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희 선생님의 그리스어 원전 번역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출간을 앞두고 여러 분들께서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시어 선생님과 출판사에 큰 힘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지난주 전해드린 서문에 이어 '멜로스인들과의 대담' 일부를 맛보기로 보여드립니다. 이 부분은 본문에 나오는 40여 편의 연설문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부분이며, 중립을 지키려는 멜로스인들을 용인하지 않는 아테나이인들의 '힘의 논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부분입니다. 물론 저항하는 멜로스인들은 이후 처참하게 정복당하지요.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여러분들께 의미 있는 읽을거리가 될 거라 기대합니다. 지금도 아테나이인 사절단의 말은 도처에 널려 있으니까요. 모쪼록 책이 나오는 때까지, 앞서 전해드린 서문과 이번 글이 여러분의 기대를 한껏 돋우길 기대해봅니다.

 

 

서문 보러 가기 http://blog.aladin.co.kr/bookeditor/485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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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정의와 약소국의 정의는 어떻게 다른가

아테나이인 사절단 : 인간관계에서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고, 약자는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여러분도 우리 못지않게 아실 텐데요.

멜로스인 의원들 : 여러분이 정의를 도외시하고 득실에 관해서만 논의하자고 하니 하는 말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보편적인 선(善)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위기에 처한 사람은 누구나 공정한 처우를 받아야 하며, 다소 타당성이 결여된 소명에 의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이 여러분에게도 이익이 될 것입니다. 귀국이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심하게 보복하는 것인지 당신들이 남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줄 날이 올 테니 말입니다.

아테나이인 사절단 : (1) 설령 우리 제국이 종말을 고한다 해도 우리는 나중에 일어날 일 때문에 의기소침하지 않을 것이오. 라케다이몬인들처럼 남을 지배하는 자들에게 정복당하는 것은 그다지 두려운 일이 아니오. (게다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것은 라케다이몬인들도 아니지 않소.) 두려운 것은 오히려 피지배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지배자들을 제압하는 것이오. (2) 하지만 그런 위험이라면 우리에게 맡겨두시오. 지금 우리가 원하는 바는,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우리 제국의 이익을 위해서이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오.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여러분을 우리 제국에 편입시키고 싶소. 양쪽의 이익을 위해 여러분이 살아남기를 바라오.

멜로스인 의원들 : 여러분이 우리의 주인이 되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익이 되듯 우리가 여러분의 노예가 되는 것이 어떻게 우리한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테나이인 사절단 : 여러분은 항복함으로써 무서운 재앙을 면하고, 우리는 여러분을 살육하지 않고 살려두는 것이 이익이니까요.

멜로스인 의원들 : 여러분은 우리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적대적이 아니라 호의적인 중립 국가로 남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단 말입니까?

아테나이인 사절단 : 용인할 수 없소. 여러분의 호의가 여러분의 적대감보다 우리에게 더 위험하오. 여러분의 호의는 우리가 무력하다는 징표로, 여러분의 증오심은 우리가 강력하다는 증거로 우리 속국들에게 받아들여질 테니까요.

멜로스인 의원들 : 귀국과 전혀 무관한 우리를 대부분 여러분의 이주민이거나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자들과 구별 없이 다스리는 것을 여러분 속국의 백성이 공정하다고 생각할까요?

아테나이인 사절단 :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보면 서로 피장파장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겠지요. 그리고 아직 독립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 강하기 때문이라 생각할 것이고, 우리가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있으면 우리가 두려워한다고 생각할 것이오. 우리는 여러분을 정복함으로써 제국의 영토를 확장할 뿐 아니라 제국의 안전을 확인하는 셈이 될 것이오. 우리는 해양 세력이고 여러분은 섬 주민, 그것도 다른 섬 주민보다 허약한 섬 주민이오. 따라서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오.

멜로스인 의원들 :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우리더러 정의는 말하지 말고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 말하라고 하시니, 우리는 다시 무엇이 우리에게 이익인지 말하고, 그것이 여러분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설득해야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지금 중립국이 몇 나라 있는데, 그들을 모두 적국으로 만들기를 원합니까? 그들이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나면 머지않아 여러분이 자신들에게도 쳐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여러분이 기존의 적국 수를 더 늘리고, 그럴 의도가 없던 나라들을 본의 아니게 여러분의 적국이 되게 강요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아테나이인 사절단 : 우리는 사실 내륙의 국가들은 그리 두렵지 않소. 자유를 누리는 그들이 우리를 경계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여러분처럼 아직도 굴복하지 않은 섬 주민이나, 우리 제국의 억압에 이미 분개한 자들이오. 그런 자들이야말로 무모한 행동으로 그들 자신과 우리를 모두 명백한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가장 많은 자들이오.

멜로스인 의원들 : 그렇다면 여러분이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분의 속국들은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런 극단적인 모험을 하는데, 아직 자유를 누리는 우리가 노예가 되기 전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보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야비하고 비겁한 짓이겠지요.

아테나이인 사절단 :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소. 여러분은 대등한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므로, 체면을 세운다든가 치욕을 면하는 따위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이 살아남느냐 하는 문제이며,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압도적인 강자에게 저항해서는 안 되오.

멜로스인 의원들 : 하지만 때로 승패는 수의 많고 적음보다 운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리고 우리가 항복하면 우리의 희망은 모두 사라지지만, 우리가 행동하는 동안에는 우리가 바로 설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겠지요.

아테나이인 사절단 : 위기를 맞으면 희망이 위안이 되겠지요. 다른 재원을 충분히 갖고 희망에 기댄다면 희망 때문에 해를 입기는 해도 파멸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사람은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희망은 본시 낭비벽이 심하다오). 그래서 희망이 무엇인지 알고 조심할 수 있을 때는 이미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지요. 여러분은 미약하고 백척간두에 서 있는 만큼 스스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 밖에도 여러분은 다급해진 자들의 흉내를 내지 마시오. 그들은 인간적인 수단으로 아직 자신을 구할 수 있는데도 눈에 보이는 희망이 사라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예언이나 신탁처럼 희망을 품게 하여 파멸로 인도하는 온갖 것들에 의지하지요.

