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에서 펴내는 루쉰 전집 번역자, 숭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공상철 교수의 첫 책 <중국을 만든 책들>, 제목 그대로 중국의 각 시대를 대표하는 텍스트를 선별하여 책이 만들어진 역사, 문화의 맥락을 추적하고 이후 중국 문명사와 중국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책입니다. 첫 꼭지는 당연히 갑골문이겠죠. 무늬가 문(文)으로 변한 까닭, 신과 소통하던 언어가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언어로 바뀐 과정, 더불어 문(文)이 어떻게 문화, 문명의 기반이 되어 꽃을 피웠는지 등 갑골문에 얽힌 이야기를 강의하듯 구성지게 들려줍니다. 남은 꼭지들이 너무 기대되는 책입니다. 게다가 저는 일단 책 이야기라 하면 점수를 주고 들어가는 '책바보'니까요. ^^ 

 

   

세계의 무늬 갑골문(甲骨文)
 

길을 떠납니다. 지금부터 떠나는 이 길은 장장 3천 년 하고도 몇 백 년이 더 되는 ‘중국’이라는 문명사입니다. 이 문명이 걸어간 길, 그 길의 궤적과 굽이를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더듬어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가다듬어두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여정이 그리 만만하진 않을 테니까요.
  이 길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시대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꾸었던 꿈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시간의 지층 속에서 이들은 말이 없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리 묵묵할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기행이란 세계에 말을 거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말을 걸지만, 이것이 세계에 접수될지 어떨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접수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말들은 불가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니 조금은 헐거이 임해도 좋을 일입니다. 어차피 3천 몇 백 년의 시간을 열람해야 한다면, 거기서 꼼꼼한 견문록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테니까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행의 초입에서 얼마간 예비 점검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소한 이 문명을 특징짓는 기본 원리나 힘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 ‘문(文)'을 들겠습니다. ‘문’이란 중국 문명을 관통하는 일종의 슈퍼 코드입니다. 이것이 발현되는 과정이 ‘문화(文化)'나 ‘문명(文明)'이란 말의 원래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므로 일단 이것의 의미와 성격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여정은 이 코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출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문’이란 무엇일까요?


태초에 무늬가 있었다고?
문명사를 거슬러가다 보면 거기서 으레 만나게 되는 것은 시간의 오리지널 포인트를 향한 모종의 충동입니다. 흔히 ‘태초’나 ‘창세기’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지는 중국 문명조차 이로부터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살이의 존재론적 근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이겠지요. 그런데 『논어』를 읽다보면 그것에 무심한 듯한 언설 하나가 등장합니다.
  “하늘이 어디 말을 하더냐!”(『논어』 「양화(陽貨)」)
  헤브루 종족의 하늘에 ‘태초의 말씀’이 울려 퍼지던 무렵, 고대 중국의 하늘은 이처럼 침묵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슨 속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고대 중국의 하늘은 ‘거룩한 말씀’ 대신 신비한 무늬의 형태로 강림했던 것 같습니다. 동방의 하늘이 보기엔 아무래도 사람의 귀보다는 눈이 더 미더웠던 모양이지요.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황하(黃河)에 용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 등 비늘에 신비로운 무늬가 어른거리고 있었나봅니다. 그로부터 이 무늬에 ‘황하의 도상’, 즉 ‘하도(河圖)'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전설상의 복희씨(伏犧氏)는 이 무늬에 근거해 저 오묘하기 짝이 없는 팔괘(八卦)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어느 날 황하의 지류 낙수(洛水)에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 등짝에도 신령스런 무늬가 선연했다는 겁니다. 종으로 횡으로 더해도 각각 15가 되고 대각선으로 더해 봐도 15가 되는 이 신기한 무늬를 사람들은 ‘낙수의 그래픽’, 즉 ‘낙서(洛書)'라 불렀고,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은 이 마방진(魔方陣)에 의거해 ‘홍범구주(洪範九疇)'라는 세계 질서 체계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카테고리’의 뜻으로 쓰이는 그 ‘범주(範疇)' 말입니다.
   

중국의 어느 수학자는 지구 문명이 언젠가 다른 행성과 접촉할 때 이 무늬가 의사소통의 수단이 될 것이라 우기고 있지만, 아마도 이 전설은 어떤 신종 담론―음양오행설로 추정되는―을 정당화하기 위해 후인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겁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재미난 것은 ‘도서(圖書)'라는 말이 이 ‘하도낙서(河圖洛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도서’란 세계의 신비한 비밀이 담긴 무늬일 터이고, ‘도서관’이란 그런 무늬가 빼곡히 수장된 장소가 되는 셈인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책에 이런 현묘(玄妙)한 내력이 있었다니 좀 의외입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어떤 이미지 하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보르헤스(L. Borges)가 「바벨의 도서관」에서 묘사한 ‘육각형의 진열실들로 구성’된 ‘세계’라는 이름의 거대한 도서관 같은 것 말입니다.


갑골문의 발견
사실 이 도서관의 유래에 대해 우리는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장서는 얼마나 되는지, 언제 누구에 의해 쓰이게 되었는지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풍문은 익히 들은 바가 있습니다. 도서관에 수장된 책의 종류가 의외로 다양하다는 것, 우리가 보는 종이책은 비교적 후대에 나왔다는 것, 초기의 책은 목간(木簡) 이나 죽간(竹簡)을 엮어 만들었다는 것, 여기서 책(冊)이라는 글자가 나왔다는 것, 또 어떤 책은 청동기나 비단 위에 쓰여 있다는 것 등등 말입니다. 여태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적어도 그날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런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책 무더기가 저 깊숙한 지하 세계에 감추어져 있었을 줄 말입니다. 거북딱지나 물소 뼈에 새겨진 이 책들은 이로부터 갑골문(甲骨文)으로 명명되어 중국사의 연대기를 훌쩍 앞당겨놓고 말았습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商)나라―혹은 은(殷)나라로 불리는 기원전 1700년경에서 기원전 1100년경까지 존재한 왕조―의 실체가 이로부터 빛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그 발견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지금부터 1백여 년 전인 1899년, 북경에 왕의영(王懿榮)이라는 한 관리가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가 학질에 걸려 여기에 좋다는 거북의 골편(骨片, 뼛조각)을 대거 사들였는데, 마침 그 집에 식객으로 있던 유철운(劉鐵雲)이라는 자가 거기서 이상한 글자들을 발견하고는 급히 그에게 보인 모양입니다. 평소 고대 문자 해석에 일가견이 있던 왕의영은 그 글자들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나라 문자가 거기에 빼곡히 새겨져 있었으니까요. 이리하여 그것을 구입한 한의원을 통해 골편의 출처를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문은 금세 퍼져 골편의 출원지 안양(安養) 소둔촌(小屯村)에선 일대 난리가 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나라의 마지막 도읍 은허(殷墟)가 바로 거기였다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해외로의 밀반출은 물론 위조품까지 대량 유통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출토된 골편의 수가 무려 16만여 개에 이르렀습니다.
  갑골문의 대부분은 복사(卜辭)입니다. 복사란 상나라 말기 12명의 왕이 통치하던 273년 동안 가국(家國)의 대소사를 점친 기록입니다. 선왕에 대한 제사 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전쟁이나 자연현상, 재해 등등 그 내용은 다양합니다. 문명 초기의 형편상 하늘의 의사를 묻는 일은 지고至高의 가치였을 겁니다. 이 일의 중요성은 점에 쓰이는 거북 껍데기를 구하기 위해 거국적인 시스템이 작동되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골편에는 남방으로부터 거북이 천 마리를 공납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까요. 이런 식으로 사용된 거북이가 최소 1만 6천 마리, 물소는 몇 천 마리라는 게 학계의 통론인데,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는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그러면 점은 누가, 어떻게 친 것일까요? 당시엔 점을 치는 직책을 일러 정인(貞人)이라 했는데, 간혹 왕이 직접 주관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점술의 중요성에 따라 정인의 숫자도 늘어났는데, 학자들에 의해 이름이 확인된 사람만 해도 120여 명에 이릅니다. 점술 과정은 거북점의 경우 대체로 이랬습니다. 먼저 배딱지를 떼어낸 뒤 가운데 난 수직선을 기준 삼아 내장이 있던 안쪽 면 양편으로 가지런하게 홈을 팝니다. 껍질이 두껍다보니 열에 잘 갈라지게 하기 위한 조치였을 겁니다. 홈은 두 가지 모양입니다. 먼저 대추씨 모양의 홈을 파고(‘착’鑿) 거기에 약간 겹치게 둥근 모양의 홈을 다시 파는데(‘찬’鑽) 그리하여 홈의 형태는 중절모 모양이 됩니다. 이런 홈이 좌우로 대칭을 이루며 많게는 수십 개나 패어 있습니다. 거북 껍질이 워낙 귀하다보니 사용 효율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것이겠지요.
  이제 점을 칩니다. 점이라고 해야 나무 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홈에다 대고 지지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지지는 건 아닙니다. 점칠 내용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소리에 담아 표출하기도 했겠지요. 이윽고 달구어진 부분이 ‘퍽’ 하며 갈라지는데, 혹자는 이 소리에서 ‘복(卜)’자가 나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균열은 으레 두 방향으로 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유도하기 위해 이중으로 홈을 판 것이니까요. ‘착’에선 수직선이 나오고 ‘찬’에선 수평선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대개 ‘ㅏ’ 아니면 ‘ㅓ’ 모양의 균열이 드러나는데, 물론 뼈의 자연적인 결을 따라 미세한 차이가 발생했겠지요. 이 기본 형태와 미세한 차이가 곧 하늘의 응답인 셈입니다.
  점이 끝나면 배딱지 바깥 면에 ① 점친 날짜와 정인의 이름, ② 점의 내용, ③ 갈라진 무늬를 보고 길흉을 판단한 내용, ④ 점괘가 실현되었는지 여부 등을 새기는데, 앞의 두 항목만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지막 항목은 점괘가 그대로 실행되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한 뒤 추가로 기록한 것인데,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것으로 점이 완료됩니다. 그러고는 이 골편을 특정 장소에 한데 모아 보관하고 관리했을 겁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국가문서관리국에 기밀문서를 보관하거나 국립중앙도서관에 자료를 수장해두는 개념이었겠지요. 주로 갑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도 아마 이런 까닭이었을 겁니다.


