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그 작가 - 우리가 사랑했던
조성일 지음 / 지식여행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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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작품 외에 어떤 활동이나 업적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것이 작가로서의 얼굴을 지어주진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고한 작가들을 떠올릴 때 그의 얼굴이나 그의 생활이나 그의 습관 같은 인간적인 어떤 모습이 아니라 그가 남긴 작품의 제목으로 혹은 그 속에 담긴 한 구절로 그들을 떠올린다. 


 서평 전문지인 <삶과책>에 연재되었던 ‘그리운 그 작가’시리즈가 책 [그리운 그 작가]가 되어 나왔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동화 작가 등 작고한 한국작가 28인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한국 문학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고 간 한국문학계의 별들. 그들의 얼굴과 생활, 그들이 살다간 모습은 어떠했고 그것이 그들이 작품과는 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차분한 어조로 이 책 [그리운 그 작가]는 전한다. 
 


 한국의 근대와 현대는 참으로 고단하고 위태로웠다. 여러 사회학자나 연구자 혹은 의사들이 한국이 역사적, 사회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집단적 트라우마를 앓고 있음을 수년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다. 이 트라우마에 요동치는 한민족의 정서를 보듬고 지탱하고 다져온 것은 문학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서는 시와 소설, 동화와 수필 등 한국의 지난 역사 속에서 빛을 냈던 이 작가들의 작품에 빚을 지고 있다.

 

 

 

 

 [그리운 그 작가]는 그런 작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들려준다. 박경리, 이효석, 백석, 이상 등 중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아는 작가들뿐 아니라 권정생, 마해송, 홍명희 등 한국 문학과 문학사에 낯선 사람에게는 생소한 작가들의 이야기가 모두 이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최명희 작가님의 얼굴을 몰랐는데 이 책에서 보고는 너무 미인이시라 놀랐다든가, 황순원 작가님이 무척이나 심지가 굳은 선비이셨구나 싶어 <소나기>가 더욱 좋아졌다든가, 이런 감상들이 28개의 꼭지를 읽을 때마다 이어진다. 작가들의 생애를 반추하면서 그들의 육필원고나 생가 등 사진 자료들도 적지 않게 수록하여 읽는 재미가 더하다. 신문용이었던 원고를 서적용으로 다듬어 내셨다는 저자의 수고에도 박수를 보낸다.

 

 한국 문학사의 세세한 맥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한국 문학계의 바탕이 된 문학계의 별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작품이 어떤 것이었고 그것은 지금의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 책 [그리운 그 작가]를 통해서 알게 된다. 애초에 이 시리즈의 기획 의도는 작고한 작가들을 추억하고 그리며 그들을 떠올려보는 데에 있었는데, 책이 되어 나온 지금 이 책은 우리가 빚지고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잔잔한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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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
강혜은 지음 / 하영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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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학이 연기되면서 지금 이 순간, 가장 힘들어하실 분들은 유아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아닐까 싶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 되면 그냥 저들끼리 노니까 돌봐주거나 간섭할 일이 적어 보이는데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은 경우가 좀 다르다. 일단 손이 많이 간다. 예전 회사 선배가 대전에서 초등학생 남매를 기르는데 요즘 올라오는 언니의 인스타를 보면 대부분이 고된 육아에 대한 하소연이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오밤중 놀이터에서 남매가 뛰노는 사진을 찍어 올린 언니의 인스타에는 #집에들어갈생각이없음주의 #낮에는어떻게참았니 #그래놀아라놀아 같은 태그가 붙어있다. 나야 구경하는 입장이니 웃음이 나지만 현실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부모님들의 입장에서는 차마 울 수는 없기에 나는 쓴웃음으로 이 시기를 지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개학까지는 열흘도 더 남아 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코로나19가 영 잡히지 않고 있어 온라인 개학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를 보내기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고, 안 보내자니 집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부모님들의 한숨을 덜기 위한 놀이 책이 있다.

