 수 있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저는 카드를 싫어합니다.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계산해야 돈 쓰는 맛이 납니다. 또 카드는 긁으면 내역이 아주 자세하게 집으로 가기 때문에 의심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대나 빵 같은 건 카드로 긁고 다른 건 현금으로 계산합니다. 그럼 집 사람이 이 사람은 소비생활이 건전하구나 생각하는 겁니다.

오오, 메모.

또 김훈은 칼의 노래와 이순신에 대해 이렇게 말 했다.

-당시 노론과 소론은 당파에 입각했지요. 사실에 입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입각했지요.

칼의 노래에서 보여준 김훈의 문장, 끔찍한 사실을 수식으로 우회하지 않는 문장은 그러한 이순신의 삶 자체에 입각했으리라. 그가 쓴 여러 편의 글과 인터뷰등의 자료에 의하면 그는 이순신과 난중일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단다. 그가 난중일기를 읽고 대학을 그만 두었을때 부터 시작한 리얼리스트로서의 삶도 어쩌면 한권의 책에서 시작한 것이었으리라.

#. 3

바다의 기별은 쓴지 오래 된 글을 묶은 산문집이다. 최근의 글 보다 조금은 더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때로는 동네 할아버지의 이야기 같은 글 들이 많다. 곰곰히 생각하며 읽어야 할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산문집은 치열한 사색에서 약간은 비껴서 있는 지점이리라. 지금까지 김훈의 글이 에스프레소에 가까웠다면 바다의 기별은 부드러운 카푸치노쯤 될 거다. 이제, 한 숨 쉬고 다시 제 길 걸어갈 김훈을 기대한다.

 -뷰리풀말미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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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번쩍 서에 번쩍- 2008년 12월13일 토요일

작가선생님과 함께 하는 특별한 하루,
오랜만에 친구하고 갔다.
하지만 모이는 장소도 멀어서 시작부터 기진맥진...
그래도 선사유적지와 재인폭포,철원평야 일대 답사를
한다길래 무척 들떠있었다.
그렇게 몇시간을 달리고 철원 평야 일대에 왔는데 생각보다 아주 따뜻했다.
몹시 춥다고 하길래 아주 껴입고 왔는데 더워서 땀이 날 정도였다.
차에서 내리고 저 멀리이는 좀 갈색인 점들을 봤는데 바로 독수리라고 한다.
비록 멀리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옆에는 꺼무잡잡한 까마귀?도 있었고 새들이 훨훨 날아가는데 너무 멋졌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고 열심히 찍는데 한 10분 정도 봤나...
이제 그만 가야한다고 했다.
몇시간을 걸려 왔는데 겨우 몇분보고 가다니...좀 그렇지만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서 좋았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재인폭포.
산을 거의 내리락하면서 도착했는데 물이 없어서 원래 콸콸흘러야 하는데 쫄쫄 흐르고 있어서
좀 실망했지만 선생님은 이게 더 지리공부를 하기 쉽다고 하셨다.
옆에는 울퉁불퉁하게 깍여진 암석?과 그 옆에는 긴 강-이라고 할까나?-과 갈대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지금 이곳도 좀 있으면 물 속으로 들어가 못 본다고 한다.
아래 주민들이 이 강 때문에 홍수가 너무 많이 일어나서 댐을 건설해 달라고 해서
댐은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갔던 곳은 이제 물 밑으로 만 볼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다.

다음 코스는 전곡리 선사유적지.
별 기대는 안 했던 곳이다. 그런데 가보니 드넓게 펼쳐진 평야 가운데 움집이 몇개 있었다.
그리고 어떤 영상물을 보고(구석기 시대의 한 아이의 이야기)
안내원의 설명에 따라 실제 발굴된 구석기 유물발굴현장과 유사한 모형을 보았다.
그 넓은 공간에 고작 10개 남직 있었지만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볼 수 있는게 어딘가.
또 내가 궁금해 하던 '그냥 돌과 구석기 시대의 돌은 어떻게 다른가'의 궁금증도 좀 풀렸다.
구석기 시대의 돌은 여기저기 일부로 돌과 돌을 깨트린 자국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돌은 바람과 햇빛 등으로만 깨진 자국이 있다나 뭐라나~
어째든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궁금증은 풀렸다!

