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스 컷 - 살인을 생중계합니다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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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스컷》

 


 

스마트 폰이 보급된 지 실제로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물건이 없는 오늘날을 상상하는 것이 어려운 것만큼 생경하다. 스마트 폰 보급이 불러온 가장 큰 변화라면 SNS의 발달일 것이다. 과거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형성되던 커뮤니티도 이제 SNS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어 예전 같은 모임형식의 소통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예전엔 지하철을 타거나 커피숍에 가면 책을 들고 있거나 옆 사람과 얘기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는데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 폰을 보고 있다. 심지어 옆에 있는 사람과도 SNS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두고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이미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이다. 이젠 가치판단보다는 ‘어떻게’에 더 중심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스마트 폰, SNS, 개인방송 등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을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을 대중의 중심에 서게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이 도구는 그래서 누구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었을까?

 

소설《디렉터스컷》에는 이런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방송국의 정식 직원이 아닌 협력업체(라 쓰고 하청업체라 읽는다) TV 방송 제작사 소속 직원, 좀 더 자극적인 장면을 잡아내기 위해 조작도 서슴지 않는 ‘돌격 디렉터’ ‘하세미 준야’와 얽힌 내일이 없는 듯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하세미에게 수고비를 받고 다양한 경범죄를 저지르는 조작 영상을 촬영하던 고타로를 중심으로 한 친구들이 한 음식점에서 주인을 괴롭히고 있을 때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 ‘린네’는 홀어머니와 살아가는 미용사로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내성적이고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는 비밀 트위터 계정에 욕을 하는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는데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된 후 그는 가슴 속에 무엇이 끊어지는 듯 각성을 하게 되고 사람을 하나 둘 죽이며 세상에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린네에게 공격당한 고타로가 돌격 디렉터 하세미에게 연락하며 소설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경찰에 알리는 대신 하세미는 특종을 잡기 위해 자꾸만 돌발 행동을 한다. 그러다 결국 직장에서 정직 처분을 받게 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연쇄살인마 ‘린네’를 자극하여 그와 접촉을 시도하고 방송국이나 경찰보다 자신이 먼저 그를 취재하려고 마지막 덫을 놓는데!

 

자극적인 소재와 너무나 현실적인 등장인물들, 사건의 개연성 등은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게 하였고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소설이라 더욱 섬뜩했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푹 빠져 읽던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 만난 반전이란! 개인적으론 반전을 만들기 보다는 그 이야기 그대로 전개시켜 결말을 맺는 것이 좀 더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방심한 순간에 한방 먹은 반전이 꽤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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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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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웃사이더 소녀가 스파이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담은 손에 땀을 쥐는 첩보 스릴러. 별 생각 없이 첫 장을 넘기고 순식간에 끝을 보고야 만 대단한 소설. 이토록 냉혹하고 이토록 끔찍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 잔인한 소설. 그 어떤 수식어도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순 없다.

 

외교관인 아빠와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아 온 주인공 ‘그웬돌린’은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네 친구도 학교 친구도 없이 외로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게다가 어렸을 때 끔찍한 사고로 엄마까지 잃고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주인공은 따돌림을 당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렇게 당하면서도 이렇다 할 대응도 심지어 선생님에게 변명조차 제대로 못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친구다. 소설 도입부에서는 변화 후 주인공의 모습과 대비시키려는 의도인지 주인공의 이런 모습 혹은 처지를 비교적 자세히 묘사한다.

 

그녀의 가족은 아빠 밖에 없고 세 들어 사는 건물의 주인인 할아버지 내외만이 유일한 친구이자 의지 처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을 간다던 아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외교관인줄로만 알았던 아빠가 CIA 비밀요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 그를 찾던 CIA가 그의 실종을 납치나 살해로 보지 않고 변절자로 여기며 더 이상 찾지도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아래층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아빠를 찾아 위험천만한 여행을 시작한다.

