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국프랑스철학회에서 68혁명 50주년을 맞아 연세대에서 "철학, 혁명을 말하다"라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는데, 


그때 발표된 글들을 묶은 책이 이학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이라는 글을 기고했고, 


그 이외에 사르트르, 라캉, 푸코, 들뢰즈, 데리다, 바디우와 68의 관계에 대한 글이 실려 있고 


68혁명운동 전공 역사학자와 페미니즘 연구자의 논문이 곁들여져 


68혁명과 프랑스철학의 관계를 다각도로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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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생각의 힘 출판사에서 출간될 루이 알튀세르의 유고작, [검은 소: 상상 인터뷰] 한국어판 해제를 올립니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의 철학] 번역자인 배세진 선생이 또 한 번 번역을 맡아 수고를 해줬습니다. 


2008년 이매진 출판사에서 나온 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 한국어판 해제를 썼는데, 


10년 만에 다시 알튀세르의 유고작에 해제를 쓰게 돼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앞으로 알튀세르의 유고작들이 더 많이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아직 교정이 다 끝나지 않은 글인 만큼, 토론이나 인용을 원하는 분들은 출판된 책에 실린 판본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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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 [검은 소] 한국어판에 부쳐

 

 

1. 알튀세르의 유령들

 

루이 알튀세르는 누구인가? 루이 알튀세르는 누구였는가? 루이 알튀세르는 누구이게 될 것인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꽤 자명한 것으로 여겨졌던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내가 보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리 자명하지 않은 것 같다. 이는 무엇보다 알튀세르가 1990년 사망한 이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필두로 해서 올해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알튀세르 유고의 효과 때문이다.


1992년 알튀세르의 자서전인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가 출간되고 그 이듬해부터 몇 년 사이에 그의 이론적 유고들인 󰡔철학정치학 저술󰡕 1~2, 󰡔정신분석에 관한 저술󰡕, 󰡔철학에 대하여󰡕, 󰡔재생산에 대하여󰡕, 󰡔정신분석과 인문과학: 두 편의 강의󰡕 등이 잇달아 출간될 때만 해도, 알튀세르의 유고는 매우 제한적인 분량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알튀세르 유고집의 출간 현황에 관해서는 뒤에 나오는 유고집 목록을 참고) 더욱이 초기 알튀세르 유고집 출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프랑수아 마트롱(François Matheron)이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인해 더 이상 유고 편집 작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면서 알튀세르의 유고󰡔정치와 역사: 마키아벨리에서 마르크스까지, 고등사범학교 정치철학 강의록󰡕 출간 이후 한동안 소강상태에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유고 출간 작업이 활기를 띠게 된 것은 고쉬가리언(G. M. Goshgarian)이라는 탁월한 편집자가 유고집 편집 작업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이미 󰡔철학정치학 저술󰡕 1~2(뒤의 목록의 5번과 6번 저작)의 영역본 편집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바 있는데,[영어판은 시기순주제순으로 분류되어 3권으로 편집되어 출간됐다. Louis Althusser, The Spectre of Hegel: Early Writings, Verso, 1997; The Humanist Controversy & Other Writings (1966~67), Verso, 2003; Philosophy of the Encounter: Later Writings, 1978-1987, Verso, 2006. 그는 또한 󰡔재생산에 대하여󰡕󰡔비철학자들을 위한 철학 입문󰡕,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된다는 것󰡕 등도 영어로 번역했다.] 2014년 출간된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랑스어판 편집자로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2018년 현재까지 그가 편집한 책은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검은 소: 상상 인터뷰󰡕, 󰡔역사에 관한 저술󰡕, 󰡔무엇을 할 것인가󰡕까지 5권에 이르며, 또 다른 유고집도 편집 중에 있다.


이처럼 프랑수아 마트롱과 고쉬가리언이라는 두 명의 탁월하고 헌신적인 편집자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다음 목록이 말해주듯, 알튀세르가 생전에 출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유고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L’avenir dure longtemps, Stock/IMEC, 1992(수정증보판 2003);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이매진, 2008(수정증보판).

2. 󰡔포로일기󰡕Journal de captivité (Stalag #4 1940-1945), Stock/IMEC, 1992.

3. 󰡔정신분석에 관한 저술󰡕Écrits sur la psychanalyse, Stock/IMEC, 1993; 부분 번역, 󰡔알튀세르와 라캉󰡕, 윤소영 옮김, 공감, 1995.

4. 󰡔철학에 대하여󰡕Sur la philosophie, Gallimard, 1994; 󰡔철학에 대하여󰡕, 서관모백승욱 옮김, 동문선, 1995.

5. 󰡔철학정치학 저술 I󰡕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I, Stock/IMEC, 1994; 부분 번역, 󰡔철학과 맑스주의󰡕, 서관모백승욱 옮김, 새길, 1995.

6. 󰡔철학정치학 저술 II󰡕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II, textes réunis par François Matheron, Stock/IMEC, 1995.

7. 󰡔재생산에 대하여󰡕Sur la reproduction, PUF, 1995(수정증보판, 2011); 󰡔재생산에 대하여󰡕, 진태원황재민 옮김, 리시올, 근간.

8. 󰡔정신분석과 인문과학: 두 편의 강의󰡕Psychanalyse et sciences humaines(deux conférences), Livre de Poche, 1996.

9. 󰡔프란카에게 보내는 편지󰡕Lettres à Franca (1961-1973), Stock/IMEC, 1998.

10. 󰡔마키아벨리의 고독 외󰡕Solitude de Machiavel, présentation par Yves Sintomer, PUF, 1998; 부분 번역, 김석민 옮김, 󰡔마키아벨리의 고독󰡕, 새길, 1992. 알튀세르 생전에 책으로 묶이지 않았던 논문 모음집.

11. 󰡔알튀세르 사유하다󰡕Penser Louis Althusser, recueil d'articles, introduction par Yves Vargas, Le Temps des Cerises, 2006. 알튀세르가 생전에 프랑스 공산당 학술지였던 󰡔팡세󰡕(Pensée)에 기고했던 글 모음집.

12. 󰡔정치와 역사: 마키아벨리에서 마르크스까지, 고등사범학교 정치철학 강의록󰡕Politique et Histoire de Machiavel à Marx - Cours à l'École normale supérieure 1955-1972, Seuil, 1996; 󰡔정치와 역사󰡕,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근간. 알튀세르가 고등사범학교에서 했던 정치철학에 관한 강의록을 모은 책.

13. 󰡔마키아벨리와 우리󰡕Machiavel et nous, Editions Tallandier, 2009. 󰡔철학정치학 저술 II󰡕에 수록되었던 원고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 국역본: 󰡔마키아벨리의 가면󰡕, 김정한오덕근 옮김, 이후, 2001. 국역본은 번역이 좋지 않아서 참고하기 어려움.

14.󰡔엘렌에게 보내는 편지󰡕Lettres à Hélène, préface de Bernard-Henri Lévy, Grasset/IMEC, 2011. 알튀세르가 부인이었던 엘렌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

15. 󰡔루소에 대한 강의󰡕Cours sur Rousseau, Le Temps des Cerises, 2012; 󰡔알튀세르의 루소 강의󰡕, 황재민 옮김, 그린비, 근간.

16. Initiation à la philosophie pour les non-philosophes, PUF, 2014;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 안준범 옮김, 현실문화, 근간.

17. 󰡔끝없는 불안의 꿈󰡕Des rêves d'angoisse sans fin: Récits de rêves (1941-1967) suivi de Un meurtre à deux (1985), Grasset, 2014.

18.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Être marxiste en philosophie, PUF, 2015;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주재형 옮김, 그린비, 근간.

19. Les Vaches noires: Interviews imaginares (le malaise du XXIIe congrès), PUF, 2016; 󰡔검은 소: 상상 인터뷰(22차 당대회의 불만)󰡕, 본서.

20. 󰡔역사에 관한 저술󰡕Écrits sur l’histoire, PUF, 2018; 󰡔역사에 관한 저술󰡕, 배세진이찬선 옮김, 오월의 봄, 근간.

21. 󰡔무엇을 할 것인가󰡕Que faire, PUF, 2018; 󰡔무엇을 할 것인가󰡕, 배세진 옮김, 오월의 봄, 근간.[분류하자면, 1, 2, 9, 14, 17은 알튀세르의 전기적인 삶과 관련된 유고들이며, 나머지는 이론적인 성격의 유고들이다. 또한 10번과 11번은 알튀세르가 생전에 발표한 글과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22. Louis Althusser & Lucien Sève, Correspondance 1949-1987, Sociales, 2018.[이 책은 알튀세르 유고집과 다른 맥락에서 출간된 책으로, 흔히 프랑스 공산당 내에서 알튀세르의 이론적 적수라고 알려진 뤼시엥 세브와 알튀세르가 40여 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를 묶고, 여기에 세브가 해설을 붙인 책이다. 세브는 알튀세르의 이론적 적수이면서 동시에 그의 후배이자 친구였는데, 이 책은 이들의 이론적 차이와 인간적인 우정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책이다.]

 

알튀세르는 생전에 매우 과작(寡作)의 철학자로 알려져 왔으며, 특히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 같은 혁신적인 이론적 저술 이후 생애의 말년까지 이렇다 할 만한 저작을 발표하지 못해서 여러 가지 궁금증을 자아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간된 유고들만으로도 우리는 알튀세르가 꽤 많은 분량의 저술을 끊임없이 생산했으며, 특히 1970년대 이후 출간을 염두에 두고 저술했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출간하지 않은 여러 권의 저작을 남겼음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이 저작들은 단편들의 모음집이 아니라 거의 완성된 상태의 원고들이라는 점에서 알튀세르 사상을 구성하는 독자적인 요소들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푸코 사상의 우회할 수 없는 요소가 되었듯이, 이제 알튀세르의 유고들 없이 알튀세르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이 유고들이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알튀세르(구조적 마르크스주의자로 이해하든, 인식론적 절단의 철학자로 이해하든 아니면 이데올로기론과 호명의 이론가로 이해하든 간에)에 대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더해줄 것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유고들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알튀세르는 과연 어떤 알튀세르인가? 그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언가 새롭고 시의적인 통찰을 제시해줄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실로 지난 20여 년 동안 알튀세르에 관한 국내외의 논의의 중심을 이루어온 질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초기 유고작의 핵심 쟁점이었던 우발성의 유물론내지 마주침의 유물론에서 구조적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알튀세르의 정반대의 모습인 콩종크튀르(conjoncture) [이 개념은 보통 알튀세르 연구에서는 정세라고 번역되지만 사실 그 의미는 더 복잡하며, 더욱이 초기 알튀세르에서 말년의 알튀세르까지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니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상세하게 고찰해볼 만한 주제다.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편, 󰡔서강인문논총󰡕 52, 2018, 441쪽 이하 참조.] 또는 사건의 사상가의 면모를 찾아냈다. 또한 다른 이들은 󰡔마키아벨리와 우리󰡕에서 마키아벨리가 알튀세르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상가였는지, 그리고 알튀세르가 발굴한 마키아벨리 사상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지 탐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알튀세르가 라캉의 정신분석을 역사유물론에 적용한마르크스주의자라는 주장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지 더 정확히 알게 된 것도 유고를 통해서였다. 알튀세르는 일찍부터 라캉의 한계와 애매성에 대하여 의혹을 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정신분석을 포함한 모든 과학들의 과학 또는 이론들의 이론으로서 재구성하려는 기획을 자신의 이론적 작업의 핵심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Louis Althusser, “Trois notes sur la théorie des discours”, in Écrits sur la psychanalyse, op. cit.; Être marxiste en philosophie (1976), op. cit. 참조. 또한 이 문제에 관한 평주로는 진태원, 라깡과 알뛰쎄르: ‘또는알뛰쎄르의 유령들, 김상환홍준기 엮음, 󰡔라깡의 재탄생󰡕, 창비, 2002 참조.] 오히려 우리는 유고를 통해 그가 스피노자 철학에서 깊은 영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의 작업이 얼마나 큰 철학적 야심을 품고 있었는지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유고들 덕분이다. 알튀세르가 1980년대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던 우발성의 유물론이나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글들은 사실 1970년대 집필된 여러 미완성 유고들에서 발췌된 단편들이었던 것이다(특히 16, 18번 유고 참조). 또한 최근 출간된 유고들은 그람시에 관한 성찰이 1970년대 알튀세르의 정치적 사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20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알튀세르의 위상을 재고찰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질문들은 앞으로 더 많이, 그리고 더 체계적이면서도 풍부하게 제기되리라고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그만큼 알튀세르의 유고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그의 사상의 여러 면모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당대 프랑스철학(흔히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운동으로 알려진)의 쟁점과 전개과정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와 라캉, 알튀세르와 레비스트로스의 관계를 비롯한 구조주의와의 관계, 알튀세르와 데리다, 또는 알튀세르와 푸코, 알튀세르와 랑시에르 또는 바디우의 관계 등은 앞으로 더 많은 탐구의 대상이 될 만한 주제들이다.

 

2. 󰡔검은 소󰡕의 이론적정치적 배경

 

그렇다면 󰡔검은 소󰡕가 알튀세르의 유고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무엇인지, 그것이 기존의 알튀세르 사상에 대하여 새롭게 조명해주는 바는 무엇인지,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당연히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지금까지 출간된 다른 유고들과 비교해보면 󰡔검은 소󰡕가장 정치적인 저작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자였고 또한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모든 저술은 정치적인 저술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검은 소󰡕는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 책은 당대의 정치에 직접 개입하기 위해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방금 언급했던 것처럼 알튀세르의 주요 저작,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를 비롯하여 󰡔레닌과 철학󰡕,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에 이론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저술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당대의 정치적 정세에 효과를 미치려고 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것은 이중적인 목표를 지닌 개입이었다. 하나는 본래의 혁명적 성격을 점점 상실하고 프롤레타리아를 비롯한 민중에 대한 지배체제로 변해버린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가 대표하는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개입이었다. 다른 하나는 스탈린 사후 인간주의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자본󰡕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후기 저작보다는 󰡔경제철학 수고󰡕 같은 청년기 저작을 중시했던 스탈린주의에 대한 우파적 비판에 맞서기 위한 개입이었다.[생전에 출간된 글 중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참조하고, 유고 중에서는 특히 Louis Althusser, “La Querelle de l’humanisme”,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vol. II, op. cit. 참조. 지나치는 김에 말해두자면, 알튀세르가 말하는 ‘humanisme’인도주의또는 휴머니즘’(humanitarisme)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근대의 신 중심적(따라서 종교적인) 철학을 대체하는 근대의 부르주아적세속주의적 기획의 핵심인 주체성의 철학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실 알튀세르는 개인 숭배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격하 운동을 전개했던 흐루시초프 이후의 소련 공산당의 관점 자체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우파적 비판의 표현이었다고 간주했다.


프랑스 국내의 정치 정세와 관련해서 보면, 이것은 한편으로 노동자 계급 및 민중과의 진정한 소통 관계를 상실한 채 부르주아 국가를 닮은 관료적 지배체제로 변모해간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내부에서의 투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 책의 1장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알튀세르는 1948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한 이후 평생 당 내에서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은 평당원(militant)으로 남아 있었다. 프랑스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조직적인 지위라는 점에서는 아주 보잘 것 없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고등사범학교의 이 철학자가 당의 이론적 노선에 반기를 들면서 당의 이런저런 방침들에 끊임없이 비판과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일례로 알튀세르는 청년 마르크스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른바 청년 마르크스와 성숙기 마르크스 사이에 인식론적 절단이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루이 알튀세르, 청년 마르크스에 대하여, 󰡔마르크스를 위하여󰡕 참조.] 이 테제가 충격적인 이유는 일차적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이 통일성을 지닌다는 신념, 곧 청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의 사상은 동일하거나 적어도 일관된다는 거의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본 신념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주장에 따르면 청년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를 비롯한 청년 헤겔주의의 문제설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마르크스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 마르크스가 아닌 마르크스이며, 󰡔독일 이데올로기󰡕로 대표되는 절단기의 저작을 거치면서 비로소 그는 마르크스로서의 마르크스가 된다. 더욱이 알튀세르는 󰡔자본󰡕에서도 마르크스의 사상은 온전하게 완성되어 있지 않으며, 여전히 불완전하고 공백을 지닌 상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이론적 오류만이 아니라 정치적 편향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성숙한 마르크스의 사상 역시 끊임없는 개조와 정정 작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프랑스 공산당이 대표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하여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이들이 중시했던 청년기 마르크스, 󰡔자본󰡕을 비롯한 노년기 마르크스의 저작들에 비해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하는 마르크스, ‘소외인간 해방또는 사회 해방같이 훨씬 더 직관적이고 폭넓은 (또는 오히려 애매모호한) 이념들에 기초하고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이들에게까지 공감과 지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르크스에 편안하게 준거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는 더욱 명료하게 인간주의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인간주의란 이데올로기적 통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이 글은, 알튀세르를 인간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로 착각한 폴란드의 철학자 아담 샤프Adam Schaff와 에리히 프롬Erich Fromm(당시 사회주의적 인간주의를 대표하던 두 명의 이론가)의 요청곧 사회주의적 인간주의의 국제 연대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집필되었으며, 두 사람을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Louis Althusser, “La querelle de l’humanisme”,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vol. II, op. cit. 참조.더욱이 이 책에서도 나타나듯이, 1970년대 이후 알튀세르는 이러한 인간주의가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고유한 경제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보완물로 기능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알튀세르는 19685월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학생노동자 운동에 대하여 프랑스 공산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학생들 및 노동자들을 비롯한 기층 민중과 소통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앞의 글 참조.] 알튀세르 자신은 685월 운동 당시 1달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느라 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고 그 전개과정을 직접 목격하지도 못했지만, 이후 몇몇 글에서 이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운동이 제기한 쟁점들을 공산당이 면밀히 탐구해야 하며 기층 노동자들 및 청년 학생들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본문에서 알튀세르가 지적하듯이 프랑스 공산당은 알튀세르의 주장을 대개 무시했으며, 당 내에서 그를 정치적이론적으로 고립시키려고 했다. 알튀세르가 자신의 주요 저작들을 프랑스 공산당 출판사인 에디시옹 소시알(Éditions Sociales)에서 출판하지 않고 프랑수아 마스페로(François Maspero)에서 출간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프랑스 공산당의 정치 노선 및 정책들에 관해 알튀세르가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 데는 1976년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가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개입의 핵심 주제는 다름 아닌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의 핵심 개념에 대한 알튀세르의 가장 포괄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독특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자인 고쉬가리언이 말하듯, 1976년 이전에 알튀세르의 저작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용어는 산발적으로만 등장할 뿐 결코 체계적인 성찰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그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1966~67년 작성된 미발표 원고 이데올로기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정치의 전체 역사에서 결정적인 지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G. M. Goshgarian, “Préface”, in Être marxiste en philosophie, op. cit., p. 34.] 하지만 1976년 이후 알튀세르의 이론적 작업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가장 중심적인 개념 중 하나가 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것은, 알튀세르가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하듯이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는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었다(본서 주 75) 367). 프랑스 공산당은 1972년 프랑스 사회당 및 급진좌파운동(Mouvement des radicaux de gauche)공동정부강령을 채택했으며, 22차 당대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개념의 포기를 선언하고 프랑스 특색의 사회주의”(socialisme au couleur de France)를 건설하기 위해 광범위한 프랑스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프랑스 민중 연합을 내세우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프랑스 공산당은 1978년 총선을 대비한 2차 공동정부강령의 구성을 추진했지만, 프랑수아 미테랑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미 광범위한 중도좌파 세력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은 사회당의 강경한 태도와 주요 정책(특히 경제 정책)에 대한 차이점으로 인해 사회당과의 교섭이 결렬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1978년 총선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사회당에 지지율 및 의석수에서 뒤처지게 되며, 좌파 세력의 주도권도 상실하고 만다.[여기에는 5공화국의 권력 구조가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회당에는 1965년부터 좌파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미테랑이 있었던 반면, 공산당에는 그와 견줄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프랑스의 정치적 지주인 공화주의가 이념적이고 사회적인 공화주의에서 제도적이고 법치주의적인 공화주의로 전환하는 데 기여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물 중심의 포퓰리즘정치가 강화되는 데도 기여했을 것이다. 이점에 관해서는 Gino G. Raymand, The French Communist Party during the Fifth Republic: a Crisis of Leadership and Ideology, Palgrave MacMillan, 2005 2부 참조.]


프랑스 공산당의 이러한 노선 전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후 프랑스 정치의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20세기 후반 좌파 정파들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정치의 흐름에 대한 좋은 개관으로는 Neill Nugent & David Lowe, The Left in France, St. Martin's Press, 1982 Maxwell Adereth, The French Communist Party: A Critical History,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4를 참조할 수 있고, 국내의 연구로는 은은기, 프랑스 공산당과 사회당의 제휴 모색: 1972년 공동통치강령의 형성배경을 중심으로, 󰡔경북사학󰡕 21, 1998 및 민유기, 68혁명 전후 프랑스 좌파연합과 공동정부프로그램, 󰡔서양사론󰡕 109, 2011 참조.]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의회제에 기반을 둔 제4공화국 체제 하에서 좌파와 우파의 정당들이 연립정부 형태를 유지했으며, 프랑스 공산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웅적인 레지스탕스 활동을 수행하여 전후 좌파 정치를 주도하는 정당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1954년 발발한 알제리 전쟁의 위기 상황에서 1958년 드골이 주도하는 대통령 중심제의 제5공화국이 성립하면서 세력의 급격한 약화를 겪게 된다. 4공화국 내내 20%가 넘는 지지율과 100석이 넘는 의석수를 획득했던 공산당은 1958년 드골 체제가 등장한 이후 첫 번째 총선에서 불과 10석을 획득하여 교섭단체도 형성하지 못하는 군소 정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이루어진 스탈린 통치에 대한 비판, 1956년 헝가리 봉기에 대한 무력 진압, 1968년 체코의 자유화 운동에 대한 무력 진압, 중국과 소련의 분열, 685월 운동에 대한 프랑스 공산당의 관료적 대응 등으로 인해 프랑스 사회에서 프랑스 공산당의 도덕적정치적 위신이 크게 실추하게 된다.


이에 따라 프랑스 공산당은 1960년대 초까지 고수했던 반체제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점차 포기하고, 사회당 및 급진좌파운동과의 제휴를 통해 드골주의에 맞서는 좌파 연합을 형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좌파 연합을 구성하려는 공산당의 노력에 장애가 되었던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었다. 이것은 다른 계급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지배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유일한 혁명 정당으로서 공산당의 배타적인 지도적 지위를 함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뒤에서 더 논의하겠지만, 부르주아 정당들만이 아니라 다른 좌파 정당들 및 민중들에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은 스탈린주의와 동일시되고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 공산당은 1964년 제17차 당대회에서 드골주의 지배를 타도하기 위한 좌파연합의 공동 목표로 민주주의적이고 비()사회주의적인 대안을 제시했으며,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비사회주의 체제>란 진정한 민주주의를 뜻한다. 진정한 민주주의 정부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가교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 이행기는 경제적이며 사회적 발전의 분명한 단계로서 간주되어야 한다.["La résolution politique du XVIIe congrès (Paris, 14-17 mai 1964)", Les Cahiers du communisme, nos. 6-7, juin-juillet, 1964; 은은기, 앞의 글, 16쪽에서 재인용.] 19685월 운동으로 의회가 해산되고 나서 실시된 6월 총선에서 드골이 이끄는 공화국민주연합에 참패한 이후 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2월 샹피니(Champigny) 선언에서 민주사회의 진전이 사회주의로 가는 통로이며 이 통로에서 부르주아 제도는 유지될 수 있다고 천명한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대규모 생산수단의 집산적 소유, 노동계급과 그 동조자들에 의한 정치권력의 행사, 사회구성원의 물질적, 지적 요구에 대한 점진적 만족, 개인의 개성 발현에 필요한 조건을 창출하기 위한 모든 것[민유기, 68혁명 전후 프랑스 좌파연합과 공동정부프로그램, 앞의 글, 183.]을 뜻한다고 정의함으로써, 68 운동으로 표출된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충실한 스탈린주의자였던 모리스 토레즈(Maurice Thoréz) 사망 이후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이 된 조르주 마르셰(Georges Marchais)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전통적인 볼셰비키코민테른의 노선이었던 공산당 유일당 개념과 더불어 사회주의에서 공산당의 지도적 지위까지 포기할 의사를 표명하게 된다. 그는 1968년 겨울의 한 인터뷰에서 만약 프랑스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합법적으로 전복된다면, 공산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만일 인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사회주의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우리는 그 문제를 재검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우리의 모든 개념이 사회주의 건설에 노동자 계급과 대다수 인민의 참여에 좌우되기 때문이다.[Georges Marchais, “Interview de Georges Marchais par Georges Leroy”(12 décembre 1968), Europe n° 1, 1968, p. 19; 은은기, 앞의 글, 19~20쪽에서 재인용.]

