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저 구름처럼 느려. 이 잎에서 저 잎까지 가는 데 한참이나 걸려. 나뭇잎 사이가 아무리 가까워도 건너뛰지도 못해. 아직은 작고 어린 애벌레니까.

그래도 나중에 나비가 되면 구름처럼 하늘을 둥둥 떠다닐 거야. 이깟 나뭇잎이 대수겠어? 저 나무 끝까지 날아오를 거야.

- 김원아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중에서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 이것은 미성숙한 존재가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르는 스토리에서 흔히 쓰이는 은유다. 너무 흔해서일까? 애벌레에서 어린이를 연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도 실제 동화에 등장한 경우는 별로 없다. 작가는 영리하게도(영리한 것은 얼마나 좋은가!) 이 빈자리를 좋은 동화로 채워 넣었다.


소재만 잘 잡은 게 아니다. 앞서 애벌레를 '미성숙한 존재'로 흔히 은유한다고 했는데, 애벌레로서는 지금 자신이 완전한 존재다. 언젠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될 존재가 아니라, 오늘의 애벌레로서 하루를 산다. 먼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는 형님들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배춧잎에 모양을 내면서 재미를 찾고,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몽상에 잠긴다. 그리고 당장에 닥친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세계를 구해낸다. 


7번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장면은 물론 아름답지만, 나는 그 장면 없이도 이 이야기가 많은 것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나비가 되지 않고도 7번 애벌레는 완전한 생명이다. 어린이도 그렇다. 어른이 되기 전이라고 해서 미완성의 존재가 아닌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조금 바꾸자면 어린이에게는 오늘까지가 평생의 삶이다.


작은 판형에 그림이 많고 귀여우며 문장이 단순하다. '첫읽기책'이라는 시리즈 의도에 비해서는 이야기가 긴 편이지만, 이 시리즈로 나온 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 작가의 첫 책이라는 점도 반갑다. 상 이름 그대로, '좋은 어린이 책'.



+ 함께 읽는다면









꼬마 애벌레 말캉이 1, 2 (황경택 만화)

궁금한 건 못 참고, 심심한 건 더 못참는 애벌레 얘기.

깜짝 놀랄 만큼 뻔뻔하다는 게 웃음의 포인트인데

읽다 보면 은근히 감동을 받는다.

초등 1학년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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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자란 스기노는 일상을 살면서도 '시선을 딴 데 두는' 사람이었다. 스기노는 열두 살이 넘어서도 어린애처럼 엉뚱한 짓을 하곤 했다. 멸종한 바닷새에게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띄우기도 하고 교실의 뜯긴 마룻바닥 아래 콩나무를 심기도 했다. 두 손 놓고 자전거 타기나 공중그네를 연습하는 소녀였으니 서커스에 빠지는 것도 당연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정해야 했을 때도 마술사나 선원이 되고 싶어 했다. 결국 병든 부모를 돌보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느라 고향 마을에 정착해 살면서도 그런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것, 위험한 것에 끌리던 그녀는 결국 마술사에게 매혹되어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젊은 남편과 어린 두 아이를 남겨 두고서.


식구들 사이에서 외할머니는 빨래를 널다 떨어지는 사고로 돌아가신 것으로만 되어 있었다. 외할머니, 즉 스기노에 얽힌 비밀을 알아낸 것은 이제 열두 살인 후코다. 여름방학을 보내러 시골 외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빨래 널 때 쓰는 2층의 문이 신비한 정원으로 연결되는 문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젊은 시절 행방불명된 외할머니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후코 역시 정원에 매혹되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뻔하는데, '온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외친 친구 덕분에 위험에서 벗어난다. <<시계 언덕의 집>>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바닷가 마을의 평화로운 정경이 공들여 묘사된 것은 나처럼 인내심이 적은 독자에게는 힘든 코스였다. 스기노뿐 아니라 여러 마을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러시아 문물에 대한 얘기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비밀의 문은 금방 찾았는데, 문 안쪽에서 신나게 모험하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것도 의아했다. 후코가 이 정원의 진짜 주인일 것이라고 짐작한 매력적인 소녀 마리카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거의 지루하다고 할 작품인데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은 것은 작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결국은 속이 시원해지거나 웃음이 나거나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그래서 후코의 외할머니가 미지의 것을 동경하다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내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외할머니를 되찾는 것도 아니고, 그 죽음 혹은 행방불명을 위로하지도 않는다니. 냉정하다. 작가에 대해 배신감마저 들었다.


