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이 책은 필자가 2001년에 출판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動物化するポストモダン)>의 속편이면서, 현재 일본에서 유통되는 ‘문학’의 한 지류의 전개를 추적하고, 이를 통해 사회와 이야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독립된 글이기도 하다. 이 책의 논의는 대략적으로는 전작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단독으로도 읽힐 수 있게끔 집필되었다. 전작을 읽지 않은 독자라도 논의를 따라갈 수 있도록 언어 구사나 논의의 순서에 최대한 배려를 했다.
  그렇더라도 독자의 당혹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역시 예비적인 설명을 덧붙여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전작을 읽은 분들에게는 약간 따분할지도 모르지만,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두 가지 정도만 확인해두고 싶다.

 

포스트모던과 오타쿠
먼저 확인해두고 싶은 것은 전작과 이 책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오타쿠(オタク)’의 위치이다. 이 책은 지금 기술한 것처럼 현대 일본에서 유통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서 순문학도 일반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도, 또 영화나 드라마도 다루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에 논의의 중심이 되는 것은 아쿠타가와 상이나 나오키 상과도 관계없고, 문학평론에서 취급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는 많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기회는 없었던,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든지 또 그 주위에서 성장하는 컴퓨터 게임이다. 이들 장르는 각각 ‘라이트노벨’ ‘미소녀 게임’이라 불리고, 독자층은 ‘오타쿠’로 불리는 서브컬처 집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요컨대 우리들이 여기에서 검토하는 것은 많은 독자들에게 친숙한 문학상 수상작이나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거기에 비해서 가볍고 마이너적이고 독자층도 한정된 오타쿠들의 문학이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부제가 ‘오타쿠로 본 일본 사회’였다면, 그에 준해 이 책은 공교롭게도 ‘오타쿠로 본 일본문학’이라 불러야만 할 내용이 되었다.
  이렇게 범위를 한정함으로써 일부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일본사회를 고찰하는 데 오타쿠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동의를 얻기 쉬울지 모르겠지만, 일본문학을 고찰하는 데 오타쿠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꽤 당돌하게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선택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전작의 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전작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은 타이틀이 시사하는 바처럼 포스트모던과 오타쿠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 분석서였다.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모던화(化)’는 1970년대 이후 여러 선진국에서 생겨난 사회적 변화를 의미하며, ‘오타쿠’라는 것은 같은 시기 일본에서 성장했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핵심으로 하는 취미 공동체를 의미한다.
  포스트모던도 오타쿠도 일본에서는 유행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 때문에 원래의 의미로 돌아가서 살피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포스트모던화의 진전과 오타쿠의 출현은 시기적으로도 특징적으로도 관계가 있다. 따라서 오타쿠에 대해 포스트모던의 개념을 사용하고, 또 반대로 포스트모던에 대해 오타쿠의 경험을 참조하여 생각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일본 사회론에서는 여간해서 언급되지 않았던, 전후 일본의 어느 측면이 부각된다. 필자는 전작에서 이러한 입장을 토대로 오타쿠의 행보에 주목하여, 1995년 이후 젊은 오타쿠가 급속하게 이야기에 관심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것(‘모에’萌え,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대두), 그리고 그 변화가 단기적인 유행이 아니고 오히려 포스트모던의 철저화, 다시 말해 ‘큰이야기의 쇠퇴’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의 논의는 일단 그러한 상황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들은 포스트모던이라 불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포스트모던에서는 이야기의 힘이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쇠퇴한다.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는 오타쿠들의 작품이나 시장이 그러한 포스트모던의 성격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표현이나 작품 소비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2000년대 이야기적 상상력의 행방에 대해 살피기 위해서 일단 그 이야기의 쇠퇴에 가장 가까이 접해 있을 오타쿠들의 표현에 주목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포스트모던과 이야기
다음으로 확인해 두고 싶은 것은 이제까지의 서술에서도 이미 문제가 되었던 ‘포스트모던’과 ‘이야기’의 관계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전작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포스트모던의 개념에 대해 새삼스럽게 다시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논의에서는 이 용어를 ‘큰이야기의 쇠퇴’ 정도로 이해해도 의미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보충 설명을 해두고 싶다.
  포스트모던화는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 다시 말해 ‘큰 이야기’의 쇠퇴로 특징지어진다. 18세기 말부터 1970년대까지 지속된 ‘근대’에 있어서 사회 질서는 큰 이야기의 공유, 구체적으로는 규범의식이나 전통의 공유로 확보되었다. 한마디로 하자면 반듯한 어른, 반듯한 가정, 반듯한 인생 설계의 모델이 유효하게 기능하고, 사회는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에 있어서는 개인의 자기 결정이나 생활양식의 다양성이 긍정되고 큰이야기의 공유를 오히려 억압으로 느끼며, 각각의 감성을 강조하는 것이 지배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그런 흐름이 명확해졌다. 이것이 전작과 이 책의 전제인 시대인식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대인식을 제시하면 반론이 따라온다. 그것은, 포스트모던에서는 큰이야기가 쇠퇴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큰이야기가 각양각색의 국면으로 부활하고 증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21세기는 포스트모던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세계적으로는 큰이야기의 쇠퇴는커녕 문명의 충돌이라든지 원리주의의 부활마저 문제가 되었다. 일본 국내만 보더라도 민족주의나 전통의 부활을 바라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영화나 소설을 보더라도 치밀한 설정과 중후한 세계관을 가진 장대한 이야기는 이전과 다름없이 계속 잘 나간다. 화제를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오타쿠의 시장에 한정하더라도, 거기에서도 모에의 유행은 일단락되고, 거꾸로 이야기가 부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인터넷은 정치 분석으로부터 컬트, 음모론, 내부고발까지 세계 사람들이 투고한 무수한 큰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요컨대 거시적인 수준에서도 미시적인 수준에서도, 현재의 상황은 큰이야기의 쇠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의 과잉이나 범람이라고 파악하는 편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큰이야기의 쇠퇴’라는 표현을 상식적으로 이해한다면 이와 같은 의문이 생기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 반론은 실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포스트모던론에서 제기한 ‘큰이야기의 쇠퇴’는 이야기 그 자체의 소멸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체에 대한 특정 이야기의 공유화 압력의 저하, 다시 말해 ‘그 내용이 무엇이든 아무튼 특정한 이야기를 모두 공유해야 한다’는 메타 이야기적 합의의 소멸을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에 있어서도 근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무수한 ‘큰’이야기가 만들어져 유통되고 소비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의 상대주의적 다문화주의적 윤리의 토대에서는, 만약 ‘큰’이야기를 믿는다 해도 그것을 다른 사람도 믿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어 만약에 당신이 특정 종교의 열성 신자라고 하더라도 현대사회는 그 신앙을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종교를 믿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다른 신에 대한 관용을 침해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신앙의 표현이었다고 하더라도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포스트모던에 있어서는 전체의 ‘큰’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 중 하나로, 다시 말해 ‘작은이야기’로서 유통되는 것이 허락되고 있는 것이다.(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원리주의다.) 포스트모던론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큰이야기의 쇠퇴’라 부른다.
  따라서 현대 사회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큰이야기의 쇠퇴’론에 대한 반증이 되지 않는다. 오타쿠들의 이야기가 설령 내용적으로 기우장대한 기상으로 가득하다 해도, 그것은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에 부합할 수 있도록 조정된 ‘관습화’된 것이고, 그런 고로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관용성을 가지고 쓰는 한에 있어서는 그것을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토대인 ‘작은이야기’로 다루어야만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관용성’은 본론에서 나중에 논하게 되겠지만, 현대 문학을 생각하는 데 열쇠가 되는 개념이다.

 

