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오봉산에 있는 청평사.

저 열려진 문 사이로 속세의 고뇌를 짊어지고 불국정토로 들어서는 것인가?

깨달음을 위해 가사 장삼을 걸치고 고행차 속세로 나아가는 것인가?

저 빛의 사각 프레임 안에 탐, 진, 치를 벗어버리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게의치 않고 살았으면 싶다.

저 빛은 출구인가 입구인가

속세로부터의 탈출구이며 깨달음으로의 입구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똑같은 크기로 정렬되어진 기와들

개개인에게 주어진 고통의 크기가 절대적으로 다르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론 모두 똑같은 것이리라.

저 기와들마냥. 누구나 감당해야할 무게의 짓눌림.

개인에게 주어진 고뇌들 또한 경중을 가릴 수 없으니 기왓장 하나가 빠져 우르르 쏟아지듯

고뇌의 고리 하나만 끊긴다면 해탈할 수 있을련가?

그 고리 하나를 찾아 오늘도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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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화려한 나비. 바위처럼 무던한 나비.

보호색을 입고서 하늘하늘. 세상과 하나되려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 속에 숨어살기 위해서일까?

나는 지금 이 곳에 어떤 보호색으로 물들여 있을까?

세상 속에 숨어 지내려고 말이다.

나는 번데기를 벗고 나를 찾아 날고싶다. 보호색따윈 떨쳐버리고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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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1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전시장을 찾은 일이 있는데, 나비의 무늬가 그리 슬프게 보였어요. 화려함, 무던함, 그 안에 끓는 뜨거움.. 고난의 시기를 벗고 떨쳐나왔는데도 그리 애틋하게 보이던 이유 말이죠, 그게 하루살이님의 글에서 느껴지네요.. 좋은 하루~~

하루살이 2006-06-14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산에 가면 나비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앞길에서 팔랑팔랑 거릴 때면 잠시 멈추고 어디로 가나 지켜봅니다. 한걸음 걸어가면 한걸음 앞으로 날아가는 모양이 꼭 길을 가르쳐주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비가 인도하는 길은 화원의 천국으로 가는 길일까요? 나비의 날개에서 묻어나는 가루마냥 슬픔이 눈처럼 날리는 곳일까요? 따라가다 보면 이내 저 멀리 사라집니다. 제가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파란여우 2006-06-1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하루살이님이 직접 찍으신거여요? 아, 아주 좋아요!
특히 이끼 얼룩진 바위 위에 앉은 나비가 꼭 저처럼 울룩불룩 근사합니다^^

하루살이 2006-06-16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사진과 비교한다면 부끄럽습니다.
'울룩불룩' 그러니까 님이 근사하시다는거죠?^^
 


오봉산의 구름

 

파란 물에 흰 물감을 풀어 번지면 이렇게 될까? 그라데이션 또는 보카시라고 표현하는 점점 묽어지는 모양새가 눈을 사로잡았다. 아득하니 사라져가는 그 경계선.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들어가는 곳. 그 희미한 경계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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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6-15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 섞이는 것, 그 어울림의 묘연함이 현기증나게 아름답습니다

하루살이 2006-06-16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과 기름처럼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폭력은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힘의 균열이 바로 폭력의 씨앗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물리적 폭력이든 성폭력이든, 심리적 폭력이든 그 힘의 우열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순간 비로서 폭력은 기지개를 피는 것이다.

영화는 상황극이다. 영화적 표현보다는 오히려 연극적 요소가 강해 무대에 올려진다면 훨씬 나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성악과 교수와 제자가 뮤지컬 오디션을 보고 서울로 향하다 우연히 들어서게 된 낯선 곳. 군대시절 폭력에 의해 귀가 멀고 정신까지 이상해진 돼지 사육자와 고등학교를 퇴학당한 아이, 왕따 당하는 고등학생,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겁을 상실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청년이 이곳에 모임으로써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교수라는 직분과 뮤지컬 오디션 채점자로서의 권위를 앞세워 제자를 성추행하려다 실패하는 모습 속에서는 뉴스 속에서 항상 접하는 것들이라 오히려 무감각하고 지레짐작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동네 청년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선입견에 꼼짝달싹않는 교수와 혹시 죽지 않았을까 과잉 친절을 베푸는 청년들 속에서 웃지못할 폭력의 전초가 시작된다. 목소리로 먼저 힘이 셈을 과시해보지만, 손에 들고 있는 돌멩이를 보고 떠는 바람에 본모습을 들켜버린 교수나, 왕따 당하던 고등학생이 무지막지하게 얻어맞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변하게 되는 상황, 경찰이라는 직분이 주는 힘을 이용해 사용하는 폭력 등등. 그들의 폭력은 철저하게 힘의 논리에 의해 유발되고 있다.

