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이던 H가 어엿한 1학년이 되어 독서교실에 다시 찾아왔다. 1년만의 재회. 매너남 조기 교육을 받는 어린이답게, 체크무늬 반바지에 흰 셔츠, 까만 구두 차림에다 해바라기 한 송이까지 들고 왔다. 나도 정중히 받았다. 


H는 며칠 전에 친구 소개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게임도 못(못!)하고 읽었다면서 가방에서 엽기 과학자 프래니 한 권을 꺼냈다. 차례를 펼치곤, 요기 요기 요기 요기 요기 요기가 재밌단다. 특히 요기가 재밌다고 해서 선생님도 읽어 보고 싶다고 했더니 문득 나를 바라보며 "같이 읽을래요?" 한다. 8세 남의 "같이 읽을래요?"라니. 


비록 "으스스한 소리"를 "스르르한 소리"로 읽고, "우스꽝스러운"을 차마 읽지 못해(아마도 여기에 진짜 '꽝'이라고 쓰인 걸까? 이렇게 안 어울리게? 하고 생각한 듯) 주저했지만 H의 낭독은 너무나 달콤했다. 같이 읽을래요? 그러고 말고, 그러고 말고. 



나는 이 책으로 화답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의숲 2015-09-16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쏘스윗 😆

네꼬 2015-09-17 11:19   좋아요 0 | URL
얼마나 진지하게 읽는지 들었으면 더 스윗하셨을 거예요 *..*

moonnight 2015-09-16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 이렇게 사랑스러운 (전문맹;;;)소년!!!♥♥♥♥♥♥♥ 저도 듣고 싶어요. 같이 읽을래요?^^(제 조카아이는 만화볼 때 말해요. 이거 재미있어요. 고모 같이 봐요. 그럴 때도 너무 달콤해서 녹아내리는 고모인데 같이 읽을래요?라니♥♥♥)

네꼬 2015-09-17 11:20   좋아요 0 | URL
전문맹 ㅎㅎㅎㅎㅎ 현재는 쓰기만 반문맹이에요. 어린이가 뭘 권하는 건 왜 이렇게 좋을까요? 그게 뭐든지요. 힝 문나잇님네 조카는 고모 좋아하는구나!

마노아 2015-09-1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렇게 사랑스러운 8세남이라니!!!

네꼬 2015-09-17 11:20   좋아요 0 | URL
제가 녹아요 안 녹아요? ㅠㅠ

뽈따구 2015-09-1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같이 읽자˝ 가 달콤한 말이었다는 걸......... 몰랐어요 >.,.<

네꼬 2015-09-19 12:1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에요. 내내 웃으면서 들었습니다. ^^

그리운남쪽 2015-09-20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꼬님!!
책정보가 필요할 때만 구경하던 알라딘서재를 네꼬님 덕분에 매일 들어오게 되고, 네꼬님의 거의 모든 글에 댓글을 막 다는 다락방님 서재도 어쩔 수 없이(?) 들락거리게 되고, 네꼬님이 일시적으로 절필하시면 금단현상에 막 시달리기도 하다가. 야튼 고마운 게 넘 많아서 이걸 다 어찌 일일이 거론한담, 난감하여 감사의 말도 일년 동안 못 남겼습니다마는. 8세남의 달콤함을 포착한 네꼬님의 사랑스러움을(으윽, 좀 간질) 찬양하지 않을 수 없어 일차로 감사의 말을 짧게(?) 써 보아요. 음...이런, 한 마디면 될 걸. 패...팬입니다!

네꼬 2015-09-21 14:54   좋아요 0 | URL
그리운남쪽님 안녕하세요? 패...팬레터 받은 건가요, 저? (대놓고 좋아 날뜀) 이 댓글은 앞으로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꺼내 보겠습니다. ㅠㅠ 저야말로 감사를 다 못 쓰겠는걸요. 야 네꼬, 너 열심히 좀 써라! (스스로 괜히 말해 보았어요.)