포스트모던의 세계를 어떻게 살 것인가
이상으로 본론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지만,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이 책의 목표에 대해 다루어두고 싶다.
  이미 서술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속편이고, 전작에 이어서 오타쿠들의 상상력을 다룬다. 이 주제의 선택은 지금도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오타쿠를 둘러싼 언론 상황은 전작의 출판으로부터 지금까지의 5년 사이 심대하게 변했다고 말할 수 있다.
  새삼스럽게 지적할 것도 없이, 오타쿠들의 작품과 시장은 2000년대 전반에 폭넓은 사회적 인지를 획득했다. 2003년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같은 시기에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가 오타쿠적 의장으로 명성을 얻었고, 2004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일본관에서는 오타쿠가 특집으로 다루어졌고, 2005년에는 <전차남>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모에’가 유행어 대상 톱 텐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 변화는 정치경제의 영역에도 미치고 있다. 이 수년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 대한 분석이 ‘쿨 저팬’이나 ‘콘텐츠 산업’ ‘지적재산권’이라는 표현으로 논단지나 경제지의 지면을 점유해오고 있다. 유력 정치가 한 사람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해 언급하고 오타쿠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모으고 있다. 싱크탱크도 오타쿠 연구에 여념이 없다. 오타쿠들이 모인 거리 아키하바라는 지금 일본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거리라고 일컬어지고, 블로그나 SNS 등 2000년대에 나타난 새로운 미디어는 오타쿠적 화제에 친화성이 높다. 전작에서는 우선 오타쿠의 소개로부터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단일한 흐름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거기에는 세대 간 격차를 시작으로 갖가지 차이가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타쿠들의 상상력이 지금 사회의 정식무대에 나타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따라서 오타쿠들의 문학을 다루는 이 책의 논의를 그 흐름의 하나로서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 이해를 부정하지 않는다. 본론에서도 다시 한 번 소개하겠지만, 2004년부터 2005년에 걸쳐,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사회 전체의 변화와 연동하여 출판업계에는 라이트노벨에 주목하는 붐이 일어났다. 이 책의 기초가 되는 원고는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그 붐의 중심에 있었던 소설지에 연재되었고, 업계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며 씌어졌다. 필자는 이 수년간 비평가나 연구자라고 하기보다는 더 당사자에 가까운 입장에서 작가를 만나고 편집자와 정보를 교환하고 기획에 참여해왔다. 그때 얻은 지식이나 감각은 이 책의 기술에 흘러들어가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확실히 2000년대 전반의 오타쿠 붐, 라이트노벨 붐의 산물이다. 그리고 또한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읽히더라도 그것대로 자극적이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씌어졌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논의에서도 명확해진 것처럼 이 책의 중심은 그러한 유행의 소개나 분석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관심은 오타쿠들의 특수한 문화를 특수한 문화로서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그 특수성에 깃든 보편적 문제를 추출하는 것이다.
  다른 용어로 바꾸어 말하면, 필자의 관심은 오타쿠라고 하는 공동체나 세대집단의 고찰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삶을 통하여 발견되는 포스트모던의 생 일반의 고찰에 있다. 그것은 이미 유행의 문제도 청년문화의 문제도 아니다. 그 문제의식은 오히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 ‘동물적’이라 묘사한 포스트모던의 소비자가 그럼에도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세계에 접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전작으로부터 이어져온 복잡하고 그리고 실존적인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 필자는 제2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유감이지만, 필자는 이 책에서 포스트모던의 생(生)과 실존의 문제에는 거의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의 한편으로는 대단히 시대적이고 풍속적으로 보이는 서브컬처 분석이나 작품 분석이,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보편적으로 실존적인 문제의식에 밑받침되어 있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이 만약 기억해 주신다면, 필자로서는 매우 기쁘리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몇 편의 소설이나 게임을 분석하지만, 논의의 필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야기상의 수수께끼나 트릭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폭로해버린 경우도 있다. 이른바 스포일러이지만, 그것은 특히 제2장에서의 과 <쓰르라미 울 적에>의 독해에 있어서 유독 현저하다. 그리고 그 스포일러는 논의의 전개와 깊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해당 부분을 빼놓은 다음 넘어가라고 지시할 수도 없다. 독자는 그 점을 미리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A. 사회학


1. 라이트노벨

우리들은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포스트모던은 큰이야기의 쇠퇴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오타쿠의 작품과 시장에서 그 ‘이야기의 쇠퇴’라고 하는 조건이 특히 확실히 나타난다. 서장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이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문학의 현재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싶다.
  그러면 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 혹은 오히려 너무 쉽게 성립해버리는 ‘데이터베이스 소비’적 환경에서 이야기는 어떠한 형태로 살아남을 것인가. 그리고 이야기의 그 새로운 형태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가능성을 보여줄 것인가.
  제1장에서는 두 개의 물음을 축으로 하여 몇 개의 새로운 개념을 제안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하여 제2장에서는 그들의 개념을 이용하여 포스트모던하고 오타쿠적인 이야기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비평을 제안하고 싶다.

 

2000년대의 ‘재발견’ 붐
그런데 처음에 서술했다시피 포스트모던의 문학 상황에 대하여 고찰하기 위하여 이 책에서는 우선 이른바 순문학이나 일반소설이 아니고, ‘라이트노벨’이라고 불리는 소설군에 주목한다.
  라이트노벨이란 무엇인가. 일반적 정의로 그것은 만화적, 혹은 애니메이션적 일러스트가 더해진, 중고생을 주요 독자층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소설이다. 대개 문고판으로 판매되고 있지만 근년에는 하드커버로 간행하는 예도 늘고 있다. 라이트노벨에는 많은 종류가 있고 출판사 수도 많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독자에게는 일단 서점에서 문고 매장이나 신간 매장이 아니고 코믹 매장에 가서 그 근처에 펼쳐져 있는 패키지로 된 문고본을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전형적인 라이트노벨이다.
  라이트노벨의 기원은 1970년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노라마 문고나 코발트 문고는 많은 명작을 냈고, 나중에 라이트노벨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현재 라이트노벨의 특징을 결정한 것은 1988년에 창간된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와 후지미 판타지아 문고라고 일컬어진다. 소설가 신조 가즈마(新城カズマ)는 <라이트노벨 ‘초(超)’입문>에서 간자카 하지메(神坂一)가 <슬레이어즈!>를 출판한 1990년을 “‘협의의 라이트노벨’의 발전 방향이 확정된 원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는 호칭이 생긴 것도 그 시기이고, 그 이후 라이트노벨은 일반적 문예로부터 벗어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시장과 제휴를 계속해, 1990년대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2007년 봄의 시점에서는 다수의 출판사가 끼어들어 라이트노벨의 상표는 30개가 넘는다. 그리고 그 주변에 보통은 라이트노벨로 분류하지 않지만 내용적으로 가까운 작품을 다수 출판하고 있는 레벨(고단샤 노벨스나 하야카와문고 JA 등)이나 라이트노벨 스타일을 차용한 포르노 소설의 레벨(미소녀 게임의 라이트노벨화가 많음), 게다가 그것도 통상은 라이트노벨과 구별되지만 독자층이 겹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미소년 동성애 소설 레벨(보이스러브) 등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라이트노벨은 양질의 작품을 다수 산출해왔지만, 그 작품 세계가 기존의 소설이나 비평의 틀에 수렴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정된 평가를 얻기 어려웠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필자는 1999년에 전국지 문화부 기자에게 가도노 고헤이(上遠野活平)의 작품을 소개한 일이 있다. 당시 가도노는 베스트셀러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었고 젊은 독자의 사랑이 정점에 달해 있었다. 그 기자는 가도노의 이름을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시리즈의 레벨이 있는 덴게키문고(電擊文庫)의 이름도 모르는 것 같았다. 1990년대 말의 신문 문화란의 인식이 그 정도였다. 그러나 그 상황은 2000년대에 들어서 급속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서장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 오타쿠적 엔터테인먼트 일반을 향한 사회의 주목 상승이 있었다. 특히 거기서 눈에 띄는 것은 <이 라이트노벨이 훌륭해!><라이트노벨 완전독본><라이트노벨☆난도질> 등 2004년부터 2005년에 걸친 해설본의 잇따른 출간이다. 그것을 계기로 해서 라이트노벨의 인지는 확장하여 일부 작가는 문예지나 소설지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 독자가 라이트노벨을 전혀 읽지 않는데도 ‘라이트노벨’이라는 말을 들어본 것 같다면 그것은 필시 이 상황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라이트노벨의 대두는 2000년대 전반의 일본 출판계 전체에서는 큰 주제의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정확을 기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이 라이트노벨․게임은 실제로는 시장의 성장에 의지했다기보다는 업계내의 라이트노벨 ‘재발견’ 붐이라는 현상에 의해 대두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라이트노벨의 역사는 길고 2000년대 이전에도 그 시장은 충분히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라이트노벨이라고 경시했던 양질의 작품이 이것을 계기로 널리 읽혀 회자된다면 당연히 기쁠 것이다.

 

라이트노벨은 ‘장르소설’이 아니다
그러면 라이트노벨은 어떤 소설인가. 내용면에서 추적하자면 라이트노벨의 설명은 대단히 어려워진다. 필자는 여태까지 ‘라이트노벨이라는 장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지만, 그것은 정확히는 장르라고 부르기가 어렵다.
  서점에서 여러 책을 뒤적거려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라이트노벨의 레벨에는 SF나 미스터리, 판타지나 전기(傳奇), 러브코미디 등 갖가지 장르소설이 혼재되어 있다. 한 사람의 작가, 하나의 작품 안에 복수의 장르가 혼재되어 있는 것도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한 가도노 고헤이는 2000년에 도쿠마 듀얼문고에서 <우리들은 허공에서 밤을 본다>를, 고단샤 노벨스에서 <살룡사건(殺龍事件)>을 출판하고 있다. 각각 다른 시리즈의 제1권으로서, 전자는 미래 우주전쟁과 현대 고교생활이 착종하는 이야기, 후자는 이계를 무대로 한 밀실살인의 이야기다. 전자는 SF와 청춘소설의, 후자는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융합으로 말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와 같은 장르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가도노 고헤이의 독자는 덴게키문고에서 나온 학원 판타지인 『부기 팝』 시리즈로부터 시작된, 어느 작품에도 일관된 스타일을 감지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세 시리즈는 세계 설정 면에서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하나의 세계관이나 필치가 장르를 횡단하는 일과 같이 계속되는 것은 라이트노벨의 큰 특징이다.
  미스터리나 SF는 자주 ‘장르소설’로 불린다. 그 명칭은 장르의 차이가 독자층이나 유통 경로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스터리의 레벨에는 일반적으로 미스터리밖에 수록되지 않고 SF의 레벨에는 SF밖에 수록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현재 라이트노벨의 레벨에는 미스터리도 SF도 구별 없이 수록되고 있다. 신조 가즈마도 자신의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이 특징은 라이트노벨이 미스터리나 SF와 같은 ‘장르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스터리나 SF에는 독특한 규범이 있고 자주 ‘이것은 미스터리가 아니다’ ‘이것은 SF가 아니다’라는 논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라이트노벨에서는 그와 같은 규범이 관찰되지 않는다.

