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인형 인형 시리즈
양국일.양국명 지음 / 북오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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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인형》

 


 

여름이다. 여름엔 무섭거나 기묘하고 섬뜩한 이야기를 담은 호러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는데 소설은 이제껏 크게 좋았던 적이 없었다. 시각, 청각적으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영화보다 글로만 표현해야하는 영역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옥인형》을 통해 이런 편견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글만으로도 충분히, 충분히 오싹하고 섬뜩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옥인형》은 인형을 소재로 한《엄마의 방》《지옥인형》《앙갚음》과 좀비를 소재로 한《트렁크》총 4편의 작품을 실은 공포 소설집이다. 그 중 첫 번째 단편 《엄마의 방》은 죽은 사람을 되살리려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한 남자의 이야기다. 폐렴으로 죽은 아내를 살리고자 반혼 술을 하여 아내와 꼭 닮은 인형을 깨운 남자 그리고 그의 아들. 그는 아들을 절대 엄마가 있는 방에 가지 못하게 한다. 엄마의 방에서 들리는 죽음의 소리, 아버지의 이상행동 결국 아들은 그 집을 떠나게 되지만 30년 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그 집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마주하게 되는 경악할 진실!

 

《지옥인형》공포소설을 쓰는 가난한 작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아이들을 건사하느라 편찮으신 어머니, 일정한 수입도 없이 글 쓰는 일에 매달리는 주인공을 타박하는 누나. 이런 압박감 속에 미친 듯이 자료를 모으던 그가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한 ‘지옥인형’ 괴담. 그는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기위해 실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인형을 조사하면 할수록 나날이 심해지는 악몽, 지옥인형은 주인공 무의식 깊숙이 박혀있던 가족의 진실을 의식 속으로 불러내고야 만다. 지옥인형의 실체와 주인공의 비밀은 무얼까!

 

《앙갚음》한 남자가 있다. 이념의 노예가 되어 맹목적으로 서로 죽고 죽이던 해방 후 한국 전쟁의 틈바구니 속, 그 남자는 인간이 아닌 야수가 되어 미친 듯이 빨갱이들을 죽였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가 죽인 사람들 또한 그는 사람이 아니라 믿었다. 그런 그에게 선물이 도착한다. 한 가족을 표현 한 듯 보이는 인형 3개. 그리고 그날 한 밤중에 잠에서 깬 남자는 베란다 창 앞에서 두 팔을 허우적대며 자신의 몸을 미친 듯이 쳐대는 아내를 발견한다. 아내에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트렁크》는 유일하게 인형이 아닌 좀비를 소재로 쓴 작품이다. 야유회를 가던 한 회사 일행이 물안개 가득한 어두운 산길에서 무언가를 차로 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차로 친 것은 다행히 사람이나 동물은 아니었으나 여행용 대형 트렁크다. 그런데 그 트렁크가 조금씩 움직이고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려던 그들 앞에 이상한 차 한 대가 다가온다. 외딴 산길, 보이지 않는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지독한 물안개. 그리고 트렁크! 그들 앞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양국일, 양국명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들은 모두 뚜렷한 서사와 공포의 실체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전에도 공포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지만 이야기 구조에 개연성이 없고 그저 공포를 과대 표현한다는 느낌이 강해 실망하곤 했었는데 이번 작품들은 각각의 이야기 모두를 떼어 장편으로 만들어도 좋겠다 싶을 만큼 모두 훌륭했다. 여름에 읽기에 너무나 좋은 소설이다. 휴가 때 가지고 갈 ‘트렁크’에 꼭 넣어가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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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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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곳, 지옥보다 더 한 영원한 형벌의 장소 무저갱 [無低坑, Abyss]. 이 소설의 제목으로 이처럼 좋은 단어는 없다고 생각했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독자에 대한 그 어떤 배려도 없이 펼쳐지는 피와 폭력, 상상을 불허하는 형벌의 향연. 압도적인 공포. 소설 속에서 이토록 잔인한 장면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책장을 덮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읽기 시작하여 단 숨에 다 읽어버렸다. 나는 이 소설 속에서 지옥을 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을!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건 ‘차장’이다. 아주 ‘특별한 일’을 하는 회사의 성공한. 부산 사투리를 아주 맛깔나게 쓰고 온 몸을 명품으로 휘감은, 철저한 관리로 5%미만의 체지방률을 유지하며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만의 노하우를 축적한. 그런 그와 회사가 하는 일은 고객을 어떤 위험으로부터 ‘보호’ 하는 일이다. 보호란 것은 참 애매한 말이다. 위험요소를 완벽히 제거하기위해 과연 어떤 방법을 쓰게 될까? 그 방식이 바로 이 회사의 구성원들 각각의 ‘노하우’다.

