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영화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 ⑤
  

 

5. 얼굴 위에 새겨진 이야기의 우주 (1)
 



 지명훈 : (수척해진 지원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자수하는 건 어떻겠니?
 송지원 : 제게 사상교육을 해주신 건 선생님이셨어요. 이제 조국을 배신하라고요? 교수님처럼요?
 지명훈 : (조국을 배신한 자의 괴로움과 스승으로서의 노여움이 복잡하게 오가는 표정으로) 그만 해라.
 송지원 : (스승을 상처주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필요했던 그는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힌다.) 지난 6년간 도망만 다녔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든 결단을 내려야죠. 다시 찾아오지 않겠습니다. 

 

   그의 얼굴은 조명이 어두울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빛은 쾌활하고 명랑한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이 아니라 슬픔과 고독을 공깃돌 삼아 오랫동안 혼자 놀아본 사람의 빛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빛은 언뜻 ‘어둠’으로 비치기 쉽다. 하지만 관객은 그의 직업이 아무리 ‘암울하다’ 해도, 그를 둘러싼 환경이 뿜어내는 음울한 장막을 걷어내고, 거역할 수 없는 그만의 빛을 발견해낸다. 오래전에 ‘남한 사람’이 되어버린 은사 지명훈을 만나러 온 날, 송지원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운 빛을 뿜어낸다. 장대비가 내리는 밤 사방이 어둠으로 휩싸여 있을수록, 송지원의 얼굴에서는 어둠 속에서 더욱 눈이 시리게 맑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우직한 대장장이가 단 한 사람의 무사를 위해 오랫동안 묵묵히 벼린 칼끝에서 나오는 빛처럼 단단하고 묵직한 그런 빛. 

 


   송지원은 그림자의 손아귀에서 아이를 구출하고,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지만, 그림자는 물론 북쪽에서도 완전히 버려진 신세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림자는 당에서 정해준 표적이었던 김성학뿐 아니라 남한의 국정원 요원들을 여러 명 살해해버렸고, 그 와중에 그림자는 송지원이 국정원에 자신의 존재를 밀고했을 것이라는 의심까지 한 것이다. 알고 보니 밀고자는 송지원의 오랜 친구였던 손태순이었다. 손태순은 이한규를 통해 남파 공작원의 정보를 심심찮게 전달해주고 있었고, 이한규는 손태순을 믿고 송지원을 이용하여 그림자를 잡으려 한 것이다. 살벌한 총격전 끝에 그림자는 신출귀몰한 액션을 펼치며 이한규 일행의 추적을 보기 좋게 따돌려버린다. 가족 같은 동료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이한규는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팀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송지원의 얼굴에 고인 이야기의 빛이 외부의 어떤 이물질에도 손상되지 않는 투명한 빛이라면, 이한규의 얼굴에 고인 이야기에서는 언뜻 좀처럼 이렇다 할 ‘빛’이 우러나오지 않는 듯 보인다. 그는 얼핏 일상에 적당히 찌들고 세속에 웬만큼 물든 전형적인 40대 남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우아한 세계>의 조폭 아버지가 딸린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참아야 했던 참담한 굴욕이 남아 있고, <살인의 추억>에서 잡히지 않는 범인을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끝까지 추격했던 박형사의 무대포식 집념도 섞여 있고, <괴물>에서 아무런 힘도 무기도 없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선량한 아빠의 모습도 남아 있다. 물론 <넘버 3>나 <놈놈놈>에서 보여준 배꼽 빠지는 코믹 액션과 옹골찬 애드립의 기운도 남아 있다. 배우 송강호가 연기해온 이 모든 아버지와 아저씨와 남편의 자연스러운 집대성이 아마 <의형제>의 이한규일 것이다.



   송강호가 만들어낸 이한규의 얼굴은 대한민국의 보통 아저씨라면 누구나 견뎌왔음직한 산전수전과 어정쩡한 처세술의 노하우와 어디서도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가장의 슬픔을 버무린 ‘아름다운 평균치’가 아닐까. 이한규의 얼굴이 담아내는 이야기의 빛은 너무도 평범해서 영화의 러닝타임 중 절반이 흐르기까지 금방 쉽게 포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지극히 평범한 빛’의 광원(光源)이 가눌 수 없는 고독과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임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관객들은 어느새 송지원의 아련한 빛과 이한규의 능청맞은 빛이 절묘한 한 쌍의 언밸런스 커플룩(?)을 완성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고통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외적 표현성의 충일을 체험하지 못하고, 그것을 부분적으로만 체험할 뿐이며, 그나마도 내적인 자기지각의 언어를 통해서 그러하다. 그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근육의 긴장을 알지 못하며, 자신의 육체의 전체적이며 조형적으로 완결된 몸가짐, 즉 자신의 얼굴에 나타난 고통의 표현을 보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고통받는 외적인 형상이 나에게 의미화 되도록 하는 배경인 맑고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심지어 이런 모든 요소를 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예를 들어 거울 앞에 있다 할지라도, 그는 이런 요소들에 상응하는 정서적-의지적인 접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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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send 2010-03-03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의형제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마치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의 총결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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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 ④
  