 

소설은 소녀를 극한으로 내몰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아빠가 남겨둔 단서, 무엇을 향해 있는지 모를 암호의 단초를 찾아 파리로 향한다. 그곳에서 소녀는 짧은 시간 동안 무술과 기초적인 스파이의 행동 요령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을 성폭행 하려던 남자를 불구로 만들며 소녀에서 냉혹한 폭력의 세계의 일원으로서의 돌이킬 수 없는 변모를 시작하게 된다.

 

아빠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남자를 찾고 그에게서 얻는 단서를 통해 베를린으로 프라하로 옮겨가는 위험천만한 여정에서 그녀는 점점 더 냉혹한 병기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 소녀였던 그녀는 과연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아빠를 찾기 위해 정부조차 어쩌지 못하는 거대 조직의 일원이 되고야 만다. 범죄와 죄악의 중심부로 걸어 들어간 주인공. 그녀는 이제 범죄 조직이 벌이던 끔찍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아빠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과연 아빠를 구하고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그녀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부모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 소녀를 냉혹한 인간 병기로 변하게 만든 잔인한 현실. 이런 현실이 과연 가능할까 생각하기도 전에 소설에 빠져들고 그녀의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한 여정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 거대한 범죄 조직,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 보다도 더 우습게 여기는 그런 조직의 심장에 침투하기 위해 그녀가 벌였고, 선택하고, 도박을 벌인 일은 너무나 아슬아슬해서 손에서 책을 놓기가 어려웠다.

 

이런 거대한 생각, 이런 대담한 이야기를 생각해 낸 작가가 완벽하게 그려낸 주인공의 캐릭터는 너무나 생생해서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묘사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생생해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고 그 긴박감은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정말 대단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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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Zero - 나의 모든 것이 감시 당하고 있다
마크 엘스베르크 지음, 백종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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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태어날 때부터 이미 스마트 기기들에 둘러 싸여 자라나는 아이들의 문화와 그들이 누리는 스마트한 세상을 아날로그 시대 감성의 어른들이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인 ‘신시아’는 이런 질문에 정통으로 맞닥뜨리는 사고를 겪으며 ‘부모들은 자녀들이 하는 행동을 제대로 알고 있나?’ 란 비난을 듣는, 자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의 상징이 된다. ‘그 사고’가 있기 전엔 그저 지독한 사춘기를 겪는 딸을 키우고 미디어 그룹 ‘데일리’에 기자로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 맘인 그녀였다.

 

소설은 <제로 ZERO>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이 몇 대의 드론을 이용하여 미국의 대통령을 공격하는 장면을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실시간 중계하는 ‘프레지던트 데이’ 작전으로 시작하는데 그들은 이를 통해 전 세계를 조종하는 새로운 빅 브라더 ‘데이터 괴물’을 파괴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한다.

 

주인공은 회사로부터 제로와 관련된 심층 기사를 쓰라는 지시와 함께 이를 도와줄 ‘스마트 안경’을 지급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딸이 이것을 빌려가면서 시작된다. 다양한 명령, 검색과 안면인식 기능까지 겸비한 이 안경을 딸의 친구인 애덤이 썼다가 지명 수배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친구는 위험인물을 추격하는 것을 멈추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를 좇다가 범죄자가 발포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 것.

 

이 사고를 계기로 신시아는 딸과 그 친구들이 ‘프로미’라는 회사가 개발한 조언 프로그램 ‘액트 앱’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액트 앱’의 조언에 따라 생활, 운동, 공부까지 수행하며 심지어 자신의 모든 정보를 판매하고 있다는 것 까지 알게 된다. 그리고 소설은 ‘프로미’를 개발한 회사의 은밀한 비밀과 조작, 그들이 벌이려는 검의 거래를 언급한다. 그리고 신시아의 회사는 신시아에게 <제로 ZERO>를 추적하는 기사를 시리즈로 제작하라는 제안을 하게 된다.