그런데 오늘 일정은 이게 마지막이었다.
다음에는 1박2일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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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친구와 함께 지하철 타고 잘 찾아가고 즐겁고 알찬 체험 하고 왔네요.

감사합니다. 책과 두둑한 점심까지^^

그런데 작가분의 사인을 미처 받고 오지 못해 아쉬워했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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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만남 2008-12-18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풀로님. 실감나는 후기 감사합니다. 자녀분께 행복한 경험을 드리게 되어 저희도 기쁩니다. 다만, 후기에 넣어주신 <우리나라 지리이야기> 도서 이미지를 알라딘 상품넣기로 수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당 도서 페이지에서도 내풀로님의 페이퍼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래 다른 분들의 후기를 참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 미음을 먹어요

미음, 미음을 먹어요. 미음, 미음에 대해서 나는 말해요. 미음에 대해서만.

당신이 마권을 들고 춤을 출 때 내가찍은 말은 경마장 마구간에서 병신처럼 울고 있어요. 언제 그 말은 다리를 모두 버릴 수 있을까요. 당신은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죠. “가출한 여고생이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 나는 새벽에 내 방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의 이마를 만지다가 몰래 짧은 치마를 올리고 빤쓰를 내려다 보았어. 생리대가 없어 밑에 화장지를 붙이고 다니더군. 비릿한 기분에 난 담배를 꺼내 물었지.” 난 당신이 그 소녀의 빤스를 다시 올려주었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흥분했어요. 나 역시 언젠가 경험이 전혀 없는 남동생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죠. “네가 만일 그걸 아끼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길거리 여자에겐 주지마라. 그럴 거면 차라리 나한테 다오.” 그날 나는 이빨 사이에 낀 털을 퉤퉤 뱉으면서 누군가에게 말했어요. 어젯밤은 입 안이 경험한 모국(母國). 그곳은 털이 아닌 탈(脫)이 많고 많은 세계란다. 


/맞아 당신은 이제 더 이상은 털이 날 나이가 아니지. 이제 탈이 났군그래.

미음 미음을 먹어요. 미음, 미음에 대해서만, 사랑이란 서로의 구멍을 가장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이에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빨사이에 낀 서로의 ‘음모’를 퉤퉤 뱉으며 사랑했어요. 정기적으로. 미음처럼 부드럽게 우리는 서로에게 넘어갔죠.

 

#

어머니는 그날 아침 이빨 사이에 낀 아버지의 자지털을 손가락으로 끄집어내며 말했다. 어젯밤엔 사람을 하나도 태우지 않은 회전목마들이 피를 흘린 채 빙빙 도는 꿈을 꾸었어요.

(후략)

 

 

#. 2

 

살롱 바다비. 삐걱거리는 좁은 무대. 지하의 좁고 텁텁한 공간은 끊임없는 독백으로 자욱했다. 강박적으로 위의 시를 토해내는 정체모를 여자의 목소리. 어린시절 후진 고속버스에 탔을 때 작고 정교한 패턴이 가득 새겨진 커튼 무늬에 질려 아침을 게워낸적이 있다. 데려간 미녀는 꼭 그때 내 모습처럼 하얗게 질렸다. 분위기의 그로테스크함에 때문일거다. ‘음, 원래 예술이란 이런거야’ 하는 내 변명은 맥없이 오디오 볼륨에 묻혀버렸다.

 

김경주. 나는 그를 모른다. 팜플렛에 새겨진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보고 그제서야 아, 그 사람. 했다. 날카로운 턱선이 인상적이다.