 

 [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는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의 관심을 창의적인 놀이로 돌려보자는 취지의 놀이 가이드책이다. 재작년부터 교육계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서 꾸준히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난독증, 낮은 문해력이다. 글보다 영상에, 사람보다 스마트폰에 친화적인 세대일수록 난독증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문해력 수준이 심각하게 낮다. 너무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에 몰입한 탓이다. 이미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고발된 이 위험한 현상에 뚜렷한 해법은 없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 이 세 가지 차원에서 점진적이고 꾸준한 노력과 개선이 필요할 뿐이다. [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의 일환이다.

 

 

 

 

 [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를 지은 강혜은 저자는 방송 작가로, 자유기고가로 일해왔다. 아들을 기르면서 그는 ‘아이들은 차가운 스마트폰이 아닌 사람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놀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우리 시대 아이들이 진짜 놀이를 즐기기를 바라며 이 책을 엮었다.

 

 책은 재활용품으로 새로운 걸 만드는 놀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놀이, 온몸으로 체험하는 놀이, 생활 소품들을 직접 만들어보는 놀이, 책과 연계한 놀이 등 다섯 개의 파트로 구성했다. 하루종일 스마트폰이나 TV, 컴퓨터 모니터 등으로 영상을 보는 것에만 꽂혀 있는 아이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거나 몸으로 뒹굴거나 상상해볼 수 있는 다채로운 놀이 방법들이다. 별다른 도구 없이도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만들기와 놀이들이 수록되어 있다.

 

 아이들끼리 직접 해볼 수 있는 놀이도 있지만 대부분 부모와 같이 하는 놀이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품이 들어가니 힘이 들 수도 있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좋다. 엄마나 아빠와 같은 걸 하면서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이나 유대감은 이런 때에 형성되기 때문이다. 
 

 

 


 엄마와 같이 지점토로 꾸몄던 보석함, 아빠와 함께 만들었던 풍차나 어린이용 의자 같은 것들. 그때 부모님과 같이 만들었던 장난감이나 소품들은 이미 부서지거나 망가져서 버린 지 오래지만 기억들은 힘이 세다. 굉장히 오랫동안 그리고 꽤 자주, 살아가는 동안 그런 기억들이 소환된다. 어릴 적 놀이의 추억은 아주 사소하기 때문에 소중하다. 그런 사소한 시간들의 가치는 성인이 된 후에 비로소 빛이 난다. 스마트폰에게 붙들린 아이들이 이 책 [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에 실린 놀이들로 빛이 나는 기억들을 많이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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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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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_ 서철원 _ 다산책방_ 2019 (혼불문학상 9회 수상작)

 

 전라감영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형을 당했다. 나라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서학(천주교)을 섬기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다는 이유였다.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가계를 허물었나이다.
조상의 신주를 불태운 사실만으로 별장은 윤지충과 권상연을 죄인으로 몰아갔다. 그것만으로 논리가 부족했는지 제사를 갈아엎은 죄를 덧씌워 울먹였다.
  ... 기일에 맞춰 올려야 할 제사를 망각하고 십자가를 집 안에 들였나이다. 그 십자가를 아비보다 높고 임금보다 거룩하다 여겼나이다.
12쪽

 

 정조는 서학인 치죄를 빌미로 나라를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노론의 속내를 경계하여, 서학인 치죄를 내켜하지 않는다. 서학인을 향한 노론의 칼날에서 아버지를 뒤주에서 죽도록 몰아간 그물을 떠올리는 정조는 왕권을 공고히 하길 원하나 그 길은 요원하다. 특히나 정조가 총애하는 정약용의 형제들이 연이어 서학인으로 탄압을 받으면서 임금은 자신의 실세에 더욱 위협을 느낀다.
 임금의 명으로 윤지충과 권상연을 조사하러 갔던 최무영은 윤지충의 집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발견하고 보고한다. 그림에 담긴 기운과 속뜻을 수상히 여긴 정조는 도화서 별제 김홍도를 불러 그림에 대해 조사하라 명한다.
 