 

라이트노벨적인 것
라이트노벨을 규정하는 내적 기준이 없다면, 그 범위는 외적 요소, 결국 레벨이나 패키지로 정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가도카와 스니커 문고나 후지미 판타지아 문고에서 출판한 것이라면 라이트노벨, 표지에 캐릭터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면 라이트노벨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 필자가 현역의 라이트노벨 작가나 편집자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판단 기준을 채택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그 기준도 현실에는 그다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현재는 라이트노벨 이외의 레벨로부터 출판한 소설이 독자에게 ‘라이트노벨적 소설’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장 알기 쉬운 예가 2002년에 <잘린 머리 사이클>로 데뷔하고, ‘헛소리’ 시리즈로 인기작가가 된 니시오 이신(西尾維新)일 것이다. 니시오 이신은 현재 라이트노벨 붐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그 시리즈는 <이 라이트노벨이 훌륭해!>의 2005년도판 작품 랭킹 1위를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작품은 2007년 봄의 시점에서 (한 편의 노벨라이스를 제외하고) 전부 고단샤 노벨스, 더러는 고단샤 Box로부터 간행되었고, 전형적인 라이트노벨의 레벨로는 한 작품도 출판되지 않았다. 표지를 장식하는 일러스트도 애니메이션적 필치로부터는 많이 벗어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반드시 예외적 현상인 것은 아니다. 니시오 이신의 활약은 1990년대의 모리 히로시(森博嗣)나 세이료인 류스이(淸涼院流水)에 의해 준비된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모리 히로시나 세이료인 류스이의 소설은 라이트노벨로 볼 만한 것이 많지만, 당시는 미스터리로 출판되었고 특히 일러스트도 더해져 있지 않았다.
  동세대를 보더라도 니시오 이신의 주위에는 같은 고단샤 노벨스에서 데뷔한 후에 문예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토 유야(佐藤友哉)와 마이죠 오타로(舞城王太郞)나, 2001년 가도카와 서점에서 데뷔해 의 만화화로 폭넓은 인기를 얻은 다키모토 다츠히코(瀧本龍彦), 라이트노벨 출신으로도 근년에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는 오츠 이치(乙一), 미소녀 게임의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하면서 소설도 발표하고 있는 나스 기노코(奈須きのこ)라고 하는 개성적 작가가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는 라이트노벨 작가로 불리지 않지만 그 독자는 확실히 니시오 이신과 겹치고 있으며, 또한 라이트노벨의 레벨로 출판된 작품과도 겹치고 있다. 요컨대 현재 라이트노벨 붐은 그 중심에서 라이트노벨의 외부와 깊이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서장에서도 설명했듯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된 원고는 2003년에 창간된 <파우스트>라고 하는 소설지에 연재된 것이었다. 이 잡지에는 확실히 니시오 이신이나 사토 유야, 마이죠 오타로, 다키모토 다츠히코 들이 기고하고 있었고 라이트노벨 그 외부 경계 영역에서 독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따라서 이 잡지를 라이트노벨 잡지로 부르는 것이 당연한지 어떤지 독자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에 얽매이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현재 일본에는 미소녀 게임이나 보이스러브 소설로부터 협의의 라이트노벨을 거쳐, 미스터리나 SF 같은 장르소설이나 순문학 일부까지 연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일정한 감성이 있고 그것이야말로 막연히 ‘라이트노벨’이라고 불리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우선은 그 현상인식으로부터 마땅히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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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나와 노동하는 수미에게

 

여기 지도가 있다.
어서 지옥을 떠나,
자유의 땅으로 가라.

 

 

철학자 김상봉은 "왜 기업의 사장은 노동자가 뽑으면 안 되는가?"란 하나의 질문을 두고 20년 높게 고심했다. 소유와 경영의 문제에서 시작한 이 질문은, 현대 자본주의의 지배적 원리인 주식회사를 사유의 중심으로 삼아 자본주의와 삶을 넓은 지평에서 살펴볼 철학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고, 전문경영인이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게 맞다는 경영학자와 경제학자들의 반복된 답변에서 벗어나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찾아보자.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의 머리말과 마지막 꼭지를 미리 공개한다.

 

“기업을 참된 의미의 생산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노동자들에게 경영권을 돌려주는 일이다. 이를 위해 많은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줄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하나의 법률조항, 바로 이것이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

 

[머리말]

이 책을 하나의 깃발에 비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크게 세 가닥의 실로 짜여 있다. 하나의 실은‘ 사장을 노동자가 뽑으면 안 되는가?’ 하는‘ 물음’이다. 나라의 대통령을 국민이 뽑듯이, 또는 국립대학의 총장을 학교 구성원들이 뽑듯이 회사 사장도 종업원들이 뽑으면 안 되는가? 다른 실은‘ 대답’이다. 사장을 노동자가 뽑으면 안 되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되는 경우도 있고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동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식당 사장을 선거로 뽑자고 주장한다면, 당연히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이런 사정은 순수한 개인 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개인 기업이란 기업주의 사적 소유 재산이므로 그것의 운영권 역시 당연히 소유주 개인에게 속하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식회사라면 원래 주인이 없는 기업이므로 얼마든지 노동자들 또는 종업원들이 경영권의 주체일 수 있으며 스스로 사장을 선출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최종적으로는 노동자 경영권을 확립하기 위해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라는 법 조항을 상법에 신설하자는 주장에까지 나아간다. 세 번째 실은 어떤 의미에서 주식회사의 경영권이 노동자에게 귀속되어야 하는가 하는 ‘근거’들이다. 나는 다시 이 근거를 부정적인 근거와 긍정적인 근거로 나누어, 먼저 주식회사만의 고유성으로부터 주식회사에는 주인이 없다는 것을 노동자 경영권의 소극적 근거로서 제시한 뒤에, 기업 공동체의 이념으로부터 노동자 경영권을 위한 적극적 근거를 이끌어내려 하였다. 질문과 대답 그리고 근거, 이 세 가지 실로 천을 짜면서 맨 마지막에 새겨 넣은 말은 이것이다. - 주주에겐 배당금을, 노동자에겐 경영권을!
  누가 쓰지 말라 해도 어떻게든 이 책을 썼겠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3년 전 이맘 때 내가 진보신당의 강령 제정 소위원회의 위원장 직책을 맡은 것이었다. 전문(前文)과 본문(本文)으로 이루어진 강령에서 본문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초한 문서를 강령소위에서 다듬은 것이었으나 전문은 당의 이념을 담은 지극히 철학적인 문서로서 그 초안을 작성하는 일이 나의 몫이었다. 나는 그 일에 최선을 다했고 나름대로 부끄럽지 않은 강령을 만들었다고도 생각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시급하게 보완해야 할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강령이“오직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만 인간의 자유와 참된 만남의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선언하면서도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구호가 몽상적인 헛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자본주의라는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인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같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강령을 처음 기초할 때, 강령제정에 참여했던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이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랬으니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당 차원의 토론도 실천도 없었던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결과 당의 생존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으로 날밤을 새다가 당의 대표를 지냈던 사람들이 당을 버리고 떠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와 같다. 하지만 당의 깃발을 만든 사람으로서 당을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었던 나는, 내가 기초한 강령의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왜곡된 재벌경제체제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은 내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절박하게 느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극소수의 특권층을 위해 작동하는 재벌경제체제를 해체하고 우리 모두를 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철학자가 자기와 직접 상관도 없는 주식회사의 경영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것은 학문적 월권이나 일탈이 아닌가? 혹시라도 이렇게 물을 사람이 있을까 하여, 대답 대신 서준식 선생의『옥중서한』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원래 철학이라는 학문의 특징은 그것이 현존의 사회질서 속에 특정한 분야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것은 어려운 말이지만, 요컨대 경제학이 현존질서 속에서 경제현상이라는 대상을 차지하고 정치학이 정치분야를 갖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철학은 현존 사회질서 속에 그 귀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철학이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현존 질서 속의 일부가 아니라 그 현존질서 전체, 즉 그‘ 통째’이다. 따라서 다른 분야의 학문이 자칫하면 현존질서 전체를 주어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 그 일부분으로서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하는 것과 달리 철학은 현존질서 전체가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를 정면에서 문제 삼게 되며, 때로는 잘못된 현존질서 속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과 대등한 처지에서 대결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을‘ 세계관의 학문’이라 부르는 이유이고, 철학이 다른 학문분야들의‘ 통괄자’로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이유이며, 그리고 나아가서는 역사 속에서 철학이 많은 박해를 받아온 이유이다.