제법 생겼다

 

사진. 미안하지만 못 찍었다. 그날 저녁에 있는 공연을 아침에서야 알려주는 무성의한 알라딘의 그녀. 아마 공연에 올 리포터가 많았으면 굳이 내 전화번호를 뒤져 공연 소식을 알려주지도 않았을거다. 흥. 이에는 이, 무성의에는 무성의다.

 

 

 

#. 3 

 

멀미는 현상과 인식의 부조화 상태에 기인한다. 탈것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할때 인지되지 못한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이 부조화. 요게 바로 메스꺼움의 원인이다.  

 

아폴론적인 예술과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이 있다. 아폴론은 빛과 이성의 신. 그의 예술은 머리의 필터를 거쳐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거다. 그러므로 논리적인 완성도는 아폴론적 예술의 덕목이다. 황금 비례의 아름다움, 조밀하고 확고한 언어체계 이런 것들이 아폴론의 예술이다. 디오니소스는 술과 착란의 신이다. 그의 예술은 필터가 필요없다. 그냥 몸으로 녹아드는 종류의 것이다. 술 먹고 혀 꼬인놈의 말은 술 먹고 혀 꼬인 놈만 알아듣는다. 하지만 맨 정신인 사람은 혀 꼬인놈의 헛소리가 불쾌하다. 그녀가 하얗게 질렸던 건 아폴론적인 미감으로 디오니소스적인 아름다움을 즐기려 했기 때문일거다. 그건 일종의 멀미랄까.

 

불나방 스타 소세지 클럽, 아나킨 프로젝트, 적적해서 그런지의 음악적 오마주, '시극'으로 시'곤조'를 오마주한 최경원 팀, 봄로야의 그림과 '시노래' 퍼포먼스, 최고은의 '시노래' 그들의 오마주는 재기발랄하고 날것처럼 신선하다. 디오니소스적인 시를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즐길 줄 안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하게 생긴 처녀가 '너흰 애무 나는 자위'어쩌고 하는 노래를 부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을 따라 잠시 뇌에 전원을 꺼두셨던 것 같다. 오, 이 흥겨움. 여러분도 즐겨보시라. 동영상은 불나방스타 소세지클럽의 노래 '악어떼'.   

 

그날 사회를 본 윤성호씨(영화 운하해방전선의 감독이다)의 말에 따르자면 이리케와 이랑누나의 오마주는 '구강액션' 이었다. 낭독해서 녹음한 '기담'을 수배속으로 틀어놓고 끝나는 순간까지 주구장창 수다를 떠는거다. 그러다 주섬주섬 세수대야를 꺼내고, 물엿과 사이다와 소주를 따라 붓더니 종이컵에 떠서 앞에 앉은 관객에게 돌린다. 요건 제대로 '디오니소스'적 인 오마주였다. 나도 한잔 마시고 싶었는데 안 주더라. 

#. 4

(전략)

먼하늘로수송기 한대가좆같은굉음을내며중환자처럼실려가고있다자신도모르는사이여기는입안의초록을모두열어놓고새의입속으로들어가진드는, 그래 다물고 감자, 감자

-아귀中-

시집 뒤 꼭지를 차지하는 평론가 강계숙의 해설 '프랑켄슈타인-어(語)의 발생학'은 보기에 어지럽다. 예컨대 이런 말.

'말하는 존재 homo loquence'로서의 인간의 정체성이 언어의 해체와 더불어 흔들리고 있다면, 비록 인간의 말을 차용하였다 해도 그것을 부정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말'을 창안하려는 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간과는 '다른 존재'임을 뜻하게 된다.

 어족이 어떻고 분류가 어떻고 해체가 어떻다는 그의 해설은 시 만큼이나 계통이 없다. 비빌 언덕이 없는데에 언어를 비비고 있으니 그 부조화가 메스꺼움을 유발하는거다. 역시 일종의 멀미다.

이러한 등가적 전위(轉位)는 기의의 명징한 확정이란 불가능한 것임을 의도적으로 노출한다.

강계숙씨에게 이리케와 이랑누나의 칵테일을 권한다.  