그리고 그 근간엔 질긴 인연을 숨기고 있는데, 이게 영화의 결말을 게운치않게 만든다. 순환되는 복수의 고리, 인과응보라는 결말. 차라리 현실이 그렇게 인과응보적이라면 폭력도 불사하고픈 심정이 꿈틀거린다. 반대로 모든걸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을 평범한 사람이 지니고 산다는 것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복수도 용서도 힘든 보통 사람들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로 다가설까? 애시당초 복수의 씨앗을 키우지 말자는게 정답인듯 보인다. 아니면 차라리 아주 강한 사람이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바보가 되는 수밖에.

잔혹과 코믹을 내세운 영화같지만 잔혹 쪽이 훨씬 강하게 인상을 풍긴다. 아무래도 그것은 연기자들의 제대로 된 연기 덕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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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퍼온글]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을 말한다.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을 말한다.

글 : 자유기고가 김우진


드라마와 영화를 앞세운 한류가 동아시아를 휩쓸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도 못 될 만큼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출판 시장에서는 여전히 '일류(日流)'가 무시하지 못할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 소설은 트렌디한 러브 스토리나 젊은 감각의 신변소설을 내세워 독자들의 손길을 꾸준히 유혹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잠재력을 가진 일본 소설 분야로는 역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미스터리 장르를 관통하는 두 가지 코드는 '환상'과 '현실'이다. 환상이라는 말만 듣고 섣부르게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해리 포터 류의 판타지를 연상해서는 안된다. 이 '환상'이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이고도 낭만적인 추리를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아직도 수많은 일본 작가들이 동경을 담아 재생산해 내고 있는 장르이며, '본격파'라는 이름으로 미스터리의 본류이자 정수로 추앙받고 있는 분파이기도 하다.

'본격'이란 본디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논리와 진실을 밝히는 과정 자체에 집중한다는 의미다. 본격 미스터리를 표방한 소설 중에서도 무수한 변종과 시도를 찾아볼 수 있지만, 한결같은 특징은 주인공 탐정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인물로 일본 추리 소설계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름 자체가 애드거 앨런 포에 대한 오마주인 그는 시조, 효시라는 명성과는 안 어울리게도 아웃사이더적인 시선과 기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환상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그가 창조한 일본의 대표적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는 호방하고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지만, 그가 맡은 사건에는 언제나 음습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최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교고쿠 나쓰히코는 일본 미스터리 전통의 계승자라고 할 만하다. <백귀야행>, <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 등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이제 갓 마흔을 넘긴 젊은 작가다. 특히 <우부메의 여름>은 냉철한 회의론자 탐정 교고쿠와 요괴와 악령이 출몰하는 기이한 스토리를 결합시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요괴 소설의 일인자에서 환상 미스터리 작가로 자리매김을 했다.

일본 미스터리는 이처럼 기묘한 환상의 세계예 속한 동시에 냉엄하고도 굳건한 현실에 기반하고 있기도 하다. 1950년대 후반 마쓰모토 세이초로 시작되어 모미무라 세이이치가 확고한 위치를 다진 일군의 '사회파' 소설들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 문제나 시사적인 소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본격 추리'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낭만적이거나 환상적인 작품을 지양하고 냉정한 필치로 개연성 있는 사건을 다루는 미스터리의 새 경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점과 선>, <모래그릇>등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작들은 부패, 불륜, 비리와 같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여과 없이 드러낸 혁신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뒤이어 1970년대를 풍미한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세속적인 욕망에 물든 인간 군상의 명멸을 그리는 데 능해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손꼽혔다. 특유의 노골적인 묘사와 이분법적인 시각, 정형적인 인물들은 이제 통속적인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전형이 되었지만 말이다.

현대의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현실에 기반한 내용을 다루더라도 더이상 사회파란 이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대신 (SF적 요소를 포함한) 과학과 사회학, 심리학적 요소들을 접목한 '이과적'인 미스터리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앞서의 낭만적 본격 소설들이 '문과적'인 면을 가진 것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특성이다.

이과적이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방대한 설정과 과학적 지식을 담아내는 마이클 클라이튼식 소설인 것은 아니다. 단지 문과적인 과거 소설들에 비하여 소재와 시각의 저변을 넓혀 미스터리의 외양을 확장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예컨대 오늘의 유명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기리노 나쓰오는 '여성',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간', 기시 유스케는 '공포', 이사카 코다로는 '죽음' 등으로, 각각의 분야를 특화하여 삶 속의 미스터리를 해부해 나가는 전공의에 비유할 수 있겠다. 소설적 재미와 함께 몰랐던 지식을 알아 가는 즐거움까지 만족시켜 주는 이들은 지금도 나날이 새로운 변신을 통해 독자들을 놀라게 할 준비에 힘쓰는 중이다.

환상과 현실. 이것은 일본 추리소설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들 삶을 떠받치는 두 중심축이기도 하다. 인간은 현실에 발을 디딘 채 머리로는 끝없이 환상을 꿈꾼다. 고개를 숙이고 땅만 바라볼 수도 없고, 하염없이 하늘만 동경할 수도 없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일본 미스터리는 우리가 둘 중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할세라, 여기에 다른 한 쪽도 존재한다는 것을 수시로 일깨워준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기이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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