 

철학은 언제나 세계 전체 또는 존재 전체를 생각하는 보편적 학문이다. 당연히 철학이 탐구해야 할 그 전체 속에는 경제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 영역에 속하는 주식회사 역시 하나의 존재자로서 철학적 성찰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런데 철학자라면, 경제・경영학자나 법학자와 달리, 주식회사를 삶의 전체 지평으로부터 성찰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이나 경영학자들은 경제적 효율성의 측면에서 주식회사의 가장 이상적인 경영 방식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법학자들이라면 주식회사에 관계하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법적 권리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주식회사법의 정당성을 탐구할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법학자들은 주식회사의 경제적 측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경제・경영학자들은 주식회사의 법적 권리균형의 측면에 대해서 치열한 성찰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문제되는 한에서만 주식회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철학자는 무엇을 보든 존재(存在)에서 무(無)에 걸쳐 있는 삶의 전체 지평으로부터 그것의 존재 의미와 진리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주식회사를 성찰하는 경우에도 철학은 그것의 경제적 측면과 법적 측면은 물론이거니와, 역사적 측면과 윤리적 측면 등 생각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측면을 두루 살펴, 삶의 총체성으로부터 그것의 의미와 진리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주식회사 역시 이처럼 철학적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그 의미와 진리가 비판적으로 되물어지는 한에서만, 삶의 총체성의 지평 속에서 제 자리를 잡을 수도 있고 제 모습을 유지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서준식 선생의 표현에 기대어 말하자면 철학은 주식회사를 위해서도 그 존재의 본래적 진리를 드러내고 그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고 또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주식회사는 오늘날 우리의 삶을 가장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지평이자 존재의 진리가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장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하이데거가‘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 말한 것에 맞서, 주식회사야말로‘ 존재의 집’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본질적으로 노동자이다. 노동자가 존재하는 장소는 회사이다. 그리고 모든 회사들 가운데서 가장 지배적인 회사가 주식회사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식회사의 존재의 진리를 묻는 것은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의 진리를 묻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철학자인 내가 주식회사의 본질을 물었으나, 나는 이 문제가 나처럼 보잘것없는 학자에겐 버거운 과제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다른 훌륭한 학자들이 묻지 않았던 까닭에 할 수 없이 이 물음을 물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허술하고 빈 구석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러 해 동안 준비를 하고, 지난겨울 집중적으로 책을 쓰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지혜를 구하려 애쓰기는 했으나, 내 말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은 거의 없었다. 주식회사에는 주인이 없으며, 그러므로 경영권은 그 자체로서는 누구의 것도 아니므로 노동자들에게 위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말을 꺼내면, 진보적인 학자들조차 흘려듣거나 아니면 마치 지동설을 처음 듣는 중세의 신학자들처럼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가운데서 꼭 한 번 내 생각을 듣고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질문하고 반론을 펴면서 장시간 토론해준 경제학자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가 배재대학교의 김진국 교수이다. 지난여름 그와의 토론 후 나는 이제 내 생각을 책으로 옮겨도 좋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회사법의 전문가인 전남대 법대 정영진 교수는 원고를 읽고 친절하게 자문해주었다『삼성을 생각한다』의 김용철 변호사와는 책을 쓰기 전부터 생각을 나누었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도 수시로 원고를 보내 자문을 청했는데 그 분의 호의적 관심과 흔쾌한 동의가 내겐 대단히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강화도의 박진화 화백은 노동자 경영권을 두고 기업인들과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는데, 이 역시 내겐 확신을 굳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 대안포럼〉과 진보신당 학생위원회의 〈적록포럼〉에 초청받아 노동자 경영권을 주제로 강연을 해왔는데, 그 때마다 대학생들의 적극적 관심과 날카로운 질문이 내 생각을 갈고 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노동자들과는 이 주제를 두고 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지난해 봄 진보신당의 진로를 둘러싼 토론회에 초대 받아 갔을 때 나는 간략하게나마 노동자 경영권에 대해 말을 꺼냈다. 뒷풀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의 일선에서 활동하다 지금은 해고되어 힘겨운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이경수 대림자동차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위원장이 왜 그런 얘기를 지금까지 아무도 한 사람이 없었느냐고 물으면서 팸플릿 형태라도 좋으니 빨리 책으로 내달라고 부탁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열 명의 학자보다 한 사람의 노동자의 격려가 내겐 더 큰 힘이었다. 그 부탁에 응답하여 처음엔 팸플릿처럼 짧고 읽기 쉬운 책을 쓰려 했으나, 계획과는 달리 책은 점점 더 길어지고 나는 조금씩 조바심이 났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며 이 책을 한참 쓰고 있던 어느 날 밤, 깊은 어둠 속에서 문득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물었다. ‘노동자 경영권에 대한 책인데 중학교 졸업한 노동자도 이해할 수 있게 쓰고 있어?’ 내가 큰 소리로 웃으며 또 다른 나에게 대답했다. ‘요즘은 노동자들도 태반이 대학 나온 사람들이야!’ 또 다른 나는 말이 없었다. 침묵이 흐른 뒤에 내가 덧붙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누구나 곱씹으면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겠지.’
  쉽게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없다. 자본과의 싸움도 마찬가지이다. 준비가 철저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내가 이 책을 쓰면서 스스로 설정한 첫 번째 기준은 빈틈없는 철저함이었다. 철저성의 원칙이 대중성과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책을 읽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이 책을 한 번 읽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두 번 세 번 다시 곱씹어 읽으면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다시 말하거니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극히 단순한 말이다. 주식회사에는 주인이 없다. 그러므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지휘자를 선택하듯이 노동자들이 사장을 뽑으면 된다. 이 쉽고 단순한 주장에 대해 근거를 알고 싶은 사람은 이제 본문을 보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서출판 꾸리에의 강경미 대표와 문부식 선생께 감사드린다. 그분들이 아니었더라면 이 책이 지금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분들 같은 친구들을 새로 만날 수 있으니, 늙어가는 것도 마냥 서운한 일만은 아니다.


 

[상상력과 의지를 위한 간단한 준칙]