뽈따구 2015-09-2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꼬님 글을 보다가,
다락방님 글을 보게 되고,
다락방님글 댓글을 다는데 로긴 하라길래 하고,
로긴 한 김에 읽은 동화책 남겨볼까 하고 남겼더니......!
˝Thanks to˝ 라는게 있네요! (비록 1%로지만)
두 분 글 보고 책 많이 샀는데...... 아깝습니다!
뒤늦게 Thanks To를 눌렀으나, 이후 구매해야 적용되는는.... ㅡ.ㅡ
담엔 꼭 Thanks To 하고 살래요! ㅎㅎㅎㅎ

네꼬 2015-09-21 14:52   좋아요 0 | URL
이로써 제가 얼마나 다락님을 영업했는지(응?) 다락님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응??) 하하 이거 영광이에요. 앞으로도 열심히 소개해보겠습니다!
 

 

 

 

 

 

 

 

 

 

 

 

『너하고 안 놀아』는 노마, 영이, 기동이, 똘똘이 등 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마다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게 재미있다. 책을 읽은 뒤에 이야기 속 인물과 비슷한 친구 이름 적기를 했다. 슬기롭고 씩씩한 주인공 노마 옆에는 다들 자기 이름을 적지 않을까 했는데, 진우도 은호도 지은이도 약속이나 한 듯 석규 이름을 썼다.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놀이를 제안하고 역할을 나누는, 말하자면 리더 역할을 잘하는 아이란다. 다만 진우는 “근데 걔 좀 잘난 척을 해요.” 하고 볼멘소리를 덧붙였다.

 

 

 

 

 

 

 

 

 

 

 

 

그런데 『앨머의 모험』을 읽은 뒤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이 책은 엉뚱한 물건들을 배낭에 넣고 여행을 떠난 앨머가 결국 그 물건들 덕분에 모험에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앨머처럼 모험을 떠난다면 배낭에 무엇을 넣을지 목록 작성하기를 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친구 한 명까지는 같이 가도 된다고 했다. 역시 모두가 같은 이름을 적어 냈는데, 이번에는 석규가 아니라 세준이였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친구가 꼭 같이 있고 싶은 친구는 아닌 모양이다.

 

“세준이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아요.”

“세준이랑은 안 싸워요. 아무도 안 싸워요.”

“모르겠어요. 그냥 웃겨요.”

 

모두가 세준이를 좋아한다. 세준이는 외모도 성적도 보통인 평범한 아이다. 마냥 활발한 것도 아니고 이따금 수줍음을 타기도 한다. 그런데도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은 세준이와 같은 모둠이 되고 싶어하고 여자 아이들 대부분이 세준이에게 고백 편지를 썼다. 엄마들도 “애가 집에 와서 세준이 얘기를 제일 많이 한다” “어른인 나도 세준이하고는 얘기할 맛이 난다”며 세준이는 대체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사실 세준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 역시 세준이가 좋다.

 

세준이는 어른들에게는 물론 친구에게도 인사를 잘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특별히 신경 써서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인사를 받으면 답을 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세준이가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의외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적절하게 대꾸한 뒤에 자기 얘기를 한다. 세준이와의 대화가 즐거운 것은 바로 이런 매너 때문이다.

 

 

 

 

 

 

 

 

 

 

 

 

『만복이네 떡집』은 마음과 달리 자꾸만 못된 말과 행동이 튀어나와 친구가 없는 만복이가 이상한 떡집을 발견하고 친구 사귀는 법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입을 딱 달라붙게 하는 찹쌀떡, 좋은 말을 하게 하는 꿀떡, 남의 생각을 듣게 하는 쑥떡 덕분이다. 같이 책을 읽던 세준이가 자기는 이 떡집에서 파는 떡 중 ‘오래 오래 살게 하는 가래떡’을 사 먹고 싶다고 했다.

 

“이거 값이 아이들 웃음 아흔아홉 개인데, 너무 비싸지 않아?”

“한 번에 여러 명이 웃으면 되잖아요!.”

 

역시 세준이는 통이 크구나, 했더니 즐겁게 웃던 세준이가 문득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저희 반에도 욕하고 짝꿍이랑 만날 싸우는 애가 있는데요, 걔가 속마음은 되게 약해요. 근데 그거 다른 애들이 알까 봐 일부러 막 더 세게 하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엄마가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저도 좀 그런 것 같아요.”

