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타
마틴 클루거 지음, 장혜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이야기의 배경을 알고 있어야 내용의 이해가 쉽다.
시대적 배경을 모르고 읽으면, 나처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는 읽어도 읽어도 도무지 내용 파악이 안 되는 지점이 많아, 
배경적 설명을 찾아보고 책을 다시 읽었다.

시대적 배경은 비스마르크 시대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주요 무대는,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혼란과 흥분으로 가득하면서도,
19세기 새로운 의학적 발견의 중심지가 되었던 독일 베를린이다.
바로 그 독일의 베를린의 한 자선병원 산부인과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헨리에타.’
그녀는 공방을 운영하는 목수 아버지 파울과
자유를 꿈꾸는 집시 여인(실제 집시는 아님) 어머니 루이제의 딸이다.
그러나 헨리에타는 어머니의 목숨과 맞바꾸어 생명을 얻은 가혹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엄마를 죽인 아이’라는 무지와 편견 속에 태어난 헨리에타의 인생은
그야말로 무지와 편견과의 끝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아버지 파울이 자선병원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어,
헨리에타는 자선병원 의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자라게 된다.
자선병원의 위대한 학자들 틈에서 ’아이’라는 특권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새로운 의학적 지식을 접하며 성장하는 헨리에타는
자신이 ’엄마를 죽인 아이’가 아니라,
엄마를 죽인 진짜 범인은 바로 ’세균’이었음을 알게 되고,
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키운다.
그러나 헨리에타의 꿈은 사회를 지배하는, 여성을 차별하고 속박하는
구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정면 충돌이 불가피한 도전이었다.

당시 여성에게 학문은 금기시 되었다.
건물과 다리와 역들은 끊임없이 세워지고 부서지고,
의학은 새로운 발견이 계속되는데, 사람들의 사고 수준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사회의 편견과 금기,
그러나 헨리에타는 포기하지 않고 의대 수업을 받기 위해 남장을 하는 대담한 도전을 한다.

[헨리에타]의 표지에 보면,
"아버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엄마는 이제야 행복을 찾았노라고 썼다.
하지만 나는 강을 건너 저편 물가에 도달하고 싶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아버지 파울.
그는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구시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구시대에 저항하며 새시대를 열어갈 딸을 낳다 사망한 헨리에타의 엄마 루이제는,
강 건너 저편을 바라보며 "이제야 행복을 찾았노라"라고 썼지만,
그녀의 딸 헨리에타는 직접 "강을 건너 저편 물가에 도달하고 싶어 했다."

[헨리에타]가 보여주는 삶과 시대 착오적인 무지와 편견을
’여성 차별’의 문제로만 국한시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풍족한 소유 속에 그저 오늘을 즐기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고 있는 요즘 사회 분위기에서
내가 안타까운 것은 ’강 저편 물가에 도달하고 싶다’는 높은 이상을 향한 도전이나
옳은 것을 향한 열정적인 투쟁과 같은 고상한 삶의 철학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저항하거나 맞서 싸우기보다
적당한 타협과 차선적인 선택으로 영악하게 살아가는 나의 오늘이 서글퍼진다.
비록 무모할지라도 도전하고 시도해보는 ’무한도전’식 어리석음을 보며 
혼자서 위대하다고 느끼며 감동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새시대를 열어가는 학문적 진보의 주역으로서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모순된 무지와 편견 속에 ’헨리에타’를 외면했던 동료들처럼,
스스로는 나름대로 깨어있는 정신이라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여전히 무지와 편견 속에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엄습해오는
그런 문제의식으로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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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무릎 - 기도의 야성을 살려라! 기도 없이는 결코 살아 남을 수 없다!
전병욱 지음 / 두란노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남동생이 경기도 부모님 댁에 와서 며칠 머물렀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삼일교회까지 새벽예배를 드리러 간다며
그 새벽에 스스로 일어나 나가는 동생을 보고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유난히 아침 잠이 많아, 깨울 때마다 어머니와 전쟁을 치뤘던 동생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동생으로 하여금 그 달콤한 새벽 잠의 유혹을 이기게 만들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 새벽에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달려나갈 수 있게 만들었을까?
소문으로 듣던 삼일교회와 전병욱 목사님의 위력을 너무도 생생하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삼일교회로 달려나가는 동생을 보며,
미치도록 피곤하다고 불평하는 나의 입이 다물어졌다.
두란노에서 개정 출판한 [낙타 무릎]을 다시 읽었다.
위에서부터 물 붓듯 쏟아부어주시는 살아있는 영성에 너무나 목말랐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며 지쳐가는 내 안에서 
자꾸만 ’이건 아니잖아!’라고 외치는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씩 기도하며 [낙타 무릎]을 집필했다고 하는 전병욱 목사님!
기도밖에는 다른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전병욱 목사님은
모두가 "안 된다"고 결론 지었던 세 가지를 보기 좋게 뒤집어놓았다.
모두가 더 이상 회심 성장은 어렵다고 했을 때, 영적 부흥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젊은이의 부흥이 어렵다고 했을 때, 교회로 몰려드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교회 건물이 없이는 안 된다고 했을 때, 
건물이 없이도 교회는 부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힘들다", "피곤하다", "상처 입었다"고 하는 ’똥개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나약하게 살지 말고, 나태하게 살지 말고, 실패자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인의 저력, 기도의 야성을 회복하라고 외치는 [낙타 무릎]의 사자후에
내 무릎이 꺾인다.