 

4. 얼굴 위에 새겨진 이야기의 우주 (1)
 

   
  독자는 자신을 주연배우에게 감정이입하고, 주인공을 완결하는 모든 특징들(무엇보다도 주인공의 외양)을 무시하면서 마치 자신이 그 삶의 주인공인 양 주인공의 삶을 체험한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59쪽. 
 
   

  


 
   미술 시간에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는 자화상 그리기였다. 거울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하루 종일 거울 앞에 붙어 있어도 내 생김새를 정확하게 포착해낼 수가 없었다. 그림 속에서나마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마구 내 모습을 ‘성형’해보고 싶기도 했고, 명랑만화 주인공처럼 내 모습의 코믹한 부분을 극대화시켜보고도 싶었지만, 온종일 결국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멀뚱하게 앉아 있었다. 애꿎은 스케치북에는 좀처럼 알아볼 수 없는 괴상한 점선 자국들만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꾸역꾸역 그린 자화상의 결과물은 여전히 미완성이었고 다시 보고 싶지 않아 멀찌감치 치워놓아 결국에는 찾을 수도 없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올바로 그리는 일의 어려움을 그때야 실감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거울 앞의 내 모습이 낯설어지는 순간, 그 순간은 바로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내 모습’과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사이의 미묘한(때로는 섬뜩한)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 주인공의 삶에 자신을 감정이입시키는 매혹의 기원은 무엇일까. 우리는 자기 자신과는 다르지만 자신과 조금은 닮아 있을지도 모를 타인의 삶에 매혹되는 것이 아닐까. 관객은 영화의 스크린과 사운드에 사로잡혀 있을 동안 자신을 향한 자신의 끈질긴 시선을 잠시 망각할 수 있다. 관객석의 조명이 꺼지는 순간, 우리는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잊은 채 스크린 속의 타인의 삶을 향해 집중하기 시작한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아무리 외국인이어도, 성별이 달라도, 살아온 모든 환경이 달라도, 그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을 잊게 만든다. 영화의 스크린은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욕망과 등장인물이 지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시너지 효과로 관객을 유혹한다. 우리는 그렇게 스크린을 통해 ‘나’를 넘어선 ‘또 다른 나’의 잃어버린 가능성을 탐색한다. 
 




   <의형제>의 주인공 송지원은 자신과 같은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신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지닌 인물 ‘그림자’와의 대비 효과를 통해 관객의 마음에 성큼 다가온다. 오랫동안 국정원의 주요 타깃이었으며 해묵은 골칫거리이기도 했던 그림자는 냉혹한 킬러의 전형을 보여준다. “국제적으로 암약하는 살인마”라는 평가를 받는 그림자가 송지원과 함께 ‘처리’할 대상은 김성학이라는 귀순자였다. “인민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자란 새끼가 장군님을 모략하는 책을 써? 밤마다 네 목을 따는 꿈을 꿨어.” 김성학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서 관객은 송지원과 그림자의 차이를 감지한다. 송지원은 김성학의 가족까지 살해하라는 그림자의 지시를 차마 따르지 못한다. 김성학의 장모는 물론 아내까지 잔인하게 살해하는 그림자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지원은 김성학의 아이만이라도 살려주기 위해 애쓰지만 그림자는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송지원을 노려본다. “강성대국의 아이들 중에 나약한 놈은 한 놈도 없어!” 




