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에서 내는 [철학논집] 53집에 게재될 논문을 한편 올립니다. 


이 논문 역시 완전히 교정이 끝난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인용이나 토론을 원하는 분들은 [철학논집]에 실린


판본을 대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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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초월론: 데리다와 이성의 탈구축

 

 

[주제 분류] 현대프랑스철학, 정치철학

[주제어] 자크 데리다, 유사초월론, 포스트 담론, 대체보충, 자기면역

[요약문]

이 글은 자크 데리다의 사상을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데리다는 초기에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늘 허무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 같은 비판에 시달려왔으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자 데리다라는 문구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데리다는 자신이 포스트모더니스트라는 점을 강력하게 부인해왔다는 점에서 이는 부당한 비판이며, 더욱이 데리다 철학의 내적 논리를 고려할 때에도 이러한 비판들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데리다 철학을 이해할 경우 데리다 사상을 좀 더 일관되게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사초월론이라는 개념은 데리다가 칸트에서 시작된 초월론 철학의 흐름에 속해 있으며, 그 문제의식을 더 급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 유사초월론은 초월론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 사이에 불변적인 위계를 설정하는 대신, 양자 사이에 상호조건의 관계를 설정하기 때문에, 초월론적인 것은 급진적으로 역사화된다. 이는 데리다가 이성과 정의의 문제를 아포리아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이유를 더 잘 해명할 수 있게 해준다.

 

 

 

I. 데리다는 포스트모더니스트?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외국에서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늘 몇 가지 수식어와 결부되는 인물이다.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상대주의, 허무주의 ... 사실 유명한 철학자들은 대개 이런저런 수식어들을 통해 알려지기 마련이다. 가령 플라톤은 이데아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철학, 스피노자는 범신론,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헤겔은 변증법,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 하이데거는 현존재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데리다가 몇 가지 수식어를 통해 사람들 입에 거론된다는 사실에 특이한 점은 없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데리다를 수식하는 이 표현들은 대개 부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데리다를 수식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 문구들 중에서 데리다 자신이 직접 사용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수식어들이 부정적 성격을 띤다는 것을 점을 잘 드러내주는 증거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떤 철학자를 규정하기 위해 그 철학자가 사용하지 않는 문구, 더욱이 그 철학자를 비판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문구를 동원한다는 것은 철학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또 다른 예를 든다면, 냉혹한 군주론자 마키아벨리나 범신론자스피노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데리다가 자신의 철학을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또는 해체주의로 규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항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또 󰡔마르크스의 유령들󰡕 및 나의 작업 일반을 포스트모더니즘 내지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의 단순한 한 가지 종()이나 경우 또는 사례로 간주하려는 모종의 성급한 시도 때문에 충격을 받는다. 이 통념들[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옮긴이]은 바로 가장 미흡한 정보를 지닌 공중(대개의 경우 거대 언론), “해체를 필두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쓸어 담는 잡동사니 부대자루들이다. 나는 내가 포스트구조주의자도 포스트모더니스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 번에 걸쳐, 내가 하려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일러두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왜 내가 이 단어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지 설명했다. 나는 결코, 더군다나 내 나름대로 활용하기 위해 모든 메타서사의 종말의 예고에 관해 말한 적이 없다. ... 또한 사람들은 앞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하지만 역시 아주 부당하게도, 위대한 메타서사 담론, “큰 이야기와 비교해 볼 때 해체주의자들또 다른 잡동사니 통념은 보잘 것 없이 약하다고 비난하곤 했다.[자크 데리다 외 지음, 󰡔마르크스주의와 해체: 불가능한 만남?󰡕, 진태원한형식 옮김, , 2009, 163~64. 강조는 데리다.]

 

이러한 이상한 평가 방식은 국내의 경우에 한층 더 심각한 형태로 표현되는데, 이는 1990년대 이후 포스트 담론을 비롯한 서양 이론의 수용 방식이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라고 부른 바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이 문제에 관해서는 진태원,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 󰡔황해문화󰡕 2014년 봄호;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란 무엇인가, 󰡔황해문화󰡕 2014년 겨울호를 참조.]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는 간단히 말하면 오늘날 한국 인문학에서 회자되는 많은 담론들이 미국을 통해 가공되고 변형되고 수입된 담론이라는 사실[진태원,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 194.]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은 일부 독자들이 오해하듯이, 원래는 해방적이고 비판적인 사상으로서의 프랑스 철학이 제국주의의 본산인 미국을 경유하면서 그 비판적 잠재력을 거세당한 채, 국내에는 후기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인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형되어 수입되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프랑스 철학 사상을 비롯한 유럽 사상을 창조적으로 수용하여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포스트페미니즘 등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이론적 담론들을 만들어낸 영미 학계의 생산적 변용 능력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실제로 원래 프랑스 학계에는 존재하지 않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식민주의 같은 담론은 역으로 최근 프랑스 학계에 역으로 수입되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라는 주장은 오히려 미국에서 변용되고 재창조된 담론들을 글로벌한 첨단 유행 담론으로서 그때그때 재빨리 수입해서 등재지 논문들이나 교양 대중 저술을 생산하기 위한 편리한 자원으로 이용하는 데 골몰하는, 지난 20여 년 동안의 유행의 흐름 속에 비친 한국 인문학의 지적정치적 자화상을 드러내보이[진태원,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란 무엇인가, 앞의 글, 229~30.]기 위한 목적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포스트 담론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우리가 이 담론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기보다는, 그것이 학문의 본고장인 미국 학계에서 첨단의 담론으로 유행한다는 사실만으로 앞 다퉈 수입하여 소비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 담론들과 관련하여 무언가 의미 있는 논쟁과 토론 대신에 일방적인 거부와 맹목적인 추종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는 이러한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데리다는 포스트 담론의 대표자로 널리 간주된다. 해체나 차연, 로고스중심주의 같은 단어들은 그의 철학을 지칭하는 용어들만이 아니라 포스트 담론 일반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980년대 말 이래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그의 사상에 관해 무언가 독창적이거나 깊이 있는 저작들이나 논의들이 존재해왔느냐고 질문해본다면, 그 답변은 다분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김진석 교수의 초기 저작이나 김상환 교수의 몇몇 글, 또는 문성원 교수의 저작을 제외한다면,[김진석, 󰡔탈형이상학과 탈변증법󰡕, 문학과지성사, 1993; 문성원, 󰡔해체와 윤리: 변화와 책임의 사회철학󰡕, 그린비, 2012; 김상환, 󰡔철학과 인문적 상상력󰡕, 문학과지성사, 2013을 각각 참조.] 사실 국내에서 데리다는 이름만 유행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데리다는 늘 포스트 담론의 대표자로 거론되곤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포스트 담론의 빈곤을 비판하기 위한 사례로 동원되곤 한다. 그의 사상의 실제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런 이론적 영향력을 미친 적이 없는 데도 포스트 담론의 대표자로 간주되는 이 현상만큼,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


내가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 현상에 대해 서두에서 길게 논의한 까닭은, 데리다와 관련하여 이성과 반이성이라는 주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주제에 관한 선입견들을 교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의 대표자로 간주된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데리다가 ()근대성, 따라서 반이성, 반합리성, 반주지주의의 대표자로 이해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데리다 스스로 자신의 철학을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구조주의, 또는 심지어 해체주의의 일종으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규정이 사실은 포스트 담론 및 데리다의 비판자들에 의해 주로 사용되어온 것이 사실이라면, 이성과 반이성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데리다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해석의 틀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유사초월론(quasi-transcendental)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데리다 철학과 이성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싶다.[데리다의 철학을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기존의 연구로는, Rodolphe Gasché, The Tain of the Mirror: Derrida and the Philosophy of Reflection, Cambridge, Mass., 1986; Matthias Fritsch, The Promise of Memory: History and Politics in Marx, Benjamin, and Derrida, New York, 2005; Maxime Doyon, Der transzendentale Anspruch der Dekonstruktion, Würzburg, 2010 등을 참조. 로돌프 가셰의 저서는 데리다 철학에서 유사초월론 개념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밝힌 업적이 있으며, 마티아스 프리취의 연구는 벤야민과 마르크스의 사상을 데리다가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종합 내지 재구성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또한 막심 두아용의 연구는 지금까지 나온 저작 중에서 데리다의 유사초월론 개념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 충실한 연구다. 국내의 논의로는 진태원, 시간과 정의: 벤야민, 하이데거, 데리다,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34, 2013, 174 이하 참조.]


 

II. 유사초월론이란 무엇인가?

 

근대철학에서 초월론적(transzendental) [‘transzendental’(또는 영어로는 ‘transcendental’)이라는 용어 번역의 경우 예전에는 주로 선험적이라는 번역어를 많이 사용해 왔으며, 최근 칸트의 주요 저작을 번역해온 백종현 교수는 초월적이라는 번역어를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전통적인 초월개념과의 구별을 위해서, 그리고 칸트의 철학적 독창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초월론적이라는 번역어가 더 적절한 것 같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계속 초월론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그리고 ‘a priori’선험적이라고 번역하겠다.] 철학은 칸트에게서 시작된다. 칸트에게 초월론은 인식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식의 선험적(a priori) 가능성”[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6, 132(A56/B80).]의 조건을 탐구하는 철학적 탐구 양식을 가리킨다. 이러한 초월론적 탐구 절차에 의거하여 칸트는, 주체 이전에, 그리고 주체 바깥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들의 질서와 그 근거를 탐구하는 전통적인 철학에 대하여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수행하게 된다. 곧 이제 사물들의 질서는 주관성 내부에, 정확히 말하면 초월론적 주관성 내부에 그 근거를 두게 된다.


현대철학자들 가운데 칸트의 초월론 철학을 자기 나름대로 재개한 사람이 바로 에드문트 후설이며, 후설 이후의 현대 철학, 곧 현상학에 영향을 받은 철학, 따라서 실제로는 거의 모든 유럽 철학이 한편으로는 칸트-후설 식의 초월론적 문제설정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문제설정을 변형하고 또 넘어서기 위해 고투했다. 가령 칸트나 후설과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질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을 초월론적 경험론(empirisme transcendantal)으로 지칭하는 것[초월론적 경험론으로서 들뢰즈 철학에 대해서는 안 소바냐르그, 󰡔들뢰즈. 초월론적 경험론󰡕, 성기현 옮김, 그린비, 2016 참조.]이나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에서 역사적 선험”(a priori historique) 개념에 준거하고 말년에는 현재의 존재론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작업을 재설정하면서 비판을 더 이상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는 형식적 구조들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사건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구성하도록 이끌어온,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우리가 하고 사고하고 말하는 것의 주체들로서 인지하도록 이끌어온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역사적 탐구”[M. Foucault, “Qu'est-ce que les lumières?”, in Dits et écrits, vol. II, “Quarto”, Paris, 2001, 1393.]로 정의하는 데서도 칸트의 영향과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살펴볼 수 있다.

20세기 후반 유럽철학자들 가운데 칸트-후설의 초월론적 문제설정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사람으로 흔히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를 꼽지만, 데리다 역시 그 나름의 방식으로 매우 철저하게 초월론적 탐구 방식을 수행했으며, 또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파리 고등사범학교 졸업논문[J. Derrida, Le problème de la genèse dans la philosophie de Husserl, Paris, 1990. 이 논문은 1955년에 제출되었으며, 1990년에 단행본 저작으로 출간되었다.]에서 󰡔기하학의 기원서론󰡕(1962), 그리고 󰡔목소리와 현상󰡕(1967) [J. Derrida, La voix et le phémonène, Paris, 1967; 󰡔목소리와 현상󰡕, 김상록 옮김, 인간사랑, 2006.]에 이르기까지 데리다는 후설 현상학에 관해 지속적으로 탐구했으며, 최고의 후설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목소리와 현상󰡕 이후 데리다는 더는 현상학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지 않고, 그 대신 그가 기록학”(grammatologie) [이것은 원래 문자학이라는 언어학의 한 분야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고대 상형문자나 설형문자, 표음문자 등을 비교연구하는 학문이 곧 문자학이다. 데리다는 이 학문을 가리키는 명칭인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ie)의 어근을 이루는 gramme라는 그리스어가 문자또는 기록을 뜻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문자 기록을 포함한 기록 일반에 관한 학문을 지칭하는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한다. 기록학은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De la grammatologie, Paris, 1967)만이 아니라 초기 데리다 철학의 한 가지 중핵을 이루는 개념이다. 번역에 관해 한 마디 해둔다면, 국내에는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의 세 번역본이 존재한다. 1996년 민음사에서 나온 김성도 번역본과 2004년 동문선 출판사에서 나온 김웅권 번역본, 그리고 2010년 민음사에서 나온 김성도의 수정 번역본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세 권의 번역서는 모두 심각한 오역을 포함하고 있어서 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이라고 부른 문제설정에 입각하여 (문자)기록(écriture)과 차이, 산종(散種, dissémination)의 개념들을 탐구하면서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을 시도한다.[이 시기의 대표작이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문자기록과 차이󰡕(1967), 󰡔산종󰡕(1972) 등이다.] 하지만 기록학의 문제설정만이 아니라 그 이후 데리다의 작업에서도 초기 현상학 연구에서 수행된 후설 현상학에 대한 엄밀한 탈구축의 논리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러한 탈구축의 논리를 집약하는 개념이 바로 유사초월론이다.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은 아주 간단하지만 수수께끼 같은 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칸트 이후의 초월론 철학이 가능성의 (선험적) 조건을 탐구한다면, 유사초월론은 가능성의 조건은 동시에 불가능성의 조건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데리다가 자신의 유사초월론 개념에 관해 명시적으로 논평하는 아주 드문 곳에서 부연하는 것을 조금 더 들어보자.

 

초월론적인 것의 문제는 '유사'(quasi-)라는 말에 의해 변형되어 왔으며, 따라서 만약 초월론성이 나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이는 단순히 그 고전적인 의미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비록 고전적 의미의 초월론성이 나에게 여전히 아주 흥미롭지만 말이다). ... 이 새로운 형태의 초월론적 질문하기는, 고전적인 초월론적 진지함의 유령을 단순히 흉내내는 데 그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유령 내에서 본질적인 유산을 구성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 나는 지난 30년 동안 규칙적으로, 그리고 아주 상이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인 것으로 정의해야 할 필연성으로 인도되었다. 이는 내가 무효화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분명 가능성의 기능을 불가능성의 기능으로 정의하는 것, 곧 가능성을 불가능성으로서 정의하는 것은 전통적인 초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정통적인 입장과 매우 어긋나는 태도이며, 내가 아포리아의 숙명성이라는 문제로 되돌아갈 때마다 항상 다시 출현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정의다. [J. Derrida, “Remarks on Deconstruction and Pragmatism”, in Chantal Mouffe ed., Deconstruction and Pragmatism, LondonNew York, 1996, 83-84.]


이 인용문에서 데리다 자신이 명시적으로 지적하듯이, 30여 년 넘게, 1962년 출간된 󰡔기하학의 기원서론󰡕에서부터 1993년 출간된 󰡔아포리아들󰡕[J. Derrida, Apories, Paris, 1993.]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데리다가 2004년 사망할 때까지도 계속해서 데리다 작업의 중심적인 축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 바로 유사초월론 개념이다.[반면 리처드 로티는 데리다 자신의 명시적인 언급에도 불구하고 데리다 철학이 유사초월론 철학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부정한다. 그는 데리다가 초기의 철학적 작업에서 후기에는 글쓰기’(writing)와 문학을 중심으로 한 사적 아이러니스트’(private ironist)로 이행했다는 자신의 분석 도식을 고수하면서, 데리다 자신의 자기 해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R. Rorty, “Is Derrida a Transcendental Philosopher?” In Essays on Heidegger and Others: Philosophical Papers, Cambridge, 1991; “Is Derrida a "Quasi"-Transcendental Philosopher?”, Contemporary Literature, vol. 36, no. 1, 1995 참조.] 그리고 유사라는 접두어가 붙은 유사초월론의 핵심은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데리다가 후기 철학에서 아포리아’(aporia)라는 또 다른 개념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데리다 저작에서 아포리아 개념이 뚜렷한 철학적 중요성을 지니게 된 것은 󰡔법의 힘󰡕(1990)에서부터다.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4 1부 참조.]

 

III. 유사초월론의 논리

 

하지만 유사초월론의 논리는 간단한 정식의 외양과 달리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 데리다가 전통적인 초월론 철학의 관점을 넘어서 유사’-초월론으로 나아갔는지 이해하려면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초기의 탈구축 작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의 선험적 가능성을 근거 짓기 위해 초월론적 탐구를 수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설은 초기의 기술적(descriptive) 현상학 작업 이후에는 초월론적 현상학 연구로 방향을 전환한다. 초월론적 현상학은 세계의 존재 및 의미 자체가 초월론적 주체에 의해 수행되는 의미부여 활동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후설은 (데카르트 및) 칸트의 초월론 철학의 한계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들을 제기하지만, 데카르트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초월론적 주체성의 계보에 자신의 현상학을 위치시킨다.[에드문트 후설, 󰡔데카르트적 성찰󰡕, 이종훈 옮김, 한길사, 2016 참조]


데리다는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에 관해 두 편의 저작을 남기는데, 첫 번째 저술이 󰡔기하학의 기원서론󰡕(1962)이며,[E. HusserlJ. Derrida, L’origine de la géométrie, PUF, 1962. 이 책은 후설의 유고로 출간되고 나중에 󰡔유럽 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에 부록으로 수록된 기하학의 기원(1939)이라는 논문을 데리다가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여기에 후설의 논문보다 4배나 더 분량이 많은 역자 서론을 붙여서 출판된 책이다.두 번째 저술이 󰡔목소리와 현상󰡕이다. 후자의 저술은 후설 현상학에서 기호 문제에 대한 입문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후설 현상학에서 표현(Ausdruck)과 표지(Anzeichen) 개념의 차이에 주목하여 자기 촉발(auto-affection) 내지 자신이 말하는 것을 듣기”(s’entendre parler)에 기반하고 있는 후설 현상학의 로고스중심주의 또는 음성중심주의를 탈구축한다. 반면 전자는 기하학과 같은 과학의 이념적 대상성(ideale Gegenständlichkeit)”[E. Husserl,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n Phänomenologie, hrsg., Walter Biemel, Husserliana bd. 6, Haag, 1976, 368; 에드문트 후설, 기하학의 기원,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이종훈 옮김, 한길사, 1997, 543.]의 구성 및 전승 가능성을 초월론적 현상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후설의 작업에 전제되어 있는 것이 경험적 사물로서의 문자기록(écriture)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에 대한 탈구축을 시도한다.