 

세준이의 인기는 결국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세준이 자신은 친구들의 마음을 다 받아주느라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준이는 모험용 배낭에 각종 요리 도구와 만화책과 게임기를 넣겠다고 하면서도 친구 이름은 적지 않았다.

 

“꼭 친구랑 같이 가야 돼요?”

“아니야. 혼자 가면 심심할까 봐 그러지.”

“그럼 혼자 갈래요. 저는 심심한 거 좋아요!”

 

친구가 많지만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세준이. 이런 세준이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2학년  / 2015년 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댓글(6) 먼댓글(1)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약한 속마음, 센 겉행동
    from 뽈따구책방 2015-11-05 16:16 
    어제 아들이 친한 친구가 짝꿍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막 다 속상해서 "왜 그럴까" 싶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네꼬님이 글로 써준 세준이 말이 생각났다. “저희 반에도 욕하고 짝꿍이랑 만날 싸우는 애가 있는데요, 걔가 속마음은 되게 약해요. 근데 그거 다른 애들이 알까 봐 일부러 막 더 세게 하는 거예요.” 와... 이런 말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더불어 아들의 또 다른 친구의 일기도 생각이 났다. "★
 
 
다락방 2015-08-06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준이가 자라면 저 같은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하하하하하


=3=3=3=3=3=3=3=3=3=3=3=3=3=3=3=3=3


네꼬 2015-08-08 09:32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은 말씀보다 도망 방귀가 핵심이군요!

뽈따구 2015-08-06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진우, 은호, 지은, 석규, 세준이 다 초등학교 2학년일까요? ㅎㅎ
(문득 나이가 궁금해지네요. ^^)

세권다 미리보기가 재미난데, 특히 만복이네 떡 집은 미리보기가 참 재미나네요.
근데 중고책방엔 ˝만복이네 떡 집˝만 없어요. 슬퍼요. ㅜㅜ.

네꼬 2015-08-08 09:35   좋아요 0 | URL
네 저 이야기 속 아이들은 모두 2학년이에요. 각자 성격이 더 잘 보이는 때인 것 같아요. (1학년은 뭐 대화를 하는 데 의의를 ㅎㅎ)

만복이네 떡집은 읽으면 떡 먹고 싶은 부작용이 좀 있습니다. 그림이 사실적인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먹고 싶어져요. 중고 등록 알림 서비스를 받아보시지요!

moonnight 2015-08-06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세준♡ 제 조카아이들도 세준이같은 어린이로 성장했음 좋겠어요. ^^ 한편으론 세준이도 나름 힘들어서 친구 없이 모험을 떠나고 싶어하는 건가 싶어서 안스럽기도ㅠㅠ

네꼬 2015-08-08 09: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세준이가 친구 없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 좀 걱정을 했어요. 세준 어머님도 그렇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MBTI 검사를 했더니 (나 자격증 있음 엣헴) 자기가 좋아서 친구랑 노는 것 같더라고요. 막 그것도 멋짐. *ㅅ*
 

 

 

 

 

 

 

 

 

 

 

 

 

 

한때는 흙으로 척척 빚어 사람을 만든 하느님이 지금은 송편 하나를 어쩌지 못해 쩔쩔 매고 있다. 얼굴에도 팔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들 예수도 재주 없기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할머니가 친절히 알려주는데도 멋쩍어 얼굴을 붉힌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은 오순도순 사람 사는 정에 가슴이 더워지고, “원래 심보 나쁜 사람은, 송편 빚어 놓으면 그렇게 못생겼단다.” 하는 할머니 핀잔에 눈물이 핑 돈다. 그래, 내가 못나서 사람을 못나게 빚은 걸 누굴 탓하겠냐, 그래, 내가 미안하다 하시겠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의 삽화는 사실 예술적이기보다는 통속적인 그림에 가깝다. 90년대 초반 동네 서점 어린이 책 코너를 휩쓴 ‘소년소녀 명랑 소설’ 그림이 그랬듯, 특별한 기법 없이 단순하고 재미있게 그려진데다 모든 면에 그림이 들어간다. 딱 만화 같다. 이런 그림의 강점은 만만함이다. 하긴 하느님이 우리 곁에서 가난하고 힘들게 산다는 이야기인데 그림이 세련되면 못나 보이고 비장하면 민망했을 것이다. 할 줄 아는 일은 없으면서 툭하면 울고 떼쓰는 천덕꾸러기 하느님, 어둡고 축축한 지하 셋방에서 앓으며 에어컨 있는 아파트에 사는 꿈을 꾸는 하느님 이야기는 세속적이고 평범한 그림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나는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그림보다 더 좋은 삽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아직 통일이 안 되었으니 아직 이 땅에 계실 텐데, 지난 한가위에 하느님은 어디서 송편을 빚으셨을까.

