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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호 2005년 12월 22일(목)


이른바 '북한 인권' 논의의 맹목과 함정
-미국 인권외교의 반동성


 

12월 '북한인권'을 둘러싼 소동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규명할 것인가, 그리고 미국의 대북 불가침 보장 및 경제제재 해제 여부를 둘러싸고 6자회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소위 '북한인권'이라는 쟁점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12월 16일 60차 유엔총회에서 유럽연합이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이 미국, 일본의 동의를 포함하여 찬성 88개국, 반대 21개국, 기권 60개국으로 가결되었다. 그리고 12월 8일 서울에서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와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주최로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열려 이곳에 참석한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특사(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따라 임명되었다)는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며 … 자유를 북한에 전파하는 것이고 북한에 곧 밝은 빛이 비칠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발언하였다. 또한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12월 7일 위조달러를 만들어낸다며 북한을 '범죄정권'(criminal regime)으로 규정했을 뿐 아니라 '북한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인권'에 대한 언급과 동시에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등의 봉쇄수단이 강구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애초 '범죄정권'이라는 발언은 최근 북한과 금융거래를 해온 마카오 소재 '방코 델타 아시아'에 대해 미국 재무부 소속 금융범죄단속강화반(FinCen)이 돈 세탁과 위폐 유통 혐의로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법에 따른 금융제재에 대해서는 북한과의 협의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백하게 밝혔다. 한편 일본 역시 일본인 납북문제를 제기하며 미국의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보도(12월 15일)에 따르면 일본은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수단을 규정하는 「경제제재실시촉진법안」과 '북한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북한인권법안」을 내년 1월 의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조치들은 지속적으로 경제제재의 해제를 요구하는 북한의 바람과는 상충되는 것임에 분명하며 향후 6자회담의 낙관적 전망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인권-외교 정책 -선(善)과 악(惡)의 대결

이른바 '북한인권' 문제는 미국의 군사·안보 외교정책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이 '인권'문제를 외교정책에 포함하게 된 것은 197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패배와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유진영'을 수호하는 미국의 정치적·도덕적 지도력은 돌이킬 수없이 훼손되었고, 부패와 부당한 정권에 맞서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방어자라는 미국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공산주의를 저지하는 미국의 도덕적·이데올로기적 우월성을 의문시하게 했으며, 이때 미국은 인권문제를 매개로 도덕적 지도력을 회복하고자 시도했다. 또한 미국 내 점증하는 시민권 운동들은 미국 정부로 하여금 외교정책에서 인권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도록 강제하는 계기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카터 행정부의 이른바 '인권 외교'였으며, 그 핵심은 대외원조와 수혜국의 인권을 연계하는 것이었다. 이미 1973년 민주당의 주도로 의회에서 「해외원조법안」이 채택되었으며, 1976년에는 국무부 내에 인권·인도주의국이 조직되었고, 1978년부터는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국무부는 『연례 각국 인권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카터 행정부의 '인권-외교'는 동맹국인 반공독재 국가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적용되지 않았으며, 이는 취임 이후 남한 신군부 세력의 광주학살을 묵인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카터의 인권외교는 당시 대표적인 군사독재정권이었던 남한, 아르헨티나 등에 대한 상징적 조처를 취했을 뿐 원조 자체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때부터 미국은 자신이 수집한 정보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에 근거하여 세계의 '인권상황'을 조사하고 평가하게 된다.

이처럼 실제 미국의 '인권-외교'는 애초 반공 이데올로기와 공명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미국의 군사·안보적 이해관계에 종속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격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며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제테러 조직 알 카에다를 발본색원하고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켜 탈레반 정권과 후세인 정권을 전복했으나 이후 알 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을 생포하는 데 실패하고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자 독재정권을 몰아낸 '자유'와 '해방'으로 침략과 점령을 윤색하는 데에서 미국의 위선은 절정에 이른다.

미국의 네오콘은 이미 1996년 네오콘의 정치세력화에 계기가 되었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이미 세계의 민주적 전환의 출발점으로서 '중동 민주화'를 주창하면서 후세인 정권의 제거를 명백하게 밝혔을 뿐 아니라, 이러한 자신들의 구상을 '선'(미국)과 '악'('불량국가')의 대결로 묘사하고 기독교적 사명감에 기반한 도덕적 우월주의에 입각하여 악을 징벌하는 주체이자 구원자로서 미국의 역할을 설정하고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 중에 "21세기 십자군 전쟁"이나 "무한정의(infinite justice)", "악의 축(axis of evil)" 등의 표현이 동원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팽창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개시된 것이다.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이전까지의 국방비 감축 추세를 역전시켜 국방예산을 1,120억 달러 증액하기로 결정했으며, 걸프전쟁(1991년)과 코소보 공습(1995년), 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2003년 이전 이미 미국은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었다!) 등 미국의 군사개입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 1990년대에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늘어난다.