할 말은 더 남았는데 후기는 여기서 끝이다. 나도 술 마시러 가야 쓰겄다.

술에는 술, 무성의에는 무성의.

-뷰리풀말미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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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만남 2008-12-1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리풀말미잘님, 후기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미리미리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가지-알라딘의 문화행사 리포터분들은 각자 해당되시는 분야의 저자행사에 자동 초대되십니다. 미리 공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만, 혹 연락을 받지 못하셨다 하더라도 행사시간에 맞춰 입장해주시면 언제나 초대자 명단에서 이름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럼 다음 행사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81206, 고미숙, 그린비 출판사, 2~4pm



이 강연후기는 고미숙 선생의 직접적인 ‘강연’과 그린비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영상’을 보고 고미숙 선생이 자신의 글을 읽고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울 지도 모른다는 날에 홍대입구 역 부근에 있는 그린비 출판사로 들어갔다. 이중의 책장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공간에는 귀여운 탁자가 있었고 초록의 식물이 햇빛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강연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도착했는지, 출판사에 낯선 사람이 등장해서인지 그린비 출판사 사람들은 낯선 웃음과 분주한 움직임으로 간식과 음료수를 그 귀여운 탁자에 올려 놓고 간단히 강연 준비를 마쳤다.

2시. 고미숙 선생 등장. 고미숙 선생은 “대학에서 독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지식인공동체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고,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나비와 전사》,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이 영화를 보라》 등의 책을 썼다. 이번 강연은 얼마 전 출간한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이하 《호모 에로스》)의 출간 기념 “에로스 특강”이었는데, 강연 형식으로 고미숙 선생이 많은 발언권을 가졌고, 주고받는 대화가 주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점심 시간에 밥 한끼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강연이 시작되었다.

출간 기념 강연이든 아니든 책을 쓴 모든 저자는 자신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강연의 핵심 주제로 삼고 그 핵심 주제로 나아가는 저자 자신을 설명하기 마련이다. 고미숙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호모 에로스》를 쓰게 된 계기와 문제의식이 강연의 핵심 주제였다.

인간의 신체는 본능적으로 사랑과 성을 갈구하는데 왜 인간은 그 본능을 억압하는지, 어떻게 억압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의 문제의식으로 시작해 연애와 성적인 욕망을 공부를 통해 발전시키고 분출하는 것에 대한 강연이 시작되었다.

강연을 들어보니 고미숙 선생이 《호모 에로스》를 쓰게 된 계기는 ‘사랑’, ‘성’이라는 대상이 그 “인과의 사슬”에 따라 인간의 삶에 변하지 않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미숙 선생은 《호모 쿵푸스》를 출간한 후 대중 강연에서 청중들이 ‘사랑’, ‘성’과 같은 주제에서 보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관심을 보일 때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20세기 이후 민주주의 시대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정치경제적으로 구성된 사회에 살면서 현대인들은 외형적으로 자유롭게 사랑하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분출하며 삶을 향유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현대인의 삶과 사랑은 사회의 도덕과 윤리라는 억압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고미숙 선생이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규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성의 체험에 굉장히 빈곤하다



한국 남성 중 대다수 혹은 일부가 첫경험을 사창가에서 돈을 주고 경험하는 것과 성적인 욕망을 해소하는 것이 이런 삶의 현상이 아닐까. 여성에게 의무처럼 강제로 주어진 ‘순결’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회의 강제로 인해 원하고 본능적으로 섹스를 비롯한 성적 행위를 원할 때에도 원치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 그로 인해 ‘여자는 튕기니까 몇 번 더 시도하라’는 남성들의 술자리 여담이 일반적인 남성들의 생각처럼 굳어진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상징하고 규정짓는 도덕과 윤리가 존재했었다. 이 도덕과 윤리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기계적이고 현실적으로 변한다. 먹고 사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20세기에 산업 사회가 대두하면서 남성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여성은 집에서 소위 집안 일을 해야 했다. 여성의 출산 기능과 남성에 비해 연약한 신체가 이에 한 몫을 했다. 산업 사회는 그 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는 도덕과 윤리가 필요했다. 노동을 통한 성취감이나 삶의 희로애락 따위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어쩌면 21세기를 사는 사람들도 아직까지 20세기 산업 사회가 규정한 도덕과 윤리의 잔재와 본능의 솟구침 사이에서 허덕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과 성이 제도로 인해 ‘소유’와 ‘재산권의 확장’으로 왜곡되어 사랑의 힘이 소진되고 부부끼리 칼부림이 나서 죽거나, 죽이거나 한다. 가장 깔끔한 경우는 법정에서 해결하는 것이 되어버린 상황이 현실이다.