   자신의 임무와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일치시킬 수 없는 비극의 주인공. 카메라는 조심스럽게 송지원의 눈 밑에 가득 드리운 절망의 그림자를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한다. 그는 빨리 이 임무를 마치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가족이 몰살된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소년의 삶을 무시할 수 없다. 송지원은 그림자에게 김성학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아이의 눈을 황급히 가린다. 자신만 살아 돌아가기도 바쁜 이 상황에서 송지원은 아이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셀 수 없는 고뇌와 절망의 흔적이 가득한 송지원의 얼굴에는 그렇게 ‘마음 약한’ 그가 걸어왔을 신산한 삶의 이야기가, 보일 듯 말 듯 아련하게 깃들어 있다. 그가 ‘남파공작원’의 신분에 걸맞지 않게 생면부지의 아이를 구하는 순간. 관객은 불현듯 그의 얼굴에 숨겨진 이야기의 풍경을 읽어내고 싶어진다. 검푸른 우울과 섬뜩한 고독, 투명한 설렘을 동시에 간직한 송지원의 얼굴 뒤에 숨겨진 이야기의 풍경을.  



 

   
 

물론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외적인 형상을 상상 속에서 그려보고, 외부에서 자신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내적인 자기 느낌의 언어에서 외적인 표현성의 언어로 옮기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느 정도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특별한 노력은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반쯤 잊힌 타인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가 체험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 나는 다소간 둘로 분열되는 듯하지만, 최종적으로 완전히 나누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두드러지게 제시하고 나의 내적 자기 지각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오기 위해서는 얼마간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에 성공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외적인 형상 속에 어떤 독특한 공허, 유령 같음, 그리고 조금은 섬뜩한 정도의 고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된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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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 2010-02-25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화상 그리던 미술 시간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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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 ③
  

 

3. 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3)  




그림자 : (공중화장실 문을 잠그고 송지원과 손태순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엉뚱한 제안을 한다.) 춤 한번 춰바라. 여기 아이들 유행하는 춤.
송지원과 손태순 : (그림자의 진의를 몰라 한참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둘 다 엄청나게 수줍어하며, 정말 어쩔 수 없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한의 유명 아이돌의 춤을 춘다.)
그림자 : 잘한다, 야. 공부하라고 지원해줬더니! (송지원을 가리키며) 네가 더 민첩하니까 넌 나하고 올라간다. (손태순을 가리키며) 넌 아래 있고. 


   남파 공작원 세 명의 급작스러운 조우를 묘사한 감독의 재치가 번득이는 장면이다. 베테랑 공작원 ‘그림자’의 냉혹한 카리스마와 주도면밀한 성격, 송지원의 내성적이고 순진한 캐릭터가 동시에 드러나는 장면이기도하다. <의형제>는 각각의 인물들이 겪어온 삶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압축하는 아주 자잘한 순간들을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어차피 인간은 타인의 삶 전체를 파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자기 자신의 삶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서로의 아주 작은 부분들만을 바라보고 그것을 전체를 향해 투사할 뿐이다.


   국정원 요원과 남파 공작원. 한국 관객에겐 너무도 상투적인 설정이지만 <의형제>는 그러한 해묵은 상투성에 갇히지 않는다. 느끼한 휴머니즘으로 등장인물의 갈등을 노련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감독과 관객이 만들어가는 촘촘한 시선의 그물 바깥으로 ‘인물의 잉여’가 조금씩 새어나가도록 내버려둔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송지원이라는 인물을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 그렇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좋았다. 관객이 주인공의 장단점이나 라이프스토리를 장악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의 시선이 가닿을 수 없는 스크린의 여백에 인물이 오롯이 존재하고 있는 그 느낌이 따스했다.




   우리는 스스로의 시야에 갇혀 타인을 바라보며 그것이 그의 ‘전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나 자신이 타인에게 비추는 인상에 자주 불만을 가지며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야’라고 변명하며 하루를 보내곤 한다. 우리는 정말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노력을 포기해야 할까. 우리가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우리가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혹은 ‘우리가 그의 행동을 어떻게 조심해야 할 것인가’ 같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경험적이며 편파적인 기준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정말 개개인의 이해타산을 넘어 한 인간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해하는 순간, 작가와 주인공 사이의 아름다운 거리감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바흐친은 우리가 한 인간의 ‘전체’를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리고 우리 자신 또한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한 인간의 전부를 놓고 마지막으로 그는 선한 사람이다, 악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이기주의자이다 등등으로 규정할 때에도, 이 규정들은 단지 우리가 그와의 관계에서 취하는 생활 속에서의 실제 입장을 나타낼 뿐이다. 이 규정들은 그를 규정하기보다는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없는지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전체에 대한 그저 우연한 인상이나 고약한 경험적 일반화를 제시할 뿐이다.
삶에서 우리가 흥미 있어 하는 것은 전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단지 그의 개별 행동들이며, 이 행동들이란 (……) 어떤 식으로든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것들이다. (……)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개성의 전체를 우리 자신이 가장 적게 지각할 수 있다.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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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팬더 2010-02-25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강동원, 아니 송지원의 옆모습에 숨이 멎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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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 ② 


2. 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2)  

   
 

“당신은 내 전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이 인물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나의 전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당신은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고 계십니다.” 이런 주인공은 작가에게 미결정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계속하여 다시 태어나며, 계속해서 새로운 완결 형식을 요구하면서도 이 형식을 주인공이 자신의 자의식으로 파괴해버린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47쪽.