 

 

 

* 계간 『창비어린이』 2014년 겨울호에 쓴 것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뽈따구 2015-08-0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만화 같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책을 찾아봤어요. 잘 읽겠습니당~ /^^

네꼬 2015-08-04 17:19   좋아요 0 | URL
뽈따구님 (닉네임이 너무 재밌어요 ㅎㅎ) 일단 이 동화가 좋은 작품이에요. 권정생 선생님이 웃긴 것도 잘 쓰신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기회 되시면 꼭 읽어봐 주세요! (^^)/
 
왕자는 없다.

다락님께 그림책을 권했다 실망을 안겨드리곤 하는 장본인으로서 ㅠㅠ

어딘가 죄송한 마음으로 변명 삼아 간단히 적어 봅니다.

 

그림책은 여러모로 취향 타는 영역이지요.

어른과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 사이, 어린이 사이에도 좋아하는 책이 엇갈리고요.

저 역시 남의 추천에 혹했다 실망하기도 해요.

정답은 없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좋은 그림책을 찾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림책을 읽어야 되는 이유는 없습니다.

타미에게 읽어줄 책을 찾으신다면 일단 타미가 좋아했던 책에서 출발해서 찾아보면 좋겠죠.

 

제가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역시 변명으로 제 생각을 적자면..

저는 어린이의 그림책 읽기와 어른의 그림책 읽기가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 쪽이고,

어린이 스스로 그림책을 고르기는 어려우니까,

어른이 가능한 한 어린이의 눈을 염두에 두고 골라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물론 자기가 먼저 좋아야겠죠. 저는 결국 그렇게 되더라고요.

어떤 책은 자신 있게 골랐는데 반응이 뜻뜨미지근하고

어떤 책은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아이가 좋아하기도 해요.

시시한 책도 재밌게 읽어줘서 성공할 때가 있고요.

 

저는 어린이에게 그림책 읽어 주기가 (흔한 비유대로) 화분에 물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장면의 어떤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남을지 알 수 없다는 뜻에서 나온 비유겠지요.

어떤 꽃이 필지 모르고, 심지어 꽃이 안 필지도 모르지만 충분히 물을 주는 것.

그런 마음으로 저는 읽어 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계속 죄송한 마음으로 (저 이제 추천 안 할게요 ㅠㅠ)

저의 경험을 메모해 봅니다.

 

저는 이 책을 초등학교 2~3년 아이들과 읽었어요.

 

표지의 느낌이 어떤지 (시원해요, 끈적거릴 것 같아요, 웃겨요, 수박 먹고 싶어요, 이거 수박씨예요?) 어떤 내용일 것 같은지 (수영하면서 먹을 것 같아요, 엄청 작은 사람들 얘기 같아요) 물어보고 읽기 시작했어요.

수박이 갈라지는 장면을 보고, 와 엄청 잘 익었나 보다, 하면 어떤 아이들은 아 수박 먹고 싶다, 그러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별 요령이랄 것 없이 책에 나오는 글자를 그대로 읽어 주었습니다. 석석석석 글자를 짚으면서 읽으면 아이들도 따라서 석석석석 세어가면서 읽었어요. 그러다 몰입했는지 해가 지는 장면에서 "아아 안 돼.."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더라고요. 다 읽고 다른 수영장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이 책은 7세~초등 2학년과 읽었어요.