기하학의 기원에서 후설의 관심은 어떻게 (모든 학문의 이념성과 똑같이) 기하학적 이념성이 개인의 마음에서 생기는 그것 본래의 근원이것에서 기하학의 이념성은 그것을 처음 고안한 사람의 정신인 의식의 영역 속에서 이룩된 형성물이다으로부터 이념적 대상성으로 나아가는가[E. Husserl,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n Phänomenologie, 369;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543-44.] 하는 것이다. 후설은 이러한 기하학의 이념적 대상성은, 최초의 기하학자의 주관적 형성물을 넘어서 언어공동체로서 인간들의 공동체를 전제하며, 또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의 전승 가능성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주관적 관계와 전승 관계는 문자, 기록된 언어의 표현에 의거하고 있다. 이 기록 언어의 중요성은 개인의 구어적(口語的)인 말이 없이도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이며, 말하자면 잠재적으로 형성된 의사소통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통해 인간성(인류)을 공동체로 만드는 일은 새로운 단계로 고양된다[E. Husserl,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n Phänomenologie, 371;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548. 번역은 약간 수정.]는 점에 있다. 곧 문자로 표현된 언어를 통해 과학적 발견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 또한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승될 수 있으며, 각각의 후속 세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전승을 바탕으로 최초의 기하학자 내지 자신들의 선배 기하학자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새로운 발견을 수행하고 과거의 발견을 정정하거나 폐기하고 또한 발전시키고 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문자기록은 보편적 기억과 지식의 저장고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기하학의 이념적 대상성의 구성에서 초월론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후설은 언어의 두 측면을 구별한다. 하나는 후설이 언어적 신체(Sprachleib)[Ibid., p. 369; 같은 책, 544]라고 부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순수하게 물체적으로 고찰된(rein körperlich betrachtet) 문자 기호(Schriftzeichen, 데리다 자신의 프랑스어 번역어로는 signes graphiques)[Ibid., p. 371; 같은 책, 548]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전자의 것이 기하학의 이념적 대상들의 구성 및 전승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단순히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것으로서의 후자는 단지 수용적 태도로 파악된 수동성을 나타내며, 사람들로 하여금 이념적 대상성들을 능동적으로 복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연상에 의해 지배된 말하기와 읽기로 빠져들[Ibid., p. 372; 같은 책, 550]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자 언어가 지닌 이 두 가지 측면 중에서 후자를 환원함으로써 전자의 측면을 보존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기하학의 구성 및 전승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데리다의 탈구축적인 독서가 개시된다. 데리다의 말을 직접 인용해보자.

 

본질적이고 구성적인 신체성(incorporabilité)의 운동으로서 언어는 또한 모든 절대적으로 이념적인 대상, 곧 진리가 사실적이고 우연적으로 신체화(incorporation)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역으로 진리는 말과 문자에 대한 순수 권리 속에서 자신의 기원을 지니고 있지만, 일단 구성되고 나면 그 자신이 [말과 문자] 표현을 경험적 사실로서 조건 짓는다. ...... 우리는 앞서 진리는 현행적으로 또는 사실적으로 사고되지 않고서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보았으며, 바로 이것이 모든 경험적 주관성, 모든 사실적인 삶, 모든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진리를 근본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성(인류)을 공동체로 만드는 일은 새로운 단계로 고양된다.” 인류는 실로 초월론적 공동체로 나타난다. 진정한 문자기록 행위는 우리에 의해, 그리고 우리를 향해 수행되는 초월론적 환원이다. 하지만 [경험적] 세계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의미가 우선 [경험적] 세계 안에서 수용되고 감각적인 시공간성 안에 맡겨질 (pouvoir) 어야(doit) 하기 때문에, 의미는 자신의 순수한 지향적 이념성, 곧 그 진리 의미를 위험에 빠뜨려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적어도 그것의 몇몇 동기에 따르면, 경험론의 반대인 어떤 철학 내에서 경험론 및 비철학과 합치할 수밖에 없는 어떤 가능성, 곧 진리의 소멸의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E. HusserlJ. Derrida, L’origine de la géométrie, 90-91. 강조는 데리다의 것이며, 꺾쇠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추가한 것이다.]

 

이 대목은 데리다의 탈구축 작업의 고전적인 면모를 잘 드러내준다. 데리다는 우선 언어의 신체성물체성을 구별하는 후설에 맞서, 언어가 지닌 본질적이고 구성적인 신체성(incorporabilité)”, 곧 지금 여기에 최초의 기하학자가 현존해 있지 않아도 우리가 그의 이념적 대상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초월론적 매체로서의 언어는 또한 모든 절대적으로 이념적인 대상, 곧 진리가 사실적이고 우연적으로 신체화(incorporation)되는 장소라고 지적한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접하고 사용하는 이런저런 구체적인 언어 속에 물체적으로 신체화되지 않고서는 언어의 초월론적 기능 역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험적인 언어와 초월론적 언어, 또는 언어의 경험적 측면과 초월론적 측면을 구별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경험적 언어가 성립되고 사용되는 것 속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데리다가 “[경험적] 세계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의미가 우선 [경험적] 세계 안에서 수용되고 감각적인 시공간성 안에 맡겨질 (pouvoir) 어야한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그런데 후설 자신도 지적하듯이, 경험적인 언어는 우리가 기하학의 이념적 대상을 명증적으로 이해하고 또 그것을 보편적으로 전승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어의 그러한 능력을 방해하거나 잠식하며, 따라서 그것을 실패하게 만드는 가능성을 지닌 것이다. 후설은 언어가 지닌 초월론적 명증성의 능력으로 인해 이러한 경험적 우연성과 난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데리다가 지적하듯이 언어의 초월론적 기능 자체가 언어의 사실적이고 우연적인 신체화를 전제하는 것이라면, 후설이 경험적 언어로 국한했던 의미 전달의 실패 가능성은 사실은 초월론적 언어 그 자체에 본래적인 실패 가능성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데리다가 의미는 자신의 순수한 지향적 이념성, 곧 그 진리 의미를 위험에 빠뜨려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문장에서 데리다가 말한 것, 곧 일체의 경험론 및 비철학에 맞서 철학적 진리의 가능성을 초월론적으로 정초하려는 후설의 현상학 내에는 본래적으로 진리의 소멸의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언어의 초월론적 활동이 경험적인 언어 속에서 그것의 물체적 구현, 물질적 신체화 없이 성립하거나 전개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런데 경험적 언어는 본래적으로 진리 의미의 전달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거나 잠식할 수 있는 가능성, 따라서 진리 의미의 전달 불가능성을 함축하는 것이라면, 진리가 성립하거나 전달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은 진리의 성립 가능성 내에 본래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데리다가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인 것이라고 유사초월론을 정의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와 동일한 논리는 데리다의 다른 저작에서도 여러 차례 나타난다.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에서 데리다가 루소에게 가져와서 탈구축의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로 발전시킨 쉬플레망’(supplément) 개념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프랑스어 쉬플레망은 영어의 서플먼트(supplement)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보충이나 추가또는 부록을 의미한다. 요컨대 어떤 본체나 중심이 먼저 존재하고, 그것에 부족하거나 결여되어 있는 것을 채우기 위해 덧붙여지는 것이 바로 쉬플레망이나 서플먼트의 일반적인 의미다. 하지만 데리다는 쉬플레망의 일반적 의미에 담겨 있는 본체와 보충물, 중심과 부가물 또는 기원적인 것과 사후에 덧붙여진 것 사이의 위계 관계를 뒤집어, 본체와 중심, 기원적인 것이야말로 보충물이나 부가물 또는 사후적인 것에 존재론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데리다는 우리에게 정상적인것으로 나타나는 본체와 보충물, 중심과 부가물 사이의 관계가 사실은 폭력적인 억압과 전위(轉位)를 통해 사후에 정상적인 관계로 구성된 것이라는 점을 밝혀준다.


쉬플레망은 원래 루소가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자크 루소,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 주경복고병만 옮김, 책세상, 2002.]에서 문자 기록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루소는 자연 상태의 인간에게 언어란 몸짓에 불과했을 것이며, 인간은 자신의 정념을 표현하기 위해 비로소 목소리를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루소는 이 최초의 언어는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조음적(articulé)이라기보다는 음량과 강세, 억양이 중시되는 소리였을 것이고, 자음보다는 모음을 위주로 하는 소리였을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목소리가 단조로워지면서 자음이 증가하고, 강세와 음량이 줄어들면서 조음이 증가하게 되고, 감정표현보다는 명확한 의사전달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언어가 바뀌어가게 된다. 조음적인 언어가 등장하고 의사소통이 언어의 주요한 기능이 되면서 사용된 것이 바로 문자 기록인데, 루소는 이 문자 기록을 위험한 보충물”(dangereux supplément)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원래 문자 기록은 목소리에 기초한 고유한 의미의 언어를 보조하고 보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인데, 이 문자 기록은 점차 고유한 언어를 대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루소의 이 개념은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드러나는 루소의 아포리아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될 뿐 아니라, 플라톤에서 루소, 후설에서 레비-스트로스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온 서양의 현존의 형이상학 또는 음성 중심주의의 맹점을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개념이다. 데리다가 플라톤의 󰡔파이드로스󰡕[J. Derrida, “La pharmacie de Platon”, in La dissémination, Paris, 1972.]나 루소의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 또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구조 인류학󰡕에 대한 분석에서 밝혀주고 있듯이,[J. Derrida, De la grammatologie 참조.] 서양의 철학자나 이론가들은 문자 기록을 폄하하고 목소리나 말 또는 두 사람이 직접 대면하여 주고받는 대화를 진정한 언어로 간주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처럼 문자 기록을 폄하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문자 기록의 존재를 완전히 제거하거나 배제하지 못하며, 이를 일종의 필요악으로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데리다는 이러한 양면적 태도는 사실은 서양의 형이상학에 내재하는 아포리아의 징표라고 말한다. 곧 순수하고 충만한 현존이나 기원(목소리, , 대화, 로고스 등)을 인정할 경우 이를 보충해야 할 도구가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으며(왜냐하면 보충은 결함을 지닌 것에게만 필요하기 때문에), 반대로 보충의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에는 결국 현존과 기원의 불완전성, 결핍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소가 문자 기록의 위험성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한 쉬플레망이라는 단어는 데리다에게는 존재나 구조, 또는 언어나 기타 다른 모든 체계에서 작동하는 일반 논리를 보여주는 개념이 된다. 요컨대 우리가 현존, 기원, 중심 등으로 부르는 것은 사실은 무한한 차이와 대체의 작용으로부터 사후에 파생된 것이며, 이러한 차이와 대체의 작용은 결국 기록의 경제(이는 곧 차이(差移, différance)의 경제이기도 하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쉬플레망, 곧 대체보충 개념은 유사초월론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IV. 유사초월론은 진리와 정의를 부정하는가?

 

마지막으로 과연 데리다가 초기 저작에서 후기 저술들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유사초월론이 진리와 정의를 부정하거나 상대화는 것인지, 곧 데리다가 부정적인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인지 질문해볼 수 있다.

유사초월론의 가장 기본적인 정식이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이고, 초월론적인 근거는 자신이 근거 짓는 경험적인 것에 의존한다면, 또는 데리다가 대체보충개념을 통해 보여주듯이 토대로서의 기원(가령 로고스)은 최초의 것 내지 절대적 원리가 아니라 자신에게 후속하는 것(가령 문자기록)에 의존하며 더욱이 이러한 의존 관계를 은폐하는 것이라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리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보편적인 해방의 주체(가령 프롤레타리아로 대표되는)와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데리다가 진리나 해방 또는 정의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에서 데리다가 분석한 대체보충의 논리를 다시 살펴보면, 루소는 목소리에 기초를 둔 진정한 언어를 보충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문자 기록이 오히려 그것을 대체하게 된다는 점을 문자 기록에 고유한 위험성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보충하는 것은 보충하는 역할에 그쳐야 하며, 자신이 보충하는 것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다시 말하면 서양 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인 배중률에 근거를 둔 주장이다. 하지만 데리다는 오히려 보충과 대체는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기록의 논리, 기록의 합리성은 서양 형이상학에 고유한 로고스중심주의 및 음성중심주의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곧 그것의 맹점을 이룬다[루소는 쉬플레망 개념을 그 의미의 모든 잠재성에 따라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루소가 쉬플레망의 의미를 규정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배제하는 것 자체를 통해 자기 자신이 규정되도록 만드는 방식, 그가 여기에서는 부가물로, 저기에서는 대체물로, 때로는 악의 실정성 및 외재성으로, 때로는 다행스러운 보조수단으로 쉬플레망의 의미를 굴절시키는 방식, 이 모든 것은 수동성으로도 능동성으로도, 비의식성으로도 저자의 명철함으로도 번역되지 않는다. 독서는 이 모든 범주이것들은 또한 형이상학의 근본 범주들이라는 점을 지나치는 김에 상기해두기로 하자를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쉬플레망 개념과의 이러한 관계의 법칙을 생산해야 한다. 쉬플레망 개념은 루소의 텍스트 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맹점, 가시성을 열어놓고 그것을 한정하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J. Derrida, De la grammatologie, 234.])고 말한다. 기록에 대한 배제는 서양 형이상학, 서양의 로고스중심주의의 역사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단지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심지어 라이프니츠도 포함되는) 역사일 뿐만 아니라, 또한 [형이상학의] 외관상의 경계 바깥에 위치해 있는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가들에서부터 하이데거에 이르는 역사이기도 한 이 역사는 그것에 내포된 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항상 로고스를 진리 일반의 기원으로 지정해왔다. 진리의 역사, 진리의 진리의 역사는 항상 (우리가 앞으로 설명해야 하는 은유적 교란(diversion)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문자기록의 폄훼이자 충만한(parole) 바깥으로 그것을 억압해온 역사였다.[J. Derrida, De la grammatologie, 11~12.]

 

따라서 계속 데리다 자신의 말을 인용하자면,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를 비롯한 여러 저작에서 추구하는 작업, “여전히 잠정적으로 에크리튀르라고 불리는 것을 둘러싼 끈기 있는 성찰과 엄격한 탐구는, 문자기록에 대한 과학 아래에 머물러 있기는커녕, 또는 모종의 몽매주의적 반동에 의해 조급하게 그러한 과학을 쫒아내기는커녕 그러한 학문으로 하여금 자신의 실증성을 가능한 한 멀리까지 발전시키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현재, 지식의 울타리를 넘어서 예고되고 있는, 환원 불가능하게 도래할(à venir) 세계에 충실하게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어떤 사유의 방황일 것이다.”[J. Derrida, De la grammatologie, 14.]


데리다는 후기 저술에서는 특히 실천철학의 문제와 관련하여 유사초월론의 논리를 발전시켰다.[막심 두아용은 앞서 언급한(7) 참조) 저서에서 초기 저작에서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은 하이데거의 문제설정에 따라 현존의 형이상학을 탈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후기 저작에서는 그리스-기독교 전통의 뒤나미스 및 가능태(dynamis und des Möglichseins)”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M. Doyon, Der transzendentale Anspruch der Dekonstruktion, 200. 단절 및 산종을 통한 데리다 사상의 일관성 또는 일관성 속에서의 차이들과 산종들을 파악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 경우에도 유사초월론은 해방이나 정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법의 힘󰡕에서 고전적인 해방의 이상이야말로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 시의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자크 데리다, 󰡔법의 힘󰡕, 61.]고 말하면서 해체는 정의다[같은 책, 33]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체 또는 탈구축이 정의라는 데리다의 주장은 탈구축이 아무런 불의나 부당함, 폭력의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 순수한 정의 그 자체라는 자화자찬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탈구축, 해체가 정의의 해체 불가능성과 법의 해체 가능성[같은 책, 34] 사이에 있다는 것, 해체 불가능한 것, 계산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정의(곧 초월론 철학의 논리에 따르면 초월론적 근거를 이루는 것)가 법(경험적인 것, 실증적인 것)의 해체 또는 탈구축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법을 넘어서는 것, 계산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정의 그 자체가 그 자체로 정의롭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이는 특히 후기 데리다의 이른바 윤리적 전회를 레비나스 사상의 수용이라는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평가 방식이다. 이 문제에 관한 비판적 토론으로는 M. Hägglund, Radical Atheism: Derrida and the Time of Life, Stanford, 2008 3“Arche-Violence: Derrida and Levinas” 참조.오히려 계산 불가능한 정의, 선사하는 정의라는 이념은 그것 자체로 고립될 경우에는 항상 악이나 심지어 최악에 더 가까운 것이 되고 마는데, 왜냐하면 이는 가장 도착적인 계산에 의해 재전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자크 데리다, 󰡔법의 힘󰡕, 59.] 데리다가 구체적으로 부연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이처럼 그것 자체로 고립된 계산 불가능한 정의의 사례를 많이 알고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 자코뱅의 공포정치나 스탈린주의, 나치스의 유대인 대학살, 문화혁명, 크메르 루즈의 학살 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며, 그 밖에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크거나 작은 숱한 폭력과 대항폭력, 극단적 폭력들이 또한 존재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계산 불가능한 정의와 계산의 원리로서의 법은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는 것이며, 서로 분리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양자의 관계는 오염의 관계이자 협상의 관계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일방적으로 지휘하거나 규정하는 관계는 아니다.