지금까지 주식회사의 경영권이 어떤 의미에서 노동자에게 귀속되어야 하는지 그 근거와 실천적 순서까지 제시했으니, 이제 독자의 지성(知性)을 돕기 위해 내가 더 보탤 말은 없다. 하지만 상상력과 도덕적 의지를 위해서는 하나씩 보태어야 할 말이 있다. 먼저 독자들의 상상력을 돕기 위해 내가 여기서 제시한 주식회사의 모델을 말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등장한 뒤 지난 몇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길을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었으나 내가 생각하기에 도대체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사회나 기업의 모델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제시된 바가 없었다. 우리가 명확하게 상상할 수 있는 모델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극복의 당위를 아무리 외친다 하더라도 그 외침이 사람들을 움직이기 어렵다. 아무것도 상상이 안 되는데 나보고 무엇을 어쩌란 말인가.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예노동 대신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이 등장할 것이라 말하는데, 과연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조직, 어떤 기업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는 말해주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후예들은 더러는 그것이 코뮌이라 하기도 하고 소비에트라 하기도 하며, 요사이는 어소시에이션이라는 이름까지 사용하면서 거기에 무언가 심오한 뜻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만, 나는 나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모든 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려보려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내가 마르크스 편에서 유일하게 상상할 수 있는 기업조직은 협동조합이다. 그리고 나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협동조합이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에 주된 기업형태가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소유와 경영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주식회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극복의 길을 협동조합에서 찾으면서 협동조합과 주식회사를 구별 없이 뒤섞어 말하지만) 협동조합의 모델을 가지고서 주식회사를 혁신할 수는 없다. 이것이 이 책에서 내가 협동조합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오직 주식회사에만 집중한 까닭이다.
  이처럼 내가 생각하는 노동자 경영권이 실현된 주식회사가 협동조합이 아니라면, 그것은 과연 어떤 조직일 수 있겠는가? 이렇게 독자들이 묻는다면, 내 대답은 이것이다. 가장 이상적이 주식회사의 모델은 오케스트라, 곧 교향악단이다. 서양에서 의외로 많은 교향악단이 주식회사였고 주식회사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 필하모니는 지금은 재단법인이지만 원래 주식회사였으며,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독일라디오(40%), 연방정부(35%), 베를린 정부(20%), 자유베를린방송(5%)이 대주주인 주식회사이다. 그런데 재단법인이든 아니면 주식회사든, 교향악단의 가장 중요한 경영자는 지휘자이다. 교향악단 지휘자들 가운데서는 뉴욕 필하모니의 아르투르 로진스키나 시카고 심포니의 프리츠 라이너처럼 전설적인 독재자들이 드물지 않았다. 그런 독재자들의 이미지 때문인지 마르크스도『 자본』 1권에서 교향악단의 지휘자를 거대 기업의 자본가에 비유했고, 우리 시대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 역시 교향악단에서 연주자들이 지휘자의 지휘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면서 지휘자나 경영자를 선출하느냐 아니냐가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짐작으로 하는 말일 뿐이다. 주식회사든 재단법인이든 아니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기관이든 적어도 세계 수준의 교향악단의 경우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단원들이 선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방식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이를테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볼프강 자발리슈를 상임지휘자로 초빙할 때처럼 먼저 경영진이 200명의 세계적 지휘자 명단을 작성한 다음 그것을 교향악단 단원들의 비밀투표에 부치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베를린 필하모니가 카라얀의 후임으로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초빙할 때처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온전한 자율적 선거를 통해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식이 어떻든 지휘자를 선택하는 것은 단원들의 몫이다. 그러니까 로버트 노직이 마치 교향악단 단원들이 스스로 선출하지 않은 지휘자에게 기꺼이(노예적으로!) 복종하는 것처럼 책에서 말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선출한 뒤에도 단원들과 지휘자들 사이에는 얼마든지 예상치 못한 불화가 생겨날 수 있다. 그들 모두 어른이므로 스스로 불화를 해결해 나가야 하겠지만, 만약 그것이 심각한 상태에 이른다면 결국 떠나야 하는 쪽은 지휘자이다. 대개 100명이 넘는 단원들은 객원 지휘자라도 다른 사람을 데려오면 그만이지만, 단원들이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 지휘자가 혼자 교향곡을 연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절에 이판도 있고 사판도 있는 것처럼 주식회사에도 연주하는 단원들뿐만 아니라 돈 계산을 하고 경영을 책임진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경영진이든 지휘자든 주주든 다른 누구든지 간에 오케스트라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연주자 단원들을 삼성이 노동자를 노예 취급하듯이 다루지는 못한다. 오케스트라의 생명인 연주는 오로지 단원들과 그들이 선출한 지휘자에 의해 자율적으로 수행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교향악단은 설령 주식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단원들 자신에 의해 통치되는 작은 공화국이다.
  바로 그런 주식회사가 내가 이 책에서 말한 노동자 경영권에 입각한 주식회사의 모델이다. 다른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교향악단 역시 이윤을 산출하는 노동에 해당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연주자들이다. 마찬가지로 생산활동의 계획을 수립하고 노동자들을 지휘하는 경영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음악감독, 곧 교향악단의 지휘자이다. 그러므로 그 지휘자를 교향악단의 단원들이 선출한다는 것은 주식회사의 경영인을 종업원들이 선출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만약 그런 교향악단의 주주라면, 이런 운영체제에 대해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왜냐하면 누가 생각하더라도 연주하는 단원들이 지휘자를 스스로 선택할 때 그들은 가장 뛰어난 화음으로 가장 좋은 연주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게으른 연주자들이 있다. 하지만 지휘자는 그들에게 연주 기회를 주지 않을 권한이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그런 연주자들을 해고할 수도 있다. 그래도 연주가 형편없고수익이 오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주식을 처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것은 교향악단의 단원과 지휘자 모두에게 심각한 경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모든 주식회사가 교향악단처럼 운영되면 안 될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그런 까닭은 없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 거기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구성원이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에 비해 트라이앵글이 아무리 하찮은 악기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트라이앵글을 연주할 사람이 없다면, 그 곡은 연주될 수 없다. 그리하여 오케스트라는 모든 구성원이 똑같이 소중한 공동체이다.
  모든 주식회사가 이런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워질지 한번 생각해보라. 만약 주식회사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진리가 가장 탁월하게 표현되고 실현되는 장소라면, 모든 주식회사가 오케스트라가 된다는 것은 이 세계에 넘쳐 흐르는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소리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일 것이다.
  다음으로 독자들의 도덕적 의지를 위해 보태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과연 노동자들에게 국가의 시민권을 주어야 하는지를 묻고 그에 대해 스스로 대답하기를 주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대답한 까닭은 굳이 보수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민은 권력에 참여하여 나라를 스스로 형성하는 자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상 걱정이 자기의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직 자기의 입 하나만을 걱정하는 인간이 시민이 될 자격이 있겠는가?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노동자에게 시민권을 주지 말라고 말했던 까닭이다.
  물론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유를 따를 생각이 없다. 아니 도리어 노동자의 시민권을 단순히 정치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경제적 차원에서, 생산 현장에서 보다 급진적으로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경영권이란 이런 의미에서 노동자 시민권의 확장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과연 노동자들이 시민이 될 자격이 있느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려 섞인 물음을 망각한다면, 저 염려가 현실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지금에 이르러 거의 파탄에 이른 노동운동의 실제  상황에 대해서 아픈 말을 더 보태지는 않으려 한다. 하지만 노예로서 지배자와 싸우는 것은 차라리 쉬워도 긍지 높은 자유인으로서 책임지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오랫동안 한국의 진보 정치권 언저리에서 떠돌았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말은 그 말을 입에 올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정치권에서 노동자의 집단적 세력 강화를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참된 의미에서 정치는 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주체로서 형성하는 활동에 존립한다.
  복수노조가 현실이 된 시대에 과연 지금의 한국 노동운동이 이 험난한 형성의 과제를 떠맡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문외한인 나는 감히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을 뻔히 앞에 두고도 왔던 길을 계속 되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우리 모두 낡은 진보와 이별할 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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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겨레21>과 <한겨레>에는 2012년 2월 20일을 예고하는  티저 광고가 실렸다. 왼쪽에는 국가살해라 부를 만한 '국가범죄'를 나열하고 오른쪽에는 제목인지 선언인지 알 수 없는 글자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를 넣었다. 2월 20일 오늘 밝혀진 이 광고의 주인공은 바로 박노자의 신작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다. 두어 개의 매체에 한두 차례 나누어 실려 애초의 기대만큼 효과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선한 시도였다. 이를 기억함과 동시에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로 움직인 푸른 눈의 한국인 박노자의 국가주의 비판을 소개한다. 아래 글은 이 책의 머리말 '국가의 실체를 직시한다' 전문이다.

 

 

국가의 실체를 직시한다

 

‘국가주의’라는 말은, 요즘 보수 사이에서도 그다지 인기가 없다. 국가보다는 다국적화된 거대 자본 위주의 시장적 사회·경제 질서, 즉 신자유주의가 보수들의 이념이 되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좌우간 ‘멸사봉공’, ‘애국애족’ 류의 표현은 이제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 같다. ‘조국 근대화’ 시절 국가주의의 화신처럼 보이는 박근혜가 한때에 최고 인기를 누리는 정치인이었지만, ‘성공적’인 사업가인 안철수가 그녀에게 성공적으로 도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봐서 이제 ‘국가관’보다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더 큰 ‘매력 포인트’가 된 모양이다. 박정희나 이순신은 여전히 세인들의 머릿속에 강력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지만, 요즘에는 ‘국가 권력자’나 ‘국가에 충성을 다한 장수’보다는 ‘효율적인 경영인’으로 더 부각되는 것 같다. 확실히 공업화 초기와 같은 모습의 국가주의는 점차 박물관 진열대의 유물이 돼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국가’라는, 근대가 만들어낸 유사종교의 주박(呪縛)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인가? ‘주의’까지는 붙이지 않지만, 국가는 여전히 우리 시좌(視座)의 맨 중심에 놓여 있다. 국내에서 국가 최고 통치자 선거(대선)와 국가 입법부 선거(총선) 등이 한꺼번에 있는 2012년, ‘진보’까지도 모든 관심이 거기에 쏠려 있지 않은가? 정권이 극우에서 자유주의 우파로 넘어가든, 혹은 계속 극우의 차지가 되든, 민중의 삶과 연결된 경제·사회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충분히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국가의 지도자’와 국정을 움직일 ‘국회의원’이 누가 되는가는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서구의 경험으로 본다면 공산당 등 급진 진보가 입각(入閣)하거나 조각(組閣)한다 해도,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 성격이 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꼭 민중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국정이 흘러가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1996~1998년 이탈리아는 공산당 후계 정당 중의 하나인 좌파민주당(PDS)이 참여하고, 그 좌파민주당보다 더 급진적인 또 하나의 공산당 후계 정당인 재건공산당(PRC)이 지지한 좌파·중도 연립내각이 통치했는데, 이들이 주로 한 일은 결국 2011년 경제위기 속에서 이탈리아의 민생경제를 파괴한 원인이 된 유로존 합류를 위해 각종 신자유주의적 준비 작업(예산 삭감과 적자 폭 감소 등)을 하는 것이었다. 이미 개혁주의로 흘러가긴 했지만, 주로 조직 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삼는 공산당이 국정에 적극 참여한다 해도 자본주의 국가는 그 생리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산당이나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아닌 민주통합당 같은 자유주의 우파의 ‘국정 주도권’ 획득에 일희일비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보다는 노조가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영세업자나 청년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개혁의 전제조건이 될 ‘민중운동’ 조직화와 위력화 차원에서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풀뿌리 민중의 조직화 같은 ‘하찮은’ 이야기보다 ‘거대’ 전국 정치판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들린다. 국가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기에 이렇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 국가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국적(또는 미국 국적)의 약탈적 자본과 이들이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생계파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길 원한다.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 입안·추진하고 이명박 정권이 비준·발효한 한미FTA의 사례에서 보듯이, 극우냐 자유주의 우파냐의 구별 없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주류 정치세력은 하나 같이 바로 신자유주의적인 ‘자유무역’의 장려에 ‘국가’의 힘을 모두 쏟아부어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국가에 ‘시장으로부터의 보호’를 주문하고 싶지만, 국가야말로 시장주의적 민생파괴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지배계급의 ‘사무총국’과 같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보면 이는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일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는 시장, 즉 대자본의 고도의 도구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이상, 자본의 도구가 될 집권 정치인들이 어느 정당 출신이냐보다는, 자본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인 민중운동의 발전 상태가 어떤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의 주술에 걸려 있는 사람들에게 이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국가주의는 갔지만,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의 시대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인 병영국가는 어디 가지 않았다. 고문이 없어지고 형량이 줄어들었을 뿐,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민중적 교파의 신도를 위시한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가고 평생 이등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병영사회의 규칙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아주 쉽게 망각된다. 군사주의 선전이 한국 자본과 함께 고도로 발전(?)되어서 그런 것인가? 이제 ‘멸사봉공’ 이야기를 듣기는 쉽지 않겠지만, 인터넷 포털 뉴스를 볼 때마다 군 복무 중인 인기 연예인이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대한 건아답게 군 생활을 잘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들이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함으로써 군 복무는 ‘남자의 당연한 의무’가 된다. ‘군복을 입은 인기 얼짱’ 덕분에 군의 의무적인 살인 교육이 ‘쿨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심신을 유순하게 만드는 그 살인 교육의 ‘효율성’을, 이 사회의 실질적인 주인인 자본도 이제 탐낸다. 회사마다 직원들을 해병대 캠프에 보내거나 군대식 극기훈련을 시키는 게 인기 있는 ‘사기 진작 방법’으로 통한다. 다수가 군에 갔다 오거나 적어도 군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합숙 교육’을 받아본 사회에서, ‘군기’는 사회의 주된 문화적 코드가 되어버린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구령에 따라 일제히 일어나 “위하여!”, “건배!”를 큰 소리로 외쳐대는 월급쟁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삶에 스며든 군대의 살기를 그대로 발견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광경을 보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국가’에 주박되어 있는 정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국기에 대한 경례부터 일사불란한 의례적 행동까지 국가에 대한 거의 무의식적으로 의식화됐다 싶은 믿음과 군사주의는 이미 우리 속살에 배인 일상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일상은 보통 반성적 고찰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일각의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은 ‘민주화’된 국가는 내부적으로 폭력을 훨씬 덜 쓰게 되는 만큼 외부적으로도 과거의 권위주의적 국가에 비해서 훨씬 덜 호전적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시각이야말로 ‘국가에의 주박’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본문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논하겠지만, 소외된 ‘타자’에 대한 국가의 내부적 억압기구(경찰 등)의 태도는 여전히 극도로 폭력적이다. 단, 구미권에서는 주요 폭력의 표적이 되는 소외되는 타자의 자리에 ‘토박이 노동자’ 대신 인종적 혹은 문화적으로 다른 이민자 등이 들어선 것뿐이다. 물론 쌍용자동차 투쟁의 폭력적 진압이나 용산 참사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에서는 여전히 ‘토박이 노동자’도 ‘대들기’만 하면 크게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또한 부르주아적 민주주의의 본산쯤 되는 미국이 냉전 종식 이후 감행한 모든 침략(소말리아, 세르비아, 이라크, 아프간 등)을 생각해보면 자본주의적 국가의 틀 안에서 제도적 민주주의가 군사주의와 얼마나 호환성이 좋은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최근 미군의 침략 현장마다 공범 내지 종범으로 열심히 나서고 있다. 민주화가 다 됐다지만, 전 세계에서 수감된 병역거부자의 약 90%가 매년 대한민국의 감옥에서 옥고를 치른다. 진정한 민주주의, 즉 노동자의 일터 관리까지 포함하는 직접적인 민주주의가 실행되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부르주아적 ‘제도민주주의’ 또는 ‘의회민주주의’가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은 유해한 허상일 뿐이다.