신의 언어들
그런데 여기서 정작 흥미로운 것은 해석 문제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지요. 골편에 나타난 무늬는 어디까지나 하늘의 소관입니다. 그것은 뼈의 강도와 결에 따라 달랐을 것이고, 홈의 각도와 꼬챙이의 열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었겠지요. 그러니 같은 사안이라 해도 매번 무늬가 달랐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해석하는 일은 엄연히 왕이나 정인의 몫입니다. 설령 그들이 하늘과 교통하는 능력을 지녔다 해도 어디까지나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그가 신의 의사를 판명한다고 할 때, 어떻게 자의와 주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모든 해석은 사람의 숨결이 투사된 지극히 인간적인 해석일 수밖에 없겠지요.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한 번의 점으로 끝나지 않고 몇 번씩 반복되었던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언젠가 TV를 보니 이런 장면이 나오더군요. 어느 오지의 원주민들은 벌꿀 채취를 생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그날은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벌집을 털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산의 신으로부터 작업 허가를 받아내는 방식이 재밌습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희생(犧牲)으로 끌고 간 양의 몸에 경건히 기름을 붓습니다. 그러고는 둥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기다립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이윽고 양이 세차게 몸을 흔들면서 기름을 털어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비로소 작업에 들어갑니다. 신이 이 위험천만한 작업을 허락했다는 겁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보면, 양이 제 몸에 묻은 기름을 털어내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를 신의 뜻으로 여기고 태연히 외줄 하나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골편에 드러난 하늘의 의사를 해석하는 일 역시 이런 차원이었을 겁니다. 해석학이라는 학문도 따지고 보면 그 출발은 이랬으니까요.
  그런데 고대인의 해석학에도 제법 노회한 구석은 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그냥 일방적으로 물어서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꽤나 신중합니다. 먼저 긍정적인 방식으로 넌지시 물어봅니다. 그러고는 같은 사안을 다시 부정적인 방식으로 되물어봅니다. 상당히 교묘한 방식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러면 신의 의사를 좀 더 주밀(周密)하고 분명히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요? 아니면 신을 헷갈리게 만들어서 소망하는 대답을 얻고자 했던 걸까요? 다음 사례를 통해 판단해보시지요.

戊戌卜, 永貞.(무술일에 점을 치며 영이 묻습니다.)
今日, 其夕風?.(오늘 저녁에 장차 바람이 불겠습니까?)
貞 : 今日, 不夕風(묻습니다. 오늘 저녁에 바람이 불지 않겠습니까?)3
戊子卜, 貞.(무자일에 점을 치며 각이 묻습니다.)
帝及四夕, 令雨?(상제께서 나흘 뒤 저녁에 이르러 비에게 명령하시겠습니까?)
貞 : 帝弗其令今四夕, 令雨?(묻습니다. 상제께서 지금부터 나흘 뒤 저녁에 비에게 명령하지 않으시겠습니까?)
王占曰 : 丁雨, 不惠辛.(왕이 점괘를 해석하십니다. 정일에 비가 온다. 꼭 신일이진 않을 것이다.)
旬丁酉, 允雨.(열흘 뒤인 정유일에 정말로 비가 왔다.)4
이런 방식만 있는 게 아닙니다. 좀 더 직접적인 전략도 있습니다. 신더러 제발 대답을 좀 해달라고 들들 볶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다음의 사례를 보면 그 윽박지름의 정도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동방의 신들도 인간들에게 닦달을 당하느라 꽤나 피곤했을 듯합니다.
貞 : 亥王入.(묻습니다. 신해일에 왕이 들어옵니까?)
于癸丑入.(계축일에 들어옵니까?)
于甲寅入.(갑인일에 들어옵니까?)
于乙卯入.(을묘일에 들어옵니까?)5
更子卜, 何貞 : 翊辛丑, 其侑틌辛, 卿.(경자일에 점을 치며 하何가 묻습니다. 다음날 신축일에 신辛 할머니께 유제侑祭를 경제卿祭로 지낼까요?)
更子卜, 何貞 : 其一牛.(경자일에 점을 치며 하가 묻습니다. 소 한 마리로 할까요?)
更子卜, 何貞 : 其.(경자일에 점을 치며 하가 묻습니다. 희생양으로 할까요?)
……
丙午卜, 何貞 : 其.(병오일에 점을 쳤는데, 하가 묻습니다. 희생양으로 할까요?)
丙午卜, 何貞 : 其三.(병오일에 점을 치며 하가 묻습니다. 희생양 세 마리로 할까요?)


문명과 문자
위의 사례를 통해 감지되는 것은 하늘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놀이입니다. 서로 주고받고 밀고 당기고 다투고 화해하는 그런 우주론적 놀이 말입니다. 문명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신이 신성(神性)을 박탈당해왔음을 이야기해줍니다. 상(商)나라의 ‘제(帝)'는 그 자체로 신이었고, 주(周(나라의 ‘천(天)'은 그 자체로 하늘이었습니다. 그런데 전국(戰國) 시대 말엽에 이르면 사정이 좀 달라집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공자의 일갈(一喝)은 그 전조이자 서막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하늘은 늘 땅을 짝으로 요청하게 되었고, 그 결과 ‘천지(天地)'라는 신종 담론이 대두하게 됩니다. 훗날 한(漢) 제국의 이념적 토대가 되는 이 담론은 자연히 천지지간에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사람에겐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역할을 부여하게 됩니다. 이른바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가)' 이런 관념의 발로였으니, 인격신의 관념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람에게 무게중심이 쏠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문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상에선 한창 신의 의지를 인간화된 무늬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은밀히 수행되고 있었던 거지요. 히브리 사막에 바벨탑이 고도를 더해가던 그 무렵에 말입니다. 이 작업의 고도화된 형태가 바로 상형문자였습니다. 갑골에 새겨져 있던 그 무늬들 말입니다.
  지상의 인간들이 이처럼 독자적 질서를 구축해가고 있을 무렵, 동방의 하늘에선 우려의 목소리와 탄식의 씩둑거림이 꽤나 무성했던 모양입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이 곡식을 뿌렸고 귀신은 통곡했다”(『회남자(淮南子)』「본경훈(本經訓)」)는 겁니다. 귀신의 통곡은 지상에서 더 이상 일거리를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회한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곡식은 왜 쏟아졌던 것일까요? 그런데 주석을 보면 귀신이 통곡한 이유는 회한 정도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창힐은 처음으로 새의 발자국 모양을 보고 서계(書契)를 만들었다. 그러자 사기와 허위가 생겨났다. 사기와 허위가 생겨나자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뒤쫓으며, 농사를 버리고 송곳과 칼을 날카롭게 연마하는 데 힘을 쏟게 되었다. 하늘은 인간이 굶주리게 될 것을 알고서 곡식을 뿌렸다. 귀신은 문서로 탄핵받을까 두려워 밤새 울었다.”
  서계, 즉 문자가 생겨나자 기만과 사기술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에 의한 귀신 경영까지 가능하게 되었다는 이 해석은, ‘문명(文明)'이나 ‘문화(文化)'란 것의 본질을 다소 민망하게 짚어줍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문명과 문화에 공히 밑받침되어 있는 ‘문(文)'이라는 글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문이란 무엇인가
“文은 종횡으로 얽힌 무늬다.”(文錯畵也)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사전은 ‘文’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고대 기물에서 이 글자는 주로 두 팔을 벌린 사람의 가슴에 어떤 문양이 그려진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때의 문양으로는 ×, ∨ 형태가 일부 있고 대개는 남성의 심벌 모양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지금껏 의론이 분분합니다. 다만 ‘文’이 “사자(死者)의 미칭(美稱)으로 쓰였으며, 살아 있는 사람을 찬미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혈액을 따라 빠져나간다는 당시의 믿음을 고려할 때, 시신의 가슴에 그려진 붉은 무늬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매개하는 영적 교류의 양식이자 이별의 양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의 ‘글월 문(文)’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일까요?
  비근한 사례들을 통해 이 점을 한번 생각해볼까요. 쉽게 이야기하면 요즘 유행하는 QR 코드 같은 걸 떠올리면 됩니다. QR 코드란 흑백의 격자무늬 패턴으로 정보를 나타내는 이차원 무늬의 그물이지요. 이 그물 속에 넣고 싶은 기본 정보를 다 넣을 수 있습니다.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상징하는 이 코드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의외로 대단히 아날로그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묘하게 신학적인 충동마저 들기도 합니다. 흡사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전자두뇌’ 같다고나 할까요. 이것의 어떤 측면이 이런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일까요? 바로 여기에 ‘무늬’의 우주론적인 성격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걸 사람의 몸에 새겨보면 어떨까요? 이것이 바로 문신(文身)입니다.
  문신도 일종의 무늬입니다. 요즘은 일회용 문신도 있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고대 사회에서는 장식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하늘과 소통할 수 있는 권능을 지닌 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잔재는 아직도 ‘어깨’와 ‘덩치’ 들의 팔뚝이나 등짝에 남아 있거니와, 거기서도 왜 유독 호랑이와 용이 단골 메뉴가 되었는지에 대해선 굳이 부연치 않아도 좋을 겁니다. 무력의 신성성을 강변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부적 역시 무늬의 일종입니다. 누런 바탕에 빨간 선의 이 무늬는 과학이라는 잣대에 의해 상당 부분 그 의미가 미신의 영역으로 추방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일부 식당의 문지방 위나 누군가의 지갑 속에서 풍요와 안녕의 염念을 담고 있는 걸 보면, 우리 시대 문화의 한 양식임을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매년 입시철이 되면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는 부적 열기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도장 역시 그렇습니다. 오늘날엔 서양식 사인 문화가 대세를 이루면서 인감 폐지론이 대두되기도 하지만, ‘둥근 도장에 붉은 인주’라는 관념은 아직도 생활세계 곳곳에 건재합니다. (따지고 보면 사인 역시 ‘신의 지문’인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지요. 한글 도장과 한자 도장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그 사람의 존재성을 온전히 담아낼까요? 아마 대부분은 후자라고 할 겁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흔히 ‘도장체’라 부르는 이 문자는 진(秦)나라 공식 문자인 소전(小篆)인데, 상형문자에서 기호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한 형태입니다. 바로 다음에 정립되는 예서(隸書)나 해서(楷書)에 비해 회화적 성격이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런 만큼 그 주름에 존재의 흔적이 훨씬 더 진하게 각인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은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한글 도장이 왠지 밍밍하고 심심해 보이는 이유도 이 흔적의 결핍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명함만은 기어이 한자를 고집하는 기성세대의 취향을 시대착오라고 나무랄 일만은 아닙니다. 일종의 고전적 형태의 아바타(avatar)니까요.


