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인의 삶을 빼앗는 기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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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한 사람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오랫동안 심문을 받으면 분노에 휩싸이거나 자살을 하려고 하지.
반면에 죄가 있는 사람은 종종 말하기를 거부하거나 울어댄다.
자신이 그곳에 있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기 때문이지.
유죄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걸 인정할 때까지 계속 신문하는 거야.
- 영화 <타인의 삶>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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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모든 시민들에게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다. 그들은 이름이나 성격이 아니라 번호와 기호로 대상화된다.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잘못이 곧 누군가의 감시와 처벌로 즉각 처결된다. 이곳에 예술은 있지만 예술가의 자유는 없다. 영화 <타인의 삶>은 1984년 동독, 정보국 요원 비즐러가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곳은 ‘동독’으로 형상화되어 있지만 자유로운 삶이 불가능한 모든 장소의 알레고리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삶>이 그려내는 ‘자유 없는 도시’의 분위기는 익숙한 음산함, 친밀한 불쾌감을 자아낸다.
이곳에서는 모든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인덱스카드로 분류한다. 이곳에서는 국가의 감시체제가 개인의 정체성을 관리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 영리한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 시스템을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시스템’ 탓으로 돌리는 데 눈부신 재능을 발휘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신의 모든 잘못을 조직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역할을 전체 시스템의 하찮은 부속품으로 축소시키는 일이 쉬워진다. 그렇게 개인의 윤리적 책임은 ‘시스템’이라는 알리바이 뒤로 숨어버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안정된 삶’을 얻는 대신 스스로를 ‘무책임한, 무의미한, 그리하여 아무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사회에서는 아무리 다양한 욕망과 개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살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nobody’로 전락해버린다.
당시 동독에는 10만 명의 비밀경찰과 20만 명이 넘는 밀고자가 있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비밀경찰의 감시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 잿빛 도시에서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밀경찰 스타지(STASI: 구동독 시절 인민을 감시하던 비밀경찰)는 시인이자 극작가인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유명 배우인 크리스타의 예술 활동이 서방국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이유로 최고의 요원 비즐러를 투입하여 이들을 감시하게 만든다. 비즐러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자는 문화부 장관 브루노 헴프다. 그는 드라이든의 작품을 공연한 크리스타가 파티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그는 크리스타에 대한 사적인 욕망을 은밀하게 감춘 채 드라이만에게 접근한다.
“난 문화 행사에 수도 없이 금지 조처를 내린 사람이거든. 그래도 난 예술을 아주 좋아하지. 정부는 예술가들을 보호할 걸세. 동시에 그들도 정부에 빚을 갚아야지?” 드라이덴은 자신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들을 이미 감지하고 있다. “당신이 제 연극을 꼭 좋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 이 나라를 사랑합니다. 연극을 볼 때, 정치는 잠시 잊으실 수 없겠습니까? 모두가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헴프는 작가로서 마음대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도 없는 드라이덴의 고통을 마음껏 조롱한다. “한 사람의 사랑과 신념이 연극 하나로 바뀌지는 않소. 어디 당신 마음대로 써봐,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거든.”
이런 상황에서는 ‘한 사람’의 힘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거나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의 능력이 과소평가된다. 익명의 공동체 vs 파편화된 개인의 대립. 이 대립이 극대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유력인사의 영향력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성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저력은 터무니없이 과소평가된다. 사람들은 나 하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의 치명적인 질병이나 사고는 주변사람들의 삶 자체를 뿌리째 뒤흔들어놓지 않는가. 또한 스쳐가는 타인과의 우연한 만남이나 책 속의 문장 하나만으로도 우리 인생의 방향타가 완전히 바뀔 때도 많다. 우리는 셀러브리티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뉴스에, 검색어 순위 다툼으로 얼룩진 인터넷에 온순하게 길들여져, 자꾸만 이토록 중요한 사실을 망각한다. ‘한 사람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위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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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behavior)가 사회적으로 규범화된 활동이라면, 행동(action)은 기존 삶의 양태를 일정하게 벗어나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자발적인 활동이다. 이런 맥락에서 행동(action)은 실천(praxis)에 상응하는 용어로서, 현 상태의 변화를 지향하는 실천적 함의를 갖고 있다. (……) 한나 아렌트는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과 활동적 삶 (vita activa)을 대비시키고, 활동적 삶을 구성하는 근본 활동을 노동, 작업, 행동으로 개념화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행동, 즉 정치적 행동이 가장 중요한 인간의 활동이다.
-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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