 

이 인터뷰는 프랑스 공산당의 공식적인 노선이 아닌 마르셰 개인의 입장 표명이었지만, 이는 프랑스 공산당이 1960년대 중반부터 유럽에서 가장 볼셰비키적인 정당 또는 오히려 가장 스탈린주의적인 정당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 나중에 유로코뮤니즘으로 불리게 될 새로운 노선을 모색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프랑수아 미테랑을 중심으로 새로 창설된 사회당이 에피네(Epinay) 전당대회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확고히 하고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좌파정당의 좌파 연합 전술을 채택함에 따라 결국 1972년 프랑스 공산당, 사회당, 급진좌파운동 사이에 공동정부강령이 채택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미 공산당은 사회당에게 추월당했으며,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좌파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급격하게 세력의 약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정세를 염두에 두면, 이 책에서 알튀세르가 주창하는 정치적 입장은 다소 엉뚱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1968년 이후 프랑스 공산당은 좌파 정치의 주도권을 점차 상실해갔으며 대중적인 지지 기반도 사회당에게 잠식당하고 있었는데, 알튀세르는 오히려 볼셰비키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져 프랑스 공산당이 점점 거리를 두려고 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로써 자신의 교조주의적인 관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그는 변화된 시대의 상황을 무시한 가운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가장 교조적인 정치적 원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견지함으로써 당시의 프랑스 공산당 노선에서 후퇴하여 오히려 그 이전의 스탈린주의적 노선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성급히 판단을 내리기 전에 우선 알튀세르 주장의 논점과 그 함의를 좀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왜 알튀세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고수하고 있는가?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은 알튀세르가 22차 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기로 한 결정이 역설적이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해방시켰다”(본문 87쪽)고 간주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알튀세르의 다른 텍스트에서도 엿볼 수 있는 태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알튀세르는 1977년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라는 유명한 강연을 한다.[Louis Althusser, “Enfin la crise du marxisme!”, in Yves Sintomer ed., Solitude de Machiavel et autres textes, PUF, 1998;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이진경 엮음, 새길, 1992. 프랑스어판 편집자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이 강연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작업했으며, 이 원고의 네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강연에서 그는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Louis Althusser, Ibid., p. 272; 같은 책, 64.]고 선언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인식하는 태도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대하는 세 가지 방식을 구별한다. 하나는 위기라는 말을 거론하지 않은 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침묵하는” 방식이며,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적들이라고 간주하는 태도다. 두 번째 방식은 “위기가 가져다준 충격을 감수하면서 그것을 견뎌내고 헤쳐 가는 것, 나아가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힘 안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는”[Louis Althusser, Ibid., p. 272; 같은 책, 63.]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윤리적으로 필요하고 바람직한 방식이지만,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같은 중대한 역사적 현상에 대한 설명과 전망, 거리를 둔 성찰의 필요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마지막 세 번째가 알튀세르 자신이 택한 방식이다. 이것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인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는 사실을 반갑게 여기고, 이를 일종의 해방의 기회로, 마르크스주의의 쇄신과 부활의 기회로 간주하는 태도다.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 마침내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는 그 위기의 요소들을 분명하게 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내 이 위기를 통해서, 그리고 이 위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결정적인 어떤 것이 해방될 수 있다!”[Louis Althusser, Ibid.; 같은 곳.]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의 죽음 내지 소멸의 증상으로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결정적인 어떤 것(quelque chose vital et de vivant)이 해방될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위기를 구성해왔던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가 위기로서 드러나지 않도록 억압하고 그것을 가짜 해법으로 봉쇄해왔던 것이라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스탈린주의의 핵심을 ‘개인숭배’와 그에 따른 전체주의적 일탈이라고 이해하던 소련 공산당 및 우파적인 비판가들에 맞서 알튀세르가 1960년대부터 특히 ‘이론적 반(反)인간주의’라는 문제설정 아래 지속적으로 고수해왔던 관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스탈린주의를, 스탈린이라는 폭군 또는 독재적인 지도자의 개인적인 일탈과 전횡의 문제로 간주하게 되면, 소련 공산당을 비롯한 동유럽과 서유럽의 공산당 지도부들로서는 당과 조직, 더 나아가 이론적 난점에 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와 개조의 시도 없이 실용적인 타협을 통해 문제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역으로 스탈린주의에서 기존 공산당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고발하는 우파적인 비판가들은 좀 더 ‘인간적인 사회주의’, 당의 관료적 지배체제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도입하는 해법을 중시하게 된다. 반면 알튀세르는 초기 저작에서부터 줄곧 이러한 우파적 비판을 넘어서 말하자면 “스탈린주의에 대한 좌파적 비판”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개념은 계급투쟁, 부르주아 독재, 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등과 같은 공산당의 의례적인 정식들하나로 존재해왔을 뿐이며, 사람들은 대개 이 개념을 계급의 적들에 대항한 독재적인혁명 권력의 힘, 내전 그리고 폭력을 통한 권력쟁취와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연결”(본문 87)해왔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 특히 공산주의자들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스탈린주의적 독재와 동일시해왔으며, 독재라는 점에서는 나치즘이나 파시즘, 군사독재나 스탈린주의나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지녀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민중들은 독재 체제로서의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사회주의의 조국이 자신들이 원하던 계급적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세계와 전혀 다른 어떤 것이라는 실망과 환멸을 품게 되었다.

 

인민 대중은 파시즘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독재 이외에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이 동일한 인민 대중이 거대한 희망을 품고, 계급적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세계에서, ‘사회주의 조국’에서, 다시 말해 소련에서 기대했던 것은 분명 스탈린주의 시기 동안 나타났던 거대한 공포와 절멸의 체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으며, 또한 비록 소련이 이미 거대한 사회적 성과들을 획득했음에도 그들이 소련에서 기대했던 것은 현재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억압의 형태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본문 88쪽-강조는 원문)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사회,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평등과 자유가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라 독재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민중의 거대한 실망과 불신이 당시 공산주의 운동이 맞게 된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은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논점 중 하나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서유럽의 공산당들(이탈리아 공산당, 스페인 공산당 등)은 소련과 같은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과 거리를 두면서 사회주의로 향하는 여러 길이 존재한다고 선언했으며, 서유럽 국가들에 고유한 사회주의로의 이행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 유로코뮤니즘이라 불리는 노선을 채택했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이렇게 질문한다. “‘다른 길에 의한 사회주의가 현존하는 사회주의와 동일한 결과에 이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는가?”[Louis Althusser, “Enfin la crise du marxisme!”, op. cit., p. 270;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앞의 책, 60.] 


이러한 질문이 뜻하는 바는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와 거리를 두려는 서유럽 공산당들의 전략이 충분치 않다는 것, 심지어 더 나아가 양자는 동일한 원환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양자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탈린주의가 왜 어떻게 해서 형성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어떻게 해서 1930년대부터 40여 년이 넘는 동안 지속될 수 있었는지 근본적으로 질문하지 않은 채 그것을 단순히 감추거나 축소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질문에 좌우된다.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왜, 어떻게 해서 스탈린에 이를 수 있었고, 현재의 체제에 이를 수 있었는가?”[Louis Althusser, Ibid.; 같은 곳.] 곧 만약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서유럽의 공산당들이 진정으로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정치를 수행하고 싶다면, 그 일차적인 조건은 마르크스주의 및 공산주의 운동을 위기에 빠뜨린 그 원인을 마르크스주의 자신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일이다. 만약 지금까지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는 분명 소련이 망각하고 있거나 고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딘가 그 자체의 사회적 관계들 속에 이 같은 오류에 대한 정치적 필요가 이들 관계들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고, 나아가 그 오류를 지속시켜야 할 필요가 또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Louis Althusser, “Histoire terminée, histoire interminable”, Ibid., p. 242; 미완의 역사, 같은 책, 15~16. 강조는 원문.]


알튀세르는 동일한 문제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과 관련해서도 지속된다고 간주했다. 서유럽 공산당들은 소비에트 사회주의와 거리를 두겠다고, 그들과 달리 자신들은 자유를 중심에 두고 있고 이데올로기적 다원주의”(본문 83)를 허용하며,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인”(본문 85~86)을 추구하겠다고, 따라서 그들과 다른 사회주의, “프랑스 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를 오류라고 비난하고 회피할 뿐 왜 그러한 오류가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러한 오류가 정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 때문인지 제대로 설명하거나 토론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역시 오류에 대한 정치적 필요”, “오류를 지속시켜야 할 필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알튀세르는 소련에 대한 거대한 환멸이라는 이유”(본문 88)야말로 프랑스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이지만, 그들은 이러한 이유를 거론하지 않은 채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본문 90쪽 이하).


따라서 이 책에서 알튀세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옹호하고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서유럽 공산당들의 공통점은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은 이 개념에 대한 매우 특정한 이해 방식과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강압적 통치로, 따라서 가능한 한 짧은 시기 안에 끝마쳐야 하는 일시적인 독재의 형태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알튀세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했던 것은 다름 아닌 스탈린 자신이었으며, 이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테제와 모순되는 주장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질문 ...... 1936년 이래로, 다시 말해 소련은 이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초월했다고 스탈린이 공식적으로 선언했던 때 이래로 현재적인 문제였습니다. ...... 한 사회구성체가 사회주의에 도달했을 때 이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초월한 것이라는 이러한 스탈린의 생각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테제들과 모순됩니다.”(본문 129~30) 곧 서유럽 공산당들과 같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독재적인 전술, 따라서 오늘날 서유럽 사회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전술로 이해하든 아니면 스탈린처럼 소련은 이미 사회주의로, ‘전 인민의 국가로 완전히 이행했으며, 따라서 더 이상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강제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든, 양자는 모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동일한 이해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사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원래 테제와는 모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알튀세르에 따를 경우, 마르크스와 레닌은 모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 시기와 일치”(본문 130)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주지하다시피 이는 알튀세르나 발리바르의 다른 글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점이다. 루이 알튀세르,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의 역사적 의미,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앞의 책 및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최인락 옮김, 연구사, 1988 참조.]


따라서 알튀세르에 따르면 문제는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스탈린주의적 실천으로부터 분리하는 것”(본문 91, 강조는 원문)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강압적인 통치로 이해하는 것, 다시 말해 부르주아 계급을 비롯한 적들의 저항을 제압하고 노동자 계급과 그 동맹세력의 승리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폭력과 강제를 행사하고, 내적으로는 공산당의 유일한 지도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이라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스탈린주의의 요체이며, 이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원래 생각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과는 모순되는 것이다.[바로 여기에서 이 책의 제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헤겔 󰡔정신현상학󰡕에서 유래하는 검은 소라는 제목은 컴컴한 그믐밤에 검은 소들이 어떤 게 어떤 것인지 서로 구별되지 않듯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기로 한 프랑스 공산당의 결정은 프랑스 공산당이 어떤 게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이고 어떤 게 이데올로기인지, 어떤 게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이고 어떤 게 스탈린주의적 독재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레닌을 인용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궁극의 민주주의”(본문 168)로 규정한다. 독재라는 단어의 통상적 용법과 달리 마르크스와 레닌이 염두에 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동의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란 노동자 계급을 비롯하여 농민과 빈민, 청년, 여성 등과 같은 광범위한 인민대중의 이익을 보장하고 그들의 평등과 자유를 실현하는 민주주의다. 더 나아가 이러한 민주주의는 윗사람들(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든 자본가든 아니면 공산당 관료 든 간에)이 스스로 알아서 아랫사람들을 위해 선정을 베푸는 민주주의, 또는 오히려 민본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다스리는 사람들은 항상 다스리는 위치에 있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항상 다스림을 받는 위치에 있는, 지배자 집단과 피지배 집단, 통치자와 피통치자, 관료와 평당원 사이의 일종의 존재론적인간학적정치적 분업에 입각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민주주의, “궁극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원래 알튀세르의 제자였지만 나중에 알튀세르를 비판하는 책을 쓰기도 했던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러한 분업의 논리, 그가 아르케(arkhe) 논리라고 부르는 것과 단절하는 데서 찾는다. “정치는 아르케 논리와의 특정한 단절이다. 그것은 사실 힘을 행사하는 자와 그것을 감수하는 자 사이의 정상적인위치 분배와 단절하는 것을 전제할 뿐 아니라, 이 위치들에 고유하게’[적합하게] 만드는 자질들에 대한 관념과 단절하는 것이다.”[자크 랑시에르, 정치에 대한 열 개의 테제3번째 테제, 양창렬 옮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도서출판 길, 2013, 212~13.] 곧 아르케의 논리는 능동적인 의미에서 통치할’(archein)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귀족, 지식인, 부자 등)만이 통치할 자격이 있으며 수동적인 의미에서 통치될’(archesthai) 수 있는 능력만을 지닌 이들(데모스 또는 민중 일반)은 계속 통치 받는 것에 머물러야 함을 전제하는데, 민주주의는 이와 달리 통치하는 것과 통치 받는 것의 상호성으로 정의된다. 때로는 다스리고 때로는 다스림을 받는 것, 다스림을 받는 이들이 때로는 다스리다가, 다스림이 끝나면 다시 다스림을 받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 다스리는 일이 어떤 특정한 자격과 지위, 조건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 아무나 다스리고 아무나 다스림을 받는 것, 이것이 바로 랑시에르가 이해하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의미일 것이다. 알튀세르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궁극의 민주주의로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핵심 역시 대중들이 의회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직접 개입하는 데 있다. “레닌에 따르면 대중민주주의는 부르주아적 의미에서 의회체계를 통해 정치에 개입하는 대중일 뿐만 아니라 국가장치, 생산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개입하는 대중 자체이기도 합니다.”(본문 169)


그런데 만약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궁극의 민주주의로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뜻한다면, 이것을 왜 굳이 독재라고 불러야 할까? 또는 왜 독재의 계기가 이러한 궁극의 민주주의에 필요한가?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고안해낸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독창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대립물, 곧 부르주아 독재 개념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 독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비밀”을 지니고 있다.”(본문 141쪽) 부르주아 독재를 전제하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공허한 것이며 그 특성이 제대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정치의 본질, 통상적인 의미의 제도적인 정치를 넘어서는 진정한 정치는 계급투쟁이며, 계급투쟁은 항상 지배 계급의 독재 아래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계급투쟁으로서의 정치는 법적ㆍ제도적 층위를 넘어서는 것 또는 그 기저에 그것의 가능 조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법적 측면에서 정의되는 민주주의냐 독재냐 하는 구별 역시 넘어서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주장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독창성은 그 이전까지 법적ㆍ정치적인 의미의 권력 형태를 의미했던 독재라는 단어를 한 사회계급 전체가 실행하는 권력이라는 의미로 변용시켰다. 이러한 의미의 계급 독재(부르주아 독재이든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든)는 단지 제도적인 정치 영역에서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서 행사되는 지배다.

 

왜냐하면, 고전적 전통 내에서, 그러니까 현존하는 언어 내에서 독재라는 단어가 절대권력을 지시했었다면, 이는 단지 정치권력, 다시 말해 (로마와 같이) 한 사람에 의해 전유되든 ([프랑스 혁명기의] 국민의회Convention와 같이) 의회에 의해 전유되든 -게다가 이 두 경우 모두 합법적인 형태 하에서 전유되죠- 통치권력만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 이전에 그 누구도 하나의 사회계급의 독재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정치제도가 강제하는 참조틀 내에서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이는 모든 지배계급(봉건제, 부르주아지, 프롤레타리아)이 필연적으로 행사하는 일종의 절대권력-마르크스 이전에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지 않으면서 행사되었던 절대권력-이며, 단일한 정치 내에서가 아니라 이를 넘어서, 사회적 삶 전체 즉 토대에서부터 상부구조까지, 착취에서부터 이데올로기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계급투쟁 내에서, 정치를 경유-단지 경유하기만-함으로써 행사되는 것입니다.”(본문 139. 강조는 원문)


실로 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것이 이런 의미의 독재가 아닌가? 비록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를 재벌공화국’, ‘삼성공화국등으로 표현한다. 우리나라의 재벌 중 누구도 합법적인 정치권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그들 중 일부가 국정농단의 연루자가 되어 법적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정치권력이 재벌을 지배한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라면 재벌은 평생 재벌이며, 재벌의 힘은 경제만이 아니라 행정과 입법, 사법, 문화 등과 같이 우리 사회 곳곳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10 : 90, 1 : 99 같은 표현들이 전 세계적인 불평등을 표현하기 위한 상용구가 되었거니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쉽지 않은 내용에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더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자각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법적정치적 영역에서 그나마 유지되던 민주주의의 질서마저 점점 침식하여,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이들조차도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포스트 민주주의라고 또는 불평등 민주주의라고 지칭하고 있다.[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진태원 옮김, 도서출판 길, 2015 및 콜린 크라우치, 󰡔포스트민주주의󰡕, 이한 옮김, 미지북스, 2008, 레리 M. 바텔스, 󰡔불평등 민주주의󰡕, 위선주 옮김, 21세기북스, 2012 참조.] 알튀세르가 이들과 다르다면, 그것은 그가 이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계급 독재의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만약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가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뜻한다면, 이는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가 법적ㆍ제도적 의미에서 반드시 독재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무리 “선진적인” 또는 “진전된” 민주주의 제도와 형식을 갖춘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최종 심급에서’ 본다면 결국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표현하는 법적ㆍ정치적 방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법적ㆍ정치적 의미에서 독재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가 상당히 넓은 범위의 자유와 권리, 평등을 허용하듯이, 아니 그 이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는 실행될 수 없거나 사고될 수 없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또 그럴 때에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정치의 새로운 실천”(본문 185쪽. 강조는 인용자)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는 레닌을 따라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가장 광범위한 대중들의 민주주의이자 인간들이 전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자유다”(본문 174쪽)라고 선언한다.


여기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그것은 똑같은 계급 독재이기는 해도 부르주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근본적으로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부르주아 독재가 부르주아지를 지배계급으로 구성하고 그 계급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국가장치들을 강화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중의 목적을 갖는 지배이자 과정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심원한 모순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과정이다. 우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적 독재로서 프롤레타리아를 지배 계급으로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당연히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해체하고 전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프롤레타리아가 지배 계급을 이루는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1차적인 목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러한 국가 자체의 소멸을 추구한다.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아무리 민주적이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잘 대표하는 국가라 하더라도 국가를 보존하거나 더욱이 강화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국가이면서 동시에 비국가이어야 하며, 자기 자신의 소멸을 목표로 하는 국가라는 성격을 띠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지배 계급으로서 계속 존속하기보다 계급으로서의 자신의 해체를 추구하는 계급, 따라서 계급이면서 동시에 비계급인 계급이어야 한다.


여기서 알튀세르가 이해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마지막 특징이 도출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항상 공산주의 전략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공산주의의 전략이라는 문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입장에 근거할 때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일시적인 강압적 통치로 이해되지 않고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 전체로 이해될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국가는, 비록 그것이 프롤레타리아의 권력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국가의 강화를 위한 국가가 아니라 국가 소멸을 위한 국가라는 점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와 그 동맹자들의 계급투쟁에 관한 어떠한 전략적 또는 심지어 전술적 행동도, 제국주의 하에서의 계급투쟁도, 사회주의 하에서의 계급투쟁도, 국가권력의 쟁취도, 국가장치의 파괴도, 계급투쟁의 폐지도, 다시 말해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건설도, 이것들을 계급투쟁의 최종 목적인 공산주의를 향한 전략에 위치시키지 않는다면 전혀 실행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본문 185)


그렇다면 알튀세르는 공산주의를 무엇으로 이해하는가?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알튀세르가 공산주의에 관해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서술한다는 점이다(특히 6장과 7). 그는 공산주의는 먼 미래에 도래할 이상적 사회 또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의 눈앞에서 실현되는 현실의 운동”(본문 173. 강조는 원문)이라고 주장한다. 공산주의는 이미 자본주의 사회 내에 각인되어 있는 객관적인 경향이며, “세계 속 공산주의의 작은 섬들 ...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다.”(본문 186) 그것은 상품관계가 더는 지배하지 않는 인간의 모든 연합체에서, “공산당과 비교 가능한 모든 자유로운 연합체에서”(본문 177) 실현되어 있으며, 공산주의 사회란 상품관계가 없는 사회, 그러므로 계급착취와 적대적 계급이 없는 사회이고 법도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정치적 장치, 정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레닌이 말하듯이 민주주의조차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본문 182) 사회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는 공산주의에서도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알튀세르는 여기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모든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관행들pratiques의 기능이 될 것이며, 이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국가의 힘에 의해 더는 점유되고 지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본문 183) 따라서 공산주의에서는 도덕적법적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적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지배되는 가족이라는 것도 변형될 것이며, 개인은 자유롭게, 다시 말해 불평등하게왜냐하면 마르크스가 상기시키듯, 개인의 평등이라는 허구는 부르주아적법률적 이데올로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죠발전할 수 있”(같은 곳)게 된다. 요컨대 상품관계가 지배하지 않고, , 국가,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더욱이 공산당조차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알튀세르는 공산주의로 예측하고 있다. 간략히 평가한다면, 매우 막연하고 추상적인, 심지어 종교적인 공산주의관이라고 할 수 있다.

 

4.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 알튀세르의 아포리아

 

우리는 이 글의 제목을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이라고 붙였다. 여기서 필연적이라는 것은 이 책에서 알튀세르가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테제들이 우회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필연성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해방의 정치 내지 변혁의 정치로서 민주주의라는 관점을 받아들인다면,[에티엔 발리바르의 제안을 따라 해방의 정치변혁의 정치를 구별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제도적인 정치의 토대가 되며 따라서 그것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정치를 가리키는 대체 가능한 두 가지 표현이라는 의미로 이 용어들을 사용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문제설정, 적어도 그 중 어떤 논점들은 필연적인 것이다. 특히 정치의 문제는 좁은 의미의 제도적인 정치 내에서의 갈등과 경쟁, 권력 투쟁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자유주의적 구별로 포섭될 수도 없고, “사회적 삶 전체에 걸친 착취와 지배, 권력의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이렇게 정치를 확장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마르크스주의나 알튀세르의 관점만은 아니다. 가령 푸코가 󰡔감시와 처벌󰡕이나 󰡔성의 역사 1󰡕 또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에서 제기한 규율권력이나 생명권력, 통치성의 문제는 그 나름대로 법이나 제도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권력과 지배의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철학논집󰡕 29, 2012 규율권력, 통치, 주체화: 미셸 푸코와 에로스의 문제, 󰡔가톨릭철학󰡕 29, 2017을 참조.] 또한 랑시에르가 치안과 정치를 구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부르주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모두 계급적 독재이기는 하지만,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비대칭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곧 부르주아 독재, 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지배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익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착취와 불평등, 부자유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특정한 계급의 계급적 지배를 옹호하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를 비롯한 피지배 계급들 또는 피억압자들의 보편적 이익과 해방을 위한 정치(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을의 민주주의)[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을 위하여󰡕, 그린비, 2017 참조.]라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알튀세르의 테제들은 필연성을 지닌다.


아울러 이러한 보편적 해방의 정치(적어도 그 중 한 측면)가 자본주의적 착취의 메커니즘을 비판하고 해체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또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개조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안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고 본다는 점에서도 알튀세르의 테제들은 적어도 오늘날 숙고해봐야 할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은 필연적이지만 동시에 불가능한 것, 따라서 근본적으로 아포리아적인 것이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아포리아(적어도 오늘날 데리다나 발리바르 같은 철학자들이 개념화하고 실천하는 바와 같은[이 점에 관해서는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49쪽 이하; Jacques Derrida, Apories, Galilée, 1994; 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0을 각각 참조.])는 단순히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어떤 것, 따라서 우회해야 하거나 배제해야 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그 불가능성을 통과함으로써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 그것을 통과할 경우에만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는 어떤 것이다.


이렇게 이해된 아포리아의 관점에서 보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알튀세르의 테제에서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는 국가에 대한 매우 특수한 관점, 곧 국가를 지배계급의 도구로 이해하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 바깥에 있는 대중들의 정치적 역량에 관해 존재론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것들은 모두 이데올로기에 관한 알튀세르의 혁신적인 관점과 모순되는 것들이다. 가령 다음 문단을 보자.

 

마르크스와 레닌은 국가가, ‘비록 노동자들의 국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고유한 법칙에 의해 또는 정치적 결정에 의해 스스로 민주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존속하는 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절대로 자유를 촉진할 수 없다라고 수없이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주도권이 외부로부터 도래하기를, 즉 당(당을 국가와 혼동하지 않는 한에서), 노동조합(노동조합이 전달벨트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마지막으로는 대중 자신(대중이 자유롭게, 하지만 진지하게 그들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세공하는 한에서)으로부터 도래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중들로부터 그들이 계급투쟁의 실천 속에서 국가에 대한 공산주의적 분해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데에 적합한 새로운 조직형태들을 창조하기를,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계급투쟁에서 각 단계마다 이 형태를 새롭게 변형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본문 188~89)

 

이 문단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단순히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배하는 국가 내지 정치에 머물지 않고 비국가로서의 국가로 작용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국가의 소멸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알튀세르의 주장에 전제된 게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한편으로 국가는 스스로 민주화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 그것은 본질적으로 계급 지배의 도구라는 점이며, 다른 한편으로 만약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가능하고 도래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국가 바깥에서 도래해야 한다는 점, 당과 노동조합, 궁극적으로 대중 자신에게서 도래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가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생각은, 국가를 장치’(appareil) 내지 기계’(machine)로 이해하는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알튀세르는 이 책에서 국가를 장치 또는 도구로 이해하면서,[또 다른 유고에서는 장치기계를 더 엄밀히 분석하면서 마르크스주의 국가 개념에 관해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 문제는 다른 곳에서 더 깊이 있게 다뤄볼 만한 주제다. Louis Althusser, “Marx dans ses limites”,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vol. I, op. cit. 참조.]  “힘을 권력으로 변형하는, 힘을 법으로 변형하는, 다시 말해 계급투쟁의 세력관계를 법률적 관계(droits, 정치적 법lois, 이데올로기적 규범)로 변형하는 기계”(본문 150)로 정의한다. 이러한 개념화는 국가를 중립적이거나 초월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자유주의적 또는 관념론적 국가론의 맹점을 보여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또는 󰡔재생산에 대하여󰡕에서 주장했던 것과 달리 국가가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너무 협소하게 한정하고 있다. 곧 이러한 개념화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은 단순히 계급적 세력관계 또는 지배관계를 중립적인 법적 관계로 은폐하거나 기만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국가에 대한 이러한 도구적 개념화는 이데올로기 바깥에 있는 대중들에 대한 존재론적 신뢰와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신뢰는 “~인 한에서라는 제한을 수반하지만, 그러한 제한은 구조적인 또는 원리상의 제한이 아니라 정치적 기술이나 의지의 함수라는 점에서 실용적 제한이다. 대중이 자유롭게, 하지만 진지하게 그들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세공하는 한에서대중은 국가에 대한 공산주의적 분해라는 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강조한 대목에서 보듯이 여기에서 이데올로기는 지배나 피지배와 무관한 순전히 기능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며, 주체가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재생산에 대하여󰡕에서 알튀세르가 보여준 것은 이데올로기의 핵심적 기능은 주체를 구성하는 기능이라는 점이었다. 주체는, 그것이 개인적 주체든 집단적 주체든 간에 이데올로기 이전에 또는 이데올로기 바깥에 미리 형성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이데올로기 내에서,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만 형성된다. 알튀세르 자신이 강조했다시피 이데올로기는 물질적인 것이며 더욱이 영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통해 생산되고 확산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이데올로기인 만큼, 이데올로기가 구성하는 주체는 지배적인 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예속적 주체들이다. 이러한 테제는 알튀세르 이전까지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를 지배했던 기만과 신비화 또는 가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라는 관점과 단절하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이 문제에 대한 더 상세한 논의는 진태원,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문제, 진태원 엮음, 󰡔알튀세르 효과󰡕, 그린비, 2011 스피노자와 알튀세르: 상상계와 이데올로기, 서동욱진태원 엮음, 󰡔스피노자의 귀환󰡕, 민음사, 2017을 각각 참조.]