멜로스인 의원들 :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우리가 귀국의 힘과 아마도 월등한 행운에 맞서 싸우기는 어렵다는 것을 물론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의에 대항해 정의의 편에 서 있는 만큼, 신들께서 우리에게도 여러분 못지않은 행운을 내려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약한 힘은 라케다이몬과의 동맹이 보충해주리라 믿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다 해도 그들은 우리의 친족인 만큼 명예를 위해서라도 우리를 도울 수밖에 없겠지요. 따라서 우리의 자신감은 여러분이 생각하듯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테나이인 사절단 : (1) 신들의 호의를 말하자면, 우리도 여러분 못지않게 거기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오. 우리의 목표와 행위는 신들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인간 상호 간의 행동 원칙에 대한 신념에 전혀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오. (2) 우리가 이해하기에, 신에게는 아마도, 인간에게는 확실히, 지배할 수 있는 곳에서는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오. 이 법칙은 우리가 제정한 것도 아니고, 이 법칙이 만들어지고 나서 우리가 처음으로 따르는 것도 아니오. 우리는 이 법칙을 하나의 사실로 물려받았고, 후세 사람들 사이에 영원히 존속하도록 하나의 사실로 물려줄 것이오. 우리는 이 법칙에 따라 행동할 뿐이며, 우리가 알기에 여러분이나 다른 누구도 우리와 같은 권력을 잡게 되면 우리처럼 행동할 것이오. (3) 따라서 우리가 신들에게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듯하오. 라케다이몬인들이 명예심에서라도 여러분을 도우러 올 것이라는 여러분의 기대에 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여러분의 순진함에 감탄하면서도 여러분의 어리석음에 동정을 금할 수 없소. (4) 라케다이몬인들은 자신들에 관계되는 일이나 자신들의 정체(政體)에 관한 한, 아주 탁월한 사람들이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전혀 딴판이오. 한마디로 알기 쉽게 요약해 말하면, 그들은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은 고상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가장 강한 편이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지금 근거 없이 구원을 기대하는 여러분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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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6-2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우연히 이 글을 발견하고 곧바로 예약주문했습니다. 천병희 선생님의 원전 번역본이 새로 나온다니 여간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본문의 일부만 읽어 보더라도 투키디데스의 빛나는 명문장들의 향기를 다시금 느낄 수 있군요.

'멜로스인들과의 대담' 중 아테나이인 사절단의 명문장 가운데 제게 인상깊었던 부분 하나를 덧붙여 봅니다.

* * *

멜로스의 파멸

"여러분의 결의를 보고 판단하건대, 여러분만이 미래를 눈앞의 사실보다 더 확실하게 생각하고 그 희망 때문에 미지의 것을 마치 기존의 사실로 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라케다이몬인과 천우신조와 희망을 믿고 모든 것을 건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95쪽,범우사)

인문MD 바갈라딘 2011-06-23 17:24   좋아요 0 | URL
현실의 한계에 부딪힐 때, 천우신조와 희망 말고 무엇으로 이겨내야 하는 걸까요.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접근하든 투퀴디데스야말로 서양에서는 가장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역사가라는 평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라틴 고전을 꾸준히 번역해온 천병희 선생님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드디어 나옵니다. 그리스뿐 아니라 서양 문명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 서양 고대사 최대의 사건이자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더불어 역사 서술의 기원으로 불리는 작품이지요. 많은 분들이 꾸준히 찾는 텍스트인데 그간 중역본과 축약본만 소개되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리스어 원전 번역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게 된 지금, 조금 기뻐하고 많이 뿌듯해 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오늘은 천병희 선생님의 서문 가운데 도움이 될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다음에는 이 책에 실린 40여 편의 연설문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멜로스인들과의 대담'을 전해드리겠습니다. 

6월 30일 출간 예정이며 알라딘에서 단독 예약판매를 합니다. 해당 기간에 구매하신 분 가운데 10분을 추첨하여 5분께 <역사>를, 5분께 <일리아스+오뒷세이아 세트>를 드립니다. 여러모로 도움 주신 숲 출판사와 흔쾌히 본문 공개를 허락해주신 천병희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예약판매 이벤트 페이지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10615_sup  

 