 

흑백 그림에 얼의 스카프만 빨간색이어서 아이들이 잘 집중하더라고요. 사람 친구한테 자꾸 도토리를 얻어 오는 얼에게 엄마가 "얼, 얘기 좀 하자."고 할 때 약간 엄마들 말투로 했더니 많은 아이들이 "아아 얘 혼날 것 같아요." 했어요. "우리 엄마도 이럴 때 있는데 그러면 혼나는 거거든요." 그럴 때 같이 낄낄 웃고요. (엄마들 죄송...) 이 책은 얼이 집을 나서서 스스로의 힘으로  도토리를 구하는데 거기엔 친구가 준 빨간 스카프가 힘이 되었다는 것, 그런 성취 다음에는 얼이 스카프 없이 혼자 힘으로 도토리를 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숨은 주제인데, 저의 경우는 그런 주제에 대해 말하지 않고 읽어주기만 했어요. 화분에 물을 주듯이. 어떤 아이는 "근데 왜 (스카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다시 도토리를 찾으러 가요?" 묻기도 하더라고요. 그 이유에 대해선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고요.

 

그림책을 고르는 저의 딜레마는 '어른 취향'이 아니면서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어린이와 읽고 싶다는 데 있어요. 제가 어른이니까 딜레마죠;;; 그래도 저는 제가 좋아해야 어린이가 좋아한다는 믿음은 쭉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공부하는 만큼 어린이도 공부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다짐만;; ) 하고요. 아직 제 공부가 부족해서 다락님한테는 번번이 실팬가 봐요. 어어어엉엉엉. 저를 버리고 가세요. ㅠㅠ 저를 버리세요. ㅠㅠㅠㅠㅠㅠ

 

 

 

 

 

가만,  

아니면 내가 너무 소개를 잘하나??? 괜히 막 혹하게??? (뭣이????????????) 

 

 

 

여러 모로 죄송합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5-08-03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리보기로만 봤는데... 깨알같이 귀여운 사다리와 할아버지의 뒷모습, 수박씨 빼고 쏘옥 들어앉은 모습도 전부 맘에 드네요~~ㅎ 뭐랄까 네꼬님적인 귀여움 ㅋ

네꼬 2015-08-04 00:21   좋아요 0 | URL
수박 수영장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노는 거랑, 휠체어 탄 친구 데리고 오는 거랑 다 귀여워요. 할아버지가 수박씨 빼고 앉는 장면은 제 고객님들도 좋아했어요. 그러나 네꼬적이라뇨 (정색)

아무개 2015-08-04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책=시집
제겐 같은 난이도 입니다. ㅠ..ㅠ

네꼬 2015-08-04 17:20   좋아요 0 | URL
아으아 전 다 그래요;;; 우리 같이 울까요? ㅠㅠ

다락방 2015-08-04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네꼬님. 고맙습니다.
일단 우리 조카들은 아직 한글을 모르고요(타미는 식구들 이름 아는 정도), 그래서 그림 예쁜걸로 골라본건데 그림에도 끌리지 않더라고요. 이게 책의 문제가 아니라 타미의 취향인 것 같은데요, 이 아이는 책을 안좋아해요. 전혀. 생일선물로 책을 아홉권 줬더니 얼굴에 실망이 가득가득... 그런데 이 못난 이모는 조카가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고...그러니까 자꾸만 그림책을 사서 안기고 보여주고 그러는데 .. 조카는 이모 뜻대로 잘 되질 않아요. 엉 ㅠㅠ
저는 세 살 조카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 아이가 책을 더 좋아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같은 거죠.

위에 아무개님 쓰신 대로 저는 동화책과 시집이 너무너무 어려워요. 무슨 말을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좋다는 시집도 읽어보고 동화책도 읽어보고..그러는데 그냥 머리가 멍-해져요. 그 누구지, 박정대였나, 리스본 어쩌고 하는 시를 읽다가도, 왜 리스본에서 이러고있나..싶어지고... 뭔가 있는건가.. 저는 그림책 읽는 뇌가 전혀 발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시도 부지런히 읽고 그림책도 부지런히 볼거에요, 네꼬님. 뭔가 길이 열리고 빛이 보이지 않을까요? 이렇게 계속 하다 보면 말예요. 자꾸 무슨 국어 수업때처럼 뭔가를 찾고자 해서 제가 제대로 못보는 것 같아요. 소설 읽기에서는 그걸 탈피한 것 같은데(뭘 찾아야 되지? 가 아니라 제멋대로 읽기 말예요) 그림책만 보면 자꾸 뭘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주제라든가 교훈이라든가 하는 거 말예요. 아이들=책 읽고 교훈 뭐 이런 공식을 나름대로 넣어두고 있는 것 같은 ..