그리고 여기에서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생산적인 모순 또는 아포리아가 나오게 된다. 만약 이데올로기 이전에 그리고 그 바깥에 미리 존재하는 주체들이 존재하지 않는데,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성되는 주체들은 예속적 주체들이라면, 어떻게 해방과 변혁의 정치가 가능한가? 이러한 아포리아를 단순한 논리적 모순이나 난점이라고 생각하고 우회하거나 배제하려고 하면, 다시 이데올로기에 관한 도구론적이거나 관념론적인 개념화(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표상”이라고 불렀던)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주의주의적인 메시아주의(가령 지젝의 몇몇 저술에서 엿볼 수 있는)로 나아가게 된다.


반대로 이러한 아포리아를 회피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정면으로 통과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 알튀세르의 제자였던 에티엔 발리바르였다. 그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테제를 제시함으로써 이 아포리아에서 새로운 개념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기능작용 속에서 특권적인 능동적 역할을 피억압자들 또는 피착취자들에게 (적어도 잠재적으로) 부여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것이다.”[에티엔 발리바르,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윤소영 옮김, 이론사, 1993, 183~84. 강조는 원문.]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가상이나 허위의식, 왜곡된 관념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이데올로기를 지배 계급에 의한 조작과 기만 또는 주입과 강제로 보는 관점과 단절하자는 뜻이다. 이데올로기를 왜곡된 관념이나 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하고 무지한 대중들이라는 생각과 다른 한편으로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이데올로기를 통제하고 조작할 수 있는 지배 계급의 능력이라는 생각을 전제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할 때 품고 있었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상상계로, 곧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자연적 조건(생활세계)으로 정의하면서 이러한 관념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데올로기는 의식적인 관념이나 표상들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개인들과 대중들이 모두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상상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또는 그람시의 개념을 원용하자면 헤게모니적인 이데올로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강한 의미에서 보편적이어야 한다.”[같은 책, 186.] 그리고 강한 의미에서 보편적인 상상적 경험이란 지배자들의 체험된경험이 아니라 ...... 피지배대중들체험된경험이다. 다시 말해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효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피지배대중들의 상상계, 곧 피지배자들, 약소자들, 억압받는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욕망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그러한 상상계를 자기 나름대로 구성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다. 근대 사회에서 피지배대중들의 상상계의 핵심은 자유와 평등, 박애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지배어는 사실은 지배 계급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대중들의 혁명적 봉기를 통해 선언되고 또 정치 제도들 속에 기입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자 원리로 천명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언은 이를 대표하는 문건 중 하나다. 발리바르가 이데올로기에서 대중들의 존재론적 우위라고 부른 것은, 이러한 지배어들이 혁명의 정신이자 원리로 천명되고 정치 제도들 속에 기입되었다는 사실(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언은 프랑스 헌법의 전문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정치적 근대성의 근본 원리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가리킨다.


물론 이러한 원리는 그 자체로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제도적 매개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지 선언적으로 언표되었을 뿐, 실제적인 제도에서는 최소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정치적 선거권이 일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개인들(이른바 능동 시민들”)에게만 허가되었다는 점이나 여성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권리를 향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사례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근대 사회의 어떤 지배 집단도 피지배대중들의 이러한 상상계를 무시하고서는 또는 그러한 상상계를 재구성하고 활용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혁명의 지배어들은 이데올로기에서, 따라서 정치적 상상계 및 제도화에서 피지배대중들이 (제도적으로는 열등한 위치에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체계적으로 배제될 수도 있지만) 존재론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발리바르는 평등자유명제(1989) 이후 근대 부르주아 정치 또는 자유주의 정치와 마르크스주의 정치 사이에 양립 불가능한 단절 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 대신 정치적 근대성의 근본 원리로서 평등자유명제가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모든 해방의 정치의 이상적 보편을 형성한다는 테제를 제시하게 되었다.[이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무정부주의적 시민성? 한나 아렌트,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 󰡔을의 민주주의󰡕, 앞의 책을 참조.] 반면 알튀세르는 이 책의 8장에서 말하듯이 평등과 자유 또는 더 일반적으로는 인권일반을 지배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서 법률적 이데올로기”(본문 220쪽 이하)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를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와 날카롭게 대비하고 있다.


이러한 발리바르의 테제와 비교해보면,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알튀세르의 주장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론이 제시하는 아포리아를 오히려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알튀세르의 인용문에서 대중들(아마도 노동자 대중들)은 이데올로기 안에 존재하지 않으며,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성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들은 이데올로기, 그것도 지배와 예속의 기능이 아닌 순전히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또는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대중들은 국가 바깥에, 국가 이전에 존재한다. 이렇게 지배와 예속에서 자유로운 대중들(아마도 네그리와 하트라면 다중(multitude)이라고 했을 것이다)이 존재하는데,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국가 소멸이 무엇이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정말 그런 대중들이 존재했고 또 존재하는가? 현실에서 존재하는 대중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에 존재하던 대중들, 문화혁명에 참여했던 대중들이 지배와 예속에서 자유로운 대중들이었는가? 스피노자가 이미 이러한 생각에 대해 인간들을 존재하는 그대로 인식하지 않고 그들이 그렇게 존재했으면 하고 원하는 대로 인식한다고, “어떤 실천적인 용도를 지닐 수 있는 정치학이 아니라 단지 환상(chimaera)으로 생각될 수 있고 오직 유토피아 내지 시인들의 황금시대에서나 가능한 정치학을 구상”(󰡔정치론󰡕 11)한다고 비판하지 않았는가?


더욱이 이러한 대중들이 계급적인 측면에서만 포착될 뿐, 성적 차이 및 젠더 관계의 측면이나 인종주의 및 국민주의(nationalism)의 측면 등에서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튀세르의 개념화가 지닌 중요한 한계일 것이다. 이는 알튀세르 과잉결정 개념의 애매성(ambiguity)과 연결돼 있다. 한편으로 보면 과잉결정 개념은 전통적인 경제결정론을 넘어서 모순의 복합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을 계속 보존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과잉결정은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이 유지되는 한에서만 의미 있는 범주가 되는 것이다. 이는 과잉결정 개념이 자본주의적 모순과 다른 모순들(성적 모순, 인종적 모순 등)의 복합적 관계를 사고하는 인식론적 장애물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과잉결정만이 아니라 과소결정 개념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또는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동시적인 작용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이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앞의 글 참조.]


󰡔검은 소󰡕는 알튀세르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을 뿐더러, 어떤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의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시대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검은 소󰡕, 특히 그 핵심을 이루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테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떤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 적어도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있는 불평등과 지배, 착취와 배제의 문제가 자본주의적 모순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필연성은 불가능성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필연성, 곧 아포리아적인 필연성이다. 이러한 불가능성의 시험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말 그대로 길-없음(a-poros)이며, 독자들 각자 스스로 통과해 나가야 할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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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현상학 연구]에 실릴 논문 한 편 올립니다. 


아직 교정이 다 끝나지 않은 글이니, 논문을 인용하거나 논문에 관해 토론하려는 분들은 


[철학과 현상학 연구]에 실린 판본을 대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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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슈미트와 자크 데리다: 주권의 탈구축

[이 논문은 칼 슈미트와 21세기 정치현상학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2018428일 한국 현상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이후 수정보완을 거쳐 완성된 논문이다. 좋은 논평을 해준 학술대회 참석자들 및 익명의 심사위원들에게 감사드린다.]


 

 

I. 데리다와 주권의 문제

 

지난 1990년대 이후 데리다는 {법의 힘}[Jacques Derrida, Force de loi, Paris: Galilée, 1994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마르크스의 유령들}[Jacques Derrida, Spectres de Marx, Paris: Galilée, 1993(󰡔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그린비, 2014(수정 2)).], {우애의 정치}[Jacques Derrida, Politiques de l’amitié, Paris: Galilée, 1994.], {환대에 대하여}[Jacques Derrida & Anne Dufourmantelle, De l’hospitalité, Paris: Calmann-Lévy, 1997(󰡔환대에 대하여󰡕,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불량배들} 등과 같은 저작들을 통해 또는 데리다가 사망한 뒤에 유고로 출판되고 있는 여러 강의록을 통해 법, 정치, 환대, 주권, 마르크스주의 등과 같은 정치철학 내지 실천철학의 주요 쟁점들을 다루는 탈구축적인 방식을 충실히 보여주었다.


이 글에서 내가 다뤄보려고 하는 것은 그 중에서도 주권에 관한 데리다의 작업이다. 주권의 문제는 초기 데리다 저술에서는 거의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기록과 차이}에 수록된 조르주 바타이유에 관한 논문에서 바타이유의 낭비, 일반경제 개념 등과 관련하여 주권 개념이 부분적으로 논의되기는 했지만,[Jacques Derrida, “De l’économie restreinte à l'économie générale. Un hégélianisme sans réserve”, in L'écriture et la différence, Paris: Seuil, 1967. 이 책은 󰡔글쓰기와 차이󰡕라는 제목으로 국역본이 나와 있으나(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1), 번역에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특히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을 계기로 출간된 {테러 시대의 철학}에 수록된 자기면역-실재적이고 상징적인 자살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으며[Jacques Derrida, “Autoimmunity: Real and Symbolic SuicidesA Dialogue with Jacques Derrida”, in Giovanna Borradori, Philosophy in a Time of Terror: Dialogues with Jürgen Habermas and Jacques Derrida,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3; 데리다와의 대화: 자가-면역, 상징적이고 실재적인 자살, 지오반나 보라도리, 󰡔테러 시대의 철학: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담󰡕, 손철성 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다른 한편으로 파울 첼란(Paul Celan)의 시학과 관련하여(따라서 홀로코스트, , 주권적인 것, 상징적 폭력, 독특성, 표상/대표 등과 연결하여) 발전되었다[이점에 관해서는 파울 첼란과 주권의 문제에 관한 데리다의 저술을 편역한 다음 저술을 참조. Jacques Derrida, Sovereignties in Question: The Poetics of Paul Celan, ed. Thomas Dutoit,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5.]. 하지만 이 주제가 가장 집약적이고 밀도 높게 다루어진 것은 데리다가 생전에 출판한 마지막 저작인 {불량배들}이었으며[Jacques Derrida, Voyous, Paris: Galilée, 2003. 이 책은 2003년 우리말로 번역된 적이 있는데, 오역이 심해서 도저히 참조하기 어렵다. 󰡔불량배들󰡕, 이경신 옮김, 휴머니스트, 2003.], 유고로 출간된 강의록 {짐승과 주권자} 및 {사형}에서도 주권의 문제가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Jacques Derrida, Séminaire. La bête et le souverain, tome I ~ II (2001 ~ 2003), Paris: Galilée, 2008~2009; Séminaire la peine de mort, tome I ~ II (1999 ~ 2001), Paris: Galilée, 2012~2015.


주권에 관한 데리다의 논의는 보통 정치학이나 정치철학에서 주권 개념을 다루는 것과 매우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정치철학 내지 실천철학에 관한 데리다의 다른 논의와 마찬가지로 주권에 관한 논의 역시 한편으로 매우 사변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데리다가 수십 년 동안 전개해온 자신의 철학적 논리(이것을 차이(差移, différance)의 논리라고 하든[데리다의 이 신조어는 우리말로 보통 차연이라고 번역되지만, 필자는 본문에서 사용한 번역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점에서 필자는 김남두-이성원의 제안을 따른다. 이 개념의 번역 문제에 관해서는 이성원, 해체의 철학과 문학비평, 이성원 엮음, 󰡔데리다 읽기󰡕, 문학과지성사, 1997 참조. 최근 주재형은 챠이라는 번역어를 제안한 바 있는데, 흥미로운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주재형, 데리다: 혁명의 탈-구축, 󰡔마르크스주의 연구󰡕 153, 2018 참조.] 아포리아의 논리라고 하든 또는 유사초월론(quasi-transcendentalism)의 논리라고 하든 간에[데리다가 1968년 프랑스철학회에서 강연했던 “Différance”라는 글(나중에 󰡔철학의 여백들󰡕(1972)에 수록되었다)은 데리다 초기 철학의 논리를 집약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초기 데리다 철학에 관한 논의에서 중심적인 개념이 되었다. 반면 데리다는 후기 철학에서는 아포리아개념을 더욱 빈번하게 사용했으며, 이에 따라 후기 데리다 사상과 관련해서는 아포리아의 문제가 많은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한편 유사초월론적’(quasi-transcendantal)이라는 개념에 관해서는 진태원, 유사초월론: 데리다와 이성의 탈구축,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53, 2018 참조.])에 입각하여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논리를 변용하고 확장하면서 전개된다. 이 글에서는 데리다의 풍부하고 다면적인 논의를 충실히 따라 가기는 어렵고 그 논의의 몇 가지 논점만 이끌어내 볼 것이다.


주권에 대한 탈구축 작업과 관련하여 칼 슈미트에 대한 데리다의 독해를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 데리다 저작에서 슈미트는 중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따라서 가령 아감벤, 데리다 및 일군의 현대 주권 이론가들은 슈미트의 두 개의 경구적 텍스트[󰡔정치적인 것의 개념󰡕, 󰡔정치신학󰡕]과 관련하여 자신의 방향을 설정해왔다”(Anne Norton, “Pentecost: Democratic Sovereignty in Carl Schmitt”, Constellations, vol. 18, no. 3, 2011, p. 389)는 식의 주장은 사태를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 이는 아감벤이나 다른 주권 이론가들에게는 사실일 수 있겠지만, 데리다에게는 들어맞지 않는 주장이다. 이런 식의 단순화와 일반화는 데리다의 정치철학이나 주권이론을 이해하는 데에도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아감벤과 데리다 사이의 갈등적인 관계를 해명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데리다와 슈미트(아감벤)의 차이에 관한 좀 더 세심하고 균형 있는 평가들로는, Benjamin Arditi, “On the Political: Schmitt contra Schmitt”, Telos, no. 142, 2008; Matthias Fritsch, “Antagonism and Democratic Citizenship(Schmitt, Mouffe, Derrida)”, Research in Phenomenology, vol. 38, 2008; Bonnie Honig, Emergency Politics: Paradox, Law, Democrac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9 4~5장을 참조.] 후설이나 하이데거, 또는 칸트나 헤겔, 아니면 프로이트나 라캉 또는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 블랑쇼, 레비나스 같은 사상가들이 초기 데리다에서부터 후기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그리고 자주 거론되고 면밀한 독서의 대상이 되었던 것에 비해, 슈미트는 데리다가 정치철학 및 법철학의 문제들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후기 저술, 특히 {우애의 정치}에서 처음 거론되며, 강의록 {짐승과 주권자}에서도 부분적인 논의의 대상이 된다.[이 때문에 칼 슈미트와 자크 데리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슈미트에 대한 데리다의 탈구축적 독해는 주권 개념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에 관한 논의,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정치적인 것에 관한 슈미트의 논의에는 주권에 대한 그의 고유한 관점이 깔려 있으며,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탈구축하는 데리다의 독서는 슈미트의 주권 개념에 대한 데리다의 관점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2절에서 우선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주요 논점을 살펴본 뒤, 그와 관련하여 {정치신학}에 나타난 주권의 논리를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3절에서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주권 개념에 대한 데리다의 탈구축의 요점을 결정 불가능성’, ‘약한 메시아적 힘’, ‘자기면역을 중심으로 제시해볼 것이다. 마지막 4절에서는 데리다 주권론의 구체적인 함의를 살펴보기 위해 국경의 민주화라는 주제를 고찰해보겠다.

 


II. 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본질과 주권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1장은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Carl Schmitt, Der Begriff des Politischen, Berlin: Duncker & Humbolt, 1979, p. 7; 󰡔정치적인 것의 개념󰡕, 김효전정태호 옮김, 살림, 2012, 31. 󰡔정치적인 것의 개념󰡕 독일어판 텍스트에 대해 한 마디 언급해두기로 하자. 이 텍스트는 1927󰡔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논총󰡕(Archiv für Sozialwissenschaft und Sozial Politik) 581호에 논문 형태로 처음 출판되었으며, 1932년 단행본 저작으로 출간되었다. 그 뒤 1963년 같은 출판에서 슈미트의 새로운 서문과 함께 1932년 판이 재출간되었으며, 국역본과 영역본을 비롯한 대개의 번역본들은 이 판본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하인리히 마이어에 따르면 이것은 사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더 탁월한 최종판”, 1933년의 제3판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한 슈미트의 선택이었다. 그것은 1933년 판에는 나치스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반유대주의적 언급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Heinrich Meier, Carl Schmitt, Leo Strauss und “Der Begriff des Politischen”, Stuttgart: J.B. Metzler, 2013(초판은 1988), p. 14 5). 마이어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슈미트의 텍스트들 가운데 예외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로 이 텍스트가 3종류의 상이한 판본을 지닌 유일한 저작이며, 이 텍스트가 촉발한 적수들과의 논쟁을 반영하기 위해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을 든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변형을 초래한 것이 레오 스트라우스의 비판이었으며,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주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슈미트의 주선으로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논총󰡕에 실렸다. Leo Strauss, “Anmerkungen zu Carl Schmitt, Der Begriff des Politischen”, Archiv für Sozialwissenschaft und Sozial Politik, vol. 67, no. 6, August-September, 1932, pp. 732~49; 국역본은, 카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주해, 󰡔정치적인 것의 개념󰡕, 187~223. 1932년 판과 1933년 판 사이의 차이는 바로 스트라우스와의 대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게 마이어의 논지다. 반면 윌리엄 슈어먼은 마이어가 정치신학의 영향을 과장한다고 비판하면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1927년 판 논문과 1932년 판 저서의 차이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의 영향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Willaim E. Scheuerman, “chapter 9. Another Hidden Dialogue: Carl Schmitt and Hans Morgenthau”, in Carl Schmitt: The End of Law, Lanham, Maryland: Rowman & Littlefield, 1999 참조.그리고 2장에서는 다시 정치적인 것의 규준”(Kriterium des Politischen)동지의 구별”(Unterscheidung von Freund und Feind)에서 찾는다(Schmitt 1979, 14 (국역) 39. 강조는 원문).

 

이 구별은 새로운 고유 영역(eigenen neuen Sachgebietes)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앞서 말한 하나 또는 몇몇 대립들에 근거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것들에게 귀착시킬 수도 없다는 의미에서 독립적이다. ... 적과 동지의 구별은 결합 내지 분리, 연합 내지 분열의 최고의 강도를 나타낸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것은 상술한 모든 도덕적미적경제적 구별 등에 동시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도 존립할 수 있다. 정치상의 적이 도덕적으로 악할 필요는 없으며, 미적으로 추할 필요도 없다. 경제적인 경쟁자로서 등장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 적이란 바로 타자, 이방인(der Andrere, der Fremde)이며, 그 본성상 그가 특별히 강렬한 의미에서 실존적으로 어떤 타자이며 이방인이라는 것만으로 족할 것이다. ... 동지와 적이라는 특수한 대립을 다른 구별들로부터 분리시켜 독립적인 것으로서 파악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 이미 정치적인 것의 존재로서의 사실성과 독립성이 나타나는 것이다.”(Schmitt 1979, 1415 (국역) 39. 강조는 인용자)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슈미트의 구별은 도덕적인 것, 미적인 것, 경제적인 것 또는 종교적인 것 등과 구별되는 정치적인 것의 고유성을 식별하려는 이론적 노력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겉으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이 다른 영역, 곧 미적인 영역, 종교적 영역, 도덕적 영역, 경제적 영역과 같은 사회적 삶의 영역들과 구별되는 별개의 한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은 고유 영역이 아니며 결합 내지 분리, 연합 내지 분열의 최고의 강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이를 단순히 정치라고 규정하지 않고 정치적인 것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치에 관한 당대의 학문이나 정치가들의 규정에 대한 슈미트의 근원적인 반발과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정치적인 것20세기 정치철학자들 다수가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이론화를 시도했던 개념이며,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적 계보학은 20세기 정치철학의 흐름을 해석학적으로 재구성하려는 표본적인 기획이 될 수 있다.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20세기 유럽정치사상사의 맥락에서 재구성하려는 한 가지 시도로는, Samuel Moyn, “Concepts of the Political in Twentieth Century European Thought”, in Jens Meierhenrich & Oliver Simon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arl Schmit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참조. Moyn은 슈미트적인 계보와 (레몽 아롱에게서 유래하는) 프랑스적인 계보(특히 클로드 르포르)의 차이를 강조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다소 자유주의적인 관점이다. 슈미트가 적대성을 강조하는 반면, 프랑스적인 계보는 공동체의 적극적 토대를 정초하려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좌파 하이데거주의라는 맥락에서 특히 프랑스 정치철학을 정치적인 것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다른 관점의 시도는 Oliver Marchart, Post-Foundational Political Thought,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Ltd, 2007 2“Politics and the Political: Genealogy of a Conceptual Difference”을 참조. Marchart의 시도는 하이데거적/데리다적인형이상학 탈구축의 시도따라서 존재론이라기보다는 유령론(hauntology)그람시/라클라우적인정치학 탈구축따라서 정치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을 접합하려는 시도이며, 말하자면 제일철학으로서 정치사상”(162)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인데, 내가 보기에 이는 데리다 자신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곧 정치 내지 정치적인 것의 근원적 핵심을 파악하는 대신 정치적인 것을 국가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일이 일어나거나, 더 나쁜 경우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Schmitt 1979, 56 (국역) 93)의 경우처럼 정치 자체를 탈정치화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하인리히 마이어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새로 정의하려는 슈미트의 작업의 바탕에는 정치를 기술적인 것으로 환원하려는 자유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존재하며, 더욱이 슈미트는 이점에서 자유주의는 공산주의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간주했다. Heinrich Meier (2013) 11~12. 또한 나종석, 정치적인 것의 본질과 칼 슈미트의 자유주의 비판, 󰡔헤겔연구󰡕 25, 2009도 참조. 다른 한편 레오 스트라우스는 슈미트 자신의 반자유주의가 사실은 자유주의적 전제에 의거해 있음을 홉스와의 비교를 통해 보여준 바 있다. 레오 스트라우스 (1932) 참조.] 더 나아가 슈미트에 따르면 이것은 전체 국가”(der totale Staat)로의 경향을 더욱 강화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승리한 자유주의적 제국주의가 정당한 적이라는 범주를 배제한 가운데 오히려 적을 범죄자”(Schmitt 1979, 2 (국역) 18)로 만들게 되고, 중립적이거나 비정치적인 수사법 아래 새로운 십자군 운동이나 인류의 최후의 전쟁”(Schmitt 1979, 65 (국역) 105) 같은 훨씬 더 파괴적이고 전면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낳게 된다. 따라서 적과 동지의 구별, 그리고 그것을 전제하는 고전적인정치의 모델, 곧 슈미트에 따르면 유럽공법질서로의 복귀 내지 재구성이야말로 오히려 전쟁을 제한하고 국제법에 따라 그것을 규제하는 것, 󰡔대지의 노모스󰡕의 표현을 따르면 전쟁을 길들이는 것”(Hegung des Krieges)을 가능하게 해준다.[슈미트의 국제관계론에서 전쟁 길들이기에 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주권 개념에 대한 서론, 진태원 옮김, 󰡔우리, 유럽의 시민들?󰡕, 후마니타스, 2010 및 베노 테슈케, 결정과 비결정: 칼 슈미트의 지적정치적 수용, 󰡔뉴레프트리뷰 4󰡕, 도서출판 길, 2012를 각각 참조.]


슈미트는 이러한 적과 동지의 구별을 공적인차원과 사적인차원에서 다시 구별한다.

 

적이란 단지 적어도 때에 따라서는 현실적 가능성으로서 투쟁하는 인간 전체이며, 바로 그러한 전체와 대립하는 전체이다. 따라서 적이란 공적인 적만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인간의 전체, 특히 전체 국민과 관련되는 것은 모두 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적이란 공적(公敵, hostis)이며, 넓은 의미에서의 사적(私敵, inimicus)은 아니다.”(Schmitt 1979, 16 (국역) 42. 강조는 원문)

 

슈미트는 공적인 적사적인 적의 구별을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폴레미오스”(polemios)에크로스”(Echthros)의 용례에서 가져오는데, 이는 다시 헬라스인과 헬라스인이 아닌 사람들 간의 전쟁으로서 폴레모스(polemos)와 헬라스인 내부에서의 갈등, 곧 일종의 내전으로서의 스타시스(stasis) 사이의 구별에 근거를 두고 있다.[데리다의 슈미트 독서와 관련하여 칼 슈미트에게서 의 두 가지 개념 구별의 의미에 대해서는 David Lloyd Dusenbury, “Carl Schmitt on Hostis and Inimicus: A Veneer for Bloody-Mindedness”, Ratio Juris, vol. 28, no. 3, 2015; Jacques de Ville, “The Foreign Body Within the Body Politic: Derrida, Schmitt and the Concept of the Political”, Law and Critique, vol. 26, no. 1, 2015를 각각 참조. 전자는 슈미트의 개념 구별의 문헌학적 부정확성(따라서 이 구별의 문헌학적 출처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데리다의 부주의함)을 드러내고 있고, 후자는 이 구별에 대한 탈구축(이는 저자에 따르면 곧 정치적인 것의 개념 속에 내재해 있는 자기 파괴의 가능성으로서 자기면역을 보여주는 것이다)을 데리다의 슈미트 독서의 핵심으로 간주한다.]