[서문_아주 특별한 비극,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주도 세력은 아테나이(Athenai)와 스파르테(Sparte)였다. 그들은 호시탐탐 그리스를 노리던 거대 제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들이었다. 이 놀라운 승리 이후 진취적인 아테나이는 민주주의를 신봉하며 강력한 해군력에 힘입어 에게 해에 제국을 건설했고, 보수적인 스파르테는 과두정체를 신봉하며 강력한 중무장보병에 힘입어 그리스 본토 남부의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 반도를 지배했다.
  황금기의 아테나이는 정치·문화·예술 분야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유산들을 쏟아내는 한편 지속적인 팽창정책으로 제국을 넓혀나갔다. 아테나이의 독주에 위협을 느낀 스파르테는 일부 동맹국의 사주를 받아 기원전 431~404년 아테나이와의 전쟁을 일으킨다. 이것이 27년 동안 지속된, 그리스 세계의 문명과 흐름을 뒤바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기원전 421년 양국 간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잠시 전쟁이 중단되지만, 아테나이가 시칠리아 원정의 실패로 국력이 약해진 데다 서아시아의 패자(覇者) 페르시아(Persia)와도 사이가 나빠지자, 전쟁을 재개한 스파르테가 페르시아의 지원 속에 아테나이에게 항복을 받아낸다. 유례 없이 잔혹했던 전쟁에서 패배하며 아테나이는 황혼기에 접어든다.
  당시 그리스의 산문문학은 역사가 짧아서 기원전 5세기 후반부 이전에 씌어진 것은 지금까지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산문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헤로도토스(Herodotos)의 <역사>이다. 기원전 5세기 후반부에 작품 활동을 하던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세기 초에 일어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두 차례에 걸친 전쟁에 초점을 맞춰 방대한 저술을 쓰며, 약간의 초기 역사와 여러 부족과 국가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헤로도토스가 소아시아 할리카르낫소스(Halikarnassos) 시 출신인 데 견주어 기원전 460년경 아테나이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기원전 400년경 세상을 떠난 투퀴디데스는 적어도 한 번 이상 장군(strategos)으로 선출되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나이군을 지휘했으며, 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살아서 이 전쟁의 역사를 기술(記述)했다. 모두 8권으로 구성된 그의 저술 1권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의 그리스 역사와 환경에 관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고, 전쟁에 관한 본격적인 기술은 2권에서 시작된다. 현존하는 저술은 기원전 411년 가을에서 중단되지만 전쟁의 결말은 몇 군데에서 언급되고 있다.
  헤로도토스의 저술이 넓다면 투퀴디데스의 저술은 깊은 편이며, 헤로도토스가 신의 섭리를 믿는다면 투퀴디데스는 모든 것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설명한다. 헤로도토스는 일화를 소개할 때 흔히 이설(異說)도 함께 소개하지만 투퀴디데스는 거의 언제나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만 소개하며 그것을 믿어주기를 바란다. 투퀴디데스는 자신의 역사 기술 방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각의 인물이 전쟁 직전이나 전쟁 중에 발언한 연설에 관해 말하자면, 직접 들었든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든 나로서는 정확히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실제 발언의 전체적인 의미를 되도록 훼손하지 않으면서 연설자로 하여금 그때그때 상황이 요구했음 직한 발언을 하게 했다. 그리고 전쟁 중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우연히 주워들은 대로 또는 내 의견에 따라 기술하지 않고,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든 남에게 들은 것이든 최대한 엄밀히 검토한 다음 기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내가 기술한 역사에는 설화가 없어서 듣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은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 거리로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출판이 되자마자 고전이 되었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그가 중단한 곳에서 그리스 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 특별한 비극 속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았다. 그의 영향을 받지 않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함축적인 문체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가장 심오한 역사가라는 평가를 받았고, 19세기 독일에서는 랑케(L. von Ranke) 등에 의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가의 이상(理想)으로 추앙받았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전반까지 이어졌지만, 그 뒤에는 그러한 주장에 회의를 품으며 그의 문체와 언어 분석에 치중하는 경향이 차츰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려는 그의 열의와, 사건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그의 노력과, 평이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기술과, 인간 본성을 파고드는 연설을 적절히 한데 엮는 능력은 여전히 경탄의 대상이다.(중략)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미완으로 끝났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살아 있었지만 전해오는 텍스트는 기원전 411년 가을에서 갑자기 중단된다. 크세노폰(Xenophon)의 <그리스 역사>(Hellenika) 등 이후의 역사서들이 기원전 411년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미루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투퀴디데스가 발표한 것의 전부라고 확신해도 좋을 듯하다.
  그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부터 기술하기 시작해 전쟁이 끝나고도 살아 있었으니, 우리는 이런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투퀴디데스는 사건을 1년 또는 반년 단위로 사건 직후 바로 기록해 그 부분을 종결한 것일까, 아니면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메모만 해두었다가 전쟁이 끝난 뒤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했을까? 아니면 그 두 가지 방법을 다 쓴 것일까?
  이를테면 2권 65장의 페리클레스에 대한 평가에서 시칠리아 원정의 실패 등 페리클레스 사후 사건들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사건을 1년 또는 반년 단위로 사건 직후 바로 기록해 그 부분을 종결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대부분(1권 1장~4권 51장, 5권 84장~8권 1장)은 연설과 여담을 곁들인 정교한 사건 기술로 짜여 있다. 그러나 두 부분(4권 52장~5권 83장, 8권 2~109장)에는 연설이 거의 나오지 않고 사건이 무미건조한 삽화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어, 이는 투퀴디데스가 죽기 전에 마지막 손질을 하지 못한 예비 작업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6권 1장~8권 1장은 시칠리아 섬의 지리와 역사를 포함해 2년 동안 계속된 아테나이의 시칠리아 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술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별도의 전공 논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밖에도 그의 기술에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듯한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 이런 괴리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에 대해 독일의 역사가 울리히(F. W. Ullrich)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한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기원전 421년 아테나이와 스파르테 사이에 니키아스(Nikias) 평화조약이 체결되자 투퀴디데스는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해 스팍테리아(Sphakteria) 섬의 함락을 포함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1권~4권 51장을 완성했으나, 시칠리아 대참사 후 계획을 수정하여 시칠리아 원정과 그 이전의 멜로스(Melos) 섬 사건에 관해 별도의 글을 썼다는 것이다. 또한 기원전 404년 아테나이가 최종적으로 패하자 그는 두 번째 서문(5권 26장)을 쓰고 전체를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전에 쓴 것을 조금씩 수정하기 시작했으나 죽기 전에 수정 작업을 끝마치지 못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어떤 편집자가 이것들을 한데 묶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상태로 출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론’에 대해 그렇다면 투퀴디데스는 역사 기술과 정치철학과 관련해 아무 원칙도 신념도 없는 역사가가 되고 말 것이라며, 그가 이용한 여러 가지 방법은 그때그때 가장 적합한 것이라는 ‘통합론’이 요즘은 득세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접근하든 투퀴디데스야말로 서양에서는 가장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역사가라는 평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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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 2011-06-1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으로 드디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나왔군요. 정말 기쁘고 반가운 소식입니다. 원전번역본이 없어 아쉬움이 컸는데 무더운여름 시원한 냉수 마신 기분입니다. 천병희 선생님은 잘 읽히고 가장 이해하기 쉽게 번역해 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당첨 됐으면 좋겠네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5 21:45   좋아요 0 | URL
네, 이번에는 최초로 저자와의 만남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워낙 번역 작업에 몰두하셔서 짬이 날지 모르겠지만 꼭 한 번은 자리를 마련해볼 참입니다.

마산지킴이 2011-06-15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제야 나온것이 아쉽지만 정말 기쁜소식입니다. 2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니 조바심이 납니다. 빨리 멜로스인들의 대담 이라도 노출시켜주세요. 서로 팽팽한 주장들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더욱 궁금해 집니다.
역시 그리스 고전문학은 원전으로 읽어야 제맛...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5 21:47   좋아요 0 | URL
대신 2주 후에는 꽤 오랜 기간 곱씹으며 들여다볼 시원한 텍스트 하나를 만나게 되겠지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멜로스인들의 대담은 다음 주 초에 올릴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무개 2011-06-1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대단하네요.. 천병희선생님 안계셨으면 이 엄청난 일을 우리나라에서 누가 해냈을까 싶습니다. 부디 장수하시기만을 바랄뿐..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4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판매나 홍보를 떠나 뭔가 선생님께 힘을 전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우선입니다. 아마 선생님께서도 아무개 님 응원을 전해들으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timeroad 2011-06-1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씨의 책을 읽으면, 정말 이 책을 비롯한 원전번역서가 얼마나 타는 목마름이었나를 느끼게 합니다. 늦지 않았겠지요. 원전으로 읽기 위해서 희랍어를 지금 공부해볼까 고민하는 중입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제처두고 얘기할 수 없는 고전이지요. 아주 적절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서숣방법과 두 책을 비교하게 되는, 그런 책이 아닐까 합니다. 기대만빵입니다. 천선생님에게 늘 감사하고, 출판사와 알라딘의 열정에도 감사드립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41   좋아요 0 | URL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재미난 비교네요. 희랍어까지 공부하실 마음이라니, 부디 성공하시길~~