경제위기의 불안 앞에 세상과 함께 두려워 떨고,
글로벌한 국제사회에 발맞추어 다종교에 대한 세련된 매너를 논하고,
성장하지 않는 교회를 바라보며 새로운 프로그램과 세미나를 찾아 헤매고,
돈이 없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며 여러 가지 제안들을 포기하고,
돈이 될만한 각종 기독교 상품들, 값비싼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목회자도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며 각종 자격증과 학위를 따러 다니기에 바쁜,
이 한심한 예수님의 제자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교회에서 사역하는 바로 나이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비빌 언덕이 없어도,
심지어 말구유도 빌리고, 배도 빌리고, 나귀도 빌리고, 무덤조차 빌려 사역하시면서도,
모든 무릎을 그 발 아래 꿇게 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기에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한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하나님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히는 못난 자녀는 아닌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전병욱 목사님의 서슬 퍼런 외침이 가슴을 후벼판다.

[낙타 무릎]은 
기도의 자리로 나오라고 외친다.
초대 교회의 영성을 회복하라고 외친다.
성공이 아니라 사명에 목숨을 걸라고 외친다. 
복음의 능력을 맛보아 알라고 외친다.
세상을 호령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강력한 교회가 되라고 외친다.

책을 덮으며 내가 누구인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무엇을 사모해야 하는지,
벅차게 가슴에 차오르는 무엇이 있다.
부흥에 목마르다.
모두가 위기라고 말하는 이 때에, [낙타 무릎]을 다시 읽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전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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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셔넬라 Passionella
줄스 파이퍼 글.그림, 구자명 옮김 / 이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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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고 대접받는 표현과 소통의 방식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인지, 아니면 단순한 인구학적인 이유,
즉 인구가 많아지는 만큼 기호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예술이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표현방식들이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그중 '만화'도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한 역사가 짧은 장르 중 하나이다.
만화는 '주변적인 장르' 에 머물며,
'지식인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물건'이라는 편견을 받아왔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 초반 사이에 혁신적인 만화 스타일로
만화를 문학이나 영화, 연극과 동급의 예술장르로 인정받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전설적인 만화가가 바로 [패셔넬라]의 작가 '줄스 파이퍼'라고 한다.
게리 그로스(판타그래픽스 북스사 발행인 겸 주간)는 줄스 파이퍼의 [패셔넬라]가
"2,30년 전까지만 해도 저급한 장르로 취급받던 만화가 마침내 성숙한 예술로 자리잡는 데 
줄스 파이퍼의 기여가 결코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극찬한다.
만화사에 선 굵은 이름이니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줄스 파이퍼는 당시까지만 해도 만화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사회, 정치, 문화, 섹스 등의 주제에 대해 정면 도전했다고 한다.
[패셔넬라]에 수록된 총 6편의 만화들도 모두 풍자적이면서, 시사적인 만화에 가깝다.