적과 동지의 이러한 구별은 일차적으로는 엄밀한 의미의 정치와 내치(內治, Polizei)를 구별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며, 더 나아가 이라는 범주를 유럽공법질서의 규범에 따라 규정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슈미트는 1963년 판 서문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된 이른바 냉전에서 전쟁과 평화와 중립, 정치와 경제, 군인과 민간인, 전투원과 비전투원 같은 구별들 및 그 기초를 이루는 적과 동지 같은 모든 개념의 축들이 무너지고 있다”(Carl Schmitt 1979, 10 (국역) 28)는 아쉬움을 표현하면서, 그 본질적인 증상으로서 고전적인 의미의 ’(enemy) 개념과 다른 범죄자로서의 ’(foe)이라는 개념이 수백 년 간의 침묵 끝에 다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슈미트는 1963년 판 서문에서 이제 국가중심의 시대(Epoche der Staatlichkeit)는 끝나 간다고 지적하면서, “<국가적>이라는 개념과 <정치적>이라는 개념이 일치했던 시대고적인 유럽의 국가의 시대, 유럽공법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Schmitt 1979, 4 (국역) 1617) 그러면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재규정하려는 자신의 시도에 대한 두 가지 도전을 바로 파르티잔 개념과 냉전의 문제에서 찾고 있다. 더 나아가 1972년 출간된 󰡔정치적인 것의 개념󰡕 「이탈리아판 서문에서는 국가와 더불어 또는 국가 없이, 국가적인 내용과 더불어 또는 그 내용 없이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는 새로운 주체들의 다양성이라는 문제를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사고해야 할 새로운 정치적 현실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이는 주지하다시피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관한 중간 논평이라는 부제를 지닌 󰡔파르티잔 이론󰡕의 중심 주제를 이룬다. Carl Schmitt, Theorie des Partisanen, Berlin: Duncker & Humbolt, 1963; 󰡔파르티잔: 그 존재와 의미󰡕, 김효전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8. 이에 관해서는 Benjamin Arditi, “Tracing the Political”, Angelaki: Journal of the Theoretical Humanities, vol. 1, no. 3, 1996 참조.] 따라서 슈미트에 따르면 적과 동지의 구별이 존재할 때 어떤 갈등 내지 대립은 정치적인 것이 된다. 가령 종교 단체들 간의 투쟁이 적과 동지의 구별에 의거하면 이 종교 단체들은 종교 단체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통일체이다.”(Schmitt 1979, 25 (국역) 51) 또한 산업 콘체른이나 노동조합의 경우도 그러하며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계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계급 투쟁을 진지하게 행하고, 상대방 계급을 실제의 적으로 다루고 국가 대 국가든 한 국가 내부의 내전이든 그것과 투쟁하는 경우에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며 정치적 세력이 된다. ...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와의 대립 ...”(같은 곳)


적과 동지의 구별을 공적인 차원에서 규정하려는 노력을 넘어서 슈미트는 이를 전쟁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이는 정치적 대립은 가장 강도 높고 극단적인 대립”(Schmitt 1979, 17 (국역) 43)이며, 그 본질은 전쟁이라는 투쟁 형식에서 가장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자신이 말하는 전쟁을 다른 유형의 전쟁, 곧 논쟁이나 경합 같은 정신적인 의미의 전쟁이나 국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서의 내전과도 구별한다. 엄밀한 의미의 전쟁에는 조직된 정치적 통일체 간의 무장투쟁만이 속한다.

 

여기서 투쟁이라는 말은, 적이란 말과 마찬가지로 그 본래의 존재양식이 의미하는 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투쟁이란 경쟁이 아니며 순수하게 정신적인논쟁도 아니다. ... , 동지, 그리고 투쟁이라는 개념들이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들이 특히 물리적 살해의 현실적 가능성(reale Möglichkeit der physischen Tötung)과 관계를 맺으며, 또한 계속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 있다. 전쟁은 적대 관계에서 생긴다. 적대 관계란 타자의 존재 그 자체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란 적대 관계의 가장 극단적인 실현에 불과하다.”(Schmitt 1979, 20 (국역) 4546)

 

그리고 슈미트는 여기에서 정치적인 것을 결정하는 기준인 적과 동지의 구별을 주권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정치적인 것이 적과 동지의 구별, 곧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 결정하는 데 의거하고 있다면, 이러한 결정 위에서 정치적 통일성의 가능성이 성립하며, 이러한 결정의 수행 주체가 바로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권자의 결정의 중요성은 위급사태 내지 예외상태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준이 되는 것은 언제나 이와 같이 결정적인 사태, 즉 현실적인 투쟁의 가능성과 이러한 사태가 현재 발생했는가 여부에 관한 결정뿐이다. 이러한 사태가 예외적으로만 발생한다는 것은 그 규정적 성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확증하는 것이다. ...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이란 사태는 위급사태’(Ernstfall). 이 경우에도 또한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외상태(Ausnahmefall)는 결정적인, 사물의 핵심을 명백히 하는 의미를 지닌다.”(Schmitt 1979, 2223 (국역) 49)

 

여기서 슈미트가 사용하는 주권이라는 말은 정치적 통일성을 함축하며, 이러한 통일성은 예외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통해 표현된다. 주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정치적 통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Schmitt 1979, 27 (국역) 53)


주지하다시피 슈미트는 󰡔정치신학󰡕 첫머리에서 주권자를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의한 바 있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Berlin: Duncker & Humbolt, 2004(초판은 1923) p. 13; 󰡔정치신학󰡕, 김항 옮김, 서울: 그린비, 2010, 16.이것은 법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주권자가 역설적인 위치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주권자는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타당한 법질서의 외부에 있으며, 그럼에도 그러한 질서에 속해 있는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헌정을 전면 중단시켜야 할 것인지 결정할 권한은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Schmitt 2004, 14 (국역) 18. 번역은 약간 수정) 우리가 슈미트의 주권 및 주권자 개념의 논점을 이해하려면, 그리고 이를 데리다의 주권에 대한 탈구축과 관련하여 해명하려면 󰡔정치신학󰡕에 나오는 다음 대목을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인용문 본문에 괄호로 표시한 숫자는 필자가 붙인 것이다.]

 

“(1) 예외란 포섭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일반적인 정식화의 범위를 넘어선다. (2-1) 하지만 동시에 예외는 결정이라는 특수한 법학적인 형식 요소를 그 절대적인 순수성 속에서 드러낸다. (2-2) 예외적 사태는, 우선 법적 규칙들이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절대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 (2-3) 혼돈 상태에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은 없다. 법질서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즉 정상적 상황을 창조해내야 한다. 이러한 정상적 상태가 실제로 군림하는지 여부를 확정적으로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다. 모든 법은 상황법’(Situationsrecht)이다. (3-1) 주권자는 전체로서의 상황을 그 총체성 속에서 창조하고 보증한다. 주권자만이 이러한 궁극적인 결정권을 독점한다. (3-2) 국가 주권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법학적으로 보아 국가 주권에 적절한 정의는 결코 제재나 처벌의 독점이 아니라 바로 결정의 독점으로 ... 예외적 사태는 국가 권위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

(4-1) 예외는 정상적인 경우보다 더 흥미롭다. 정상적인 경우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지만 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한다. (4-2) 또한 예외는 단순히 규칙을 입증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규칙 자체가 예외를 통해서만 생존한다. (...) 19세기의 신학적 성찰이 얼마나 놀라운 강렬함을 가질 수 있었는지를 어느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는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예외는 일반적인 것과 그 자체를 동시에 설명해준다.””(Schmitt 2004, 1921 (국역) 25. 번역은 다소 수정)

 

매우 밀도가 높은 이 대목에서 슈미트는 다음과 같은 논점을 전개하고 있다. 우선 그는 예외의 기본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예외란 포섭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일반적인 정식화의 범위를 넘어선다.” 기본적인 뜻에 따라 이해할 경우 예외는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a) 일탈, 비정상 (b) 일시적인 것, 잠정적인 것 (c) 규칙이나 정상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 그런데 슈미트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기본적인 또는 일상적인 의미의 예외가 아니라 법학적인 의미에서 결정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개념으로서의 예외다. 예외와 결정의 관계를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예외적 사태는 법적 규칙들이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절대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예외는 (a)(b)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c)를 함축하지는 않는다. (c)규칙과 예외, 또는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 사이에 일종의 존재론적 순서를 전제한다. 곧 규칙이나 정상적인 것은 예외나 비정상적인 것에 논리적존재론적으로 우선하는 것이며, 전자로부터의 일시적인 일탈로서의 후자는 가급적 빨리, 그리고 온전하게 전자로 복귀해야 한다.


반면 (2-2)는 이러한 순서의 역전을 함축한다. 왜냐하면 슈미트가 관심을 갖는 예외는 절대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예외적 사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대적 예외 상태는 정상적인 것으로 가급적 빨리 복귀해야 하는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라, “법적 규칙들이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해야 하는 상태이다. 곧 이러한 예외 상태는 일반적인 법적 규범이 존재하지 않거나 이미 자신의 타당성을 상실한 상태(역사적으로 보면 국가 또는 법질서의 존망이 달려 있는 혁명이나 전쟁 상황), 따라서 (c)에서처럼 복귀하거나 회복해야 할 정상적인 질서가 부재하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예외 상태는 (2-3)에서 보듯이, 정상적인 상황을 창조해내야 하는 상태, 절대적 혼돈의 상태이다.


이러한 예외적 상태의 의미를 염두에 두고 앞에 나온 주권자에 대한 정의를 다시 살펴보자.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이 명제는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 ‘주권자는 예외상태에서 결정하는 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상사태나 긴급사태에 처해 있을 때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로 주권자라는 의미이다. 둘째,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본다면 이 명제는 주권자는 예외상태에 대하여 결정하는 자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첫 번째 의미에서는, 어떤 것이 예외상태인지 이미 확립되어 있고 또한 합의가 존재하고 있다면, 두 번째 의미에서는 무엇이 정상이고 예외인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예외와 정상을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타당한 헌정 질서가 무엇이고 반역 세력이 무엇인지, 아니면 이미 낡은 질서가 어떤 것이고 새로운 정당성을 지닌 세력이 어떤 것인지는 주권자의 결정에 달려 있다. 또는 그러한 구별을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다. 그렇다면 헌정 질서를 헌정 질서로 만드는 것이 바로 주권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슈미트는 (3-1)에서 주권자는 전체로서의 상황을 그 총체성 속에서 창조하고 보증한다. 주권자만이 이러한 궁극적인 결정권을 독점한다. 국가 주권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권의 본질은 (3-2)에서 말하듯 결정의 독점에 있다. 어떤 것이 정상적인 질서이고 어떤 것이 예외인지 결정하는 것, 그리고 예외 상태에서 어떤 헌정 질서를 창조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바로 주권의 본질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처음에 출발했던 예외에 대한 기본적인 또는 상식적인 의미의 완전한 전도가 이루어진다. (4-1)에서 말하듯 정상적인 경우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지만 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하는데, 왜냐하면 정상적인 경우는 이미 주어져 있는 법질서가 타당하다는 것을 전제한 가운데 그러한 법질서의 한 가지 경우로 포섭되어 있는 반면, 예외는 이러한 법질서의 타당성 내지 효력이 중단되어 버린 상황이며, 따라서 그러한 법질서의 한계가 드러나고 그와 다른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이 모색되거나 이미 드러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예외는 단순히 규칙을 입증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규칙 자체가 예외를 통해서만 생존한다”(4-2)고 할 수 있다. 곧 예외는 규칙 내지 법질서의 본질 및 그 한계를 드러내주는 것일뿐더러, 법질서의 존재 자체가 예외상태에서 내려지는 정상과 예외의 경계에 대한 결정에 따라 성립하고 유지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예외상태는 어떤 일시적인 상황, 가령 전쟁이나 계엄령, 긴급사태가 포고되는 경우만이 아니라 정의상 모든 법질서 내부에 그것의 가능 조건으로서 항상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모든 법질서는 주권의 심급을 전제하는데, 주권은 예외상태에서 예외상태(와 정상상태의 차이)를 결정하는 작용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권자는 법질서의 궁극적인 가능 조건이되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법질서에 속하지 않는 것, 법질서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슈미트가 주권자는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타당한 법질서의 외부에 있으며, 그럼에도 그러한 질서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슈미트는 정상적인 타당한 법질서라는 한정을 부여하지만, (2-3)에서 보듯 정상적 상태가 실제로 군림하는지 여부를 확정적으로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라고 한다면, 사실 주권자는 이러한 한정을 넘어선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법 일반과 그 바깥을 결정하는 자가 곧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슈미트가 말하는 외부 또는 바깥은 정확히 말하면 법의 바깥이다. 그것은 법과 관련하여 규정된 바깥이며, 법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지니는 바깥인 것이다. 따라서 주권자는, 슈미트 자신은 명시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법과 그 바깥의 경계를 결정하는 초월론적인 근거이되, 주권자를 이러한 근거로 만드는 것, 주권자를 주권자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슈미트는 법학자들에게는 반()법학적인 법학자 또는 적어도 비정상적이거나 예외적인 법학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철저히 법의 관점에서 사고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슈미트(또는 아감벤)에게 법 바깥의 사회적인 것 또는 법 바깥의 정치적인 것과 같은 것은 부재한다는 비판이 일리가 있다. 이점에 관해서는 베노 테슈케, 결정과 비결정: 칼 슈미트의 지적정치적 수용및 같은 저자의 지정학의 물신: 고팔 발라크리시난에 대한 답변, 󰡔뉴레프트리뷰 4󰡕, 도서출판 길, 2012; Jef Huysmans, “The Jargon of Exception: On Schmitt, Agamben and the Absence of Political Society”, International Political Sociology, no. 2, 2008을 각각 참조.]

 


III. 결정, 폭력, 자기면역: 슈미트에 대한 탈구축

 

그렇다면 데리다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및 그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적대, 갈등, 폭력의 문제에 대하여, 또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 근저에 놓여 있는 주권에 관하여 어떻게 사고했을까? 이 장에서는 이러한 쟁점들에 관해 결정의 아포리아폭력과 메시아적인 힘’, ‘주권과 자기면역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1. 결정의 아포리아

 

데리다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에 대한 독서에서 슈미트를 일방적으로 비판하지도 않으며, 또한 슈미트의 관점에 대하여 자유민주주의적인 규범적 토대를 옹호하지도 않는다. 그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내재한 아포리아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한다.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결정(decision)의 아포리아인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본 것처럼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나 󰡔정치신학󰡕 그리고 다른 여러 저작들에서도 결정의 문제는 슈미트에게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90년대 이후 데리다의 저술, 특히 정치철학 내지 실천철학에 관한 저술의 주요 논점 중 하나는 결정 불가능성의 아포리아였다.


이러한 아포리아가 가장 명료한 언어로 표현되는 󰡔법의 힘󰡕에서 데리다는 아포리아의 경험비록 그것이 불가능한 것일지라도이 없이는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정의는 불가능한 것의 한 경험”(Derrida 1994a, 37)이라는 점을 환기시킨 뒤, 법과 정의 사이의 세 가지 아포리아 가운데 두 번째 아포리아를 결정 불가능한 것의 유령”(Derrida 1994a, 같은 곳)이라고 부른다. 결정이 적법한 결정을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결정, 곧 정의로운 결정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계산 가능한 것과 규칙의 질서를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지고 나면 그것은 다시 한 번 어떤 규칙, 주어져 있었거나 발명된 또는 재발명된, 그리고 재긍정된 어떤 규칙을 따랐던 것이 된다.”(Derrida 1994a, 5253) 곧 어떤 규칙이나 계산 가능성의 질서의 한 사례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규칙이나 계산 가능성의 질서를 무시하거나 그것을 무조건 침해하려고 하는 것은 최악의 도착적인 결정을 낳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결정이 정의로운 결정이기 위해서는 결정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기존의 지식이나 계산 가능성에 의지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시 정의로운 결정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식이나 규칙 또는 계산 가능성을 무시하는, 그것에 위배되는 결정이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데리다가 󰡔법의 힘󰡕에서 결정 불가능한 것의 유령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우애의 정치󰡕에서 데리다가 슈미트를 독서할 때에도 이와 유사한 논리적 분석이 제시된다. 아주 집약적이고 밀도 있는 한 대목을 보자.

 

우리는 모든 결정 이론, 특히 외관상 근대적인 모양을 띠는 이론, 가령 슈미트의 결정주의 및 그 우파적이거나 좌파적인’, 심지어 네오마르크스주의적인 유산우리는 뒤에서 이점에 대해 다룰 것이다이 관여해야 하는 아포리아를 예고하기 위해 결정에 관해 강조한다. 이러한 결정주의는 알다시피 적에 대한 이론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것의 조건 자체를 이루는 적의 모습은 20세기에 고유한 의미의 적의 상실로 인해 지워지고 있다. 우리는 적을 상실하고, 따라서 정치적인 것을 잃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사건의 아포리아는 아마도(peut-être)와 관련하여 결정의 아포리아와 교차하며, 또한 그것을 축적하거나 과잉규정한다.[알튀세르의 개념인 surdétermination은 대개 과잉결정으로 번역되지만, 여기에서는 decision과 구별하기 위해 과잉규정으로 번역했다.]...... 결정은 확실히 사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결정은 또한 모든 주체의 자유와 의지를 기습해야/놀라게 해야(surprendre) 하는, 한 마디로 말하면 주체의 주체성 자체를 기습해야/놀라게 해야 하는, 주체가 모든 결정 이전에 그리고 결정을 넘어서모든 주체화 이전에, 심지어 모든 객체화 이전에노출되어 있고 민감하고 수용적이고 취약하며, 근본적으로 수동적인 곳에서 주체를 변용하는, 이러한 돌발(survenue)을 중립화한다. ...... 주체 이론은 최소한의 결정을 해명하는 데 무능력하다. 하지만 이는 특히 사건에 대하여, 그리고 결정과 관련된 사건에 대하여 언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결코 어떤 것도, 사건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어떤 것도 주체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결정의 도식은 규칙적으로적어도 그 공통적이고 헤게모니적인 수용(여전히 슈미트의 결정주의, 그의 예외 및 주권 이론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는)에서 본다면주체의 심급(instance), 고전적인 주체, 자유롭고 의지적인 주체, 따라서 그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일어나지 않는, 심지어 주체 자신이 가령 예외적인 상황에서 어떤 독특한 사건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보존한다고 믿고 있는 순간 그 독특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주체의 심급을 함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Derrida 1994b, 8697. 강조는 원문)

 

데리다가 사건의 아포리아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방금 전에 봤던 결정 불가능한 것의 아포리아에서 모든 지식과 계산 가능성, 규칙성을 넘어서는, 기존의 인식적경험적실천적 지평에서는 예상할 수 없었고 심지어 측정될 수도 없는 어떤 것, 그야말로 미증유의 것(데리다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이점을 함축할 때에만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다)의 발생과 관련된 것이다. 어떤 것을 사건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그것은 사건으로 규정될 수 있어야 하지만, 사건이 사건이기 위해서 그것은 규정 가능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의 아포리아는, 데리다에 따르면 결정의 아포리아와 교차하고, “그것을 축적하거나 과잉규정하는것이다. 왜냐하면 결정이 계산 가능성 및 지식의 지평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면, 결정은 항상 어떤 사건을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사건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이 지닌 이러한 사건성이 강조된다면, 위에서 언급했던 결정의 아포리아는 더 첨예하게 제기된다. 그것은 늘 확정 불가능한 아마도”(peut-être, perhaps)의 양상을 띠게 된다.


주체와 관련해 보면, 사건은 늘 주체를 기습하는, 따라서 주체를 놀라게 만드는(surprendre) 어떤 것이다. 사건이 진정한 의미의 사건이라면 그것은 예상 가능하거나 계산할 수 있는 어떤 것이어서는 안 되며, 주체를 기습하고 놀라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는 사건에 대해 속수무책이고 수동적이고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에 늘 노출되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자유로운 주체라 하더라도 사건에 대해서는 자유롭지도 능동적이지도 자율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사건은, 주체를 변용하는(affecter) 것이다. 사건은 주체를 기습하여 주체를 놀라게 하고 주체를 다른 것으로 변용시킨다. 사건 이전과 이후 주체는 동일한 주체로, 동일한 어떤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슈미트가 적과 동지의 구별을 정치적인 것의 규준으로 삼고, 특히 예외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을 가장 탁월한 정치적 주체인 주권자의 본질로 정의할 때, 그는 주권자가 사건에 대해 수동적이거나 취약한 것이 아니라 또한 그것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하고 보존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사건이 아닐 것이며, 주체가 여전히 주도권을 장악하고 보존할 수 있다면, 주체는 늘 바로 그것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가 첫 머리에 언급하듯이 192030년대에 쓰인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나 󰡔정치신학󰡕, 그리고 다른 저작들 역시, 또한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저술들까지도 슈미트의 중요한 의도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20세기에 고유한 의미의 적의 상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상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막거나 여기에 맞서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권자가 사건에 대해 주도권을 장악하고 그것을 보존하고 있는데, 또한 예외상태에서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어떻게 적을 상실하는 일이,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 소멸되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가? 슈미트의 시도 자체가, 그리고 그의 시도의 실패 자체가 정치적인 것에 관한, 예외상태, 주권에 관한 그의 논의가 본질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논의에 깔려 있는 주체 개념의 한계로 인해, 따라서 결정 불가능성의 아포리아 및 사건의 아포리아에 대한 맹목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는 슈미트가 그 자신이 유럽공법이라고 부르는 법질서 체계를 불변의 국제적인 규범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질서에서 주요한 행위자로 존재하는 국민국가들을 보편적인 정치적 공동체로 전제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의 기원에 관한 물음도 또한 종말에 관한 물음도 슈미트의 법학이나 정치신학에서는 제기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보면 이러한 기원에 관한 물음이 󰡔대지의 노모스󰡕에서 체계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Carl Schmitt, Der Nomos der Erde im Völkerrecht des Jus Publicum Europaeum (1950), Berlin: Duncker & Humbolt, 1974(󰡔대지의 노모스: 유럽 공법의 국제법󰡕, 최재훈 옮김, 민음사, 1995.] 하지만 그 물음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원이나 종말 또는 역사적 변화, 곧 주체를 놀라게 하고 주체에게 기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슈미트 자신의 개인적역사적 우여곡절이 그것의 탁월한 표본이 아닌가? 데리다가 계산을 넘어서야 할 필연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계산이나 규칙, 적법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 정의로운 결정은 이 두 가지 필연성을 모두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도착의 위험이 모든 결정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 폭력의 불가피성, 하지만 권력을 넘어 약한 메시아적 힘을 향해

 

다른 한편 데리다가 슈미트와 더불어 투쟁, 갈등, , 폭력이 정치의 고유한 요소를 이루고 있는 점에 찬동하리라는 것은 그의 다른 여러 텍스트들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가령 󰡔법의 힘󰡕을 생각해보면, 데리다가 법으로서의 정의 개념 자체에, 이 되는 것으로서의 정의, <>으로서의 법 개념 자체에 본질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힘”(Derrida 1994a, 15. 강조는 원문)에 관해 말할 때, 힘은 법, 법적인 정의, 따라서 정치의 고유한 요소라는 것을 긍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법이라는 것이 법 외부에 있는 어떤 힘이나 세력(가령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계급) 또는 폭력의 도구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법 자체가 힘이자 세력 또는 폭력이라는 것을 뜻한다.[이점에서 데리다는 알튀세르나 푸코와 구별된다. 알튀세르가 법 자체가 지닌 힘 내지 강제성을 환기시키면서도 그 힘의 수행성에 주목하는 대신 그것을 계급 지배의 도구로 환원한다면(Louis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aris: PUF, 1995(󰡔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7 4장 참조), 푸코는 법을 전근대적인 주권 권력의 핵심으로 파악할 뿐, 그것에 대해 근대 권력의 장 속에 고유한 위상 내지 기능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을 위하여󰡕, 그린비, 2017 7장 참조.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책의 제목의 더 정확한 번역은 법이라는 힘(force de loi)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데리다가 부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폭력적법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힘”(Derrida 1994a, 1617)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할 때, 이는 단순히 수사학적인 질문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법에 고유한 적법한 힘과 부당한 폭력 사이의 구별이 개념적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을 함축하는 질문이다. 실로 해당 대목에서 데리다는 매우 미묘한 논변을 전개하고 있다.[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폭력의 쉬볼렛: 벤야민, 데리다, 발리바르, 󰡔세계의 문학󰡕 135, 2010년 가을호 참조.]


또 다른 텍스트에서도 데리다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데리다는 {우편엽서}에 수록된 유명한 논문 프로이트에 대해 사변하기/프로이트에 편승하기[Jacques Derrida, “Spéculer sur Freud”, in La Carte postale, Paris: Flammarion, 1980. 이 논문의 제목은, 데리다의 다른 많은 글이나 제목과 마찬가지로 너무 다의적이어서 한두 가지 표현으로 충분히 의미를 살리기 어렵다.]에서 프로이트가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제기한 죽음충동’(Todestrieb, pulsion de mort)에 관해 엄밀하게 살펴본 바 있으며, 20년 뒤에는 다시 한 번 이 문제로 돌아가 죽음충동과 결부되어 있는 Bemächtigungstrieb, 권력충동 내지 주권적 장악의 충동”(pulsion de pouvoir ou maîtrise souveraine)의 문제를 제기한다. [Jacques Derrida, États d’âme de la psychanalyse, Paris: Galilée, 2000, p. 14. 이 책의 제목 역시 거의 번역이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가 이처럼 갈등과 투쟁, 힘과 폭력, 권력 등의 불가피성을 긍정한다고 해서 그가 칼 슈미트처럼 실존적 현실주의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슈미트는 적과 동지의 구별을 규준으로 삼는 정치적 대립은 가장 강도 높고 극단적인 대립이라고 주장하며, “, 동지, 그리고 투쟁이라는 개념들은 ... 물리적 살해의 현실적 가능성과 ... 관련된다는 점에서 현실적 의미를 가진다”(Schmitt 1979, 20 (국역) 4546)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것은 결국 전쟁으로 귀착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슈미트는 전쟁이란 적대관계의 가장 극단적인 실현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의도는 정치적인 실존이 유혈투쟁에 불과하다거나 정치적인 것의 정의가 호전적이거나 군국주의적인 것”(Schmitt 1979, 20 (국역) 46)을 본질적으로 포함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의 본질을 전쟁으로 환원한다는 비판에 대한 반비판으로는 특히 에른스트 볼프강 뵈켄회르데, 카를 슈미트 국법학 저작의 열쇠로서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헬무트 크바리치 엮음, 김효전 옮김, 󰡔반대물의 복합체: 20세기 법학과 정신과학에서 카를 슈미트의 위상󰡕, 산지니, 2014 참조.] 곧 그의 논점은 사람을 살해하는 것, 특히 집단적으로 살해하는 것은 어떠한 합리적 목적, 얼마나 정당한 규범, 또 얼마나 이상적인 강령,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적 이상, 어떠한 정당성이나 합법성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정치적인 것이란 존재적 의미에서 현실적으로 적이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며, 이때에는 타인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전쟁 ... 그것은 규범적 의미가 아니라 실존적(existenziellen) 의미에 불과한 것”(Schmitt 1979, 36 (국역) 66)이다.