라라 2011-06-16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전쟁사. "오늘날 하찮은 일로 간주되는 사건도 훗날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기 때문에 사건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빠짐없이 기술했다." 작고하신 김진경 선생이 이 책을 논한 글 가운데 일부인데요, 관점을 가진 집필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텍스트도 중요하지만 천병희 선생님의 주해가 기대됩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42   좋아요 0 | URL
"오늘날 하찮은 일로 간주되는 사건도 훗날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지금 우리에게도 울림이 큰 말이네요. 고맙습니다.

motoko3 2011-06-1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합니다. 1801년에 시작된 역경의 시간들, 18년 만에 혹은 되던 해에 목민심서를 완성합니다. 다산초당은 18번 국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해남 윤씨(고산 윤선도네가 큰집, 다산의 외가는 작은집 계열), 다산의 외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일종의 연수소를 겸한 출판사가 강진 만덕리에 세워진 것이지요. 해남윤씨 집안과 이래저래 관련이 있었던 다산의 제자들, 연구원이면서 출판사 직원들이였던 이들의 숫자가 18명입니다. 역경을 딛고 역경의 세월이 있었기에 500권의 편저서가 나오게 되었다는 점, 투키디데스의 망명생활은 20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세월은 그의 역사서술에 도움이 주었다고 하는데요, 어쩌면 18년이나 20년이라는 상당한 세월은 세상을 너무 격정적이지 않게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거리'를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기대가 되는 책의 출간, 반갑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51   좋아요 0 | URL
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돌아오게 되죠. 전쟁 안과 밖 양쪽에서 바라본 그의 기록이 기대됩니다.

새우 2011-06-1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를 어긴 초자연적인 존재, 티케.. 투키디데스는 티케를 거듭 강조한다는 부분을 인상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티메는 정의를 어긴 폴리스를 정벌하는 초자연적인 존재이지며 전투에서 힘이 정의에 대해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지만, 정의를 어긴 나라는 결국 티케라는 신의神意에 의해 정벌당한다는 것, 이해가 안 가서 기억하는 단어인데, 이번 책에서 그 맥락을 다시 짚어보고 싶다. 기대가 되고 읽은 후에 꼭 리뷰를 올리도록 할게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51   좋아요 0 | URL
네, 새우 님의 리뷰를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yess1985 2011-06-1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 소식이 반갑고요, 진작에 나왔던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다시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쉽지 않은 일인데..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그의 시선에서 얻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요동치는 여론과 그것을 고스란히 베끼는 언론이 생산한 기사들, 지금 진행되는 우리 주변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데에도 도움을 주는 책이 될 듯..가장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역사가(평가)가 전해주는..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15:37   좋아요 0 | URL
옛것이 좋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요즘입니다.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겠지요. 고맙습니다.

다섯손가락 2011-06-1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문에서 저자의 역사기술방법에 대한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라는 대목인 참 숙연하게 다가옵니다. 진인사 하였으니 대천명할 뿐이라고 해야할까, 발간 즉시 고전의 반열에 진입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런 원전번역 작업 또한 곧바로 독자들이 평가해주리라 생각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계발서들의 범람에 신물이 나는 즈음, 단비와도 같은 소식입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20 17:53   좋아요 0 | URL
이 말도 덧붙여 둡니다. "이 책은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 거리로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표로 책을 쓰고 그게 실제 실현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oren 2011-06-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의 흐름을 지식으로 파악한 자와 그에 무지한 자 중에서 전자가 후자보다 안전하게 이 위험스럽기 짝없는 세상 속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투키디데스가 이 책을 남겼으리라는 대목이 새삼 떠오르는군요.

* * *

투키디데스의 생각(세 가지 동기)

그에게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보다 중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행위의 원천이라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가 사실보다 사람의 심리를 중시한 이유가 있다. 그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체험을 통해 도달한 생각 중에서 사람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의 행동 동기란 부의 추구와 명예욕과 공포로부터 도피하려는 세 가지 동기로 집약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원망(願望)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은 힘을 얻으려 한다. 게다가 사람이 힘의 획득을 노리는 한 다툼은 끊이지 않고, 사람의 안전은 언제나 위협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리고 사람은 그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한 힘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그는 체험했던 것이다. 이러한 끊기 어려운 악순환은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국가 사이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그는 심각한 비관론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을 비관한 그가 왜《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써서 후세에 남기려 했을까? 그것은 이러한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역사의 흐름을 지식으로 파악한 자와 그에 무지한 자 중에서 전자가 후자보다 안전하게 이 위험스럽기 짝없는 세상 속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후자를 자기 작품으로 계몽하고 그 수를 되도록이면 적게 만들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다 많은 사람이 보다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리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임에 틀립없다.
(404쪽, 범우사 편)

인문MD 바갈라딘 2011-06-23 17:25   좋아요 0 | URL
꼼꼼한 댓글 고맙습니다. 이후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본과 범우사 판을 함께 두고 살펴보아도 좋겠네요.
 

   
  <분노하라>, 이것은 책의 제호가 아니다. 93세 노투사의 육성이다. 혁명과 코뮌 그리고 레지스탕스의 역사가 만들어낸 프랑스 지성의 절정이다. 그리고 청년들과 미래를 향한 절절한 애정이다. 앵디녜부! 레지스탕스! 앙가주망! 분노와 저항과 참여를 통하여 거대한 역사의 일부가 되기를 호소한다. 프랑스보다 분노할 것이 훨씬 더 많은 우리들에게 그의 외침은 정수리에 올려놓은 얼음조각처럼 가슴 서늘한 깨달음이 된다. 분노의 표적을 잃은 채 부당한 증오에 함몰해 있는 자신을 깨닫고 진정 분노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격렬한 희망’, ‘평화적 봉기’에 이어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이 곧 창조이다.(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작년 프랑스를 뒤흔든 13쪽짜리 책이 있습니다. 출간 직후 수십 만부가 나가 한국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분노하라>. 사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분노하고 있습니다. 다만 매일 분노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바꿔볼 생각이나 행동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러려니, 하며 체념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94세의 나이에도 체념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진보를 믿으며 현실의 가능성을 키워가자고 제안합니다. 이제 프랑스발 분노의 바람이 한국에도 들이닥칠 참입니다. 뜨거운 분노의 바람에 앞서 <분노하라>의 한국어판 번역자(임희근)와 저자가 나눈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참고로 이 책은 다음 주에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옵니다. 