 

인권과 안보의 결합: 인간안보의 진상

그런데 인권을 (외교)안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 내의 국가들이나 일본 등 대부분의 중심부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는 이들 국가들이 이번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될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

중심부 국가들이 이처럼 '인권 외교'를 표방하는 것은 (금융)세계화로 야기된 세계적 차원의 정치적 위기를 관리하려는 것이 그 일차적 목적이다. 세계화로 인한 부와 빈곤의 극단적인 불평등, 민족적·종족적 갈등의 격화 속에서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거나, 국제적인 마약 카르텔이 일부 지역을 통치하거나, 다양한 군벌들이 지역적으로 할거하는 등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이른바 국가의 (무정부적) 해체가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범죄, 테러의 가능성은 국제적인 안보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는데 따라서 해당 지역의 대규모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국제적인 간섭/개입이 1990년대 주요 국제현안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인권과 안보의 결합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종전까지 엄격하게 유지되어 왔던 유엔 헌장의 주권 평등, 무력 사용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 불간섭 등의 기본적인 원칙을 상대화하고 평화에 대한 위협 시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유엔헌장의 예외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적용할 수 있다는 지배적인 인식으로 귀결된다. 이미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999년 총회에서 유엔헌장이 '국제사회'가 타국에 간섭할 권리가 있음을 배제하지는 않으며,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간섭에는 평화적 수단과 강압적인 수단 모두가 포함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유엔개발계획은 인권을 전통적인 안보 개념과 결합하면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관심사로서 마약과 인권침해 등의 위협에 대해 모든 국가가 참여하여 문제를 해결, 사전예방이 필수적임을 언급하였다.

사실상 강압적 수단에 대한 인정은 이른바 '불량국가'들에 대한 봉쇄와 제재,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특히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데, 무력수단과 예방을 포함하는 인도주의적 간섭/개입의 주체로 상정되는 '국제사회'는 세계 주요 군비 지출국인 미국과 그 군사 동맹국들(NATO, 일본, 남한 등) 없이는 사실상 빈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심부 국가의 '인권 외교'가 이처럼 세계적인 폭력과 무질서를 그 등장배경으로 하며 '인도주의적 가치'들은 군사·안보적 목표들은 중심부 국가의 전략에 종속된다. 따라서 '인권 외교'에 대한 핵심적인 비판은 미국과 남한을 포함하여 중심부 국가들의 세계 전략이 지니는 근본적인 모순과 한계에 대한 통찰을 우회할 수 없다. '북한인권'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북한인권' 논의의 전제 -군사·안보적 주도권의 추구

'북한인권'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북한이 자국 인민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거나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이라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 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1993년부터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면서 주민을 굶주림에 처하게 하는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되어왔다. 그리고 지난 해 미국 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북한인권법」에서는 "민주적 체제로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속화"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설정하고, 북한과의 협상시 북한인권 문제를 "주요 관심 사안"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은 탈북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본토입국에 대한 엄격한 제한조건을 부과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북한 주민의 대량 입국은 불가능할뿐더러 사실상 대부분의 활동은 탈북자를 지원하는 NGO의 활동에 지원되거나 보고서 발간, 북한인권특사의 임명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으로서 활용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한반도에서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중장기적 목표를 전제한다. 1990년대 이후 북미관계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핵개발 의혹 뿐 아니라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그리고 최근에는 인권문제 등을 북·미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서 제기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지연시키면서 지역적 차원에서 남한 및 일본과의 군사동맹질서를 공고하게 다지고자 하는 미국의 태도에서 연유한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을 가능케 했던 『페리 보고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약속한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포기를 추가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남한과 일본 등의 주변국들은 경제·문화적 교류를 통해 유인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과 남한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며 1998년까지 미국은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을 연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 위협을 근거로 수백억 달러가 소요되는 미사일방어망(MD)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처럼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미국의 태도는 사실상 북한 체제 자체를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무장해제와 응징이라는 수단을 일관되게 선호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은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되면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테러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독재체제를 전복시키는 이른바 '정권의 민주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발상과 결합한다. 실제 미국은 『핵태세 보고서』(2001년)에서 북한을 선제핵공격이 가능한 국가로 분류하고, 2002년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북한은 이른바 "악의 축"으로 규정되는데 이들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다름 아닌 '체제의 교체'였다.