하지만 데리다는 슈미트의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목적론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현상은 오직 적과 동지의 편 가르기의 현실적 가능성(reale Möglichkeit)과 관련을 가짐으로써만 파악되거나 포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물리적 살해의 현실적 가능성과 같이 여러 군데에서 되풀이해서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데리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이러한 '현실적 가능성'이 현존화되거나 현실화되는가, 가능태로서 아니면 현실태로서? 어떻게 이러한 현실이 때로는 현존을, 때로는 가능태 자체를 표시하는가? 전쟁에서. 아무튼 극단으로서의 전쟁, 예외상태의 극단적 한계로서, “극단적 사건성으로서의 전쟁에서. ... 이러한 현실적이거나 가능적인 현존은 사실이나 사례의 현존이 아니라, 목적의 현존이다. 정치적 목적, 이런저런 정치적 목표 또는 이런저런 정치의 목표가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목적(...)의 현존이다.”(Derrida 1994b, 155. 강조는 원문)

 

요컨대 슈미트 자신은 전쟁은 정치적인 것의 목적이 아니라 전제또는 그것의 극단적인 실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쟁과 정치적인 것 사이에 거리를 두려는 슈미트의 시도는, 그것에 본래적인 목적론으로 인해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데리다는 20세기 자유민주주의의 규범적 질서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이러한 갈등과 투쟁, 폭력과 권력의 범람에 직면하여 그 너머가 어떻게 가능한지 사유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나의 질문은 오히려, 그리고 뒤에서 더 논의하겠지만, 사유에 대하여, 도래할 정신분석적 사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또 다른 너머(un autre au-delà)가 존재하는가, 잔혹성이 고지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실행되는 것으로 보이는 쾌락원리와 현실원리, 그리고 죽음충동 내지 주권적 장악의 충동, 그리고 다른 것들과 같은 이러한 가능태들 너머에 있는 어떤 너머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전혀 다르게 말하면, 이 외관상 불가능한 것, 하지만 다르게 불가능한 것을 사유하는 것이 가능한가? 곧 죽음충동 내지 주권적 장악의 충동의 너머, 따라서 잔혹성 너머, 충동들과도 원리들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을 어떤 너머를 사유하는 것이 가능한가?”(Derrida 2000b, 14. 강조는 원문)

 

정신분석과 죽음충동, 따라서 잔혹과 주권을 가능성과 불가능성 또는 불-가능한 가능성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일은 또 다른 심층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간단히 논점만 언급해둔다면, 데리다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너머를 불가능한 무조건적인 것(l’inconditionnel impossible)의 다수의 형상들(Derrida 2000b, 83)에 입각하여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한 형상들에는 환대, 선물, 용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견 불가능성, ‘아마도’, 사건의 그리고 만약’, 도래, 타자 일반의 도래, 타자의 도착함”(Derrida 2000b, 같은 곳)이 있다. 또한 {법의 힘}에서 데리다가 말한 정의’, 그리고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제시한 바 있는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도 데리다가 언급한 불가능한 무조건적인 것의 형상들에 포함될 것이다.

 

3. 주권과 자기면역

 

데리다는 {불량배들}에서 민주주의가 자기의 권력, 자기의 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때의 자기는 그리스어로는 autos, 라틴어로는 ipse에 해당하는 것으로, 데리다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원리 내지 가치를 이루는 자유, 평등, 인민 등과 같은 개념들이 모두 이러한 의미의 자기”, 또는 자기성”(ipséité)의 성립 가능성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나는 자기성이라는 말을, 모종의 나는 할 수 있다”(je peux), 또는 적어도, 모임 내지 회합/의회(assemblée), 함께-있음, (또는 흔히 말하듯) “함께 살아가기의 동시성 속에서 자신을 재전유하면서 자신에게 자신의 법, 자신의 법의 힘, 자신의 자기 표상/자기 대표(représentation de soi), 주권적 모임(rassemblement)선사하는 /권력으로 이해하겠다.”(Derrida 2003b, 30. 강조는 원문)

 

그것은 민주주의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정치적 행위, 곧 선언하고 발언하고 투표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또 때로는 저항하고 봉기하고 변혁하는 모든 행위는 다른 사람의 권위나 도움, 또는 강제나 제약 없이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이를 수행하는, 따라서 자기 자신으로서 성립하고 실존하고, 유지될 수 있는 어떤 자기의 가능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기가 전제되지 않은, 그것이 성립할 수 있으며 작동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정의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데리다는 이러한 자기의 권력이 주권이라는 개념에 집약되어 있다고 본다. “모든 국가 주권 이전에, 국민국가, 군주정의 주권 이전에, 또는 민주주의에서는 인민 주권 이전에, 자기성은 적법한 주권 원칙, 어떤 권력이나 힘, 크라토스(kratos), 크라티(cratie)가 지닌 인정되거나 신임이 부여된 지배권(suprématie)을 명명한다.”(Derrida 2003b, 31) 그것은 주권이야말로 분할 불가능한 일자, 자기의 상징이자, 지고한(“sovereign”이라는 단어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 자율적 결정의 심급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가 없이 민주주의가 성립 불가능하다면, 또한 주권 없이도 민주주의는 성립 불가능하다.


하지만 데리다가 주권을 마냥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데리다 사상의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데리다의 주권 개념은 그의 후기 사상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자기면역(autoimmunité) 개념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이 개념은 생물학이나 의학에서는 보통 자가면역이라고 번역되는데, 이 개념의 접두어 ‘auto-’는 어원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철학에서도 대개 자기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언어적 일관성을 위해 이 글에서는 자기면역이라고 번역한다.1993년 저작인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처음 등장했을 때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살아 있는 자아는 자기면역적이지만, 그들[마르크스와 슈티르너-인용자]은 이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살아 있는 유일한 자아로 구성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동일한 것으로서 자기 자신과 관련시키기 위해, 살아 있는 자아는 필연적으로 자기 내부로 타자를 영접하게 되며(기술 장치들의 차이(差移), 되풀이 ()가능성, 비유일성, 보철, 합성 이미지, 허상과 같은 죽음의 여러 가지 모습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언어와 함께, 언어 이전에 시작된다), 따라서 외관상으로는 비자아, , 대립자, 적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면역적인 방어기제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 맞서서 작동시켜야 한다.”(Derrida 1993, 275)

 

그리고 이 개념은 그 이후 {신앙과 지식}(Derrida 2000a, 67 (국역) 205206, 23)), {테러 시대의 철학}(Derrida 2003a, 107 (국역) 206 이하) 등에서 활용되었다가 {불량배들}에서는 특히 다음과 같이 재규정된다.

 

내가 자기면역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자기 자신에 대해 해를 끼치거나 약화시키는 것, 심지어 자기 자신의 보호장치를 파괴하는 것 ... 그리하여 자살에 이르거나 자살의 위협을 가하는 것만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또한 좀더 심각하게는 ... 나 또는 자기, 에고 또는 자기(autos), 자기성 자체를 손상시키는(entamer) , 자기의 면역성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따라서 또한 자기성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단지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시성/자기 준거성(sui-référentialité), 자살의 자기(soi)를 위태롭게(compromettre) 만드는 것이다.”(Derrida 2003b, 71. 강조는 인용자)

 

원래 생물학 및 의학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원래의 맥락에서 본다면 질병을 가리키며, 따라서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에게 아포리아, 결정 불가능한 것 또는 차(差移) 등이 일방적으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성격을 띨 수 없는 것처럼 자기면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데리다에게 자기면역은 민주주의의 원리 자체에 내재한 민주주의의 난점 또는 아포리아를 뜻한다. 자기면역이 가리키는 것은 첫째, 민주주의는 보편적인 평등과 자유, 권리를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항상 시민들 가운데 일부를 배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공간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자기면역적 위상학은 항상 민주주의를 다른 곳으로 보내도록/면직하도록/연기하도록(renvoyer) 명령한다.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의 적들을 밖으로 보내고 밀어내고 배제함으로써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민주주의를 밀어내거나 축출하고 배제한다. ... 자기면역적 논리와 연계된 결정 불가능성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근대의 자유주의적인 의회 민주주의 ... 내에서 우리는 결코 이민자들, 특히 국민적 영토 안으로 들어와서 노동을 하고 있는 이민자들에게 투표권을 허가하거나 거부하는 것, 따라서 그들을 배제하는 것이 더 민주주의적인지 아닌지 입증할 수 없을 것이다. ... 이른바 다수자 투표가 비례 투표에 비해 더 민주주의적인지 덜 민주주의적인지도 입증할 수 없을 것이다. 두 가지 투표 형태는 민주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배제를 통해, 보냄/면직/연기(renvoi)을 통해 자신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보호한다.”(Derrida, 2003b, p. 60) 󰡔불량배들󰡕에서 랑부아(renvoi) 또는 동사인 랑부아예(renvoyer)는 다의적으로 산종되어 있다. 그것은 보내기’, ‘반송하기를 의미하지만, 또한 지연을 뜻하기도 하고, ‘해고내지 면직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둘째, 또한 민주주의는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민주주의를 지연시킨다. “하지만 보냄은 또한 시간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자기면역은 또한 민주주의의 선거와 도래(avenement)를 나중으로 지연할(renvoyer) 것을 명령한다. 이러한 이중의 랑부아(renvoi)(타자에게, 타자를 보내기, 지연하기)는 민주주의 자체 속에 기입된 자기면역적 숙명성이다.”(Derrida 2003b, 6061. 강조는 원문) 이러한 배제와 지연의 필연성을 고려한다면, 민주주의적인 자기면역은 부정적인 것이라고, 민주주의의 온전한 실현,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장애가 되는, 따라서 원칙적으로 제거하고 뿌리 뽑아야 할 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데리다는 자기면역에 바로 민주주의의 기회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데리다가 민주주의는 자기의 권력에, 곧 주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할 때, 이는 민주주의는 본원적으로, 그 개념, 그 원리 자체 내에서 면역적인 성향을 띠고 있음을 함축한다. 곧 민주주의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비자아, , 대립자, 적수를 몰아내고, 민주주의의 자기의 논리, 자기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자기-면역은 바로 이러한 면역의 경향, 곧 자기의 논리, 자기의 권력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 민주주의가 자기를 고수하고 이를 위해 타자를 절대적으로 배제하고 몰아내려고 하면 할수록 민주주의는 자기 파괴, 자살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따라서 자기면역은 민주주의의 구조 자체 속에 함축되어 있는 자기의 논리, 주권의 논리를 약화시키고, 그 속에 이질성, 타자성의 여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타자성은 민주주의의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타자성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진리로서, 항상 이미 민주주의 자체 내에 기입되어 있으며, 자기의 권력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양립 불가능하면서도 또한 분리될 수 없게 결부되어 있다.

 

나를 괴롭혀온 것, 나를 의문에 빠뜨린 질문은 어떤 민주주의의 공리계를 구조화하는 것, 곧 전체, 원과 구의 자기 복귀, 따라서 일자의 자기성, 자율성의 자기, 대칭성, 동질성, 유사성, 닮은 것 또는 비슷한 것, 심지어 결국에는 신, 다시 말해 민주주의적인 것의 또 다른 진리, 타자, 이질적인 것, 타율적인 것, 비대칭적인 것, 산종적 다수성, 익명적인 아무나”, “누구나”, 비규정적인 각자의 진리와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심지어 충돌하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것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으리라는 점을, 아마도 고백해 두어야 할 것 같다.”(Derrida 2003b, 35)

 

데리다에게 타자 또는 타자성, 이질성은 민주주의의 외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진리,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진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진리는 익명적인 아무나”, “누구나”, 비규정적인 각자””의 진리다. 이는 내가 다른 글에서 말한 것처럼 데모스의 이중적 측면, 곧 보편적이면서 독특한 데모스라는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진태원 2017 5부록참조) 데모스의 보편적 측면이 평등과 자유, 권리 등의 보편성을 뜻한다면, 데모스의 독특한 측면은 정체성을 갖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곧 데모스로서의 시민은 다른 시민들과 평등한 권리와 자유, 행복을 누릴 권리를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 독특한 존재로서의 시민은 아무런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을 권리, 익명적인 누군가로 존재할 권리, 비밀을 지닌 존재자로 살아갈 권리”(진태원 2017, 216. 강조는 원문)를 갖는다. 이것은 아마도 달리 말하면 주권자가 아닐 권리를 뜻할 것이다. 따라서 데모스는 주권자이면서 동시에 주권자가 아닌 존재자, 주권자로 존재하고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자격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 데모스는 주권자에 속하지 않을 권리, 주권자가 아닐 권리도 갖는 것이다.


이러한 데리다의 관점은 슈미트처럼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가장 강도 높은 극단적인 대립에서 찾으려고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자유주의의 또 다른 변종처럼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의 입장에서 보면 슈미트의 현실주의적또는 실존적관점은 국민국가라는 단위(또는 그 국민국가들의 체계)를 정치의 본래적 단위로 전제하게 되며, 더욱이 국민적인 것을 주권으로 환원한다. 그리고 이때 주권적인 것은 다시 루소적인 인민주권과 달리 (또는 그것에 거슬러) 인격화된 주권자의 형상으로 환원된다. 따라서 이는, 슈미트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인민또는 국민에 본질적인 갈등성과 이질성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거나 환원하는 것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순환성에서 벗어나는 한 가지 길이 민주주의의 자기면역 및 데모스의 이중성이라는 데리다의 관점이다. 내가 보기에는 데리다 주권 이론의 의미 중 하나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IV. 국민적인 것을 넘어서: 국경의 민주화

 

따라서 데리다가 (옳든 그르든 간에) 주권이라는 개념을 폐기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아감벤에게 이는 데리다가 실패한 메시아주의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징표 중 하나일 것이고(Giorgio Agamben, Homo Sacer: Il potere sovrano e la nuda vita, Torino: Einaudi, 1995(󰡔호모 사케르󰡕,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 반대로 자유주의적 이론가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데리다 주권 개념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으로는 Paul Patton, “Deconstruction and the Problem of Sovereignty”, Derrida Today, vol. 10, no. 1, 2017 참조. 또한 약간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데리다 정치철학을 자유주의적(또는 네오 칸트주의적) 세계시민주의의 논리 속에서 (제한적으로) 수용하려는 시도로는 Seyla Benhabib, The Rights of Others: Aliens, Citizens and Residents. The John Seeley Memorial Lectures, Cambr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타자의 권리: 외국인, 거류민 그리고 시민󰡕, 이상훈 옮김, 철학과 현실사, 2008 5; Another Cosmopolitanis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p. 45~75를 각각 참조. 하지만 데리다가 보기에 여전히 형이상학, 특히 서양 형이상학의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감벤일 것이며(Derrida 2008, 여러 곳 참조), 그가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지만, 자기면역의 역설 내지 이율배반(이는 곧 정치 그 자체의 역설 내지 이율배반)을 중화하려는 자유주의적 시도는 이러한 역설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그 역설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점에 관해서는 Honig 2009 1장 참조.] 더 나아가 주권이라는 것이 단지 잔재라든가 불가피한 악 내지 차악이라는 의미에서만 명맥을 유지한다고 볼 수도 없다. 주권이 자기성을 함축하고 자기성이 모든 주체성의 조건이라면, 자기성으로서의 주권은 정치 일반, 더 나아가 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자기성으로만 존재할 때, 자기성의 요소만을 보존하고 강화하려고 할 때, 그것은 면역 및 더 나아가 자기면역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데리다의 논리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는 의미에서 국민 또는 국민적인 것의 문제를 살펴보자. 국민, 국민국가 또는 국민주의의 문제는 그동안 아주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상하게도 국민적인 것의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국경(frontière, border)의 문제는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국경에 관해 일찍부터 주목하고 흥미로운 주장을 제시한 사람이 에티엔 발리바르인데(Balibar 2001 Balibar 2005를 각각 참조), 는 국경을 민주주의의 반()민주주의적 조건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국경은 정상적인법질서에 대한 통제와 보증이 중지되는 대표적인 장소(국경이야말로 진정으로 근대 법치국가에서 민주주의의 반민주주의적 조건을 이루고 있다), ‘폭력의 합법적 독점예방적인 대항 폭력의 형태를 띠는 장소다.”(Balibar 2001, 329) 슈미트와 아감벤은 예외상태와 주권이라는 개념을 현대 정치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부각시킨 바 있는데, 발리바르는 이들을 염두에 두면서도 이들과 다소 다르게 예외상태의 대표적인 장소를 국경이라는 정치 제도에서 찾는다. 그는 특히 적과 동지, 예외상태에서의 결정을 본질로 지니는 슈미트 주권 개념의 실질적 핵심은 국경 개념에 있다고 주장한다.

 

슈미트에게 주권은 항상 국경 위에서 설립되고 무엇보다도 국경의 부과로 실행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주권 이론과, 친구와 적의 관점에서 정치를 정의하는 것(또한 이런 정의의 연장으로서, 내부의 적의 범죄화. 이는 외부의 적, 정당한 적(justus hostis)에 대한 정당화와 맞짝을 이루고 있다) 사이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국경은 정상적인법질서에 대한 통제와 보증이 중지되는 대표적인 장소(국경이야말로 진정으로 근대 법치국가에서 민주주의의 반민주주의적 조건을 이루고 있다), “폭력의 합법적 독점예방적인 대항 폭력의 형태를 띠는 장소다. 따라서 대지의 노모스는 국경들의 질서 자체, 곧 국가적 합리성에 봉사하게 함으로써 폭력을 길들이는 것으로 간주되는 폭력이다.”(Balibar 2001, 329. 강조는 원문)

 

국경이 민주주의의 반민주주의적 조건이라는 것은 우선 국경이 정치 공동체, 특히 근대국가의 헤게모니적인 형태인 국민국가가 성립하고 존속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국경의 설정을 통해 국민적 정체성이 물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경은 자신과 타자, 국민과 비국민을 구별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며, 따라서 국민적 경계 바깥으로 외국인들을 배척하고 더 나아가 국민 성원들 중 일부를 이방인들(또는 외국인들의 첩자 내지 내통자. 우리나라의 경우는 빨갱이’, ‘종북’, ‘친일파)로 표상하여 억압하고 배제하기 위한 제도다. 이런 의미에서 국경은 탁월한 배제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본격화된 국민국가의 위기는 국경의 약화를 낳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상상적으로 강화하기도 한다. 초국적 자본의 힘에 의해 국민국가의 경제 및 사회질서가 좌우되고 미국을 비롯한 초강대국의 군사적정치적 힘에 약소 국민국가들의 안보가 좌우되는 상황에서 대중들은 심각한 정체성 위협을 느끼며, 이런 공포 내지 외상을 상상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찾는다. 이 때문에 극우 정당들이 조장하는 극단적 국민주의(nationalism)가 쉽게 먹혀들게 되며, 특히 사회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개인들 및 집단들에게 더욱 더 쉽게 수용된다. 이들은 사회권 축소(곧 실업수당 삭감, 복지 예산 축소 등과 같은)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며, 이런 피해의 원인이 이주 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들에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포퓰리즘의 확산 속에서 이런 대중적인 국민주의 및 인종주의는 국가정책이 점점 더 제도적 인종주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 국민과 외국인의 차별 및 배제 경향을 강화하게 되며, 유럽적인 수준에서(또는 더 나아가 지구 전체의 수준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의 경계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는다.


더 나아가 발리바르는 오늘날 국경은 더 이상 국가의 지리적 한계, 곧 국가와 국가가 지리적으로 맞닿은 지점에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국민국가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경제 영역과 문화 영역에서 사적인 관계들 및 사회적 관계들이 점점 더 ()-국민적(trans-national)이고 관()-국경적인(trans-border) 차원에서 전개되는 반면, 대부분의 공적 제도는 여전히 국민국가의 틀을 유지하는 데서 생겨나는 결과다. 이에 따라 세계화된 거대 도시들의 근교에서 다양한 인종들 간의 민족적인(ethnic) 경계들이 재생산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한 아감벤이 특히 주목했던 것처럼 주요 국제공항에서 볼 수 있는 구류 지대 및 검색 체계가 탁월한 예외 상태, 곧 개인의 자유를 비롯한 권리들이 정지되는 장소가 되는 현상도 생겨난다.


이런 경향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발리바르의 답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장기적인 제도적 창조의 과제로, 인민과 주권, 시민권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경이 영토와 인구, 주권 사이의 관계가 물질적제도적으로 집약되어 있는 상징적 장소이며, 따라서 세계화가 강화하고 있는 국경의 모순과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틀에 대한 변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고대 도시국가에서 제국으로, 또한 제국에서 국민국가로 이행하는 과정과 비견될 만한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갈등적인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발리바르가 그 제도적 창안의 실마리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은 소속의 시민권을 거주의 시민권 내지 이산적 시민권”(diasporic citizenship)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전자가 혈통이나 언어, 문화, 국적 등과 같은 공통적인 기원과 소속을 중심으로 시민권을 사고하고 제도화하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출신의 차별 없이 외국인들에게도 정치체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대응 방안은 국경의 민주화에서 찾을 수 있다. 발리바르는 특히 국경의 강화 경향에 맞서기 위한 정치의 방향을 여기에서 찾고 있다. 이것은 국경의 무조건적인 철폐라는 무정부주의적 주장(이것의 다른 표현은 이른바 유목주의)과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하는 테제다. 국경의 무조건적인 철폐는 오히려 경제적 세력들의 야만적인 경쟁에 좌우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Balibar 2001, 230)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섣부른 해법 대신 발리바르는 국경에 대한 표상을 탈신성화하고 국가와 행정 기관이 개인들에 대하여 국경을 활용하는 방식을 쌍무적인 통제의 대상으로 만드는것을 핵심으로 하는 국경의 민주화를 가능한 현실적인 해법으로 제시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국경의 민주화라는 발상은,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의 법칙, 곧 무조건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 사이의 아포리아적인 협상의 논리와도 부합하는 발상이다.


국경의 민주화는 국민적인 것, 국민 문화의 상징적이고 상상적인 구성 및 재생산에 관해서도 의미 있는 화두를 제기한다. 알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는 용어는 이제 상당히 보편화된 용어이며, 동시에 그 자체가 매우 차별적이고 내적 배제의 의미를 함축하는 용어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대외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곧 세계화의 과정 속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회는 정의상 다-문화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한 20여 년 사이에 더 이상 외국인들이 낯선 존재자들이 아닌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다문화주의라는 것이 차별과 배제의 기표로 작용한다면,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Etienne Balibar, “Europe: Provincial, Common, Universal”, Annali di scienze religiose, Turnhout, no. 10, 2017 참조.첫째, 다문화주의는 한편으로 문화에 대해 매우 <정태적인> 관념을 함축하고 있다. 곧 문화라는 것은 어떤 집단의 고유한 생활양식이자 관습, 사고방식이자 행태이며, 따라서 정의상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한국의 문화는 한국인들(한국 민족’)의 고유한 생활양식과 관습, 사고방식, 행태를 표현하는 것이며, 중국 문화는 중국인들, 일본 문화는 일본인들, 미국 문화는 미국인들, 프랑스 문화는 프랑스인들 등과 같이 문화 자체의 불변성을 가정하고 있다. 둘째, 따라서 이는 어떤 문화의 <내적> 다양성 내지 혼성성(hybridity)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다. 마치 한국 문화라는 것은 단군 이래 수 천 년 동안 불변적인 정체성 내지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따라서 김치는 단군 이래 한국인들이 계속 섭취해온 음식인 것처럼, 제사의 관습은 적어도 조선 시대 이래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되어온 것처럼, 한국어는 처음부터 오늘날의 한국어로 존재해온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미국이나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알다시피 오늘날 우리가 섭취하는 김치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며, 오늘날 통용되는 여러 제사의 관습도 일제시대 또는 해방 이후에 형성된 기형적인 혼성물이다. 중국의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것 역시 매우 혼성적일 뿐더러 최근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두 가지 전제에 입각해보면, 다문화주의란, 불변적이고 단일한 한국의 문화,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러한 기본적인(정당하면서 보편적인) 문화의 바탕 위에, 오늘날의 조건에 맞춰 이러한 문화를 보존하고 강화하기 위한 행정적치안적 수단이 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다문화주의는 사실 국민주의의 한 변형이자 그 방편인 셈이다. 이런 조건에서 다문화주의가 한국 문화에 이질적인 것들을 위계적으로 포섭하거나 차별적으로 배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국민적인 것의 논리 및 그것이 수반하는 폭력을 넘어서고 싶다면, 문화 자체에 대한 새로운 상상과 실천, 제도화가 필요하다. 그것을 상호문화”(interculturalism)라고 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다중문화”(poly-culturalism)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기존의 다문화주의가 기반을 둔 두 가지 전제를 깨뜨리는 것이다. 가령 한국어가 한국 사회의 유일한 보편적 언어로 기능한다면, 상호문화나 다중문화의 여지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으로 한국어를 습득하고 한국어를 잘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어 이외에 다른 언어들이 또 다른 공용어로 사용될 수 있게 만드는 노력도 중요할 것이다.[이점에 관해서는 Jacques Derrida, Le monolinguisme de l’autre ou la prothèse de l’origine, Paris: Galilée, 1996 참조.더 나아가 국적과 상관없이 더 많은 시민 대중들이 공론장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금 TV에서는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제작되고 방영되고 있지만, 이것은 매우 제한적일 뿐더러 예능적인 성격에 한정되어 있다. ‘특별한 외국인이 아닌 이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지만 사실은 부재하는 유령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재현/대표할(represent)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이것은 한편으로 국민적인 것의 경계에 갇혀 있는 시민성을 좀 더 보편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적인 것의 논리가 전제하는 획일적 정체성의 논리에서 벗어나 국민적인 것을 내적으로 더 다양하고 혼종적인 것으로, 따라서 관-국민적이고, -국경적인 것으로 전화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는 데리다가 말하는 주권의 자기면역, 데모스의 이중성에 대한 실천적 번역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나종석, 정치적인 것의 본질과 칼 슈미트의 자유주의 비판, 󰡔헤겔연구󰡕 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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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mhhh 2018-10-26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진태원 선생님. 데리다에 많은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는 한 대학원생입니다.(철학과는 아닙니다)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지금 데리다의 저서를 대부분 영어로 독서 중인데, 불어 원저로 공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까요? 이왕 데리다의 철학에 의지하기로 했다면 불어를 공부해서 원전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대부분의 저서가 영어로 나와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드는게 사실입니다. 일종의 ‘결정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결정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 즉시 결정해야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almas 2018-10-26 01: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약간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답변할 수 있겠네요. 평범한 연구자가 되려면 영어로 만족하고 훌륭한 연구자가 되고 싶다면 불어를 공부해서 불어로 읽어보도록 하세요. :) 무엇을 전공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리다 저서를 대부분 영어로 읽을 수 있다면, 상당한 언어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데리다를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많습니다. 실제로 읽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요.^^; 만약 데리다를 불어로 읽을 수 있고, 또 실제로 읽게 된다면, 영어로 만족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자원과 역량, 그리고 인내심과 자신감도 덤으로 얻게 되겠죠. 데리다 이외의 다른 사상가들이나 작가들도 접근할 수 있겠고요. 그러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당장 도전하십시오. ㅎㅎ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국민청원"의 제목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인터넷 웹하드 업체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성범죄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놀라운 고발입니다.