* 저작권 문제로 해당 인터뷰 전문을 내리고 일부 질문과 내용만 남겨둡니다. 전문은 책으로 만나보시길. 

 

[스테판 에셀 인터뷰]

책에 소개된 프로필 외에, 그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우리 집안은 관습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습니다. (중략) 그래서 일찍부터 저는 세간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과는 일정 거리를 두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도덕이란 타인들이, 사회가 만들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규범(code)에 순응하는 것일 터입니다. 또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할 것, 즉 발명이며 창조, 즉 결국 각자 자기만의 자유를 얻어내는 일일 테니까요.    

  
    


올해 94세의 고령인데도 정말 정정하게, 열정적인 삶을 살고 계신 듯합니다. 백 세에 가까운 노령에도 그러한 강건함과 용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비결, 그것은 물론 ‘분개할 일에 분개하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비결은 ‘기쁨’입니다.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분개’입니다. 분개할 일에 분개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중략)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과 베푸는 기쁨을. 남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책임을 감수하는 것.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베풀고 싶다는 마음, 이 마음을 북돋워야 합니다. 사람을 책임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자꾸만 교육을 통해 계발해야 하며, 마음 교육을 위해서는 상상력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집필 당시 이런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 작은 책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 때가 이 세계의 아주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또한 어떻게 보면, 정치적 윤리를 설파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행동을 취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윤리적 기본이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에서 (요즘 사람들에게 들려줄) 메아리를 찾습니다. 그러면 젊은 세대는 그 메아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렇습니다. 겨우 20페이지밖에 안 되는 제 책이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것은  전세계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절감하고 있는 문제 제기에 이 책이 화답을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레지스탕스 정신과 전통이 오늘날 어떻게 계승되고 반영된다고 생각하십니까?

1944년 5월 채택된 ‘프랑스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의 프로그램은 치열한 현실성을 띤 내용이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텍스트였습니다. 우선 길이가 짧았고, 또한 내용이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짚어냈습니다. (중략) 잘 되어가는 사회란 무엇입니까? 모든 시민에게 존재의 방도가(방편이) 보장되는 사회, 특정 개인의 이익보다 일반의 이익이 우선하는 사회, 금권에 대항하여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사회입니다. 세 단어로 짧게 줄이면 여전히 이것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 
 

만약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으십니까? 또 오늘날의 레지스탕스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 나름으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 광고 메시지나 언론이 전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만 자유롭게, 양심에 입각해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옛날 레지스탕스 당시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네트워크를 이용해야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인터넷상의 여러 네트워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습니다. 아랍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런 일을 훌륭히 해냈고, 그리하여 독재자를 축출하는 쾌거를 이룬 것입니다. 


현재 아랍과 이슬람권-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민주화 요구가 한창입니다. 이 흐름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튀니지의 젊은이들, 이집트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압박을 받으면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이슬람 문명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문명이라면 그 문명 속에 갇힌 채 무력하게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도처에 독재와 압박에 순응하지 않는 깨어 있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미얀마나 그밖의 나라들... 이런 나라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주 소중한 시기입니다. 특히 이렇게 떨치고 일어난 이들이 다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 도처에, 때는 왔습니다.  
 

책에서 강조하신 ‘창조적인 저항의식’으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방법이 있을까요?  

제도들이 민주적으로 기능하기까지 시민들의 참여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사람들이 항상 잘 깨닫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교육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교육도 부족하지만 정치적 창의성도 부족합니다. 시민과 통치자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참여(적) 민주주의’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도 여전히 막연합니다. 사실은 보통선거 방식으로 ‘넘버 원’을 선출하는 것–지방선거든, 전국적 선거든–만이 여러 제도를 제대로 기능케 하는 민주적 형태는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 일단 선출된 대표자는 시민들이 원하는 바, 생각하는 바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한 단계 높은 정치적 창의성은 우리 제도에 무엇을 요구할까요? 새로운 형태의 기능을 요구합니다.     


부자들에 의한 미디어 독점과 언론 독립 정신의 훼손을 매우 우려하고 계십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인 듯한데, 시민들 개개인 혹은 미디어 종사자들이 이런 상황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오늘날 모든 문제들은 상호의존적입니다. 인류가 이 땅에서 사는 방식을 전반적으로 재고하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습니다. 극도의 빈곤 문제가 생태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이 두 문제는 테러리즘 문제와 연관됩니다. 즉 우리 각자 안에 내재한, 그리고 우리가 다른 것으로 바꾸려 노력해야 할 ‘폭력의 필요성(폭력을 자행하고 싶은 경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문제 말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관해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함께 행동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비폭력 원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미래로, 희망으로 향한 문을 닫아버리게 합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썼듯이 제가 보기엔, 격렬할(폭력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희망뿐이라는 것입니다. (중략) 하지만 꼭 알아두십시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이나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 다음에 타인들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어려운 구축(構築)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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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워튼 2011-06-0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다리던 책인데 돌베개에서 나오네요. 읽고 분노하겠습니다. ^^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0 17:35   좋아요 0 | URL
벌써 식은 건 아니겠지요? 분노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해환 2011-06-0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쥘과 짐과 한집에 살며 까트린을 엄마라고 부른 할아버지였다는 깨알같은 정보, 얻어갑니다~ㅎ 언제나오나 손꼽고 있었는데, 드디어 담주 화욜이군요. 한껏 기대하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0 17:35   좋아요 0 | URL
이미 분노의 열기를 느끼고 계시겠군요. 후후.

루쉰P 2011-06-0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 정보 너무 감사해요. ^^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0 17:35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보내주시는 관심과 애정 늘 고맙습니다. 다음 주에는 폭풍처럼 재미난 이야기가 올라갈 테니 기대해주세요.