다카도노 호코는 <<꼬마 할머니의 비밀>>에서 어려지는 옷을 발명한 할머니들이 모험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할머니들은 어린이의 몸이 되어서 갖가지 문제를 겪고 해결해나면서 '어린이다움'의 힘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진지한 씨와 유령 선생>>은 빡빡하게 살던 진지한 씨가 유령과 마주하면서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이야기였다. 달리 말하자면 환상이 느긋함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유독 스기노에게는 이렇게 가혹할까. 그건 지금 후코가 어른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후코는 그 속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환경 속에서 홀로 경험하는 세계, 그것이 가져다주는 해방감.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동안은 어른이 되는 걸 두려워했지만 어른이란 건 어쩌면 부모의 자식이나 가족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으로만 존재하여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두렵기는커녕 아주 멋진 일이었다." (211-212쪽) 


방학 동안 느끼는 해방감은 어른이 된 느낌으로 혼동될 수 있지만, 이어지는 대목에서 후코가 할 수 없이 방학 숙제를 하는 것처럼 아직 완전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아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해방감과는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마법에 기댈 수도 없고, 환상에 빠져 현실을 잊을 수도 없다. 단지 '허락되지 않은 것' 정도가 아니라, '위험한 것'이다. 차갑게 들리지만 그 점을 알게 하는 것이 정말 후코를 위하는 길인지 모른다. 판타지는 이상으로서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나락이 될 수 있다. 외할머니는 끝내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해 추락했고, 외할아버지와 엄마, 외삼촌은 그로 인해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분명 초원의 끝까지 달려가서 바늘 산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움의 대가, 그것은 너무나도 비쌌던 것입니다." (272쪽)


후코와 함께 비밀을 풀어가던 친구 에이스케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후코가 환상에 빠져 추락하려 할 때 온힘을 다해 그녀를 부른다. 후코가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를 찾은 것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온기와 힘이 담긴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환상이 아니라 사람에게 의지해서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현실이란.


후코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그때 문을 열고 본 세계의 아름다움과 위험을 잊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나도 마음이 풀리고 안심이 된다. 다시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정도가 아니라 작가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는 이제 좀 컸다고 환상의 세계를 잊으면 안 돼, 하고 독자를 묶어두지 않는다. 오히려 머무르려는 독자를 등떠밀어 삶으로 내보낸다. 그렇다면 이제 환상의 세계는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후코가 추락할 뻔했던 2층의 문 밖으로 떨어진 회중시계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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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죄수

송경동




천상병시문학상을 받는 날

오전엔 또 벌 받을 일 있어

서울중앙법원 재판정에 서 있었다


한편에서는 정의인 게

한편에서는 불법, 다행히

벌금 삼백만원에 상금 오백만원

정의가 일부 승소했다


신동엽문학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날 오후엔

드디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벅찬 소식을 전해 들었다


상 받는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닌 듯 종일 부끄러운데

벌 받는 자리는 혼자여도

한없이 뿌듯하고 떳떳해지니


부디 내가 더 많은 소환장과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의 주인이 되기를

어떤 위대한 시보다

더 넓고 큰 죄를 짓기를 마다하지 않기를























*


읽으면서 눈물이 솟았는데, 옮겨 적으면서  결국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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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알라딘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신부가 짐작보다도 훨씬 예뻤다. 신부의 친구들마저 예뻤다. 이제 드디어 남의 결혼 사진에서 빠질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우울했으나 모처럼 공들여 한 화장이 아까워서 이번까지는 사진을 찍기로 했다. ('안 찍으면 신부가 서운해할 것 같다'는 착한 친구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기도.) 부케 받는 분이 사진 각도 만드느라 고생하신 덕분에 웃음이 넘쳤다. 그 웃음에 녹아서, 우정에 대해 생각했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친구들, 그 중에 얼굴을 마주한 사람들, 그중에 이렇게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들. 고맙고 뭉클하다.


모처럼 놀러 나온 길, 남편과 나는 잔칫집 점심을 먹고 슬슬 서울 구경을 하기로 했다. 충동적으로 성북동에 갔다. 어린 시절 종종 갔던 성당과 그 골목은 그대로지만, 많이 변한 모습을 보니 감상이 새로웠다. 회상하니 기분이 좋으냐고 묻는 남편에게 "좋기도 하고 좀 안 좋기도 하고. 근데 어떻게 사람이 좋은 것만 돌아보고 살겠어요."라는 훌륭한 말을 해버렸다. 우리는 교보문고로 차를 돌렸다.