한편으로 국산 야동을 올려서 돈을 벌고, 이 야동을 지워달라고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디지털 장의사"라는 삭제 업체를 따라 만들어서 또 돈을 벌고, 


시간이 지난 뒤 제목을 바꿔서 다시 야동을 등록해서 돈을 버는 


파렴치한 성범죄 카르텔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경악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료일이 8월 28일이니 얼마 남지 않았네요. 어서 서둘러 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청원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22420?navigation=best-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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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민족문학사연구]에 수록될 글 한 편 올립니다. 


지난 2월에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이 글은 아직 교정이 다 완료되지 않은 


글이기 때문에, 이 글에 관해 토론하거나 인용하려는 분들은 [민족문학사연구]에 게재된 판본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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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 데리다, 코젤렉, 차크라바르티, 그리고 그 너머

[이 글은 2018221~22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주최로 열린 연속기획, 탈근대론 이후3: 근대의 시간과과 학술사회학술회의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그 후 수정과 보완을 거쳐 완성되었다. 유익한 토론과 조언을 해준 학술회의 참가자 분들께 감사드리고, 간명하고 건설적인 논평을 제시해준 세 분의 익명의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드린다. 심사위원들의 여러 제안은 이 글에서 충분히 답변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다른 기회에 좀 더 발전시켜 보겠다. 그밖에 몇 가지 논점에 대해서는 각주에서 답변을 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I. 객관적 불확실성, 주관적 불확실성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가 매우 특이한 시기라는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는 우리 시대의 주요 사상가들의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시대로 특징지었다. 특히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한 질서가 쇠퇴하고 있는데, 우리 시대는 아직 그것을 대신할 만한 체제나 질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인터레그넘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는 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그린비, 2017 9장 참조.] 에티엔 발리바르도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를 매우 흥미로운 시기로 규정한 바 있는데, 이는 이 시기에는 우리가 현상들을 측정하거나 평가하기 위해 의존하는 주요 지표 내지 틀이 급속하게 변화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변화하는 현상들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들과 독립적인 불변적(적어도 상대적으로라도) 척도들이 필요한데, 우리 시대는 이러한 척도들 자체가 순식간에 변모되는 시기라는 것이다.[Etienne Balibar, “Démocratisations”, Vacarme, no. 76, 2016 참조.]


이 글의 제목에 두 차례에 걸쳐 사용된 이후라는 말 역시 확실성의 표시(우리가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났다, 현대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지시하는)라기보다는 불확실성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두 개의 이후의 중첩은 더욱 커다란 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된 불확실성의 표시인 셈이다. 그런데 이후의 논의에서 더 명백해지겠지만, 한 가지 주목해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은 객관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전환의 시대이며 따라서 그 자체 객관적으로 불확실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가장 강조한 이들 중 한 사람이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다. 그는 여러 저작에서 우리 시대를 175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또는 세계사적 사건들로 표현하자면, 1789년에서 1989년에 이르는 대략 200여년의 현대 세계의 순환이 종료된 세계로 특징지은 바 있다.[월러스틴은 1983년 출간된 󰡔역사적 자본주의󰡕에서 우리 시대의 세계사적 분기는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사이의 갈림길이 아니라,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냐 비교적 계급이 없는 사회로의 이행이냐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나종일백영경 옮김,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창작과비평, 1993, 113.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종언 및 그 대안에 대한 모색은 1990년대 이후의 저작에서 더 본격적이고 활발하게 이루어진 바 있다. Immanuel Wallerstein, Unthinking Social Science: The Limits of Nineteenth-Century Paradigms, Temple University Press, 1991; 성백용 옮김,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창작과비평사, 1994; After Liberalism, New Press, 1995; 강문구 옮김, 󰡔자유주의 이후󰡕, 당대, 1996;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백승욱 옮김, 창비, 2001; 이강국, 위기이행대안: 이매뉴얼 월러스틴과의 대담, 󰡔창작과비평󰡕 167, 2015년 봄호를 각각 참조.
 
그는 1989년 이후의 시기, 곧 현존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의 시기를 자유주의의 승리라고 간주하기보다는[이러한 관점을 대표하는 저작으로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이상훈 옮김, 󰡔역사의 종말󰡕, 한마음, 1992 참조. 하지만 후쿠야마의 저작만이 이러한 관점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없는 정치적규범적 지평으로 간주하는 이들(여기에는 최장집 같은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버마스 같은 이들도 포함된다)도 이러한 관점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하버마스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에티엔 발리바르, 진태원 옮김, 민주주의적 시민권인가 인민주권인가? 유럽에서의 헌법 논쟁에 대한 성찰, 󰡔정치체에 대한 권리󰡕, 후마니타스, 2011 참조.오히려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중심적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가 종말에 임박했음을 알리는 시기라고 간주하면서, 앞으로 대략 2025~2050년까지의 세계는 혼돈’(chaos) 내지 불확실성’(uncertainty), ‘혼란’(confused)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가령 Immanuel Wallerstein, Unthinking Social Science: The Limits of Nineteenth-Century Paradigms, p. 23 이하;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35면 이하; After Liberalism, p. vi 이하; 󰡔자유주의 이후󰡕 6면 이하;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서문: 불확실성과 창조성참조.] 월러스틴의 관점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시대가 객관적으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점은 오늘날 충분히 공유되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이러한 불확실성의 주관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의 향방은 주체적인 개입을 통해 규정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지배적인 계급들이나 집단들은 이 세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면서 그것을 기존의 방식대로, 곧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는 한에서 통제하려고 시도한다. 월러스틴이 통찰한 바와 같이 근대성 또는 현대성의 특징 중 하나를 변화의 정상화”[Immanuel Wallerstein, After Liberalism, p. 102; 󰡔자유주의 이후󰡕, 111. 강조는 인용자.]로 꼽을 수 있다면, 절대적 의미의 혼돈이나 불확실성이라기보다는 경향적인 또는 통제된 불확실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주체적인 개입은 그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통제 자체를 불확실하게 만들기 위한 개입, 요컨대 불확실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중하는 개입이어야 할 것이다. 학자들에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또는 명백한 것으로 간주해왔던 우리의 지적 범주들이나 이론들에 대한 탈구축(deconstruction)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미 우리 외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방식의 탈구축 작업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런데 2018년 현재의 우리에게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이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거니와 우리는 이 글에서 modernity라는 영어(또는 그에 상응하는 서양어들)의 번역어로 근대성대신 현대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modernity가 한편으로 역사적 시대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지금 시대를 가리키며 더 나아가 역사적 시기들을 분류하고 시간성을 측정하기 위한 기준으로서의 메타적 시간성을 표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modernity근대성으로도 현대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를 가리키는 측면보다는 지금 시대메타적 시간성을 지칭하는 측면에 더 주목한다는 점에서 주로 현대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아울러 필요할 경우에는 ()같은 표현을 병용하겠다.]라는 물음은 조금 더 복잡하고 꼬인 물음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20~30년 전에 이러한 이후의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에게 그것은 여러 가지 방식의 포스트담론들(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구조주의 등)의 형식으로 제기된 바 있다.[1980년대 말 ~ 90년대 초 이후 포스트 담론의 국내 수용에서 나타난 문제점 및 그 한 가지 양상으로서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에 대한 고찰로는 진태원, 포스트담론의 유령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민족문화연구󰡕 57,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란 무엇인가?, 󰡔황해문화󰡕 85, 2014년 겨울호를 각각 참조.그 당시에 이러한 포스트담론들은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포스트담론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 유행이 끝난 것으로 나타난다. 불과 20여 년 사이에 이후의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변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그 자체가 이후의 대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담론은 사실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고발이 옳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 전에 비판적인 인문사회과학도라면 마땅히 이런 질문을 먼저 제기해봐야 할 것이다. 과연 포스트담론들이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라는 질문에 대한 포괄적인 답변이라고 자처한 적이 있는가?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이 자기 자신을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새로운 시대(보통 탈현대(postmodernity)라 불리는)에 대한 담론이라고 내세운 적이 있는가? 거대 서사의 종말을 주장한 리오타르 자신만 해도 포스트모던을 새로운 시대 개념이 아니라 태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가령 Jean-François Lyotard, La condition postmoderne, Éditions du Minuit, 1979; 이현복 옮김, 󰡔포스트모던적 조건󰡕, 서광사, 1992; “Réponse à la question: qu'est-ce que le postmoderne?”(1985), in Le Postmoderne expliqué aux enfants: Correspondance 1982~85, Éditions Galilée, 1988; 이현복 옮김, 질문에 대한 답변: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의 무덤󰡕, 문예출판사, 1996을 각각 참조.] 더욱이 들뢰즈나 데리다, 푸코 또는 라캉 같이 흔히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불리는 사상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담론들을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나 샹탈 무페의 경우도 1980년대 서유럽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주의 전략을 위한 이론적 틀로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제창한 것이지 새로운 시대 개념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로 규정함으로써, 포스트 담론을 일종의 역사적 시대 범주로 규정한 것은 프레드릭 제임슨이었다.[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1984), i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niversity Press, 1991; 포스트모더니즘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 정정호강내희 편, 󰡔포스트모더니즘론󰡕, 도서출판 터, 1990.] 사실 대개의 마르크스주의자들 및 현대성 담론의 옹호자들은 포스트 담론을 마르크스주의(및 현대성)대체하려는 담론이자 새로운 시대에 대한 담론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 새로 전개된 역사적 현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였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담론으로서 포스트담론은 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당화 담론으로 간주되었다. 그렇다면 포스트담론들이 20여 년 사이에 이후의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답변에서 그 자체가 이후의 대상이 된 것은, 그 담론 자체의 객관적 특성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기보다는 그 담론들을 그렇게 위치시킨 어떤 문제틀, 특히 1980년대 이후 영어권 (좌파) 학계의 문제틀의 효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실 포스트 담론들이라는 것 자체가 영어권 학계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1970년대 이후 미국 학계에서 프랑스 이론의 발명에 관한 지성사적 고찰로는 프랑수아 퀴세, 문강형준박소영유충현 옮김, 󰡔루이 비통이 된 푸코? 위기의 미국 대학, 프랑스 이론을 발명하다󰡕, 난장, 2012 참조.] 그리고 지난 20~30년 동안 국내의 포스트 담론에 관한 수용 및 논쟁은 미국 학계의 문제틀을 그대로 전제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 담론은 사실 (모방된) 상상의 산물이다.


돌이켜보면, 역사적 근대 이후의 우리에게 학문 내지 인식이란 주체적인 것이었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늘 외부 세력의 영향에 좌우되어 왔다. 식민지 시기에 일본의 영향이 압도적이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한편으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 자체(민족사관 또는 내재적 발전론이나 민족문학)에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외부의 규범과 척도가 보편적인 틀로서 작용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노력이 성숙하고 내재적인 비판과 교정의 기회를 갖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외부로부터 밀어닥친 거대한 흐름(세계사적인 사회적 격변이면서 인식론적 변동의 흐름)에 속절없이 새로운 연구들로 대체되어 왔다. 이는 시대적인 변화에 부응하는 주체적 대응이라기보다는 외부의 변화에 대한 수동적인 적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지적은 여전히 경청할 필요가 있다. “서구인의 눈에 포스트모더니즘은 권력과 지배에 봉사하는 도구적 이성으로 타락한 서구적 이성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포스트 사조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반성으로 수용되기보다는 기존 논의를 대체할 체계로서, 80년대 말의 세계적 변화와 기존 이론들의 급격한 퇴조로 생겨난 공백을 차지할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이론들의 유입으로 해서 80년대는 90년대와는 전혀 소통이 불가능한 또 다른 하나의 단층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용규, 근대와 탈근대의 사이에서, 󰡔오늘의 문예비평󰡕 31, 1998, 128.] 따라서 우리가 객관적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곧 사회적 구조나 규범 및 학문적인 제도와 인식론적 틀이 전반적인 변화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이 글에서 ()현대 및 마르크스주의와 관련하여 이후를 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왜 그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인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II. ()현대성과 마르크스주의를 상대화하기: 유사초월론

 

우선 내가 이 글에서 중심적으로 제기하려는 논점을 밝히면서 출발해보자. 나는 그것을 ()현대성과 마르크스주의를 상대화하기라는 문구로 집약하고 싶다. 내가 말하는 상대화하기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 더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이제 지나간 어떤 것, 낡고 폐기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관점은 오히려 정반대다. 마르크스주의에 준거하지도 않고 또한 그것에 대해 논의하지도 않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나는 여전히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에 준거해야 하며, 또한 그 이론의 여러 측면들을 토론하고 비판하고 개조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준거 및 이론화는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와의 거리두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데리다가 마르크스를 (비판적으로) 상속하기라고 부른 것과 가까운 과제를 요구한다. “마르크스 없이는 없다, 마르크스 없이는 어떤 장래도 없다. 마르크스의 기억, 마르크스의 유산 없이는, 어쨌든 어떤 마르크스, 그의 천재/정령(génie), 적어도 그의 정신들 중 하나에 대한 기억과 상속 없이는 어떠한 장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설 또는 오히려 우리가 택한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이상의/더 이상 하나가 아닌(plus d’un) 정신이 존재하며, 하나 이상의/더 이상 하나가 아닌 정신이 존재해야 한다.” [자크 데리다, 진태원 옮김,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린비, 2014(수정 2), 41. 강조는 데리다.]


마찬가지로 나의 관점은 현대성을 지나간 시대로 간주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현대성은 우리가 그것 바깥에 서서 그것이 과거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것, 우리가 현재의 관점에서 이미 지나갔다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역사적 시대(‘고대중세처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성의 역사적 시간성의 특성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뒤에서 좀 더 상론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현대성은 우리가 그것 내에서만 그것과 거리를 둘 수 있고, 그것의 역사성을 측정할 수 있는 역사적 시간성 또는 오히려 메타 시간성이다.[이점에 관해서는 특히 Reinhard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Suhrkamp, 1979; 한철 옮김, 󰡔지나간 미래󰡕, 문학동네, 1998; Zeitschichten: Studien zur Historik, Suhrkamp, 2000 참조.] 현대성이 범세계적 현대성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범세계적인 관()국민적 현대성(영어로 표현하자면 global transnational modernity)으로 물질적(또는 현실적’)상징적상상적으로 전화된 우리의 동시대적 현대성의 측면에서 보면 더욱 더 그렇다.[이점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Arjun Appadurai, “How Histories Make Geographies: Circulation and Context in a Global Perspective”, in The Future as Cultural Fact: Essays on the Global Condition, Verso, 2013 Peter Osborne, The Postconceptual Condition: Critical Essays, Verso, 2018 1부를 각각 참조.]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불변적인 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현대성으로서의 역사를 지니는 것이다. ()현대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뒤에서 좀 더 논의하겠지만, 이 명제를 지난 20여 년 간 국내 진보 학계 일각에서 제기해왔던 이른바 근대 극복의 과제’(백낙청, 하정일 등)와 동일시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명제의 철학적 깊이에는 충분히 이르지 못했다. 또한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여러 가지 중 하나로 만들고, 따라서 그것을 선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을 각자의 주관적 입장에 맡겨둔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나는 데리다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상속자들이며,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그리고 우리가 알든 모르든 간에,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존재가 상속”[자크 데리다, 진태원 옮김, 앞의 책, 122-23. 강조는 데리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임의로 선택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라는 물음은 매우 복합적인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연대기적인 의미에서의 이후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에 근거한다는 의미, 어떤 것을 뒤따른다는 의미, 다시 말해 (‘칸트 이후’, ‘헤겔 이후와 같이) X상징적 기원으로 설정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자신의 위치를 정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이후에 관한 물음이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상대화한다는 뜻에서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를 묻는 것은 어떻게 그것들에게 상징적 기원의 자리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대 철학자들, 특히 데리다와 푸코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유사초월론(quasi-transcendentalism)이라는 개념이다.


오늘날 널리 인정되는 바와 같이 칸트의 초월론적(transzendental) 철학[‘transzendental’(또는 영어로는 ‘transcendental’)이라는 용어의 경우 국내 학계에 합의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특히 최근 이 용어의 번역을 둘러싼 국내 칸트학계의 논란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이러한 논란 여부와 관계없이 이 글에서는 전통적인 초월개념과의 구별을 위해서, 그리고 칸트의 철학적 독창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초월론적이라는 번역어가 더 적절한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이것은 국내 여러 필자들이 채택하는 번역어이기도 하다) 계속 초월론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그리고 ‘a priori’선험적이라고 번역하겠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근()대성의 철학적 지평을 열어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칸트에게 초월론은 인식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식의 선험적(a priori) 가능성”[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순수이성비판󰡕, 아카넷, 2006, 132(A56/B80).]의 조건을 탐구하는 철학적 탐구 양식을 가리킨다. 이러한 초월론적 탐구 절차에 의거하여 칸트는, 주체 이전에, 그리고 주체 바깥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들의 질서와 그 근거를 탐구하는 전통적인 철학에 대하여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수행하게 된다. 곧 이제 사물들의 질서는 초월론적 주관성에 그 근거를 두게 된다. 현대철학자들 가운데 칸트의 초월론 철학을 자기 나름대로 재개한 사람이 바로 에드문트 후설이며, 후설 이후의 현대 유럽철학자들은 한편으로는 칸트-후설 식의 초월론적 문제설정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문제설정을 변형하고 또 넘어서기 위해 고투했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통해 초월론적 주관성에 기반을 둔 칸트 및 후설의 철학을 상호주관성의 철학으로 변형한 것이 그 한 가지 사례라면, 푸코나 들뢰즈 또는 데리다 같이 흔히 니체주의 철학자들로 간주되는 현대 프랑스철학자들 역시 그 나름대로 일종의 초월론 철학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현대 프랑스철학을 니체주의 철학으로 (그것도 칸트나 헤겔 철학과 대립하는 비합리주의 철학이라는 의미에서) 간주하는 것은 상당히 경솔한 생각이다. 물론 이는 현대 프랑스철학에 미친 니체의 영향을 부인하자는 의미는 아니며, 그것을 상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현대 프랑스철학은 한편으로 헤겔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이점에 관해서는 Judith Butler, Subjects of Desire: Hegelian Reflections in Twentieth-Century France,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19871) 참조),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하이데거 철학의 영향을 논하지 않고 현대 프랑스철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이점에 관해서는 특히 Dominique Janicaud, Heidegger en France, tome 1: récit, Hachette Littératures, 2001; Heidegger en France, tome 2: entretiens, Hachette Littératures, 2001 참조). 최근에는 스피노자주의의 관점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진 바 있다. Knox Peden, Spinoza Contra Phenomenology: French Rationalism from Cavaillès to Deleuze,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4 참조. 이 문제에 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므로 여기에서는 이 정도의 지적으로 한정하겠다.]


하지만 현대 프랑스철학자들, 특히 이 글에서 주목하는 데리다가 추구한 초월론 철학은 매우 특이한 형태의 것이며, 데리다 자신은 이를 유사초월론이라고 부른 바 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칸트 이후의 초월론 철학이 가능성의 (선험적) 조건을 탐구하는 것에 비해, 유사초월론은 가능성의 조건은 동시에 불가능성의 조건이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다고 규정할 수 있다.[데리다의 유사초월론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국내의 논의는, 진태원, 유사초월론: 데리다와 이성의 탈구축, 󰡔철학논집󰡕 53,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8 참조.]

 

초월론적인 것의 문제는 '유사'(quasi-)라는 말에 의해 변형되어 왔으며, 따라서 만약 초월론성이 나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이는 단순히 그 고전적인 의미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비록 고전적 의미의 초월론성이 나에게 여전히 아주 흥미롭지만 말이다). ... 나는 지난 30년 동안 규칙적으로, 그리고 아주 상이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인 것으로 정의해야 할 필연성으로 인도되었다. 이는 내가 무효화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분명 가능성의 기능을 불가능성의 기능으로 정의하는 것, 곧 가능성을 불가능성으로서 정의하는 것은 전통적인 초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정통적인 입장과 매우 어긋나는 태도이며, 내가 아포리아의 숙명성이라는 문제로 되돌아갈 때마다 항상 다시 출현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정의다.[Jacques Derrida, “Remarks on Deconstruction and Pragmatism”, in Chantal Mouffe ed., Deconstruction and Pragmatism, LondonNew York, Routledge, 1996, pp. 83~84.]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유사라는 접두어가 붙은 유사초월론의 핵심은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칸트에서 후설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지되어 온 초월론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위계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를 탈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칸트 이후의 고전적인 초월론 철학에서는 늘 원리에 해당하는 초월론적인 것은 불변적이고 초역사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경험적인 것은 이러한 초월론적인 것에 입각하여 비로소 성립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의해 측정되고 평가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러한 초월론적인 것을 주관성 내지 주체성의 위치에 놓은 것이 고유한 의미에서 근()대성의 철학이다. 반면 데리다가 유사초월론을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이라고 규정한 것은, 초월론적인 것은 한편으로 경험적인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내지는 원리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는 경험적인 것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데리다는 초기 저작인 󰡔기하학의 기원서론󰡕에서 후설이 기하학의 성립 조건으로 간주한 이념적인 언어는 언어적 신체”(Sprachleib) 바깥에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1967)에서는 로고스중심주의가 특권화하는 음성 언어는 기록(écriture)의 기입을 전제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초월론적인 것이 경험적인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면, 이는 정의상 진리 및 의미의 가능 조건인 초월론적인 근거가 경험적인 것의 우연성, 그것의 역사성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초월론적인 것은 경험적인 것을 성립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규제하는 원리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경험적인 것의 역사성에 맡겨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초월론적인 것은 한편으로 역사초월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내재적으로 역사성을 지니는 것, 역사성에 종속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한편으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쉽게 그 바깥으로, 그 이후로 나갈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의 존재와 행위, 사고 양식의 구성적 조건인 것으로 긍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들(특히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하고 실천하고 수용해온 바와 같은)과 거리를 두고 그것들의 비판적 전화 가능성을 모색하려고 한다면, 요컨대 마르크스주의 이후, ()현대 이후의 시간을 사고하려고 한다면, 유사초월론의 문제설정에 의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데리다 철학에 의거하는 것은 다양한 방면에서 비판과 의심의 대상이 되기 쉽다. ‘정통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진보적인 민중운동 계열의 지식인들, 또는 경험적 지식을 중시하는 사회과학자들, 아니면 유럽과 비유럽의 지정학적/식민적 차이가 사상의 차이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급진적인 중남미의 탈식민 이론가들(및 그 지지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판가들을 상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데리다 사상은 흔히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급진적이며, 또한 훨씬 심오하고 풍부하다. 이 글은 그의 사상의 풍부함의 단편을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할 수도 있다. 아울러 심사위원 C는 내가 데리다와 코젤렉, 차크라바르티 등과 같이 지적 배경이 상이한 이론가들을 한데 논의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청한 바 있는데, 이 요청에 대해서는 특별히 답변할 만한 것이 없고, 다만 내가 꽤 오래전부터 데리다의 철학, 특히 그의 유사초월론이 역사학의 철학적 토대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통찰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는 점이 한 가지 답변이 될 것이다. 실은 탈구축의 철학과 역사학의 관계에 관해서는 이미 중요한 연구들이 나와 있다. 특히 Robert Young, White Mythology: Writing History and the West, Routledge, 2004(2nd Edition); 김용규 옮김, 󰡔백색신화󰡕,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8 참조.

 


III. 현대성의 역사()

 

이처럼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우리가 상대화라는 말을 이해한다면,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상대화한다는 것은, 그것들에게 내재적인 역사성을 긍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상당히 추상적이고 사변적으로 보였을 것이므로, 몇 가지 이론적 사례들을 통해 내 논점을 조금 더 구체화해보겠다.

 

1. 코젤렉과 현대의 시간성

 

우선 현대라는 개념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현대라는 개념을 무언가 불변적인 어떤 내용을 지닌 것으로 또는 적어도 역사적 변화과정 바깥에 놓여 있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곤 한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개념이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현대라는 개념은 역사 초월적인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따라서 18세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치 동일한 현대성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하자면 현대라는 동일한 실체(주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전개된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라는 것의 내용은 변할지 몰라도 실체로서의 현대 그 자체(또는 현대라는 그 개념 자체)는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동일한 불변적인 기체로서 존립하는 셈이다. 이는 마치 한국이라는(또는 한민족이라는) 동일한 역사적 실체가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고 존속한다고 보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이다.[역으로 민족주의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고발하는 이들은 (‘국민도 아니고) ‘민족19세기에 발명되었다는 식의 역사적 상대주의를 맞세운다.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생각은 동전의 양 면에 불과하다.하지만 현대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몇 가지 계기를 통해 성립되었을 뿐더러, 그 표준적인 용법이 확립된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그 개념은 늘 역사적 과정 자체와 연동하여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현대라는 개념의 역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라인하르트 코젤렉의 개념사 연구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코젤렉은 그의 대표작 󰡔지나간 미래󰡕에서 현대라는 개념의 형성사를 세심하게 추적한 바 있다.[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op. cit.; 󰡔지나간 미래󰡕, 앞의 책.] 이 유명한 저작, 그리고 역시 유명한 그의 현대 개념에 대한 분석에 관해 길게 다루기보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세 가지 논점만 추려보겠다.