 

계산 불가능한 정의는 계산할 것을 명령한다. (...) 계산 가능한 것과 계산 불가능한 것의 관계를 계산하고 협상해야 하고, 우리가 던져져있는 곳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발견하는 곳에서 재발명되어야 하는 규칙들 없이 협상해야 할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스스로를 발견하는 장소를 넘어서, 그리고 기존의 식별 가능한 도덕이나 정치 또는 법적인 지대를 넘어서, 민족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등의 구분을 넘어서 마찬가지로 가능한 한 멀리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러한 해야 함의 질서는 정의에도, 법에도 고유하게 귀속되지 않는다. [같은 책, 60. 강조는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데리다가 전개하는 유령론(hantologie)[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그린비, 2014(수정 2).]이나 그 이후에 발전시킨 자기면역’(auto-immunity) 개념 [자기면역은 원래 생물학 및 의학에서 유래한 용어로 우리말로는 보통 자가면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철학에서 ‘auto-’라는 접두어가 자기라는 표현으로 주로 번역되고, 실제로 데리다 역시 autoimmunité 개념을 그리스어 ‘autos’ 및 라틴어 ‘ipse’에 기반을 둔 주권 개념을 탈구축하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자기면역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하겠다. 이 개념에 대해서는 특히, J. Derrida; Foi et savoir, Paris, 2001; 󰡔신앙과 지식/세기와 용서󰡕, 최용호신정아 옮김, 아카넷, 2016; 자가면역: 실재적이고 상징적인 자살(2002), 󰡔해체 시대의 철학󰡕, 손철성 외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4; Voyous, Paris, 2003 참조.] 역시 유사초월론의 실천철학적인 표현들이라고 볼 수 있다. 데리다는 이 모든 경우에서 해방이나 정의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데리다는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지금까지의 모든 해방의 정치가 경험적인 조건들을 넘어서는 순수한 해방의 정치를 추구했으며, 이것이 낳을 수 있는 도착이나 퇴락의 효과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본다. 따라서 유령론이나 자기면역에 기초를 둔 도래할 민주주의는 지금까지의 해방의 정치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유사초월론 정치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데리다는 󰡔불량배들󰡕에서 모든 정치체, 특히 민주주의 정치체는 자기의 권력, 자기의 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때의 자기는 그리스어로는 autos, 라틴어로는 ipse에 해당하는 것으로, 데리다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원리 내지 가치를 이루는 자유, 평등, 인민 등과 같은 개념들이 모두 이러한 의미의 자기”, 또는 자기성”(ipséité)의 성립 가능성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나는 자기성이라는 말을, 모종의 나는 할 수 있다”(je peux), 또는 적어도, 모임 내지 회합/의회(assemblée), 함께-있음, (또는 흔히 말하듯) “함께 살아가기의 동시성 속에서 자신을 재전유하면서 자신에게 자신의 법, 자신의 법의 힘, 자신의 자기 표상/자기 대표(représentation de soi), 주권적 모임(rassemblement)선사하는 /권력으로 이해하겠다. [J. Derrida, Voyous, 30.]

 

그것은 민주주의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정치적 행위, 곧 선언하고 발언하고 투표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또 때로는 저항하고 봉기하고 변혁하는 모든 행위는 다른 사람의 권위나 도움, 또는 강제나 제약 없이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이를 수행하는, 따라서 자기 자신으로서 성립하고 실존하고, 유지될 수 있는 어떤 자기의 가능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에티엔 발리바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근대 민주주의 정치는 데모스의 자율성에 기초한 해방(émancipation)의 정치인 것이다.[Etienne Balibar, “Trois concepts de la politique: émancipation, transformation et civilité”, in La Crainté des masses, Paris, 1997; 정치의 세 개념: 해방, 변혁, 시민인륜,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최원 옮김, 도서출판b, 2007 참조.] 그리고 데리다는 이러한 자기의 권력이 주권이라는 개념에 집약되어 있다고 본다. “모든 국가 주권 이전에, 국민국가, 군주정의 주권 이전에, 또는 민주주의에서는 인민 주권 이전에, 자기성은 적법한 주권 원칙, 어떤 권력이나 힘, 크라토스(kratos), 크라티(cratie)가 지닌 인정되거나 신임이 부여된 지배권(suprématie)을 명명한다.”[J. Derrida, Voyous, 31.] 따라서 자기가 없이 민주주의가 성립 불가능하다면, 또한 주권 없이도 민주주의는 성립 불가능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자기의 힘으로서의 주권은 민주주의를 포함한 모든 정치체의 초월론적 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데리다는 또한 동시에 민주주의의 토대로서의 이러한 자기의 힘, 자기의 주권성을 위태롭게 하고 약화시키는 힘으로서의 자기면역을 민주주의에 고유한 것으로 포함시킨다. “자기면역은 ... 나 또는 자기, 에고 또는 자기(autos), 자기성 자체를 손상시키는(entamer) , 자기의 면역성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 단지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시성/자기 준거성(sui-référentialité), 자살의 자기(soi)를 위태롭게(compromettre) 만드는 것[Ibid., p. 71]이다. 생물학이나 의학의 차원에서 자기면역은 심각한 질병이지만, 정치의 차원에서 자기면역은 타자와 이질적인 것을 배척하고 자기의 동질성을 강화하려고 하는 (실존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의 자기 동일화 경향, 배타적 경향을 약화하고 탈구축하기 위한 힘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진리를 구성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적인 것의 또 다른 진리, 타자, 이질적인 것, 타율적인 것, 비대칭적인 것, 산종적 다수성, 익명적인 아무나”, “누구나”, 비규정적인 각자의 진리 ......” [Ibid., p. 35]


서론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동안 데리다는 포스트모더니스트해체주의자로 지목되면서, 동시대의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에 비해서도 유독 많은 비판과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는 단순히 그의 저작이 난해하고 또 그의 저작들의 번역 상태가 좋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만큼 그의 사유가 독창적이고 우리에게 낯설게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민주주의의 기초가 무너지고 적자생존의 원리에 기반을 둔 각자 도생의 생존 경쟁과 약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횡행하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유사초월론의 논리, 그리고 그것에 기반을 둔 도래할 민주주의의 정치는 다른 어떤 철학보다도 우리에게 귀중한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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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 󰡔황해문화󰡕 201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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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인문과학원에서 내는 학술지 [동서인문] 9호에 "스피노자의 [윤리학]: 욕망의 힘, 이성의 역량]"이라는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다운받을 수 있기 때문에, 논문을 받을 수 있는 주소를 바로 링크하겠습니다. 



http://aoh.knu.ac.kr/board/board.php?bo_table=research_rec_04&wr_id=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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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펴내는 [철학사상] 68집에 게재될 논문 한편 올립니다. 


아직 교정이 다 끝나지 않은 논문인 만큼, 이 논문에 대해 공적으로 토론하거나 인용하실 경우에는 


[철학사상]에 수록된 판본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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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알튀세르 사이의 푸코

 

 

[분류] 사회정치철학, 현대 프랑스철학

[주제어]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국가장치, 규율장치, 예속화

[요약문] 이 글은 미셸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의 이론적 차이점을 마르크스를 매개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푸코와 알튀세르는 인간적제도적사상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아무런 언급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출간된 푸코의 초기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은 1970년대 푸코의 권력의 계보학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특히 그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구상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 강의록에 입각하여 두 사람의 이론을 살펴보면, 푸코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이 국가장치를 중심으로 삼기 때문에 권력의 미시적 작동 방식을 제대로 해명해주지 못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논리적물질적 조건도 제대로 해명해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제기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푸코는 알튀세르를 포함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비정상적 인간들을 예속화하는 권력의 작용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관점에서 보면 푸코는 이데올로기 개념을 알튀세르 이전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데올로기의 상상적 차원(스피노자적인 의미에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권력의 비대칭성은 미시권력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적 토론에는 몇 가지 잔여가 여전히 남게 될 것이다.

 

 

 

I. 머리말

 

알튀세르는 파리 고등사범학교 시절 푸코의 스승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제도적사상적으로 긴밀한 관계(이것이 반드시 우호적이거나 화목한 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를 맺고 있던 인물이었다. 푸코와 알튀세르는 라캉, 바르트 또는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1960년대 프랑스 사상계를 풍미했던 구조주의의 주요 이론가로 분류되어 왔다. 하지만 (뒤에서 더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알튀세르, (후기) 푸코 사이에는 막연히 구조주의로 묶이는 것보다 더 특수하고 중요한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이는 주체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알튀세르나 푸코는 자신들을 구조주의자로 분류하는데 반대했다. 알튀세르는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자신을 포함한 그의 동료 연구자들(에티엔 발리바르, 피에르 마슈레, 미셸 페쉬 등)은 구조주의자가 아니라 스피노자주의자였다고 밝힌 바 있으며(Louis Althusser, “Éléments d’autocritique”, in Solitude de Machiavel et autres textes, ed. Yves Sintomer, PUF, 1998, p. 181 강조는 원문), 푸코 역시 자신을 비롯하여 알튀세르, 라캉 모두 엄밀한 의미의 구조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이승철 옮김, 갈무리, 2004, 60~61. 이 문제에 관해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논의하겠다.] 사실 알튀세르와 푸코는 한편에서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다른 한편에서는 규율 권력에 의한 종속적 주체 내지 개인의 생산을 이론화하면서 주목할 만하게도 동일한 개념, assujettissement이라는 개념, 우리말로는 예속적 주체화 내지 종속적 주체화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개념을 체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이에 관한 논의로는 특히 Warren Montag, “Althusser and Foucault: Apparatuses of Subjection”, in Althusser and His Contemporaries: Philosophy’s Perpetual War, Duke University Press, 2013 Pascale Gillot, “Michel Foucault et le marxisme de Louis Althusser”, in Jean-François Braunstein et al. eds., Foucault(s), Éditions de la Sorbonne, 2017 참조.]


또한 19685월 운동 이후 대학 개혁 과정에서 뱅센 실험 대학의 교과 개혁 책임자로 일했던 푸코가 철학과와 정신분석학과를 구성할 때 주로 의지했던 이들이 알튀세르와 라캉의 제자들(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알랭 밀레 등)이었다. 하지만 이는 푸코가 마르크스주의 및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해 심한 회의감을 갖게 만든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이 당시의 상황에 관해서는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박정자 옮김, 서울: 그린비, 2011 Richard Wolin, The Wind from the East: French Intellectuals, the Cultural Revolution, and the Legacy of the 1960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참조.] 1968년 이후 급진적인 변혁 운동을 추구하다가 공안 정국 하에서 집중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급진 좌파 집단, 특히 프롤레타리아 좌파”(La Gauche prolétarienne)의 활동가들 중 상당수는 고등사범학교의 알튀세르 제자들이었으며, 68운동에 대한 알튀세르의 유보적인 태도에 실망하여 이후 사르트르와 푸코에게 경도되었다.[1960년대 말~70년대 초 프랑스의 급진 좌파의 운동 및 그 여파에 대해서는 Michael Scott Christofferson, French Intellectuals Against the Left: The Antitotalitarian Moment of the 1970s, New York: Berghahn Books, 2004 참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알튀세르라는 매개를 고려하지 않고 푸코와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를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중요한 쟁점들을 제대로 검토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묘한 것은 이러한 다면적인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에 상호 언급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튀세르는 󰡔자본을 읽자󰡕(1965)에서 당시까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묻혀 있던 푸코의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탁월한 저작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를 가스통 바슐라르, 장 카바예스, 조르주 캉길렘의 계보를 잇는 사상가의 반열에 위치시키고 있다.[Louis Althusser, “Du Capital à la philosophie de Marx”, in Lire le Capital, PUF, 1996(3e édition), pp, 20, 44, 46.] 반면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불연속의 역사의 한 사례로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나오는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단절 내지 절단을 언급한 것 이외에는 생전에 출간된 저작에서 한 번도 알튀세르나 그의 저작을 거론한 적이 없다.[Michel Foucault, L’archéologie du savoir, Gallimard, 1969, p. 12; 󰡔지식의 고고학󰡕, 이정우 옮김, 민음사, 1992, 23.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말과 사물󰡕에서 푸코가 리카도의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사이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절단(coupure)”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는 점이다.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는 마치 물 속에 존재하는 물고기처럼 19세기 사유 안에 존재하는것이다.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Gallimard, 1966, p. 274; 󰡔말과 사물󰡕,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364. 번역은 약간 수정. 푸코가 알튀세르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지 않지만, 이는 분명 󰡔말과 사물󰡕 이전 해에 출간된 알튀세르의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의 핵심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푸코 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Pascale Gillot, “Michel Foucault et le marxisme de Louis Althusser”, op. cit. 참조.] 알튀세르나 그의 제자들(가령 에티엔 발리바르)을 염두에 둔 비판적인 논평과 언급은 주로 1970년대 초 이후(68 운동 이후 푸코가 급진 좌파 운동가들과 교유하면서 권력의 계보학 작업을 수행하기 시작한 이래) 외국 언론이나 학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제시되고 있다.


반면 알튀세르의 제자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푸코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1970년대에는 비판적 거리두기를 시도한 바 있다.[특히 Dominique Lecourt, Pour une critique de l'épistémologie: Bachelard, Canguilhem, Foucault, Paris: Maspero, 1972; 도미니크 르쿠르,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 바슐라르, 캉기옘, 푸코󰡕, 박기순 옮김, 새길, 1996; Dissidence ou révolution, Maspero, 1979; Michel Pêcheux, Language, Semantics and Ideology, St. Martins Press, 1982(프랑스어 원서는 1975); “Remontons de Foucault à Spinoza”, in Denise Maldidier ed., L’inquiétude du discours, Éditions des Cendres, 1991을 참조. 또한 1980년대 이후 알튀세리엥들의 푸코에 대한 평가로는 Etienne Balibar, “Foucault et Marx: l’enjeu du nominalisme”(1988), in La crainte des masses, Éditions Galilée, 1997; 푸코와 맑스: 유명론이라는 쟁점,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최원 옮김, 도서출판 b, 2007; “L’anti-Marx de Michel Foucault”, in Chrisitian Laval et al. eds., Marx et Foucault: Lectures, usages et confrontations, Paris: La Découverte, 2015; Pierre Macherey, Le sujet des normes, Éditions Amsterdam, 2015 3장과 4장을 각각 참조.] 역으로 프랑스나 영미권의 푸코주의자들은 알튀세르의 제자였다가 푸코로 전향했거나 아니면 알튀세르와의 거리두기를 위한 이론적 방편으로 푸코를 택한 바 있다. 따라서 어떻게, 어떤 계기들을 통해 알튀세르와 푸코가, 그리고 그의 지적 후계자들이 이론적정치적 유대 관계에서 갈등과 적대 관계로 이행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푸코는 마르크스(주의)나 알튀세르에 대해 거의 언급한 바 없고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지 않았을 뿐더러, 마르크스주의와 경쟁할 수 있고 더욱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독자적인 역사유물론을 구성하는 것을 1970년대 자신의 이론적 작업의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비합리적이지 않고 우파에 기원을 두지 않으면서 마르크스주의적 교조주의로도 환원되지 않는, 분석과 사상의 형태들을 구성하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 (...) 변증법적 유물론의 교리와 법칙을 넘어서는, 이론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연구를 어느 정도까지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94. 또한 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29, 2012, 157~59쪽의 논평도 참조.] 또한 197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그리고 1980년대 이후에는 영미권(및 기타 다른 지역)에서 푸코 및 그의 작업을 원용하는 연구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대안적인 좌파 이론이라는 맥락에서 수용되어 왔다(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통치성 학파라고 할 수 있다).[물론 푸코에 대한 우파적인 수용도 없지는 않다. 푸코와 신철학자들들과의 관계가 대표적이거니와, 푸코의 조교였던 프랑수아 에발드(François Ewald)는 프랑스 경영자 연합회(MEDEF)의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푸코의 -마르크스”(anti-Marx)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며[Etienne Balibar, “L’anti-Marx de Michel Foucault”, op. cit. 참조.] 또는 적어도 푸코의 대항-마르크스주의”(contre-Marxisme)를 언급할 수 있다.[François Ewald et Bernard E. Harcourt, “Situation du cours”, in Michel Foucault, Théories et institutions pénales: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1~1972, Paris: EHESS/Gallimard/Seuil, 2015 참조. 또한 같은 책에 수록된 에티엔 발리바르의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도 참조. Etienne Balibar, “Lettre d’Etienne Balibar à l’éditeur du cours”, in Ibid.]


