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비적성 - 살림 비적성 요리 비적성 엄마 비적성 여자의 육아 탐험기
한선유 지음 / 라온북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장에서 날고 기는 위풍당당 초당당한 커리어우먼이 있다. 업무 능력치로든 경험치로든 만렙을 찍은 그녀는 무서울 게 없다. 거칠 것도 없고 걸릴 것도 없다. 임신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니, 출산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뱃속에 있던 사랑스러운 아가와의 오프라인 조우 후에 그녀는 위기에 처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육아에 비적성이었다니! 아가가 햇빛 속으로 나온 이후 날마다 그녀는 깨닫는다. 살림 비적성, 요리 비적성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육아 비적성은 정말 위험하다. 다른 일은 잘하는데 왜 아이 앞에서만 작아지는걸까?

 

골드미스의 삶을 청산하고 순박한 남편을 장만한 한선유 저자는 육아가 적성에 안 맞는 밀레니얼맘을 위해 책을 냈다. [육아 비적성]은 이미 제목부터 육아에 소질도, 재능도, 취미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아이는 정말 예쁘다. 사랑스러운 존재다. 육아가 이토록 어렵지만 않았다면 셋째도 가능했을 터. 그러나 한선유 저자는 셋째 아이 대신에 [육아 비적성] 출간을 택했다. 육아 비적성인 여자가 세상에 당신만이 아니라는 걸 당당하게 외치기 위해 그리고 안전하고 스마트하고 안온한 엄마 육아의 시대는 가고 폭풍처럼 다이나믹하고 강력한 아빠 육아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

 

 

아빠 육아는 어떨까? 상상이 가지 않나? 바로 3단 강풍을 틀어버린다. 본인이 그렇게 선풍기 바람을 쐬기 때문이다. 애는 화들짝 놀란다. 태풍이다. 이런 걸 보고 엄마 육아는 아빠 육아는 위험하다고 자꾸 아빠들의 육아 기회와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이뿐인가? 아이 좀 흔들흔들 하며 놀아주랬더니 바로 냅다 던져 받는 자이로드롭이다. 아이가 기겁한다. (중략)

강풍 육아, 난 적극 찬성이다. 아이만 안 날아간다면 아이들도 이런 시원시원한 육아 재미있어한다.

적응되면 선풍기는 바로 3단이다.

이게 아빠 육아의 진짜 ''이다. 원래 맛집은 간이 세다.

227-228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가보면 알 수 있다. 엄마는 놀아준다. 아빠는 같이 논다. 그칠 줄 모르는 아이들의 체력을 온몸으로 받아주는 아빠 육아는 그래서 힘이 세다. 물론 지켜보는 엄마가 기겁하는 순간은 여럿 있겠지만 정작 아이들은 숨넘어갈 듯이 꺄르륵 거리며 즐거워한다.

 

한선유 저자는 출산과 육아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혼자 감당하지 말고 남편에게도 역할을 주라고 말한다. 임신 중에 남편은 배달의 민족, 출산 후 남편은 육아 보조가 아닌 육아 전담반이 되어야 한다. 사실 아빠들은 생각보다 육아에 특화되어 있다. 시켜보지 않았으므로 모르는 것. 한선유 저자는 [육아 비적성]에서 자신의 육아 사례를 들어 임신과 출산, 육아는 부부 공동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빠 육아가 무척이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을 걸 알기에 목숨 걸고 일자히 않는 것처럼 육아도 나를 괴롭히면서 뛰어내릴 것 같은 우울증이 오기까지 하면 안 된다. 그건 목숨 거는 것이다. 아이의 울음을 너무 민감하게 큰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의 마음속 울음을 더 챙겨보려고 애쓴다.

190

 

[육아 비적성]은 워킹맘들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회사엔 휴직을 내고 출산을 기다리는 중이라거나 직장과 육아라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여성에게는 꼭 권하고 싶다. 한선유 저자가 [육아 비적성]에 쓴 대로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고 굳이 최고 좋은 엄마가 될 필요도 없다. 영화 []에서,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함을 토로하는 엄마에게 6살 난 아들은 말한다. 괜찮다고, 그냥 엄마라고. 엄마라는 역할로 이미 된 것이다.