문의 분화 양상
이런 점은 ‘文’의 의미 분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문자의 역사에서 ‘文’은 ‘紋’과 ‘彣’이라는 글자를 파생시키는데, 모두 ‘무늬’라는 뜻입니다. 다만 앞의 무늬에는 실이, 뒤의 무늬에는 깃털이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여기서 전자는 그 의미가 대개 ‘질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후자는 대개 ‘권력’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먼저 실이 갖는 맥락을 따라가볼까요. 원시 방직술의 기본 형태는 먼저 날실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그 끝에 방추차를 매단 다음 가로로 씨실을 얽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날실은 ‘경(經)'으로 씨실은 ‘위(緯)'로 불렸는데, 그러니까 경위란 직물이 만들어지기 위한 기본 얼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얼개는 왠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에도 경서(經書)가 있고 위서(緯書)가 있는가 하면, 세계지도를 지탱하고 있는 두 축이 바로 경선(經線)과 위선(緯線)입니다. 왜 이런 계열적 질서가 만들어진 걸까요? 여기서 수직선인 ‘경’이 왜 ‘바이블’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지, 수평선인 ‘위’보다 왜 가치론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미루어두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서양 문명 역시 글을 의미하는 ‘text’가 직물을 의미하는 ‘texture’와 같은 의미 계열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만은 짚어두기로 하지요.
  한편 깃털의 의미도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정치적 군장을 의미하는 ‘왕(王)'은 머리에 쓴 깃털 모자를 본 뜬 글자로도 해석되는데, 이때의 머리 장식은 그 자체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 추장의 깃털 모자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오늘날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미(美)' 자 역시 사람(大)이 양가죽(羊)을 뒤집어쓴 모습이었으니까요. 중국 운남(雲南) 지방에 남아 있는 어느 암각화는 원시 마을의 일상과 권력관계를 생생히 보여주는데, 여기서 모자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에 정확히 비례합니다. 게다가 문명이 만개하면 할수록 모자는 더 크고 화려해지는데, 그리하여 마침내 ‘황’皇이라는 대형 모자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모자에 ‘황제’라는 의미를 덧씌운 사람이 진(秦) 시황제(始皇帝)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식으로 빛나는 무늬는 하늘과 인간 세계를 매개하는 권능을 상징하게 되었고, 이 상징은 곧바로 현실 정치권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엔 이 일련의 의미를 ‘문창(彣彰)'이라는 말로 포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彣彰’에서 오른편의 깃털을 떼어내어 보다 인간화된 무늬로 만드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장(文章)', 즉 우리가 쓰는 글이었던 것입니다.


인문의 자리
위진남북조 시대를 살았던 유협이라는 사람은 『문심조룡(文心雕龍)』이라는 최초의 문학 개론을 쓰면서 그 첫 문장을 이런 묘사로 시작합니다.
  무늬(文)의 속성은 지극히 포괄적이다. 그것은 천지(天地)와 함께 생겨났다. 어째서 그런가? 천지가 생겨나자 이어 검고 누름(玄黃)의 구분이 생겨났고, 둥글고 네모남(圓方)의 구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해와 달은 하얀 옥을 겹쳐놓은 것과 같아 하늘에 붙어 있는 형상을 나타내고, 산천은 비단에 새긴 자수와도 같아 땅에 펼쳐진 형상을 나타낸다. 이 모든 것들은 대자연의 무늬다. 위를 쳐다보면 해와 달이 빛을 발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과 강이 아름다운 무늬처럼 펼쳐져 있으니, 이는 위아래가 확정된 것으로, 이로써 천지가 생겨난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어울릴 수 있으며 영혼을 지니고 있기에 이들을 삼재(三才)라 부른다. 인간은 오행(五行)의 정화요 천지의 마음이다. 마음이 생겨나면서 언어가 확립되었고, 언어가 확립되면서 문장이 분명해진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그러한 이치(自然之道)인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이 세상 만물에 확대해보면, 동식물은 모두 나름의 아름다운 색채와 모양을 가지고 있다. 용과 봉황은 아름다운 무늬와 색채를 통해 상서로움을 나타내고, 호랑이와 표범은 그 얼룩덜룩한 무늬와 색채를 통해 위엄스런 풍채를 드러낸다. 구름과 노을에 새겨진 화려한 색채는 화가의 교묘한 채색보다 더 뛰어나고, 초목의 꽃들은 굳이 자수 기술자의 신비한 솜씨를 빌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 모든 것들은 외부에서 가해진 장식이 아니다. 모두 저절로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의식이 전혀 없는 사물들에도 이토록 무늬가 찬란하거늘 마음을 지닌 인간에게 어찌 무늬(文)가 없겠는가.(『문심조룡』 「원도(原道)」)
  이는 고대 문화사의 성장에 관한 아름다운 증언이자 유협이 살았던 위진남북조 시대의 세계지도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혼돈의 세상 속에서 꿈꾼 이념적 지도입니다. 그는 이런 무늬의 네트워크 속에 자신이 살아가는 난세를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글(文章)의 존재론적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의식이 전혀 없는 사물들에도 이토록 무늬가 찬란하거늘 마음을 지닌 인간에게 어찌 무늬가 없겠는가.”
  그러므로 이 한마디는 사람의 무늬, 즉 ‘인문(人文)’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고심에 찬 모색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유협 시대의 이 무늬의 네트워크는, 송나라 때에 이르면 ‘리(理)’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개편을 맞이합니다. 흔히 우리가 ‘이치(理致)’, ‘도리(道理)’, ‘진리(眞理)’라고 할 때의 ‘리(理)’가 그것인데, 원래는 옥을 가공하기 전에 옥 자체의 결을 면밀히 살핀다는 의미였습니다. 흔히 ‘물결’, ‘살결’, ‘숨결’ 할 때의 ‘결’이 딱 이 의미입니다. 송나라 신진 사대부들은 이 ‘리’를 절대적 진리(天理)의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질서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동아시아 중세사에서 6백여 년간 누린 영광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제 ‘문리(文理)’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 문명사에서 천문―인문―지리라는 우주론적 네트워크의 위상과 의미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늘의 무늬(天文)와 땅의 결(地理), 이를 사람의 무늬(人文)로 매개하고 전환하려는 모색의 과정이 곧 중국 문명이 걸어간 길인 것입니다.
  이 모색이 조심스럽게 첫걸음을 떼던 그 지점에 무수한 뼈 무더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늘의 의지를 아로새겨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대 중국의 문명사는 이들의 삶과 염원으로부터 성큼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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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의 모습은 기복과 호국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전자는 개인적 차원에서, 후자는 사회적 차원에서 그러하다. 온전한 불교 정신을 절이 아닌 세상에서 삶으로 구현하려 시도하는 순간 불교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공격받기 일쑤다. 과연 붓다와 제자들이 만들고자 한 세상이 이러했을까. 박노자는 이런 한국 불교에 일침을 던지며 아집을 부정하고, 여기(아집)에서 비롯하는 국가, 자본주의, 제국을 해체하는 실천적 불교를 제안한다. 이는 초기 불교 정신에 대한 '해방적' 해석이자,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참 역할을 되살리는 시도다. 언제나 '아, 우리가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감각을 명징한 논리로 깨우치는 박노자의 신작 <붓다를 죽인 부처>. 서문과 본문 일부를 공개한다.

 

 

서언 : 해방불교를 위하여!

대개 특정 종교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종교의 교리도 실천도 결국 해석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독교를 봐도 “재판관에게 가지 마라”, “부자가 낙원에 드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기보다 더 어렵다”, “땅에서 재물을 모으지 마라”와 같은 일종의 ‘고대형(型) 공산주의’를 방불케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쪽과, “종들이여, 주인들에게 복종하라”와 같은 부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쪽은 분명히 다르다.

전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레오나르도 보프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의 ‘해방 신학’으로 귀결될 수 있겠고, 후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부자를 ‘축복받은 이’로 보는 순복음 교회 식 ‘부와 성공의 신학’으로 귀결될 수 있겠다. 해방 신학도 순복음 교회의 기복적인 성공 주의도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을 각자 나름대로 계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는 상반된 것임이 틀림없다. 그만큼 종교를 이해하는 데 기본 경전 이상으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해석’이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초기 불교에 대한 ‘해방적’ 해석의 시도다. 우리 불교가 국가 내지는 지배계급과 유착한 역사가 이미 2,000년을 슬쩍 넘은 만큼 우리 의식 속에 남아 있는 불교는 현실을 따라가며 인정하는 식이거나 지극히 개인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을 띤다. 개인의 문제들을 모조리 개인의 악업으로 설명하는 등 탈(脱)사회화, 개별화되었고, 그 문제의 해결책 역시 개인적 차원의 ‘업장(業障) 소멸’에 그친다. 이렇다 보니 불교 하면 절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고 복을 비는 모습부터 떠올리게 된다. 이런 현실 순응적, 개인 중심의 불교에서는 작복(作福), 즉 선업 쌓기도 결국 개인적 수행이나 신앙 행위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또한 불교의 대(對)사회적 측면 역시 현실을 무조건 긍정하고 재확인하는 ‘국가 수호’, 즉 소위 ‘호국’에 국한되고 만다. 그들에게는 ‘대입 기도’로 고생하는 학부모들도, 서울 삼각산 도선사 명부전에서 걸려 있는 고 박정희 부부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초상화도 별문제 될 것이 없다. 입시 경쟁도 개인의 신앙 행위(기도)를 통해서 해결될 문제고, 권력이나 재력을 장악한 사람도 “선업을 잘 쌓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긍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에서 미군의 폭격을 받아 처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죄 없는 아이들을 생각해 보자. 그 아이들이 당한 고통을 두고 스스로 지은 ‘악업’의 결과일 뿐이라 말하며 은근히 워싱턴의 살인마들에게 면죄부를 건네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혹은 입시 경쟁이라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을 두고 “악업을 지은 결과”라 정당화하면서, 고액 과외를 받은 강남 자녀의 ‘무사 통과’에는 “선업을 잘 쌓은 결과”라며 박수를 보내야 하는가?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살인마들의 살육도, 소수 부유층 사이의 명문대 간판 대물림도 영구화되고 또 다른 이름 모를 무수한 타인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끊임없이 안겨줄 것이다. 불교의 목적은 일체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통을 없애고 즐거움을 얻음)인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낳은 고통을 영구화한다는 것은 불교의 근원적 목표와 상반된다. 고통을 증가시키는 쪽으로 고통을 이해한다면 이는 ‘나’와 우리 모두의 해탈을 궁극적으로 방해할 뿐이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발생시키고 강화시키는 여러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나에 대한 집착인 아집(我執), 즉 ‘나’와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가 별개의 것이라는 뭇 중생의 착각이다. 이 착각만큼 반(反)불교적인 것도 없다. 나와 너, 세계가 따로 없으며 모든 것이 상즉상입(相即相入: 모든 현상은 상호 융합되어 있고 인과관계를 이룸)한다는 불교적 진리의 차원에서는 머나먼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간 아이들도 바로 우리고, 그들이 겪는 고통도 바로 우리의 고통이다.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개인의 악업으로 인한 결과라기보다 우리 모두가 만든 집단적 악업의 업보(業報)다. 인류가 아직도 제국주의라는 괴물을 청산하지 못하고 합리화하고 순응한 결과, 이 괴물은 지금 아프간이라는 머나먼 지구의 한구석에서 우리들의 분신(分身)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입시 경쟁이라는 이름의 지옥도 경쟁의 당사자인 학생 개개인과 학부모들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철저한 위계서열을 받아들이고 그 서열을 매기는 기준으로 학벌 자본(academic capital)을 받아들인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결과다.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집단적 악업인 셈이다. 이 악업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불교적 실천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불교적 실천이란 결국 ‘국가 수호’의 정반대라고 할 우리의 아상․아집에 대한 부정 및 해체며, 거기서 시작되는 국가와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부정 및 해체의 작업이다. 이것이야말로 중생이 겪는 수많은 고통의 상당 부분을 덜어줄 수 있는 집단적 치유의 길이며 집단적 선업을 쌓아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해탈과 병행될 수 있는 ‘더불어 하는 수행’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지구와 사회의 세포 하나하나를 갉아먹는 암(癌)과 같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폐해에 대항해 혁명적 투쟁을 벌이는 것도 집단 전체를 위한 해탈의 경험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혁명이 어려운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는 우리의 해방을 준비하는 모든 행위가 집단적 치유를 위한 길이라 할 수 있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연대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집회에 참석한다거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구체화하여 발표하고 읽는 등의 지적 작업 역시 집단적 해탈을 향한 수행의 일종이라 하겠다.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반대로 어쩌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행동에 동참하며 우리는 욕심으로부터 멀어지는 법을 배우고, ‘남’을 나 자신보다 앞에 두며 나보다 타인을 더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바로 여기서 자아와 타자의 경계선이 지워지고, 우리의 ‘자아’가 궁극적으로 망상일 뿐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자아도 타자도 궁극에 가서는 없으며 나만의 행복도 나만의 해탈도 무의미하게 된다. 하화중생(下化衆生: 중생을 교화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어떤 깨달음도 이기적인 정신의 유희에 불과할 뿐이다. 중생의 모든 고통이 나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불교의 영혼은 도망가고 없다.