주말의 교보문고는 이상한 곳이다. 책 읽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된다. 무신경하게 자리잡고 책이나 물건을 보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나는 싫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들었는데 저렇게 함부로 펼쳐 보는 책들은 이제 어떻게 되나? 그런 생각도 안 할 수 없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 역시 이 순간 남을 불쾌하게 만드는 '많은 사람' 중 하나겠지, 씁쓸해졌다. "이제 교보문고 안 올래요." 내가 말하자 남편은 "아니에요. 또 오게 되면 또 와요." 한다. 현명한 사람.


명동 교자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세상에, 여긴 어쩜 이렇게 늘 맛있을까! 비록 면이 평소보다 퍼졌지만 진한 국물과 고소한 만두, 양념 범벅의 겉절이 김치 모든 게 맛있다. 게다가 그렇게 붐비는데도 밥 먹기에 정신 사납지는 않은 매장 운영이 마음에 쏙 든다. 가만 보면 직원들이 모두 일을 잘한다. 인원 확인 -> 좌석 또는 대기 줄 위치 배정 -> 주문과 계산 -> 음식 서빙 -> 김치와 밥 리필 이 모든 과정이 유연하다. 사람이 많다고 빨리 나가라고 눈치 주지도 않고, 급하다고 대충 서빙하는 법도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그릇을 치울 때도 손님 눈을 보면서 "맛있게 드셨어요?" 한다. 조그만 포스터를 보니 올해가 창업 50주년이라며 사연을 공모한단다. 진지하게 나도 내볼까 생각했다.


주말 명동이라니 사람이 얼마나 미어터질까 각오했는데 의외로 다닐 만했다. 관광객이 많아서 불편하다고들 했는데, 사실 나도 서울 관광객이니 뭐. 신중하게 샤워 퍼프를 고르는 일본 아주머니들, 알록달록한 인형 수레 앞에 멈춰서 일행을 부르는 중국인 가족, 행인을 붙잡고 메뉴판을 내밀며 "삼겹살, 김치전"을 설명하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나는 이런 활기가 좋다. "여보, 너무 재미있어요. 너무 좋아요." 더 놀고도 싶고, 추워서 차로 돌아가고도 싶어서 갈팡질팡했다. 남편은 "한 블럭만 더 걸어요." 한다. 이런 다정함이 나는 그렇게나 좋다. 동네로 돌아오는 길에 '명동이 소문만큼 막 관광객 관광객 하지 않고 놀 만 한 곳이던데, 사람들 너무 엄살이었나 봐' 하고 말하려는데 남편이 먼저 말한다. "호들갑 떠는 만큼 요란하지 않네요." 나는 그렇게나 좋다.


남대문시장 근처에서 차가 신호 대기하고 있을 때 문득, 몇 년 전의 데이트가 생각났다. 여보, 우리 그때 이쪽으로 어디어디 다녔었지, 그때 우리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땐데, 기억 난다, 얘기를 나누면서 입가가 간질간질했다. 그때 쓴 일기를 오늘 꺼내 본다.


*

지난 주말 나는



오래간만에 학교 앞 떡볶이 집에 갔고
사람이 너무 많은 유원지에서 오후를 보냈고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늘 좋아했던 영화를 또 보았다.
작정하고 찾아간 식당이 쉬는 날이라 다음을 기약하고
조개가 많이 들어간 칼국수를 먹었다.
소공동 골목길에 늘어선 오래된 양복점 진열장에서
새로 들어온 천과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나무 가구를 구경하고
명동 입구 골목 문 닫힌 ‘만물쎈타’의
구식 사진기와 라이터, 마작, 시계, 열쇠, 술병 들을 들여다보았다.
메뉴판 제목부터 철자를 틀린 길모퉁이 커피숍에서
제일 싼 커피를 시켜놓고 옛날 사진들을 오래오래 보았다.
영화관에 갔더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
서점에 들러 그림책을 몇 권 읽고
감자고로케와 새우튀김을 먹고 밤공기를 쐬었다.

 

이 모든 일들을
둘이서 했다. 
 