“나머지 열두 명은 누구라고 하던가?’
“예수라는 자의 열두 제자라고 하였사옵니다.”
임금이 숨을 멈추고 최무영을 바라봤다.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는 그림 속에서 무엇을 구상하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임금의 생각과 무관한 지점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 그렸을 그림을 상상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 또한 의문이었다.
36쪽

 

 한편 정약용은 신앙을 깊이 감춰두고 생존을 고민한다. 외사촌이었던 윤지충의 순교를 전해 듣고 정약용은 임금에게도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며 서학인을 향한 서슬퍼런 핍박의 칼날을 벗어나려 한다. 그런 정약용 앞에 기묘한 아이, 도향이 나타난다. 도향은 전라도에서 순교한 늙은 여령의 딸로 가야금 연주에 탁월하다. 특히 사람을 죽일 수 있기에 금기로 알려진 변주까지 스스로 익힌 천재다. 그 옛날 가야의 기운을 실은 연주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도향은 한쪽 눈은 파랗고 한쪽 눈은 노랗다. 정약용은 여령으로서도, 여인으로서도 도향을 마음에 품는다. 그러나 도향은 정약용이 그토록 피하려는 서학을 배워 ‘구원’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모두가 평등한 길로, 평등한 세상으로. 

 

 약용의 입 속에 돋던 꿈같이 고요하고 물같이 평등한 나라, 예루살렘 어느 곳에 있다는 골고다 언덕에서 바람과 석양에 기우는 가나안 땅은 결국 허균의 이야기 속 나라 율도와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멀리 문장으로 임할 수 없는 나라를 생각할 때, 임금은 그림과 현실의 중간을 가늠했다. 목측할 수 없는 나라의 임금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인데, 저마다 가고자 하는 세상은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79쪽

 

 김홍도는 <최후의 심판> 그림 속에 숨은 비밀을 임금에게 보고한다. 300년 전에 과학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었던 장영실이 이 그림 속에 숨어 있었다. 그림 속 13명의 인물 중 가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장영실이며, 이는 밀라노에서 직접 확인하고 왔다며 고한다. 300년 전 장영실은 조정을 떠난 후 아무도 모르게 밀라노로 건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만난다. 과학을 다리 삼아 뜻을 함께한 두 학자는 밀라노에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고 다빈치는 장영실을 그림 속에 넣어 그렸다는 것. 더구나 예수의 뒤로 보이는 산세는 인왕산이었다.

 

 조선 너머 너른 땅에서 살아갔을 장영실을 생각했다. 가본 적 없는 남의 나라에서 장영실은 조선의 긍지로 과학의 삶을 살다 갔을 것이다. 밀라노에서 별무리를 이끌고 날마다 혁신하는 삶을 살았을지 몰랐다. 현주일구에 비쳐든 해그림자를 따라 하염없는 사색으로 유일무이한 조선을 세상의 중심으로 원했을지 몰랐다. 그 삶은 한 덩어리 고뇌를 싣고 너른 세상에서 대동을 외치며 살다 갔을 것이다.
229쪽

 

 그러나 그림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보이지 않는 위협도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둡고 비밀스러운 조직으로 어디든지 마음먹은 대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프리메이슨’이 조선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과 장영실은 이를 경계하고 경고하기 위하여 3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그림으로 다시 조선에 돌아온 것이다.
 때마침 궁궐을 시작으로 향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향기가 없어지면서 미각을 잃고, 감각의 상실을 느끼기 시작한 임금은 국가에 큰 재난을 느낀다.
 
 위협은 또 있었다. 전라도에서 순교했던 여령에게는 도향이라는 딸과 함께 도몽이라는 아들도 있었다. 도향의 오빠인 도몽은 어머니의 순교를 지켜본 후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초라니패에 합류한다. 초라니패(박해무, 배손학, 김혁수, 김순, 이하임, 도몽)는 서학을 향한 핍박의 칼날에 희생된 저마다의 사연으로 나라에 복수를 하기 위하여 떠도는 자들이다. 이들은 임금이 향기의 회복을 위하여 벌인 연회에 공연단으로 잠입하여 시해를 꾀한다. 그러나 이들의 시해는 도향의 신기 어린 연주에 방해를 받아 실패로 끝나고 초라니패는 사헌부 감찰어사 최무영이 이끈 금위영 나장과 내금위에게 토벌당하여 모두 죽는다.