  국가의 실체와 함께 국가폭력의 실체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무엇보다 그 폭력이 여태까지 어떻게 합리화되고 낭만화되어왔는가 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조명한다. 불교부터 기독교까지 애당초 평화주의적 요소가 강했던 세계종교들이 어떻게 해서 군사주의와 결탁하게 됐는지, 《일리아드》부터 영화 <람보>나 <300>까지 군사적 폭력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낭만화되어왔는지, ‘폭력적 남성성’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고정화되어왔는지도 이 책의 주된 초점이 될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국가폭력과의 투쟁이 세계사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조감할 것이다.
  국가폭력과의 투쟁은 결국 계급사회와의 투쟁, 평등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총체적인 반계급·반자본 투쟁의 과정에서도 특별히 국가폭력과의 투쟁에 중점을 두고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명백하다. 현재의 교육제도나 매체 등이 갖는 특성 때문에 다수에게 대대적으로 계급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전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수많은 도시, ‘적’을 포로로 잡아 학대하거나 그 시체 위에 오줌을 싸는 등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는 미군을 보면 의분을 느낄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본능적으로 전쟁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 다수가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만이 전쟁의 종식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 사회의 이념지도는 다소 바뀔 수 있을지 모른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다수의 생각은 하나의 물리력이 되니, 이와 같은 세계관의 변화가 결국 사회·정치적인 진보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믿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끝으로 이 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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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원 2012-02-2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게 이 광고였군요.
무지 궁금했는데 좀 허탈하네요.
가운데 있는 토끼는 뭘까요?
책을 읽어봐야 하는지...

인문MD 바갈라딘 2012-03-02 13:42   좋아요 0 | URL
아, 안녕하세요. 엄청 늦은 댓글입니다 ^^ 토끼는 특별한 의미는 없고요. 국가라는 폭력 앞에 선 약자의 모습을 드러낸 이미지라고 합니다.
 

  

프롤로그
‘반올림’을 만난 가족들

“제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많이 울었어요.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민머리에 앙상한 여자 아이가 말한다. 스물두 살이라는 제 나이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던 유미는 몇 달 후, 죽었다. 

열아홉 살 유미는 일기를 썼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었다. 유미는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다. 대신 기숙사 침대에 엎드려 일기를 썼다. 회사에 입사하던 날, 유미는 기숙사 방에 침대가 있다며 좋아했다. 시골집 유미의 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고향 집에서 회사가 내준 아파트형 기숙사로 짐을 옮기며 유미는 자신이 출세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착각임을 깨달았다.

입사 초반엔 퇴사하고 싶단 생각을 정말 많이 하면서 울었다. 만날 울고 엄마한테도 퇴사하고 싶다면서 계속 울었다. 그러면서도 엄마 때문에 퇴사하지 못하고 참고 일했다. 차라리 친구들처럼 대학이나 갈걸. 싫은데도 참고 일하는 건 엄마한테 미안해서이다. 엄마가 대학 가라고 했는데 끝까지 우겨서 이 회사 왔는데, 엄마한테 미안해서 퇴사 못하겠다. 슬픈 책이라도 읽고 아주 펑펑 울고 싶다.(2003년 유미의 일기)

수원은 대도시다. 바다 냄새 나는 고향 속초와 달리 사람도, 놀 곳도 많았다. 오프 날이 되면 유미는 회사 동기들과 시내에 나갔다. 스무 살 여자아이들은 CGV 영화관, 이마트, 피자헛을 돌아다녔다. 때로는 피시방에 갔다. 보안을 이유로 기숙사 안에서 인터넷을 쓰지 못하게 해 유미는 투덜거리며 나가곤 했다. 가수 ‘신화’ 소식도 궁금했고 친구들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도 들러야 했다. 그렇게 회사 밖을 맴돌았다.
  기숙사로 돌아오면 선배와 동기 들이 곤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네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유미는 까치발로 걸었다. 다들 겨우 든 잠이었다. 교대근무로 낮밤이 바뀌어 자는 것도 일이었다. Day(오전근무), Swing(오후근무), G. Y.(밤근무), 서로 출근하는 시간이 다르니 자는 시간도 달랐다.) 출근 준비하는 룸메이트 때문에 겨우 든 잠을 깨면 왠지 서러워 눈물이 났다.
  몇 날 며칠 계속되는 12시간 맞교대, 휴일도 가리지 않는 잔업, 물량달성을 외치는 상사들 앞에서 열아홉 살 신입사원 유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자두는 것뿐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에 유미는 침대에 엎드려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곳에 일기를 썼다. “참고 또 참았다. 내가 막내니까. 엔지니어가 뭐라고 했을 때는 정말 짜증나서 눈물이 났다.” 작은 실수에도 엔지니어는 윽박을 질렀다. 기계가 멈추면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정작 오퍼레이터(생산직) 자신인데 말이다.
  입사 초, 생소한 설비와 외국어로 된 공정 이름, 온갖 화학식 앞에서 유미는 기가 죽었다. 낯선 일이니 실수가 많았다. 선배들은 호되게 몰아쳤다. 그래야 일을 빨리 배운다고 했다. 공장은 빠르게 돌아갔다. 그 와중에 일이 더딘 신입사원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모든 것이 실수 없이 신속하게 돌아가야 하는 그곳에서, 유미는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다.
  ‘엄마 말대로 공부를 할걸 그랬어.’ 유미는 후회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다이어리 장을 넘겨 그곳에 월급을 어떻게 쓸지 적었다. 엄마에게 돈을 보낼 때는 안도가 됐다. 아빠는 이번에 집을 새로 옮길 거라고 했다. 지금 집은 낡았다. 유미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가족들이 살던 집이었다. 할머니는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고생스러워했다. 유미는 집에 갈 때 가져갈 할머니 선물을 다이어리에 적었다. 매달 적금도 넣어야 했다. 내년 봄에 친구랑 쌍꺼풀 수술 상담도 받으러 가기로 했다. 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2, 3년만 일해서 돈 모아 대학이라도 갈까? 유미의 계획은 끝이 없었다. 옆 침대 룸메이트가 뒤척였다. 유미는 움직임을 멈췄다. 슬슬 졸음이 밀려왔다. 창문을 닫고 자야 하는데…… 눈이 감겼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서 옅은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 회사 냄새였다. 싫었다.