 

소설 속에는 차장과 이 회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이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며 등장한다. ‘차장’은 소설 속 첫 장면에 등장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소설을 이끌어 간다. 그는 하얀 가면을 쓰고 ‘미지의 공포’를 이용해 사람을 무너뜨리는 사람으로 희대의 범죄자 ‘노남용’을 다시 교도소로 돌려놓으려 치밀하게 덫을 준비한다. ‘노남용’은 엽기적인 강간과 살인에 이르는 범죄를 저지른 악질 중의 악질이지만 권력과 돈의 힘으로 제대로 된 형벌을 받지 않았고 심지어 모범수로 시집을 펴내는가 하면 이런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리고 지독히도 인생이 풀리지 않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24시간 복국 집의 ‘야간삼촌’으로 말도 안 되는 갑질의 희생자로 살아가다 우연히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며 내면의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을 살인하며 살게 된다. 여자를 강간하거나, 동물을 학대하는 등등의 인간들을.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예의 그 특별한 회사로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되는데 그 조건은 ‘노남용’을 처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명의 남자. 그는 ‘선생님’이라 불리는데 죽고 싶지만 죽음의 고통이 두려운 사람들의 자살 혹은 안락사를 도와준다. 어린 조수와 함께 그는 은밀한 사이트에 올라오는 사연을 보고 어떤 의식을 치르듯 대상자를 선택하여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으로 인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찾아온 ‘검사’에게 은밀한 제안을 받게 된다.

 

이 세 명의 등장인물은 가각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소설은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들려주며 전개 된다. 노남용은 예정대로 출소하였고 자유를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그에게 제대로 된 형벌을 가하기 위해 주인공 ‘차장’은 그를 교도소로 돌려보내야 하며 ‘야간삼촌’은 특별한 회사에 입사하려면 그를 죽여야만 한다.

 

이들의 상반되는 목적 속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 있고 이들 셋은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결말의 ‘반전’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노남용과 야간삼촌이 벌이는 목숨을 건 싸움의 몰입감과 긴장감은 그 어떤 영화나 범죄 스릴러 소설과는 비교가 불가할 만큼 압권이었다. 문장은 막힘이 없고 반전은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으며 각각의 캐릭터가 가지는 설득력 또한 빈틈이 없었다. 작가가 묘사한 비참하고 끔찍한 현실에 비하면 중간 중간에 나오는 끔찍한 고문 장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올해 최고의 스릴러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작품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잔인한 장면이 자주 나오는 만큼 읽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길 바라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 통쾌한 결말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초반부 주인공에 대한 불신, 과연 이런 일을 하는 회사가 가당키나 한가의 의문은 어느 덧 응원으로 바뀌어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정말 추천하고 싶다. 잔인함만 견딜 수 있다면 단연코 올해 최고의 스릴러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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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방문객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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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방문객》

 


 


어쩌다 집에 있을 때 그리고 혼자일 때는 현관 벨 소리에 더욱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절이나 교회에서 포교 활동으로 얘기나 나누자 거나 물이나 한잔 달라고 하면 집으로 들이는 것이 큰일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누군가 그렇게 집으로 들어오려고 한다면 무척 겁이 날 것 같다. 불과 몇 년 사이 그만큼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겠는가.