그런데 푸코가 반-마르크스(주의) 내지 대항-마르크스주의 연구를 스스로 추구했고 또 그것을 고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면, 이는 무엇보다(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지만) 알튀세르의 작업에 대한 이론적 저항 때문이 아닌지 질문해볼 수 있다. 실제로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중 제일 마지막에 출간된(하지만 시기상으로는 제일 앞선 것들에 속하는) 1971~72년 강의록인 󰡔형법이론과 제도󰡕 1972~73년 강의록인 󰡔처벌사회󰡕[Michel Foucault, Théories et institutions pénales: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1~1972, op. cit.; La société punitiv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1~1972, Paris: EHESS/Gallimard/Seuil, 2013 참조.]1970년대 권력의 계보학 연구의 비판적 출발점에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특히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에 담긴 이데올로기론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Louis Althusser, “Idéologie et les appareils idéologiqus d’État”, in Sur la reproduction, PUF, 1995)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아미엥에서의 주장󰡕, 김동수 옮김, , 1991.] 그렇다면 푸코와 알튀세르는 (‘구조주의라기보다는) ‘철학적 구조주의라는 공동의 문제설정 아래 작업했으면서도,[라캉, 후기 푸코, 또는 알튀세르 등 어떤 위대한 철학적 구조주의자들...... 주체를 실격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그 반대로 고전 철학에 의해 기초의 위치에 장착된 이러한 맹목적인 노력을 해명하고자 했다. 즉 구성하는 기능에서 구성되는 위치로 주체를 이행시키고자 했다.” Etienne Balibar, “L’objet d’Althusser”, in Sylvain Lazarus ed., Politique et philosophie dans l'œuvre de Louis Althusser, PUF, 1992, p. 102; 에티엔 발리바르, 철학의 대상: 절단과 토픽,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이론사, 1993, 213~14. 강조는 발리바르의 것이고 번역은 약간 수정했다.] 그 내부에서 이론적으로 갈등했다고, 또는 이단점(point d’hérésie)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푸코의 󰡔말과 사물󰡕에서 유래하는 이단점이라는 개념의 철학적 함의에 대해서는 Etienne Balibar, “Foucault's Point of Heresy: ‘Quasi-Transcendentals’ and the Transdisciplinary Function of the Episteme”, Theory, Culture and Society, vol. 32, nos. 5~6, 2015 참조.] 이는 마르크스의 전유를 쟁점으로 하고 있지만 더 넓게 본다면 예속화(assujetissement)와 주체화(subjectivation)의 관계를 둘러싼 철학적 이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푸코와 알튀세르 사이에서 제기될 수 있는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겠다.

 


II.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몇 가지 요소들 

[2장의 논의는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필자의 그동안의 연구에 대한 개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진태원, 라깡과 알뛰쎄르: ‘또는알뛰쎄르의 유령들 I, 김상환홍준기 엮음, 󰡔라깡의 재탄생󰡕, 창비, 2002;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문제, 진태원 엮음, 󰡔알튀세르 효과󰡕, 그린비, 2011; 스피노자와 알튀세르: 상상계와 이데올로기, 서동욱진태원 엮음, 󰡔스피노자의 귀환󰡕, 민음사, 2017을 참조.]

 

우선 푸코 작업의 비판적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의 논점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이 이론에 대한 푸코의 반작용 및 이를 극복하기 위한 그의 독자적인 계보학 연구의 쟁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노동력의 재생산과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은,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장소론(Topik)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생산/재생산의 문제설정에 입각하여 생산양식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다시 사고하려고 애쓰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 처음 소묘되었던 이데올로기 개념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두 부분은 푸코와의 쟁점을 이해하는 데 모두 나름대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1) 노동력의 재생산

 

알튀세르는 우선 생산력의 재생산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생산수단의 재생산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자본󰡕 2권에서 상세하게 논의를 전개했기 때문에 자신은 노동력(force de travail)의 재생산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한다. 노동력의 재생산은 몇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노동자 자신의 노동력의 생물학적 재생산 및 가족의 삶의 재생산을 수행한다. 하지만 둘째, 노동력의 재생산은 이와 동시에 노동력의 자질(qualification)의 재생산을 요구한다. 그런데 노동력의 자질에는 직업적인 숙련도 이외에도 읽기쓰기셈하기와 같은 초보적인 지적 능력과 문학적과학적 교양과 같은 지식들이 포함되며, 또한 자신이 맡은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려는 태도와 회사의 질서 및 상사의 명령을 잘 수행하려는 질서 의식, 일반적인 사회성 및 도덕성이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력의 자질의 재생산은 공장 내부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바깥에 존재하는 독자적인 체계, 특히 교육 체계를 요구한다. 또한 더 일반적으로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종이 필요하다.

 

2) 국가에 대한 재정의

 

그 다음 알튀세르에 따르면 생산관계의 재생산이라는 문제는 마르크스주의 생산양식 이론의 결정적인 문제”[Louis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 268; 루이 알튀세르, 󰡔아미엥에서의 주장󰡕, 82. 강조는 알튀세르.]인데, 이를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따라서 국가 일반에 관한 질문을 전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알튀세르는 국가를 국가권력과 국가장치의 결합으로 제시하고, 다시 국가장치는 억압적 국가장치(appareil répressif d'État, ARE)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appareils idéologiques d'État, AIE)로 구별한다. “주로 억압에 의해 기능하는억압적 국가장치에는 정부, 행정부, 군대, 경찰, 치안유지군, 법원, 감옥 등이 속하고, “주로 이데올로기에 의해 기능하는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에는 교육, 종교, 가족, 정치, 조합, 문화 장치이 속한다. 중요한 것은 억압적 국가장치는 단수(“하나”(un))로 되어 있는 반면,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은 복수로 표현된다는 점이며, 전자가 공적영역에 속하는 제도들로 이루어진 반면 후자는 사적영역에 속하는 제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 간주되는 여러 제도들을 알튀세르가 국가장치라고 부르는 이유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하는 부르주아(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따르면 정치와 권력은 항상 공적인 영역에서만 작동하며, 사적인 영역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가 문제되는 영역일 뿐 정치나 권력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 그래야 마땅하다. “반면 알튀세르가 AIE라는 개념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부르주아의 계급 지배는 단지 공적인 영역에서 억압적 국가장치를 장악하고 활용함으로써 안정되게 재생산될 수 없으며, 사적인 영역이라고 불리는 개인들의 생활 공간까지 장악하고 지배해야 비로소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제는 권력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적인 영역의 개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계급 지배가 관철되고 있고, 더 나아가 개인들의 정체성 자체AIE에 의해 형성되는지 설명하는 일이다.”[진태원,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앞의 글, 89~90.]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가 아니라 국가 장치들이다.

 

3)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 AIE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봉건제에서는 가족-교회쌍이 지배적인 AIE였으며 자본주의에서는 가족-학교쌍이 이러한 AIE를 대체한다는 점이다. 이는 AIE에 대한 알튀세르의 주장과 연속선상에 있으며, 이를 역사적제도적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지침을 제공해준다. 가족은 우리가 인간 사회의 가장 자연적인집단으로, 또한 가장 사적인장소로 간주하는 제도다. 따라서 가족이 국가와 연루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장소라는 생각은 좀처럼 하기 어렵다. 하지만 AIE가 사적인 영역에서 계급 지배를 관철하기 위한 장치이며, 따라서 AIE는 우리가 이데올로기의 작용과 가장 무관한 장소라고 간주하는 바로 그곳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완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족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 장치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학교 역시 우리는 보통 가장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장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학교를 공화국의 성소(聖所)’로 간주하고, 학교를 모든 특수한 이데올로기나 종교, 공동체주의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하는 프랑스식 공화주의의 관점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더 그렇다.[몇 년 전 프랑스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됐던 히잡 사건은 이러한 공화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배경에서 볼 때에만 이해가 될 수 있다. 프랑스 공화주의와 이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박단, 󰡔프랑스의 문화전쟁: 공화국과 이슬람󰡕, 책세상, 2005 및 양창렬이기라 엮음, 󰡔공존의 기술: 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그늘󰡕, 그린비, 2007을 각각 참조.]


프로이트와 라캉이래로 알튀세르는 가족을 인간이 인간으로 형성되는 가장 원초적인 장소로 간주하며, 또한 학교는 가족에서 형성된 인간이 한 사람의 자율적인 개인, 한 사람의 국민으로 형성되는 곳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는 보통 이미 인간으로 존재하고 이미 자율적인 개인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해 행사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는 본질적으로 인간을 생물학적인 존재로부터 인간적인 존재로 형성하고 또한 자율적인 성인(우리가 근대 철학의 핵심 범주를 사용하여 주체라고 부르는)으로 형성하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과 학교가 자본주의의 핵심 AIE라는 테제는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특성과 함의가 가장 뚜렷하게 표현되는 주장 중 하나다.

 

2. 이데올로기 이론


이데올로기이론의 핵심 요소는 세 가지로 구별해볼 수 있다.

 

1) 이데올로기에 대한 재정의

 

우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상상적 관계 및 그에 대한 représentation으로 정의한다(représentation표상이나 재현이라는 뜻과 더불어 또한 연극적인 의미의 상연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테제 1.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현실적인 실존 조건들과 맺고 있는 상상적 관계를 표상/재현/상연한다(représent). [L.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 296; 󰡔아미엥에서의 주장󰡕, 107]

 

알튀세르는 이를 조금 더 자세하게 다시 제시한다.

 

인간들이 이데올로기 안에서 서로 표상/재현/상연하는”(se représentent)하는 것은 인간들의 현실적인 실존조건들, 그들의 현실 세계가 아니며, 이데올로기에서 그들에게 표상/재현/상연되는(représenté) 것은 그들이 이 실존조건들과 맺고 있는 관계.[L.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 297; 󰡔아미엥에서의 주장󰡕, 109]

 

이러한 정의의 논점은 자본주의 사회, 곧 계급 사회에서 개인들은 계급의 한 성원으로서 실존하지만, 이데올로기 안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을 상상적 관계에 따라 서로 표상하고 재현하고 상연한다는 것이다. 이때 개인들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을 인간으로서, 곧 계급적 조건에 앞서 각각의 개인들이 체현하고 있는 또는 각각의 개인들 안에 전제되어 있는 추상적 인간으로서 서로 표상하고 재현하고 상연한다. 이러한 상상적 표상/재현/상연은 가상적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실재성이 없다거나 아니면 사회적 관계에 대해 구성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환상적이거나 공상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는 법적 체계를 통해 모든 사람을 자유롭고 평등한 법적 주체로 규정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 및 제도적개인적 실천은 이러한 규정을 전제한다. 더 나아가 개인들은 자신들을 또한 프랑스인’, ‘미국인’, ‘한국인으로서, 심지어 단군의 자손인 한민족으로서 서로 표상하고 재현하고 상연할 것이다.[알튀세르 자신은 이데올로기론에서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으며, 대신 1980년대 이후 에티엔 발리바르가 체계적인 논의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이점에 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세계화와 정치의 재발명󰡕,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0에 수록된 용어해설중에서 국민, 국민형태, 민족주의, 민족체참조.]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은 계급이라는 현실적인 존재조건에 따라 규정됨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는 이러한 계급적 조건에 선행하는 추상적인 개인 x(한국인’, ‘프랑스인등으로)로 나타나며, 또한 물질적 조건 속에서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2) 이데올로기의 물질성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알튀세르가 또한 강조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관념이나 의식, 표상이 아니라 물질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실존을 갖는다.”[L.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 298; 󰡔아미엥에서의 주장󰡕, 110] 이는 첫째, 이데올로기는 자생적인 관념이나 의식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을 통해 형성되고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둘째, 알튀세르가 파스칼의 유명한 단편 무릎을 꿇어라. 기도의 말을 읊조려라. 그러면 믿게 될 것이다.”를 인용하면서 강조하듯이, 가장 내밀한 생각이나 믿음, 신념 같은 것들이 사람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나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 및 그 제도 속에서 실행되는 의례나 관행들의 결과라는 점이다. 기독교적인 신에 대한 믿음은 미사(또는 예배)라는 의례와 그것에 수반되는 설교, 합창, 기도 등과 같은 관행들(practices)과 분리될 수 없으며, 그것들로부터 생겨난 결과인 것이다. 셋째,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기만적인 표상이나 가상, 또는 허위의식으로 간주하는 것, 따라서 의식이나 관념 또는 표상의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라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표상이다. [루이 알튀세르, 󰡔아미엥에서의 주장󰡕, 112. 강조는 인용자. 사실 알튀세르는 이미 1964년에 저술한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있으며, 1966년 익명으로 발표된 문화혁명에 대하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를 관념들의 체계(좁은 의미의 이데올로기들)와 태도-행위(습속)”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Louis Althusser, “Sur la révolution culturelle”(1966), Décalages, vol. 1, no. 1, 2014, p. 15. http://scholar.oxy.edu/cgi/viewcontent.cgi?article=1002&context=decalages (2018.5.20. 접속) 강조는 원문.]

 

3) 호명

 

마지막으로 잘 알려져 있듯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의 본질적인 기능을 예속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이를 호명’(interpel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신민들로 호명한다. 알튀세르의 논문에서 “assujettissement”이라는 단어는 항상 경제적 종속이나 정치적 복종과 구별되는 이데올로기적 예속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대주체로서의 신과 모세를 비롯한 인간 주체들 사이의 호명의 거울 작용을 논의할 때 체계적으로 사용된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에서 해명하려고 했던 것은 사회주의 혁명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였다. 그는 이를 과잉결정’(surdétermination)이라는 개념에 입각해 설명하려고 했다. 반면 그가 이데올로기론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은 (68운동과 같은 거대한 변혁 운동이 일어났음에도) 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지, 자본주의가 어떻게 계급적인 모순과 대중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는 말하자면 혁명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들의 과잉결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조건들의 과소결정’(sousdétermination)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이러한 테제 또는 오히려 가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보사항이 덧붙여져야 한다. 알튀세르가 68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연구에 몰두한 것은 직접적인 상황 속에서 본다면, 오히려 어떻게 대중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반역하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Sur la révolution culturelle”, Décalages, p. 6. 강조는 원문)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역으로 왜 대중들은 반역하지 않는가, 왜 대중들의 반역은 혁명으로 이행되지 못하는가, 이데올로기의 어떤 특성, 어떤 기능이 대중들을 예속적 주체로 구성하는가라는 보충적인 질문에 의해 과잉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 두 질문 사이의 갈등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론적 작업이 재생산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특히 생산력 중에서 노동력의 재생산에서 이데올로기가 수행하는 작용을 해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는데, 알튀세르의 독창성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노동력의 재생산의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의 기초를 이루는 주요 개념들,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장소론 및 국가개념 자체를 재개념화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는 상상적 관계, 물질성, 호명 개념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주체라는 근대 철학의 핵심 개념을 탈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알튀세르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처음에는 생산양식 또는 토대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적 역할을 부여받은, 따라서 생산양식이라는 경제적 토대에 존재론적으로 의존하는 위치에 놓여 있던 상부구조 또는 이데올로기가 마지막에 가서는 경제적 토대 자체를 가능케 하는 (하지만 그 자체 역시 경제적 토대를 전제하는) 구성적 조건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III.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심화하기,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넘어서기

 

1. 마르크스를 인용하기, 마르크스를 인용하지 않기

 

우선 한 가지 지적해두어야 하는 것은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 고전가들을 인용하는 두 사람 간의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부터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이론적 독창성을 거의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모든 것은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또는 마오 같은 마르크스주의 고전가들의 텍스트에 모두 담겨 있으며, 자신은 다만 실천적 상태로 또는 묘사적 상태로 존재하는 그 요소들을 좀 더 명료하게 가다듬고 체계화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외부에서 약간의 보충적인 요소(프로이트에게 과잉결정이라는 개념을, 스피노자에게 상상이라는 개념을, 바슐라르에게는 단절내지 절단이라는 개념)를 빌려올 뿐이다. 그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매우 사소한 텍스트(대개 편지, 연설문, 서문 같은 매우 주변적인 텍스트)에서 기필코 관련된 인용문을 찾아내서, 자신의 독창성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것들을 빠짐없이 인용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적 작업의 목표를 마르크스에게 돌아가기로 제시하며, “프로이트에게 돌아가기를 자신의 과업으로 내세운 라캉을 찬양한다.[그리고 나중에는 라캉이 이 목표의 거대한 중요성을 망각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정신분석의 철학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고 그를 비난한다. 루이 알튀세르, 프로이트 박사의 발견,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와 라캉󰡕, 공감, 1995 참조.]


반대로 푸코는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알튀세르를 거명하지 않은 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고약한 인용 관습을 맹렬하게 비난한다. 푸코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또는 스탈린의 저작에 대해 주석을 달고, 또한 그들의 저작을 인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충성을 표시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제가 광기에 대해, 감금에 대해, 그리고 나중에는 의학 및 이 제도들을 지탱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구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제가 놀랍게 여긴 것은 전통적인 좌파가 이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그 이유들 중 하나는 분명 제가 좌파 사상의 전통적인 표시 중 하나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저는 각주에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엥겔스가 말한 것처럼”, “스탈린이 천재적으로 말했듯이라는 표시를 달지 않았던 겁니다.[브라질 신문인 Jornal da Tarde와의 인터뷰. “Michel Foucault. Les réponses du philosophe”, in Dits et écrits, vol. I, p. 1675.]