 

 

 

[육아 비적성]은 한선유 저자의 재기 넘치는 문장들 덕분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힌다. 마치 아는 언니와 수다를 떠는 것처럼, 이야기들이 워낙 웃겨서 출산과 육아를 주제로 한 시트콤을 보는 듯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육아란 시트콤이 아니라 스릴러나 뭐 그런 비슷한 일이겠지. 한선유 저자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체험기를 [육아 비적성]에서 풀어놓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체는 어쩌면 아주 큰 일이 아닐지 모른다. 워킹맘에게 육아란 삶의 전부 혹은 전체가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하루 24시간, 일주일의 시간 중 일부다. 그래서 한선유 저자는 [육아 비적성]에서 이야기한다. 짬뽕반과 짜장반을 합친 짬짜는 결코 각각의 한 그릇을 오롯이 먹은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고. 그러니 처음부터 두 가지 맛을 다 제대로 보겠다는 생각을 뒤집는 게 먼저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를 속이는 말들 - 낡은 말 속에는 잘못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낡은 말 속에는 잘못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이 문장에서 하나만 고치고 싶다. 낡은 말이 아니라 어떤 말로. 신조어가 쏟아지는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낡은 말 뿐 아니라 새 말에도 잘못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이 잘못된 생각은 인생을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말은 그래서 위험하다.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 정보의 전달, 감정의 표현 뿐 아니라 타자의 삶을 조작할 수 있는 위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술과 인문학 서적을 주로 출간한 박홍순 저자의 신간 [우리를 속이는 말들]의 머릿말은 '말의 위험성'을 정확히 지적한다.

 

 [미술관 옆 인문학]을 읽었던 기억으로 박홍순 저자가 낯익다. 미술과 사람에 대한 통찰과 해박한 지식이 탁월한 저자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의 신간 [우리를 속이는 말들]을 읽고나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시대에 유익한 것과 무익한 것 그리고 해로운 것을 냉철하게 구별할 줄 아는 시선과 쓴소리도 가차없이 뱉을 수 있는 소신을 함께 가진 저자다.

 

 [우리를 속이는 말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말들이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를 짚어낸다. 우리의 삶을 잘못된 말들이 흔들고 있음과 더불어 이런 강제적인 왜곡에 더 이상 휘둘리지 말자는 저자의 전언이다.

 

말을 통해 생각하기에 말은 우리 생각을 조종한다. 사고와 행동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가장 큰 힘을 가진 말은 단연 상식의 이름으로 통용되는 격언과 명언이다.

5쪽 저자의 말 중에서

 

 아무리 개인이 원해도 상식의 규칙에서 벗어나거나 변경하기 어렵다. 말은 생각과의 관계에서 권위적 위치에 있다.

그 결과 생각은 상식의 함정에 빠진다. 생각 왜곡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처음에 상식적이고 규범적인 말이 만들어질 때의 의도와 다르게, 혹은 현재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황임에도 부당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나아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생각을 왜곡하고 조작할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심없이 무심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생각은 왜곡과 조작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정신은 길을 잃고 무력해진다.

어찌해야 하는가? 짧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속지 말자! 물론 말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덜 속는 것만으로도 삶과 생각이 더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첫 발걸음을 뗄 수 있다.

7쪽 저자의 말 중에서

 

[우리를 속이는 말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통념을 형성한 말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 인간은 다 이기적이다, 소확행을 즐겨라, 손님은 왕이다, 여성은 모성애가 있다 등등 총 12개의 상식과 유행, 속담 등을 해부했다.