 

요즘 읽은 일본 소설에선 거절하는 것을 참 어려워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얼마 전에 읽었던 《절대정의》에선 나를 너무나 힘들게 하는 친구인데도 다른 친구들의 시선 때문에 그만 보자는 말을 못하고 결국 끔찍한 결말을 보고야 말았고 《한낮의 방문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방문판매원을 거절하지 못하는데 경찰조차도 이를 제재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 속에선 방문 판매원이라 하지만 몇 명이 짝을 이루어 무리지어 다니며 허접한 물건을 얼토당토않은 가격으로 강매를 하거나 여의치 않을 땐 살인이나 폭행 후 금품을 훔치는 일당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조금 무거운 정치적 주제를 다루는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저널리스트 인데 여자 둘만 사는 옆집에 이런 일이 있어 우연히 이런 범죄와 일당들을 접하게 되어 이와 관련된 기사를 쓰게 된다.

 

한편 그 전에 자신이 한번 사회적 문제로 다루었던 ‘모녀 아사 사건’도 방문판매 범죄와 관련된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하게 되고 앞서 말했던 옆 집 사건에서 알게 된 형사와 함께 비밀리에 조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미 이런 방문판매 범죄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하고 있었고, 심지어 자신이 뒤 쫓는 일당은 과거 끔찍한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음이 드러나며 소설은 독자들에게 여러 의문점들을 던진다. 과연 이 두 사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주인공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당들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까?

 

방문판매원이라는 낯설고 조금은 부담 되는 존재, 각박해진 사회와 점점 소외 되어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결국 ‘고독사’로 나타나는 서글픈 현실, 방사능을 비롯한 환경오염에 대한 두려움을 교묘히 이용하는 상술, 개인들의 갈등에 개입을 꺼려하는 경찰의 무능하고 이기적인 모습과 저급한 저널리즘 등 소설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다 추리와 스릴러, 미스터리를 적절히 배합하고 있다.

 

예전의 도시괴담이라면 인신매매 정도에 한했는데 소설 속 범죄자 정도라면 방문판매원도 새로운 도시괴담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영업 하시는 분들께는 조금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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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의 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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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의 검》

 


 

소설을 읽다보니 착잡한 마음 금할 수가 없었다. 현재 재판거래 의혹의 중심에 서있는 모 대법관의 과거 전력이 떠올랐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간첩 누명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거 같아서 말이다. 과거 군부 독재 시절 고문과 협박으로 없던 죄를 만들어 낸 것이 어디 이뿐이랴. 심지어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수를 했고 증거까지 명확했는데도 진실을 덮어버린 경찰도 있었으니.

 

소설《테미스의 검》이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인공인 ‘와타세’는 파출소에서 공을 세워 형사가 된 신참인데 경찰서 안에서 검거 율 1~2위인 범죄수사의 베타랑 형사인 선배 ‘나루미’의 파트너로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쇼와 59년 1984년으로 아직은 증거와 과학수사보다는 형사의 감과 발품으로 사건을 해결하던 시대다.

 

소설은 고문에 가까운 강압수사로 ‘원죄(寃罪: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만든 경찰과 결국 사형수가 되어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감옥에서 자살해 버린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결국 진범은 잡혔지만 사건을 은폐하려는 조직과 이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는 주인공의 고군분투가 그려지는 전반부와 20여년 뒤 출소한 진범의 살해사건을 파헤치는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소설은 원죄를 만들어 낼 여지가 있는 사형제도와 힘과 정의를 재단하는, 경찰의 수사에서 시작되어 하급심과 항소심으로 이어지는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 인간이 저지른 죄를 인간이 판단한다는 아이러니, 가석방의 문제점 등 법과 정의, 힘의 문제를 다양한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한 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눈물어린 노력이 이 많은 이야기들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이처럼 정의와 힘을 다루는 ‘사법 시스템’이 소설을 이루는 한 축이라면 이를 운용하는 ‘사람’이 또 다른 한 축이다. 주인공인 ‘와타세’는 자신의 실수로 한 사람을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결국 ‘감에만 의존하는 수사나 자기 보신을 위한 수사, 억울한 자를 잡아들이는 수사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미스터 고리타분 씨’《히포크라테스의 우울_p274》로 불리는 반장으로 성장한다.