'체제 교체'를 추진하는 경로는 다양하며 반드시 군사적 수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각종 재래식 화력이 밀집되어 있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은 자칫 수백만 명의 사상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제재와 봉쇄수단을 강구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는 미국 정보기관들의 개입을 상정해볼 수 있다. 중앙정보국(CIA)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미 석유시설의 국유화를 추진하던 이란 모사데그 정부의 전복(1953년)과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실험하던 칠레 아옌데 정부에 대항한 쿠데타(1973년)로 악명을 떨친 바 있으며, 9·11 테러 이후에는 각종 관련 기관들이 본토안보국이라는 거대한 안보기관으로 통합되었다. 특히 '인권-외교'에서 미국 국무부는 NGO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 등을 선전한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NED)을 통해 NGO 단체들과 국제적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2-03년에 걸쳐 NED는 남한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에 각각 25만 달러를 지원한 바 있을 뿐 아니라 이번 북한인권국제대회 역시 200만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무부 예산을 지원받았다. 게다가 「북한인권법」의 시행에 책정된 2천 4백만 달러의 예산은 '탈북자들의 망명'을 기획하는 이러한 단체들에게 상당 부분 유입될 것이다. 이들은 남한정부가 제공하는 탈북자 정착금을 중간에서 착복하는 보르커들의 횡포를 방조·조장할 뿐 아니라, 미국의 재정적 지원을 얻기 위해 미국 정부와 의회에 '북한인권' 관련 정책입안의 (부풀려지고 왜곡된) 기초적인 대북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렸다. 이처럼 '기획 탈북'을 시도하는 인권 NGO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북한의 정정(政情)을 동요하게 하거나, '방코 델타 아시아'의 경우와 같이 위폐제조·유통 및 마약 거래 등의 혐의로 사실상 북한의 대외무역 거래를 제한하는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정권 전복'을 의도한 미국의 대북 압박이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을 현실의 논의지형과 역관계를 사장한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에는 이미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으로서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을 통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 즉 북한체제의 전복이라는 구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전제는 바로 네오콘이 제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며 결국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인식과 태도다. 따지고 보면 네오콘이 제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의 논리는 절대적이고 구제 불가능한 악의 세력에 대해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행하는 복수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 비인도적인 조건에서 희생자들은 인권을 박탈당한 상태이며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규정할 능력이 부재한 이들이다. 이러한 선과 악이라는 구분 속에서 기존의 모든 가치관과 규범들은 상대화된다. 이를테면 수십 년 동안 남한의 군사독재정권이 반공이라는 국시(國是)를 제창하고 고문과 학살, 언론과 출판의 규제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수행했던 것처럼, 이제 테러에 대항하여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비밀구금과 체포, 고문, 제네바 협정에 따른 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의 비준수 등의 국제적 금기사항은 이제 미국 스스로에 의해 침해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불의(不義)를 당분한 지구상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북한인권' 수용의 함정과 반전운동

중심부 국가들의 인권-외교정책에서 제기되는 '인권', '민주주의', '해방'의 대상은 자신들의 권리를 규정할 능력이 없는 절대악의 '희생자'들이며, 이들은 사실상 무기력한 '구원'의 대상일 뿐,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되지 않는다. 이는 현재 이라크에서 미국의 점령과 이른바 '주권 이양과정'에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이라크인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독재자를 쫓아냈다는 부시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초토화 작전과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들 앞에서 무색해진다. 미국이 수행하는 '국가재건'과 '민주화'란 미국에 대항하는 정치세력의 출현을 봉쇄하는 분할통치, 강압적인 억압기구의 확대(경찰과 군대의 충원)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오히려 인민주권을 파괴하고,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기형적 지배질서를 수립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북한체제가 199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전력난을 비롯한 에너지의 부족과 기본적인 식량의 부족 등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 인권개선'을 결합하고 이것을 자국의 군사·안보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간과할 수 없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이 이른바 인도주의적 지원과 군사적 압박을 병행하는 것이므로 그 중 하나만을 특권화하고 나머지는 용인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된다.

현재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은 겉보기와는 달리 국내의 '보수세력'이나 미국의 네오콘들과 질적으로 단절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군부독재정권에서부터 이른바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은 한·미동맹, 혹은 '북한의 위협'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군비증강을 추구하는 군사·안보정책의 종속변수이기 때문이다(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와서 거듭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남북관계에서 경색국면과 유화국면 사이의 동요는 핵과 미사일 등을 둘러싸고 북미관계가 악화되거나 호전될 때의 시점과 거의 일치하며, 최근에 와서야 삭제된 '북한 주적론'을 대신하여 등장한 이른바 '자주국방', '균형자론' 등은 변함 없이 군사력을 증강하겠다는 남한정부의 노림수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과 남한의 대북정책을 대조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전자를 비판하고 반대하면서 후자를 지지 내지 견인하겠다는 발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운동진영이 경계해야할 위험천만한 함정이다.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은 상호보완적인데, 왜냐하면 양자는 공히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역관계를 변경할 의사가 조금도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인식은 따라서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과 그 군사안보전략에 맞선 투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반도는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남한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감행하면서 미국의 "세계적 동반자"로서 세계적 차원에서의 군사·안보의 동맹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른바 '북한의 위협'을 통해 일본과의 군사·안보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역내에서 안보질서를 자신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재구축하려 한다. 이러한 흐름대로라면 한반도의 통일 역시 민주주의와 변혁의 과정이 아니라 현행의 군사적 질서를 유지한 채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상태를 변경하지 않고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으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태도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해방의 현재적 과제를 모색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 첫 번째 선결 과제는 무엇보다 반전운동의 과제, 즉 한반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를 해체, 소멸시키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전제되지 않는 '북한인권' 논의는 미국 인권외교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북한 및 동북아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제국주의 담론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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