 

이는 교조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비난이 아니다. 그는 1868년 이후 프랑스의 젊은 급진 좌파 지식인들에게도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다. 이탈리아 언론인과의 대담에서 그는 이들, “1968년 이후에 마르크스-레닌주의자나 또는 마오주의자가 된 사람들 (...) “-프랑스 공산당마르크스주의 세대에 속하는 이들을 초 마르크스주의자들”(hyper-Marxistes)[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104~05.]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은 푸코가 튀니지에서 매료되었던 튀니지 학생들의 도덕적 힘이자 놀라운 실존적 행위[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131.] 와 달리 서로에 대한 저주와 각종 이론들을 쏟아내면서분파적인 이론 투쟁만을 일삼는 대책 없는 담론성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난한다. “프랑스에서 5월의 경험은, 서로에게 비난을 퍼부으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작은 교리들로 분해했던 분파적 실천들에 의해 빛을 잃었다는 데 있겠지요.”[같은 책, 134, 36.]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마르크스에 대한 은밀한 인용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Michel Foucault, Colin Gordon & Paul Patton, “Considerations on Marxism, Phenomenology and Power. Interview with Michel Foucault”, op. cit., p. 101.]고 말한다. 그렇다면 푸코는 마르크스를, 그리고 또한 알튀세르를 어떻게 은밀하게 인용한 것일까?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그들을 심화하거나 정정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그들을 넘어서려고 한 것일까?

 

2. 알튀세르보다 더 마르크스(주의)적인 푸코?

 

논의를 절약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알튀세르와 관련한 푸코 작업의 쟁점을 도식적인 몇 가지 논점으로 제시해보자.

 

1) ‘억압적 국가장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쌍에서 국가장치, 다시 규율장치로

 

󰡔형법이론과 제도󰡕 󰡔처벌 사회󰡕, 그리고 󰡔정신의학적 권력󰡕 같은 1970년대 초반 강의록들 및 󰡔감시와 처벌󰡕 같은 저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푸코가 알튀세르와 달리 억압적 국가장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냥 단순히 국가장치’(appareil d’État 또는 appareil étatiqu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용법은 몇 가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푸코가 보기에 폭력이데올로기또는 강제동의의 구별에 따라 국가장치를 구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는 한편으로 권력의 장치가 억압을 특성으로 한다는 생각을 전제하는데, 권력의 실제 특성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고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푸코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권력의 특성을 해명하는 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푸코가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알튀세르가 비판하는 바로 그것, 곧 그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관점이라고 부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사실 이데올로기에 대한 푸코의 언급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가 완강하게 이데올로기를 -알튀세르적인 또는 전()-알튀세르적인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가령 다음과 같은 진술이 전형적이다. “저는 이데올로기의 수준에서 권력의 효과들을 식별하려고 시도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닙니다. 실로 저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에, 신체 및 신체에 대한 권력의 효과라는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 더 유물론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를 선호하는 분석에서 제가 거북하게 느끼는 것은 이러한 분석에서는, 고전적인 철학이 그 모델을 제시한 바 있고 권력이 점령한 의식을 부여받고 있는 인간 주체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Michel Foucault, “Pouvoie et corps”(1975), in Dits et écrits, vol. II, “Quarto”, p. 1624.] 그에게 권력은 이데올로기를 동원해서 기만하고 은폐하고 가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곧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아니라 권력-지식또는 지식-권력장치가 권력을 해명하는 데 더 적절한 개념쌍이다.[아마도 푸코가 보기에는 이데올로기라는 낡고 부적절한 관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알튀세르의 시도가 기묘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는 늘 기만, 조작, 왜곡, 신비화 등의 대명사로 사용되어 왔고 또 여전히 그렇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푸코에게는 이 단어를 고수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던 알튀세르와 그렇지 않았던 푸코의 또 다른 차이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푸코가 이데올로기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점에 관한 상세한 토론은 Pierre Macherey, Le sujet des normes, op. cit., pp. 214 이하 참조.]


따라서 푸코는 1972~73년 강의에서는 국가장치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다음 해 강의인 󰡔정신의학의 권력󰡕에서는 국가장치라는 개념이 단 2차례만 등장하며, 그것도 이 개념의 무용성을 주장하기 위해 거론될 뿐이다.[국가장치라는 개념은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런 직접적이고 미세하며 모세혈관적인 권력들, 신체와 행실, 몸짓, 개인의 시간에 작용하는 권력들을 지시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며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국가장치는 이러한 권력의 미시물리학을 해명하지 못한다.” Michel Foucault, Le Pouvoir psychiatriqu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3~1974, Paris: Gallimard/Seuil, 2003, p. 17 ); 󰡔정신의학의 권력󰡕,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4, 38쪽 각주 21). 번역은 수정했다.] 그 대신 푸코는 자신의 고유한 개념인 권력 장치”(dispositif de pouvoir)를 사용하기 시작한다.[같은 책, p. 14; 34.] 󰡔감시와 처벌󰡕에서는 장치의 두 가지 표현인 appareildispositif가 같이 혼용되고 있는데, dispositif가 주로 규율장치내지 파놉티콘 장치와 관련하여 쓰이는 반면, appareil는 주로 국가장치’, ‘행정장치’, ‘사법장치’, ‘치안 장치등과 같이 국가 및 국가 제도와 관련하여 사용된다. 푸코가 점점 더 알튀세르적인 의미의 국가장치라는 용어의 무용성을 주장하게 된 이유는 이 개념이 한편으로 권력이 국가라는 어떤 중심에 근거를 두고 있고 거기에서 파생되어 나온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들을 권력의 중심으로 간주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푸코가 보기에 권력은 국가나 제도보다 더 하위의 수준에서, 미시물리학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제도로서의 국가장치의 기능적 효용과 실재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제한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권력을 국가 장치 안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적절하게 기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심지어 국가장치들이 내적이거나 외적인 투쟁의 쟁점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충분히 않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국가장치는 훨씬 더 심층적인 권력 체계의 집중화된 형식, 또는 심지어 그것을 지탱하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실천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국가장치의 통제도 그것의 파괴도 특정한 유형의 권력, 국가장치가 그 속에서 기능했던 그 권력을 전화하거나 제거하는 데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Michel Foucault, La société punitive, op. cit., p. 233.]

 

알튀세르의 국가장치에 대한 푸코의 이러한 비판이 정당한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4장에서 좀 더 상세히 논의해보겠다.

 

2) 마르크스의 진정한 계승자 푸코? 󰡔자본󰡕과 규율권력

 

1972~73년 강의록인 󰡔처벌 사회󰡕가 우리의 주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왜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마르크스의 󰡔자본󰡕 1권에 주목하고 있으며, 또한 왜 규율권력에 대한 자신의 연구가 󰡔자본󰡕 1권의 노선 위에 서 있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미국 학자들과의 1978년 인터뷰에서 푸코는 자신의 작업을 마르크스의 󰡔자본󰡕과 연속적인 것으로 위치시킨다. 단 그는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전처럼 떠받드는 󰡔자본󰡕 1이 아니라 󰡔자본󰡕 2이 자신의 작업의 출발점이며, 자신은 그것을 심화시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 자신의 경우, 마르크스에서 제가 관심을 갖는 부분, 적어도 제게 영감을 주었다고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자본󰡕 2권입니다. 곧 첫 번째로는 자본의 발생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자본주의의 발생에 대한 분석, 두 번째로는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 조건에 대한 분석, 특히 권력 구조 및 권력 제도의 확립과 발전에 관한 분석과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아주 도식적으로 떠올려보면, 자본의 발생에 관한 첫 번째 책과 자본주의 역사, 계보에 관한 두 번째 책 가운데 2권을 통해, 그리고 가령 제가 규율에 관해 쓴 것에 의해 저의 작업은 모두 동일하게 마르크스가 쓴 것과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겠습니다.[Michel Foucault, Colin Gordon & Paul Patton, “Considerations on Marxism, Phenomenology and Power. Interview with Michel Foucault”, Foucault Studies, no. 14, pp. 100~01.]

 

여기서 푸코가 말하는 󰡔자본󰡕 2은 마르크스 생전에 마르크스 자신이 직접 감수한 프랑스어판 󰡔자본󰡕 2, 따라서 독일어판으로 하면 󰡔자본󰡕 1권의 4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푸코의 논점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감시와 처벌󰡕에 나오는 󰡔자본󰡕에 관한 몇 개의 인용문은 모두 14편에 대한 것이다. 푸코가 인용문에서 자본의 논리적 발생을 다루는 1권 앞부분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발생에 관한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작업이 마르크스의 이 분석 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우선 푸코가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주목하고 또 스스로 더 발전시키는 점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또는 경제적 구조가 성립하고 발전하기 위한 조건이 규율 기술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규율 기술은 자본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고 그것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공장을 군대 조직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푸코는 1976년 브라질에서 했던 권력의 그물망이라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규율권력이라는] 이 특수한 국지적 권력들은 결코 금지하고 방해하고 너는 해서는 안 돼라고 말하는 의고적인 기능을 갖지 않습니다. 이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권력들의 원초적이고 본질적이고 영속적인 기능은 사실은 어떤 생산물의 생산자들의 유능함과 자질의 생산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가령 마르크스는 군대와 작업장에서 규율의 문제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수행합니다.”[Michel Foucault, “Les mailles du pouvoir”, in Dits et écrits, vol. II, p. 1006. 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실제로 푸코는 󰡔감시와 처벌󰡕의 각주에서 마르크스의 󰡔자본󰡕 1411장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를 언급한다. “기병 1개 중대의 공격력이나 보병 1개 연대의 방어력이 기병 1기와 보병 1명이 각기 발휘하는 공격력과 방어력의 합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개별 노동자들의 힘의 기계적 합계는 다수 노동자들이 통합된 동일한 공정에서 동시에 함께 작업하는 경우에 발휘되는 사회적인 잠재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Karl Marx, Das Kapital, I, in Karl MarxFriedrich Engels Werke Bd. 23, Dietz Verlag, 1987, p. 345; 칼 마르크스, 󰡔자본󰡕 1-1,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2013, 454.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258쪽 주 65).]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앞서 본 것처럼 고의적으로) 어떻게 매우 암묵적으로, 그리고 피상적으로 인용하는가는 다른 연구자들의 작업 덕분에 이제 잘 알려져 있다.[특히 Rudy M. Leonelli, “Marx lecteur du Capital”, in Chrisitian Laval et al. eds., Marx et Foucault: Lectures, usages et confrontations, op. cit. 참조.] 마르크스가 󰡔자본󰡕 14편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은 전자본주의적 수공업과 구별되는 자본주의적인 생산 방식이 지닌 특성이다. 그것은 결합 노동”(kombinierte Arbeit)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지닌 특성인데, 이러한 결합 노동은 자본주의적인 협업”(Kooperation)과 고대적이거나 중세적인 또는 아시아적인 협업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다. 이전의 협업이 여러 사람들의 힘을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것인 데 반해, “처음부터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는 자유로운 임노동자를 전제”[Karl Marx, Das Kapital, I, p. 354; 칼 마르크스, 󰡔자본󰡕 1-1, 464.]하는 자본주의적 협업은 아주 많은 수의 노동자가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또는 같은 작업장이라고 해도 좋다) 같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같은 자본가의 지휘 아래에서 일한다.”[같은 책, p. 341; 449.]는 특성을 갖는다. 또한 이러한 협업은 노동 과정을 세부적으로 분할하며, 각각의 노동자들에게 세부적으로 분할된 특정한 작업을 부과한다. 이렇게 분해된 작업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부과된 특정한 작업을 특정한 도구기계와 함께 수행하면서도 이러한 세분화된 개별 작업들이 동일한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단일한 전체 과정으로 통합될 때 자본주의적 협업이 전개된다. 이러한 협업 방식 및 결합 노동 방식은 각각의 개별적인 생산자들이 따로따로 생산하는 것보다 생산성을 훨씬 더 높여주지만, 이러한 생산성의 증대가 전제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작업 방식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작업 방식에 순종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왜냐하면 세분화된 개별 작업을 노동자들에게 부과하여 그것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게 만드는 것은 일정한 강제 내지 폭력이며, 인간 및 그 신체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노동자 자신, 그의 온전한 신체로부터 강제로 분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논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푸코 자신이 명시적으로 인용하는 󰡔자본󰡕 14편의 11협업이외에 4편 전체의 내용을 참조해야 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매뉴팩처 분업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 부분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는 점 바로 그것이다. 부분 노동자의 공동생산물이 되어야만 비로소 그 생산물은 상품으로 전화한다.”[같은 책, p. 376; 488~89.] 마르크스는 시계 공장의 사례를 든다. “1차 가공 작업공, 시계태엽 제조공, 문자판 제조공, 용수철 제조공, 돌구멍과 루비축 제조공, 시계침 제조공, 케이스 제조공, 시계테 제조공, 도금공 (...) 톱니바퀴축 제조공, 시계침장치 제조공, 톱니바퀴를 축에 고정시키고 모서리를 연마하는 사람, 추축 제조공 (...)”[같은 책, p. 362~63; 474.] 이처럼 수십 가지 부품들을 분산해서 제조하는 과정을 거쳐 이것들을 조립하는 최종 과정에 이르러서야 시계 생산이 완료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의 성격으로 인해 똑같은 부분 기능을 수행하는 각각의 노동자 무리는 동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전체 생산 메커니즘의 한 부속 기관이 된다. (...) 매뉴팩처는, 일단 도입되고 나면, 자연히 일면적이고 특수한 기능에만 적합한 노동력을 발달시키게 된다.”[같은 책, 479, 482.] 따라서 매뉴팩처 분업은 자본가가 장악하고 있는 전체 메커니즘의 단지 구성원에 불과한 사람들에 대한 자본가의 무조건적인 권위를 전제로 한다.”[같은 책, 490.]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노동과정에 대한 자본의 지휘 또는 감시형태상으로 보면 전제주의적(despotisch)이다.”[같은 책, 461.]


여기에서 더 나아가 대규모 생산기계의 도입과 더불어 본격적인 자본주의적 대공업이 시작되면 각각의 노동자들은 기계 장치와 연결되며, 이러한 기계 장치의 생산 활동에 자신의 작업 활동을 일치시켜야 한다. 더욱이 이제 기계의 도입으로 인해 강한 근력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성인 남성 노동자들과 다른 미성년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노동 과정 속에 들어오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매뉴팩처나 수공업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자신의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공장에서는 노동자가 기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 매뉴팩처에서 노동자들은 하나의 살아 있는 역학적 장치의 손발이 된다. 공장에서는 하나의 죽은 역학적 장치가 노동자들에게서 독립하여 존재하고, 그들은 살아 있는 부속물로 이 역학적 장치에 결합된다.”[같은 책, 570.]


이러한 과정은 마르크스가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1844)를 인용하면서 말하고 있듯이, “신경계통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며 동시에 근육의 다양한 움직임을 억압하고 모든 자유로운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몰수해버린다.”[같은 곳.] 따라서 노동자들이 이러한 작업 과정에 적응하고 이 힘겨운 조건들을 견디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규율이 필수적이다.

 

노동수단의 획일적인 운동에 노동자가 기술적으로 종속되어 있고 남녀를 불문하고 매우 다양한 연령층의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는 노동 단위의 독특한 구성은 군대와 같은 규율을 만들어내고, 이 규율은 공장 체제를 완전한 형태로 발전시켜 앞에서도 얘기한 감독 노동을 발전시키며, 그리하여 노동자들을 육체노동자와 노동감독자로[즉 보통의 산업병사와 산업하사관으로] 완전히 분할한다. (...) 공장법전은 다만 대규모 협업이나 공동의 노동수단의 사용과 함께 필요해지는 노동과정에 대한 사회적 규제의 자본주의적 자화상에 지나지 않는다. 노예 사역자의 채찍 대신 감독자의 징벌 장부가 등장한다. 물론 모든 징벌은 벌금과 임금삭감으로 귀착된다.[같은 책, 572~73.]

 

이점을 염두에 두면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제시하는 이유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신체의 활동에 대한 면밀한 통제를 가능케 하고 체력의 지속적인 복종을 확보하며 체력에 순종-효용의 관계를 강제하는 이러한 방법을 규율’(discipline)이라고 부를 수 있다.[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216.] 조금 뒤에서 더 정확한 규정을 발견할 수 있다. “규율의 역사적 시기는 신체의 능력 확장이나 신체에 대한 구속의 강화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메커니즘 속에서 신체가 유용하면 할수록 더욱 신체를 복종적인 것으로 만드는, 또는 그 반대로 복종하면 할수록 더욱 유용하게 만드는 관계의 성립을 지향하는, 신체에 대한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는 시기다.”[같은 책, 217.] 또한 다음과 같은 규정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규율은, 신체의 힘을 가장 값싼 비용의 정치적인 힘으로 환원시키고, 또한 유용한 힘으로서 극대화시키는 단일화된 기술 과정이다.”[같은 책, 339.] 따라서 푸코의 규율권력을 단순히 강제나 통제로 이해하는 통속적인 생각과 달리, 규율의 목적은 단순한 통제나 강제가 아니라 신체를 더욱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신체를 잘 통제하고 복종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3)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넘어서: 생산력 개념과 규율의 기술들

 

푸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르크스만이 아니라 알튀세르 자신도 제대로 제기하지 못한 중요한 논점을 제기한다. 그것은 바로 생산력(force productive) 또는 노동력(force de travail)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개념과 관련된 것이다.[이점에 관한 좋은 논의는 Ferhat Taylan, “Une histoire "plus profonde" du capitalisme”, in Chrisitian Laval et al. eds., Marx et Foucault: Lectures, usages et confrontations, op. cit. 참조.] 역사유물론의 토대를 구성하는 것은 생산양식이며, 생산양식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자본주의적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앞에서 본 것처럼 알튀세르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결합된 생산력에서 노동력의 재생산 조건에 관해 질문하면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 바 있다. 그리고 임금이라는 물리적 재생산의 조건 이외에 직업적 자질이나 숙련도, 더 나아가 지식과 도덕의식의 형성을 위해 학교라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반면 푸코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재생산이나 생산력 또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묻기 이전에 마르크스주의적인 노동개념의 한계를 지적한다. 푸코는 1973년 브라질 강연인 진리와 법적 형식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우리가 순수하고 단순하게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노동이 인간의 구체적 본질이며, 이러한 노동을 이윤이나 초과이윤 또는 잉여가치로 전환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계라고 가정합니다. 사실은 자본주의 체계는 훨씬 더 깊숙이 우리의 실존에 침투해 있습니다. (...) 초과이윤(sur-profit)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저 권력(sous-pouvoir)이 존재해야 합니다. 인간들을 생산 장치에 고정시키고 그들을 생산의 행위자, 노동자들로 만드는, 미시적이고 모세혈관 같은 정치권력의 그물망 조직이 인간 실존 그 자체의 수준에서 확립되어야 합니다.[Michel Foucault, “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 in Dits et écrits, vol. I, p. 1490.]