 

정말 하나 가지고 열을 알 수 있어? 하나 가지고 하나만 알기도 어려운데. 찬물은 위아래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먼저여야지. 세포가 이기적이라고 해서 세포의 집합체인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소확행은 기업과 미디어가 조장하는 무한소비풍조이자 조작된 유행이며 대한민국에 현재 왕은 없고 손님은 손님일 뿐이다. 여성은 모성애, 남성은 부성애, 자녀 양육은 부부 공동의 일일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우리를 속이는 말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소확행을 해부한 9번 꼭지였다. 소소한 소비 그러니까 예쁜 쓰레기나 자잘한 것들 소비하면서 위로와 만족감을 느끼는 우리 세대들의 이 '소비 욕구'가 과연 자발적이고 진정한 욕구인지를 되묻는 저자의 시선은 매우 날카롭다.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말을 인용하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소비 기조가 대량소비 촉진과 욕구불만 해소를 위하여 의도되고 조작된 욕구임을 밝혀낸다. 9번 꼭지는 통으로 이 블로그에 소개하고 싶을 정도로 내용이 좋다. 단순히 소확행의 허와 실을 밝혀낼 뿐 아니라 개인이 기업과 미디어에 휘둘리고 있는 현재의 위험성을 잘 설명한다. 강제적인 유행 선도와 그로의 편입은 그저 취향을 저당잡히는 문제가 아니다. 산채로 수족관에 갇히는 꼴이 되는 것이다.

 

여러 측변을 고려한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적, 비판적 사고는 사라진다. 대부분의 판단과 선택이 소비를 통한 욕구 충족에 수동적으로 자동반응한다는 점에서 '일차원적 인간'으로 전락한다. 일차원적 사고와 행동이라는 한정된 패턴 안에서 살아간다.

한국의 소비적인 소확행 역시 하나의 바람직한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으면서 일차원적 인간을 양산하는 통로가 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책 169쪽

 

한 달 안에도 몇 권씩 출간되는 인문학 서적 속에 이 책이 묻히기에는 너무 아깝다. 정말 아까운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 자신이 세상에 범람하는 온갖 말들에 속지 않도록 말이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상이나 동서양의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 이런저런 인문학 책들도 물론 유익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인문학 서적은 이런 책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개다 그림책이 참 좋아 56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백희나 작가는 올해 아스트리드 린드르겐상을 수상했다.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상을 수상한 것으로 백희나 작가는 증명한 셈이다. 그녀가 짓는 동화 세상은 지구촌이 공감하고 동감하는 아름다운 정서의 세계임을. 또한 동화란 어린애들이나 보는 수준 낮은 이야기가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든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정서로 설득할 수 있는 강력한 장르라는 사실까지도.

 

수상 소식은 희소식이지만 답답한 소식도 있었다. 2004년 출간한 [구름빵] 저작권 소송이 대법원 심리도 없이 기각되어 백작가가 패소한 것이다. 문학계에서 작가의 권리란 참으로 연약한데 그 중에서도 동화 즉 어린이 문학계에서 작가의 권리는 더욱 약하다. 백희나 작가의 패소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구름빵을 그렸지만 구름빵에 대한 저작권은 백희나 작가에게 없다. 구름빵은 1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고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의 2차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져 막대한 수익을 냈지만 백 작가에게는 저작권도, 2차 콘텐츠 등에 따른 보상도 없다. 20039월에 체결한 계약 중에 포함된 양도 내용 때문이다.

 

계약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출판계의 관행이 이제는 좀 바뀌어야 되지 않나 싶다. 작가의 저작권 자체에 대한 새로운 기준과 고려가 필요하다.

 

백희나 작가의 동화세계는 아주 섬세하고 부드럽다. 손으로 만지면 그림책 안의 세계가 만져지고 그 촉각에 사람의 체온과 같은 온기까지 느껴질 듯하다. 명랑하면서도 세밀한 백희나 작가의 동화 세계가 더 풍부하고 사랑스러운 색채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시간과 더불어 구조적인 변화까지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백희나 작가의 동화책 [나는 개다]는 개 구슬이의 이야기다. 똥개 구슬이와 함께 사는 가족의 이야기가 정감 있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감탄한 건 구도다. 구슬이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그림책의 구도가 다이나믹하게 변한다. 이렇게 역동적인 그림책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림책에 아무런 줄글이 없어도 이야기가 자연히 꿰어져 흘러나온다.