 

 

 김홍도의 목에서 임금이 풀 수 없는 의문과 의혹과 의심의 파편들이 무뚝뚝하게 들려왔다.
“하오나 <최후의 만찬>이 중요한 것은 빵과 물고기로 지은 오병이어 기적이 아니옵니다 .이교도의 아가페를 굴복시킨 인간 예수의 참된 눈빛을 바라보소서. 희생과 순교의 의미가 물처럼 출렁이며 그 물은 만 가지 별을 품고 있사옵니다. 순수한 결정만이 세상을 정화하고 조선이 잃어버린 향기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아마도 장영실은 훗날 조선이 처할 불운을 미리 내다보며 그림 속에서 파우스트 폴의 숙명으로 조선을 다독이고 있을 것이옵니다. “
(중략) 임금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파우스트 폴이라고 했느냐?”
“아마도 프리메이슨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옵니다.”
“비밀결사 조직이라고 둘었다. 조선에도 누군가 그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고...“
임금이 말을 아꼈다.
349쪽

 

청나라를 거쳐 윤지충에게 전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약용의 머릿속에 뚜렷이 그려졌다. 임금을 경계로 좌우로 갈라선 여섯 신하와 여섯 외인들의 엇갈린 모습은 다빈치의 그림과 다르지 않았다. 카메라 옵스큐라 속에 모두는 <최후의 만찬>으로 맺혀 있었다.
407쪽

 

 정약용은 카메라 옵스큐라에 비친 임금을 중심으로 좌측의 여섯 신하, 우측의 여섯 일당(초라니패)의 구도를 보면서 삶과 죽음, 선과 악, 생성과 소멸 등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언제나 존재하는 동시성의 가치들을 발견한다. 임금 역시 그림 속에 담긴 것은 결국 동시성의 가치가 아니겠느냐는 김홍도의 보고를 듣고 깊이 사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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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의 율도국을 꿈꾼다. 임금으로부터 연약한 여령인 도향까지 모두가 그러하다. 가나안 땅으로, 구원의 처소로, 모두가 평등하고 자기 가치를 확인하며 존재를 존중받고 박해나 눈물이 없는 이상적인 세상으로 건너가려는 각 인물들이 고뇌와 여정을 이 소설은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야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소설이 아니다. 한 쪽 노를 가지고 보트를 젓듯이,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를 맴맴 돈다.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버둥거리는 소설이라 스펙터클한 이야기 전개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답답하게 읽힐 수 있다.

 

 엑셀을 밟고 달리는 드라이브가 아니라 창문을 열어두고 손등을 스치는 미풍을 감지하는 사람에게, 아마 이 소설은 더 즐겁게 읽힐 것이다. 서학이라는 신앙과 그를 향한 핍박이 대두되지만 실상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단순한 종교 탄압이 아니다. 바꾸려는 자와 간직하려는 자, 다음 세상으로 떠나려는 자와 다음 세상을 부정하는 자, 죽음으로 삶을 증명하려는 자와 생존으로 죽음을 건너가려는 자.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사상과 이념이 충돌하는 곳마다 이런 충돌이 벌어진다. 허균의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율도국이 예루살렘과 가나안의 모습에 겹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상상력이 좋고 조선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저 건너편의 나라까지 확장되는 이야기의 흐름이 좋았다. 그런데 너무나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들이 연이어, 어느새 정말 소설 같은 소설로만 느껴졌다. 이 상상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개연성, 입증물이 없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난입해 버린다. 다빈치와 장영실의 조우에 적응이 되지도 않았는데 프리메이슨에 파우스트 폴까지, 감당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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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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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로 다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말로 다 못한다. 자기의 감정을, 그 생각을,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마치 무지개의 수만가지 빛깔처럼 각양각색으로 움직이고 있는 내 안의 감상과 감각은 말로 다 못한다. 하나의 감상을 표현할 수 있는 몇 가지 적합한 단어는 찾을 수 있겠지만, 이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의 총체를 고스란히 담아 전할 수 있는 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의 한계다.