 
   


    우리가 타인의 인상을 판단할 때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외모와 직업이야말로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정체성의 덫’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의형제>의 주인공 송지원(강동원)과 이한규(송강호)는 둘 다 매우 불리한 직업을 가졌다. 이한규는 국정원 요원이고 송지원은 남파 공작원이다. 너무도 ‘뻔한’ 직업이라 생각하기 쉬운 이 상투적인 정체성의 틀에 두 인물은 자칫하면 갇히기 쉽다. 누군가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사실 그 사람의 인상의 80퍼센트 이상이 결정되곤 하지 않는가. 게다가 그 직업이 ‘간첩’이나 ‘국정원 간부’라면 이야기는 더욱 단순명료해진다. 그 사람 고유의 삶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조직중심형’ 인간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형제>는 영화 초반부터 그 직업이라는 정체성의 틀을 살짝 비틀어 관객을 교란시킨다. 국정원 요원 이한규는 냉혹한 이성을 지닌 전형적 요원이라기보다는 가볍게 내뱉는 말과 표정 하나하나가 코믹하기 이를 데 없다. 송지원은 순정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수려한 외모에 자상한 아빠와 로맨틱한 남편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송지원이 전화로 북한에 있는 아내와 통화하며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장면은 ‘간첩에게 숨겨진 의외의 성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송지원의 모습임을 관객은 처음부터 믿게 된다. 그 모든 모순적인 캐릭터들이 두 사람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조금도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베테랑 공작원의 지시를 따르는 송지원. 그는 그림자와 접선하기 위해 암호를 해독한다. 가수 남궁옥분의 ‘재회’라는 노래가 나오는 순간 지원은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펼쳐 자신에게 도착한 암호를 읽어낸다. 같은 시간 이한규는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그림자가 보낸 암호를 해독하려고 백방으로 애써보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림자는 이한규의 오랜 표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송지원이 오래전 남파된 친구이자 공작원인 손태순의 차량을 타고 가는 것을 알게 된 이한규 일행은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송지원과 그림자 사이에 오가는 암호는 해독할 수 없지만 이한규에게는 손태순이라는 비밀 연락책이 있었던 것이다. 손태순에게서는 지원에게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과 결연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남한 여성과 결혼하여 아기까지 낳은 그는 이미 오래 전에 ‘남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손태순의 정보력을 믿는 이한규는 다른 부서의 지원을 받지 않고 단독으로 그림자를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듯 전형적인 ‘추격신’의 방정식을 따라가지만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스토리와 캐릭터의 균열을 경험한다. 감독의 시선은 마치 바다 위에서 윈드서핑을 하듯 끊임없이 흔들리며 주인공의 의무와 욕망사이, 직업과 성격 사이, 이성과 감성 사이의 균열을 포착해낸다. 이때 인물들은 영화라는 거대한 불가마 안에서 조금씩 자신의 빛깔과 형태를 찾아가는 도자기처럼 천천히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감독은 송지원을 있는 힘껏 노출시키지도 않고 지나치게 신비화하지도 않는다. 프레임 바깥에서 흔들리는 카메라는 주인공도 함께 따라서 흔들리도록 내버려둔다. 감독은 송지원과 이한규의 과거를 속속들이 파헤치지 않고도 그들의 라이프스토리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난 채로 내버려둔 것 같다. 작가-감독은 단순히 주인공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의 위치가 아니라 주인공의 세계 바깥에서 흔들리는 시점의 윈드서핑을 하며 그가 최대한 아름답게 비치는 카메라의 위치와 각도를 찾는다. ‘그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담담히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작가-감독이 포착할 수 없는 ‘잉여’에 인물이 존재할 수 있는 아련한 여백을 남겨 두기 위해.  