*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서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고 새 밥을 했다.

다정하고 똑똑하고 재미있는 남편,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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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2-22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함께 생일축하합니다! :)

네꼬 2016-02-22 12:16   좋아요 0 | URL
으헤헤 감사합니다. (점심시간인데 왜 댓글이!)

다락방 2016-02-22 12:17   좋아요 0 | URL
저는 후발대에요. 좀 이따가 점심 먹으러 갈거에요. 배가 고파서 돌아버릴 것 같아요!!

네꼬 2016-02-22 12:20   좋아요 0 | URL
어 그러게, 배고플 것 같아서 내가 다 초조..

다락방 2016-02-2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는 네꼬님이 좋은것처럼
네꼬님 글도 참 좋아요!
(댓글 폭탄!!)

네꼬 2016-02-22 12:20   좋아요 0 | URL
하트 폭탄 (ㄲ ㅑ )

무해한모리군 2016-02-2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꼬님 행복했겠다~

네꼬 2016-02-23 16:54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흐 (최대한 음흉하게 웃어 보았어요.)

아무개 2016-02-22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정하고 똑똑하고 재미있는 남편이라니..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네꼬 2016-02-23 16:55   좋아요 0 | URL
헤헤 제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렇게... (팔불출)

뽈따구 2016-02-2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모든 일들을
둘이서 했다

와... 감동적이에요. ♡

네꼬 2016-02-23 16:56   좋아요 0 | URL
혼자 해도 좋겠지만 저는 둘이 해서 더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좋아요. 하트 감사합니다. 넙죽.

치니 2016-02-2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간질간질, 저처럼 무미건조한 사람까지 녹아내리게 만드는, 어쩜 이렇게 글을 사랑스럽게 쓰실까요, 우리 네꼬님은. :)
혹시라도 남편 분이 이 글 보신다면 또 얼마나 기분이 좋으실까요. :)

네꼬 2016-02-23 16:57   좋아요 0 | URL
치니님이 간질간질이라고 쓴 거 보니까 제가 녹는걸요. (이상하다?)
그저 왈왈 합니다. 활활 왈왈

비로그인 2016-02-22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생일 축하드리고요. 일기를 맛깔나게 잘 쓰셨네요. 약간만 다듬어면 시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의 시로 만들어 보세요. *^

네꼬 2016-02-23 17:07   좋아요 0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시 쓸 생각은 없지만... (^^)

서니데이 2016-02-22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 오늘 대보름입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네꼬 2016-02-23 16:59   좋아요 0 | URL
구름에 가렸지만 보름 잘 보냈습니다. 추웠어요.
서니데이님,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네요!

moonnight 2016-02-2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네꼬님 남편분 생일 축하드려요!!!! 여보라고 부르는 우리 네꼬님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만 제 볼이 빨개집니다. (주책 죄송 ㅠ_ㅠ;;;) 이 모든 일들을 둘이서 했다. 에서 저도 그만 녹아내림. ㅠ_ㅠ(또 주책 죄송 ㅠ_ㅠ;;;;)


그나저나, 많은 사람들이 교보문고 칭찬을 할 때 출판사 분이 쓴 기사를 읽었어요. 네꼬님 말씀하신 대로, 무신경하게 펼쳐보고 헌책이 되어버린 책들에 대해서는 서점이 책임지지 않는다고. 반품이 되어 출판사로 되돌아오는 그 많은 책들에 대해 마음아파 하시는 글이어서 저도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만든다는 명목하에 출판사에는 손해를 강요하게 되는 형국이라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ㅠ_ㅠ;;;

네꼬 2016-02-24 16:22   좋아요 0 | URL
헤헤 축하 감사합니다. 주책은 제가 주책이죠;;; (이건 확실함..)

겉으로는 서점이 통 크게 독자에게 쏘는 것 같은 인상인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지요. 돈도 돈이지만 저 책들의 운명이 걱정돼요. 그런만큼 모두들 살살 보면 좋을 텐데 그게 그렇질 않아서 마음이 그랬어요. 힝. 공감해주시는 문나잇님 고맙습니다.

웽스북스 2016-02-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와주셔서 넘 감사해요!!! 네꼬님이 쓴 글을 읽으며 저도 마음의 위로를 받고...!! ^^
제가 피부관리를 안받아서 네꼬님한테 혼날 각오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예쁘다고 해주셔서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청담동 만세!)