첫째, 코젤렉은 오늘날 사용되는 현대라는 개념(그에 따르면 새로운 시대’(neue Zeit)와 구별되는 신조어로서 현대’(Neuzeit)라는 개념은 1870년 이후에 등장했다[Ibid., p. 302; 같은 책, 336.])이 형성되는 데는 대략 1500년에서 1800년까지 300년의 기간 동안 세 가지 계기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우선 현대는 문턱을 의미했으며, 그 다음 신기원의 뜻으로 쓰였고, 마지막으로 기간이라는 개념으로 정착되었다. 문턱이라는 것은 지난 시대에 비해 오늘날의 시대가 새롭다는 것을 뜻하며, 라틴어 모데르누스(modernus)의 원래 의미가 여기에 가깝다.[모데르누스의 기원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는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장영태 옮김, 근대성, 그 문학적 전통과 오늘날의 의식, 󰡔도전으로서의 문학사󰡕, 문학과 지성사, 1983 참조.] 신기원으로서의 ()현대는 ()현대가 이전 시대와 다른 새로운 질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17세기 이후 등장한 이러한 관점은 중세와 비교하여 ()현대의 새로움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때의 새로움은 상대적인 의미의 새로움이다. ‘새로운 시대에서 더 새로운 시대, 그리고 최신의 시대’(Neueste Zeit)[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p. 320; 󰡔지나간 미래󰡕, 356.]라는 용어에 이르면서 비로소 기간으로서의 현대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프랑스혁명을 경과하면서 널리 쓰이게 된 이 용어를 통해 현대라는 것은 회고적 기록에 그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기간을 열어주는 동시대적 신기원 개념이 되었다.”[Ibid.; 357.]


둘째, 코젤렉은 현대 개념의 형성에서 역사의 시간화[Ibid., p. 336; 같은 책, 374.](Verzeitlichung der Geschichte)라고 부르는 것을 강조한다. 역사의 시간화라는 것은 코젤렉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시간의 흐름 덕분에 오늘의 역사가 변하며, 또한 벌어지는 간격과 함께 과거라는 것(Vergangenheit)도 변한다는 뜻이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는 그때그때의 진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현대는 과거 전체에 세계사적 질을 준다. 그와 함께 그때그때의 역사의 새로움은 새로운 것으로 성찰되면서 진보적으로 전체 역사를 요구했다. 역사를 세계사로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 되었다.[Ibid., p. 327; 같은 책, 364. 번역은 약간 수정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코젤렉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과거의 역사(물론 서양에서의 역사다)는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범례”[Ibid., p. 40; 같은 책, 45.](Exempla für das Leben)로서의 역사였다. 곧 역사는 사람들이 과거의 성공을 본받을 수 있고 예전의 오류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방대한 경험들의 저수조와 같은 것이었다.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미래에도 시간의 질 자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전제한 생각이다. 중세의 역사는 세계의 종말에 대한 기대에 따라 규정된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한편으로 도래할 것으로 예고되면서 계속 지연되는 미래의 종말과 그에 뒤따르는 구원의 지평에 입각하여 현재가 인식된다. 이러한 역사들 속에서 역사적 시간은 자체의 고유한 질을 지니고 있지 않다. 반면 현대라는 개념의 성립과 함께 역사는 독자적인 시간성을 획득하며, 이에 따라 역사를 상이한 시대들로 분류할 수 있는 시간적 지평이 형성된다. 또한 열린 미래로의 변화라는 기본 경험”[Ibid., p. 337; 같은 책, 376. 강조는 인용자.] 위에서 역사적 시간은 가속적인 것으로서 경험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는 역사적 시기들 중 하나(고대, 중세, 근대 ...)이기 이전에 역사적 시기구분 자체가 성립 가능하게 되는 초월론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표준적인 현대성을 유럽적인 현대성으로 상대화하는 작업은 단순치 않다. 현대성 자체가 시기구분 자체, 따라서 역사적 시간성의 초월론적 근거라면, 현대를 유럽적인 것으로 상대화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초월론적인 것으로서의 현대를 전제한 가운데 그 내부에서 그것을 상대화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다른 한편으로 초월론적인 것으로서의 현대 자체를 유럽적인 것으로 거부하고, 그 대신 새로운 초월론, 새로운 보편을 구성하는 것이거나 할 것이다. 그것은 유럽적인 조건 속에서 형성된 현대성보다 더 포괄적이거나 더 상위의 역사성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자 시간성의 새로운 척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당연히 이 후자의 작업이 훨씬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가령 이런 질문을 해보자. 만약 지금까지의 초월론적인 현대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현대성, 가령 동양 또는 동아시아적인 ()현대성을 새로운 초월론적 기준으로 설정한다면, 그것은 서구 및 다른 세계들도 포괄할 수 있는 초월론적 보편인가 아니면 동아시아에만 타당한, 따라서 필연적으로 다른 지역, 다른 문화들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보편인가?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당연히 유럽적이거나 서구적 보편성보다 더 탁월한 것이어야 할 텐데, 그것은 탁월성은 어떤 기준에 따라 측정되는가? 또 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문명의 충돌론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복수의 현대성이나 대안적 현대성을 주장하는 이들, 또는 동아시아는 몇시인가?”라고 묻는 이들은 과연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가?[미야지마 히로시배항섭 엮음,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 너머북스, 2015 참조.] 


이 문제에 관한 한 가지 사례로 김상준의 저작을 살펴보기로 하자.[이 글이 처음 발표된 학술대회에서 윤해동 교수는 나의 발표문에 대해 김상준이나 수잔 벅모스 같은 최신 연구 성과를 참조하지 않는다고 비판적으로 논평한 바 있다. 윤 교수의 논평 덕분에 필자는 김상준의 저작을 처음 읽게 되었음을 감사의 뜻과 함께 밝혀둔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독서를 통해 내 논지의 한계를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그 타당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음도 밝혀둔다. 따라서 이하의 세 문단의 논의는 윤 교수의 논평에 대한 답변으로 생각해도 좋다.] 김상준의 저작은 풍부한 논의와 독창적인 문제제기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저작이다. 필자 생각에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제기는 중층근대성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유교문명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중층근대성은 막스 베버 이래 표준화된 유럽중심적 근대성 개념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된 다중근대성’(아이젠슈타트와 같은 비교역사사회학자들이 제시한)이나 대안근대성’(폴 길로이 같은 포스트식민주의 문화이론가들이 제안한)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가설적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중층근대성은 그리스, 로마, 중근동, 유럽, 인도, 중국과 같은 인류의 고등 문명들을 가리키는 원형근대성17~18세기 이후 시작된 식민-피식민 근대성’, 그리고 20세기 이후의 지구근대성3가지 층위로 이루어진 근대성의 역사적 중층 구성을 가리킨다. 김상준에 따르면 이렇게 볼 경우에만 서구중심적인 근()대성 개념들만이 아니라 월러스틴 식의 세계체계론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월러스틴은 16세기 유럽에서 처음으로 근()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등장했다고 간주하는데, 이는 근()대성의 시간적 범위만이 아니라 공간적 범위 자체도 유럽 중심적으로 축소할 뿐더러 인류 역사가 크게 변화했던 굴곡점의 시발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성속의 통섭 전도라는 계기였다[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아카넷, 2016, 74.]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고 근()대의 역사를 자본주의의 역사로 환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에 입각하여 그는 동아시아 유교문명과 조선 후기 유교의 전개과정을 풍부한 논의들을 통해 고찰하고 있는데, 이를 정밀하게 검토하는 일은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거니와 이 글의 논점에서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김상준의 입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민병희,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서평, 󰡔역사학보󰡕 214, 2012 및 이용주, 서양중심주의의 내파(內波)인가 내화(內化)인가?, 󰡔오늘의 동양사상󰡕 23, 2012를 참조.여기에서는 그의 근대성 개념에 관해 두어 가지만 언급해두겠다. 우선 김상준의 중층근대성 개념은 의도와 달리 매우 목적론적 개념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는 근()대성 개념의 시간적 범위를 인류의 초기 고등문명의 전개 시기로까지 확장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모든 근대문명은 이렇듯 근대성의 세 단계의 중층의 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형태론적 동형(同型)이다”[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43면 및 그 외 여러 곳.]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고등문명은 예외 없이 이러한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는 이러한 입론만이 근대성의 유럽물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겠지만, 이것은 근()대라는 것을 세계사의 구조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오히려 근()대성에 대하여 더욱 목적론적인 필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근()대를 좋은 것, 바람직한 것으로 규범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월러스틴이 만물의 상품화를 통한 자본의 끝없는 축적을 본성으로 하는 자본주의적인 근()대 체계가 필연적으로 성립한 것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성립하게 되었다고 간주하면서 중국, 인도, 아랍 세계와 다른 지역들이 자본주의를 향해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들이 이 [자본주의적 근대의-인용자] 독소에 훨씬 면역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또 그 점이 그들의 역사적 공적이라고 생각한다”[이매뉴얼 월러스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앞의 책, 253.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분석에 관한 좋은 연구로는 유재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분석과 자본주의, 󰡔코기토󰡕 81,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7 참조.]고 지적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근대 또는 현대를 이해하는 더 유연하면서 설득력 있는 시각이다.


더 나아가 내포성의 측면에서도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그의 근대성 개념이 새로운 것이라고 자처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근()대성 개념을 단순히 외연적으로 확장할 뿐만 아니라 내포적으로도 새로운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곧 그의 중층근대성 개념은 질적으로 또는 가치상으로 새로운 요소를 제시할 경우에만 근대성의 유럽물신주의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책에서 이러한 새로운 내포적 요소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가 말하는 유교적 안티노미가 과연 근()대성을 새롭게 규정하기 위한 요소인지, 또는 온 나라 양반되기나 동학 사상이 유럽적 민주주의 개념에 대해 질적 새로움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따라서 왜 온 나라가 평등한 이 되려고 하지 않고 양반이 되려고 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럴 경우에만 주자학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민병희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민병희,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서평, 앞의 글, 400.오히려 그가 하는 작업은 유교 속에서 권력 견제의 자유주의적 전통, 그리고 주권의 실체를 민() 속에서 찾는 인민주권과 민주주의의 싹을 찾”[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580. 강조는 원문.]는 작업, 따라서 서구 근()대성의 요소들, 적어도 그 들이 유교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김상준의 작업이 여러 측면에서 오히려 서양중심주의(또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내화하고 있다는 이용주의 비평도 새겨볼 만하다. 이용주, 서양중심주의의 내파(內波)인가 내화(內化)인가?, 앞의 글 참조.]


나는 이들과는 좀 다른 각도에서 ()현대성과 마르크스주의를 상대화하기라는 문제를 제기했으며, 현대성 자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고 싶었다. 이 문제를 더 다루기 이전에 우선 다시 코젤렉의 논의로 돌아가 보면, 셋째, 코젤렉에 따르면 역사의 시간화가 이루어진 결과 동시적인 역사들의 비동시성”[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p. 323; 󰡔지나간 미래󰡕, 360.또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Ibid., p. 324; 같은 책, 362, 374.]이라는 특징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리상의 발견과 더불어 공간적으로 아주 상이하면서도 인접해 있는 문화 단계를 관찰할 수 있었고, 이 단계들은 공시적 비교를 통해 통시적으로 정렬되었다. ... 이제 경험되기 시작한 세계사는 비교를 통해 정리되었고, 이것은 점점 더 멀어지는 목표를 향한 진보의 모습으로 해석되었다. 몇몇 민족들이나 국가들, 대륙들, 학문들, 신분들이나 계급들이 다른 것들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에서 진보적 비교는 계속되었고, 마침내 18세기 이후에는 가속화나 따라잡기, 능가하기가 요구되었다.[Ibid., p. 323; 같은 책, 360-61.]

 

바로 이러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에 의거하여 마르크스 자신도 초기 저작에서 선진적이었던 프랑스나 영국의 기준에 따라 독일의 후진성을 평가한 바 있으며, ‘혁명’, ‘발전’, ‘진보같은 개념들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젤렉은 암묵적으로 언급하지만, 제국주의와 세계의 식민지 분할과 더불어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은 (포스트) 식민적 현대성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 중 하나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선진적 모델로서의 유럽 또는 서양과 이를 표준으로 삼아 현대화를 국가 및 문명의 목표로 설정하는 (포스트) 식민적 비서양 사이의 문명적 위계 구조는 이러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2.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와 현대성의 탈식민화

 

코젤렉의 연구는 오늘날 우리에게 표준화된 현대 및 그것의 고유한 역사적 시간성의 특성을 훌륭하게 밝혀준다. 하지만 그러한 표준적인 현대 및 그 역사적 시간성 자체는 불변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인가? 곧 이것은 일종의 초월론적인 것으로서 구체적인 경험적 역사 서술을 지도하고 개별적인 역사적 시간들을 측정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원리로 작용하는 것인가?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유사초월론에 따른다면, 이러한 표준적인 현대 및 그 시간성이라는 것 자체도 역사성을 지닌다고 말해야 하며, 또 내 생각에는 이후의 역사적 경험이 이를 입증해준다.[이는 코젤렉의 연구가 고전적인 의미에서 초월론적인 것의 지평에 머물러 있다는 주장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미래󰡕에도 그렇거니와 그의 후기 저작에는 초월론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대립(또는 위계적 종속)을 넘어 다수의 시간성을 사유할 수 있는 계기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다른 기회에 더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Reinhart Koselleck, “Zeitschichten”, in Zeitschichten: Studien zur Historik, op. cit. 이 문제에 관한 도움이 될 만한 논의로는 특히 Helge Jordheim, “Against Periodization: Koselleck's Theory of Multiple Temporalities”, History and Theory, no. 51, 2012 참조. 반면 이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Peter Osborne, The Postconceptual Condition: Critical Essays, op. cit. 1부 참조.] 이점을 더 분명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인도 출신의 서발턴 역사학자인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Dipesh Chakrabarty, Provincializing Europ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7(20001); 󰡔유럽을 지방화하기󰡕, 김택현안준범 옮김, 그린비, 2015.] 이 책은 오늘날 다른 어떤 포스트식민주의나 서발턴 역사학의 업적보다 이 문제에 관한 정교하고 풍부한 성찰을 담고 있다.[수잔 벅모스의 헤겔과 아이티혁명에 관한 연구는 흥미롭기는 해도 이 책의 인식론적 문제제기의 깊이에 견주기 어렵다. 수잔 벅모스, 김성호 옮김, 󰡔헤겔, 아이티, 보편사󰡕, 문학동네, 2012 참조.] 차크라바르티는 이 책의 2007년판 서문에서 자신의 논점을 두 가지 테제로 집약한다. 첫 번째 테제는 유럽은 보편적 모델이 아니며, 유럽은 비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따라 잡아야 할 모델이 아니다.”[디페시 차크라바르티, 김택현안준범 옮김, 앞의 책, 16.] 그리고 두 번째 테제는 보편주의적 사상은 항상 이미 특수한 역사들에 의해 수정되고 번역된다.


첫 번째 테제 자체에는 몇 가지 상이한 논점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이것은 저자가 역사주의라고 부르는 것, 곧 역사를 발터 벤야민이 명명한 바 텅 빈 동질적 시간이라는 보편적 시간성의 틀 안에서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진보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관점에 반대하여 역사는 따라잡기의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럽 또는 서구는 다른 모든 나라들이 목표로 삼아 모방하고 따라 잡아야 할 보편적 모델, 또는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초월론적 기의(signifié transcendantal)가 아니다. 둘째, 저자는 그 이유로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유럽적 현대성이라는 것 자체가 동시에 그 어떤 보편타당성도 주장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특수한 지적역사적 전통들에서 나왔다는 것”[같은 책, 17.]을 주장한다. 보편성 자체에 이미 특수성들의 흔적이 기입되어 있으며, 특수한 기원들에서 유래한 유럽적 현대성이 보편성으로, 초월론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과정은 그러한 흔적을 삭제하거나 은폐하는 과정이었다는 논점이다. 따라서 유럽을 지방화하기가 의미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유럽적 보편성의 성립과정에 대한 비판적 계보학의 요청이다.


차크라바르티의 진정한 독창성은 두 번째 테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이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테제라는 뜻은 아니다). 두 번째 테제는 현대성의 문제를 번역의 문제로 제시한다. 이는 한편으로 순수한 보편성, 순수한 현대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보편성으로서의 현대성은 차이들로 번역됨으로써 실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보편성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복수의 현대성 또는 이성을 복수화할 것[같은 책, 18.]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이는 복수의 근대성 내지 현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뒤에서 국내외의 논의를 살펴보겠지만, 대개 다수의 근대성을 독단적으로 병치하거나 경험적으로 비교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처리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기획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유럽의 사유를 거부하거나 폐기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지적 실존을 크게 빚지고 있는 사유체[유럽적 현대성-인용자]와 관련을 맺는 것은 릴라 간디가 적절하게 ”“포스트식민적인 복수라고 불렀던 것을 그것에 가하는 문제일 수 없다. 우리가 비서구 민족의 정치적 현대성 경험들을 끝까지 사유하도록 돕는 데 있어서 유럽의 사유는 필요불가결하면서 동시에 부적합한데, 그래서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어떻게 이 사유가이제 모두의 유산이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것이주변들로부터 그리고 주변들을 위해 쇄신될 수 있겠는지를 조사하는 과제가 된다.[같은 책, 70.]

 

여기서 차크라바르티는 유럽적인 현대성을 필수불가결하면서 동시에 부적합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필수불가결한 이유는 그것이 더 이상(20세기 후반의) 비서구인들에게 외재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모두의 유산이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구조, 사회조직, 법질서, 생활양식, 학문적인 규범과 사고방식에 이르기까지 유럽적인 현대성은 비서구인들의 삶에서 본질적인 구성 요소가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그것은 동시에 부적합한 것이기도 하다. 유럽적 현대성의 부적합성은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첫째, 그것은 비서구사회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기입되어 왔지만, 항상 동시에 변용과 괴리, 편차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유럽 내지 서구의 자본주의는 인도나 동아시아의 자본주의와 동일하지 않으며, 전자의 민주주의와 후자의 민주주의, 전자의 현대적 생활양식과 후자의 현대적 생활양식 역시 동일하지 않다. 그것은 항상 편차와 변형, 괴리를 낳는다. 이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 현대성의 문제는 더 이상 단순히 역사적 이행의 사회학적 문제로만(유럽사에서 유명한 이행 논쟁처럼) 간주될 수 없으며, 번역의 문제로도 간주될 수 있다[같은 책, 72.]고 덧붙인다. 이것이 차크라바르티가 번역이라고 부르는 것의 첫 번째 의미다.


다른 한편 이러한 번역의 관계는 원본과 모사본의 관계만은 아니다. 또는 번역에는 두 가지 상이한 모델이 존재한다. 한 가지는 보편적인 매개를 통한 번역이다. 그것은 가령 힌디어의 pani와 영어의 water는 모두 H2O에 의해 매개될 수 있다[같은 책, 172.]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번역에 이러한 모델만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어떤 역사, 가령 이런저런 국민적인 역사, 지역적인 역사를 사고하기 위해서는 초월론적인 것으로서의 보편사의 매개가 항상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한에서 그 작은 역사들은 초월론적인 보편사에 인식론적으로 종속될 것이며, 역으로 이러한 보편사는 번역 가능성을 위해 항상 불변적인 것으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차크라바르티는 두 번째의 번역 모델을 제시한다. 그것은 보편적인 매개항이 없는”, “문화 횡단적이고 범주 횡단적인 번역 모델[같은 책, 186.]이다. 그는 18세기 벵골의 이슬람 교도들이 힌두교의 신들을 이슬람 신성의 표현으로 번역한 것의 예를 든다(우리의 경우라면 가령 서양의 god천주(天主)’하느님으로 옮긴 것이 비슷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번역의 문제를 농민 봉기의 문제와 관련시킨다. 라나지트 구하의 서발턴 연구에 나오는 농민봉기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 봉기에 나섰던 한 농민은 자기 자신의 행위 능력을 스스로 부정했다. 곧 그는 내가 반란에 나선 것은 [힌두교 신인-인용자]타쿠르가 나타나 반란을 일으키라 말했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한다. 또한 식민지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농민들은 카누 마지와 시도 마지[농민봉기 당시의 지도자들-인용자]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타쿠르가 몸소 싸울 것이다[같은 책, 219.]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세속적인 시각에서 보면 전()현대적인 종교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고, 따라서 에릭 홉스봄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러한 농민봉기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현대적인 정치적 반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성은 모든 면에서 훌(hool, 반란)의 중심이었다고 말하는 구하를 인용하면서 차크라바르티는 이것이야말로 식민지 인도의 현대성의 고유한 요소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것은 보편적이라고 하는 유럽적인 현대성의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하지만 인도 식민지의 현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번역되어야 하는 서발턴 역사의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반면 김상준은 유럽 근()대성과 비유럽 근()대성의 관계를 전자가 일종의 화폐 기능을 선점하면서, 지구상의 여타 비유럽문명들에 대한 일종의 지구적 교환 가능성의 매체 역할”(앞의 책, 41)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 흥미로운 생각이지만, 이러한 화폐의 비유는 번역의 관계와 달리 항상 내부의 표준화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난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가지 번역 모델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보편성이라는 것은 실체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자리점유자”(placeholder)로 나타난다.

 

나는 보편들이라는 관념 그 자체에 반대한 게 아니라, 보편이란 것이 대단히 불안정한 형상이며 현대성의 질문들을 통해 사유하려는 우리의 시도에서 필수적인 자리점유자였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특수가 보편의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그리고 자리를 빼앗았을 때, 보편의 윤곽을 얼핏 엿보았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은 결코 보편적인 것 그 자체일 수 없다. 왜냐하면 권리민주주의같은 단어의 음가와 뒤얽힌 것들은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거칠게나마) 번역될 수 있지만 번역에 저항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기도 했던 개념-이미지들이었기 때문이다.[Dipesh Chakrabarty, Provincializing Europe, p. xiii; 󰡔유럽을 지방화하기󰡕, 18. 번역은 약간 수정.]

 

이런 의미에서 유럽을 지방화하기라는 차크라바르티의 문제의식의 근저에는 (그가 이것을 명료하게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유럽의 현대성의 전개과정을 통해 비서구 사회들이 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유럽의 현대성 자체가 변화되었다는 생각, 그것 자체가 자신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성이란 유럽적인 기원을 갖고 있고 또한 유럽적인 것을 본질로 삼고 있는 보편적인 역사적 시간성이 다른 나라들로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럽 바깥으로 확장되면서 유럽적 현대성과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유럽적 현대성 자체가 그러한 비유럽적 현대성에 의해 재구성되고 변용되는 어떤 것이다.


실제로 지난 30여 년의 유럽연합의 건설 과정에서 첨예한 논쟁의 주제가 되어온 것은 유럽연합 내부의 이주자들, 더 나아가 이제는 유럽 각 국가들의 고유한 요소들이 된 비유럽 이주자 국민들의 문제였다.[이 점에 관해서는 Sandro Mezzadra, “Citizen and Subject: A Postcolonial Constitution for the European Union”, Situations, vol. 1, no. 2, 2006; Katarina Kinnvall, “The Postcolonial has Moved into Europe: Bordering, Security and Ethno-Cultural Belonging”, Journal of Common Market Studies, vol. 54, no. 1, 2016을 각각 참조.] 오늘날의 유럽은 백인들()의 유럽이 아니라, 과거 그들의 식민지에서 본국으로 이주해온 다양한 인종과 민족, 문화를 지닌 이주자들의 유럽이다. 지난 30년 동안 유럽 정치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이 되어온 이주자 문제, 그리고 그와 결부된 포퓰리즘의 문제는 사실 지난 세기들(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의 유럽을 진정한 유럽적 정체성으로 고수하고 강화하면서 요새로서의 유럽을 구축하려는 움직임과 그것에 맞서 다문화적인 유럽, 더 나아가 접경지대”(borderland)로서의 유럽,[Etienne Balibar, “Europe comme Borderland”, in Europe, constitution, frontière, Bords de l’eau, 2004; “Europe: Provincial, Common, Universal”, Annali di scienze religiose, Turnhout, no. 10, 2017을 각각 참조.] 곧 그 자체의 특정한 정체성을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문명과 문화, 인종과 민족이 넘나들고 교류하고 서로 변용하고 변용되는 번역의 장으로서의 유럽으로 구성하려는 움직임 사이의 갈등의 표현이다. 따라서 탈식민주의 문제는 비유럽 국가들 및 사회에만 고유한 현상이 아니라, 유럽 연합 자체의 구성적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폭발했던 그리스 채무위기는 오늘날의 유럽 연합 내에 중심-주변의 위계 구조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 내부 식민지를 전제로 존속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이 문제에 관한 좋은 논의로는 Ranabir Samaddar, A Post-Colonial Enquiry into Europe’s Debt and Migration Crisis, Springer, 2016을 참조.]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와 유럽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현대적인가? 첨단 테크놀로지와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하이퍼-현대성(hyper-modernity)의 동아시아인가 아니면 19세기와 20세기 초 모더니티의 본산으로서의 유럽인가? 그것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우며,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세계체계론의 어법으로 이야기한다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가 미국과 더불어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두 개의 중심부를 구성할 것이고, 유럽은 점점 더 중심부에서 밀려나 반주변의 상태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유럽은 더욱 더 신자유주의적 요새로 변모할 것이며 유럽 내부의 불평등과 배제, 그리고 폭력의 현상은 강화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해볼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이제 동아시아의 시대, 더 나아가 동양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지난 200년 남짓한 예외적인 서구 지배의 역사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동양이 세계의 주도적인 문명 질서로 군림할 때가 도래했다고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이점에 관해서는 결론 부분에서 좀 더 언급하기로 하자.