 

흥미로운 점은 푸코가 초과이윤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기저 권력, 미시적인 규율권력의 사례로 가두기”(séquenstration) 장치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푸코가 같은 해 강의인 󰡔처벌사회󰡕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이 개념은 푸코에 따를 경우 봉건사회와 근대사회의 차이를 낳는 특징 중 하나다. 곧 봉건사회가 주로 일정한 장소에 소속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권력을 행사하고 따라서 장소에 대한 통제가 봉건사회에서 권력이 행사되기 위한 조건이었다면, 근대사회는 장소보다는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의 형성 및 발전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 1권의 이른바 본원적 축적에 관하여에서 말한 바 있듯이,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들로부터 분리된 자유로운 노동력(곧 과거에 농민이었다가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농토를 잃고 도시로 흘러들어와 빈민 노동자들이 된 사람들)의 형성이 필수적이었다. 상업 자본이 이들을 임금 노동자들로 고용함으로써 자본주의적인 생산이 시작될 수 있는데, 이들을 고용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본가가 이들 노동자들로부터 이들의 노동력을 일정한 시간 동안 활용할 수 있도록 구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푸코는 단순히 자본가가 노동력을 구매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을 분할하면서 결합하여 자본주의적인 생산을 조직하는 규율 권력의 작용이 필수적인 조건으로 요구된다. 더 나아가 가두기장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시간 자체를 규율할 필요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사람들의 시간이 생산 장치에 공급되어야 하고, 생산 장치는 삶의 시간, 인간들의 실존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리고 이러한 형식 아래 통제가 행사됩니다. 산업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첫째, 개인들의 시간이 시장에 나와 그것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공급되고 임금과 교환되어야 합니다. 둘째, 개인들의 시간은 노동 시간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일련의 제도들에서 최대한의 시간의 추출이라는 문제 및 이를 위한 기술을 발견하게 됩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노동자들의 삶의 소진된 시간은 한 제도에 의해 보상 가격을 통해 단번에 구입됩니다.[Michel Foucault, “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 in Dits et écrits, vol. I, p. 1484. 이런 측면에서 보면, 푸코가 E. P. 톰슨을 얼마나 읽었으며 또한 그의 분석을 얼마나 변형하거나 확장하고 있는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이러한 시간의 통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한 고용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 시설에서, 교정 시설에서, 감옥에서와 같이 사회 도처에서 나타나고 확산된다. 따라서 두 가지 결론이 나오게 된다. 첫째, 마르크스나 알튀세르가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생산력 내지 노동력이라는 범주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구매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력과 노동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공장 안에서나 공장 밖에서 다양한 형태의 규율 기술들이 실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규율의 기술이 없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적인 생산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규율 권력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가능하기 위한 역사적논리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에티엔 발리바르 역시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에 입각하여 생산력과 생산관계, 착취와 잉여가치의 역사적물질적 조건에 대해 엄밀한 연구를 수행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푸코의 문제제기는 독창적이기는 하지만 다소 일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에티엔 발리바르,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역사유물론 연구󰡕, 이해민 옮김, 푸른산, 1989 참조. 2017년 프랑스철학회 가을학회 발표 당시 이 점을 일깨워준 최원 선생께 감사드린다.]


둘째, 규율 권력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형성과 재생산의 조건이라는 기능적 목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18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16세기부터 수도원과 교정 시설, 군대, 학교 등에서 개별적으로 전개되고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있던 다양한 형태의 규율 기술이 일반화되어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에 적용되어야 했다. 하지만 규율 권력 그 자체는 정의상 자본주의 생산 장치나 그것의 재생산을 계급적으로 관리하는 자본주의 국가 장치에 종속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과 동일한 수준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일반화된 규율의 기술은 국가 기구나 제도의 아래쪽에서 작동하면서 개인들 자체를 제작하는 일을 수행한다.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fabrique) 곧 그것은 개인을 권력 행사의 객체와 도구로 간주하는 권력의 특정한 기술이다.”[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269. 번역은 약간 수정했으며, 강조는 인용자가 덧붙인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규율 권력이 수행하는 예속적 주체화의 쟁점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철폐나 국가권력의 장악 및 국가장치의 해체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푸코에게서 규율 권력을 비롯한 권력의 문제란 광기, 의학, 감옥 등등의 문제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들과 권력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문제이며, 이는 어떠한 이론 체계도역사철학도, 일반적인 사회이론 혹은 정치이론에서도다루지 못했던 문제였다. 달리 말하면,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하여 보편적인 해방의 정치를 내세우는 정치 및 이론이 외면하고 주변화했던 문제였으며, 푸코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크게 실망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문제들의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IV. 비판적 고찰

 

1. 국가장치의 문제

 

이제 결론 삼아 푸코의 분석 및 문제제기에 대해 몇 가지 비판적인 논평을 제시해보고 싶다. 알튀세르의 국가장치 개념에 대해 푸코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점은, 왜 알튀세르가 국가장치라는 단일한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AREAIE로 구분했는가 하는 점이다. 푸코는 이런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국가장치라는 단일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 개념이 권력의 복수성을 제대로 사유하게 해주지 못할뿐더러 제도나 국가장치의 수준보다 훨씬 더 심층적인 곳에서 작동하는 미시물리학적인 권력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그것을 전화하거나 제거하는 데도 쓸모가 없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AREAIE를 구별한 핵심 이유는 푸코가 국가장치라는 개념을 비판하면서 제기하는 이유들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알튀세르는 자유주의적-부르주아적 관점에서 볼 때 공적 영역에 속하는 제도들로 구성된 ARE의 작동만으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왜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는지,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가 왜 굳건하게 관철되는지 설명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그것을 넘어서 정치권력의 작용이나 계급적인 지배와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이른바 사적 영역에서도 국가장치로 여겨지지 않는(또한 법적제도적으로 속하지도 않는) 국가장치들을 통해 예속적 주체화의 권력이 관철되어야 계급적 지배는 (상대적으로) 공고히 유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AIE 개념의 역할이다. 따라서 AREAIE 구별의 첫 번째 논점은 푸코와 마찬가지로 권력의 본질은 법적인 금지나 허가 또는 부정이나 인정에 있지 않으며, 권력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법적 구별을 가로질러 작동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논점은, 따라서 권력은 사람들이 흔히 권력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국가 제도 내지 공적 영역을 넘어서 그것보다 심층적인 영역에서 미시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푸코는 이를 규율권력이라고 불렀지만, 알튀세르는 그것을 AIE를 통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권력의 문제 및 지배의 문제가 결코 국가의 차원, ARE의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실천적으로도 매우 중대한 문제인데, 왜냐하면 알튀세르가 보기에 AIE 및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문제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논문 속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재생산에 대하여󰡕에 포함된 한 대목에서 레닌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레닌]의 끈질긴 본질적 고심은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 관련되었다. ...... 억압 장치를 파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 또한 파괴하고 대체해야 한다.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을 긴급히 정착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레닌이 옳았듯이, 혁명의 미래 자체가 문제된다. 왜냐하면 옛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은 교체하는 데 지극히 오래 걸리고 힘들기 때문이다. ...... 각각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속에 새로운 혁명적 정책을 적용하기 위해, 요컨대 모든 소비에트 시민들의 활동과 의식 속에 새로운 국가 이데올로기인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능력 있고 혁명적으로 충성스러운 조직원들을 양성해야 한다.[루이 알튀세르, 󰡔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7, 152-53.]

 

알튀세르는 중국의 문화혁명에서 더 거대한 규모로 제기되는 정치적이론적 쟁점도 바로 레닌의 이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중국공산당은 중국에서 사회주의를 강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그 장래를 공고히 하고 모든 퇴보의 위험에 맞서 사회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혁명과 경제적 혁명에 대해 제3의 혁명,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중국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이라고 부른다.”[Louis Althusser, “Sur la révolution culturelle”, op. cit., p. 6. 강조는 원문.] 이러한 문제설정은 푸코가 규율기술이 수행하는 예속적 주체화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조건을 이루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한다고 해서 또는 사회주의 생산관계 및 소유관계를 확립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알튀세르는 푸코와 달리 국가 권력의 민주주의적 통제, 생산관계 및 소유관계의 사회주의적 재편이 이데올로기적 예속화의 문제(푸코에게는 규율권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민주주의적으로 또한 변혁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보는 셈이다.[다른 식으로 말해 거시 권력과 미시 권력 사이에 기능적 환원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미시적 규율권력의 작용이 거시적 권력관계의 변화나 생산관계의 변화로 인해 소멸되지 않듯이 규율권력에서의 변화나 개혁이 후자의 변화나 개조를 산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고심은 이 문제를 새로운 국가 이데올로기인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 곧 본질적으로 예속적 주체화를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의 작용을 이번에는 모순적이게도 해방적 주체화를 위해 작동시켜야 한다는 점이었으며,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개념화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었다.[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앞의 글 참조.]

 

2. 예속적 주체화의 문제

 

따라서 첫 번째 쟁점은 예속적 주체화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푸코는 한 대담에서 알튀세르와 라캉, 그리고 푸코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니며, 만약 자신들을 구조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다면, 그것의 핵심 논점은 데카르트 이래로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칸트 이래로) 근대 철학의 핵심 원리로 작용해온 주체 개념, 곧 주권적 주체 내지 구성적 주체 개념을 문제 삼고 비판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알튀세르와 라캉, 그리고 나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난 15년간 구조주의자라고 불려온 우리들 사이에는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이 핵심적인 수렴 지점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데카르트로부터 우리 시대까지 프랑스 철학에서 결코 단념하지 않았던 위대하고 근본적인 기본 원리인, 주체의 문제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입니다. (...) 이러한 분석들 모두가 1960년대에는 어느 정도 구조주의라는 용어로 요약되었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구조주의 혹은 구조주의적 방법은, 훨씬 더 근본적인 것, 즉 주체의 문제를 재평가하는 것에 대한 확인이자 그러한 문제제기의 기반으로서 작동했을 뿐입니다.[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60~61.]

 

이는 데리다도 한 대담에서 지적했던 점이고,[이 세 담론(라캉, 알튀세르, 푸코)과 그들이 특권화하는 사상가들(프로이트, 마르크스, 니체)에서 주체는 재해석되고 복원되고 재기입될 수 있으며, 분명 일소되지는 않습니다.” Jacques Derrida, “Manger bien ou le calclu du sujet”, in Après le sujet qui vient: Cahiers confrontation, no. 20, 1989, p. 45.] 앞에서 본 것처럼 발리바르 역시 철학적 구조주의라는 이름으로 알튀세르와 라캉, 푸코를 묶으면서 동의했던 점이다.[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 학계의 현대 프랑스 철학 수용의 맥락에서 탄생한 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분류법이 우리나라에서 자명한 진리처럼 통용되는 것은 문제적이다. 이러한 분류법의 발생과 용법, 그 난점에 대한 검토는 독자적으로 다뤄볼 만한 주제다. 포스트 담론의 국내 수용에 관해서는 진태원, 포스트담론의 유령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편, 󰡔민족문화연구󰡕 57, 2012 참조.] 그런데 알튀세르가 이를 쇄신된 이데올로기 개념, 특히 호명 개념을 통해 해명하려고 했다면, 푸코는 이러한 예속적 주체화의 문제를 규율권력의 문제로 사고하고자 했다. 푸코가 여러 차례 강조하다시피 규율권력은 정신이나 관념, 표상에 작용하거나 그것을 동원하는 권력이 아니라 오로지 신체들에 대해 작용하는 권력이다. 더욱이 푸코가 규율권력의 복수성과 국지성, 미시성을 강조하면서 염두에 둔 점은 규율권력에 따라 이루어지는 예속적 주체화의 작용이 국가(장치)를 통해서 작동하지도 않을뿐더러 국가(장치)나 계급 권력 또는 계급 지배 같은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이 해명하려고 하는 예속적 주체화보다 훨씬 다양하면서 훨씬 더 심층적인 곳에 뿌리를 둔 예속화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푸코가 보기에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호명 같은 개념을 통해 해명하려고 했던 예속화의 문제는 단면적일뿐더러 어떤 의미에서는 도착적인 것이었을 수 있다. 이것이 단면적인 이유는, 자본주의적인 계급 지배를 정당화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예속적 주체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이 도착적일 수도 있는 이유는,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호명 개념을 통해 해명하려고 했던 예속적 주체화는 사실은, 계급 지배에 대한 종속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주체들을 만들어내는 작용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명에 의한 예속적 주체화를 예속화의 핵심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그것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 또는 그 바깥에서 비가시적으로 진행되는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예속화를 배제하거나 몰인식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반면 푸코는 규율 권력 개념을 통해 성적 예속화, 광인들의 정신의학적 예속화, 학생들의 규범적 예속화와 같이, 계급 지배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예속화 작용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예속화는 경제적으로 기능적인 예속화를 넘어서 그러한 예속화에서 배제된 더 근원적인 예속화 작용들을 포함하고 있다.[이점에서 보면 푸코의 대표적인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은 󰡔비정상인들󰡕이다.] 사실 푸코는 규율권력의 특징 중 하나를 여백”(marges)이나 잔여”(résidus)를 만들어내는 데서 찾는다. 곧 규율화된 군대의 출현 이후 비로소 탈영병이라는 존재가 생겼으며, 학교규율이 정신박약을 출현시켰고, “비행자”(非行者, délinqants)를 만들어내는 것은 경찰의 규율이다. 그리고 정신병자”(malade mental)잔여 중의 잔여, 모든 규율의 잔여이며, 한 사회에서 발견될 수 있는 학교, 군대, 경찰 등의 모든 규율에 동화 불가능한 자[Michel Foucault, Pouvoir psychiatrique, p. 56; 󰡔정신의학의 권력󰡕, 92. 번역은 약간 수정.]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푸코의 규율권력이 흥미롭고 독창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고유한 상상적인 차원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는 푸코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체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뜻한다. 푸코적인 개인들은 정신이나 의식만이 아니라 욕망이나 상상, 사랑과 미움 같은 것을 지니고 있지 않은 존재자들이다. 󰡔감시와 처벌󰡕의 유명한 한 문장에서 말하듯 정신은 신체의 감옥인 것이다. 따라서 권력은 신체가 더 효율적이고 유능해지도록 규범에 따라 조련하고 길들이는 기술이지, 설득하거나 위협하고 가상을 부여하거나 욕망을 자극하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피노자주의자이자 프로이트주의자로서 알튀세르는 인간의 상상적인 차원을 배제하고서는 인간의 실존 및 행동 방식만이 아니라 정치적 지배의 작동 방식을 설명할 수 없다고 느꼈으며, 더 나아가 정치적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스피노자적인 의미에서 상상계로서의 이데올로기는 개인들만이 아니라 계급을 비롯한 집단이 집단으로서 형성되고 행위하기 위한 근본 조건인 것이다.[진태원, 스피노자와 알튀세르: 상상계와 이데올로기, 앞의 책 참조.]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알튀세르에게 푸코의 권력론의 맹점은 (계급) 권력의 비대칭성이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사고하지 않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푸코는 권력을 소유 대상으로 간주하는 관점에 비판하면서 권력은 결코 일정한 수의 사람들에 의해 일정한 관점에서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 “권력의 중심에는 전쟁 같은 관계가 존재하며, 따라서 권력은 전적으로 한쪽 편에 놓여 있지 않다.”고 말한다. 나중에 푸코가 경합”(agon)이라고 부른 관계, 곧 대등한 위치에 있는 행위자들 사이의 전략적 갈등관계가 푸코가 권력 관계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관점이었다. 하지만 이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존재론적으로 상이한 계급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다. 이는 두 계급의 역사적 형성 과정 자체가 상이하며, 권력 관계에서도 불평등할뿐더러 각자가 수행하는 계급투쟁의 목표와 방식도 상이하기 때문이다. 곧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는 것을 추구하지 않을뿐더러, 계급 관계 자체의 철폐를 존재의 근거로 삼는 계급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대칭성을 상정하지 않고서는, 나중에 푸코 자신이 구별했다시피, 권력과 지배를 구별할 방법도 없으며, 피지배자들, 예속적인 사람들 사이의 연대나 접합도 사고하기 어려울 것이다.