‘해방 불교’에는 사찰도 불상도 기도도 필요 없거나 이차적이다. 해방 불교는 부처에게 비는 것이 아니라 붓다가 되는 것이다. 고통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임하고, 고통의 원인을 파헤치며 모든 중생과 함께 고통을 치유한다. 고통의 원인을 식별하고 치유하는 방법은 우리가 현대를 사는 한 오늘날의 사회과학에 의존하지 않을 순 없다. 그러나 이 작업의 근저에 흐르는 정신은 지난 2,500년 동안 바뀐 게 없다. 자아의 경계선을 넘는 자비의 정신은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다. 

  

9장. 한국불교, 전통이 아니라 시대를 만나라

해방적 색깔에서 방편론으로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으로 보면, 오늘날의 폭력적인 현실은 과거의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업설’이나 최악(最惡)을 점진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방편적으로 ‘차악(次惡)’을 임시적으로 인정해 이용하는 지혜는 분명히 불교의 태생적인 장점일 수 있다. 그런데 단점은 바로 이런 장점의 연장에 있다.

인도의 종교문화 풍토에서 수행자는 보통 특권계급 출신이며, 전사회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아울러 국가·지배체제는 사회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정신적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이런 풍토에서 현실을 방편적으로 수용할 것을 전제로 한 종교운동은 국가·지배체제와 유착할 여지를 언제든지 갖고 있었다. 문제는 그 운동을 지휘하는 ‘스승’의 의지였다.

붓다 자신과 일부의 직계 제자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일부 수행자들은 불평등과 폭력이 없는 공동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들은 속인(俗人)들이 불평등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염원했다. 초기 불교를 보면 그 시대로서는 보기 드문 ‘해방적 색깔’이 뚜렷하다. 바로 이 ‘해방적 색깔’은 불교가 민중들로부터 빠르게 인기를 얻는 기반이 됐다.

그러나 진정한 ‘해방에의 의지’를 갖고 있던 초기 지도자들이 사라진 뒤에는, 현실과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방편론’ 등이 불교가 발빠르게 ‘국가 종교화’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부턴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불교 교단의 현실에 대한 순응 형태가 바뀌었을 뿐, 그 이론적인 ‘뼈대’는 그대로 이어졌다. 법현 등 중국 구법승求法僧들이 목격한 소작인들을 부리는 부유한 인도 사찰의 권위주의적 승려들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초호화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사찰의 고용자들에겐 노조조차 허용하지 않는 오늘날의 한국 스님들도 외형적인 모습은 다를지언정 그 생활태도나 이론적인 토대는 같다.


 

불교의 원칙대로

국가의 뜻을 거스를까 염려해,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은 진실한 불자다운 실천까지 불인(不認)하는 승단(僧團)의 태도를 고치려면 재가 신도로서 어떤 마음가짐과 이론적인 기반을 갖춰야 할까? 오늘날 서구에서 “교황보다 더 독실한 가톨릭(More Catholic than the Pope)”이란 말은 지나친 종교 열(熱)을 조소하는 속담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붓다 후대의 제자는 어떤 면에서 붓다 자신보다도 붓다가 제시한 근본 원칙에 충실해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붓다가 제시한 가장 근본적인 원칙은 무엇일까?

불교의 ‘제법무상(諸法無常)’은 우주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쉴 새 없이 달라지고 바뀌고 탈바꿈하는 만큼, 불변하며 고정된 대상물이란 우리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무아(無我)’는 ‘나’라고 보이는 주체 역시 갖가지 요소와 인연이 일시적으로 합쳐져 만들어진 늘 고통받고 바뀌어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 둘은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철학이자 원리다.

주체와 대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인연’에 따라 늘 유동적으로 바뀌면서도 고통을 면하기 어려운 속세에서는 누구의 이름으로도 자신과 남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안겨주어선 안 된다. 어떤 국가, 단체, 운동이 ‘폭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결국 언젠가 그들의 이념이 허구였음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새로운 고통을 추가시킨 행위는 ‘나쁜 원인(惡因)’이 되어 폭력행위자를 비롯해 모두에게 ‘나쁜 결과(惡果)’를 가져다줄 것이다. 수탈기구로부터의 민중 방어라는, 특정 상황에서 진보운동가들이 피하기 어려운 ‘민중 방어적 폭력’이라 하더라도 불가피한 차악은 될 수 있을망정 선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방어적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더라도 그 폭력의 나쁜 결과를 인식하고 이를 중지시켜 비폭력적으로 대체 할 수 있는 길을 열심히 찾아야 할 것이다.

‘민중 방어적 폭력’도 나쁜 원인을 피하기 위해 출구를 급히 구해야 하는 ‘길이 막힌 골목’이지만, 자본이 부추기는 경쟁이나 국가가 유지시키고 훈련시키는 군대와 같은 억압적인 상설 폭력기구들은 ‘나쁜 원인’ 이외에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 국가(특히 군대 당국)와 자본 등 사회적 고통을 제공하는 자들과의 유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교는 죽은 불교다. 그리고 “어머니가 외아들을 지키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발하라”는 붓다의 말씀을 실천할 하등의 능력도, 의지도 없는 불교 역시 죽은 불교다.

붓다가 기존 사회질서와 타협한 부분, 현실에 순응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것은 붓다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이자 귀족 출신 남성으로 태어난 붓다 자신의 한계다. 이 한계가 붓다의 기본 교리와 충돌할 경우 우리는 근본 교리의 정신을 선택해, ‘악의 씨’이며 제도화된 폭력으로 기능하는 국가나 소외된 노동을 잉태하는 자본에 대해 비타협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명분과 필요가 있다. 불교 교단이 붓다의 원리를 진실로 실천하려면, 양심적 병역거부, 붓다 자신도 평등한 분배의 전제 조건으로 주장한 부유세 도입, 고질적 불안감이라는 최악의 고통을 심어주는 고용의 비정규화에 대한 반대 투쟁과 대책을 적극 지지해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 아힘사(비폭력)는 자본주의적 국가 사회의 제도화된 폭력을 무저항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불교의 아힘사는 제도화된 폭력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투쟁이다. 붓다와 그 후대의 제자들이 이와 같은 투쟁을 소홀히 하거나 아예 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정신과 가르침을 배반하는 그들의 한계를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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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인 박웅현은 전작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에서 "광고라는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때 창의력이 필요한 거고요."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이번 책 <책은 도끼다>는 그 창의력의 근간인 독서를 다룬다. 고은의 시부터 톨스토이의 고전까지, 다채로운 텍스트 읽기 속에서 '보는 눈'을 확장하는 그만의 방법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사고와 태도에 변화를 주지 못하는 독서는 책과 나를 동시에 죽이는 독서라 말한다. 이 책은 죽은 독서를 쳐내고 갇힌 생각을 열어주는 강력한 도끼질이라 하겠다. 

광고인은 자본주의 시대의 시인일 터, 이들이 세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장 처절하게 체득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슬프지만,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저자의 말

울림의 공유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도끼였다. 나의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 도끼 자국들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어찌 잊겠는가?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쩌렁쩌렁 울리던, 그 얼음이 깨지는 소리를.
  시간이 흐르고 보니 얼음이 깨진 곳에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촉수가 예민해진 것이다.

“콩나물 줄기 속에 물기가 가득하구나!”
“단풍잎의 전성기는 연두색이구나!”
“그 사람의 그 표정이 그런 의미였구나!”

그 예민해진 촉수가 내 생업을 도왔다. 많은 경우, 광고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회의실에서 예민해진 촉수는 내가 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은 나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했다. 신록(新綠)에 몸을 떨었고, 빗방울의 연주에 흥이 났다. 남들의 행동에 좀더 관대해졌고, 늘어나는 주름살이 편안해졌다.
  머릿속 도끼질의 흔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경기창조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11년 2월 12일부터 6월 25일까지 강독회를 진행하게 됐고, 학생들과 삼 주마다 한 번씩 토요일에 만났다. 냉정한 겨울에서 찬란한 봄을 거쳐 맹렬한 초여름까지, 나의 도끼였던 책들과 나의 독법(讀法)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어차피 독법에 정답은 있을 수 없는 것. 그저 나의 독법일 뿐이었다.
  종이 낭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무릅쓰고 그 강독을 이렇게 책으로 묶어내는 이유는, 이 책이 다른 책으로 가는 다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작은 기대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의 도끼였던 책들을 독자 제현(諸賢)에게 팔아보고자 하는 의도. 결국, 나는 광고인이니까.
  인간에게는 공유의 본능이 있다.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
 
 

본문 한 자락 

삶의 풍요를 위한 훈련

저는 지금 인문학과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지만, 그동안 사람들이 저를 통해 듣고 싶어했던 것은 '창의력'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가르치는 학과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마침 창의력이 광고의 수단이 되니까 광고를 만드는 박웅현이 발상하는 과정을 보여줘봐라 해서 얘기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됐지요. 창의력이라는 게 가르치기 참 어려운 것이더군요. 그런데도 그동안 사람들은 이걸 기어이 가르치려고 했구나, 그래서 '좋은 카피를 쓰는 20가지 방법' 같은 것들이 나왔구나 싶었죠. 저도 사회 초년병 때 배웠던 것들입니다.