한 편, 한 편의 풍자와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지만 내가 재밌게 본 것은,
네 살의 꼬마가 군대에 입대하는 황당한 모험 이야기를 그린 [꼬마 병사 먼로 이야기]이다.
실제로 작가의 인생에서 '군대 경험'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군대을 이렇게 고백한다.
 "그때까지 믿어왔던 모든 가치와 모든 수준에 대립하는 세계에 던져진 것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무한 복종이 미덕인 군대에서 작가는 오히려 비판적인 성향과 
반항적인 기질을 배우고, 기존 질서에 역행하려는 충동을  담아온 것이다.
그의 작품 안에서 작가의 이런 성향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줄스 파이퍼가 '도시풍의 지적인 연재만화'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태를 풍자하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던져주는 강력한 메시지가 가진 
공감능력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압축된 만화 안에서 그는 참 많은 것을 보여주고, 지적해주고, 말해주고, 생각하게 해준다.

[패셔넬라]는 쉽고, 빠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쉽게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책이다.
이미 오래전에 그린 만화인데도 연예산업, 군대 조직, 국가주의, 소통과 사랑과 관계의 
"속성"을 풍자적으로 짚어내 압축한 날카로운 그의 통찰과 기법은 시대를 관통한다.

압축의 묘미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만화를 만나 가볍게 즐기면서도,
긴 여운이 남는 감동이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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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반양장) -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일 묵상집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2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잘 아는 소련의 공산주의자 ’스탈린’은 어릴 때, 신약성경 전 권을 암송했다고 한다.
티벳의 영적 지도자이면서 불교를 대표하는 ’텐진 갸초’라는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영국의 저명한 가톨릭 신부들의 초청을 받고 성경 사복음서를 강의했다고 한다.
또 김용옥 교수라는 분은 방송에서 ’요한복음 강해’를 강의하기도 했다.

스탈린, 달라이 라마, 김용옥 모두 성경을 알고, 공부했고, 가르칠 능력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컫는 사람은 없다!
성경을 지식적으로는 많이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상관 없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성경에는 정복 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으로 만난 거듭남이 없다면,
그 삶에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말씀의 실천이 없다면, 
그는 주님과 상관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배우지만, 
정작 예수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일 묵상집 [주님의 나의 최고봉]은,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제자들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석구석 만져준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영혼 속을 몇 번이나 휩쓸고 지나가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가장 탁월한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서,
하나님 자녀의 삶을 이모저모 건드리고 만져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성경 해석보다 적용에 탁월한 지도자가 진정한 영적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말씀 적용은 날카로운 검 같이 나의 영혼을 깊이 후벼 판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 안에 살아 있는 말씀이 내 안에 어떤 일을 행하신다.

[주님의 나의 최고봉]은 1월부터 12월까지 365일을 
어떻게 그리스도인답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를 매일 묵상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야 하고, 예수님의 완전하심과 같이 완전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이다. 날마다, 날마다이다. 
그러나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 안에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복음의 위대한 능력과 자유케 하는 역사가 충만하게 흘러 넘친다.
"거룩한 삶의 경이로운 비밀은 예수님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함이 나의 부패한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7월23일, 거룩의 신비).

이 책의 강점은, 그저 무엇을 행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원리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말씀 안에서 명확하게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고,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아는 것이다.
"우리는 ’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구원받은 것입니다."
(3월10일, 말씀과 하나가 되십시오!)
"주인을 모시는 것과 지배받으며 사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9월22일, 순종할 이유).

또 하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자주 오해할 수 있는 원리들을
하나씩 파헤쳐 기초를 다시 놓아준다.
예를 들면, 이런 가르침이다.
"순종의 모조품은 열심입니다. 자기 멋대로 자신을 희생시키는 마음 상태입니다. 
이러한 열심이 종종 영적 분별을 대신하곤 합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으로 당신의 삶 속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자신을 희생시키는 그 어떤 위대한 열심보다 훨씬 귀한 것입니다."
(6월 8일, 열심보다 귀한 순종).