   
 

 작가는 자신 밖에 위치해야 하며, 우리가 실제로 우리 자신의 삶을 체험하는 차원과는 다른 차원에서 자신을 체험해야만 한다. (……) 작가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타자가 되어야 하며, 타자의 눈을 통하여 자신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사실, 삶에서도 우리는 매순간 이렇게 하고 있다. 우리는 타자의 관점에서 자신을 평가하며, 타자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의식에 대해 경계이월적인 요소들을 이해하고 고려하려고 노력한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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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send 2010-02-23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기 자신이면서도 자신의 바깥에 있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생각만해도 골치가 지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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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 ①


1. 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1)

   
 

내가 완결되고 사건이 완결되었다면, 나는 살 수 없으며 행동할 수 없다. 살기 위해서는 완결되지 않아야 하며, 자신에게 열려 있어야만 한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길, 2007, 38쪽.

 
   


   우리는 가족이나 연인, 절친이나 룸메이트처럼 가장 가까운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타인을 엿보며 끊임없이 탐색전을 펼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자신도 모르게 신경 쓰며 하루를 보낸다. 소설을 쓰는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의 관계,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주인공의 관계 또한 그렇다. 한 쪽은 끈질기게 엿보고 한 쪽은 좀처럼 자신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한 쪽은 ‘난 널 이해할 수 있어, 아니, 내가 널 만들었잖아!’라고 속삭이고 한 쪽은 ‘아니, 넌 날 결코 이해할 수 없어, 난 네 인식의 한계를 넘어 존재하지’라고 속삭인다. 
 

 


   영화 <의형제>를 바라보며 주인공을 바라보는 작가-감독의 시선의 위치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의 시선은 관객들에게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이 사람은 꼭 이렇게 이해해야 해’라고 강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입장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조바심도, 깜짝 반전을 통해 관객을 쥐락펴락하려는 과욕도 보이지 않았다. 영화 <의형제>에서 감독의 시선은 ‘창조자’라기보다 ‘메신저’의 역할에 가깝게 보인다. ‘자, 봤지? 바로 내가 이 인물들을 만들어냈어!’가 아니라, ‘나는 그냥 이 인물들을 당신들의 곁에 데려다주는 데에 충실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조용한 메신저의 역할 말이다. 
 




   <의형제>의 광고 콘셉트만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또 간첩 이야기야?’하는 의구심부터 일었기 때문이다. 두 남자의 미묘한 심리전이라니, 게다가 ‘의리’를 강조하다니, 유난히 마초적 의리를 강조하는 영화가 활개를 치는 한국에서는 좀 식상하지 않은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광고 카피는 영화의 매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그런 소재적 차원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의형제>에서 이념적 갈등이나 블록버스터적 스케일이 아니라 ‘한 인간’을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각도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감독의 시선이 느껴져서 좋았다. ‘나는 그를 알지만, 당신들은 그를 잘 몰라’라고 말하는 듯한 위압적인 시선이 아니라 ‘나는 그를 알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는 그는 그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듯한 감독의 담담한 시선이 좋았다.




   강동원이 연기한 송지원이라는 인물은 이미 오래 전에 완성된 캐릭터가 아니라 마치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끊임없이 흔들리는 관객의 마음과 함께 ‘만들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의형제>에서는 인물의 캐릭터가 처음부터 완전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조금씩 배우와 감독의 교감을 통해 만들어져가고 있는 한 인물의 마음이 걸어온 아련한 흔적이 느껴졌다. 게다가 불세출의 배우 송강호는 그가 연기하는 이한규라는 인물이면서도 ‘아, 역시 송강호구나!’하는 감탄을 잊지 않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반쯤은 배우이고 반쯤은 이미 감독이 된 듯한 내공을 보여준다. 그는 이한규라는 인물을 연기해내고도 마음의 여백이 한참 남아 ‘송지원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수 있으려면 내가 어디에 서면 될까’를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이한규가 선 자리는 과연 송지원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가장 가까운 인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의 진정한 얼굴, 온전한 얼굴을 보기 위해서 (……) 삶의 우연한 상황 때문에 그에게 씌워진 덮개들을 얼마나 많이 벗겨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라. 주인공의 견고하고도 명확한 형상을 얻기 위해 싸우는 예술가의 투쟁은 상당 정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 미하엘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길, 2007,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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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o 2010-02-2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의형제 극장에서 두 번 봤어요!^^

홀릭 2010-02-2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가-감독의 위치가 더없이 아름다운 영화ㅋ 저도 빨리 봐야 겠네요. 안그래도 강동원님 때문에 볼려고 하고 있었는데 ㅎㅎ

맨손체조 2010-02-2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핫핫핫, 역쉬, 최신 핫 영화^^* 바야흐로 강동원의 시대가 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