 

 흔히 우리는 ‘말’로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조금 더 꼼꼼히 이 작용을 살펴보면 말 그 자체가 칼이 되어 날아와 꽂히기 보다는, 말 속에 채 다 담기지 못한 감정이나 말을 벗어나는 생각들이 화살이 되어 찌르는 게 아닌가 한다. 우리의 눈이 빛을 반사하는 물성에만 닿지 않고 그 내면 속으로 가닿아 혼이라고도 하고 마음이라고도 하는 그곳에까지 이를 수 있다면 어떨까? 그의 진짜 마음이 어땠는지, 그의 생각과 감정의 세세한 결들이 어떤 감촉인지, 그가 간직한 추억의 색채와 소리와 선율을 알 수 있다면? 모든 진심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의 마음을 몰라서 엇갈려버린 안타까운 순간들을 만회해볼 수 있지 않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녹나무의 파수꾼]은 ‘이런 일이 정말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면?’하는 상상력으로 빚은 환상소설이다. 녹나무와 가문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속에 따듯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마음이 봄햇살처럼 내려와 앉는다. 

 

 

   “언어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 모두를 언어만으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녹나무에게 맡기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믐날 밤에 녹나무 안에 들어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염원합니다. 그것을 저희는 예념이라고 합니다. 염원을 맡긴다는 뜻이지요. 예념을 하는 사람은 예념자라고 합니다. 녹나무는 예념자의 그 모든 생각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보름날이 다가오면 그것을 뿜어냅니다. 그때 녹나무 안에 들어가면 그 염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혈연관계인 사람뿐이지요. ”
373-374쪽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로 유명하지만 그의 소설들을 단순히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등의 이미지로만 연상하기에는 아쉽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작품만 해도 그렇다. 시간을 뛰어넘는 편지의 교신이라는 미스터리 장치를 통하여 히가시노 게이고가 독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 사는 일의 따듯함’이다.
 [녹나무의 파수꾼]도 그러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놀라운 일, 미스터리 혹은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근사한 일은 서로 간에 사소한 따듯함과 신망을 주고받을 때 일어난다. 녹나무는 다만 그 사이에 꽃처럼 피어난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다가 그것을 받을만한 사람에게 향기로 전해줄 뿐, 녹나무 자체는 기적이 아니다. 염원을 남기고 간 사람의 용기와 그것을 전달 받은 사람의 각오와 애정이 진짜 기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원래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이제 나는 이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이 작품 [녹나무의 파수꾼]은 너무 너무 좋다.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를 불운하게 여기는 스무살 청년의 ‘낭만적인 성장기‘가 이 작품의 전부였다면 이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젊은 층이 삶의 애착을 잃고 가족애는 희미해져가며 온고지신의 의미가 이미 오래전에 퇴색된 현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 작품에 담았다.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레이토에게 우리 시대 10-20대의 얼굴이 비치고, 레이토와 치후네를 비롯하여 서로 연을 끊고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사회의 가장 최소 단위인 가족이 해체되어 모두가 철저히 개인으로 살아가게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고독한 표정이 읽힌다. 역사와 전통과 계승이라는 든든한 뿌리와 혈맥이 자취를 감추고 현재의 효율성만이 최고의 미덕이 되어버린 데에 대한 비판은 일본과 한국이 다르지 않음을 이 작품이 보여준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사상 최초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 함께 출간되었다. 출간 상황만 특별한 게 아니다. 책 앞장에는 은색 글자로 작가의 전언이 인쇄되어 있기도 한다. 책 표지에서부터 영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작은 촉매제로, 곳곳의 작은 녹나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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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줄거리 (스포일러가 매우매우매우 강함 주의!)
 레이토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 컸다. 레이토의 엄마 미치에는 긴자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다 유부남과 불륜 끝에 레이토를 혼자 낳아 키우다 레이토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유방암으로 세상을 뜬다. 후미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남긴 얼마 안 되는 재산으로 근근이 레이토를 키웠다. 생활고 속에서 자란 레이토는 할머니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하여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식품제조회사에 취업했지만 누명을 쓰고 회사 사람들 눈 밖에 난다. 친구가 일하는 유흥업소 웨이터로 일을 옮겼으나 호스티스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들켜 거기서도 쫓겨난다. 간신히 공작기계 회사로 재취업했지만 거기서도 역시 억울하게 쫓겨난다. 분한 마음에 공장 기계를 훔쳐 팔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한다.
 경찰에 체포된 레이토를 방면해준 것은 레이토의 이모인 야나기사와 치후에였다. 이제까지 이모가 있는 줄도 몰랐던 레이토는 가족관계에 대한 세세한 사연도 듣지 못한 채, 이모가 요구한 방면의 대가로 ‘녹나무 파수꾼’으로 일하게 된다.