 

그렇다. 내가 느끼기에 이 소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히포크라테스의 우울》에 등장하는 고리타분한 ‘와타세 반장’의 ‘프리퀄‘이다. 물론 이 두 소설에서의 주인공은 ‘미쓰자키’ 법의학 교수와 형사 ‘고테가와’ 지만 이 둘을 뒤에서 서포트 하는 와타세 반장의 존재감은 씬스틸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 작가의 작품세계에 빠져드는 즐거움이다.

 

소설의 중심은 결국 후반부에 있다. 전반부 이야기에서 비롯된 범죄의 싹은 후반부에서 꽃을 피우고 ‘미스터 고리타분’씨의 활약은 자신의 안위와 보전만을 생각하는 경찰과 검찰 조직과 완벽하게 대비되며 독자에게 희열을 안겨준다. 무거운 주제를 너무 무겁지 않게 다루는 것도 작가의 장기로 힘과 정의의 신인 ‘테미스’를 통해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너무나 강렬했고 이를 표현하는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로웠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너무나 기대가 되고 이제 작가의 작품이라면 의심하지 않을 것 같다. 추리와 미스터리, 스릴러, 등장인물까지 너무나 조화로운 작품이다. 마니아뿐만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를 찾는,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읽어도 너무나 좋을 작품이다.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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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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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는 법》

 

 


막연히 죽지 않거나 아주 오래 산다거나 늙지 않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상상 혹은 바람은 막연한 동경인지 아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지 모르겠지만 나만 그런 상상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삶이 그리 좋을 것 같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랑하는 이가 죽거나 늙어 갈 때 나만 홀로 남는다면 그 상실감과 고독, 외로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소재는 다르지만 영생을 바탕에 둔 영화나 소설 작품들을 보면 이런 삶을 사는 주인공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지 모르겠다.

 

소설《시간을 멈추는 법》에는 상상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영생을 누리는 존재가 등장한다. 일반인 보다 노화가 15배 정도 느린. 그러니까 이들은 아주 오래 살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죽지 않는 것은 아니고, 질병에는 강하지만 총이나 칼 같은 외부 공격에는 일반이과 다를 바 없이 취약하며 그저 아주 오랜 시간 서서히 늙어가는 존재들이다.

 

주인공은 ‘마녀사냥’이 공공연히 일어나던 시대에 태어났고 필연적으로 그의 어머니는 그런 자신 때문에 마녀로 몰려 살해당한다. 가까스로 도망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딸을 낳았지만 결국 같은 이유로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딸도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되어 몇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딸을 찾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는 걸 피하기 위해 떠도는 인생을 살아간다.

 

소설은 크게 세 번의 시간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데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의 삶을 사는 현재, 처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딸을 낳았던 청년기, 그리고 마녀사냥을 피하고 딸을 찾아 떠돌아다니다 ‘소사이어티’를 만나게 된 시기. ‘소사이어티’는 자신과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8년마다 정체를 바꾸기만 하면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고 그들이 요구하는 임무를 완수하기만 하면 딸을 찾도록 도와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한다. 그는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현재 학교에서 만난 한 여인이 그들의 제안을 자꾸만 어기게 만든다. 몇 백 년 만에 찾아온 ‘사랑’이었다.

 

‘소사이어티’는 그들의 존재를 숨기기에 모든 걸 건 조직으로 보인다. 그 임무라는 것도 지구 각 처 어디인가에 있을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조직에 흡수하기 위한 것이다. 왜 죽지 않아야만 할까. 그들도 결국 언젠가 한 번은 죽는데. 소설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냥 그런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해도 생의 목적이 왜 죽지 않는 것, 들키지 않는 것이어야 하는지.

 

소설은 몇 백 년 만에 다시 찾아 온 사랑과 소사이어티의 제안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과거 그가 살아 온 위험천만한 삶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가 살아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주인공 과 이로써 드러나게 된 소사이어티의 비밀! 결국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생’에 대해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 오래 살면 피로할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을 포함한. 그리고 소설에서 표현하듯 ‘하루살이’ 같은 인류의 삶이라도 어떻게 살아야 의미가 있을지. 그냥 ‘사랑’ 이 답이라는 그런 단편적인 것만은 아닌 여러 가지 것들을. 한번 쯤 이런 고민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우리의 인생. 결국 중요한 건 바로 지금, 현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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