 

<제로 ZERO>는 과연 어떤 조직일까? 전 세계적으로 자신의 대통령을 조롱한 이 조직을 추적하는 FBI, 모종의 거래 제안으로 그들을 추적하는 기사를 제작하게 된 미디어그룹 데일리, 액트 앱을 통해 개인정보를 합법적으로 모으고 이를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고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 내고 나아가 이를 정치인과의 협상에 이용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비밀에 쌓인 프로미. 소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과 단체들을 소설 초반부에 보여주고 이들의 쫒고 쫓기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독특하게도《제로 ZERO》는 ‘스릴러’의 특징만을 보여 주는 소설이 아니다. ‘독일 최고의 지식 도서’란 타이틀에서 보듯 데이터, 과학, IT에 관련한 지식들을 소설 속 제로라는 단체가 인터넷에 제작하여 올린 영상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액트 앱’이라는 도구는 ‘빅 데이터 괴물’이 어떻게 ‘우리 스스로’ 자신의 데이터를 팔게 하는지, 그들은 이를 이용해서 어떠한 일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재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재미와 지식과 정보의 습득 사이의 균형을 잘 잡고 있으며 이미 다가와 있을지 모를 현실 속에 우리가 어떠한 고민을 해야 하는지를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지 인물들 간의 대화체가 서로의 관계에 잘 맞지 않고 일관되지 않는 부분이 가독성을 조금 떨어뜨린 다는 것 외에 다양한 장점들이 살아있는 소설이다. 발전하는 기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지, 최첨단을 달리는 세상에서 인간의 자유와 의지는 과연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 건지. 소설《제로 ZERO》를 읽으며 한번 고민해 볼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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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새의 비밀 - 천재변리사의 죽음
이태훈 지음 / 몽실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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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새의 비밀》

 


 

《산호새의 비밀》은 군수 분야의 특허와 이를 다루는 변리사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스릴러 이다. 이야기는 천재 변리사로 불리던 송호성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변리사 송호성의 소나무 특허, 강민호 변리사와 특허법인 강, 그리고 소나무 특허의 수습 변리사 선우혜민을 중심으로 송호성을 살해한 범인을 찾는 것이 주요 줄기다.

 

사건과 범인이 있으면 이를 수사하는 경찰이 있다. 경찰은 김태근 반장을 필두로 그의 오른팔 격인 박형택, 반장을 견제하며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최인호와 최인성 콤비가 등장하는데 남다른 촉을 가진 김태근 반장과 은근히 경쟁하며 승기를 잡으려 하는 최인호 콤비의 긴장감도 소설을 이루는 하나의 축이다.

 

그리고 하나, 용의자는 있으나 뭔가 확정적인 증거나 증인을 확보하지 못한 채 수사가 제자리걸음일 때 ‘국정원’이 개입하여 사건을 자신들에게 이감하라 종용한다. 경찰은 1주일 만에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사건을 그들에게 넘겨야 하는데 1주일 이라는 한정된 시간도 사건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국가 기관들의 이해 충돌에 대한 흥미와 특히 ‘국정원’이라는 기관이 주는 비밀스러움은 소설에 더욱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특허 분야의 변호사의 역할을 한다는 변리사, 천재 변리사라 불리던 송호성이 후미진 골목에서 칼에 찔려 사망하는데 사망추정시간에 그의 죽마고우 강민호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당시 기억을 잃었다.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그들이 방위 산업에 관련된 중요한 특허 분쟁에 있는 각 기업을 대리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는데 송 변리사가 죽기 전 강 변리사와 다툼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하나하나 중요한 사실들이 밝혀지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갑자기 치고 들어온 국정원, 둘이 연관된 특허 분쟁은 거대한 세력을 대리하고 있다는 사실, 국내 정치와 방산비리의 연결, 국정원이 비밀리에 진행하던 프로젝트와 송 변리사와의 관계 등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 지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변리사라는 소재의 독특함과 시의성, 등장인물의 매력도도 좋았다. 다만 곁가지 몇 가지 이야기는 생략하고 큰 줄기에 집중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소설을 접하기 전에 ‘변리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특허 분쟁이 이토록 심하지도 알지 못했고 특히 군수 분야의 특허는 전 세계 시장을 들썩일 정도로 규모가 크고 그렇기에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산호새’의 비밀은 무엇일까? 소설을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간혹 스릴러는 너무 잔인하고 무섭다고 하시는 분들이 한국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소설도 좋아하시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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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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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모든 지는 것, 바래는 것은 슬프다. 붉은 빛이 돌던 내 얼굴이 주름지고 칙칙해지는 것도 늙은 고양이의 털이 빠지고 빤짝거리던 눈빛이 흐려지는 것도, 오래된 가구들이 갈색으로 변해가는 것, 그리고 하나하나 고장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슬프다.