 

 녹나무는 레이토의 할아버지가 데릴사위로 있었던 ‘야나기사와’ 가문의 지경에 속한 일종의 소원나무다. 그믐날이면 누군가 녹나무에 염원을 전하고(예념) 보름날에는 염원을 남긴 자의 혈족이 녹나무로 찾아와 그 염원을 받는다(수념). 반드시 혈족만이 염원을 받을 수 있는데, 마치 유언장을 보관했다가 그것을 전해주는 듯한 녹나무의 신기한 작용은 벌써 백 년이 넘게 야냐기사와 가문의 파수꾼에 의해 지켜져 왔다. 녹나무 파수꾼이었던 치후에는 자신의 병세가 깊어지자 급히 후계자를 찾아 나섰고 그녀의 먼 혈족, 심지어 그간 왕래도 하지 않았던 조카인 레이토가 파수꾼 견습생이 된 것이었다.

 

 녹나무와 염원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한 레이토에게 처음에는 모든 것이 기이했다. 살면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도 받지 못했고 변변한 기술이나 꿈도 없이 살아왔기에 레이토의 생활 습관 역시 엉망이었다. 치후네 이모는 레이토의 사소한 습관과 태도를 교정하고 고쳐주면서 레이토를 야나기사와 가문에 소개한다. 자신을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으로 여기던 레이토의 삶은 녹나무 파수꾼으로 일하면서 그리고 치후네 이모와의 동행과 대화를 통해 숨겨진 가족사를 이해하게 되면서 점차로 근면하고 따듯한 방향으로 변해간다.
 
 그런 레이토 앞에 유미가 나타난다. 유미는 녹나무에 기념을 하러 찾아오는 사지 씨의 딸로,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는 걸 막기 위해 레이토에게 도움을 구한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간 이후 아버지가 이상해 졌다는 것이다. 레이토와 유미는 사지 씨의 행적을 함께 추적하게 되고 그 끝에 사지 씨와 형 기쿠오의 숨겨진 사연을 알게 된다. 천재 피아니스트로 촉망받던 기쿠오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열등감에 휩싸여 가족도 멀리하다 알콜 중독과 합병증으로 일찍 사망한다. 기쿠오는 사망하기 직전, 녹나무에 찾아와 가족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 속죄를 염원으로 남겼고 동생 사지 도시아키는 형의 염원을 받은 후 비로소 형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 사연을 듣게 된 딸 유미는 사지씨와 함께 기쿠오가 귀가 먼 상태에서 어머니를 위하여 지은 피아노곡을 복원하여 연주회를 연다.

 

 녹나무가 전달하는 염원이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마음, 그 진실하고 솔직한 고백의 총체임을 깨달은 레이토는 치후에 이모에게도 솔직한 자신의 진심을 전한다. 치후에가 앓고 있는 인지장애를 숨기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이 곁에 있을 것임을 그러니 치후에 이모 역시 옆에서 자기를 계속 가르쳐달라고 이야기하면서, 둘은 비로소 가족이 된다.