 

백희나 작가의 동화책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수없이 다른 복잡함과 새로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시선, 평범한 풍경을 따듯하고 정감 있게 빚어내는 솜씨. 독자는 그녀가 출간하는 그림책마다 경탄하고 기뻐하고 행복해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하루의 물리학 - 사소한 일상이 물리가 되는 즐거움
이기진 글.그림 / 시공사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범위의 세계를 살게 된다. 생각이 내 선택과 행동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주변 자극이나 주위 사람으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빚어진다. 사람은 평생 주위로부터 흡수한 영향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흔히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 말은 지금 주변으로부터 받은 영향과 다른 영향을 받고 싶다는 말과 상통한다.  그러니 사람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껏 나를 둘러싼 익숙한 자극, 내가 아는 영향이 아닌 전혀 새로운 자극과 영향을 찾아야 한다. 그런 자극과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접근이 쉬운 도구가 바로 '책'이다.

 

 

책은 본래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도구였다. 힐링이나 감성 충전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위로를 받기 위해 읽는다고 하는 시조차 실은 고도로 정제된 언어의 과학이다. 시를 읽다 보면 치열한 생각의 훈련 끝에 시인이 빚어낸 한 올, 한 올의 비유와 표현, 사유의 깊이에 경탄하게 된다. 사물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질문하고 탐구하는 시인의 눈이 어느새 나에게로 전이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독자는 그동안에 살아왔던 익숙한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된다.

 

 언어의 과학인 '시'가 새로운 삶을 선사한다면 '자연 과학'은 어떨까?

 

 

물리학은 지극히 개인적인 학문이다. 물리학은 삶의 철학이 될 수도 있고, 삶을 기록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으며, 내가 가진 사상의 지평선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세상을 인식하고, 세상의 이치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우주를 내다보는 방식, 바로 그것이 ‘나의 물리학’인 것이다.
5쪽 서문 중에서

 

 

[하루하루의 물리학]을 쓴 이기진 교수는 물리학을 ‘시선’이라고 말한다. 사물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처럼 물리학자 역시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서의 특별한 눈이 있다. 일상 속에서의 물리학, 각자의 삶 안에 있는 물리학의 세계에 대해서 쓴 [하루하루의 물리학]은 그래서 별난 책이다. 힘의 원리나 작용으로서의 물리학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물리학을 만나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세계, 나와 나를 둘러싼 사물을 다시 보게 만들어줄 놀라운 렌즈를 장착하게 될 것은 확실하다.

 

 압력은 뭔가를 누르거나 압박하는 힘이다. 세상의 모든 물체는 압력이라는 물리적 틀 속에 살고 있다. 즉 형체가 있는 모든 물체는 압력을 받게 되어 있다. 우리의 몸도 대기압이라는 적정한 압력 속에 존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압력인지도 모른다. 

 

 

 물리적 압력 말고 심리적 압력도 있다. 학생 때는 시험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잠도 못 이루고 불안에 떤다. 그래서 압박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자꾸만 딴짓을 하고, 공상을 하고, 일탈을 꿈꾸면서 현실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책 122쪽

 

그림책 작가이기도 한 이기진 교수의 독특하고 별난 센스는 이 책을 무척 돋보이게 한다. 책속에 삽입된 일러스트들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가끔 빵빵 터지게 웃도록 만든다) 본문 내용은 단순한 과학서적이 아닌, 과학책과 인문학 사이의 아주 가느다란 교집합 영역에 서 있다. 성인을 위한 쉽고 일상적인 물리학 교양서로 매우 적합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의 역사 - 말과 글에 관한 궁금증을 풀다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서순승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우리는 모두 언어를 듣고 말하고 쓸 줄 안다. 문맹률이 높은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더라도 그 나라의 언어를 듣고 말하는 정도가 가능하다. 언젠가 다른 서평에서 ‘언어는 산소’라고 썼던 게 기억난다.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기가 어디에나, 어느 순간에나 있듯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언어 역시 그러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죽은 뒤에조차 사람은 누구나 언어라는 공기 안에서 호흡한다.