결혼을 하니까 네꼬님 글에도 등장하고 좋군요!!!!! 사진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네꼬남을 못봐서 ㅠㅠ 서운 ㅠㅠ
그래도 결혼식 오신 김에 두분 데이트도 하셨다니 또 막 좋고 그렇습니다!!! ㅋㅋㅋㅋ

네꼬 2016-03-04 13:35   좋아요 0 | URL
웬디님, 다시 한번 축하해요. 즐겁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그러시길요! (^^)
전 이제 가족 외 결혼 사진은 찍지 않겠어요... ... 안 찍을 거야.. ..
덕분에 데이트도 즐거웠습니다. 봄은 사랑의 계절. (응?)

2016-03-01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4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제사 음식을 좋아한다. 특히 전이 좋다. 시댁에서는 감자와 고구마, 연근을 쪄서 식힌 다음 전을 부치기 때문에 겉이 바삭하고 속은 잘 익은 전을 먹을 수 있다. 부추전(현지 명칭은 정구지전)도 고소하고 특히 꼬치전(?맞나?)이 좋다. 맛살과 햄과 단무지와 쪽파를 꼬치에 끼우고 있으면 이건 정말 전통과는 한참 멀구나 싶지만, 여기에 계란물을 입혀 부쳐 놓으면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아서 자꾸만 손이 간다. 파뿌리, 양파 껍질, 무 껍질 등과 함께 푹 삶은 수육도 좋다. 특히 문어 숙회는 썰면서 집어먹고 싶은 걸 늘 간신히 참는다. 고사리를 비롯한 각종 나물을 넣고 비빈 제삿밥은 그야말로 정점. 소고기와 무, 두부를 듬뿍 넣고 끓인 탕국과 함께 먹으면 몇 그릇이고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쓰면서도 먹고 싶다. (옆길로 새고 있다...) 사과, 배, 한과로 디저트까지 먹고 나면 염분과 지방에 대한 걱정도 가라앉는다. 오히려 제사상이 사실은 균형잡힌 식단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나이므로 음식을 하는 것도, 차리고 나르는 것도, 설거지도, 별로 힘들지 않다. 어머님과 형님이 어려운 걸 다 해주시기도 하고, 남편도 아주버님도 빼지 않고 일하는 덕도 크다. 아버님 제사를 위해서 다른 친척들이 와주시는 것도 보기 좋다. 친척 어른들이 "오느라고 고생했다, 와서 얼굴 보니 좋다."고 말씀해주시면 왠지 어깨가 으쓱하고 마음도 푸근해진다. 제사는 좋다. 다만 나는 나도 절을 하게 해달라는 거다. 왜 여자는 절을 안 시켜주는가! 그것이 불만이다. 나의 경우는 제사 음식을 준비하거나 뒷정리를 할 때보다, 남자들이 절하는 동안 얌전히 물러 서 있는 순간에 확실한 부엌데기가 된다. 나도 절을 하고 싶다. 나도 돌아가신 아버님께 인사 드리고 싶고, 세상을 떠난 가족을 잊지 않는 따뜻함을 다른 가족들과 나누고 싶다. 같이 준비했으니까 나도 그럴 자격이 있다.


같이 일하고 같이 절하자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한 가지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제사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의견을 내는 것이 주저되었다.


다른 예로 수십 년 전(수십 년 전....) 내가 다닌 대학에서는 '빨간 립스틱은 페미니즘의 적'이라는 식으로 여성의 섹시함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천박하게 여기는 어떤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짧은 치마가 좋았고 하이힐을 신으면 허리가 잘록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는 아가씨였으므로 그런 분위기가 싫었다. 그러면서 '어머니 대지'라는 추상적인 명명으로 여성성과 생태주의를 연결하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성을 지우는 것도 아니고, 강조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배우지 못했다. 페미니즘은 모든 성별을 존중하는 것이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약자가 없게 만들기 위한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모두가 잘 살아야 되니까 생태주의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걸 수십 년 지나서 깨닫게 된 것은 단지 내가 공부를 못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전혀 아니라고는 못함.) 아마 당시의 여성주의 교육에서는 그게 한계였을 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는 잘 짚어서 가르쳐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이 책인 것 같다.

