좋은 카피를 쓰는 20가지 방법.
1. 의문문으로 써본다.
2. 명령문으로 써본다.
3. '나'를 주어로 써본다.
4. '너'를 주어로 써본다.
……

 

이런 식으로 20가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십사 년간 광고 현장에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이번에는 카피를 의문문으로 써봐야지, 이번에는 '나'를 주어로 써볼래, 그렇게 마음 먹고 써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카피란 그렇게 써지는 게 아니거든요. 창의성이라는 건 상품화하거나 규정화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디어는 총체적으로 나오지 도식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것은 도식적이지 않으면 어려우니까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굳이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엔 저도 그 도식적인 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생각 끝에 내가 만든 카피를 범주화해볼까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더군요. 그러니까 광고 일은 소림무술영화 같은 겁니다. 이론을 읽고 느낀 걸 잘 정리하면서 배우지만, 그것이 발상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일목요연한 정리도 좋지만, 아이디어를 내는 건 현장입니다. 만약 이연걸이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우고 내려와 싸움을 하게 된다면 싸울 때 배운 대로 될까요? 소림사가 등장하는 무술영화를 보면 소림사의 넓은 마당에서 상대와 마주보고 인사한 후 싸움을 시작합니다. 정해진 규칙이 있어요. 그러나 실제로 싸울 때는 그렇지가 않아요. 일도 마찬가지죠. 그런 규칙은 없습니다. 상황이 다 달라요. 저의 경우라면, 같은 광고주도 두 달 전과 지금이 달라요. 모든 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니까요. 소비자의 반응, 경쟁사의 반응에 따라 다 달라집니다. 적이 내가 밥 먹고 있다고 해서, “그럼 너 밥 다 먹고 싸우자, 조금 있다가 마당으로 나와”라고 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표창이 날아오고 만두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발이 날아와요. 그럼 그걸 쳐내야 하잖아요. 걸어가고 있는데 공격해올 수도 있고, 그러다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고 말이죠. 순발력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이론 대부분은 소림사 마당입니다. 그 마당에서는 기본만 익히는 거예요. 생각의 기초체력만 기르는 겁니다. 수많은 경우의 수들을 이론으로 전부 다 정리해놓을 수는 없어요.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다른 일들도 그렇겠지만, 광고는 특히 변수가 많은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요즘 강의할 때 광고에 필요한 발상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실은 책이나 수업이 아니라 회의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일상'입니다.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대처 능력이 커지는 것이죠.
  요즘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고수들이 일상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구나 싶습니다. 박재삼이, 존 러스킨이, 헬렌 켈러가 같은 생각을 했어요. 사과가 떨어져 있는 걸 본 최초의 사람이 뉴턴이 아니잖아요. 사과는 늘 떨어져 있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겁니다. 상황에 대한 다른 시선, 절박함이 사과를 보고 이론을 정리하게 했죠.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그런데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두 시간 강의에서, 한 권의 책으로 제가 가르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 여러분 안에 씨앗이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한테 울림을 줬던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모두 창의적이 되어야 하는 거죠? 저는 광고를 해야 하니까 창의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창의성과 관련 없지만 가치 있는 일도 꽤 많잖아요. 그런데 이게 왜 필요하느냐, 왜 다들 굳이 배워야 하느냐? '직업'의 범주를 벗어나 '삶'의 맥락에서 볼 때, 저의 대답은 창의적이 되면 삶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풍요’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생각해볼까요? 풍요로운 삶이라 하면 대부분 성공한 삶을 떠올려요. 그럼 성공한 삶이 무엇이냐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한번 해봅시다. 성공한 삶이라는 게 뭘까요? 일단 당장 성공한 삶이라면 외제차, 좋은 집, 돈이 떠오르겠죠.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세요. 돈만 많은 사람과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의 표정을 떠올려보세요. 진짜 어떤 것이 풍요입니까? 최고급 샴페인과 캐비어를 매일 먹을 수 있는 삶이 풍요로운 삶일까요? 그가 죽을 때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고 만족할까요? 햇살과 나뭇잎의 아름다움 하나 보지 못해도 최고급 샴페인과 캐비어만 있으면 행복한 삶일까요? 행복은 순간에 있습니다. 중국의 옛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 작자 미상

봄을 찾아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는데 정작 봄이 집 매화나무 가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 '봄'을 '행복'으로 바꿔서 읽어보세요. 모두 멀리 보고 행복을 찾는데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순간의 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을 레이스로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명문 중학교를 가야죠, 명문 중학교를 가면 행복해질 거야, 명문 중학교 갈 때까지만 희생하자. 명문 중학교 가면 외고에 가야 해요. 외고 갈 때까지만 희생하자. 그럼 행복해질 거야. 외고를 가면 서울대를 가야 하고, 서울대에 가면 대기업에 가야 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면 부장이 되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나이가 일흔이에요. 레이스가 된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죠.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이철수의 한 문장을 읽고 나서는 열매를 그냥 못 지나칩니다.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겁니다. 옛날에는 1킬로미터를 걸어가면서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지금은 베인 나뭇잎, 날아가는 새, 반짝이는 빗방울이 다 아름답습니다. 제가 죽을 때 떠오르는 장면은 프레젠테이션 석상에서 박수 받는 순간이 아닐 겁니다. 아마 어느 햇살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어느 나뭇잎이 떠오를 것 같고, 어느 달빛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혹은 어떤 대화, 표정, 그런 것들이 많이 축적되어 있으면 풍요롭게 살다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시로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고, 매일 로열 캐리비언 크루즈를 탈 수 있고,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야 빨리 빨리 와, 찍어, 가자” 하는 사람. 그리고 십 년 동안 돈을 모아 간 5박6일간의 파리 여행에서 휘슬러의 <화가의 어머니>이라는 그림 앞에서 얼어붙어서 사십 분간 발을 떼지 못한 채 소름이 돋은 사람.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풍요롭게 생을 마감할까요?
  중요한 것은 휘슬러의 <화가의 어머니>를 보면서 소름이 돋으려면 훈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은 “문화미와 예술미는 훈련한 만큼 보인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처음 피카소의 작품을 볼 때 왜 좋은지 몰랐습니다. 좋다니까 감동을 짜내며 좋은가보다 했죠. 그런데 지금은 좋은 걸 알겠습니다. 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들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들을 읽고 난 다음에 본 피카소의 그림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이젠 앙리 루소의 어떤 그림을 보고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생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철수가, 최인훈이, 유홍준이, 김훈이, 그 외의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나를,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었고, 해주고 있습니다.


‘시청’이냐 '견문'이냐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거죠.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그저 지겹다고 하는 것은 시청을 하는 것이고요, 사계의 한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 건 견문이 된 거죠. <모나리자> 앞에서 '얼른 사진 찍고 가자'는 시청이 된 거고요, 휘슬러 <화가의 어머니>에 얼어붙은 건 견문을 한 거죠. 어떻게 하면 흘려보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가가 저에게는 풍요로운 삶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겁니다. 존 러스킨은 “당신이 보고 난 것을 말로 다 표현해보라”라고 했습니다. 나뭇잎을 봤다면, 나뭇잎의 균형감각이 어떻게 되어 있고, 앞뒷면의 촉감이 어떻게 다르고, 끝부분은 어떤 모양이고, 햇살이 떨어진 각도에 따라 나뭇잎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볼 줄 알면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또 이렇게 얘기했죠. “내가 대학교 총장이라면 '눈 사용 법(How to use your eyes)'이라는 필수과목을 만들겠다”라고요. 보지 못하는 자신보다 볼 수 있는 우리들이 더 못 본다는 것이죠. 전부 다 '시청'을 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아름다운 영미 에세이 50선에 드는 헬렌 켈러의 에세이, 「삼 일만 볼 수 있다면」에 나오는 말입니다. 헬렌 켈러는 책 첫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숲을 다녀온 사람에게 당신은 뭘 봤냐고 물었더니, 그가 답하길 '별것 없었어요Nothing special'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겁니다. 자기가 숲에서 느낀 바람과, 나뭇잎과 자작나무와 떡갈나무 몸통을 만질 때의 전혀 다른 느낌과, 졸졸졸 지나가는 물소리를 왜 못 보고 못 들었냐는 거죠. 이렇게 인생이 특별할 게 없는 사람들은 생의 마지막에 떠오를 장면이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거미줄에 달려 있는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들은 죽을 때 떠오를 장면들이 풍성하겠죠.
  삶은 목걸이를 하나 만들어놓고 여기에 진주를 하나씩 꿰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주는 바로 그런 삶의 순간인 겁니다. 딸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삼 주 정도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더니 난리가 난 겁니다. 삼 주면 수학 수업, 영어 수업을 몇 번이나 빠져야 하는지 아느냐는 거죠. 얘기 끝에 가족이 내린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아마도 수학을 놓치고 영어를 손해볼 거다, 하지만 평생 아이가 가져갈 수 있는 순간, 우리가 살면서 문득 떠올릴 수 있는 순간, 마지막에 당신은 뭐가 생각나느냐는 질문을 받고 떠올릴 순간, 이런 것들 하나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진주 한 알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진주들은 내가 눈이 있고, 훈련이 되어 있어야 생길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는 행복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11시에 고양이가 내 무릎에 앉아 잠자고 있고,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이 들리고, 책 한 권 읽는, 그런 순간이 잊히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이 몇 개가 각인되어 있느냐가 내 삶의 풍요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드렸듯 그것들은 약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기준을 잡아주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책을 씁니다. 그래서 그 책들을 읽으면서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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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 했으니, 즐거움과 괴로움도 매한가지일 터. 남의 눈에 비친, 남의 옷을 걸친 가짜 즐거움을 떨치고 자기만의 옷을 찾는 괴로움을 거쳐야만 인문학적 즐거움에 이를 수 있으니, 어쩌면 이번 책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은 전작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의 프리퀼이라 할 만하다. 김수영, 김춘수, 황동규와 들뢰즈, 사르트르, 비트겐슈타인의 만남을 기획한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최승호와 게오르그 짐멜, 문정희와 이리가레이, 채호기와 맥루한의 만남을 마련했다. 매 꼭지가 하나의 책처럼 전혀 다른 감각을 일깨우는 탄탄한 구성에, 사랑, 돈, 여성, 타자 등 전통적인 철학의 주제부터 대중문화, 글쓰기, 감각, 관계 등 현실과의 접점까지 함께 다룬 폭넓은 시선이 '역시' 강신주답다.