 

마흔 줄에 접어들면서 내가 가진 재능과 일에서 자꾸만 뒤쳐지는 것과 퇴물이 되어가는 것, 트렌드와는 정 반대의 길을 가는 나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일반적으로 마흔이면 가장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때인데 나와 동료들은 세월을 앞당기고 있다.

 

구병모의 소설《파과》의 주인공 ‘조각’은 60이 넘은 여성 킬러이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킬러, 여성, 60대. 조각은 그 연령대의 여성에게 가장 보편적인 헤어스타일과 옷을 입고 어디에 서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배경에 녹아들만한 모습으로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간다. 소설의 첫 장면은 그래서 너무나 강렬하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할머니의 지하철 임무수행 장면은.

 

소설 속 킬러의 일은 또 얼마나 일상적인가. 업자들이 행하는 일은 ‘방역’이라 표현된다. 출처가 보호된 일이 비밀이 보장되어 업자들에게 전해지면 업자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의뢰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누군가의 필요로 그에 합당한 대가가 주어지면 업자들은 ‘방역’을 할 뿐이다. 그러니 조각처럼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는 업자가 얼마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녀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사랑하는 이가 있었지만 가족은 그녀를, 그 시대엔 늘 그러했듯이 입 하나 줄이기 위해 친척집에 식모로 보냈고 그런 그녀가 어떻게 그 집을 나왔고 또 어떻게 하다 ‘류’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고 그의 파트너가 되어 이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의심을 받는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으리라.

 

이제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녀, 늘 무심하고 냉혹하게 신변을 정리하며 살아오던 그녀에게 ‘투우’라는 어린 업자의 도발은 조각을 긴장하게 하고, 우연히 위기의 순간에 만난 의사 강 선생도 그녀의 일상에 조그만 파문을 던진다. 그리고 소설은 투우의 과거를 보여주며 투우의 행동에 위기감을 조성한다.

 

조각의 흔들리는 눈을 잡아낸 투우, 조각이 절대 외면할 수 없는 미끼로 마지막 대결을 준비한다. 소설의 클라이맥스인 이 대결 장면은 소설의 첫 장면이상으로 강렬하다. 60대 중반의 늙은 여인의 처절한 액션, 젊은 킬러와 벌이는 피 튀기는 대결 장면은 뭐랄까, 거룩하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녀는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사회의 악이다. 돈이면 누구든 죽여주는 끔찍한 사람이다. 그런 조직도 그런 일을 의뢰하는 사람도 모두 그렇다. 그러나 그녀를 응원했다. ‘다녀, 온다.’ 라는 그녀의 말을 응원했다. 한 때는 먹음직한 과일이었지만 어느 순간 허물어져 과일이었던 사실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그처럼 사그라질 그녀의 삶이 나의 삶과 오버랩 되었기 때문일까.

 

사라지는 것은 슬프다. ‘언젠가는 사라질 삶이라서 그래서 더욱 우리의 삶은 아름답다.’라고 하면 너무 구태의연한 걸까. 구병모의 소설을 연달아 두 편 읽었다. 《아가미》와 《파과》. 작가 특유의 문체인 듯 길게, 길게 늘어지는 문장들은 언제나 따뜻하다. 작가의 상상력도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눈도, 아픔과 슬픔, 절망과 희망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작가의 글이 너무 좋다.

 

이름 때문에 그를 남성이라 오해한 것이 조금 미안하다. 76년생, 나보다 2살 많은 언니다. 언니의 삶도 응원하고 싶다. 이런 좋은 소설을 계속 써 주면 좋겠다. ‘조각’처럼 기억하고 바래지고 흩어질 우리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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