 

 언어는 인류 역사 속에서 사람이 배워온 (그리고 배우고 있는 것들을 포함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복잡하다. 영국의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은 그의 신간 [언어의 역사]에서 우리는 저마다 역사상 가장 복잡한 체계인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음을 짚어준다. 기술로서의 언어가 낯설고 어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언어 그 자체에 대해 제대로 배우거나 아는 사람은 적다. 마치 매 순간 공기로 호흡하고 있지만 공기의 분자와 구성, 부피, 무게 따위를 아는 사람은 극히 적은 것처럼. [언어의 역사]를 한국어로 옮긴 서순승 역자는 ‘옮긴이의 말’ 서두에 언어를 할 줄 아는 것과 언어 일반을 아는 것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 ‘아하, 그렇지.’라는 무릎 탁!과 함께 이 책에 대한 기대감도 탁!하고 높아진다. (번역서의 경우 거의 대부분 역자의 말을 먼저 읽어보고 책 본문을 읽는 습관이 있다.)

 

 

 [언어의 역사]는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다. 언어의 역사와 생성, 사용, 현황 등 언어 일반에 대한 총 40개의 주제로 구성한 이 책의 모든 챕터가 재미있다. 마치 생물을 분석하듯 언어 이곳저곳에 현미경을 대고 그 모양과 변형 상태를 살펴보는 책이다.

 

 공기 없는 지구를 상상할 수 없듯 언어 없는 인류세계 역시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언어로 지은 세상이다. 의사를 소통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탁월한 수단인 언어. 의사를 소통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기호나 수단은 다른 생물들에게도 있지만 감정과 창의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건 오직 사람의 언어뿐이다. 그래서 언어는 사람을 사람답게, 사람 되게 하는 유일한 도구다. [언어의 역사]는 언어가 지닌 독보적인 기능과 가치를 조망하고 이를 이해한 독자들을 통하여 더 나은 언어 세계를 짓기 위한 바람으로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 책의 본문에 잘 나온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수많은 추천사를 대신한다)

 

 

 

 

 흔히들 지구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렸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그리고 이 말은 식물, 동물,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략) 나는 여러분도 이들 문제에 관심을 가져, 언젠가는 여러분의 언어 세계를 보다 살기 좋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리라 기대한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대상은 나의 세계이자 여러분의 세계이니까.
 422쪽 마지막 챕터 <여러분의 언어 세계> 중에서 

 

 기원전 8천년 경이 되어서야 인류가 언어능력을 갖추었다고 단언할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10만 년 경 혹은 그보다 더 전에 원시적인 형태로서 말이 시작되었다고 추정하는데 가히 9만 년 정도의 세월이 흘러서야 말(리듬, 억양, 음파 등이 나타나는)이라고 할 만한 상태가 되었다. 여기에 문자의 탄생까지 계산해보면 인류가 말과 글이라는 고도의 언어 체계를 사용하게 된 건 6천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언어의 역사] 챕터 15,16 참조)

 우리나라 역사를 반 만년이라고 하는데 딱 우리나라 역사 정도가 말과 글의 실질적인 역사인 셈이다. 6천 년의 시간이 흘러 현재 6천 개의 언어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그러나 이 역시 추정) 앞으로 100년 내에 세계 언어의 절반이 사멸할 것이라고 언어학자들은 전망한다. 언어 역시 살아있는 것이고 생물다양성(다양한 생물이 공존할 때 더 오래, 건강하게 생존하는 성질)의 측면에서 보자면 언어다양성 역시 보존되어야 할 가치다.

 

 

 그렇다고 [언어의 역사]는 어디 먼 원시 부족의 언어를 배우자고 독려하거나 언어가 흘러온 역사와 정통성, 전통적 언어만을 설명하는 데에 주력하진 않는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언어의 속성을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데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말과 글의 속성(소리, 발음, 억양, 예절, 전문어, 형태, 문법 등등)은 우리의 현재 생활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구당 독서량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일상 속에서 영상 미디어가 차지하는 지분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언어가 점차로 우리 생활과 멀어져 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더 절대적으로 언어에 기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공기로 숨쉬면서도 공기의 분자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과학도서처럼, 쉴새 없이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언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교양도서다. 

 
 첨단기술이 도입된다고 언어로 할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스타일의 수가 오히려 두 배로 늘어났다. 과거에는 반드시 우체국을 거쳐야 했던 업무 중 많은 부분이 지금은 온라인으로 처리된다. 지면 서식과 온라인 서식을 채우는 것은 비슷한 면도 많지만 다른 점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따라서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려면 누구나 지면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에다 컴퓨터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까지 익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390쪽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