"네,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곳이 과연 어떤 세계인지, 치후네 씨도 아직은 알지 못하잖아요. 잊어버렸다는 자각도 없다면 그곳은 절망의 세계 같은 게 아니죠.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세계예요. 데이터가 차례차례 삭제된다면 새로운 데이터를 자꾸자꾸 입력하면 되잖아요. 내일의 치후네 씨는 오늘의 치후네 씨가 아닐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뭐, 그래도 좋잖아요? 나는 받아들입니다. 내일의 치후네 씨를 받아들일 거예요. 왜요, 그러면 안 됩니까?" - P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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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 - 차별화된 기획을 위한 편집자들의 책 관찰법
박보영.김효선 지음 / 예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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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강점 콘텐츠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강점 콘텐츠는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늘 관심있게 생각하고 탐구했던 영역, 너무나 어려워서 자꾸 실패했던 영역, 그래서 시간을 투자하여 연구했고 마침내 이런저런 해법을 찾아냈던 영역, 무엇보다 제삼자 입장에서 나에게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영역을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누가 봐도 당신은 그 분야의 전문가로군.”이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영역 말이다.
122쪽

 

 자기 사업을 해보려는 사람에게 가장 커다란 고민은 ‘나의 강점 콘텐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 아닐까. 고용직으로, 그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만 수행하면 되는 입장이라면 굳이 자신의 강점 콘텐츠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지만, 최근에는 나이 마흔만 넘어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자기 사업을 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건, 굳이 자기 사업을 하려고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기 강점 콘텐츠를 안다는 건 살아가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거다. 하다못해 글 한편을 쓰는 일에도, 자기 강점 콘텐츠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편차가 매우 크다. 자기 강점 콘텐츠는 자존감, 자기애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나 자신이 어떤 콘텐츠에 특화되어 있는지, 누가 봐도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자타의 인정을 획득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건 내가 나 자신으로 견고하게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의 두 저자인 박보영, 김효선 씨는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책 쓰는 일’을 고민해보라고 하지 않는다.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는 글쓰기 자체에만 집중되어 있는 시점을 상품의 형태인 ‘책’의 위치로 확대하여 책쓰기에 대한 실질적인 가이드를 쓴 책이다. 책을 내고 싶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빠지기 쉬운 ‘원고’의 함정에서 벗어나 상품으로서,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구매하게 만드는 좋은 상품으로서의 책을 어떻게 만들지를 조언한다.

 

 책의 가치는 단지 판매 수입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책은 자신의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기 때문에, 많은 저자들이 책을 쓰면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객관적으로 체계화되었다는데 만족감을 표한다.
125쪽

 

그렇다고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가 책을 파는 데에만 혈안이 된 건 아니다. 책은 우리의 생에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자아 발견의 도구, 자기 정체성의 도구, 위로와 격려의 도구, 자기 경쟁력의 도구 등 책의 역할은 정말 다양하다. 그래서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책은 사람의 존재감, 인생의 의미, 심리 상태와 직결된 특별한 존재다.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에서도 지적했듯이 책을 전문성 증명의 도구로, 자기 성취의 도구로 삼아 책을 쓰고 싶어하는 예비저자들이 굉장히 많다. (내 주변만 해도 여럿...) 이런 상황에, 책을 직접 만들고 팔아야 하는 출판사와 편집자들의 입장은 어떨까? 좋은 책을 쓰는 저자들을 찾기 위하여 출판사와 편집자들도 굉장히 성심성의껏 원고들을 살피고 좋은 저자를 찾고 있다고,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의 저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이다. 독자들과 저자, 출판사 모두에게 정말 의미가 있고 유익이 되는 ‘좋은 원고’를 쓰는 것. 이런 원고를 생산하여 책을 내는 것. 그래서 편집자인 저자들은 이 책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를 냈다. 좋은 원고를 쓰는 저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세상에 전문가는 숱하게 많다. 그들 중에서 하필 ‘나’에게 찾아오게 할

방법이 필요하다. 저자라면 “내가 하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131쪽

 

 책이 너무나 흔한 요즘이지만, 오히려 정말 읽을만한 책은 적어진다.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지, 자기 강점 콘텐츠가 확고한 좋은 원고란 무엇일지, 오늘도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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