그러니까 이런 긴 댓글 끝의 결론은, 저는 네꼬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네꼬님의 페이퍼를 열심히 읽고! 계속 부지런히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그림책 읽기를 계속 할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지치지말고 이 여름, 계속계속 그림책 리뷰, 그림책 페이퍼 써주세요. 팬입니다!! 그러다 뭐 하나는 이거다! 싶은 거 나오지 않겠어요? 전 그 책 좋아요. [리디아의 정원] 이요!!


-여섯살 조카가 엘사를 좋아하는 데 엘사를 모르는 슬픈 이모... 드립니다-

네꼬 2015-08-04 17:21   좋아요 0 | URL
으악이래 ㅎㅎ
아무튼 저의 답변은 이 페이퍼고요. ㅠㅠ
책이 언제 타미 마음에 꽂힐지, 같이 기회를 봅시다. (응?)

뽈따구 2015-08-0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얼, 얘기 좀 하자˝
˝아아 얘 혼날 것 같아요.˝

아아아아. 반성하고 있는 엄마입니다. ㅡ.ㅡ

네꼬 2015-08-04 17:23   좋아요 0 | URL
아아 아아 네 저도 엄마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그래도 이성적으로 좋게 얘기하시려고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게 혼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애들이 ˝아아 얘 혼날 것 같아요˝ 할 때 귀여웠어요. ㅋㅋㅋㅋㅋ)
 

삼형제 중 둘째인 지우는 또래보다 속이 깊고 말수가 적다. 처음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 텐데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지우에게 늘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회사를 운영하느라 늘 바빠 “지우에게 마음만큼 다정하게 대해줄 시간이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지우와 『넌 누구 생쥐니?』를 읽었다. 책 속 아기 생쥐는 엄마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고양이 배 속에 있다고 대답한다. 아빠는 쥐덫에 갇혔고, 누나는 여행을 떠났고, 남동생은 없다며 더 풀이 죽는다. 그러나 아기 생쥐는 결국 용감하게 가족을 되찾고 남동생도 얻게 된다. 책을 읽은 다음 아이에게 ‘지금 아빠는 무얼 하실까, 엄마는? 누나는?’ 하고 물으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지우 엄마는 지금 뭘 하고 계실까?”

“회사에서 전화 받아요. 일하고 열 시 넘어서 와요. 엄마 회사가 늦게 끝나거든요.”

 

의도치 않게 지우도 아기 생쥐처럼 풀이 죽었다.

 

“어떤 때는 아침에도 와요.”

“엄마 오실 때까지 기다리니? 아니면 자?”

“아빠가 자라고 하고 형이랑 동생은 자는데 나는 거의 안 자요.”

“그러면 학교 가서 피곤하지 않아? 엄마 아빠 걱정하실 텐데.”

“누워 있는데 잠 안 올 때도 있고, 잤다가도 눈이 떠져요. 엄마 오면.”

 

지우는 깨어 있어도 방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가 방에 들어오면 잠깐 인사하는 게 전부라고. 엄마는 일찍 퇴근하는 날엔 집에서 일을 하신단다.

 

 

 

 

 

 

 

 

나는 엄마들은 모두 늘 바쁘다며 『엄마 등에 업혀서』를 읽어 주었다. 세상 모든 아기들이 안아주는 걸 좋아하지만 엄마 아빠는 온종일 바쁘기 때문에 갖가지 방식으로 아이를 업는다. 아마존에 사는 엄마는 아이를 한쪽으로 둘러멘 채 숲 속을 걷고, 파푸아뉴기니 엄마는 아기가 담긴 그물을 이마에 걸고 일하고, 캐나다 북쪽에 있는 누나부트 엄마는 아기를 외투 모자에 넣고 얼음낚시를 한다. 책을 읽고 지우에게 이중 어느 나라 식으로 업히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고민하다 답한다.