처음처럼 2011-06-13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짤막한 인터뷰이지만, 구순이 넘은 노투사의 진심에 피가 끓는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5 10:23   좋아요 0 | URL
네, 책에는 조금 더 긴 인터뷰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책을 쓰기로 생각을 한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또 한 정권이 끝나간다. 국민들은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 더 이상 절망의 시기가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가 역사에 반면교사(反面敎師)라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역사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증언을 남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함께 했던 사람들 모두가 지고 있는 첫 번째 책무는 자기가 보고 겪었고 일했던 내용을 증언하는 것이다. 다음 시대에 교훈이 되고 참고가 될 내용을 역사 앞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제 누군가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 이제 누군가는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바람으로 펜을 들었다.
 
   

 

"노무현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함께 했던 사람들 모두의
첫 번째 책무는 자기가 보고 겪었던 내용을 증언하는 것이다.
다음 시대에 건네줄 기록을 육필로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을 극복하고,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 말한 사람 문재인.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맞아 30여 년 지근거리에서 지지자로, 친구로, 동반자로 서로를 믿고 의지한 두 사람의 운명 같은 동행을 풀어냈다. 이번 책에는 문재인 자신의 삶도 담겨 있지만,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언과 기록도 다수 들어갈 예정이다. 책은 6월 초에 만날 수 있는데, 애타는 마음에 이 책 <문재인의 운명> 서문을 최초로 단독 공개한다. 

노무현의 정치적 가치와 계승자 설문, 관련도서 리뷰대회 등 알라딘에서 따로 마련한 2주기 행사 내용은 다음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10512_noh2)

 

<문재인의 운명> 서문 

강물이 되어 다시 만나기를

세월이 화살 같다.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과 이별한 지 어느덧 두 해가 됐다. 그 느낌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그를 떠나보낸 날’은 여전히 충격과 비통함이며, 어떤 이들에게 ‘노무현’은 아직도 서러움이며 아픔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은 그리움이고 추억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있다. 이제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기고 간 숙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시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무를 순 없다. 충격 비통 분노 서러움 연민 추억 같은 감정을 가슴 한 구석에 소중히 묻어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냉정하게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그를 ‘시대의 짐’으로부터 놓아주는 방법이다.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

2주기를 앞두고 사람들이 내게 책을 쓰라고 권했다. 이유가 있는 권고였다. 노 대통령은 생전에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다. 기록으로서 솔직하고 정직해야 하는데, 아직은 솔직하게 쓸 자신이 없다고 했다. 혼자 하기에 벅차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 공동 작업을 청했다. ‘함께 쓰는 회고록’으로 가자고 했다. 저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대를 기록해 보라고 부탁했다. 그 다음에 당신이 하겠다고 했다.

그 부탁을 했던 분도, 그 부탁을 받았던 우리도 미처 뭔가 해 보기 전에 갑작스럽게 작별해야만 했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숙제는, 그와 함께 했던 시대를 기록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과 오랜 세월을 같이 했고, 지금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내가 그 일을 맨 먼저 해야 한다고들 했다.
   
하지만 엄두가 안 났다.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기록을 충실히 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하도 엄청나고 많은 일을 겪어, 자료를 보지 않으면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했다. 주저되는 부분도 많았다. 대통령이 고민했던 것처럼, 나 역시 100% 솔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많은 분들이 있는데, 자칫하면 이런 저런 부담을 드리거나 누가 될 소지도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기로 생각을 한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또 한 정권이 끝나간다. 국민들은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 더 이상 절망의 시기가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가 역사에 반면교사(反面敎師)라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역사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증언을 남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책무는 자기가 보고 겪었고 일했던 내용을 증언하는 것이다. 다음 시대에 교훈이 되고 참고가 될 내용을 역사 앞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바람으로 펜을 들었다.

책을 정리하면서 보니, 참 오랜 세월을 그와 동행했다. 그 분은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따뜻하고 가장 치열한 사람이었다. 그 분도, 나도 어렵게 컸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려 했고,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함께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고, 함께 희망을 만들어보고자 애썼다.   

그 열망을 안고 참여정부가 출범했다. 이룬 것도 많고 이루지 못한 것도 많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아쉬움이 많다. 후회되는 것도 있다. 견해의 차이로 마음이 멀어진 분들도 있다. 개혁-진보진영의 ‘과거 벗’들과도 다소 마음이 멀어진 듯하다. 우리뿐이 아니다. 개혁-진보진영 안에서도 상처와 섭섭함이 남아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 서거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줬다. 다음 시대를 함께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모아야 한다. 마음을 모아야 힘을 모을 수 있다.

더 이상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애증(愛憎)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분은 떠났고, 참여정부는 과거다. 그 분도 참여정부도 이제 하나의 역사다. 그냥 ‘있는 그대로’ 성공과 좌절의 타산지석이 되면 좋겠다. 잘 한 것은 잘한 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평가 받고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분도 그걸 원하실 것이다.

노 대통령과 나는 아주 작은 지천에서 만나, 험하고 먼 물길을 흘러왔다. 여울목도 많았다. 그러나 늘 함께 했다. 이제 육신은 이별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나와 그는, 정신과 가치로 한 물줄기에서 만나 함께 흘러갈 것이다. 바다로 갈수록 물과 물은 만나는 법이다. 혹은, 물과 물이 만나 바다를 이루는 법이다. 어느 것이든 좋다.

이 같은 나의 절절한 마음을, 내가 좋아하는 도종환 시인이 한편의 시에서 어쩌면 그리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멀리 가는 물>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이 땅의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결국은 강물이 되어 다시 만나고,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뤄 함께 흘렀으면 좋겠다. 강물은 좌로 부딪히기도 하고 우로 굽이치기도 하지만, 결국 바다로 간다. 장강후랑최전랑(長江後浪催前浪)이라고 했던가. 그러면서 장강의 뒷물결이 노무현과 참여정부라는 앞물결을 도도히 밀어내야 한다. 역사의 유장한 물줄기, 그것은 순리다. 부족한 기록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 마뜩찮아 하던 나를 설득해 책을 내도록 권고한 분들이 꽤 많다.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받아들인다. 방대한 양의 내 녹취와 증언을 꼼꼼히 정리하여 자료로 만들어 주느라 고생한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 작업이 없었으면 나는 책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원고를 자신의 것인 양 정성껏 봐주고, 의견을 주신 분들의 노고도 고맙기만 하다. 책을 완성해 준 <가교출판> 식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 모든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노 대통령 2주기에 맞춰 발간해, 그 분 영전에 헌정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열심히 정리했지만 부족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이 책이 그 분이 바랐던 ‘함께 쓰는 회고록’의 출발점이기를 바란다. 그 분과 함께 했던 다른 분들의 알찬 기록이 속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2011년 5월
 
문 재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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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 2011-05-2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의 희노애락이 잘 나타나 있을거 같고 기대가 되는 도서입니다^^

승희 2011-05-21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옛날 대청로의 거리에서 철마골로강의하러 오실 때의 노무현 변호사를 기억합니다.
그 시절, 차가 많지않았던 시절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강의하러 와주신 열정으로 뵐 때부터
시작된 노무현+문재인의 동거를 계속 봐왔었죠. 좋은 책을 기대하겠습니다.