고미숙 선생은 이런 강연의 핵심 주제를 문학 작품과 텔레비전 드라마, 고전을 예로 들며 강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공부’를 통해 “외부 세계와 나의 리듬”에 대해 고민하고 진리와 삶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사회의 도덕과 윤리(Moral)가 소리 없이 행하는 에로스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공부는 사회적으로 주입된 망상과 표상을 내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고미숙 선생이 ‘공부’라는 개념어를 고전 공부 이외에 어디까지 규정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사회가 주입한 기존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것들을 수용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사는 삶의 방식이 꼭 공부만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일까. “편지 한 장을 쓰더라도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텍스트를 다루며 사는 고미숙 선생의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는 아닐까. 연애 편지를 쓸 때는 공부가 아니라 진심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연애 편지의 진심처럼 삶은 공부만을 통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맥락 속에서 잡아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각자가 잡아야 할 것들이 있고 고미숙 선생은 공부를 잡은 것이다. 공부가 삶의 억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참여했던 독서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친구가 술을 한 잔 들이켜고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살고 있는 내가 싫어요

 

친구의 그 말은 자본과 권력이 그들의 지속된 팽창을 위해 주입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식이었을 것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 때 나는 그 동생이 책을 읽고 현실을 받아들일 때(볼 때), 공부할 때 그리고 그 주입된 삶의 욕망(일류 대학을 나와 일류 기업에서 일하고 나이든 후에는 유능한 일류 CEO가 되어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에서 벗어날 때 그런 의식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친구를 지금은 만나지 않는다. 친구가 잡은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각설하고 《호모 에로스》와 고미숙 선생의 강연의 핵심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사랑하는 방식, 사랑하는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내 본능과 맞대어 보고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공부요, 사랑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입된 사랑 방식으로 너무 본능에 치우친 방식으로 “인연을 갉아 먹는” 짓은 하지 말자. 내 사랑을 하자.

 

<작가와의 만남 1기 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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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바로 역사야!

'어른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읽으면서 문득 ‘포도밭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식들에게 포도밭에 엄청난 금덩어리가 있으니 캐서 가지라는 유언을 남긴 아버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 포도밭을 일군 자식들. 결국 수확철에 풍성하게 자라난 포도밭을 보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박은봉 선생의 '어른판', '어린이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는 '한국사의 상식'이라는 금광을 찾기 위해 저자가 동분서주 뛰어다닌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사의 유산'이다. 사실이 왜 왜곡됐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왜곡됐으며 누가 왜곡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면 어느덧 그것 역시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1월 26일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있었던 박은봉 강연에서 이러한 점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참고로 박은봉 선생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위해서 들인 집필 기간은 3년이며 구상기간까지 합하면 모두 5년의 기간이 걸렸다. 읽은 논문만 1,000여 편에 달한다. 어른판은 44개의 꼭지로 이루어졌는데, 어린이판에서는 어린이가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이는 내용을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추가해서 1,2권 40개의 꼭지로 나누어 펴냈다. 어른판의 저자인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판'에서는 멀찍이 뒤로 물러서고, 이광희 작가가 어린이의 시각에 맞게 전면적으로 리라이팅을 했다. 그림과 도표, 인터뷰와 인터넷 토론방, 상황극을 넣어서 원작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박은봉 선생은 책 속에서 자신이 '바빠서 이만'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서 내심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리라이팅 결과에 대해서는 흡족한 눈치다. 특히 박은봉 선생이 강연에서도 강조했던 역사적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의 온전하게 살려낸 점은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역사공부가 될 것이다. 역사책에 나와 있는 대로 암기하고 문제푸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게 되는지 다양한 유형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라면 교과서에 갇히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소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눈매의 박은봉 선생. 말 한마디, 조사 하나까지 신중하게 구사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말하는 동안에 진지하게 학문을 하는 사람의 선한 표정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이야, 너의 포도밭은 어디 있니?