 

3. 잔여

 

그런데 아마 이러한 비판적 토론에는 몇 가지 잔여들이 남게 될 것이다. 알튀세르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론에서 명시적으로 비정상적인 존재자들에 관해, 그들의 예속 및 배제양식에 대해 분석한 적이 없다고 해도, 알튀세르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서 바로 광인의 이름으로 이를테면 호명될 권리에 대해 주장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푸코의 이름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기소되어 면소 판결의 혜택을 입지 않은 자는, 물론 중죄재판소에 공개 출두해야 하는 힘든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 인생에 대해, 자기가 저지른 살인과 자신의 앞날에 대해, 자기 이름으로 그리고 직접 자기 자신이 공개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설명하고 해명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권리와 특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면소 판결의 혜택을 입은 살인자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고 지금까지 각자가 나를 대신해 말할 수 있었고 또 사법적 소송 절차가 내게 모든 공개적인 해명을 금지했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공개적으로 나 자신을 해명하기로 작정한 것이다.[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이매진, 2008, 52. 강조는 알튀세르.]

 

나는 푸코가 저자라는 아주 근대적인 개념에 대해 비판을 하고 나서, 마치 내가 어두운 감방의 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푸코 역시 감옥에 갇힌 자들을 위한 투쟁 활동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푸코의 깊은 겸허함을 좋아했다. ...... 지극히 개인적인 이 책을 독자들 손에 맡기는 지금 역시, 역설적인 방법을 통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익명성 속으로 결정적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즉 이제는 면소 판결의 묘석 아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사실들을 출판함으로써 말이다.[루이 알튀세르, 같은 책, 278~79. 강조는 알튀세르. 이 문제에 관한 더 상세한 논의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한국어판 서문으로 작성된 필자의 이것은 하나의 자서전인가를 참조하라.]

 

다른 한편으로 푸코의 권력론에 상상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푸코는 상상적인 것에 준거하지 않고서도 가능성 내지 잠재성의 차원을 권력 개념에 도입한 것은 아닌가? 푸코는 주체와 권력(1982)에서 권력을 행위에 대한 행위”(action sur action), “가능한 행위들에 대한 행위들의 집합”[Michel Foucault, “Pouvoir et le sujet”, in Dits et écrits, vol. II, “Quarto”, pp. 1055~56. 강조는 푸코.]으로 재정의함으로써, 권력관계를 어떤 피동적인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도구적 기술관계와 구별되는 일정한 능동성 또는 행위 능력을 지니고 있는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로 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부터 권력과 지배를 개념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게 되는데, 이에 따르면 권력은 자유들 사이의 전략적 게임”[Michel Foucault, “L’éthique du souci de soi comme pratique de la liberté”, in Dits et écrits, vol. II, “Quarto”, p. 1547.]을 의미하게 되며, 지배는 관계의 두 항 사이에 존재하는 비가역적이고 불평등한 상태를 가리키게 된다. 아울러 푸코가 완전히 다른 목표와 쟁점을 지닌 봉기와 혁명의 절차에서도 품행상의 봉기, 품행상의 반란이라는 차원이 늘 존재했다는 것”[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314.], 곧 대항품행(contre-conduite)모든 봉기와 혁명의 조건이라는 것을 제시한 것도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였다.[푸코 권력론의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서는 진태원, 규율권력, 통치, 주체화: 미셸 푸코와 에로스의 문제, 󰡔가톨릭철학󰡕 29, 2017 참조.]

따라서 이러한 대차대조, 비판적 상호 토론은 여전히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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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의 철학] (배세진 옮김, 오월의 봄) 이 얼마전에 출판됐습니다.


1995년 우리말로 처음 번역된  이 책은 그동안 오랫동안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훨씬 두툼한 책으로 


다시 출판되었습니다. 2011년 프랑스에서 이 책의 2판이 출간될 때 발리바르가 부친 2판 [서문] 및 [부록]과 


께 역자가 선별한 발리바르의 중요한 논문들이 부록으로 추가되어, 프랑스어판과 또 다른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한국어판 [마르크스의 철학]에 해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쓴 글을 여기에 올려둡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많이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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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자인가?: 하나의 과잉결정에서 다른 과잉결정으로

 

 

1


에티엔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자인가? 2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초판이 번역된 바 있는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의 철학의 새로운 번역본에 대한 해제를 쓰면서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답변이 가능할 것이며, 그 답변에 대한 그럴 듯한 이유들이 각각 존재할 것이다.


우선 발리바르는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답변할 수 있는 이유들이 존재한다.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다양한 답변을 산출할 수밖에 없는 매우 논쟁적인 (그리고 이제는 별로 관심을 끌지도 않는) 질문이라는 점을 일단 제쳐둔다면, 발리바르 자신이 예전에 (그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시기의 저작인) 역사유물론 연구(1974)[Etienne Balibar, Cinq études du matérialisme historique, François Maspero, 1974(한국어판: 역사유물론 연구, 이해민 옮김, 푸른산, 1989).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역사유물론 5연구인데, 한국어판에는 3장 부록인 <레닌, 공산주의자, 이민Lénne, communistes et l’immigration>5<마르크스주의 이론사에서 유물론과 관념론Matériaisme et idéalisme dans l’histoire de la théorie marxiste>이 번역에서 빠졌다.] 민주주의와 독재(1976) [Etienne Balibar, Sur la dictature du prolétariat, François Maspero, 1976(한국어판: 민주주의와 독재, 최인락 옮김, 연구사, 1988). 이 책의 원래 제목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에서 제시했던 관점에 따른다면,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착취 과정 및 계급지배의 근거로서) 잉여가치 분석과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사회성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990년대 이후 이 두 가지 요소는 더 이상 발리바르의 이론적 작업의 근간을 이루지 않으며, 실로 그 용어들 자체가 그의 저술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정치경제학 비판 및 사회주의혁명론이 그의 작업의 중심을 이루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할 만하다. 아울러 이제는 비단 마르크스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웬만한 인문사회과학도라면 흔히 사용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용어 자체도 그의 저술에서는 매우 드물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대신 지난 30여 년간 전개된 발리바르의 작업은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추출해낸 평등자유명제,[Etienne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UF, 2010. 발리바르의 평등자유명제에 대해서는 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을 위하여(그린비, 2017)4장 및 5장을 참조.] 시민권/시민성citizenship과 국민사회국가 이론,[Etienne Balibar, 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La Découverte, 1992 우리, 유럽의 시민들? 세계화와 정치의 재발명(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0), 정치체에 대한 권리(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1) 등을 참조.] 인종주의와 국민주의/민족주의nationalism 분석,[Etienne Balibar & Immanuel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e: Les identités ambiguës, La Découverte, 1988.] 극단적 폭력과 시민다움 개념을 중심으로 한 폭력에 대한 분석,[Etienne Balibar, Violence et civilité, Galilée, 2010; 부분 번역이 수록되어 있는 한국어판으로는 폭력과 시민다움(진태원 옮김, 난장, 2012)을 참조.] 그가 인간학적 차이들이라고 부르는 성적 차이, 지적 차이, 문화적 차이 등에 대한 인간학적 분석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특히 Etienne Balibar, Citoyen sujet et autres essais d’anthropologie philosophique, PUF, 2011 참조.현실 정치에 관해서도 유럽 공동체 구성이라는 쟁점을 중심으로 국민적 시민성에 기반을 둔 근대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관국민적 시민성에 대한 모색 또는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대한 탐구가 발리바르 이론적 작업의 초점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유럽 공동체 구성과 관련된 분석으로는 우리, 유럽의 시민들?이외에도 Etienne Balibar, Europe: crise et fin?, Le Bord de l’eau, 2016을 참조.] 그렇다면 발리바르는 훌륭한 민주주의 이론가일 수는 있어도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반대로 발리바르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들도 적지 않다. 1990년대 이후 발리바르 작업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주제(잉여가치, 자본, 사회계급, 프롤레타리아 독재, 공산주의 )가 더 이상 전면에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이는 이 책 및 이 책에 수록된 부록들이 입증해주듯이 그릇된 인상이다),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는 늘 발리바르 작업의 주요 준거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발리바르 폭력론의 출발점과 중심에는 마르크스(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의 폭력론의 문제의식은 마르크스주의가 폭력 문제와 맺고 있는 역설적인 관계[에티엔 발리바르, 폭력과 시민다움, 15]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곧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의 착취를 둘러싼 계급투쟁이 현대 정치의 조건과 쟁점을 구성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발리바르는 이를 루소 등이 대표하는 근대 정치(정치의 자율성)와 구별되고 또한 그것을 넘어서는 마르크스주의 정치(정치의 타율성)의 기여라고 밝힌 바 있다. <정치의 세 개념: 해방, 변혁, 시민다움>,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최원 옮김, 도서출판b, 2007. 이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은 <정치의 세 개념: 해방, 변혁, 시민인륜>인데, 이 중 시민인륜시민다움으로 수정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와 폭력이라는 대립물들의 결합이 함축하는 정치의 비극적 차원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으며, 이는 20세기 사회주의혁명의 실패 및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세계를 변혁하지못한 사회주의혁명들의 무기력의 근본 원인들 중 하나(또한 그 수수께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과관계에는 아무런 합리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는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혁명들이 발생했던 폭력 상황의 반작용 및 도착적 효과를 이론적·실천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절대적 무능력에 있다고 보는 것이 개연성이 있다. 혁명운동이 직면했던 반혁명적 폭력만이 아니라 혁명운동 자신이 행사했던 폭력, 특히 혁명 국가의 틀 속에서 정당화되고 제도화되었고 혁명의 내부의 적을 일소하기 위해 확장됐던 폭력 같은 것들이 바로 그 반작용 및 도착적 효과들인데, 이것은 장기적인 외상적 효과를 낳았지만 대부분 그 자체로 부인되곤 했던, 진정으로 자살적인 과정이었다. [Etienne Balibar, Violence et civilité, op. cit., p.157.]


따라서 발리바르가 보기에 새로운 혁명(만약 이런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면)의 근본 쟁점 중 하나는 어떻게 혁명운동을 내부로부터 문명화할 것인가, 어떻게 내가 시민다움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반폭력을 사회 변혁의 폭력의 중심에 도입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Etienne Balibar, Ibid. p.158.]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발리바르 작업의 지속적인 주제 중 하나가 공산주의의 문제라는 점 역시 발리바르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다고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유력한 근거가 된다. 역사유물론 연구민주주의와 독재같은 1970년대 저작에서는 사회주의와 구별되는 공산주의에 대한 모색이 발리바르 공산주의론의 주요 주제였다면, ‘현실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한 이후에는 역사적 공산주의의 형상들(중세 급진 프란치스코파의 공산주의, 근대 부르주아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적 공산주의)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산주의, 예측 불가능하게 생성되고 있는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그 핵심을 발리바르는 공산주의는 또한 일종의 개인주의이기도 하다는 점을 극한적으로 사고하는 것[Etienne Balibar, “Quel communisme après le communisme?”, in Eustache Kouvélakis ed., Marx 2000: actes du Congrès Marx international II, PUF, 2000, p.82. 강조는 발리바르. 서교인문사회연구실에서 운영하는 웹진 인무브에서는 이 글을 포함하여 2000년대 이후 공산주의에 관한 발리바르의 여러 글들을 번역·소개한 바 있다. 인무브 홈페이지(http://en-movement.net)발리바르, 공산주의를 사고하다카테고리 참조.]에서 찾는다)이 중요한 주제가 된다. 더 나아가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보다는 누가 공산주의자인가?”라는 질문의 우위 아래에서 공산주의를 사고하는 것 [Etienne Balibar, “Remarques de circonstance sur le communisme”, Actuel Marx, no. 48, 2010 참조.] 또는 말하자면 외적인 공산주의(과거의 사회주의 국가나 공산당 같이 공산주의라는 이름 아래 조직된 현실적 준거에 기반을 두는)보다는 내적인 공산주의(공산주의라는 명칭을 고수하는가 여부와 무관하게 환원 불가능한 복수의 해방들을 옹호하고 그 운동들에 참여하는)를 추구하는 것이 발리바르 작업의 또 다른 중심축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Etienne Balibar, “Communisme et citoyenneté: Sur Nicos Poulantzas”,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op. cit. 참조.]


그런데 우리가 발리바르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어떤 마르크스주의자인가? 우리는 어떤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 발리바르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한편으로 발리바르는 지속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주제들을 탐구하고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개 마르크스주의의 주제가 아니라고 간주되는 인권의 정치, 시민성/시민권, 국민사회국가, 인종주의, 국민주의, 이주, 국경의 민주화 같은 주제들을 면밀하게 탐구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웅변적으로 집약해주는 글이 <공산주의와 시민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풀란차스Nicos Poulantzas에 관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그는 마르크스주의자, 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마르크스주의적인 주제들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면서 역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로 몰두하는 주제들(노동운동, 자본의 착취,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등)에는 너무 적은 논의를 할당하는 사상가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는 일종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역시, 만약 그렇다면 그는 어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질문들은 발리바르는 여전히 알튀세리앵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는 어떤 알튀세리앵인가라는 질문과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의 내용 및 편제와 관련된 핵심 논점에 다가서게 된다.

 

2

 

주지하다시피 발리바르는 20세기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사람이었던 루이 알튀세르의 제자이자 동료였으며, 알튀세르 사후에는 그의 사상의 주요 계승자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알튀세르 사상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그가 20세기 후반의 마르크스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사상은 정확한 의미에서 학파를 형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알튀세르 사후死後는 물론이거니와 생존 당시에도 사실이었다. 학파를 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알튀세르는 그의 사상의 전성기에서부터 늘 여러 방향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가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고 의심하는 공산당 내부의 비판가들이 한편에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그가 너무 공산당에 가까운 마르크스주의자, 따라서 기껏해야 타협적인 인물이거나 아니면 체제 옹호자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는 이들, 더욱이 과거 그의 제자들이었던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같은 젊은 마오주의 지식인들이 있었다. 알튀세르는 1970년대 내내 그의 작업을 충실하게 따르는 몇몇 제자들(발리바르, 미셸 페쉬Michel Pêcheux, 도미니크 르쿠르Dominique Lecourt )과 더불어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정신병과 싸우면서 이들의 비판에 맞서 자신의 작업을 추구해야 했다.


그렇다면 발리바르 자신은 계속 충실한 알튀세리앵으로 남아 있었는가? 어떤 점에서는 그렇고 어떤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976년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 대회를 통해 이루어진 유로코뮤니즘으로의 전환, 곧 프롤레타리아 독재 강령의 폐기와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 노선의 채택은 알튀세르의 최후의 이론적정치적 투쟁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옹호하면서 당의 새로운 유로코뮤니즘 노선에 맞서 싸웠는데,[Louis Althusser, Le 22e Congrès du Parti Communiste Français, François Maspero, 1977; Ce qui ne peut plus durer dans le parti communiste, François Maspero, 1978 참조. 이 글들은 다음 책에 편역되어 있다. 루이 알튀세르,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이진경 옮김, 새길, 1992. 또한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앞의 책 참조.] 이러한 공동의 투쟁 내에 이론적 갈등의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간단히 말하면 발리바르가 보기에 알튀세르는 공산당을 비롯한 혁명 세력이 국가 바깥에 존재하고 또한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혁명 세력의 외재성), 이는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혁명 세력 자체가 이데올로기 내에서만 구성되고 재생산될 수 있다는 알튀세르 자신의 테제와 모순되는 것이었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이러한 이론적 입장의 차이는 1980년대 이후 발리바르 작업의 방향을 상당 부분 규정하게 된다. 우선 알튀세르 자신은 국민 형태, 국민국가, 국민주의/민족주의 및 인종주의 문제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에 비해 발리바르는 이매뉴얼 월러스틴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바 있다. [Etienne Balibar & Immanuel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e: Les identités ambiguës, op. cit.] 이는 “‘일반적자본주의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다수의 자본주의들 사이의 해후와 갈등을 통해 만들어진 역사적 자본주의만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편사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독특한 역사성들만 존재한다는 발리바르의 새로운 관점에 입각한 것이다.


또한 알튀세르는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의 마르크스를 따라 평등자유를 지배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인 법적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한 바 있지만, 발리바르 자신은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처음 발표한 <평등자유명제>라는 글에서 프랑스혁명 당시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 텍스트에서 표현된 평등한 자유의 이념은 (폄하하는 의미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치부될 수 없으며 프랑스혁명 이후 모든 해방운동의 상징적 준거로 작용해왔다는 점을 평등자유égaliberté’라는 신조어를 통해 강조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역시 그것이 하나의 해방운동인 한에서 평등자유명제를 기반으로 삼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알튀세르의 작업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폭력의 문제, 특히 극단적 폭력과 시민다움의 문제가 1990년대 이후 발리바르 사상의 주요한 작업장중 하나가 된다는 점 역시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발리바르가 알튀세르와 절단했다고 말해야 할까?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관계를 절단coupure의 관계로 지칭하는 것은 여러 모로 적절하다고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발리바르는 알튀세르 자신의 모순과 난점들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알튀세르가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제기하고 새로운 개념들을 고안하면서 독자적인 사상의 길을 개척해왔지만, 그의 작업의 저변에는 늘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을 전과학적인 것으로 또는 비유물론적인 것으로 배격하거나 폐기하기보다는(이것이 알튀세르나 발리바르가 사용하는 절단이라는 개념의 핵심 의미다) 바로 그 문제설정 위에서 알튀세르 자신의 이론적 작업의 한계 및 아포리아, 그리고 공백을 분석하고 새로운 정세에 입각하여 그 문제설정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와 절단했다기보다는 단절했다(‘rupture’‘refonte’라는 의미에서), 또는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에 입각하여 그것을 부단히 개조해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하지만 발리바르의 작업을 알튀세르와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여두고 싶다. 발리바르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독창적이고 폭넓은 사상가다).