나는 제사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다. 그래서 같이 절할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다. 나는 쉬폰 드레스를 좋아하고 반짝이는 목걸이를 좋아하고 빨간 색을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다. 우리나라의 결식 어린이와 먼 나라의 저체온증 어린이를 위해 세이브더칠드런 캠페인에 동참했지만 '개념녀' 운운하는 홍보에 질려 항의하고 매몰차게 후원을 끊은 페미니스트다. (어린이들에 대한 죄책감은 그들의 몫이므로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교육에는 엄격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사람으로서 젠더의 평등 역시 확고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에는 여러 길이 있다. 모든 성별에 공정하고 모두의 행복에 관심이 있으니 당연히 그렇다. 페미니즘에 막연한 불편, 나아가 공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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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2-18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네꼬 2016-02-18 14:38   좋아요 0 | URL
동지! 덥석

cyrus 2016-02-1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부장 중심 문화가 강한 대가족은 여전히 남자들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게 아닙니다. 지역마다 문화가 차이가 있듯이 제사 방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제 친가에서는 남자 친척 분들만 제사를 지내고요, 외가에서는 오히려 남자 친척 분들이 여자 친척 분들에게 같이 제사 지내자고 말합니다. 처음에 외가 쪽도 남자들만 했는데, 시대가 바뀌니까 같이 지내는 분위기로 형성되어 제사를 지냅니다. 정확히 어느 지역에서 남자와 여자와 같이 제사를 지내는지 잘 모르지만, 시대가 변한만큼 제사를 준비하는 여자들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집안은 다 같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을 겁니다.

다음 명절 때 제사를 지내기 전에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 여자들도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건의하듯이 말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외가 친척들이 제사 지내는 풍경을 선호합니다. 모두가 같이 제사상을 준비하고, 제일 중요한 제사는 한 사람 빠짐없이 지내는 것,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거든요. ^^

네꼬 2016-02-18 17:08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가톨릭 식이라 단촐했지만) 함께 제사 준비하고 절하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라기보다 집집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요. 저도 그래서 처음에 놀랐고요.

변화의 속도도 집집마다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세대부터 남자들이 장을 봐오고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정리하는 것, 제사 전후로는 외식하면서 피로 푸는 것 등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각 세대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변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요. 건의로 해결될 만큼 단순하진 않으니까요.

moonnight 2016-02-18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으로 백만번 좋아요를 누릅니다^^ 제 큰집에서도 남자여자 다함께 절해요. 다들 그러면 좋겠어요. 제사음식 준비와 뒷정리가 힘들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네꼬님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새애기^^

네꼬 2016-02-18 18:06   좋아요 0 | URL
어이쿠 백 만 번이나요. 저는 제가 먹은 거 치운다고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거든요;;;; (진짜로 많이 먹음) 그나저나 새애기라고 하기에는 약간.... =_=

꿈꾸는섬 2016-02-1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처럼 `나는 페미니스트다`하고 당당히 외치고 싶은데 요샌 제 정체성조차 혼란스러워서 당당하지 못한 것 같아요. 책을 먼저 읽어봐야겠어요.^^

네꼬 2016-02-19 17:18   좋아요 0 | URL
뭘요. 당당하다기보다는.. 한편으로는 모든 성별이 평등하다는 게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따로 말 안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랬고요.

무스탕 2016-02-1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사..살롱해요, 고릉고릉고릉~~~♡

네꼬 2016-02-19 17:19   좋아요 0 | URL
살롱이라니, 살롱이라뇨. 사랑아니고? (왜 당당히 말을 못해! ㅋㅋ)

2016-02-18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9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족 2016-02-19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음. 과거에 남녀협상같은 데 제가 여성대표로 참석하면, 읭 그래, 니들 그거 해-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 나는 밥해서 먹이는 일을 하지,라고 협상을 마쳤을 거 같아요.
처녀 적에는 그게 되게 힘든 일이고, 싫은 일이고, 고생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는 남편에게 `네가 사람노릇하려고 결혼했지? 여자사람 데려가서 일 시켜먹을라고`라고도 했었는데. 지금은 맛없다고 타박하지만 않으면 먹이는 거 너무 즐거워요.

네꼬 2016-02-19 18:17   좋아요 0 | URL
음, 그러니까 뭔가 먹을 것을 만들어 주는 걸 좋아하신다는 거죠?
저도 좋아해요. 누구든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면 좋고요.
저 역시 남이 만든 것 엄청 잘 먹고요.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삼천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