 

이왕 '어린이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니까 어린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을 들고,

"역사책에서는 어린이를 만날 기회가 무척이나 적은데, 그 당시 어린이는 어떻게 살았나요? 그리고 어린이와 관련된 역사적 오류도 있나요?"

박은봉 선생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19세기까지 이 세상에는 '어린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에 의하면 어린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인지되기 시작한 것이 18세기의 일로 매우 최근의 일이다. 19세기의 서양과 동양의 어린이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우석훈 <괴물의 탄생>에 보면 성인들은 자기들 보수의 1/3만으로 소년, 소녀들을 혹사시켜 20세가 되기 전에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많았다. 그보다 훨씬 전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도 어린이 노예는 3년 동안 써먹을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서양의 역사에서 어린이는 19세기 전까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존 스튜어트 밀 등 자유주의자들이 문제제기를 하였고 '인권'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안데르센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동화를 쓴 것도 19세기다. '이솝우화'의 '이솝' 하면 어린이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솝우화는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를 위한 우화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어린이 보는 책에, '그저 마누라는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다'는 진지한 충고를 써넣을까 이말이다.

동양의 어린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박은봉 선생에 의하면 동양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워낙에 유아사망률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유교전통 속에서 응석을 부리는 장면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 해야 서당에서 훈장님한테 매맞는 그림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라는 존재를 널리 전파한 소파 방정환 선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파가 왜 어린이를 사람으로 대우하자고 그렇게 외쳤는지를 보면 당시 어린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와닿는 말이었다.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들의 직관력과 이해력은 어른을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작업이 교과서와 배치되는 점이 내내 우려되었던 선생은 어린이 30여 명에게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설문의 내용은 "교과서의 내용과 (자신의) 책의 내용이 부딪히면 혼란스럽지 않을까?"였다. 어린이들의 대답은 대부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였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사실과,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사실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물며 어린이도 이 정도인데, 고등학생들은 어느 정도일까? 그런 학생들에게 좌파 척결한다 어쩐다 하면서 편향된 관점의 현대사 강좌를 한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그 어른들만은 어린이보다 어리석은 것 같다.

박은봉 선생의 책을 통해서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익혔다면 한번 응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쉽지는 않겠지만, 박은봉 선생의 책 내용에 도전해 볼까 한다.

제3장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말한 사람은 최영 장군일까?>의 대목 중 우리가 한때 즐겨 불렀던 유행가사의 한 대목을 문제삼고 있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 중

박은봉 선생은 '황금' 발언을 한 사람은 최영 장군이 아니라 최영 장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래가사를 바꿀 필요는 없을 듯하다. 노래 가사는 최영 장군이 말씀을 하셨다는 뜻이 담겨 있지, 최영 장군이 처음으로 그 말을 했다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황금' 발언은 그 전에 있었을 수도 있고, 최영 장군 집안의 가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최영 장군이 그러한 정신을 전파했다는 것이니 '황금' 발언을 최초로 한 사람은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실지 궁금하지만, 어쩌면 칭찬을 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 그 날 어린이들이 참 많이 왔다. 맨 처음에 박은봉 선생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호명하고 나서 '유치원생'이 안 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마치 내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 기분이 좋았다.

- 알라딘 제1기 리포터 승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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