사자는살아있다 2011-05-24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이글을 쭈욱 따라 읽는데, 갑자기 목에 슬픔 한 바가지가 차오릅니다.
사람이 마음놓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문 변호사님과 남은 저희가 고인의 유지를 실천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설인 2011-06-0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편이 방송된 지 어느새 1년, 사태는 대강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몇몇 검사의 징계와 고발자의 구속이 결과인데, 검찰 내부 문화와 권력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듯싶다. 그간 몇몇 책이 나와 일정한 호응을 얻었지만 고발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스폰서 정용재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시사IN 정희상,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가 정리한 이번 책은 50여 명에 이르는 관련 검사 실명을 직접 내보인다는 점에서 PD수첩 이후 가장 폭발력이 큰 이야기가 될 거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뜨거워지지는 말자. 이 책 역시 폭로와 고발에 그친다면 언제 새로운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이제는 PD수첩을 '떠나게 된' 최승호 PD의 추천사와 세 명의 저자가 전하는 서문을 공개한다. 책은 11일 월요일에 나오는데 문제 없이 독자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추천사] 

‘검사와 스폰서’ 방영 후 1년… 그리고 이 책  
- 최승호, MBC PD 


<PD수첩> ‘검사와 스폰서’(2010년 4월 20일 방송)가 방송된 지도 벌써 1년이 되어간다. 방송 1년이 지난 지금 검사들의 스폰서 행태를 고발한 정용재 씨는 수감자의 신분이고 나 역시 <PD수첩>을 타의로 떠났다.

검찰에도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수십 명의 검사들이 특검 수사를 받았고 일부는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박기준·한승철 두 검사장은 면직 처분됐다. 박기준 씨는 면직처분 취소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특검 기소가 무죄 판결을 받는 상황에서 나머지 일부 검사들을 대상으로 한 징계가 ‘조용히’ 이뤄졌다. 정직, 감봉 등의 징계가 내려졌다. 이렇게 스폰서 검사 파문은 정리되어가고 있다. 검사들은 당분간 그들이 받은 ‘섹검’의 수치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곧 위엄을 갖추고 일인지하만인지상의 검찰 위상을 회복할 것이다.

지난 1년간 그 난리를 쳤지만 사실 검찰이 인정한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증거가 명확하게 남아 있는 최근의 몇 차례 향응을 인정했을 뿐 스폰서 정씨가 수백 명에게 제공했다는 성 접대는 한 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엄연히 있는 증거와 증인도 없는 것처럼 묵살하고 은폐했다. 검찰이 다른 사건을 수사할 때도 이렇게 한다면 우리 국민은 불안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심각한 은폐·왜곡이 저질러졌다.

그 한 예로 검찰은 인터넷에서 이름만 검색하면 어디에 있는지 지도까지 나오는 식당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다. <PD수첩>은 쉽게 찾아낸 과거 업주들 중 상당수도 찾을 수 없었다는 한마디로 은폐해버렸다. 어찌 보면 검찰이 제대로 조사를 했더라도 업주들이 과거 정용재 씨가 얼마나 검사들을 자주 접대했는지 밝히기를 꺼렸을 가능성이 크다. 누가 검찰의 비위를 상해가면서 오래 된 과거 일을 굳이 진술하려 하겠는가. 그러나 검찰은 아예 찾아보지도 않고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검찰이 찾아보는 시늉도 하지 않고 없다고 결론을 내버린 것이야말로 검찰이 누리고 있는 권력이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말해준다고 믿는다. 검찰이 이렇게 결론을 내버리면 그 누구도 쉽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을 검찰 스스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실제로 <PD수첩>이 검찰의 진상은폐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검사와 스폰서3’을 방송했지만 검찰 조직은 묵묵부답이었다. 일언반구 변명도, 항변도 하지 않았다. 그 뒤에 느껴지는 것은 “너희는 떠들어라. 우리가 묵살하면 결국 그뿐이다”라는 오만함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검찰이 이렇게 버틸 경우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가 그들을 이렇게 괴물로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정용재 씨는 이때 큰 상실감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전 인생을 걸고 검찰을 고발한 결과가 이런 용두사미 특검이라는 데 분노했다. 그런 그를 두 언론인이 찾아왔다. 이 책은 검찰의 검사 스폰서 사건 은폐·왜곡을 향해 정용재 씨와 그를 취재하던 두 언론인이 보내는 고발장이다. 《시사IN》 정희상 기자,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이 두 분은 나와 함께 정용재 씨를 취재하던 기자들이다. 특검의 수사가 결국 의혹만 남기고 정리될 즈음 이들은 정용재 씨를 만나 이 책을 쓰기로 의기투합했다. 검찰의 진상규명이 어느 정도 순조로웠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책이 태어난 것이다.

원고를 읽어보니 새로운 사실이 많다. 게다가 거의 실명을 공개했다. 저자들은 “일부 고위직 검사들뿐 아니라 일반 검사들조차도 스폰서 문화에 포획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줄 필요가 있어서” 실명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검찰뿐 아니라 경찰, 군 등 과거 정용재 씨의 스폰을 받은 다른 부문의 고위 인사들도 실명으로 등장한다. 이 책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증언을 한 정용재 씨는 지금 가족이 있는 곳과 멀리 떨어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어쩌면 이번 증언은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누가 과연 그의 처지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그는 우리 사회가 가진 축복이다. 비록 그것이 그와 그의 가족에게는 천형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와 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저자 서문] 

인터넷 국어사전은 ‘스폰서sponsor’를 이렇게 설명해놓고 있다.

1. 행사, 자선사업 따위에 기부금을 내어 돕는 사람.
2.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따위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광고주.