 

 

들어가는 글 

당혹스런 일이었습니다. 아파트 10층 현관문 앞에 도착한 순간, 나는 절벽을 마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채로 산에 갔다 온 탓일까요. 현관문 앞에서 도무지 문을 열 수 있는 암호가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휴대전화기를 찾았지만 주머니나 배낭 안에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능선 산행을 할 거라 휴대전화기를 집에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때늦게 기억하게 됐습니다. 암릉을 기어오를 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당혹스러운 상황에 가족에게 전화도 할 수 없게 된 겁니다. 심지어 휴대전화기에 저장된 가족의 번호마저도 헛갈립니다. 매번 저장된 번호를 기계적으로 눌러왔기에 번호가 도통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진퇴양난이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서 주민등록번호, 생일 등등 내가 비밀번호로 쓰고 있는 모든 번호를 입력해봅니다. 그러나 잠금장치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암호를 한두 번 잘못 입력하면, 몇 분간 입력도 되지 않는 첨단 도어록이라는 사실을 이때서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암호는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지고, 당혹감은 나를 더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내 집 인데 들어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무데도 연락을 할 수 없다는 것.
  불현듯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소설,《성(Das Schloss)》이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은 당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성에 들어가려고 하면 성에서 자꾸만 멀어지고, 성을 벗어나려고 하면 어느 사이엔가 성이 눈앞의 뿌연 안개 속에서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을 벗어나 인근 편의점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호주머니에 잔돈이 조금 있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애써 집과 현관문의 암호를 잊으려고 애썼습니다. 늪에 빠진 현관문 암호가 저절로 떠오르기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진짜 집과 암호에 대한 생각을 잊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의 이야기를 음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저《부정변증법(Negative Dialektik)》에 등장하는 구절이었을 겁니다.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물쇠들을 여는 것과 같고, 그 열림은 하나의 개별적인 열쇠나 번호가 아니라 어떤 번호들의 배열에 의해 이루어진다”라는 취지의 생각이었지요.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특정한 암호로 열리는 자기만의 고유한 문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들었습니다. 시인과 철학자를 포함한 모든 진지한 인문 저자들은 저마다 고유한 문의 암호를 잃어버린 사람들 아닐까요? 그러니 암호를 찾아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제 느낌이 오시나요? 시집과 철학책들은 모두 특정한 문을 열 수 있는 암호와 같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시인과 철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는 암호를 아무리 입력해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당혹스런 경험을 했던 겁니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책《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을 읽고 그들은 사랑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실제로 사랑에 빠졌을 때, 그들은 알게 된 겁니다. 베르테르의 사랑으로는 결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탄식하며 절규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도대체 사랑이 뭐지? 어떻게 해야 그녀의 마음을 열 수 있지?” 그들은 사랑이란 문을 열 수 있는 암호를 잃어버린 겁니다. 그렇다고 절망만 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바로 그 순간, 사랑의 암호는 그들에게 사활을 건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삶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물과 사건들, 그리고 소중한 모든 가치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바뀌기 이전에 통용되던 암호를 떠올리며 항상 문을 열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아닐까요? 막상 살아가다 보면 어떤 문도 열지 못하는 나약한 상태라는 것을 종종 깨닫게 됩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암호를 스스로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암호로는 우리가 들어가고 싶은 문을 통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암호를 다양하게 배열해서 문을 열려고 했던 작가들의 분투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습니다. 우리와 유사한 삶의 조건을 공유하는 시인과 철학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그 골목 을 어떤 식으로 벗어나려고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교훈은 그들처럼 우 리도 사물이나 사건, 혹은 가치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의 암호를 잃어버렸다는 자각 아닐까요? 그것을 자각할 때 비로소 잠금장치의 숫자를 다시 신중하게 배열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삶은 남의 제스처로는 살아낼 수 없다는 것. 오늘 바로 이 순간 우리가 깊이 되새겨야 할 가르침은 바로 이겁니다. 

 

프롤로그

1.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를 아시나요? 그렇다면 그의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o)》제2번과 제3번을 기억하실 겁니다. 러시아의 작곡자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그의 연주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바닥없이 추락하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비상하는 감동을 주니까 말입니다. 라흐마니노프를 몰랐던 시절, 내게 그의《피아노 협주곡》제2번과 제3번을 들어보라고 권했던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를 굉장히 좋아해서 그런지, 혹은 내가 라흐마니노프 음악도 들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인지, 그녀는 시간을 내 직접 라흐마니노프 음악 연주회에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좌석에 나란히 앉았을 때, 그녀는 내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동을 전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의 애인을 소개시켜주는 처녀처럼, 그녀는 달뜬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마침내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비장한 선율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랑 같이 연주회에 있다는 사실마저 잊은 것처럼 말이지요. 음악에 ‘집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화려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장하기도 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연주회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음악을 들으면서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습니다. 눈을 감고 듣다가 어떤 선율에서는 양미간을 찡그리곤 했습니다. 같이 듣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가 왜 그런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 내가 라흐마니노프 음악으로부터 전혀 감동을 받을 수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그녀처럼 라흐마니노프를 ‘깊이’ 느낄 수 없었을 뿐입니다. 연주가 끝난 뒤 나는 어느 부분이 좋았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전체적으로 좋았다고만 이야기할 뿐,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더 감동을 받았는지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집중은 자신을 떠나서 관심을 가진 무엇인가로 건너가는 상태니까 말입니다. 영어로 관심이나 흥미를 뜻하는 ‘interest’ 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사실 이 단어는 ‘사이’를 뜻하는 라틴어 ‘인테르(inter)’와 ‘존재함’을 뜻하는 ‘에쎄(esse)’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이에 존재함’으로써 ‘interest’는 나와 타자 사이에 존재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집중은 바로 내가 나와 어떤 타자 사이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집중의 상태는 완전히 나로 머물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타자로 건너가서도 안 됩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집중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념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우리는 음악은커녕 상대방의 이야기조차 들을 수 없기 때 문이지요. 후자의 경우라면 집중은 일종의 최면이나 환각 상태로 변질됩니다. 집중해야 하는 주체, 즉 ‘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에 집중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그녀는 결코 자신이 라흐마니노프의《피아노 협주곡》에 ‘깊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라흐마니노프 음악에 깊이가 있다고 느낀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입니다. 단지 그녀는 집중하고 몰입하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녀뿐만 아니라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느끼게 마련입니다. 이제 역으로 말해도 좋을 것 같네요. 여러분이 깊이가 있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집중’과 ‘깊이’, 이 두 상태는 동전의 양면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집중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깊이의 비밀을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세계의 무엇인가로 열려 있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겁니다.


2.
이름 모를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길을 걸어본 적이 있나요? 상념에 빠져 그냥 지나쳤다면 꽃들과 길에 대해 어떤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잠시 걸음을 멈춰 한 송이 꽃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여러분은 그 꽃을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오직 응시와 집중만이 사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가능하게 만드는 법이니까요. 나아가 사물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 이르는 시적 감수성도 기적처럼 솟구쳐 오르게 될 겁니다. 언젠가 질 것이기에 더욱 찬란하기만 한 꽃을 노래할 수도 있고, 아니면 꽃을 통해 자신과 이웃의 삶을 예견할 수도 있습니다. 지하보도를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버려진 종이상자로 작은 집을 만들어 그 속에 누에고치처럼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는 노숙자의 삶을 응시해보세요. 당신도 겪어내고 있는 자본주의적 삶을 묘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말입니다. 꽃을 묘사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처럼, 노숙자를 응시하고 묘사하다 보면 자본주의로부터 상처받고 있는 자신의 삶도 명료하게 들어올 겁니다.
  자신이 직면하게 된 사람이나 사물 혹은 사건에 고강도로 집중할 때, 우리는 그로부터 발생하는 내적인 동요를 묘사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셈입니다. 그래서 집중은 자기만의 표현과 묘사, 즉 고유한 스타일을 낳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시인이나 철학자들의 글은 읽기가 힘든 겁니다. 너무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것을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구체적이고 개성적이기 때문에, 바꾸어 말한다면 내가 그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글을 이해하기 힘든 겁니다. 위대한 시 나 철학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아주 높은 곳으로 비상해서 모든 것을 관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불가피한 착시효과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바로 자기 자신의 삶으로 하강해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이나 철학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이야기한 겁니다. 이제 느낌이 오시나요? 삶이 묻어나는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표현이 가장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만의 생각을 이야기한 것들이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에서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도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단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몇 백만의 세계, 인간의 눈동자와 지성과 거 의 동수인 세계가 있고, 그것이 아침마다  깨어난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권력이나 자본 혹은 관습이 강요하는 공통된 색안경을 끼고 자기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말해 자기만의 제스처가 아니라 남의 제스처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항상 삶이 우울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지요. 자기 옷이 아닌 남의 옷을 입고 사니까 말입니다.
  시인이나 철학자들은 자기 몸에 맞는 자기만의 옷을 만들어 입는 데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시와 철학을 읽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로부터 제스처를 배워서 그것을 흉내 내서는 안 됩니다. 그들과 헤어진 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각오를 다져야만 합니다. “아! 저 친구는 저렇게 자신의 삶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는구나. 나도 그래야지. 이제 더 많이 내 감정과 생각을 돌아봐야겠다.”이제 시인이나 철학자들을 선생님이나 정신적 멘토로 숭배하지 마세요. 그들이 남긴 시나 철학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여겨 외우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삶이니까 말입니다. 여러분이 느끼고 고민했던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도록 노력하세요. 언젠가 여러분도 자기만의 삶을 긍정하고 그것을 표현 할 수 있는 시인이나 철학자가 되어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3.
인문학은 다른 학문과는 달리 ‘고유명사’의 학문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노래하거나 논증합니다. 그들의 시와 철학에는 유사성은 있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김수영의 시와 신동엽의 시, 그리고 바흐친의 철학과 바르트의 철학이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시인과 철학자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의 궁극적 유사성은 바로 그들이 자기만의 제스처와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와 철학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도 그들처럼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인문정신의 소망입니다. “다른 누구도 흉내 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 신의 힘으로 영위하고 그것을 표현하라!”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 자의 삶에서 자유와 기쁨을 얻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에 게 인문학이 필요한 유일한 이유일 겁니다.
  우리에게 김수영이라는 시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행운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단순히 시인이기보다 인문정신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964년에 집필한 <요동하는 포즈들>이란 시평에서 김수영은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현대성보다도 사상보다도 백배나 더 중요한 일” 이라고 말이지요.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과 감정, 그리 고 생각에 진실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남의 제스처를 흉내 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런 정신은 1953년에 쓴, 비교적 초기 작품에 속하는 <달나라의 장난>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 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1953년 어느 날, 김수영 시인은 돌아가는 팽이를 봅니다. 그리고 팽 이에게서 자신의 삶, 혹은 우리 인간의 삶을 직감합니다. 아무리 기세등등하게 돌고 있어도 팽이는 언젠가는 멈추게 마련입니다. 어차피 멈출 것을 왜 돌고 있는지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슬픕니다. “팽이가 돈다/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그렇지만 시인은 압니다. 팽이는 오직 돌 때에만 팽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팽이의 목적은 돌기를 멈추고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팽이는 돌기 위하여 존재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인은 스스로 채찍질해야만 한다고 각오를 다집니다.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을 의식하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팽이는 다른 팽이가 돌도록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팽이놀이를 해본 분은 알겠지만, 돌고 있는 팽이 가 다른 팽이와 부딪치면 둘 중 하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멈추게 됩니다. 다른 팽이의 운동을 따라 하다가 스스로 멈추는 팽이처럼 우 리도 스스로 돌면서 아름다운 궤적을 만들어가야만 합니다.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시인의 말처럼 “생각하면 서러운”일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자유로운 인간의 숙명인 것을 말입니다.


