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에 출간 예정인 저의 새로운 책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의 머리말을 올립니다.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올 이 책은, 오디오북과 활자책 형태로 같이 출간할 계획입니다.
여기 올리는 머리말은 활자책을 위한 머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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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머리말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관한 한 권의 책을 여기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이 책은 지난 10여 년 간 대학 바깥의 강의실에서 여러 시민 독자들을 상대로 한 [윤리학] 강의의 한 가지 결과물입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스피노자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윤리학]을 직접 읽어보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독자들, 또 [윤리학]을 직접 읽어보려고 시도했지만 난해하고 복잡한 논의에 좌절감과 실망감을 경험한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대한 상세하고 엄밀한 연구서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쉽게 풀어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윤리학]이라는 책은 비할 데 없이 엄밀하고 체계적인 논증으로 구성되어 있고, 철학의 거의 모든 분야의 쟁점들을 한 권에 압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과 같이 [윤리학]에 관한 평이한 개론서를 지향하는 책이라 해도, 스피노자의 논의를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알맹이 없는 수다에 그치게 될 것입니다.
쉬우면서도 충실한 개론서, 아마도 모든 개론서가 지향하는 것일 이 목표는 이 책이 또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의 전부입니다. 이 책이 그것을 얼마나 성취했는지는 독자 여러분들의 판단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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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을 충실히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첫째, [윤리학]의 주요 용어들과 개념들을 명확히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윤리학]을 읽을 때 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용어들 및 개념들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스피노자의 논의가 워낙 경제적이고 압축적인 데다가, [윤리학]이 우리에게는 상당히 낯선 17세기 서양철학의 지적 배경 속에서 쓰인 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책과 같은 [윤리학] 개론서는 우선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어휘들이 어떤 지적 맥락에 기반을 둔 것인지 해명하고 그것들이 [윤리학]의 전체 논의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5부로 이루어진 [윤리학]의 전체 논의 구조와 흐름을 명료하게 제시하면서 동시에 각 부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들의 내용과 쟁점을 가능한 한 충실히 소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윤리학]을 어떤 순서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확정된 답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론서일수록 [윤리학]에서 스피노자가 스스로 채택한 논리적 구조와 주제들을 더 충실히 해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윤리학]을 자유롭게 독서하고 활용하는 일은 그 바탕 위에서 더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가급적 주요 대목의 본문을 많이 인용하고 상세하게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철학의 다른 고전들과 마찬가지로 [윤리학]은 한 대목 한 대목 꼼꼼히 독서할 때 그 진가를 더 잘 음미할 수 있습니다. [윤리학]이 가치 있고 중요한 책이라면, 그것은 스피노자가 탁월한 건축가이자 세심한 목수이면서 빈틈없는 미장이이기 때문입니다. [윤리학]은 심혈을 기울인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위에 쌓아올린 위대한 지적 건축물입니다.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전체의 설계도와 구조에 유념하면서도 디테일을 하나씩 찬찬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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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윤리학]을 반복해서 강의하는 기간 동안 저는, 오늘날 대학에서 [윤리학](또는 다른 철학의 고전들) 같은 책을 장기간에 걸쳐 강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학 바깥의 인문학 강의실에서는 강사의 의지와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이 책은 지루하고 딱딱한 그 강의를 경청해주었던 수강생 여러분들의 인내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분들이 이 책을 보람으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1.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