하지만 스폰서는 이런 사전적 의미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의미로 확장된다. 그런 점에서 스폰서는 국회의원, 판·검사 등 사회에서 힘이 있는 사람을 뒤에서 돈 등으로 뒷받침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경우 스폰서는 대부분 사업가다. 마치 권력과 돈이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검사 스폰서’ 사건은 그러한 성격의 스폰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였다.

우리는 ‘검사 스폰서’ 사건이 터진 때를 전후로 수차례 정용재 씨를 부산 현지에서 만났다. 정씨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사업체를 물려받아 한때 부산·경남지역에서 가장 잘나가던 건설업자였다. 정씨에게는 젊은 나이라는 약점을 보완해줄 힘(권력)이 필요했고, 정씨는 아버지 때부터 관계를 맺고 있던 ‘검사’를 선택했다. 정씨는 사업이 몰락한 이후에도 ‘검사 스폰서’ 노릇을 멈추지 않았다. ‘스폰서 중독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권력에 돈 쓰는 맛’, 그 대가로 ‘권력에 호가호위하는 맛’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정씨는 자신이 20여 년 동안이나 검사 스폰서였다고 고백했다. 검사들에게 정기적으로 밥과 술을 사고, 촌지를 돌렸을 뿐 아니라 수시로 성 접대까지 해왔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쓴 접대비만 당시 돈으로 10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 특히 검사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날 때면 전별금과 함께 순금으로 만든 마고자 단추를 선물했고, 심지어 검사들이 제 시간에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경찰 헬리콥터를 띄우기도 했다. 떠나는 검사가 부임하는 검사에게 정씨를 소개해주는 ‘스폰서 인계’ 문화는 검사─스폰서 유착관계의 원동력이었다. 정씨는 접대가 “보험 성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검사들이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어떤 검사도 이러한 접대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 놀라운 증언도 나왔다. 부산의 한 모델에이전시에 소속된 모델들을 불러 ‘원정 접대’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 호송차의 호위를 받았다는 얘기다. 경찰도 ‘검사 스폰서’의 손아귀 안에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공권력이 검사 접대를 위해 움직인 것은 정씨가 ‘검사’스폰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검사 스폰서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일은 검사의 어두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씨가 증언한, 술자리에서 보여준 검사들의 행태는 차마 글로 옮기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검사의 어두운 얼굴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검찰 진상규명위원회와 특검의 활동은 그야말로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이들의 활동은 스폰서 검사들에게 면죄부만 줬다는 지적을 받았다.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긴 데서 예고된 결과였다. 특검에 파견된 현직 검사들은 날마다 변호사 출신인 특검보들과 싸워가며 조직의 치부를 덮기에 바빴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우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스폰서 검사 건은 이제 막을 내리는 것 같다. 모든 진실이 묻혀버리고 정의가 사라지고 무소불위의 검찰은 자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그동안 계속 정씨를 취재해온 우리도 ‘막을 내리는 검사 스폰서 사건’ 앞에 아쉬움이 컸다. 고민한 끝에 정씨의 증언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구속집행정지 상태였던 정씨를 다시 부산에서 만나 수차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정씨를 취재해왔던 내용과 그때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정씨가 접대했던 검사들의 이름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한두 번 접대받은 검사들 이름까지 공개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위의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검사 스폰서 사건이 터졌을 때 공개된 일부 고위직 검사들뿐 아니라 일반 검사들조차도 ‘스폰서 문화’에 포획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이 검사들의 ‘실명 공개’다. 수사검사로 8년 6개월간 검찰에 몸담았던 김용원 변호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스폰서 문화’를 이렇게 독하게 꼬집었다. 그의 독설은 우리의 검사 실명 공개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준다.

“여자 접대도 하고 용돈도 주면 물론 금상청화다. 판검사들, 특히 젊은 판검사들 가운데는 술과 여자에 굶주린 사람이 많다. 스폰서들은 이런 판검사들을 노린다. (…) 룸살롱의 잘나가는 아가씨들 가운데 판검사와 섹스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 그러나 스폰서를 두고 있는 판검사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특히 잘나가는 검사들 가운데 스폰서를 여럿 거느린 사람도 많다.”(《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 중에서》)

이 책은 정씨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나올 수 없었다. 그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증언이 책으로 기록되어 세상에 나오길 가장 바랐다. 그는 “그동안 제가 접대했던 분들이 이 책을 한 권씩 사서 읽어주길 바란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정씨는 진실을 얘기했다는 괘씸죄에 걸려 현재 신병치료를 위한 구속집행정지조차 얻어내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옥살이를 견뎌내고 있다. 애초 도전하지 말아야 할 ‘성역’에 도전한 탓이었다. 정씨는 지난 2월 우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처지를 <산장의 여인> 노래 가사에 빗댔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서 있네.”

정씨는 다시 구속된 이후 수술이나 재활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씨는 편지에서 “모든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힘들 줄 몰랐다”며 “모든 것이 고립”이라고 토로했다. 정씨의 유죄가 확정돼 형사처벌을 받고 있더라도 그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사법부에서 정당하게 배려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언론보도’의 한계를 절감했던 우리는 책을 펴내는 과정에서 ‘책’이라는 ‘올드 미디어old media’가 의미 있는 미디어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 그런 점에서 출판사에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이 책을 내겠다고 선뜻 나서준 김이수 책보세 주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검사 스폰서 사건 보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최승호 PD 등 MBC <PD수첩>에도 감사한다. <PD수첩>은 두 번에 걸친 검사 스폰서 관련 방송 원고를 이 책에 실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앞으로도 <PD수첩>이 우리 사회의 성역을 끈질기게 파헤치는 ‘시대의 눈’으로 남기를 바란다.

지난 4월 6일, 책 출간을 앞두고 안동교도소에 수감된 ‘스폰서 정씨’를 면회했다. 수감 상태에서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검찰의 주시 대상이었다. 안동교도소로 이감되기 직전 부산구치소에 있을 때, 그의 구속을 지휘한 부산지검 검사가 이 책 초고를 손에 넣으려고 구치소 내 그의 방에 들이닥쳤지만 간발의 차이로 원고를 우편으로 내보낸 뒤여서 허사로 끝났다고 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다. 검찰이 지난 1년간 그런 열성으로 환골탈태를 위해 각고했다면 아마 이 책은 나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011년 4월 초
정용재의 증언을 정리한 정희상·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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