차크라바르티의 논의는,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현대성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 같이 이후의 시간성을 묻고자 하는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모호성을 지니고 있다. 보편이라는 것을 실체가 아닌 자리점유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유럽적 현대성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을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서구 현대성[이 점에 관한 좋은 토론은 강정인,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 아카넷, 2004 2장 참조.]이라는 것에서 초월론적인 것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러한 자리점유자는 여전히 서구적인 것에, 서구적 현대성에 속하는 것에게만 배정되어 있다. 곧 보편성은 서구적인 것이며, 비서구적인 것은 기껏해야 그러한 보편성을 변용하거나 굴절하는, 그것의 일관된 관철을 불가능하게 하는 차이들로 지칭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서구적 현대성은 초월론적인 것의 지위는 상실했으되, 실질적으로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리점유자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말하면, 이는 차크라바르티가 서구적 보편성에 대하여 그 기원의 특수성은 밝혔지만 그것 자체를 충분히 역사화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이 차크라바르티의 잘못인가? 그의 인식론적 한계를 나타내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오히려 서구 보편성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비판은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보편성(가령 중국적 보편성이나 아시아적 보편성 또는 동아시아적 보편성) 또는 보편성의 자리 점유자들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차이들의 번역으로서의 보편성 또는 차이들의 보편성[Etienne Balibar, Des universels, Galilée, 2016, p. 155. 강조는 원문.]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의 표현인가? 󰡔유럽을 지방화하기󰡕 자체만으로는 분명한 답변을 제시하기 어렵지만, 나는 그의 관점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결론에서 더 논의해보겠다.[심사위원 A데리다의 또 다른 문제의식은 왜 그토록 유럽이든 아시아든 보편(초월)을 실체화해 왔을까의 물음이라 생각됨. 즉 왜 실체적 보편이 성립 불가능함을 그토록 많은 이들이 깨달았음에도 보편을 항시 실체적으로 사유하고야 말까? 그것을 탈구축한 끝에도 새로운 모델에 대한 갈망이 남을까? 등의 물음이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의 문제의식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질문은 여러 측면에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인데, 두 가지 정도만 지적해두겠다. 첫째, 이 질문은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을 보편과 특수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그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데리다가 옹호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둘째, 이는 그가 데리다에게 보편의 문제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 비판또는 권력 비판의 문제설정에 의거한) 일종의 가상이나 허구의 문제라고 사고하는 데서 생겨나는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는 특수한 어떤 것이 권력이나 지배 또는 억압 같은 것에 입각하여 자신을 부당하게도 보편이라고 참칭하는 것의 허구성과 기만성을 폭로하는 것이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보편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은 니체 이후 현대 유럽철학, 특히 데리다를 포함한 프랑스철학의 요소 중 하나이며, 데리다에게 이는 모든 공동체 또는 모든 동일성의 구성에서 역설적으로 전제되어 있으면서 배제되어 있는 이질적 타자(‘구성적 외부’)의 계기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데리다가 문화상대주의와 다른 것은,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의 유명한 레비 스트로스 독해에서 잘 드러나듯이, 각각의 고유한 문화 또는 고유한 문화적 동일성/정체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한 동일성/정체성 자체가 항상 이미 보편에 의해 매개되거나 보편의 기입을 전제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보편의 매개를 전제하지 않는 고유한 문화적 동일성/정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보편에 관한 데리다의 생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너무 자주 오해되곤 하지만 데리다에게 보편은 그 자체로 나쁜 어떤 것, 피하거나 무너뜨려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가령 󰡔법의 힘󰡕에서 보편의 계기를 나타내는 법과 독특성’(singularity)의 계기를 나타내는 정의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전자는 나쁘고 후자는 좋은 것도 아니다. “절대적 타자성의 경험으로서 정의는 법을 초과하고 또한 법을 정의롭게 만드는 것이지만, 동시에 정의라는 것이 그 자체로 고립될 경우에는 항상 악이나 최악에 더 가까운 것이 되고말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는 협상해야하는 관계다(자크 데리다, 󰡔법의 힘󰡕, 59~60). 더 나아가 데리다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메시아주의들로 환원될 수 없는 메시아적 구조또는 메시아적인 것을 약속의 보편적 구조 및 장래에 대한, 도래에 대한 기대의 보편적 구조, 그리고 이러한 도래에 대한 기대가 정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386)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데리다가 보편적이고, 보편화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혁명적인 요구”(세계화, 평화, 범세계적인 정치, 제롬 벵데 엮음, 이선희주재형 옮김, 󰡔가치의 장래󰡕, 문학과지성사, 2008, 215)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인데, 이때의 보편, 진정으로 혁명적인 보편은 정의로서의 사건을 기대하면서 개방되어 있는환대, “자신의 보편성을 돌보며 감시하는환대의 보편성이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324. 강조는 원문). 따라서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데리다에게 보편의 문제는 다수의 보편들 사이의 협상”(negotiations)의 문제(하지만 각각의 보편들이 보편인 만큼, 그것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메타 보편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아포리아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이며, 그 역에 해당하는 것은 차이들 사이의 번역 과정의 문제다. 참고로 데리다 논문인터뷰 모음집의 영역본 제목이 바로 󰡔협상󰡕이다. Jacques Derrida, Negotiations: Interventions and Interviews, 1971-2001, ed. & trans., Elisabeth Rottenberg,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1이다.]

 

3. 한국에서의 ()현대성 논의

 

이런 관점에 비춰보면, ‘압축적 근대성’(compressed modernity)이나 환원 근대같은 개념들은 근()대성의 문제를 사고하기 위해 필요하기는 하지만 충분한 문제설정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장경섭, 󰡔가족생애정치경제: 압축적 근대성의 미시적 기초󰡕, 창비, 2009; 개발국가, 복지국가, 위험사회: 한국의 개발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 󰡔한국사회정책󰡕, 183, 2011; 김덕영, 󰡔환원근대󰡕, , 2015.] 이러한 개념들은 한편으로 한국의 근현대사가 지닌 굴절되고 왜곡된 측면들을 검토하고 비판할 수 있게 해주지만, 동시에 그 저변에는 서구적인 현대성을 보편적인 현대성의 본질로, 더 나아가 초월론적인 준거로 간주하는 관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장경섭이나 김덕영은 한국 현대 사회가 지난 40~50여 년 동안 급격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합리화 내지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를 이룩하는 데 실패했으며, 이것이 복합적 위험사회의 성격을 띠게 만들거나 민주적 정권 교체(김대중, 노무현) 이후에도 여전히 국가와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이중적 환원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장경섭이 자신의 분석에서 동원하는 위험사회’, ‘성찰적 근()대화같은 개념들은 울리히 벡이나 앤서니 기든스 등이 1980년대 말 ~ 1990년대에 고안해낸 것들이며 그의 작업에서는 이 개념들에 대한 이론적방법론적 검토나 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김덕영 역시 베버의 근대화 및 합리화 개념, 그리고 짐멜의 사회분화 및 개인화 개념을 현대성을 설명하는 보편적인 이론적 틀로 전제한 가운데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분석이 한국 사회의 현대화 과정을 분석하는 데 경험적 유용성을 지닐 수 있고 의미 있는 통찰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현대성 개념 자체를 개조하거나 탈구축해야 할 이론적철학적 문제의식에는 미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장경섭의 압축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홍찬숙, 압축적 근대성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독일과 한국의 근대화에서 나타난 비동시성의 동시성에 대한 비교를 중심으로, 이정덕 엮음, 󰡔한국의 압축근대 생활세계: 압축근대성 개념과 압축적 경험󰡕, 지식과 교양, 2017을 참조하고, 김덕영의 환원 근대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정태석, 근대에 대한 환원주의적 비판?, 󰡔내일을 여는 역사󰡕 56, 2014년 가을호 및 환원 근대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마음의 사회학에 입각하여 생존주의 근대성’(survivalist modernity)의 틀에서 한국 현대사를 분석적으로 고찰하는 김홍중, 생존주의, 사회적 가치, 그리고 죽음의 문제, 󰡔사회사상과 문화󰡕 204, 2017 참조.]


더 나아가 식민지 근대성에 관한 토론에서도 서구적인 근()대성은 표준적이고 보편적인 근()대성이라는 생각이 견지되어 왔다. 가령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의 편집자들은 민족주의 역사 서술의 극복을 위한 발판으로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면서도 여전히 근대성은 기원과 속성상 본질적으로 역사적이고 서유럽적인 현상이다[신기욱마이클 로빈슨,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도면회 옮김, 삼인, 2006, 49.]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근()대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서구적 근()대성(그것도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어떤 근()대성)을 불변적인 초월론적 준거로 삼는 것은 아닌가? 마찬가지로 정태헌은 식민지 근대화론 및 식민지 근대성론에 대한 비판적 토론에서 식민지의 왜곡되고 불구적인 근대성을 비판하기 위해 원형 근대와 식민지 근대를 구별하고 있으며, 식민지 근대에서는 자본주의 제도 및 합리성이 도입되는 반면 국민국가 수립이 저지되고 본국인에 비하여 식민지인들이 구조적인 차별과 무시의 대상이 되며 식민지 자본가의 부패가 심화된다는 논거를 통해 식민지 근대의 왜곡된 측면들을 부각시키고 있다.[정태헌,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 성찰: 근대주의 비판과 평화공존의 역사학 모색󰡕, 선인, 2007, 42면 이하.] 그러면서도 그는 원형 근()대로서의 유럽적 근()대성이 항상 종속적 하위 체계로서 식민지적 근대를 기반으로 하고”[같은 책, 52.]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단순히 원형 근대를 회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근대화의 지양은 세계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을 촉구하고 근대의 원형 회복 차원을 넘어 근대의 지양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피력하고 있지만, 원형 근대와 식민지 근대의 비대칭적 이원 구도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는 막연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한계 내지 난점은 지난 20여 년 간 국내 학계에서 논의된 근대 극복이라는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국내 학계에서는 탈식민주의 문제설정의 영향 아래 다양한 형태로 복수의 근대나 대안적 근대에 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외국 학계에서 다중근대(multiple modernities)의 문제설정이 주로 사회학자를 비롯한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대륙별, 지역별, 국가별 비교 사회문화 연구의 형태로 전개된 데 비해,[이는 특히 1980년대부터 제기된 복수의 근대성의 주창자가 근대화론의 주요 이론가 중 한 사람인 아이젠슈타트였다는 사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S. N. Eisenstadt, “Multiple Modernities”, Daedalus, vol. 129, no. 1, 2000 Gerhard Preyer & Michael Sussman eds., Varieties of Multiple Modernities: New Research Design, Brill Academic Publisher, 2015를 각각 참조. 이러한 의미의 복수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특히 Volker H. Schmidt, “Multiple Modernities or Varieties of Modernity?”, Current Sociology, vol. 54, no. 1, 2006을 참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전유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두드러진 논의를 제출했던 필자들이 하정일과 백낙청인 것으로 보인다.[백낙청,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창작과비평사, 1994;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하정일, 󰡔20세기 한국문학과 근대성의 변증법󰡕, 소명, 2000; 󰡔탈식민의 미학󰡕, 소명, 2008; 󰡔탈근대주의를 넘어서: 탈식민의 미학 2󰡕, 역락, 2012; 고명철, 한국문학의 복수의 근대성’, 아시아적 타자의 새 발견, 󰡔비평문학󰡕 38, 2010; 최현식, 복수의 근대를 향한 탈식민의 도정: () 하정일 교수의 탈식민담론에 대하여, 󰡔민족문학사연구󰡕 62, 2016.] 더욱이 국내에서 복수의 근대나 대안적 근대는 대개 ()대의 극복이라는 과제와 병치되거나 그 이론적개념적 수단으로서 제기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대의 극복이라는 표현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경계 짓는 이론적 정식 중 하나다. 곧 근()대의 극복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1980년대 진보 학계의 민중민족 담론을 포스트 담론이 과잉규정한 효과 또는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대체보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까지 근()대 또는 근()대성이라는 것은 진정으로 완수하고 성취해야 할 과제였는데, 1990년대 이후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재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또는 민중적인 관점에서 근대 극복 또는 현대 극복의 과제를 내세우는 논자들에게서 주목할 만한 양가성이 나타난다. 하정일의 저작은 이를 아주 뚜렷하게 보여준다.[내가 보기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이론적이거나 사상적인 담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운동적인 담론이라 할 수 있다. 백낙청 스스로 여러 차례에 걸쳐 사회과학자들에게 분단모순내지 분단체제에 관한 더 정치한 이론적 분석의 과제를 제안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화두나 문제제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1990년대 이후 우리 진보 운동계의 중요한 담론 중 하나라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검토의 대상이 될 만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여 여기에서는 주로 하정일의 논의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겠다.] 그는 기존의 민족주의론 및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후기 식민론또는 탈식민주의론이 중요하지만, 그가 탈근대론이라고 부르는 대개의 탈식민주의론은 단수의 근대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며 근대 극복의 관점에서 탈식민주의론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근대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정일이 말하는 복수의 근대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근대의 역사는 순수한자본주의화의 과정이 아니었다. 이성이 지배한 시대도 아니었고, 서구 중심주의가 공고했던 역사도 아니었다.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도 많은 예외들, 균열들, 변형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그 결과 실제의 근대는 부르주아, 유럽, 백인, 남성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상반된 것은 아니지만으로 전개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타자들의 저항, 즉 부르주아의 타자, 유럽의 타자, 백인의 타자, 남성의 타자, 식민지의 타자, ‘의 저항이 지속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타자들은 근대와 출발을 함께 했고 근대 속에서 자랐고 지금도 근대를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의 자식들, 근대의 또 다른 주체들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란 다양한 근대들이 벌인 경쟁의 장이었다고 보아야 한다.[하정일, 󰡔탈식민의 미학󰡕, 19~20.]

 

이 문단에서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나 호모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 등의 탈식민주의, 다문화주의, 혼종성(hybridity) 논의를 전유하여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으로서의 근대의 역사는 서구 중심적인 자본의 지배가 전일적으로 관철되었던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타자()의 저항이 전개되었된 장이며, 이런 의미에서 복수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이런 복수의 근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내지 계급적 관점으로 근대를 이해하는 것 역시 일면적인 것이며, 근대를 단수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의 복수성과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근대가 계급적으로, 민족(인종)적으로, 성적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부르주아에게 근대가 자본의 지배라면 프롤레타리아에게 근대란 노동해방이며, 제국주의에게 근대가 식민지 지배라면 피식민지 민족에게 근대란 민족해방이다. 이처럼 근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분할되고 얽히고 하면서 구성된 '관계들의 총체'라 할 수 있다. 단수의 근대는 이들 중의 한 코드만을 특권화시킨 논리이다.[하정일, 같은 책, 93.]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근대의 극복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면, 논의의 결이 다소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복수의 근대와 민족문학이라는 글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나 호미 바바등과 같이 그가 탈근대적인 또는 해체론적인 후기식민담론의 이론가들로 간주하는 이들을 비판한다. 곧 사이드가 옹호하는 다문화주의는 그것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시대의 문화 세계화가 기본적으로 문화 '상품'의 세계화임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 ...... '만물의 상품화'라는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경시한, 지나치게 낙관주의적인 구상이라는 혐의[하정일, 같은 책, 95.]가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으며, 또한 호미 바바와 관련된 혼종성이론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역학관계에 대한 자의식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또한 그것은 언제나 중심부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아래에서만 가능한 일[하정일, 같은 책, 98.]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요컨대 다문화주의나 혼종성 이론은 양자 공히 문화에 국한된 '텍스트적 정치'이다.[이것은 혼종성 이론에 대한 너무 단편적인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칸클리니의 혼종성 이론에 중심을 둔 좀 더 균형 있고 정교한 논의로는 김용규, 󰡔혼종문화론󰡕 소명, 2013 3부를 참조.] 그들에게는 자본주의 근대성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인 실천의 방안이 궁색하기 그지없다. 아마드의 설명처럼, 식민성이든 신식민성이든 결국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극복이라는 전망이 결여된 한 탈식민은 난망한 일이 된다.[하정일, 같은 책, 같은 곳.] 그 대신 하정일은 월러스틴의 세계체계론을 “‘복수의 근대의 기본 정신의 부합하는이론이라고 상찬하는데, 이는 그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총체적 실천 속에서만 문화적 탈식민화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하정일, 같은 책, 99.]이다. 요컨대 근대의 극복이라는 화두가 문제되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총체적 실천이 중심적 과제로 부각되며, 문제는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복수의 근대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근대가 계급적으로, 민족(인종)적으로, 성적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과, 이처럼 다른 문제들은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서로 쉽게 양립하기 어려운 주장이 아닌가? 그리고 실로 이는 20세기 후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늘 괴롭혀온 문제가 아니었는가?


 

IV.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

 

이러한 질문과 더불어 이제 우리 논의의 마지막 논점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정일과 같은 근()대 극복론자들이 제출하는 논의는 알튀세르가 제시한 바 있는 과잉결정’(surdétermination, overdetermination) 개념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루이 알튀세르,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후마니타스, 2017 참조.] 알튀세르는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기본 모순만으로는 사회주의 혁명 또는 공산주의로의 이행의 문제가 설명될 수 없으며, 그러한 기본 모순을 과잉결정하는 다른 모순들, 곧 제국주의와 식민지 모순, 지배계급 내부의 모순, 봉건적 착취체제의 모순 등과 같은 여러 모순들을 고려할 경우에만 혁명과 이행을 올바르게 사고할 수 있으며, 왜 사회주의 혁명이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이었던 러시아에서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잉결정 개념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이 역사의 동력이라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알튀세르 자신은 부인하지만)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 알튀세르 자신은 그 이후 이데올로기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과잉결정 이외에 과소결정’(sousdétermination, underdetermination)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한다. 이 개념은 왜 여러 모순들이 결합되었는데도 혁명이나 이행이 일어나지 않는지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알튀세르의 과잉결정 및 과소결정 개념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서강인문논총󰡕 52,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34절 참조.그리고 사실 과소결정 개념이 제시되어야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구적이거나 조작적 관점(대중을 조작하고 그들의 의식을 기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기능주의적 관점(자본주의 체계의 재생산 도구로서의 이데올로기)을 넘어 구성적 관점(계급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또는 젠더 정체성이나 민족, 인종, 국민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으로서의 이데올로기)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제자인 에티엔 발리바르가 나중에 경제(또는 계급 관계)와 이데올로기(또는 상징적 관계)의 관계를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가 아니라 이중의 토대로 제시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또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처럼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계급적 모순 내지 경제적 적대를 최종 심급의 위치에 놓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정치적 적대, 인종적 적대, 성적 적대, 생태론적 적대 등과 같은 다양한 적대들과 등가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인 문제설정으로 나아간 이들도 존재한다.[에르네스토 라클라우샹탈 무페. 이승원 옮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급진민주주의 정치를 향하여󰡕, 후마니타스, 2012.]


이러한 이론들을 비롯한 20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 또는 그 중 어떤 특정한 이론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나의 목표는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이른바 정통마르크스주의 또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핵심인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곧 마르크스주의에서 초월론적인 것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문제를 각자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이라는 점이다.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것은 간단해보이지만,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문제다. 왜냐하면 이는 현대 세계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규정하는 데서나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로의 이행 전략을 설정하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대안 사회를 규정하는 데서도 핵심적인 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근대 극복의 문제를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총체적 실천의 문제로 제시하거나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으로 간주하면, 이는 원하든 원치 않든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관점을 수용하는 것이 된다. 더욱이 이러한 관점을 수용하면 대안 사회의 기본 틀도 전통마르크스주의(정통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라 이단적 또는 비판적 마르크스주의를 모두 포함한다는 뜻에서)와 달리 사고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하정일은 자신의 저작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말하는 대신 비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여러 차례에 걸쳐 사용한다. 가령 복수의 근대란 비()자본주의적 근대 기획들의 총칭(總稱)[하정일, 󰡔20세기 한국문학과 근대성의 변증법󰡕, 63.] 같은 표현이나 주체적 근대와 비자본주의적 근대의 동시적 성취[하정일, 󰡔탈식민의 미학󰡕, 112.] 같은 표현이 그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비자본주의를 전통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다른 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복수의 근대를 말하면서 근대란 계급적으로, 민족(인종)적으로, 성적으로 분할관계들의 총체라고 말하지만, 계급적 모순과 다른 민족(인종)적 모순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또는 성적 차이 내지 젠더 적대의 문제과 비자본주의 문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더 나아가 월터 미뇰로 등이 제기한 바 있는 현대성(또는 그들의 용어법을 빌리면 현대적/식민적 세계체계”)에 구성적인 식민적 차이’[월터 미뇰로, 이성훈 옮김, 󰡔로컬 히스토리/글로벌 디자인󰡕, 에코리브르, 2013 참조.]와의 관계는 무엇인지 사고하기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사실 오늘날 한국에서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는 대다수의 연구자들 역시 이러한 양가성에 동일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 연합을 말하고 다양한 적대들 사이의 절합’(articulation)을 말하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모순 또는 계급 적대가 존재하며, 다른 적대나 모순 또는 갈등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정일을 비롯한 복수의 근()대론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은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알튀세르의 과잉결정론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는 셈이다. 이는 그만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산출하는 불평등 및 상품화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입증하지만, 이론적으로 본다면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에서 벗어나는 것, 다수의 적대들 간의 관계를 사고하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은 문제임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시간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던 서구적 보편성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제 초월론적 준거로서의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물러난 보편의 자리를 무엇이 차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러한 보편의 자리는 이제 어떤 특정한 문명이나 지역이 차지할 수 없는 그러한 자리인지, 또는 그러한 자리 자체가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 때문에 서론에서 언급했다시피 인터레그넘이나 혼란, 혼동 같은 진단이 나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한 귀퉁이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보편의 문제는 미국과 경쟁하는 두 번째 패권 국가로 부상한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의 문제와 겹쳐 제기된다. 중국 또는 그것이 주도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는 서구적 보편성과 경쟁하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보편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기대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문을 갖고 지켜보기도 하는 물음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물음에 답변할 만한 능력이 없다.[이와 관련하여 심사위원 B현대성과 자본주의(또는 자본주의 이후’)라는 주제에 관한 나의 의견이 조금 더 분명히 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탈구축 또는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현대성과 자본주의 또는 비자본주의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앞에서 현대성의 역사()’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역사()’(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라는 개념의 역사()) 및 그것과 결부된 ‘()자본주의의 역사()’이라는 문제를 일차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알튀세르와 월러스틴(및 그밖의 다른 이론가들)은 상이한 이론적 관점과 지적 기반을 지니고 있지만, 내 생각에 두 사람의 중요한 공통의 기여 중 하나는 강한 의미에서 자본주의(및 그 개념들)의 역사()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알튀세르가 구상했던 구조인과성복수의 시간성’(특히 󰡔자본을 읽자󰡕)에 관한 논의와 월러스틴의 역사적 자본주의 및 자본주의 세계체계론 덕분에 우리는 자본주의의 불균등발전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사()까지도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덕분에 우리가 전통 마르크스주의의 목적론이나 진화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의 이론적정치적 결과 중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들 역시 근본적으로 불확실해졌다는 점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내지 비자본주의가 예전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무언가 진보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더 뚜렷해지고 있는 점 중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내지 비자본주의가 반드시 진보적인 어떤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출현하고 구성되는 어떤 것,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현존 자본주의보다 더 나쁜 어떤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예전에 월러스틴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신화(곧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동원하여 봉건 귀족 계급을 제압하고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어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했다는 신화)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는 사실 봉건제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당시 지배계급의 대안이었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는데, 오늘날 우리의 눈앞에서 전개되는 역사적 상황도 어쩌면 그와 매우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서두에서 우리 시대의 불확실성은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불확실성이라고 말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 중 하나가 이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대안에 대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마지막으로 차크라바르티가 2010년 중국에서 제기한 한 가지 질문을 여기서 소개해보고 싶다. 그는 21세기에 접어들어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중국과 인도를 보면서 자랑스러워하고 또한 앞으로 미국보다 더 강력한 국가가 되어 세계를 주도하기를 바라는 그의 중국 및 인도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당신들이 진정 세계를 실제로 지배하게 될 때, 당신들은 당신들의 지배의 희생자들이 당신들의 지배를 비판할 수 있도록 어떤 비판의 관점들(terms of ciriticism)을 제시해줄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전통 내부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당신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어떤 자원들을 생산해낼 수 있습니까? [Dipesh Chakrabarty, “From Civilization to Globalization: the ‘West’ as a Shifting Signifier in Indian Modernity”, Inter-Asia Cultural Studies, vol. 13, no. 1, 2012, p. 140.]

 

내 생각에 이는 데리다가 말하는 유사초월론적 보편 또는 탈구축적 보편에 관한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발리바르가 말하는 시민다움 또는 시민문명성(civilité, civility)의 정치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Etienne Balibar, Violence et civilité, Galilée, 2010; 진태원 옮김, 󰡔폭력과 시민다움󰡕, 난장, 2012(부분 번역). 실로 차크라바르티 역시 이를 (발리바르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civility의 견지에서 해명한다.지금까지 유럽 또는 서구가 현대성을 지배해왔다면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힘, 군사적 위력, 또는 과학기술적 합리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서구가 자신들의 정체성 및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러한 보편성은 바로 자기비판의 능력, 또는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탈구축의 역량으로 측정된다. 그렇다면 강력한 문명이 아니라 또는 그것에 더하여 힘을 덜어내는(프랑스어로 한다면, im-puissant, 영어로 한다면 de-powering) 문명, 따라서 보편을 독점하지 않는 문명()을 탈구축하는 것이 아마도 ()근대성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방향일 것이다.[여기에서 심사위원 B의 또 다른 질문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해두겠다. 그는 데리다와 발리바르, 차크라바르티가 각자 제시하는 보편에 관한 생각의 동일성과 차이가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묻고 있다. “유럽적(서구적) 보편성 자체가 탈구축적 보편성이라면(22), 어떤 탈구축적 보편성은 왜 쇠퇴하고 어떤 탈구축적 보편성은 어떻게 도래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탈구축적 보편성 자체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면, 탈구축적 보편성들 간의 갈등을 상정해야 하고 그 가운데 어떤 것이 탈구축적 보편성의 보편성(의 보편성...)으로서 메타-보편성이 되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 것인데, 하지만 이렇게 사고하면 사실상 최종심급론의 틀을 다시 반복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복수의 탈구축적 보편성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탈구축적 보편성들 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는가, 탈구축적 역량은 어떻게 강화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변하자면, 우선 유럽적(서구적) 보편성 자체가 탈구축적 보편성은 아니라고 답변하겠다. 서구적 보편성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 것이 탈구축의 역량이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탈구축의 역량이 보편성 여부를 측정하는 일종의 척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역으로 이러한 탈구축의 역량을 무력화하고 봉쇄하는 동일성/정체성 중심적인(identitarian) 경향이 서구적 보편성의 이를테면 제국주의적측면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탈구축적 보편성은 당연히 다수일 수밖에 없다. 또는 다수의 동일성들/정체성들 내부에서 탈구축적 보편의 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서로 번역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러한 탈구축적 보편성들 사이의 관계가 메타-보편성의 구성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탈구축적 보편성에 대한 정의 및 논리와 어긋나는 것이다. 심사위원 B가 이러한 질문들을 제기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암묵적으로 보편을 공동체 또는 집합적인 실재로 간주하고, 또 보편의 문제를 그 외연적 측면에서만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편의 문제는 공동체 내지 집합체의 측면에서만 제기되는 문제는 아니다. 가령 개인은 오늘날 보편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장소 중 하나다. 동물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사이의 경계, 젠더적인 경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 같은 갈등하는 보편들 사이의 쟁론의 장소가 바로 인간적인 것, 인간이라는 것의 구현으로서 개인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 발리바르, 차크라바르티의 탈구축적 보편 이론을 비교하는 문제는, 한국의 연구자들, 특히 한국학 연구자들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쓴 이 글의 사변적인 수준에서는 제대로 답변할 수 없는 문제다. 그 답변은 다른 글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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