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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성석제 지음, 김경호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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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아저씨의 산문집이 새로 나왔다.

아저씨를 '열렬히'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이 나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모종의 관계 덕에 (아저씨하고는 아니지만) 문제의 신간이

음식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에 능청맞은 묘사가 일품인 아저씨, 그 솜씨가 음식을 만나면 어찌 될지 너무 뻔하다.

재밌을 게 너무 뻔하다. 그래서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역시!

 

 

음식을 먹는 일은 끼니를 때우는 것과 엄연히 다르다는,

사람과 음식의 그물망이 얼마나 촘촘한지 모른다는

어찌 보면 진부하고 어찌 보면 철학적인 이야기를

아저씨는 아주 감칠맛나게 들려 준다.

음식에 대해 몰랐던 정보들이 수두룩 한 것도 장점.

읽다보면 먹고 싶은 음식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라면 조심하는 게 좋겠다.

 

 

 

 

한토막 : <입속에 가득차는 환희 - 겉절이> 중에서

 

자, 이제 밥을 비벼 먹어보자. 비비는 그릇은 작은 그릇보다는 바가지, 함지 같은 커다란 용기가 좋겠다. 많이 비벼서 그릇으로 나누어 여럿이 먹는 게, 혼자서 적당한 그릇에 비벼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 막 솥에서 꺼낸 밥, 뜨겁고 윤기 흐르는 밥에 숨이 죽은 겉절이를 섞는다. 숟갈을 두 개씩 양손에 나눠들고 '썩썩' 비빈다. 이 '썩썩'이 중요한 점이다. 황소가 풀을 먹을 때처럼,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쓸 때처럼 힘있고 숙달된 자세, 힘의 낭비가 없되 힘있게. 숨이 죽는 동안 삼투압작용으로 겉절이에서 나온 물이 비비는 일을 쉽게 한다. 다 비벼진 밥을 그릇에 나누어 담아 먹는다. 향긋한 맛. 이건 참기름의 공로다. 산뜻한 질감. 이건 배추의 공덕이다. 혀를 바쁘게 만드는 양감. 이건 밥의 은혜다. 더이상 구별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은 과식을 한다. 여럿이 둘러앉아 경쟁적으로 숟가락질을 하다 보면 양을 조절하기가 힘이 드는 데다 맛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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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 - 불멸의 아티스트 17명의 초상
박명욱 지음 / 그린비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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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시대와 조우하지 못한 천재 예술가들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출판사에서 출판 기획 일을 하다가 지금은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는 저자 박명욱은, 모르긴 몰라도 굉장한 에너지로 스스로를 못살게 굴고 있을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소화한 그의 문장들은 하나같이, 찐득찐득하다. 지성과 감성이 범벅이 되어 우리를 공격한다. 우리, 그러니까 작가와 독자. 그가 소개하는 불멸의 아티스트 17명을, 그렇게 시대에게 이해받지 못한 상태로 떠나 보낸 우리를.

 

 

작가는 '(예술가들이) 세계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무덤에서 줄줄이 불려 나와 자신들이 지난한 삶과 예술의 역정이 흉하고 볼품없는 짧은 글 속에 구겨지는 수모를 겪었다' 라고 겸손하게 쓰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 문장 한 문장의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다. 때로 작가가 너무 많이 갔다 싶을 때가 있는데 내 생각엔 작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어서 내버려 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심한 것도 봐 줄 수 있다.

 

 

그가 소개하는 예술가들은 다음과 같다 :

파졸리니, 안토니오 가우디, 실비아 플라스, 에릭 사티, 스티글리츠, 다자이 오사무, 캐테 콜비츠, 블레즈 상드라르, 콘스탄틴 브랑쿠시, 다이안 아버스, 모리스 위트릴로, 구스타프 클림트, 발르라프 나진스키, 루이 페르디낭 셀린, 로버트 카파, 히에로니무스 보슈.

 

 

음..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엔 하나 둘 셋 넷 다섯 명을 알았고, 책을 읽다 보니 그 사람이 이 사람이었구나 하는 사람이 하나 둘 세 명이었다. 나머지는 정말 생소했고 그리고 실은 다 잘은 모르겠다. 으으으으음....-_-.

 

그러나 이 부분만큼은 다음 인물로 넘어가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

 

영화 라임 라이트에서, 잊혀지고 한물 간 왕년의 대희극 배우로 분한 찰리 채플린이, 가난과 무명과 기회 없음을 슬퍼하며 자꾸 죽으려고만 하는, 아래층에 사는 한 젊고 아름다운 발레리나에게 한 말처럼, 언젠가는 우리를 찾아올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삶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비아 플라스에 관한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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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섬에 가면 참치가 있을까?
베라 에거만 지음, 안영희 옮김 / 꼬마Media2.0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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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를 맘껏 먹지 못하는 게 늘 불만이다. 이건 고양이들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다. 나는 캔에 든 참치를 무척 좋아하는데 언제나 양에 차지 못하는 기분이다.  반 캔을 먹어도 두 캔을 먹어도 늘 그렇다.  김밥 안에 들어간 참치도 늘, 좀 더 들어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샐러드에 든 참치도, 김치 찌개에 든 참치도. 그래서 이 그림책은 제목만으로도 나를 확 잡아당겼다.

 

주인 아줌마의 귀가가 늦어지자, 고양이 울리는 여자친구 에밀리와 함께 참치섬을 찾아 떠난다. 참치섬에는 참치가 무진장 많은데, 게다가 통조림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모양이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발레리아가 말하길, 자기는 할머니가 거기 사시기 때문에 방학 때마다 간다는 거다. 배를 타고 가야 한다고 일러 준 것도 발레리아다. 셋이 함께 생선상자 배를 타고 참치섬을 찾아 나선 바닷길, 여행은 환상적이고 참치에 대한 열망은 점점 커진다. 그러다  "뚜우~!" 하는 굉장한 소리에 돌아보니, 어마어마한 어선이 들어온다. 아니아니, 다시 보니 그건 '주식회사 싱싱생선'의 트럭이다. 앗, 그러고 보니까 벌써 여섯 시 반. 아줌마가 오실 시간! 울리와 에밀리는 맛있게 저녁을 먹는다. 냠냠.

 

스위스 문화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선정한 책이라고 한다. (근데, 그냥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 정도까진 아닐지 몰라도, 꼴라주 기법을 적절히 이용해서 생기를 살린 그림이 인상적이다. 더구나 서재부터 시장까지 수많은 타이포들을 일일이 다 우리말로 바꾼 편집진의 노력에 입이 딱 벌어진다. 자칫 어색할 수 있었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성공한 시도로 보인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야옹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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