  “차라리 그렇게 빨리 간 게 다행이에요. 너무 힘든 병이야. 너무 고생을 해.”
  황상기 씨가 잡은 운전대 아래로, 딸이 사준 열쇠고리 인형이 흔들거린다.
  “애가 음식을 삼키지를 못해. 새 모이만큼, 그냥 먹는 흉내만 내. 항암치료 받으니까 입안이 다 헐어서 음식을 입에 넣을 수가 없어. 먹지 못해 삐쩍 말라서 몸무게가 20킬로그램밖에 안 됐어요.”
  그는 뜸을 들이다 말한다.
  “우리 유미는 굶어 죽은 거야.”
  끝없이 반복되는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지켜봤다. 서둘러 간 것이 다행이라고 모진 소리를 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병실에 누운 딸을 보면 가슴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치솟아 올랐다. 그럴 때면 유미의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욕을 했다.
  그는 유미의 병이 회사로부터 온 것이라 확신했다. 회사가 아니고는 그 무서운 병이 어디서 온단 말인가. 유미는 열아홉에 반도체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딸아이는 병이 들어 돌아왔다. 친척 누구도 백혈병은커녕 암에 걸린 전력이 없었다. 백혈병은 10만 명 중 2, 3명이 걸린다는 희귀병이라고 했다. 아이는 겨우 스물한 살이었다. 한창 젊고 건강할 나이였다.
몇 해 전 유미의 선임이 유산을 해서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다. 몸이 약했나 보네, 그렇게 넘겼다. 유미가 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유미 엄마는 말했다. 얼마 후, 유미와 2인 1조로 일했던 선배가 백혈병에 걸렸다. 이상했다. 유미의 병도 백혈병이었다. 후회는 분노로 변했다.
  화를 내는 그에게 회사는 말했다.
  “산재라니요. 증거 있으세요? 큰 회사를 상대로 싸우려면 싸워보시든가요.”
  답답한 마음에 그는 국회의원을 찾아갔다. 지방 방송국도 찾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내 딸이 직업병에 걸렸다고 하니, 다들 말했다. “증거를 가져오세요.” 그는 울었다. “힘없는 개인이 증거를 어떻게 찾아요?”
  규모가 있는 언론사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그는 아픈 딸에게 더듬더듬 인터넷을 배웠다. 인터넷으로 작은 언론사를 찾을 생각이었다. 서툴게 마우스를 쥐고 검색을 했다. 전화번호가 보이기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내 딸이 백혈병에 걸렸어요. 삼성반도체에서 일을 했는데…… 그런데 병에 걸린 게 내 딸만이 아니에요.”
  그렇게 월간 《말》지의 윤보중 기자와 연락이 됐다. 비슷한 경로로 《수원시민신문》의 김삼석 기자와도 만나게 됐다. 유미의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세상은 유미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좀 더 많은 기사가 나오면 내 딸이 억울하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까? 그러는 사이 회복돼가던 유미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됐다.
  2007년 3월 6일, 유미가 고열에 시달렸다. 이제 어떤 해열제도 듣지 않았다. 내성이 생긴 터였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유미는 몸이 뜨겁다 하다 차다 하다 했다. 가쁜 숨을 쉬었다. 그러고 더는 숨을 쉬지 않았다. 그는 차를 갓길에 세웠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딸이 죽었다.
  요즘도 그는 유미가 누웠던 차 뒷좌석을 문득 돌아보곤 한다. 택시를 모는 그는 그 자리에 유미만 한 아이를 태우고, 유미가 살아 있다면 그만할 나이의 아가씨들을 태운다. 처음에는 그냥 생각을 말자 했다.
  그러나 잊지 못하는 것이, 딸에게 한 마지막 약속이다.
  “유미야, 너 병 걸린 이유, 누구 때문인지 아빠가 꼭 밝힐게. 그 억울한 거 꼭 풀어줄게.”
  황상기 씨는 유미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회·인권단체들을 만났다. 아픈 유미를 보며 무작정 언론사에 전화를 걸던 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유미의 사연에 관심을 갖는 단체들이 있었다. 반도체산업이 알려진 대로 청정산업이나 굴뚝 없는 공장이 아니라는 인식이 차츰 사회단체들에 생겨났다. 그렇게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7년 반도체 노동자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만들어진다.

황유미. 1985년생, 여성. 2003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입사, 3라인 디퓨전 공정 세척 업무, 1년 8개월간 근무. 2005년 6월 백혈병 발병,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 당시 23세
 


“제수씨, 요즘 회사에 백혈병 얘기가 돌고 있어요. 이게 회사에서 일하다가 걸릴 수도 있는 병이라고 하네요. 민웅이도 그 병이었잖아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는데 혹시 모르니까 한번 제수씨가 알아보세요.”
  남편 선배의 전화였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백혈병이 회사 때문에 걸렸다고? 애정은 어떤 대꾸도 못 했다.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살림이었다. 생각은커녕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버거웠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인생은 달라졌다. 다른 데 관심을 두기에는 삶이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남편 선배의 전화를 받은 후 자꾸 컴퓨터에 눈이 갔다. 보름 정도 지났을 때 애정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삼성반도체 백혈병’을 검색하니 ‘황유미’라는 사람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황유미라는 젊은 여자가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남편과 같은 회사, 같은 병이었다.
  그날 그녀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말도 안 돼. 삼성이 어떻게 우리한테 그럴 수 있겠어.’
  삼성은 그녀가 열아홉 살 때부터 일해온 회사였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삼성은 그녀에게 지금의 가족을 만들어준 울타리 같은 존재였다.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며 사기 치는 게 아닐까? 나 같은 사람 이용해서 돈이라도 뜯어내는 거 아니냐고.’
  애정은 복잡한 얼굴로 잠든 아이들을 내려다봤다. 아빠 얼굴을 모르는 두 아이 희준과 예인. 말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면서 희준이는 부쩍 아빠를 찾았다. 안 되겠다 싶어, 한 날은 희준이에게 아빠를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는 몹시 좋아했다. 희준이를 데리고 간 곳은 남편 유골이 있는 납골당이었다. 납골당에 도착한 아이는 엄마 눈치를 봤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납골당 곳곳을 뛰어다니다가 아이는 결국 물었다.
  “아빠한테는 언제 가요?”
  왜 죽었을까. 그저 이상하다 생각했다. 건강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그랬을까. 내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나냐고 그랬던 적이 있다. 왜 그리 빠르게 세상을 떠났는지 알 수 없었다. 저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유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빠를 잃은 아이들이 적어도 아빠가 죽은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냥 만나만 보면 되잖아.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라고. 어린애가 아니야. 사실인지 아닌지,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닌지 이제 알 수 있는 어른이야.’
  아침이 오고, 그녀는 반올림에 전화를 걸었다.

황민웅. 1974년생, 남성. 1997년 6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입사, 1라인 백랩(연마) 및 5라인 CMP 설비 엔지니어, 7년 4개월간 근무. 2005년 백혈병으로 사망. 당시 32세
정애정. 35세, 여성.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5라인에서 11년간 근무. 고 황민웅의 아내

 

부산 서면역을 지나던 중이었다. 친구가 희진의 팔을 잡아 세웠다.
  “저기서 뭐 하네. 삼성? 불매운동 같은 거 하나 봐.”
  희진은 삼성이라는 말에 고개를 홱 돌렸다. 역사 앞에서 사람들이 서명을 받고 있었다. 등 뒤로 걸린 현수막에 삼성 로고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가자. 저런 건 서명을 해줘야 해.”
  희진은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발길은 조심스러웠다. 다리가 아팠다. 아픈 건 다리만이 아니었다. 눈은 침침하고 조금만 무리 해도 팔이 저리고 말을 더듬었다. 이게 다 삼성 때문이었다. 삼성 불매운동을 한다면 몇 번이라도 서명을 해줄 테다. 그녀의 작은 복수였다.
  4년을 일했다. ‘뼈 빠지게’라는 말이 어떤 건지 알게 될 만큼 일했다. 그리고 몸에 이상이 왔다. 다발 경화증.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병이었다. 워낙 희귀병이라 원인도 알려진 바가 없었다. 스트레스가 주원인일 거라고만 했다. 삼성에서 일하면서 스트레스는 모자라지 않을 만큼 받았다. 돌이켜봐도 지긋지긋했다.
  하루에 적어도 500개 이상의 LCD 패널(LCD를 완성하기 전 형태)을 검사했다. 하루에 12시간을 부려 먹을 때도 많았다. 불량 하나에도 사람 잡아먹을 듯 굴었다.
  의사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해지면 재발이 된다고 했다. 재발은 장애 있는 몸으로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한 번 재발이 돼 오른쪽 시력을 잃었다. 끔직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내내 울었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조금도 주지 않는 회사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자신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을 받아주는 회사가 과연 있을까. ‘평생 벌이를 할 수 없는 걸까’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생각을 말아야지.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지. 헛웃음을 치는 희진에게 앞서 가판으로 간 친구가 되돌아왔다.
  “불매운동이 아닌데?”
  그제야 삼성 로고 옆에 걸린 현수막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삼성전자·반도체에 근무하다가 예상치 못한 질환을 겪으신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이희진. 1984년생, 여성. 2002년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 입사, 4년 3개월간 LCD 패널 화질·색상 패턴 검사 업무. 2008년 다발 경화증 확진 

 

희수 씨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사람들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시사 프로그램을 봤다. 내 아내도 이 일과 관련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내는 삼성반도체에서 6년을 일했다. 그는 담당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
  “아내도 직업병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간호사는 말했다.
  “저 사람들은 백혈병인 혈액 쪽 암이고요, 이윤정 씨는 뇌 쪽이니 관계가 없어요.”
아내는 뇌암에 걸렸다. 의사는 시한부 1년을 선고했고, 아내는 머리를 열고 수술을 받았다. 삼성에서 일한 6년을 빼고는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아내였다. 삼성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거지? 멀어지는 간호사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정말 아무 상관이 없을까?