4.
2010년에 출간한《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독자가 내 책에서 받은 인상을 토로했던 대목입니다. “시인은 그것이 무슨 씨인지도 모른 채 씨를 뿌리고 지나갑니다. 시간이 흘러 그 씨앗들이 다양한 꽃을 피우겠지요. 그러면 철학자가 뒤따라가면서 시인이 뿌린 씨가 어떤 꽃의 씨인지를 하나하나 알려줍니다.”이처럼 위로가 되는 평가가 또 있을까요? 고맙습니다. 나를 더 기쁘게 했던 것은 내가 다루었던 시인의 시집들이 과거보다 조금이나마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고, 스스로 뿌듯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나는 예기치 않은 투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을 다뤄줄 수 없느냐는 독자들의 바람이었습니다. 여기에 편승해서 기다렸다는 듯이 출판사 편집자들도 내게 압력을 넣습니다. 마침내 나는 홍대 근처 상상마당에서 철학과 놀기 13기 강좌를 시작했습니다. “철학과 시가 부르는 사유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말입니다. 상상마당 아카데미의 꽃, 아름다운 매니저 한나 씨가 붙여준 매력적인 제목이지요.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본 독자들이 수강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책의 부록처럼 강의를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 비록 강의가《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의 속편일지라도,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세계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랑’, ‘돈’, ‘여성’, ‘그리스도’, ‘타자’, ‘미디어’, ‘자유’, ‘역사’, ‘대중문화’, ‘글쓰기’, ‘감각’, ‘관계’ 등등을 주제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반드시 읽어보아야만 할 우리 시인들과 그들의 정직한 속앓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현대 철학자들을 선정했습니다. 시인을 선정하면서 특히 염두에 두었던 것은 전편에서 많이 다루지 못했던 여성 시인들이었습니다. 문정희, 고정희, 그리고 김행숙 시인을 다루면서 나는 여성 시인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으려고 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서 다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 쉬웠던 시인들을 다루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백석, 신동엽, 이성복, 김정환, 그리고 허연 시인이 바로 그들입니다. 특히 신동엽 시인과 이성복 시인을 다룰 수 있어서 더 행복했습니다.
  강의는 매주 강의안을 책 원고라는 완성된 형식으로 집필하여 읽었던 나만의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나는 김수영 시인을 울렸던 하나의 팽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 선생님은 자신의 삶을 응시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애쓰는구나.” 뭐, 이런 느낌을 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팽이가 돌면서 김수영 시인을 울렸던 것처럼 나도 돌면서 수강한 분들을 울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김수영의 시 <폭포>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곧은 소리는 소리이다/곧은 소리는 곧은/소리를 부른다”는 구절을 떠올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강하는 분들이 자기 삶을 채찍질 하며 스스로 서기 위해 노력한다면, 내 강의는 그 목적을 완수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강의는 내 의도대로 진행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자신의 속내를 정직하게 토로하기 시작했으니까 말입니다. 결국 강의실 안은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지 않는, 스스로 도는 힘으로 도는” 팽이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나로서는 이런 고마운 선물이 다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공통된 제스처가 아니라 자기만의 제스처로 돈다는 것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에 ‘괴로움’이 란 말을 넣었습니다. 이런 괴로움을 잘 이겨내면, 우리는 자신만의 즐거움을 얻게 될 겁니다. 어쩌면 인간에게 즐거움은 항상 괴로움이란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할 때에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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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1-09-2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움을 가지고 있으니 괴로움도 가지고 있어야겠군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9-27 05:39   좋아요 0 | URL
이미 갖고 계신 거 아니었나요?? ^^ 아니라면 이번 책으로 만나보심이... 고맙습니다.

상상마당아카데미 2011-10-1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상상마당아카데미입니다. 이번에 강신주 박사님의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을 주제로, 독자들과 만나는 [어쿠스틱인문학]프로그램이 10/25(화)예정 중에 있습니다.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님 사회로 진행되는 풍성한 대화의 시간에 많은 분들이 함께 모여 좋은 시간으로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많은 분들이 좋은 책도 읽고 저자와의 농도진한 만나는 시간도 가져보셨으면 하는 바람에서,,무례할 수도 있지만, 요렇게 홍보글을 댓글로 달아봅니다.^^;;)
 

  

나꼼수로 몽매한 시민의 눈과 귀를 뚫으사
이땅의 메마른 정치에 생명수를 부어주신 그분의 복음. 

겉과 속에 한 치의 다름도 없는 무학의 통찰에 이르신 
한국 정치의 선지자께서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과연 어떤 말씀으로 세상을 깨우치실 계획이실까.

이제 열흘 후면 한 권의 책으로 계시를 내려주실 터,
무릇 읽고 따르는 자에게는 축복이,
읽고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어둠만이 영원하리라.

 

졸라 짧은 서문

이게 다 조국 덕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 조국 말이다..
그의 등장과 부상에 열렬 환호했다.
오! 스펙, 얼굴, 기장, 음색, 사상. 이건 뭐, 토털 패키지. 이만하면 역대 최고 선수. 신난다.
달뜬 채 《진보집권플랜》 집어 들었다. 서문 읽다……덮었다.
재수, 없을 수 있겠다…… 재수 없다가 아니라.
그리고 재미, 없다…… 재미없을 수, 있겠다가 아니라.
전자는 위험하고 후자는 안타깝다.
이렇게나 훌륭한 선수가. 에이, 씨바.
안 되겠다. 돕자.
아무도 안 시켰는데, 괜히 나 혼자 불끈.
'진보집권플랜 B-'가 필요하다.
어디까지나 조국을 위한, 무허가 해제, 야매 보론, 측면 지원, 셀프 차출.
그렇다. 그렇게 시작됐다, 이 짓.
근데, 잦아들었다. 조국 바람이.
너무 빨리. 우씨. 어떡해, 이거. 난 이미 출발했는데.
에라이. 기왕 나선 거, 내처 달리자. 일이 그리 된 게다.
그러니 사전 경고한다.
다음 페이지부터 펼쳐질 내용, 어수선하다.
근본도 없다. 막 간다.
근본 있는 자들은 괜히 읽고 승질내지 말고 여기서 덮으시라.
다만 한 가지는 약속한다.
어떤 이론서에도 없는,
무학의 통찰은 있다.
물론, 내 생각이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열 받으면 니들도
이런 거 하나 쓰든가.
서문 긴 건,
딱 질색이니
여기까지.
졸라. 
 

졸라 재미난 본문 

좌, 우. 사바나로 돌아가자

지 _ 왜 진보가 집권해야 하는지 말하기 전에 진보, 보수를 먼저 규정해야 하는 거 아냐?
김 _ 좋아. 좌, 우가 뭔지부터 얘기를 하자고. 굉장히 흔하게 쓰이지만, 사회과학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어려워하는 개념이니까. 그나마 전 국민이 공통으로 가진 좌, 우에 관한 기준이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 정도인데, 북한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좌우나 진보, 보수를 나누는 건 사실 굉장히 한국적이고 예외적이며, 애초 유럽에서 기획된 좌, 우의 개념에도 들어맞지 않거든. 그러니까 더욱 헛갈리지.
  나도 80년대에 20대가 걸쳐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의 평균적인 학습 세례를, 그 시절 유행했던 《전환시대의 논리》같은 책을 통해 받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이론이 내겐 관념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졌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그런 정교한 이론을 기반으로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어. 나도 그런 이론들 대부분은 알아. 하지만 그런 건 제쳐두자고. 중요한 건 그런 정교한 이론이 아니니까. 큰 덩어리의 본질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자, 그럼 내 방식대로 좌와 우를 설명해볼게. 무학의 통찰로.(웃음)

지 _ 진보, 보수를 나누고, 세계를 이해하는 것, 내 스탠스를 찾는 것이 학습의 결과가 아니란 말이지?
김 _ 내가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면서 순간순간 경험으로 터득한 건데, 그러니까 근본은 없어.(웃음) 어쨌든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내재적 속성을 직관과 통찰로 발견한 거라고 난 주장하는 거지, 일방적으로.(웃음) 자, 이제 사바나로 돌아가보자, 사바나 시절로. 현재의 우리 사고 회로가 설계된 건 바로 그 시절이거든. 그 시절, 사회적 규범도 대단히 미약하고, 학습의 기회나 장도 달리 없고, 대단히 동물적인 자연인 상태였던 그때는 과연 좌, 우가 없었는가? 좌, 우의 원형질에 해당하는 사고방식은 과연 없었는가? 좌, 우의 어떤 기원에 해당하는 인식 체계, 세계관이 그때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난 당연히 있었다고 생각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고의 회로를 어느 날 갑자기 인간들이 발명해냈을 리 없거든. 그런 사고의 경향성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설명할 정교한 언어를 갖지 못했을 뿐이지.
  그렇다면 그 시절의 좌, 우는 어떤 것이었을까? 어느 날 문득, 그 원형질에 해당하는 감정이나 태도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된 거지. 어떤 동물이건, 물론 사람도 포함해서, 그 태도를 결정하게 만드는 건 결국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해. 하나는 욕망이고, 나머지 하나는 공포야. 그게 모든 동물의 생존 방식을 결정하는 두 축이라고 봐. 간단히 말해, 살고 싶은 건 욕망이고, 자기 존재를 위협하는 건 공포지. 그 시절의 기본적인 욕망을 유추해보는 건 어렵지 않아. 먹고 자고 섹스하고. 모든 동물이 가진 본능적 욕구를 안정적으로 해결하기에도 만만치 않은 시절이었을 테니까. 그걸 해결하기에도 바빴겠지.