 

“업어주는 건 이제 힘드니까…… 그냥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지우는 담담한데 내가 괜히 찡해졌다.

 

회사 다니는 엄마만 바쁜 것이 아니다. 태인이네는 아빠가 일이 바쁜데다가 출퇴근 시각이 불규칙해서 엄마가 온종일 태인이와 동생을 돌본다. 아빠가 애정 표현이 많은 편이어서 아이들과 아빠 사이는 무척 좋지만 엄마가 받는 ‘업무 하중’은 적지 않은 모양이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태인이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고 토로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셔서 언니와 단둘이 보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그런 빈자리를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하루는 엄마 대신 이모가 태인이를 독서교실에 데려다 주었다.

 

“선생님, 우리 엄마 휴가 갔어요. 오늘은 엄마 혼자 논대요.”

 

나중에 태인이 엄마에게 들으니, 언니와 한 달에 한 번씩 서로의 아이들을 봐주고 번갈아 휴가를 갖기로 했단다. 둘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앞으로 15년이나 남았으니 체력을 비축해야겠다 싶더라고.

 

“우리 엄마 이제 퇴근도 해요. 밤에 아홉 시부터는 엄마 퇴근이래요.”

 

엄마가 아빠처럼 ‘퇴근’도 하고 ‘휴가’도 내는 것이 재미있는지, 태인이는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열 시에 자기만 하면” 엄마 퇴근 이후로는 자유 시간인 것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빠가 일찍 퇴근하시면 같이 “엄마 데리러” 갈 거라는 태인이에게 『엄마 마중』을 읽어 주었다. 추운 날 전차 정류장으로 엄마를 마중 나온 아기가 지나가는 차장마다 붙잡고 “우리 엄마 안 와요?” 묻는다. 꼼짝 않고 엄마를 기다리면서 코끝이 빨개진 아기를 보고 태인이는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엄마한테도 읽어주고 싶다며 책을 빌려갔다. 글쎄, 태인이는 웃었지만 엄마는 어쩌면 코끝이 빨개질지도 모르겠다.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1학년  / 2015년 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니루 2015-07-2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으앙.. 뭐죠.. 왜 제 코끝도 빨개지는거죠 ㅜㅜ

네꼬 2015-07-30 13:54   좋아요 0 | URL
비니루님 코 흥! 풉시다

뽈따구 2015-07-2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꼬님은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시지만, 아이들 마음도 같이 읽어주시나봐요. ^^

네꼬 2015-07-30 13:55   좋아요 0 | URL
뽈따구님, 마음을 읽는다니 그럴 수 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ㅜㅜ 제 마음도 몰라요. ㅜㅜ

아무개 2015-07-2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잉~
쿨쩍~

네꼬 2015-07-30 13:56   좋아요 0 | URL
여기도 코 푸실 분 있네요... 같이 풀어요. ㅠㅠ

moonnight 2015-07-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ㅜㅜ 네꼬님이랑 책읽는 아이들은 참 행운이로군요^^

네꼬 2015-07-30 13:56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의 이 말씀은 좀 아이들도 들었으면 좋겠네요. (겸손이란 없다...)

슝슝 2015-08-0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거 보고 <엄마 등에 업혀서> 바로 사러 갑니당 >_< 감사해요

네꼬 2015-08-04 19:58   좋아요 0 | URL
슝슝님 안녕하세요? 별말씀을요! >..<

다락방 2015-08-0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네꼬님하고 책 같이 읽고 싶어요 ㅠㅠ

mong 2015-08-04 17:57   좋아요 0 | URL
다락님 우리 같이 신청합시다!

네꼬 2015-08-04 19:59   좋아요 0 | URL
어디서 만날까요? ^^

mong 2015-08-06 14:04   좋아요 0 | URL
네꼬님 좋은 곳으로 ^^

네꼬 2015-08-06 15:24   좋아요 0 | URL
알림 센터에 ˝네꼬님 좋은 곳으로˝라고 뜨는 거 보고 완전 놀랐잖아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ong 2015-08-0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재미있다

네꼬 2015-08-08 09:31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하 나도 재미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