이는 이 책의 주제 및 편제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점이다. 나는 특히 네 가지 측면을 지적해두고 싶다.

 

1) 절단과 단절이라는 주제


우선 절단과 단절이라는 주제가 주목할 만하다. 주지하다시피 알튀세르 작업의 출발점에는 인식론적 절단이라는 주제가 존재한다. 간단히 말한다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 청년 마르크스와 장년 마르크스 사이에는 인식론적 절단이 존재한다는 테제를 제시함으로써 당대에 큰 파문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초기 마르크스, 독일 이데올로기이전의 마르크스는 아직 마르크스가 아닌 마르크스, 곧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문제설정에 사로잡혀 있는 좌파 청년 헤겔주의자로서의 마르크스였다. 독일 이데올로기가 하나의 단절 지점이 되는데, 이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생산양식, 이데올로기 같은 역사유물론의 핵심 개념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자본을 통해 마르크스는 비로소 마르크스로서의 마르크스가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마르크스 역시 완전한 마르크스가 아니라, 여전히 불완전하고 공백들 및 애매성들을 포함하고 있는 마르크스라는 점이다. 따라서 마르크스 사상이란 청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단일한 총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성숙한 마르크스의 사상 역시 완성된 어떤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 때문에 지속적인 개조 작업(알튀세르가 마르크스로 돌아가기라고 부른)의 필요성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알튀세르의 기여는 정초자 내에 균열과 갈등, 심지어 모순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비판가들은 이러한 균열이나 모순을 마르크스 사상을 기각하고 부정하기 위한 논거로 삼는 반면, 마르크스주의 옹호자들은 어떻게든 이러한 균열과 모순을 축소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애썼다. 반면 알튀세르는 그것을 마르크스 사상의 본질적 사실로 간주했다. 더욱이 그는 이러한 균열이나 공백, 갈등을 마르크스 사상의 역사성의 문제와 결부시켰다. 곧 우리가 마르크스 사상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불변적이거나 동질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초기부터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정정하면서 변화해나간 미완의 과정의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러한 마르크스 사상의 역사성은, 넓은 의미의 노동자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당대의 해방운동과의 부단한 조우의 산물이었다.


발리바르는 이 책에서 알튀세르의 절단의 문제설정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절단 내에서 두 차례의 단절이 존재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1848년 유럽혁명의 실패와 1871년 파리 코뮌의 비극적 경험의 결과였으며, 이러한 정치적역사적 사건들은 마르크스의 이론적 작업의 중요한 정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마르크스 사상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발리바르의 기본 관점이다. 이런 점에서 발리바르는 충실한 알튀세리앵으로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 대한 독해


내가 볼 때 이 책의 중요한 이론적 기여 중 하나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이하 <테제>로 약칭)에 대한 매우 심층적이고 독창적인 독해에서 찾을 수 있다. <테제>는 수많은 논평과 분석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발리바르는 이 책의 2<세계를 변화시키자: 프락시스에서 생산으로>에서, 특히 새로 추가된 <재판 후기>에서 이 <테제>인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관계론적 존재론 또는 관개체성transindividuality에 입각한 철학적 인간학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파르메니데스의 비의적秘義的 경구나 스피노자의 이른바 평행론명제 또는 비트겐슈타인의 아포리즘과 비견될 만한 서양철학사의 기념비적 텍스트로 격상시키고 있다.


<재판 후기>에서 제시된 <테제>에 대한 발리바르의 재해석은 문헌학적 엄밀함이라는 점에서, 또한 텍스트가 지닌 다양하고 이질적인 의미들 및 그 갈등적 양상을 극단에 이르기까지 발굴해낸다는 점에서 자크 데리다의 탈구축적 독해를 연상시킨다. <테제>에 대한 대개의 해석은 유명한 열한 번째 테제를 중심으로 삼지만, 발리바르 독해의 초점은 인간 본질을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로 규정하는 여섯 번째 테제에 놓여 있다. 이는 여섯 번째 테제에서 규정하는 인간의 본질을 혁명적 프락시스의 관점에서 장래 도래할 객관적 가능성으로 전환하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해석과 더불어 이론적 반인간주의의 관점에서 여섯 번째 테제를 인간의 본질에 관한 종래의 철학적 담론을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으로 대체하려는 것으로 이해하는 알튀세르의 해석을 넘어서기 위한 것이다.


발리바르는 마르크스가 앙상블ensemble’이라는 프랑스어 단어를 인간 본질에 대한 규정 속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지금까지의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이 포착해내지 못했고 또한 포착할 수 없었던 여섯 번째 테제의 세 가지 실정적 의미, 곧 사회적 관계들의 수평성’ ‘계열성’ ‘다수성이라는 의미를 이끌어내고 있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는 서양 형이상학에서 상속받은 개인성과 주체성이라는 다양한 통념들에 대한 하나의 일반적 대안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를 존재-신학적인 보편 이론으로 체계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발리바르가 스피노자를 염두에 두면서 말하듯이 <테제>속성들의 다수성을 갖고서 하나의 총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이 속성들의 다수성을 통합하는 대신에 (……) 역사적 변환과 변형의 한계 지어지지 않은 장을 열어젖[힌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알튀세르가 스피노자 철학의 유례없는 독창성이라고 말한 바 있는 경계 없는 전체un Tout sans clôture”[Louis Althusser, Éléments d'autocritique, Hachette, 1974]의 사상을 <테제>에서 더 풍부하게 이끌어내려는 발리바르의 의도를 표현해준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테제>가 표현하는 철학적 인간학의 세 가지 아포리아를 지적한다.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로서의 인간 본질에 대한 정의에서 나타나는 집합성과 개인성 또는 보편성과 차이들의 내적 연관성(따라서 정의 그 자체의 차원에서조차 인간이 아니라 인간들이라는 복수의 표현이 요구된다)과 관련된 아포리아는 또한 개인주의이기도 한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발리바르의 관심과 연결되어 있다. 아울러 헤겔의 내적 관계들이라는 개념과 관련된 두 번째 아포리아는 기계적이고 자연주의적인 표상 그 자체로 단순히 되돌아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정신주의적인 동시에 목적론적인 이런 헤겔의 구축물을 비판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데, 이는 <테제>에서, 또한 독일 이데올로기의 중심 개념 중 하나인 ‘Verkehr’ 개념에서 20세기 후반 유럽 비판철학의 두 전통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및 독일의 상호주관성 이론의 난점을 넘어설 수 있는 이론적 잠재력을 발굴하려는 노력의 표현이다. 하지만 마르크스 자신의 이론에는 이러한 잠재력과 더불어 본질주의적인 노동의 인간학의 한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는 아포리아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발리바르는 세 번째 아포리아에서 마르크스의 <테제>가 사회적 관계의 복수성과 이질성을 사고할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동시에 이후의 이론적 작업에서 이를 생산관계로 환원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그 자신의 관개체성 이론에 기반을 둔 <테제>에 대한 발리바르의 독해는 한편으로 기계적 인과성과 표현적 인과성을 넘어서는 구조적 인과성에 입각하여 역사유물론을 재구성하려는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을 계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알튀세르 자신이 이론적 반인간주의라는 이름 아래 배제했던 철학적 인간학의 잠재력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이데올로기와 물신숭배


<테제>에 대한 재독해와 더불어 이 책의 또 다른 백미는 물신숭배 개념에 대한 독창적인 확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점에서 이 책은 프랑스어 원서가 갖지 못한 독자적인 이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에는 모두 4편의 글로 이루어진 부록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중 <오히려 인식하라>라는 짧은 글을 제외한 나머지 세 편의 글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물신숭배 이론과 관련되어 있다. 이 글들을 함께 읽어보면, 1993년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이래 발리바르의 이론적 작업에서 물신숭배 이론은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지속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발리바르 이론적 작업의 도둑맞은 편지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의 중요성을 포착하고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이를 체계적으로 배열하여 포함시킨 옮긴이의 통찰력 덕분에 우리는 발리바르가 (어떤) 마르크스주의자인지, 또한 어떤 알튀세리앵인지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물신숭배론 이론은 주로 죄르지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발원한 베버 마르크스주의’(모리스 메를로-퐁티) 전통에서 발전되었다. 루카치 자신의 사물화Verdinglichung’ 개념 자체가 물신숭배 이론에 대한 독창적인 재구성이거니와 그 이후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이론가들이 각자 나름대로 이 개념을 발전시켜왔다.[최근의 작업으로는 악셀 호네트, 물화, 강병호 옮김, 나남, 2015 참조.] 반면 알튀세르는 물신숭배 개념을 불신했는데, 이는 인간 노동의 산물인 상품들의 관계가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은폐하고 오히려 인간들의 관계를 지배한다는 물신숭배 이론의 기본적 틀 자체가 인간 대 상품의 대립이라는 소외론적 문제설정을 강하게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알튀세르는 물신숭배 이론을 발전시키는 대신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이데올로기 개념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바 있다.


반면 발리바르는 이 책의 본문 3장에서 물신숭배 개념에는 이데올로기 개념으로 환원할 수 없는 고유한 이론적 독자성 및 강점을 지니고 있음을 역설한 바 있다. 그리고 부록에 수록된 세 편의 글에서는 그 함의를 훨씬 더 풍부하고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잉여가치론으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의 이중적 성격 및 여기에 기반을 둔 일반화된 상품화로서의 자본주의라는 문제설정이며(<마르크스의 두 가지 발견’>),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의 일반화, 일반적 등가물의 구성을 상품들의 사회계약으로 재해석하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일반적 등가물이 화폐로 육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신비함의 성격을 화폐의 초과권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상품의 사회계약과 화폐의 마르크스적 구성>). 세계시장의 형성에 상응하며, 물질화되고 탈물질화(디지털화’)될 수 있는 표상력을 지니고 있고, 스스로 상품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화폐의 이러한 초과권력은 말하자면 국가의 주권적 권력으로 환원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종류의 주권적 권력[“‘주권자의 주권자로서 (특히 경제 위기의 시기 동안)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국가에 대한 우위를 점하는 주권적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주권적 권력은 살아 있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초객체적인 사물로 변형할뿐더러, 그 이전에 이러한 권력에 대한 인간 주체들/신민들subjects의 자발적 복종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초주체적 폭력을 산출하기도 하다. 화폐의 초과권력이 산출하는 극단적 폭력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물신숭배론에 대한 발리바르의 분석은 알튀세르와의 단절의 측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이데올로기에 관한 알튀세르의 문제설정과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다시 한 번 말해두지만, 이 때문에 절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양자는 모두 주체화/복종sujétion’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주체화/복종의 문제가 알튀세르(및 푸코)가 이론화한 예속적 주체화assujettissement’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에서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알튀세르 문제설정의 개조이자 확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자본주의의 역사성들



자본주의의 역사성들에 대해서는 더 간략하게만 언급해두겠다. 초기의 과잉결정surdétermination, overdetermination 개념에서 말년의 우발성의 유물론에 이르기까지 알튀세르의 이론적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선형적 목적론 내지 진화론적 목적론에서 벗어나 그 구체적 조건 속에서, 더욱이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해명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과잉결정 개념에 더하여 과소결정sousdétermination, underdetermination 개념을 사고하려는 노력이 그렇거니와, 기원의 우발성, (재생산) 과정의 우발성, 그리고 이행 자체의 우발성이라는 3중의 우발성의 관점에서 역사적 과정을 사고하려는 우발성의 유물론의 시도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이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우발성: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문제>, 진태원 엮음, 알튀세르 효과, 그린비, 2011 참조.] 이 책 4<시간과 진보: 또 다시 역사철학인가?>에서 발리바르가 세 가지의 인과성 도식(역사의 나쁜 방향,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에서 두 가지 사회성의 대립, 독특한 대안적 발전의 경로들)을 통해 마르크스의 저작들 안에서 역사적 인과성의 다양한 측면들을 발굴하고자 하는 것 역시 이러한 문제설정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수탈자의 수탈에 관하여>에서 연장된 사회 전쟁이라는 정치적 시나리오와 총체적 포섭/복종이라는 허무주의적 시나리오를 동시에 읽어내려는 노력에서도 엿볼 수 있는 점이다.


독특하고 환원 불가능한 자본주의의 복수적 역사성들에 대한 강조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따라서 새로운 (공산주의) 혁명의 가능성을 모색하되, 그것을 새로운 정세에 입각하여 마르크스(및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포함한 다른 사상가들)의 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독해를 통해 사유하려는 수십 년에 걸친 발리바르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3

 

이제 끝으로 우리가 처음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발리바르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인가? 그렇다면 그는 어떤 마르크스주의자인가? 나는 우리가 알튀세르의 과잉결정 개념을 다른 식으로 이해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주지하다시피 알튀세르는 왜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이었던 러시아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과잉결정 개념을 고안해냈다. 알튀세르의 논점은 사회주의혁명과 이행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좋은 측면에만 의지해서는 안 되고 나쁜 측면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또는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모순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모순만 사고해서는 혁명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사고할 수 없으며, 모순을 그것이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이 항상 다른 모순들 속에서만 표현되는지, 어떻게 이러한 다른 모순들이 기본 모순을 과잉결정하거나 과소결정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알튀세르 작업의 주요 측면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의미의 과잉결정 개념은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재건하거나 개조하려고 노력했던 거의 모든 연구자들의 공통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중심주의에서 벗어나되, 여전히 노동자운동의 중심성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운동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과의 접합이 논의의 초점에 있었다. 또는 학문적으로 본다면 어떻게 자본주의의 계급적 착취의 문제를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적인 지배, 생태계 위기의 문제, 인종차별주의 내지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등과 연결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중심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계급적 착취 및 지배 구조를 가부장제적인 여성 지배의 문제, 인종차별주의 및 민족주의 문제 또는 환경문제가 어떻게 과잉결정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다.


반면 내가 보기에 발리바르의 작업은 오히려 과잉결정 개념을 역의 방향에서 이해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곧 계급적 착취와 지배의 문제가 어떻게 가부장제적인 여성 지배 문제, 환경 문제, 인종차별 및 민족주의 문제 등에 의해 과잉결정되는가 여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계급적 착취 및 지배가 다른 문제들을 과잉결정하는지 탐구하는 것이 발리바르 작업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우리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또한 우리나라에서 목격하듯이 여성에 대한 지배 내지 혐오의 문제에서도 자본주의적 불평등 구조가, 가령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동고용의 차별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환경 문제에서도 자본 축적 운동에서 비롯되는 과잉개발과소비라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인종차별 내지 민족차별의 문제는 세계 경제 내부의 위계화된 노동 질서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극단적 폭력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폭력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쟁점과 문제들은, 고전적인 의미의 과잉결정 개념에 의거할 경우 그렇게 생각될 수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적 착취 및 지배의 문제를 해결해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잉결정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에 의거할 경우 마르크스주의에서 중시하는 자본주의적 계급착취와 지배의 문제는 더 이상 다른 문제들의 해결의 (유일한) 조건 내지 관건이 아닐뿐더러, 다른 문제들, 다른 쟁점들 내에서만, 그것들과 결부될 경우에만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동시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마르크스주의자, 동시에 민주주의자가 아닌 마르크스주의자, 동시에 환경운동가가 아닌 마르크스주의자, 동시에 인권의 정치가가 아닌 마르크스주의자는 존재할 수 없을뿐더러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쟁점을 해명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무력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바로 이러한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자이며,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마르크스는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려내는 마르크스보다 훨씬 불명확하지만,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적전통에서 제시했던 마르크스보다 훨씬 더 풍부한 그런 마르크스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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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경향시민대학에서 5월에 개설하는 <스피노자와 현대정치철학> 강의 안내글을 올렸는데, 


어떤 분이 댓글로 미리 읽어볼 만한 자료를 소개해달라고 해서 몇 편 글을 올립니다. 


이 글들은 대부분 제 서재에 올려둔 글이니까 쉽게 찾아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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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현재성>, {모색} 2호, 2001

http://blog.aladin.co.kr/balmas/446125

 

http://blog.aladin.co.kr/balmas/446221

 

http://blog.aladin.co.kr/balmas/446228

 

에티엔 발리바르 {스피노자와 정치} 용어해설<국가>

http://blog.aladin.co.kr/balmas/672710

 

용어해설<대중들/다중>

http://blog.aladin.co.kr/balmas/673544

 

용어해설<역량-권능/권력/권한>

http://blog.aladin.co.kr/balmas/674060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 󰡔철학논구󰡕

http://blog.aladin.co.kr/balmas/904248

 

<관계론, 대중들, 민주주의: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 󰡔시와반시󰡕

http://blog.aladin.co.kr/balmas/3425119

 

<대중의 정치란 무엇인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다중의 정치학에 대한 스피노자주의적 비판>, 

{을의 민주주의< 그린비, 2017 중 6장 수록



<정동인가 정서인가?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초보적 논의>, 󰡔현대시학󰡕

http://blog.aladin.co.kr/balmas/8386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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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낙 2018-04-25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글에 대한 흥미가 생기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시골아낙 2018-05-1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교수님 어제 경향신문 후마니타스, 스피노자 강의 너무 잘 들었습니다. 철학은 어렵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5주차 강의를 다 듣고 나면 스피노자의 옷깃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의 최고예요!!!!

balmas 2018-05-12 18:37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