기독교 출판계에서 나오는 책들 중에도,
세상과 똑같은 자본주의적 경영 원리 속에서 세상의 때를 그대로 묻히고 나온 
오염된 책들이 섞여 있는 것을 간혹 본다.
그러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은 어떤 불순물도, 어떤 세상 원리나 이론도 섞여 들지 않은 
온전한 복음이다!
그 복음의 능력이 믿는 자에게 완전한 자유를 선물하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깊이와 은혜의 충만을 통하여,
하나님 자녀의 삶의 무너진 데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우리의 삶이 천국을 향하되, '오늘'의 삶에 승리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인도해주리라 믿는다. 


365일이 지난 오늘 이 책의 서평을 다시 쓰며, 승전가를 높이 부르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Cor meum tibi offero Domine sincere et prompte."
(주여 당신께 나를 바치나이다. 즉시 그리고 신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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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 바로크 미술의 거장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0
다니엘라 타라브라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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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가장 슬픈 만화 영화, 
나에게 주인공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최초의 작품,
바로 [프란다스의 개]의 엔딩 장면이다.
[빨간 머리 앤]에서 매튜 아저씨가 돌아가실 때만큼이나 슬펐던 장면.

화가가 꿈이었던 주인공 네로에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갖게 해주었던 화가,
네로가 그렇게 보기를 소원했던 그림을 그린 화가,
네로가 가장 좋아했던 화가가 바로 ’루벤스’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네로를 미소 짓게 했던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의 그림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라는 작품이다.
(위에 올려진 만화 영화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세 폭 제단화로 그린 작품이다.)

[루벤스](바로크 미술의 거장)는 마로니에북스가 출판하는 ’Art Book’ 시리즈 중
열 번째 책이다.
 ’Art Book’ 시리즈는 예술가들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애사를 따라 전개되며,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당대의 문화, 사회, 정치적 맥락에서 조명하고 있다.
’프란다스의 개’와 같은 이야기꺼리도 들어있으면 좋으려만, 
시종일관 진지하고 엄숙한 백과사전적 책이다. 

독일에서 태어난 벨기에 화가인 루벤스는
평생 골곡 없는 삶을 살며 당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린 행복한 예술가이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라고 불리울 만큼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며,
그의 작품의 특징이 곧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즉, 세밀하지는 않지만 역동적이며, 관능미를 추구하는 환상적인 그의 작품의 특징은, 
곧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루벤스는 힘찬 역동성과 풍만한 육체를 가진 누드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풍만한 육체를 가진 여성의 그림을 통해 삶을 찬미했다는 해석도 있다.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도 바로크 미술의 특징으로 꼽히는데,
루벤스의 작품에 거의 빠짐 없이 나타나는 강렬한 색채의 빨간색이 인상적이다.

또한 날카로운 대각선 구도도 바로크 미술의 특징으로 꼽힌다.
[루벤스] 표지에 나오는 ’밀짚모자’를 쓴 여인이 대각선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책은 별로 주목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관심이 간다.
[아동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명화’를 통해 아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이
어떻게 변형되어 왔는지를 읽은 경험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성화에서도, 또 신화에서도 ’아이’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아기 예수를 그린 것에서 아동을 그리는 미술이 발달했다고 하는데,
루벤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어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모두 귀엽고 통통하고 천사를 닮았다.
아이들은 귀엽고 행복하며 때로 장난꾸러기 같은 천진한 표정을 하고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루벤스는 드라마틱한 골곡 없이 잘 나갔던 화가였기 때문에,
솔직히 위대했다는 이야기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다만,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다는 그의 종교화 앞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었는데,
내게 인상적인 그의 작품은,
네로가 본 그 그림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와 ’지옥으로 추락하는 죄인들’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의 예수님을 너무 통통하게 그렸다.
’지옥으로 추락하는 죄인들’은 미술관에서 큰 그림으로 봤으면 악몽에 시달릴 뻔했다.

미술을 잘 모르는 내가 읽기에 다소 딱딱한 느낌의 글이지만,
네로가 좋아했던 화가라는 이유만으로도 꼭 읽고 싶고, 알고 싶었던 화가를 만나 기쁘다.
(모사가 많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지만) 어딘가에서 루벤스의 작품을 우연히 만나도,
이제는 곧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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