그럼 공포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사자일까? 천둥과 벼락을 내리치는 하늘? 가장 큰 공포는 불확실성이었다고 생각해, 불확실성. 물론 사자도 두려워. 그렇지만 사자보다 더 두려운 것은 저 풀숲에서 튀어나올 게 뭔지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저 밀림 속에 오로지 사자밖에 살지 않는다면, 그럼 사자의 습성을 알고 조심하는 걸로 대처하면 되거든. 그런다고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예측하고 준비할 근거는 있는 거니까.
  그런데 거기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해봐. 미지의 포식자와 자연재해를 예상할 수 있나. 없다고. 언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 그런 불확실성, 나는 이게 바로 공포의 원형질에 해당한다고 봐. 인간의 현대적 욕망을 가장 충실히 반영하는 자본 게임인 주식시장을 봐. 주식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이야. 불확실성에는 논리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따로 없으니까. 인간이 그런 불확실성이라는 공포에 따로 대처할 방도를 찾지 못하니까 굿도 하고, 별자리도 보고 그러는 거지. 토템이 어느 지역에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테고. 그러다 그게 세련되어지면 종교가 되는 거고.
  이 모든 노력은 결국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대처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불확실성을 어떻게든 축소하고 제거하기 위한 거지. 초월적 존재에 의탁해서. 악어가 인간을 잡아먹는 동네에서는 그 대상이 악어가 되기도 하는 거고. 염주 차고, 십자가 걸고 기도하는 거나, 동물 뼈 목에 걸고 굿하는 거나, 본질적인 동력은 같은 거라고.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저 앞의 밀림에서, 자신 앞의 삶에서, 뭐가 튀어나와 날 해칠지도 모른다는 공포, 불확실한 삶의 조건 속에서 견뎌내야 했던 거
지. 



우, 겁먹은 동물

지 _ 그 공포의 핵심이 바로 불확실성이라는 것이 되겠네?
김 _ 그렇지, 그런데 이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사람에 따라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내가 오늘 먹을 것이 있다고 해서 내일 먹을 것이 보장되는 게 아니었잖아. 요즘 우리는 내일 먹을 것에 대한 불안을 돈으로 환치시켜 생각하는데,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니까, 그 시절은 그게 아니었잖아. 내가 오늘 사슴을 잡았다고 해서 내일도 그 자리에 다시 사슴을 잡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고. 자신의 생존이 그러한 불확실성에 좌우되는 상황이지.
그 공포에 대처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바로 좌, 우다, 난 그렇게 생각해. 우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이해한다고. 그렇게 생존이 상시로 위협받는 약육강식의 환경에선 내가 더 강한 포식자가 되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더 악착같이 그걸 독점해, 우선 내가 살아남아야겠다. 그게 난 굉장히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해. 당연히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지. 나는 죽고, 옆 사람이 살면 뭐 해.
  그래서 그들이 인지하는 세계에선 자신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게 도저히 죄가 될 수 없는 거야. 당연한 생존의 권리지. 그래서 더 강한 자가 더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도 죄일 수가 없어. 마땅한 권리 행사일 뿐이지. 그리고 그렇게 고생해서 자기 것을 챙겼는데, 만약 그걸 누군가 가져가거나 남들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봐. 억울하잖아. 그러니까 그들에게 사유재산은 대단히 중요한 거야.
  자기가 강해서 획득한 자산, 그걸 남에게 뺏기지 않을 권리, 그렇게 확보한 자산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위계, 그렇게 형성된 계급의 유지, 그 유지를 위해 필요한 질서, 그 질서의 지속적 보장, 그들이 인지하는 세계에선 그런 것들이 무척 중요해지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그 격차로 인한 불평등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이치가 되는 거야. 뒤처지거나 약한 건 전부 자기 탓이니까.
이명박이 항상 나태해지지 말라고 하잖아. 그 말뜻은 그런 거지. 내가 강한 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잘나서고, 내 덕에 내가 여기까지 온 거다. 난 그렇게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다. 열심히 살지 않고, 불평불만 늘어놓는 자들, 남 탓만 하는 자들, 그 모든 건 자기 탓이다. 그러니 뒤처진 자들은 남 탓할 거 없다. 여기서 ‘ 남’은 바로 대통령까지 된 이명박 자신이지. 그러니 날 탓하지 말고, 정권을 탓하지 말고, 네 일이나 열심히 해라. 그런 소리지.
  노력만으론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사회구조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아. 청소부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가난한 게 아닌데, 그런 건 관심 없어. 이명박이 항상 자기는 뭐든 해봤다고 주장하잖아. 내가 해봐서 안다고. 그건 자기는 여기까지 왔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니들도 그렇게 해보라는 소리거든. 그러니까 니들은 니들이 못나서 그런 거라는 말이지. 성공한 우의 전형적인 사고 패턴이야.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무능으로 환원시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장악한 시스템 자체에 대해선 시비를 못 걸게 만드는 거지. 씨바.

그렇게 생각해보면 결국 우는 공포에 지배당하는 자들이 보여주는 본능적 대응이야. 두려우니까, 무서우니까, 자신만이라도 살아남겠다며 발버둥 치는 것들의 리액션. 그래서 난 우는 세계관이 아니라 반응이라고 생각해. 공포와 마주한 동물의 반응. 그런 수준의 반응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도 다들 하는 거거든. 식량이 없는 두려운 겨울을 견디고 봄까지 살아남기 위해 가을에 졸라 많이 처먹는(웃음) 곰의 적응과 하등 차이가 없는 거라고.
  그래서 우의 엔진은 공포라고. 그 공포를 경쟁 대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표정은 엄숙, 비장한 것이고. 그 경쟁에서 이길 경우 자신이 너무 대견해서 안하무인이 되고. 졸라 촌스럽지. 조갑제가 칭송하는 우의 비장미가 바로 그런 속성을 가진 거지. 그렇게 불확실성이란 공포를 상대하는 동물적 반응, 그 관점으로 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이런 건 기질적인 것이고 타고나는 거라고 봐. 게다가 치열한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가르치고, 넓게 머리 써서 지혜롭게 협동하기보다 잔머리 써서 다른 사람을 이기는 놈이 잘난 놈이라고 세뇌시키는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우가 대다수인 건 더더욱 당연한 거지. 우가 본능적이고 일차원적이잖아.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것이 나를 둘러싼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보다 쉽고 자연스럽거든. 유아적이라고 할 순 있어도 말이지. 현상 뒤의 구조를 읽어내는 건 막대한 정신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여기서 한국의 우가, 한국적 보수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 또한 얻을 수 있어. 그 정서적 단서를. 북한은 한 마디로 불확실성 그 자체거든. 마치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밀림의 포식자처럼. 그럴 경우 그 두려움을 가장 손쉽게 처리하는 방식 중 하나는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버리는 거야. 공포스러운 대상을 윤리적 단죄의 대상으로 바꾸는 거지. 그쪽이 훨씬 처리하기 간편한 감정이거든. 무섭다고 하기보단 나쁘다고 하는 거지. 무서워서 싫은 게 아니라 악해서 싫다고 말하는 거지. 그러니까 북한에 대한 우리나라 우의 반응은 한마디로 원시인 수준이야.(웃음)

지 _ 우리 우파 정당에 친일파나 그 후손이 많이 모여 있는데, 그게, 더 강한 놈이 있으면 ‘어쩔 수 없다. 쎈 놈이니 복종해야 한다!’는 멘탈리티를 가진 사람들이라서 그런 건가?
김 _ 그렇지. 물론 자기 걸 뺏으려는 자에게 누구나 일단 반항하지. 하지만 그 힘의 차이가 압도적일 경우, 그래서 모두 잃더라도 맞서느냐 아니면 그 힘에 복종하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그런 결정적 선택의 순간이 오게 되면, 결국 본질적 기질이 드러나게 된다고. 그때 우의 사고 회로는 자기를 압도하는 힘에게 복종하고 바짝 엎드리는 게, 자기가 더 힘이 세면 남을 지배하는 게 당연하듯, 받아들여야 하는 이치라고 여기기 십상이라고. 자기가 약하면 복종하는 건 도리 없다고 받아들이는 게 우의 인식체계라는 거지. 동물하고 똑같아. 붙어봐서 안 되면 바로 꼬리 내리고 슬슬 기는 거지. 아예 도망치거나.
  지금도 일제 강점기의 장점을 어떻게든 찾아내려는 우파 학자들 있잖아. 그러면서 자기는 객관적이라고 착각을 하지. 객관적인 게 아니라 지가 그렇게 생겨 먹었을 뿐인데. 정보는 그 자체로는 데이터에 불과하고 결국 어떻게 프로세스 하느냐가 중요한데, 그 처리 과정을 지배하는 게 바로 자신의 생겨먹은 기질이란 걸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거지. 그렇게 압도적 힘을 거스르기보다 따르려고 하는 건, 우의 멘탈리티로는 쪽팔린 게 아니라 당연한 거지.
  항상 경쟁을 이야기하고, 경쟁에서 탈락하면 지 탓이라 하고, 그 경쟁에서 승리한 엘리트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과, 일본 같은 식민본국, 미국 같은 슈퍼 파워, 그 이전의 중국 같은 대국에 우가 머리를 조아리는 건 같은 맥락인 거지. 그리고 우의 기질과 원형질이 그렇다 보니까 우의 경제라는 건, 우선 지가 다 처먹고 나서 남은 찌꺼기를 나누어 주는 걸 경제라고 하는 거고. 일단 지가 다 먹고 나서. 이게 핵심이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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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꼼수다'는 서막에 불과했다! 김어준의 명랑시민 정치교본
    from FaitHopeLove 2011-09-22 17:45 
    아... 이거 베스트셀러다!! 구입해서 함께 읽고 싶은 책이지만... 아내님에게 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 ㅠㅠ
  2. 김어준의 책이 좀 팔리네
    from 행간을 노닐다 2011-10-03 20:30 
    김어준의 신간 가 예약 판매로 각종 온라인 서점에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랐다. 참 희한한 일이다. 물론 내용을 보지 않았으니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렇다고 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읽어 볼 것이다. 김어준은 무학의 통찰(요즈음 김어준이 나는 가수다 때문에 잘 쓰는 말이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는 식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만 둔다. 그래도 많이 팔리면 장땡 아닌가? 아프니까 어쩌구도 100만부가 넘게 팔렸는데... 한데 김어준..
 
 
수호천사를믿어요 2011-10-0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당 정권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보수인 MB가 정권을 잡았다. 그의 독설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빛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