이윤정. 1980년생, 여성. 1997년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입사, 6년간 고온 테스트 업무. 2003년 퇴사. 2010년 뇌암(악성 뇌종양) 진단 

 

“아버지, 억울해요.”
  아들 진혁은 눈을 감기 전 말했다. 눈을 감은 아들의 이목구비가 반듯했다. 백혈병은 사람 못쓰게 만드는 병이라는데 얼굴 하나는 곱게 갔다.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는 잠든 것처럼 평온한 아이의 얼굴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아이는 정말 착했다. 속 썩인 일이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없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래, 그리 수더분했으니 힘들다 내색도 없이 일만 하다 갔겠지. 12시간 잔업을 군말 없이 했다. 어차피 10시간을 일하나 12시간을 일하나 잠잘 시간밖에 없는 건 똑같다면서 돈이라도 더 벌겠다고 했다. 아들이 젊은 나이에 한 일이라고는 돈 버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니 ‘억울했다’.
  그도 억울했다. 건강했던 아들이다. 아들은 일요일이면 조기축구도 빠지지 않았다. 회사 봉사활동에도 매달 나가는 눈치였다. 운동 좋아하고 활동적이던 아이. 덩치도 좋고 건강만은 자신하던 아이. 다 키워놓은 아들이, 자신의 전부였던 아들이 사라졌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둘러앉아 떠들썩하던 밥상 풍경은 사라졌다. 그와 늙은 아내가 묵묵히 밥상을 지켰다. 착한 아들은 마지막까지 부모 걱정을 하다 갔다. 친구도 많고 활달한 아버지는 안심이 되지만, 어머니가 크게 속앓이를 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의 말은 틀렸다. 그는 괜찮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도 친구도 허무했다. 외아들 앞세운 부모가 무얼 위해 산다는 말인가.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는 이가 몽땅 빠져버렸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아들의 죽음 앞에 산재신청을 할 생각도 잠시 했다. 젊은이들이 흔히 걸리지 않는 병이었다. 전자회사에서 일을 했으니 약품사용을 안 했을 리 없었다. 그도 예전에 중공업에서 일했다. 냄새만 맡아도 토악질이 날 정도로 독한 물질들을 생산 현장에서 얼마나 빈번하게 쓰는지 그때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산재신청을 하지 않았다. 순순히 산재를 인정할 기업이 아니다. 숨넘어가는 아들에게서 사직서를 받아 간 무서운 곳이었다. 노부부에게 싸울 기력 따윈 없었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그냥 이렇게 있는 거 다 쓸 때까지만 살자.”
  그러던 어느 날,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같이 젊은 나이에 병에 걸린 이들이 많다고 했다. 마침 삼성이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을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삼성SDI에 다니다가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이 고소의 이유였다. 삼성SDI에서 백혈병으로 죽은 사람이 없다고? 그럼 내 아들은? 삼성SDI는 아들이 다닌 회사였다. 그도 증인이 필요하면 나서주자 했다. 아들 죽인 회사가 더럽게 구는 꼴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박진혁. 1978년생, 남성. 2004년 삼성SDI 언양공장의 부품세척 하청업체인 (주)KT&G 입사.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2005년 사망. 당시 28세 

 

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처음 삼성을 찾았을 때 홍보그룹 관계자는 말했다. 겨우 6명이 백혈병에 걸렸을 뿐이라고. 몇 만 명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6명이면, 그것은 그저 우연이라고.6) 이제 황상기 씨는 말한다.
  “거짓말만 해요. 처음에는 나한테 여섯 명밖에 없다고 했어요. 자 이제 봐요, 몇 명인지. 또 이야기해보라 그래요,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그의 딸이 세상을 떠나고 4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렸다고 반올림에 제보를 한 이는 13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는 2011년 현재 50여 명이다. 제보되지 않은 죽음이 더 있을 것이다. 딸의 죽음을 산재라 의심했던 황상기 씨는 생각을 바꿨다.
  산재가 아니다.
  “정말 그들이 몰랐을까요?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무슨 약품을 사용했는지, 삼성은 몰랐을까요? 회사가 알았다면, 알고도 그대로 두었다면 이건 산재가 아니에요.”
  산재일 리가 없다.
  “살인이에요,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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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2014-08-3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제나 힘없고 착한 분들이 피해를 보는군요...안타깝네요...뭐라 말할수가 없습니다..작업장의 유해성을 밝혀낼 사람이 있을까요..? 안타깝네요..
 

  

이 책은 분노이고 절규입니다

오 주여, 저마다 고유한 죽음을 주소서.
사랑과 의미와 고난이 깃든
삶에서 나오는 그런 죽음을 주소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에 대해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 벌써 두 달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지금껏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그들의 비참한 노동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는 저는 위로의 말조차 할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의 삶과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여기 이 책에 기록된 대로 자신의 생명을 소진하며 노동하는 분들의 희생 위에서 지속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생각하면, 저는 지금도 제가 이분들의 죽음의 기록 앞에서 말을 보태는 것이 염치없고 뻔뻔하기까지 한 일처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제가 책 앞머리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몇 말씀을 보태는 것은 여기 기록된 분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이 그대로 잊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 때문입니다.

생각하면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들 한국인은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한 자들을 수탈하고 희생시켜 그 과실을 남은 자들이 향유해왔습니다. 흔히 우리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경제성장이란 바로 그런 수탈의 다른 이름입니다. 변변한 자본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독재적 리더십에 의해 추진된 경제개발이란, 국가 폭력을 동원하여 가장 가난한 자들을 희생시켜 이루어낸 성과였던 것입니다.
  슬픈 것은 그렇게 약자를 희생시켜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살게 된 사람들이 그들이 누구 덕에 그런 호사를 누리는지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많은 희생자들이 우리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다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희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들 덕에 우리가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경제성장을 말할 땐 가당찮게도 박정희 덕이라고 말하고 오늘날 한국경제의 성과를 말할 땐 삼성과 이건희를 입에 올립니다.
  하지만 이런 야만의 역사 속에서도 이 나라가 돌이킬 수 없는 도덕적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탐욕과 무지의 어둠 속에서도 진리의 빛을 밝혀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40여 년 전 평화시장에서 한 줄기 불꽃으로 피어올랐던 전태일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비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또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 때, 그는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시대의 어둠을 드러내고 우리를 부끄러운 거울 앞에 마주 세웠습니다. 그 한 사람의 희생이 그 이후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으니, 그는 우리의 스승이었습니다.
  어찌 전태일뿐이겠습니까? 제가 아직 푸르른 청춘이었을 때, 과자공장의 노동자들이 저처럼 하얀 손을 가진 청년들 앞에서 울먹이며 말하던 것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먹는 달콤한 사탕을 하루 종일 비닐 껍질로 포장하는 우리의 손끝에 핏물이 배는 것을 아느냐고.
  물론 지금 과자공장에서는 손끝에 핏물이 배도록 노동자들이 과자를 포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모든 공정은 이젠 우아하게 자동화되어 더 이상 나이 어린 노동자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인가요? 그리하여 기술이 발전하면 더 이상 누구를 희생시키지 않아도 좋으니 이제 우리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사탕의 달콤함에 취해도 되는 것인가요?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약자를 희생시켜 남은 자들이 그 이익을 나누어 갖는 약탈의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폭로합니다. 수십 년 전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시들어가던 소녀들과 영등포 제과공장에서 사탕을 싸던 처녀들은 이제 초일류기업이라 자랑하는 삼성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모두가 선망하는 바로 그곳에서 백혈병을 얻어 나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부자라고 떠벌리는 이건희는 자기를 위해 노동하다 병든 그들을 위해 쓸 돈은 없습니다. 아니 그들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산업재해 판정을 받는 것조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해 동안 단 한 건의 산업재해도 일어나지 않은 삼성전자는 그 덕분에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의 일부를 돌려받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건희만이 나쁜 사람이겠습니까? 박정희의 죄악을 애써 모른 척하면서 지금도 대를 이어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그 모든 악행의 공범이듯이, 지금 이 순간 삼성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애써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역시 살인을 방조하는 공범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알기 위해서는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합니다.

  이 책은 신음이고 절규입니다. 그리고 비열한 우리 사회를 되비추는 거울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절규에 귀 막고 그 거울 앞에서 애써 눈감는다면, 바로 우리가 다음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앞에서 결단하고 가난한 이웃의 부름에 응답한다면, 지난날 끝내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던 것처럼 이제 경제의 영역에서 정의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가신 분들의 죽음은 ‘사랑과 의미와 고난이 깃든’ 그런 죽음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남은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김상봉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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